오피니언

  • [노트북] 운전석 기사, 조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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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운전석 기사, 조수석 기자 지면기사

    안전운임제가 일몰된 이후 화물 기사들의 삶은 어떤지 궁금했다. 기꺼이 옆을 내어준 컨테이너 화물 기사의 차량에 지난 16일 몸을 실었다. 오전 9시55분 의왕에서 출발한 차량은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를 거쳐 부산항에 도달했다. 컨테이너를 내리고 싣는 작업이 끝난 뒤 차량은 다시 상주에 들러 기름을 넣고 종착지인 안산에 17일 새벽 2시25분 도착했다. 꼬박 16시간이 걸렸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기사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취재를 위한 인터뷰는 진작 끝났다. 정치·사회·문화로 주제를 바꿔가며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상주에서 안산으로 이동할 때쯤 대화 소재는 거의 고갈됐다. 말수는 줄어들고, 피곤이 몰려왔다. 창문을 여닫는 일이 잦아졌다. '눈꺼풀이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고 너스레를 떨며 애써 졸음을 쫓아냈다.운전석의 기사는 이런 피곤함에 적응돼 괜찮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14시간째 접어든 장시간 운행은 그에게도 벅찼다. 그가 기지개를 켜거나 지압봉으로 허벅지 등을 누르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는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하루 종일 조수석에 앉아만 있던 나를 말이다.기자로서, 동행 또는 체험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때 '아는 체'하는 걸 경계한다.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마치 당사자가 된 것처럼 기사를 쓰는 건 기만처럼 느껴진다. 운전석의 기사, 조수석의 기자. 안산에 도착해 차량 안에서 잠을 청하는 기사, 안산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탄 기자. 기자는 당사자를 모두 이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한계다.기사는 헤어지며 자신이 귀족노조처럼 보이느냐고 물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퀭한 눈에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그와 작별하고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우연히도 택시 기사는 작년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5월 퇴직한 이후 컨테이너 화물 기사를 하려고 실제 기사들과 1주일간 함께 다녔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잠도 못 자고 300만~400만원 버는 사람들이 귀족이요?" /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jhb@kyeongin.com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경기도의 작은 날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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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경기도의 작은 날갯짓 지면기사

    최근 드라마 '더 글로리'가 열풍이다.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복수에 나선다. 피해자를 향해 가혹한 폭력이 계속되지만,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 외면한다. 해외에서도 더 글로리를 주목한다. 태국에서는 트위터에 '#The Glory Thai'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학교폭력 고발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선 8기가 시작된 경기도는 연일 떠들썩하다. 김동연 지사가 강조해 왔던 '유쾌한 반란'이 경기도청을 휩쓸면서다. 김동연 지사는 "배추벌레는 배춧속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며 공직자들을 '배춧속'에서 꺼내려 한다. 지난 6일 도청 실·국장, 도 산하 공공기관장 등이 모여 10시간 넘게 마라톤 토론을 이어간 데 이어, 도청 과장 등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자신의 철학을 명확히 전했다. "자녀, 청년들이 부모, 사회가 정해준 길에서 착실하게 공부벌레처럼 공부해 부모, 사회가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길을 가길 원하나. 청년들이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말하는 걸 억누르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 '게임의 룰(rule)'이지 않나."한국 사회에서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은 행복한 인생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진다. 여기서 '좋은'이라는 기준은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 아닌, 주로 명문대, 대기업 등으로 치환된다. 한국 사회의 구조는 이렇게 이미 공고한데, 그 속에서 꿈을 찾고 좇아가기는 쉽지 않다. 김 지사의 새로운 시도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쉽게 바뀔 것 같아?"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매번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도로 여겨지고 우려도 나오겠지만, 경기도에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위험부담에도 꿈을 이룬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회보다는, "나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더 기대되기 때문이다. 민선 8기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으로 사회의 공고한 틀을 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비효과'를 기대해 본다. /신현정 정치부 기자 god@k

  • [노트북] 겉보기만 요란한 수원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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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겉보기만 요란한 수원시의회 지면기사

    12년 만에 여소야대 형국을 맞다 보니 수원시의회가 조용할 날이 없다. 시작부터 '반쪽짜리'란 오명을 얻은 인사(정책검증)청문회부터 초유(?)의 예산 삭감이 이뤄진 올해분 예산안 심의까지. 최근엔 시장의 새해 첫 인사발령이 지난 예산 삭감에 대한 '보복인사'라며 시의회 야당이 반발하고 나섰다.시의회가 시끌벅적한 건 당연한 일이다. 시의회 안에서 정당끼리 싸우거나 집행부에 항의하는 게 의원의 본분이다. 특히 시장의 인사권 견제와 집행부의 예산안을 심사하는 건 기본적인 의원의 역할이다. 다만 여대야소 구도가 지속하는 동안 다소 소극적으로 역할이 수행된 것뿐이다.민선 8기 들어 12년 만에 시장이 교체되고, 여소야대 형국과 아울러 시장과 소속 정당이 다른 의장이 자리하면서 내심 기대감에 부풀었었다. 기자로선 잠잠하기보다 소란스런 시의회가 반갑고, 시민들에게도 의원의 적극적인 집행부 견제 활동이 이로울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시의회는 여소야대란 구조적 특징이 자신 또는 소속 정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점만 과도하게 의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산안 중 일부에 대한 삭감 의견이 나오거나 그 방향으로 표결이 진행되면, 그 삭감 내용과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져야 하는데 '왜 반대만 하냐'는 논란이 더 커져 뒤덮는다.네 번이나 반쪽짜리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도 여야가 함께 산하기관장 후보자의 자격에 대해 머리를 맞댄 적은 없고 청문회 진행 절차만 갖고 싸우고 있다. '보복인사'란 주장까지 나온 시장의 새해 첫 인사 논란은 야당만 집행부에 반발할 뿐 여당은 입장조차 없다.시의회가 잠잠해선 안 되지만 시끄러우려면 청문회장이나 상임위 회의실 또는 본회의장 안에서 예산삭감 대상이 되는 정책 내용이나 인사권을 두고 같은 테이블 상에 앉아 싸워야 한다. 얼굴은 마주하지도 않으려 하면서 여소야대 형국만 의식해서는 요란한 빈 수레밖에 안 된다. /김준석 사회교육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민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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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민지에게 지면기사

    MZ세대가 자주 찾는 '힙(hip)'한 카페에 갔다.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해 찾은 곳이었다. 익숙한 듯 낯선 힙합이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실내를 가득 채웠다. 실내 벽은 콘크리트, 마감재 곳곳엔 날카로운 못이 그대로 노출돼 있는 '공사판' 콘셉트 카페인 이곳은 주말이면 인파가 몰려 커피 한 잔 먹기 힘든 '맛잘알(맛을 잘 아는 사람)'들의 성지였다.'테이크아웃(포장)'이라도 하기 위해 카운터(계산대)로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주문을 받는 훤칠한 키의 직원은 트렌디한(멋진) 패션과 '타투(tattoo·문신과는 다르다고 한다)'로 고객인 우리 무리를 압도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잔 주세요." 여느 카페에서처럼 나는 지인들과 함께 논의해 정한 메뉴를 주문했다. 음악이 시끄러웠을까. 카페 직원은 아랑곳 않고 포스기(주문기기) 화면만 응시했다. 음악이 시끄러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에 잔"을 외쳤다. 이번에는 포스기를 응시하던 그의 두 눈이 내 눈을 향했다. "뭐 드시겠어요?" 이미 두 차례나 메뉴를 말했단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힙스터(멋쟁이)'의 두 귀에는 야속하게도 '에어팟(무선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2년 전 일이다.2023년에도 MZ와 에어팟은 '찰떡궁합'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다. 예능 TV프로그램 'SNL코리아'는 'MZ오피스' 코너를 선보였다. 극중에서 MZ이자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역을 맡은 김아영씨는 사무실에서 연일 에어팟을 꽂고 일하며 MZ세대의 모습을 풍자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MZ의 당찬 모습은 TV에서 개그 소재로 쓰일 만큼 일상이 돼버렸다. 혹자는 일의 능률과 효율성, 개인주의란 고상한 단어로 합리화하며 문제 제기하는 이를 향해 '꼰대' 프레임을 씌우려 하나 그들이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순전히 특정 세대를 지칭하던 MZ가 이젠 혐오표현이 되고 있음을.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명종원 정치부 기자

  • [노트북] 이제는 한숨이 나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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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이제는 한숨이 나오지 않도록 지면기사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한숨으로 시작했다. "보증금 1억원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지금 사는 집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며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엔 시름이 가득했다.두 달 전 '전세사기 피해자 법률지원 접수처'가 마련된 인천 미추홀구청 복도는 이른 아침부터 북적였다. 평일 오전에 생업을 제쳐놓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다른 아파트에 살지만, 집주인의 이름이 같다는 사실을 알아챈 피해자들도 더러 있었다. 집주인이 부유한 자산가라는 부동산중개업자의 말까지 똑 닮아있었다. 같은 집주인에게 당한 세입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추홀구 일대 피해자들은 대책위원회를 직접 꾸렸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는 공동주택 21곳의 입주자 대표가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는 2천여 가구가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평생 모은 보증금을 한순간에 잃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실어증이 온 피해자가 있다는 사연을 대책위를 통해 전해 듣기도 했다.최근 연락이 닿은 또 다른 20대 피해자는 같은 아파트 이웃집의 경매가 이미 진행되고 있던 지난해 여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부동산을 통해 전세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대책위도 피해 가구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피해 가구인지 모르고 있는 세입자의 집도 경매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앞으로 전세로 집을 구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피해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보금자리를 찾는 세입자들의 소망은 물거품이 됐고, 전세제도에 대한 신뢰도 깨졌다. 개인의 부주의만을 탓하기엔 피해 가구가 너무 많다. 정부가 이제 막 제도를 손보고 있지만, 전세살이하는 이들의 불안을 없애기엔 역부족이다. 더 늦기 전에 이번 사태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백효은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100@kyeongin.com백효은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백발 소년의 새해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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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백발 소년의 새해 소망 지면기사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데미안) 우리는 사춘기 시기에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투쟁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보살핌이 필요한 소년인 터라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호락호락하진 않다. 그래서 고민도 하고, 방황도 하고, 교육도 받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갈고 닦으면 자기만의 세계가 꾸려지는데 그때 우린 비로소 어른으로 거듭난다.지난해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만났을 때 이 구절이 떠올랐다. 사춘기 시기를 선감학원에서 보낸 피해자들은 아직도 선감학원 원생 티를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퇴소한 지 4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인터뷰 중 그때가 떠오르면 눈물을 흘렸다. 상처가 마음속 깊이 자리한 탓이었다. 피해자들은 대체로 11살 나이에 끌려와 4년 이상을 강제 수용됐다. 교육은커녕 학대와 고문, 고된 노동이 일상이었다. 선생과 직원에게 따질 수도, 반항할 수도 없었다. 어른으로 성장할 시기에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셈이다.그러던 피해자들은 백발의 노인이 돼서 지금의 자신을 만든 세계와 투쟁하기로 했다. 2012년부터 단체를 조직해 자신이 부랑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렸고, 강제로 수용해 폭력을 저지른 국가에 사과를 요구했다. 지난해엔 노력이 일부 결실을 맺었다. 원생이 묻힌 묘역 시굴 작업 결과 5개 봉분에서 모두 아동 유해가 발견됐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피해자는 위로금과 생활비를 지급 받게 됐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사과와 모든 피해자 배·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백발 소년의 새해 소망은 그 시절 상처를 오롯이 극복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백발 소년이 국가의 사과를 받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대다수가 고령에 접어들었고, 해마다 한두 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앞으로의 길이 지난하겠지만 역사적 진실은 언제나 소년들의 편이다. 백발 소년의 새해 소망을 진정으로 응원한다. /김동한 사회교육부 기자 dong@kyeongin.com김동한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한마디 사과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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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한마디 사과를 위해 지면기사

    전국적으로 한파가 찾아온 지난 14일 수요집회를 주관하기 위해 인천에 있는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모였다. 집회 당시를 떠올리며 얘기하던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고, 당찼다. 한 학생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다 아는 데 일본만 모르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일본을 향해 똑 부러지게 내뱉는 학생들의 말이 위안부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나를 반성하게 했다.매주 수요일 낮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1992년 1월부터 시작된 이 집회는 30여 년 동안 진행 중이다. 이 긴 세월 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에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위안부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코로나19 여파와 줄어든 사회적 관심 등으로 집회 규모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국제 사회는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공식 인정하고 있다. 2007년 7월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으로 '미국 연방의회 일본군 위안부 사죄(HR121) 결의안'이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 그 근거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주인공 나옥분은 미국에서 열린 위안부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선다. 그는 과거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말하며 "I am sorry, Is that so hard?"라고 외친다. 진정 어린 사과 한마디를 듣고 싶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절실한 마음을 대변하는 대목이다.한마디 사과를 듣기 위해 애썼던 또 한 명의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최근 별세했다. "죄송하다." 그 한마디를 듣지 못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이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 생존자가 10명으로 줄었다. 점점 작아지는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모두가 힘을 실어줘야 할 때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수진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wed@kyeongin.com이수진

  • [노트북] 애프터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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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애프터 크리스마스 지면기사

    12월26일. 겨우내 거리를 메운 캐럴 소리와 트리 조명이 사라졌다. 연말 동안 잔뜩 들어온 '성탄절 바람'이 빠지는 날이다. 모두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복귀해 숨 가쁜 하루를 준비한다. 하필 올해는 또 월요일. 하루만에 출근길 아침 코끝의 찬 공기가 시리게 들어온다.매년 이맘때가 허무한 이유는 설레는 성탄절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올해가 벌써 일주일도 안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해를 돌아보며 유독 허무함이 클 이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운전대를 잡은 화물노동자들도 그중 하나다. 파업 종료 이틀 전 평택항에서 만난 30세 또래 운전기사는 안전운임제가 연장되지 않으면 아예 다른 직종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내심 협상 결과를 기대하는 기색이 보였던 그였다. 실제로 파업이 끝나고 답보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문득 그는 정말 덤덤하게 이직을 준비하는 연말을 보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사고도 많았던 한해였다. 유독 안타까운 참사와 희생자가 속출했던 만큼 취재 과정에서 주변인들의 일상을 알게 되는 일이 잦았다. 공장에서 작업하다가, 건설 현장에서 떨어지면서, 심지어 그저 친구와 오랜만에 놀러 나온 자리에서도 세대를 불문한 희생 소식이 잇따랐다. 이들이 남긴 가족, 친구, 동료들은 아직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허한 빈 자리를 두고 작년과 사뭇 다른 시기를 보낼 그들의 연말은 또 어떨까.개인적인 소회보다 타인의 허무함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사회 전반의 안타까움이 컸던 한해였다. 미리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허무함을 지나가는 기억으로만 제쳐 두고 싶지 않다. 일주일 남은 올해지만, 일주일 뒤면 다시 새해가 밝는다. 캐럴이 지나간 자리도 곧 희망과 안부를 주고받는 인사말로 가득 찰 것이다. 늦지 않을 때 이들을 다시 찾아 새해 안부를 물어볼까 한다. /김산 사회교육부 기자 mountain@kyeongin.com김산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붕어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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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붕어빵을 찾아서 지면기사

    칼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겨울이 되면 늘 현금 3천원을 지니고 다녔다. 입에 넣자마자 "앗, 뜨거워"를 외칠 정도로 뜨끈한 붕어빵과 호떡 등 겨울철 길거리 간식을 즐기기 위해서다. 그러나 최근 겨울철 서민 간식 붕어빵 찾기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만큼 어렵게 됐다. 밀가루 등 주재료 가격 상승 영향이다. 실제 지난 14일 앱 '가슴속3천원'을 통해 수인분당선 수원시청역 인근 붕어빵 가게를 찾아봤다. 해당 앱은 이용자들이 올린 정보를 토대로 사용자 위치 주변의 붕어빵, 호떡, 푸드트럭 등의 판매 위치를 알려주는데 오후 3시 기준 수원시청역 6~10번 출구 인근엔 총 6곳의 붕어빵 가게가 검색됐다.가까운 가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따뜻한 붕어빵이 꽁꽁 언 손과 속을 녹여줄 거란 기대에 부풀어서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붕어빵 가게가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찬바람만 감돌았다. 6곳을 돌았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반대편인 1~5번 출구 방면으로 발길을 돌리자 멀리서 붕어빵 트럭 한 대가 보였다. 1시간 만에 만난 올해 첫 붕어빵의 가격은 3개 2천원. 개당 700원꼴이었다. 사장 A(32)씨는 "재료 가격이 전년 대비 10% 이상 올라 작년(5개 2천원)처럼 팔 수는 없다"고 했다. A씨는 붕어빵 노점이 줄어든 이유로 '신고'를 거론했다. 앱을 보고 오는 이들이 많은데 사람이 모일수록 주변에서 불법 노점상으로 신고한다는 것. "이틀 전에도 영업하다 신고를 당했다"고 A씨는 설명했다.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붕어빵이 가진 추억과 감성은 대체하기 힘들다. 가슴속3천원 등의 앱이 인기를 얻는 이유다. 앱 덕분에 소비자들은 붕어빵 트럭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게 됐지만 반대로 자영업자들은 신고당할까 떨고 있다.노점상들도 할 말은 있다. 세금을 낼 테니 우리도 직업으로 봐달라며 '노점상 생계보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했으나 국회에선 관련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벌금 대신 세금을 내겠단 이들의 요구는 언제쯤 받아들여질까. 소비자는 발품을 팔지 않고 붕어빵을 사고, 붕어빵

  • [노트북] 갈길 먼 한국대표팀 월드컵 훈련장 취재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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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갈길 먼 한국대표팀 월드컵 훈련장 취재 환경 지면기사

    2022 카타르 월드컵 현장 취재 당시 찾았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장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지난 3일(현지시간) 오후 카타르 도하의 알 사드 스포츠 클럽 훈련장에 마련된 일본 대표팀의 훈련장에는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훈련 일정이 적힌 보드판에 13명에 달하는 선수들의 사진과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던 것.이들은 훈련장의 '믹스드 존'에서 인터뷰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일본의 카타르 월드컵 최종 명단이 26명인데 이 중 절반의 선수를 만날 수 있는 셈이다.이날 훈련을 마친 일본 대표팀의 도안이 훈련장에 설치된 믹스드 존에 등장하자 수많은 취재진이 선수의 발언을 듣기 위해 몰렸다. 훈련장에 있던 일본축구협회 관계자는 "훈련장에 오는 취재진들이 100명 이상"이라며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반면 한국 대표팀은 카타르 월드컵 훈련장에서 믹스드 존을 운영하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가 언론에 훈련 일정을 공지할 때 기자회견을 할 2명의 선수를 정해줘 이들만 인터뷰할 수 있었다. 일본 대표팀에 비해 다양한 선수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적은 셈이다. 예를 들어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에서 활약한 선수를 훈련이 공개된 날에 인터뷰하고 싶다고 가정하면 한국의 시스템상으로는 불가능했다.일본 대표팀처럼 많은 선수가 훈련장에서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한국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아시아의 축구 강국을 자처하는 한국과 일본 모두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며 선전했다. 하지만 훈련장의 취재 환경은 일본이 한국을 압도했다. 다음 월드컵에서는 이 같은 한국의 훈련장 취재 여건이 개선되길 바란다. 기자들이 편하자는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생생하게 전해주기 위함이다. /김형욱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uk@kyeongin.com김형욱 문화체육레저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