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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트북] 귀찮은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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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귀찮은 다이어트 지면기사

    과자를 집에 사놓지 않는다. 과자가 먹고 싶으면 직접 신발을 신고 나가 동네 슈퍼나 편의점에서 사 먹어라. 야식이 먹고 싶으면 '홈트(홈 트레이닝)' 30분은 하고 먹어라. 술 마시고 싶으면 그날 한 끼는 굶어라.다이어트 고수들이 권하는 방식 중 하나다. 먹는 양을 줄이고 먹고 싶은 욕구를 감소시키려 절차를 복잡하게 하는 원리다. 이 같은 원칙을 세우면 야식 먹는 횟수가 줄고 욕구도 준다. 원초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효과가 있다. 그런데 요즘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 전략이 불현듯 떠오른다. 경기도청 얘기다. 도청을 비판하면 줄곧 도청에서 전화가 온다. 처음에는 기사 내용에 대한 팩트 검증 얘기다. 기사가 쓰인 근거와 타당성을 하나하나 따진다. 비판받은 사람으로서 제기할 수 있는 물음이다. 비판한 장본인으로서 성실히 답한다. 그러다 보면 두어 시간은 거뜬히 간다. 하지만 곧 연락의 본심이 마지막 물음에서 나온다."그래서 이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누굽니까?" 그때 알아챘다. 이 직원이 연락한 이유는 책임을 전가할 직원 이름을 알아냄과 동시에 비판의 대가를 갚아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야기 해준 사람이 왜 궁금하냐고 되묻자 "위에다 제출할 보고서를 써야 한다"고 한다. 귀찮게 만드는 것은 탁월한 효과가 있다. 비판할 시간을 빼앗는다. 특히 취재원 색출은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는 공무원들을 서로 감시케 해 국민 알 권리를 저해한다. 취재진과 취재원을 귀찮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전략인가 싶다.언론이 정부기관을 견제, 감시하는 것은 해당 기관이 공공기관이어서다. 견제 없는 공공기관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철옹성과 같다. 성곽 밖 국민이 취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대민 업무를 하는 공공기관이 직원들과 언론을 괴롭히는 행위는 그래서 온당치 못하다.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도청 고위공직자에게 묻고 싶다. 자신만의 철옹성을 만드느라 도민은 버렸나.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명종원 정치부 기자

  • [노트북] 경기도 지역화폐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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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경기도 지역화폐 딜레마 지면기사

    경기도 내 시·군 모두 지역화폐를 충전하거나 구입하면 10%의 인센티브를 준다. 인센티브율은 동일하지만 지급하는 금액은 천차만별이다. 도내 어느 지역에 사는가에 따라 인센티브가 10만원에서 1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시·군별 인센티브 충전 한도가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예산이다. 지역화폐를 많이 발행하는 지역일수록 인센티브 예산 재원이 빠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 코나아이가 운영하는 경기지역화폐를 사용하는 도내 28개 시·군 중 발행량이 가장 많은 안산시(지난 6월 기준)가 예산이 가장 먼저 소진돼 지난 7월부터 인센티브 지급을 중단했다.한 해의 절반이 지나간 상황에서 이미 도내 시·군들의 예산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지역화폐를 담당하는 도내 시·군 관계자들은 10년과 20년 뒤에도 지역화폐가 사용되려면 인센티브 예산 확보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온라인 결제 불가, 10억원 초과 매장 이용 불가라는 제약에도 소비자들이 지역화폐를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인센티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원을 무한정 지원할 수 없는 만큼 지역화폐 정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결국 인센티브 없이도 사용하는 도민들이 늘어야 한다.7월 인센티브 지급을 중단했던 안산시에서 한 달 동안 지역화폐 44억원이 발행됐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발행이 중단됐을 때보다 월등히 많은 수치라고 한다. 안산시의 상황이 도내 전역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아니면 안산시만의 사례가 될지는 미지수다. 지역화폐가 도민들의 삶에 안착하게 될지 하나의 정책으로 종료될지 그 과정을 지켜보고자 한다. /남국성 정치부 기자 nam@kyeongin.com남국성 정치부 기자

  • [노트북] 폭염과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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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폭염과 농민 지면기사

    지난주 목요일 화성시 배양동에 있는 오이농장에서 농민의 삶을 체험했다. 오이 심기에 앞서 비닐하우스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는 내게 어머님은 "농사일은 해 본 적 있어요?"라고 물었다. 한 번도 없다고 답하자, 어머님은 계속 "할 수 있겠어요?"라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고, "20살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할 수 있어요!"라는 각오로 답했다.처음에는 어머님과 마주 앉아 오이를 심기 시작했다. 농사일은 왜 해보는 건지, 기자는 어떻게 됐는지 등의 대화는 오이 심기 30분가량 지나서부터 뚝 끊겼다. 간단하지만 고된 농사일이 처음인 기자와 달리 어머님은 이미 저만치 멀어졌다. 여기에 비닐하우스 열기가 더해지면서 땀이 계속 흐르고 힘이 빠졌다. 취재해야 하는데, 오이를 심기도 벅찼다. 중간중간 어머님이 갖다 주시는 차가운 물로 더위를 달래기 바빴다."아까보다 좀 빨라졌나?" 1시간 정도 지나가자 오이 모종 심는데 나름 요령이 생겼다. 어머님도 속도를 늦추면서 짧게 인터뷰를 할 시간이 생겼다. 오이농사는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그전에는 어떤 농사를 하셨는지 등 이것저것 물었고 답변만 하던 어머님도 내게 질문을 던졌다. "왜 채솟값이 오를 때만 그렇게 기사를 써?"'밥상 물가 폭등', '폭염으로 채소 가격 급등' 등 폭염이 이어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기사들이다. 반대로 채소 가격이 폭락했을 때는 왜 폭락했는지, 농민들의 피해에 대해 다루는 기사는 많지 않았다. 이러한 기사를 볼 때마다 농민들은 마음이 무겁다. 채소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농민들이 수익을 더 챙기지도 않는다. 한결같이 농사짓는 농민들처럼 중간 유통 가격도 날이 춥든 덥든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머님은 "채소 가격 내려가면 농민들이 얼마나 힘든데, 그것도 좀 다뤄 줬으면…"하며 말끝을 흐렸다.마트를 다니면서 가격이 오른 채소에 한숨 쉬는 소비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농민들이 있다. 농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도 더욱 많이 그려지길 바라본다. /신현정 사회부 기자 god@kyeongin.com신현정

  • [노트북] 7월 하순 폭염은 2018년 수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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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7월 하순 폭염은 2018년 수준일까 지면기사

    "21일 수도권 최고기온은 33~37도가 되겠습니다."장마기간인지도 모르게 짧은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찾아왔다.중복인 21일부터 7월 하순까지 연일 30도 후반을 넘나드는 더위가 지속될 것이라는 기상예보다.기분 나쁜 소식은 '습도'도 높다는 점이다. 습도가 높으면 체감온도는 더 높아진다. '체감온도 40도'가 가능한 이유다.올해 장마는 늦게 시작해 빠르게 끝났다.게다가 수도권엔 장마기간인지도 모를 정도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잠정 장마기간인 지난 3일부터 19일까지 정체전선에 따른 비보다 소나기성 강수가 더 잦았다.기상청은 그간 있었던 온라인브리핑에서 "우리나라 주변에 생긴 작은 기압계 영향으로 북태평양고기압 등 거대 세력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영향을 주고 있지 못하다"며 "북태평양고기압의 사면(가장자리)과 차고 건조한 기압계가 만나면서 국지성 소나기가 이어진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번 폭염도 이런 기압계와 연관이 높다.한번에 우리나라를 덮은 북태평양고기압이 대기 하층에 자리 잡았고, 서쪽의 티베트고기압이 대기 중층에 자리를 잡으면서 중·하층이 모두 뜨거운 공기로 가득차게 된 것이다. 여기에 뜨거운 일사까지 겹치며 38도를 넘는 더위가 지속한다.그나마 다행인 점은 2018년 폭염의 재림과는 거리가 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2018년의 더위는 계속 머무르면서 지속성이 더해졌지만, 이번엔 이달 하순께 티베트고기압은 서쪽으로, 북태평양고기압은 동·남쪽으로 물러날 것으로 보인 까닭이다.기상청의 예측대로라면 이런 이례적 폭염은 8월이면 잠정적으로 누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태풍이나 열대요란 등 변동성은 여전해 주의가 필요하다. /김동필 사회부 기자 phiil@kyeongin.com김동필 사회부 기자

  • [노트북] 노인을 위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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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노인을 위한 나라 지면기사

    지난 6월 '얀센'백신을 접종했다. 접종 예약이 있던 날 자정을 기다려 정부 예약 사이트에 접속했다. 대기자가 5만명 이상, 대기시간은 45분으로 안내됐지만 1분도 안 돼 대기시간이 30분으로 줄었다. 잠깐 TV를 보다 돌아오니 화면에 보이던 5만명 대기자는 사라졌고 이내 접종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전화번호를 인증하고, 인증번호를 입력하고 접종받을 병원을 선택하니 끝.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IT강국의 면모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지난주, 기자의 부모님 접종 예약일이 도래했다. "엄마, 자정에 컴퓨터를 켜고 '백신 예약'을 검색해서 거기 들어가면 돼. 화면에 대기자랑 대기시간이 뜰 텐데 안내보다 훨씬 사람이 빨리 빠져. 10분만 기다리면 될거야. 엄청 쉬워." 예상과 달리 쉽지가 않았다.대기 안내가 떠야 할 홈페이지는 말 그대로 먹통이 됐고, 부모님도 기자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침 6시까지 기다려 기자가 직접 접속하고, 부모님 휴대전화로 전송된 인증번호를 입력한 뒤에야 접종 예약이 끝났다. IT강국은 누구에게나 편리함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모두 60년대 생인 부모님은 아직 '노인'에 속하지 않는다. 평소 '아들은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부모는 오프라인에서 장을 본다' 정도에 그쳤던 IT·정보 격차가 백신이라는 안위와 직결되니 곧장 심각한 문제로 비화했다.지난해 재난지원금을 선불 카드로 지급받은 노인이 문자 메시지로 사용 내역을 받지 못해 수기로 얼마를 썼는지 적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적이 있다. 신용카드로 재난지원금을 받은 젊은 세대는 친절히 몇 백원을 쓴 내역까지 안내됐지만, 신용카드도 없고 휴대전화 고지 서비스도 없는 노인은 재난지원금 가계부를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빠르고 편한 세상이 반드시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직면하게 됐다. /신지영 경제부 기자 sjy@kyeongin.com신지영 경제부 기자

  • [노트북] '좋좋소' 이과장, 정승네트워크 사장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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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좋좋소' 이과장, 정승네트워크 사장되다? 지면기사

    "10년 후엔 대기업도 되고 (회사)주식도 상장해서 직원 수 1천명까지 늘어나는 회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배!" 지난 7개월간 중소기업판 '미생'이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아 온 유튜브 드라마 '좋소좋소 좋소기업(좋좋소)'의 지난 10일 마지막회(26회) 끝 대사다.7년 전 첫 입사 날 사장님과의 회식자리에서 극 중 '이과장'은 이 같은 포부를 밝혔지만 마지막회에서 결국 회사를 떠난다. 끝없는 야근 등 고된 근무에도 연봉은 안 올려주고 업무여건 악화 등 직원 고충엔 아랑곳 않으며 "믿음으로 가는 거"란 말만 반복하는 사장님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다.올해 1월부터 총 26회에 걸쳐 유튜브(채널 이과장)에 방송된 '좋좋소'는 각 회 평균 조회 수가 145만을 기록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엔딩은 암울하기만 했다. 이과장이 7년간 근무한 소규모 무역회사 '정승네트워크'는 전 직원이 10명도 안 돼 나름 '가족 같은 분위기'였지만, 열악한 사내 복지와 급여는 물론 부족한 성장 가능성 등에 결국 직원들의 퇴사만 반복되는 기업으로 그려졌다.이런 드라마가 이렇게 많은 관심을 얻었다는 건 사실 '씁쓸한 진실'이다. 중소기업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열악한 여건과 암울한 현실만이 강조됐는데 중소기업인들은 오히려 여기에 공감하고 열광했다는 의미여서다. 몇 달 전 '좋좋소'를 처음 접한 뒤 실제 경기도 중소기업들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서 이곳저곳 여러 기업을 찾아봤다. 다행히 직원 복지를 최우선 삼아 신입사원에 초봉 4천만원을 주는 사장님도 있었고 열악한 재정 상황에도 꾸준한 연구개발로 기술력을 키워 나가는 중소기업도 있었다. 물론 "정말 여건이 어려워" 그렇지 못한 기업들이 더 많을 것이다.그래도 언젠가 또 이런 드라마가 나온다면, 그땐 이과장이 회사에 남아 사장도 되고 주식도 상장시켜 직원도 1천명까지 늘리는 '성공하는 정승네트워크'가 그려지길 바라본다. /김준석 경제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경제부 기자

  • [노트북] 또다시 찾아온 장마… 2017년 기억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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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또다시 찾아온 장마… 2017년 기억 되새기자 지면기사

    2017년 7월23일 아침. 장대비가 인천 전역을 집어삼킬 기세로 쏟아졌다. 기습적으로 내린 폭우에 시내 주택가와 주요 도로는 손쓸 틈 없이 침수 피해를 겪었다. 주택 반지하에 살던 한 주민은 방으로 밀려든 빗물을 미처 피하지 못해 숨졌고, 제2외곽고속도로 북항터널 지하차도는 유입된 빗물로 최대 1m 높이까지 침수돼 차량 통행이 중단되기도 했다.비가 그친 다음 날 찾은 저지대 주택가는 폐허로 변해 있었다. 반지하에 있는 집안은 습기로 가득 찼고, 빗물에 흥건히 젖은 옷과 가재도구들은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침수 피해를 겪은 주민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날의 기억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천의 저지대 주택가, 반지하에 사는 주민들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주민들은 매년 장마가 시작되는 이맘쯤이면 그날의 악몽과도 같았던 기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고 했다.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시작됐다. 전남지역에서는 벌써 많은 양의 장맛비가 쏟아지면서 산사태가 발생하고, 계곡이 범람해 2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주택 침수로 인해 이재민도 많이 생겨났다. 남부지방의 소식은 과거 같은 피해를 본 인천 주민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인천시와 10개 군·구는 2017년 집중호우 때 침수 피해가 컸던 지역을 침수우려지역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이번 장마를 앞두고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건물 출입구에 설치하는 차수판이나 역류방지밸브 등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지원했으나 이를 모르는 주민들은 여전히 많은 상황이다. 지난 주말 동안 내린 장맛비와 강풍으로 인천지역도 나무가 쓰러지고, 공사장과 주택의 시설이 떨어지거나 파손되는 등 피해가 있었다. 4년 전 기억을 되새기며 침수 피해 사각지대에 있는 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지자체가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김태양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ksun@kyeongin.com김태양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 [노트북] 두껍아 헌집 줄게 도시재생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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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두껍아 헌집 줄게 도시재생 다오 지면기사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네 집 지어줄게 내 집 지어다오'.어릴 적 아파트 놀이터에서 모래장난을 하며 부르던 동요다. 태어나 자란 아파트는 1980년 12월에 사용승인을 받았다. 모래장난을 했던 어린시절 아파트는 낡고 좁았다. 그래서 두꺼비에게 헌 집 줄 테니 새집을 달라고 그렇게도 되뇌었나 보다.낡고 초라한 동네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누구나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고층 아파트 조감도와 산뜻한 모델하우스의 유혹에 쉽게 빠져 옛것을 지워버리는 이유다. 재개발의 결과 일부는 폭등한 집값을 지불하고 그 이상 차익을 얻지만, 다수는 터전을 잃고 바깥으로 밀려난다.철거형 개발의 폐해를 막고자 등장한 개념이 도시재생이다. 도시재생은 문재인 정부 들어 100대 국정과제(도시재생 뉴딜사업)로 위상이 높아지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정책에 대한 관심과 함께 비판에도 직면했다. 5년간 50조원을 들여 벽화 그리고 화단 정비를 하고 있다는 질책이다.현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도시재생은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청년들은 도시재생을 상생 차원에서 고민했고, 마을의 터줏대감 어른들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봉사했다. 시장 한복판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에나 있을 법한 멋진 놀이터를 선물 받았다.아쉬운 점은 물론 있다. 너무 낡은 공간은 모두 지우고 새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도 장기적인 계획과 분석 없이 지자체의 사업 추진 의지에 따라 막대한 공적 재화를 투입하는 사업지가 있었다.최초의 기록매체 양피지는 너무나 귀해서 지웠다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과거의 흔적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지워진 것이다. 도시와 그 속의 우리네 삶도 고대인의 기록 못지 않게 귀중한 역사다. 우리 도시에서 어디를 지우고 남길 것인지 멀리 내다보고 선택해야 한다. /손성배 기획콘텐츠팀 기자 son@kyeongin.com손성배 기획콘텐츠팀 기자

  • [노트북] 물류센터 화재, 더 이상 사후약방문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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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물류센터 화재, 더 이상 사후약방문 안된다 지면기사

    경찰과 소방당국의 합동감식이 있었던 지난 29일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는 엿새 동안의 화재로 건물 뼈대만 남은 채 검게 그을려 있었다. 불은 모두 꺼졌지만 현장에서는 아직도 탄내가 가시지 않았고 건물 내부는 타버린 각종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다.지난해 4월29일 이천시 모가면에서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불이 나 공사 관계자 등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익스프레스 사고 이후 1년여 만에 다시 한 번 이천 물류센터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센터 안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은 무사히 대피했지만 화재 진압 과정에서 김동식 광주소방서 119구급대장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전문가들은 물류센터에서의 화재는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는 취약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류센터는 박스나 비닐 등 타기 쉬운 자재들이 산적해 있다는 점, 물류센터의 높은 층고 탓에 스프링클러 작동 시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자동화 시설이나 분류 시설이 있을 경우 방화구역을 설정하지 않아도 되는 점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또 쿠팡 덕평물류센터의 경우에는 산지를 끼고 있어 전면이 아닌 2개 면에서만 진화작업을 펼칠 수밖에 없었고 상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아 소방용수를 공급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이후 소방청은 전국 물류센터에 대한 소방점검에 나선다고 밝혔고, 엄태준 이천시장은 기초지자체에 관리·감독 권한 부여, 현장관리자의 촘촘한 배치, 소방차의 원활한 진입을 위한 외곽도로 개설 의무화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지난해 경기도에서만 창고시설 화재가 352건 발생했고 44명이 목숨을 잃었다. 재산피해도 1천69억원에 이른다. 더 이상의 사후약방문은 있어서는 안 된다. 쿠팡 덕평물류센터의 명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는 것과 별개로 물류센터 화재 예방을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원근 사회부 기자 lwg33@kyeongin.com이원근 사회부 기자

  • [노트북] 우리에겐 부천국제영화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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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우리에겐 부천국제영화제가 있다 지면기사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다들 역대 최고의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혼을 쏟아내고 있어요."문화도시 부천을 상징하는 대표축제 '제25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BIFAN)' 개막을 보름여 앞둔 어느 날, BIFAN 관계자는 사무국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부천시청사 부지 내 관공서 중 부천국제영화제 건물의 형광등이 새벽녘 가장 먼저 켜지는 게 익숙한 풍경이 됐다고도 했다. 이번 영화제는 오는 7월8일부터 18일까지 온·오프라인으로 열리는데, 개막을 한 달 정도 남긴 무렵부터 사무국 직원들의 업무는 절정에 달한다.부천국제영화제는 스물다섯 해를 거듭하는 동안 경기도가 자랑하는 문화축제이자 대한민국의 독보적인 장르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영화제는 개막하기도 전에 온라인에서 일찌감치 관심몰이에 성공했다. 슬로건 '이상해도 괜찮아'를 반영한 6종의 공식 포스터가 유명인들의 SNS와 각종 인터넷커뮤니티에서 '대박'을 친 것이다. 귀여움과 기괴함이 어우러진 '케이크 파괴' 포스터 이미지는 주류에서 기분 좋게 벗어나려는 부천국제영화제의 지향점과 맞아떨어져 호평을 끌어냈다.무엇보다 올해 BIFAN에선 나홍진 감독이 기획한 한·태국 합작프로젝트 '랑종'이 최초 공개될 예정이어서 영화광뿐 아니라 모든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랑종은 태국의 한 무당 가문을 소재로 한 페이크다큐 형식의 공포영화다. 국내 정상의 위치에 올라선 영화인이 자신의 역작을 부천에서 처음 선보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BIFAN이 한국영화계에서 구축해온 신뢰를 대변한다.올해는 또한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을 아우르는 XR(확장현실) 콘텐츠가 준비돼 있다. 부천지역 2개 극장과 함께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웨이브를 통해서도 초청작을 공식 상영한다. 관련 분야를 선도하겠다는 BIFAN의 의지가 엿보인다.코로나19로 행사 개최에 부담이 적지 않았을 와중에 100편 넘는 작품을 우리에게 선물하기 위한 BIFAN 직원들의 노력과 희생이 어렴풋이 짐작된다. 결실이 눈앞에 왔다. /이상훈 지역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