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노트북] 어떤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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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어떤 질문 지면기사

    윤석열 대통령의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었던 지난 14일 국회 앞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목적지와 가까워질수록 열차 안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무사히 도착하기만 기다리고 있던 차에 열차가 급정거하면서 승객들이 우르르 한쪽으로 쏠렸다. 옆에 있던 중년 여성의 몸도 뒤로 기울어졌고 그의 손목을 서둘러 붙잡았다. 짧은 순간 ‘안도’와 ‘감사’의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평소처럼 휴대전화만 봤다면 도와주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밀집도가 높아지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 있어 다행이었다. 어떤 비극을 경험

  • [노트북] 아름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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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아름다운 것 지면기사

    기자, 그중에서도 특히 ‘펜 기자’는 나르시시즘이 짙게 드러나는 직업이다. 소설가 한강을 인터뷰한다고 쳐보자. 만약 카메라를 한강이 아닌 기자 얼굴 위주로 비춘다면 시청자는 채널을 돌릴 게 뻔하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기자의 주관을 비중 있게 풀어내는 게 가능하다. 능력만 좋다면, 그리고 욕심 많은 기자라면 “ ” 이런 큰따옴표로 리드를 시작하지 않고도 매력적인 기사를 쓸 수 있다. 표면적인 주인공은 인터뷰이지만 실제 주도권을 쥔 사람은 인터뷰어라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펜 기자의 특권 아닌 특권이다. 그럼에도

  • [노트북] 대한민국의 잠 못 드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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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대한민국의 잠 못 드는 밤 지면기사

    이른 송년회를 하고 있던 지난 3일 밤. 소맥 여러 잔을 마셔 알딸딸한 상태로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던 순간 속보가 떴다.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심야 긴급 담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제목이었다. 지금이 2024년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취기로 뜨거웠던 머리가 순식간에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열띤 대화가 오가던 자리도 찬물이 뿌려졌다. 다들 무엇부터 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우선 자리를 정리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빠르게 해산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단톡방에선 계엄사령부 포고령 등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

  • [노트북] 비상계엄으로 흔들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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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비상계엄으로 흔들린 대한민국 지면기사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때아닌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한민국은 혼란에 빠졌다. 다행히 지난 4일 새벽 1시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돼 비상계엄은 해제됐지만, 정국은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표결에 부쳐졌으나 의결 정족수 미달로 폐기되면서 상황은 더 안갯속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 됐다. 헌법 제77조 1항에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생겼을 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 [노트북] 디지털콘텐츠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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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디지털콘텐츠 제작기 지면기사

    올해 디지털콘텐츠센터에 합류했다. 이전에는 늘 기사를 쏟아내야 했던 터라 한 가지 사안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소위 정해진 기승전결을 따르는 보도가 아닌 ‘색다른’, ‘흥미로운’ 볼거리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 과정에서 낯선 상황이 많아 조심스러웠다. 첫번째 연재물인 ‘당신의 병명은 마약중독’을 취재할 때는 중독자를 여럿 만났다. 인터뷰를 꺼리는 이들을 간신히 설득해내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지금 당신 옆, 기후괴담’에서는 글을 색다르게 풀어가려 시도를 했고 ‘경기도 빈집 리포트’를 만들 땐 경인일보

  • [노트북] 첫눈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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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첫눈의 경고 지면기사

    올겨울 첫눈은 불청객처럼 찾아와 여기저기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거리의 나무들은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꺾여 나동그라졌고, 철골 뼈대의 건물 지붕도 속절없이 주저앉았다. 인명피해도 속출했다. 집 앞에서 눈을 치우고 일터에서 작업을 하던 시민들이 쓰러진 가로수와 구조물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축산농가 지붕이 무너져 바닥에 깔린 소들이 죽거나 몇몇은 가까스로 구조되기도 했다. 11월에 내린 이번 폭설이 피해를 키운 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습설’이다. 수증기를 많이 머금은 눈인 습설은 무게가 무겁고, 압축된 형태로 잘 쌓이는

  • [노트북] 인천의 발작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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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인천의 발작버튼 지면기사

    “발작버튼 눌렸다.” 약점이 될 만한 내용이나 민감한 주제를 맞닥뜨렸을 때, 주체할 수 없이 과민한 반응이 나오는 경우 흔히 ‘발작버튼’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최근 생활폐기물과 민간소각장 관련 취재를 이어오면서 인천의 발작버튼은 단연코 ‘쓰레기 문제’라고 나 홀로 결론을 내렸다. 쓰레기 관련 기사를 다룰 때면 “인천은 쓰레기에 예민하다”는 말을 하거나 듣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천은 국내 최대 규모의 수도권쓰레기매립지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다. 경기와 서울, 인천지역에서 나오는 하루 평균 3천500t의

  • [노트북] 얼싸 안고 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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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얼싸 안고 울 때까지 지면기사

    “밤낮없이 주민 찾아가 20년을 설득했더랬지요. 완공식날, 관계자들끼리 얼싸 안고 우는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화장장 하나 들여놓기가 어렵습니다.” 장사시설 유치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던 중 한 전문가가 말해준 일화다. 이 이야기는 국내에서 화장장 유치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양평군 공설화장장 부지 공모를 신청했던 지평면 월산4리가 결국 신청 철회 결정을 내렸다. 63%의 주민 동의로 시작된 사업은 건립신청서의 정당성 등이 도마에 오르며 마을 내분으로 이어졌고, 결국 유치위원회는 “갈등의

  • [노트북] 거리에 나온 개와 사슴의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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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거리에 나온 개와 사슴의 존엄성 지면기사

    군 복무 시절 부대 홈페이지에 민원이 올라왔다. 내용은 겨울철 길고양이가 부대 내에 너무 많아 쓰레기봉투를 찢어놓는 일이 빈번하니 잡아서 비행단 밖으로 쫓아내자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근무지에 출근하면 전날 정리해놓은 쓰레기봉투가 찢겨 있어 다시 새 봉투에 옮겨 담은 기억이 더러 있었기에 나는 그 민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당 민원엔 이례적으로 지휘관급 장교가 답변을 달았다. 그 내용은 전역한 지 수년이 넘어도 아직 기억에 남는다. 장문의 답변에는 병사와 부사관, 장교 모두 존엄한 생명인 것처럼 고양

  • [노트북] 전하지 못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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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전하지 못한 소식 지면기사

    파킨슨병을 앓는 김씨는 하루종일 방 안에 누워 있어 제대로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엉덩이에는 욕창이 생기기 일쑤였다.지난해 7월 방문간호 사업을 취재하다 김씨를 처음 만났다. 의사소통이 어려워 그의 노모와 몇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불편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겠지만, 역시 먼저 꺼낸 말은 역시 돈 문제였다.주기적으로 서울 병원에 가는데, 사설 구급차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김씨가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은 사설 구급차다. 장애인이지만 침대를 통째로 옮길 수 없어 장애인 콜택시는 타지 못한다. 매달 20만~30만원을 들여 병원을 오갔다고 한다.이날 취재는 그의 '이동권' 문제와 관련돼 있지 않았다. 노모의 푸념을 한참 듣다 취재를 마무리했다. 이들과 인연은 오늘까지겠거니 하고 장소를 빠져나왔다.그해 가을, 누워서 생활하는 와상 장애인 이동권 실태를 취재하게 됐다. 다른 지역에서는 와상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사설 구급차 비용을 지원하고 있단다. 인천에는 이런 정책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먼저 떠오는 게 김씨였다. 인연이 이어졌다. 그때 들었던 노모의 푸념은 바로 기삿거리가 됐다.올해 5월에는 노모로부터 전화를 받게 됐다. 인연은 또 이어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사설 구급차 비용의 일부를 지원받았는데, 올해부터 지원이 끊겼다는 소식이었다. 또 기사를 썼다. 바뀌는 건 없었다. 큰 도움을 주지 못했는데도 노모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이 문제에서 손을 놓지 못했다. 유일한 취재원이었던 김씨와 노모에게 가끔 안부를 물었다. 딱 이번 여름까지였다. '우리 아들이 얼마 전 소천했습니다. 기자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얼마 전 인천시 인권보호관회의가 와상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시에 권고했다. 김씨가 있었다면 가장 먼저 들려줬을 소식이다.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mc0502@kyeongin.com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