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노트북] 노장(老將) 그리고 베테랑(Veteran) 지면기사
"저는 이 일을 너무 사랑합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7번의 시즌 챔피언과 이전까지 103번의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한 F1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 미하엘 슈마허와 함께 역대 최고의 레이서로 꼽힌 그가 3년 간의 침묵을 깨고 지난 7일 104번째 우승을 차지하자 보이지 않던 눈물과 함께 기쁨을 호소했다.40대를 눈앞에 둔 그는 챔피언을 놓친 2021년부터 한창 어린 선수들로부터 고전하자 '이제 한물갔다'는 식의 조롱 섞인 비판까지 받았다.2014년부터 2020년까지 챔피언을 휩쓴 전성기를 지나 '은퇴'까지 거론된 그는 통상 20대가 주름잡는 F1 그랑프리 무대에서 다시 이뤄낸 값진 승리로 '노장은 죽지 않는다'는 격언을 몸소 보여줬다.평균 연령 40세, 은퇴한 프로야구 선수들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담은 '최강야구'는 방영한 지 3년이 넘어가고 있는 반면 시청자들의 관심도는 지속 상승 중이다. 이달 발표된 콘텐츠 화제성 조사에서 비드라마 부문 1위에서 최강야구가 5번째 1위를 차지했다.프로만큼 완벽함은 아니지만, 불혹의 나이라는 한계를 이겨내고 이뤄내는 승리에 시민들은 더 환호했다. 오죽하면 최근 프로야구 팬들이 최강야구를 통해 입문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물간' 베테랑들의 성장 스토리가 더욱 각광받고 있다.'명퇴 부추기는 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령, 고경력자들에 대한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통계청 조사를 보면 명퇴 등의 비자발적 실업자 증가 폭이 50대가 27.1%로 가장 높고, 40대도 20.7%에 육박했다.이달 초 서울 시청역에서 벌어진 역주행 사고는 고령운전 문제를 넘어 '노인 혐오' 여론까지 부추기게 될 정도로 한 때 베테랑이었던 이들의 설 자리를 우리 스스로 좁히고 있다. 노장이 아직 살아있음을 느끼고, 존중해주는 사회가 앞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
-
칼럼
[노트북] 공급대란이 낳은 '생숙 사태' 지면기사
인천 송도의 한 생활형 숙박시설(이하 생숙) 입주예정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시행사와 시공사가 준공 허가를 받았다고 해 입주 점검을 했는데, 여전히 공사 인력과 자재가 오가는 공사판이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시설과 상가는 언제 공사가 끝날지 모르고, 주거 공간은 공기 맞추기에 급급했던 흔적이 잔뜩 드러났다.내장재가 균일하게 시공되지 못한 건 사소한 편에 속했다. 전선이 드러나 있거나 필수 소방시설인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가구도 있었다. 공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준공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관할 지자체의 현장 점검 없이 서류 심사만으로도 허가가 나는 제도적 허점에서 비롯됐다. 주택에 해당하는 아파트와 달리 생숙은 건축법의 적용을 받아 허가받기 수월한 탓이다.생숙은 최근 몇 년 사이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장기 투숙 수요에 대비해 취사 등이 가능한 숙박시설이지만, 2017년 이후 부동산이 과열되면서 당시 정부의 주택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규제를 받지 않으니 대출을 통한 자금 마련이 수월했고,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수요가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규제 사각지대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생숙은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아파트처럼 거주할 수 있다'는 분양대행사의 안내문을 믿은 입주예정자들은 하루아침에 난감한 상황을 마주했다.생숙은 부동산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뛸 것이란 공포감은 영끌과 패닉바잉을 낳았다. 주택가격 폭등에 민심 폭발을 우려한 정치권이 제도의 문제를 외면한 책임도 있다.올 하반기 금리 인하가 나라 안팎으로 화두가 된 지금 생숙 사태가 다시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다. 정부는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공급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자잿값 폭등과 인력난에 처한 건설 현실을 보면 실현 가능할지 의문이다. 금리가 내리면 집값은 꿈틀거릴 테다. 그럼에도 생숙처럼 '언 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부동산 여론을 가라앉히려는 정책이 또 나와선 곤란하다. /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dal@kyeongin.com한달수 인천본사 경
-
칼럼
[노트북] 조금은 더 달라질 2주기를 기대하며 지면기사
지난 18일은 지난해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한 교사가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시 인천뿐 아니라 전국의 교사들은 열악한 교육활동 현장에 분노하며 '교권 보호'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교육청 출입 기자로서 서이초 교사의 순직 1주기를 맞아 그동안의 변화와 남은 과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이슈추적]서이초 교사 순직 1주기…'교권 보호' 성과와 과제' 기사를 출고하기 전까지 3일 정도는 인천 교원단체와 교사들을 틈틈이 인터뷰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들의 공통된 답변은 '교권 보호 5법' 개정 등 변화는 분명히 있지만, 정작 학교 현장에서는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현직 교사들로부터 여전히 열악한 교권의 현주소를 들을 수 있었지만, 지면 관계상 담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이 글로나마 일부를 풀어보고자 한다.인천시교육청 차원에서 구성된 민원대응팀의 효과는 생각보다 미미했다. 어차피 화가 잔뜩 난 학부모들은 학교로 직접 전화하거나 찾아오기 때문이다. 학교에 민원 대응 담당자를 두더라도 문제다.모든 악성 민원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다 보니 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한 학교는 바쁜 교사들을 대신해 교감이 이 업무를 맡았는데, 교사들에게 민원이 가지 않도록 막아주려다 결국 병가를 냈다고 한다.또 교권보호위원회는 평소 교사들이 요청해도 잘 열리지 않지만, 혹시 열리더라도 일부 관리자(교장, 교감 등)들이 일이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중재하는' 분위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물론 가해 학부모 또는 학생이 아닌, 교사가 참으라는 식이다.지난 1년간 관련법 개정, 인천시교육청 '2024 교육활동보호 매뉴얼' 발간 등 변화하려는 움직임은 분명 있었다. 앞으로의 1년은 이렇게 수립된 대책들이 현장에서 실효성을 지니도록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목소리다. 내년 서이초 교사의 순직 2주기에는 교사들이 조금은 더 보호받으며 안심하고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
-
칼럼
[노트북] 당연할 것이라는 편견 지면기사
'편견 :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경기도가 올해부터 노인 돌봄사업에 전면적으로 AI(인공지능)를 도입했다. AI 상담원이 1주일에 한 번씩 독거노인에게 전화하는 AI 말벗서비스 사업을 알게 된 것은 지난 1월이었다. 당시 취재는 편견으로 시작됐다. '독거노인에게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하는 게 어떤 효과가 있을까, 아마도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으로 취재에 착수했지만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일주일에 한 번 오는 안부 전화가 적정하다는 어르신들의 의견도 있었고, 사업의 기반이 되는 네이버 클로버 측에서도 주 1회가 적절하다는 의견이었다. 결국 AI 말벗서비스는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올해 운영 두 달만에 사업 목표량인 5천만명을 달성했다. AI 상담원이 위기 징후를 감지해 복지서비스를 연계한 사례도 다수다.지난 6월 다시 AI 말벗서비스를 취재할 때도 편견이 작용했다. 독거노인이면 홀로 지내기 때문에 적적할 것이라는 편견, 이로 인해 말동무가 필요할 것이라는 편견이었다. 편견은 또 뒤집혔다. 말벗서비스를 활발히 이용하는 공모(78)씨는 "혼자 지내는 삶이 즐겁다. 나름대로 드라마도 보고, 책을 읽기도 하고 USB에 좋아하는 영상들을 담아서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며 "적적해서 AI 안부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책임감으로 전화를 받는다"고 말했다.취재를 하면서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하면 막막함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런 질문의 대부분은 확신이 아닌 의심에서 시작된 편견이었다. 기자를 준비하며 종종 읽었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펼쳐봤다. '기자는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의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편견은 특정 계층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기도 하고 정책의 확장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기자를 준비하며 편견을 경계해야 한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의 다짐을 돌이켜 본다. /이영선 정치부 기자 zero@kyeongin.com이영선 정치부 기자
-
칼럼
[노트북] '유적부심' 지면기사
문화유산이 사람들과 공존하며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김포 신안리 신석기유적 취재에서도 여전했다. 경기도는 특히 개발 이슈가 많은 곳이기에 문화유산이 발굴됐을 때 재산권 등 분쟁의 여지가 적잖이 발생한다. 취재 현장에서도 여러 갈등과 문제로 인해 땅에 묻혀야만 했던, 또는 훼손될 수밖에 없었던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그런 지점에서 김포시가 해당 유적의 땅을 상당 부분 매입해 놓은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적어도 이 유적이 이대로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주변에 덕포진이라는 유적이 있었던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이번 발굴 자체가 덕포진 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는데, 주변에서 유적의 존재를 인식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신안리 신석기 유적을 세상에 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온전한 신석기유적, 그것도 무더기로 발견된 집터와 유물은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 기원전 3천700~3천400년에 존재했던 땅의 모습을 오늘날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단 10㎡의 땅도 유적지로 지정하기 쉽지 않은 오늘날에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는 땅이 현상적으로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사회적 자산"이라는 이야기는 더 와닿은 이유다. 언젠가 이러한 곳들을 둘러싼 아파트 단지가 생긴다 해도 오롯이 남아있는 이 땅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사실 눈에 보이는 어떠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땅 아래를 깊이 들여다봐야 찾을 수 있는 유적은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유적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며 그 가치와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는 여전한 숙제이다. 유적의 활용을 두고 김포시의 담당 학예연구사는 '유적부심'에 대해 말했다. 내가 사는 곳에 문화유산이 있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문화유산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 그 바람이 하나의 단단한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구민주 문화체육부 기자 k
-
칼럼
[노트북] 책임을 묻는 일 지면기사
"그곳은 책임운영기관이어서 그쪽에 물어보셔야 해요."최근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에서 전화상담원이 저성과자로 분류되면 센터장과 개별상담을 해야 하는 제도가 생겼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 기관인 노동부에서 역으로 감정노동을 하는 상담원들의 압박감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었다.취재를 마친 뒤 반론만 들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노동부에 전화했을 때 '책임운영기관'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다. 짐짓 당황하지 않은 척 노동부 소속 기관이니 노동부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되물으면서도 다급하게 책임운영기관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담당자를 연결해 준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센터 홈페이지를 다시 보니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라는 이름 앞에 '책임운영기관'이라는 명칭이 작게 붙어있었다.책임운영기관은 조직·인사·예산 등의 기관운영에 보다 많은 자율성을 부여해 책임운영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취지로 1999년 생겨났다. 당시 외환위기로 획일적 정부조직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도입됐다고 한다. 현재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책임운영기관은 53곳에 달한다. 기관에 운영과 자율성을 준다는 말은 책임 역시도 온전히 옮겨간다는 의미기도 하다."활동을 보고받는 정도라 정확한 운영방식은 모른다", "예산도 노동부를 통하지 않고 정부로부터 직접 받는다" 등 담당자와 몇 차례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센터 측의 연락처를 넘겨받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센터를 통해 정확한 상황과 반론을 들을 수 있었지만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노동부는 이 문제에 관해 얼마나 자유롭고, 기자인 나는 노동부에 얼마만큼의 책임을 물어야 했을까.이는 단순히 '노동부의 얼굴'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던 상담원들의 자부심 서린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위탁업체 소속 직원으로 출발한 상담원들이 정부정책의 일환으로 직접고용으로 전환돼 공무직 신분이었던 데다, 상담원을 관리하는 팀장 등도 노동부 소속 공무원으로 순환직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줄다리기만 계속된다. /목은수 사회부 기자 wood@kyeongin.com목은수 사회부 기자
-
칼럼
[노트북] '사도광산'과 인천 부평 '일본육군조병창' 지면기사
일본은 니가타현 사도광산을 에도시대부터 1900년대까지 금·은 등 주요 자원을 채굴하는 재정원으로 활용했다. 이 광산이 최근 한국, 일본 정부 간 외교관계는 물론 시민사회 의제에서 화두를 차지하게 된 것은 일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작업이 시작되면서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의 유산 등재 대상 기간을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한 게 발단이 됐다. 일본은 사도광산 운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39년부터 수년간 조선인 노동자 1천여명을 강제 동원했는데, 이 기간을 제외하면서 의도적으로 징용 역사를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는다.사도광산 노동자로 조선인을 징용한 근거는 니가타현 역사서와 일본 시민단체 조사 자료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니가타현은 1988년 펴낸 역사서에서 '(조선인) 노무동원 계획은 명칭이 변하지만, 조선인을 강제 연행했다는 사실은 동일하다'고 기록했고, 교도통신은 지난 6일 이 내용을 인용 보도했다. 지난달 유네스코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범위를 사실상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이 이뤄진 시기를 포함한 전체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심사 결과를 내놓았다. 한국은 물론 일본 내에서도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일본 정부가 지금껏 고수해온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본 정부가 외면하고, 지우려는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우리가 기억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다.일본 사도광산과 같이 인천 부평에는 조선인 강제동원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관통하는 근대건축물이 곳곳에 남아있다. 일본육군조병창(일본군 군수공장) 시설물, 미쓰비시 줄사택 등이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실체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부평에 남은 근대건축물들은 역사·사회적 가치에 앞서 환경 정화, 편의시설 조성을 위한 존치·철거의 대상으로만 재단되고 있다. 이같은 관점으로만 공간의 활용 방안을 정하기에는 너무 큰 가치를 간과하고 있다. 남아있는 근대건축물을 통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아픔을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가 얻을 수 있는
-
칼럼
[노트북] 러브버그와도 살아가기 지면기사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하기 전, 때 이른 무더위를 피하고자 공원을 찾은 할머니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반소매를 입어 맨살이 드러난 팔뚝에서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새까만 몸, 기다란 다리 여섯 개. 징그럽기로 소문난 러브버그가 팔에 붙어있던 것. 취재 중인 것도 잊고 눈물을 글썽이는 나를 달래며 할머니들은 "당장 이 벌레를 박멸해달라고 보건소에 이야기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스치듯 중얼거렸다. "징그럽다고 다 죽일 수 있나." 사실 러브버그는 인간이 보기에 혐오스럽게 생겼다는 죄 아닌 죄가 있을뿐, 애벌레 때는 낙엽을 분해해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성충이 되면 꽃의 수분을 돕는 '익충'이다. 게다가 길어야 일주일을 살지만 여름철이 되면 인간들은 러브버그를 박멸할 생각만 한다.최근 인천 계양구의 도로공사 현장에선 멸종위기종 금개구리를 만났다. 논 습지 주변 웅덩이나 수로 주변 수풀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도로공사 전 이미 환경영향평가에서 이곳에 금개구리가 확인됐다. 공사를 시행하는 인천도시공사는 금개구리 실태조사를 한 뒤에 첫 삽을 떠야했다. 이에 인천도시공사는 빠르게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겨울철에 조사를 나섰다. 당연히 금개구리들은 겨울잠을 자느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천도시공사는 이곳엔 양서류가 없다고 간주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우리는 쉽게 다른 생물을 생태계에서 퇴출시키고 지구를 독점하려 한다. 돌이켜보면 일상 속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기껏해야 길고양이나 비둘기, 가로수 정도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우리는 다른 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물론 러브버그는 여전히 두렵지만 말이다. /정선아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sun@kyeongin.com정선아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
칼럼
[노트북] 이성과 감정 사이 지면기사
기자는 취재원이 느끼는 아픔과 고통에 어디까지 공감해야 할까. 사회부 기자로서 현장에 나가 말기암 판정을 받은 환자, 불볕더위에도 온갖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배달에 나서는 라이더, 자기의 삶을 치매 남편에게 전부 쏟아부은 할머니처럼 혹독한 현실을 사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곤 한다.이 고민 중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이성이었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다루는 공정한 언론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올라오는 눈물을 삼켰고, 나에게 주어진 취재와 기사 작성이라는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취재원이 토로하는 아픔을 듣고 공감하는 것은 후순위로 밀렸다. 울렁이는 마음을 이성으로 덮었고 기사에 쓰기 좋은 멘트를 받는 데에만 혈안이 됐다.감정을 배제한 채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를 읽을 때면 죄책감이 한편에 자리 잡는다. 내 일을 위해서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을 이용한 것은 아닌가란 생각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전달하고 싶다는 기자 준비생 시절의 다짐과 다른 모습에 찜찜한 기분이 들곤 한다.기자란 목표를 가지고 취업을 준비하던 때 읽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새뮤얼 프리드먼이 쓴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란 책을 상기해본다. 책은 저널리스트가 갖추어야 할 여러 자질을 설명하며 '인간으로서 따뜻한 가슴'을 유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저널리스트는 객관성과 공정함을 견지해야 하는 존재이지만 인간이 느끼는 연민과 동정 등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프리드먼은 아픔과 슬픔을 겪는 이들의 마음을 기자가 느끼지 못하고, 그 마음을 기사로 제대로 옮길 수 없다면 비인간적인 기자의 모습이며, 기자로서 실패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기자가 된 지 만으로 1년을 바라보는 지금,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취재에 나섰는지 돌아본다. 인간의 감성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 또한 저널리즘의 역할이라고 프리드먼은 말한다. 바쁘다는 핑계와 냉정해야만 한다는 착각으로 실패한 기자가 되지 않길 다짐해본다. /한규준 사회부 기자 kkyu@kyeongin.com한규준 사회부 기자
-
칼럼
[노트북] 수도권매립지 종료, 환경부를 믿으십니까 지면기사
수도권쓰레기매립지의 대체매립지 세번째 공모가 무산됐다. 누구도 자기 집을 쓰레기장으로 내놓을 리 없다는 것을 모두가 예견했지만, 인천만 떠들고 있자니 허탈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표' 때문에 눈치 보는 경기도·서울시 등 지자체의 마음은 백번 양보해 넘어간다 쳐도 비교적 이해 관계에서 자유로운 환경부마저 숨죽인 모양새다.2015년 체결한 4자 합의에 따르면 환경부는 대체매립지 확보를 위한 자문·지원·조정 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난 1~3차 공모도 환경부 산하의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맡아 진행했는데, 정작 공사 노조는 매립지 종료와 4자 합의 이행에 늘 적대적 입장을 보였다. 역대 공사 사장들도 수도권매립지 영구화 발언을 이어왔다. 앞서 신창현 전 공사 사장은 광역소각장을 수도권매립지 안에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직전 전임자였던 서주원 전 공사 사장도 폐기물 전(前)처리시설을 매립지에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소각장과 전처리시설로 수도권매립지에 묻는 쓰레기의 '양'을 줄여 매립지를 더 오래 쓰겠다는 생각이다.과거 다수의 환경부 장관도 인천의 수도권매립지 피해를 외면했다. 2011년 조춘구 환경부 장관은 수도권매립지 악취에 대한 정치권 지적에 대해 한 강연에서 "의원들이 표를 얻으려고 나선다"라고 했다. 2013년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수도권매립지 연장을 주장했고,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2019년 국정감사에서 "대체매립지 조성은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할 일"이라며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1년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수도권매립지를 2025년 넘어서까지 쓸 수 있다고 해 인천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한화진 현 환경부 장관은 이번 3차 공모 응모 지자체가 없어도 당장 쓰레기 처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아 매립지 추가 사용을 전제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이쯤 되면 적어도 환경부는 수도권매립지 종료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환경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다음 공모의 결과도 변하지 않는다. 인천시민들이 수도권매립지 종료에 대통령이 직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