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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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 확보 지면기사
어제는 오래전 알던 분으로부터 정말 엉뚱한 전화를 받았다. '절대농지가 해제된다는 보도를 보지 않았느냐'면서 '해제만 되면 5배는 틀림없이 보장되는 땅'이라며 투자를 하라는 내용이었다.검색을 해보니 재테크, 부동산투자 등을 내세운 여러 인터넷 카페, 블로그에는 해당 기사의 링크와 함께 투자 기회라는 게시글이 범람하고 있었다.절대농지란 농업진흥지역으로 선정돼 농사 용도로만 쓰일 수 있는 땅을 말한다. 1980년대 세계적 흉년으로 수백만명이 아사하는 식량 파동을 겪은 이후 최소한의 식량 확보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토의 8%에 해당하는 81만ha로 관개 시설 등이 잘 정비되어있는 우량 농지이다.정부에서는 내년 2월까지 서울 면적의 1.7배에 달하는 10만㏊의 규제를 해제하고, 앞으로도 지방자치단체와 농민의 판단에 따라 농업진흥지역을 지속적으로 풀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있는 사람들에게는 먹거리가 생산되는 우량농지가 돈으로 보이는 듯하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3.8%,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3.7%에 불과하다. 옥수수는 자급률이 1%도 안 되고 콩류가 겨우 11% 수준에 이를 뿐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수입농산물로 충당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수입되는 곡물의 상당 부분이 GMO농산물인 것도 문제이다. GMO농산물 수입량은 2014년에 이어 2년 연속 1천만t을 초과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식용으로 수입된 GMO 옥수수와 콩, 유채(카놀라)가 1천70만t이라고 한다. 이를 가지고 생산한 식품에 GMO표시가 되어 있지 않으니 난감할 뿐이다.국민들, 특히 우리 아이들에겐 건강한 먹거리를 주어야 한다. 더불어 식량주권은 지켜져야 한다. 쌀생산을 줄이기 위해 농지를 줄이기보다는 다른 작물을 심도록 적극 장려하는 것이 바른길이 아닐까?계속되는 지진으로 안전에 위협받는 국민들은 최소한 먹거리에 대한 불안함 없이 살고 싶다./황선화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황선화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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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초상지풍: 풀 위에 부는 바람 지면기사
예나 지금이나 정치집단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정점에 있는 이가 최고 권력자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그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신념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방법이 지나치다싶으면 그 목적이 정당화될 수 없다. 논어에 자주 등장하는 季氏의 가문에 속한 季康子와의 대화에 그 내용이 나온다. 계강자가 "제가 추구하는 제대로 된 정치방향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죽여서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지게 한다면 어떨까요?" 공자는 "정치란 德을 기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무력을 동원하여 강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진정 善한 정치를 지향한다면 자연 백성들도 당신의 노선을 지지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 풀이 바람의 방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과 같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산이나 들에 가 보면 풀이 한쪽으로 누워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보면 그 곳의 풍향을 알 수 있다. 民草라 부르는 풀은 이렇듯 정치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바람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절대적으로 바람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이다. 풀은 추위를 타며 앙상하게 누워있는데 바람이 남동풍이라고 우기면 누가 옳은 것인가? 民草와 風俗은 현란한 세치 혀로 속인다고 속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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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협력과 공유… 음악이 답이다 지면기사
서로 다른 사람, 계층, 지역제도권과 비제도권, 위와 아래를협력적 정신으로 이어주는게예술이자 정책이 할 일이다더 큰 도시적 공동선 조성 위해선고민과 방향성 잊지 말아야도시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지칠 때 산이나 공원처럼 자신들이 좋아하는 공연이 있는 곳을 찾아가면 음의 아름다움, 감수성, 해학, 시대에 대한 통찰력 같은 쾌감으로 가득히 충전되어 돌아오게 된다. 음악은 감상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이라 음악 듣기는 몸의 잠든 감각을 일깨워 준다. 공연을 제공하는 연주자 입장에서 보면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고난의 행군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첼로앙상블 리허설을 하거나 연주할 때 멜로디와 베이스, 그리고 코드와 지시어를 완벽하게 채운 악보와 이를 옮겨놓은 실제 연주 간에는 악단마다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다. 이 차이는 연주자의 악보에 대한 해석, 연주단 리더의 스타일, 연주기법, 연습량, 연주자의 곡에 대한 애착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연습은 혼자만의 음악 행위이고 리허설과 연주는 집단적 경험이다. 연주에서 연주자들을 괴롭히는 지시어는 '에스프레시보(espressivo)', 즉 '풍부한 표현'이다. 이 지시어를 음향으로 변환시키려면 작곡가의 의도, 연주장의 환경, 청중들의 호응도, 단원들의 표정, 리더의 지휘 등을 살펴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리허설에서는 어느 부분에서 어느 파트가 어떤 음색으로 연주해야 하는지를 협력해서 공유해야 한다. 예컨대 '점점 느리게(ritardando)'라는 지시어를 얼마나 느리게 할지를 협력적으로 의사결정 해야 한다. 연주단원들 사이의 실제 소통은 눈썹을 찡긋 올리거나, 심음 소리를 내거나, 잠시 흘낏 시선을 던지는 식의 비언어적인 공유적 동작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앙상블은 단원의 음악적 렌즈에 따라 다차원을 보려는 입체파, 일순간 감성을 담고자 구체성을 지워버린 인상파 등의 다양한 음으로 표출된다. 이때 서로 간의 상호작용과 교환은 불가피하다. 예술을 하려면 이처럼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각자의 음악적 습관을 공유된 의식의 연주영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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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상] 오산시 채무제로를 선언하다 지면기사
불필요한 과시적 사업 절대 안하는 '짠돌이 살림'보조금·특별교부세 최대 확보와 자체 세입 확충전략 6년만에 '빚 청산' 개청이래 최초 감회 깊어시장 6년째다. 어느 지자체장이든 자치재정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긴 하지만, 나 역시 2010년 민선5기 오산시장으로 취임한 순간부터 시 살림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다.더욱이 그때를 전후해 몇몇 인근 지방자치단체들은 매우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기도 했고, 심지어 미국이나 일본의 일부 지자체들은 아예 부도상황에 빠져 이에 대한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당연히 취임 초부터 건전한 시 재정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채무 없는 재정을 운용해야 하겠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시장을 시작할 때인 2010년 오산시 채무는 222억원 규모였다. '채무 제로'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걸릴 것인가를 계산해 연도별 상환계획을 세웠다.채무를 늘리지 않고 상환액을 더해 조기에 부채를 갚아나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선, 지자체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업적 욕망에 대한 절제가 필요하다. 어느 지자체장이 화려한 공약을 제시하고 눈에 띄는 시설물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없겠는가. 그래서 채무제로를 향한 시정 전략의 첫 번째는, 절대로 불필요한 과시적 사업을 벌이지 않겠다는 것으로 정했다. 꼭 필요한 부분, 시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사업부문 외에는 예산을 쓰지 않는 것이다. 교육도시 건설, 오산천 복원, 문화예술 지원, 건강도시 구축, 일자리사업과 산업공단 건설 등 전략 부분이 아니면 극도로 '짠돌이 재정'을 시행했다.두 번째는 대형전략사업에는 국·도비 보조금과 특별교부세를 최대한 끌어들이는 것이다. 오산천 생태하천 복원사업과 오산역 환승센터 구축, 궐동 공영주차장 등 규모가 큰 사업들에 대해서는 국·도비 비중을 최대한 높이도록 해 시 재정을 절감했다. 중앙정부나 광역단체 공모사업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를 통해 절감한 재정이 200여억 원에 이른다. 세 번째는 자체 세입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부채를 없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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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성실 응답 당부 지면기사
우리나라 초·중·고 사교육비는 얼마나 될까. 2015년 우리나라 초·중·고교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4만4천원이다. 사교육 참여율은 68.8%이며 참여 학생만의 1인당 사교육비는 35만5천원이다. 통계청의 '2015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사교육 참여율은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으나 1인당 사교육비는 증가하였다.이외에도 2015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약 17조8천억원(전년대비 2.2% 감소), 학생 1인당 주당 사교육 참여시간은 5.7시간, 참여율은 수학(42.5%), 영어(40.8%), 국어(17.3%) 순으로 조사됐다. 참여학생 중 월평균 사교육비로 50만원 이상을 지출한 학생 비중이 15.1%로 가장 많고, 10만~20만원 지출 13.2%, 20만~30만원 지출 13.1% 순으로 집계됐다. 서울과 중소도시는 50만원 이상, 광역시는 20만~30만원 구간, 읍면지역은 10만~20만원 구간의 지출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위와 같이 전국 약 4만3천명의 초·중·고교 학부모의 참여로 작성된 수치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통계청은 통계법 제17조 및 동법 시행령 제22조에 의거한 지정통계로서, 2007년부터 매년 1, 2차에 걸쳐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주요 수요처는 교육부와 육아정책연구소, 사교육정책중점연구소 등이다. 본 조사의 목적이 단순히 사교육 실태를 확인하고자 함이 아니라, 사교육비 경감대책 및 공교육 내실화를 위한 교육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것에 주목해 주길 바란다.이분법적으로 사교육비 감소가 곧바로 공교육 내실화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내 자녀가 체감하고, 조금 더 만족할 수 있는 변화들을 위해, 우린 때로 조사자로, 응답자로, 정책 입안자로 각자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지난 21일부터 오는 10월 12일까지 '2016년 2차 초·중·고 사교육비조사'가 진행 중이다. 상반기 1차 조사와 합하여 내년 2월 결과공표 예정이다. 전국 표본규모는 전년과 동일한 약 4만3천명이고, 우리 경인지방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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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썩고 또 썩어 냄새나는 사회 지면기사
준치는 썩어도 준치고 홍어는 삭혀야 제맛이 난다. 그러나 사람이 썩으면 인격이 떨어지고 국가는 망하게 된다. 선거 때가 되면 부정부패 척결이 공약의 단골손님이다. 정권 말기 때마다 부패의 씨앗이 싹트고 있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까지 감방으로 가는 사회다. 부정부패의 방법도 교묘하고 합리적이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보좌관의 봉급을 가로채고, 사업의 인허가에 관여하며, 의원들은 사업정치를 하면서 예산을 부풀리고, 국방관계자는 무기수입에서 뒷거래를 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회계서류와 주가 조작으로 몇천억 원의 흑자를 냈다고 상여금 잔치를 하고 세금 포탈과 근로자 체임, 경영자는 갑질 횡포와 비자금을 조성하고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을 요구한다.노조는 경영주와 이면계약으로 경영·인사권에 관여하고 폭력배와 이익단체들은 이권 사업에 독이 올라 떼법과 집단행동으로 국가 기물을 파괴하며 교수는 제자들의 연구수당을 착복, 교사는 학생부를 조작해 주고 돈을 챙기는 현실이다. 이러한 일들은 어찌 보면 자신의 생존을 위한 수단과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썩어서는 안 될 곳이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부정부패를 막아주는 국가 최고의 권력기관이요, 최후의 보루인 검찰이 피의자와 결탁해 돈을 주고받아 범죄 사실을 은폐하고 있으며,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판사까지도 뇌물을 먹고 술에 취해 죗값을 경감 해 주며 횡설수설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누구를 믿는다는 말인가? 정말로 썩어도 너무나도 썩어 방부제가 필요한 사회이다.일각에서는 5공 때의 '삼청교육대'가 그립다고 말한다. 최근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약사범 삼천 명을 사형시켰다.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대다수의 국민들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하여 매월 5만여 건의 고소 고발을 접수하고 있다. 국가의 보상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원칙과 기준이 없다. 떼법이 결정하고 있다. 6·25 전몰장병들의 보상,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사건의 보상, 세월호의 보상 등은 우리가 냉철한 판단과 고민을 해야 할 사안들이다.최근에 부정과 청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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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연인] 은행나무 지면기사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채기나긴 청춘의 날을멀거니 바라만 섰기로안으로 끓이던 그 피차라리치장도 겨옵네훨훨 벗는 황금의상이영도(1916~1976)바라만 보아도 좋다는 것은 소유하지 않아도 만족한다는 것이다. '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차고 넘치는 행복을 경험할 때, 우리는 더 가지려고 하는 '욕망의 방'에서 해방 될 수 있다. 어쩌면 소유라는 욕망 때문에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채/기나긴 청춘의 날을" 무의미하게 흘러 보내며 지금까지 살아오지 않았던가. "멀거니 바라만 섰기로/안으로 끓이던 그 피"가 살아 있다면 열매 맺어가는, 이 가을 자신 안으로 자신을 키우면서 단단해 질 수 있다. 위선과 허상이라는 냄새나는 '치장도 훨훨 벗는'다면 당신도 "황금의상"과 같은 순도 높은 시간을 맞이할 수 있으련만. /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이영도(1916~1976)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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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인성교육진흥법 시행 1년, 얼마나 달라졌나? 지면기사
사람 됨됨이 가르치는 인성교육교원단체간 시각 달라 안타까워협의와 협력통해 적극 지원해야요즘 학교 다양한 교육기능 수행되레 전통적 역할 공부·人性교육소외받고 있다는 사실 '아이러니'사회생활에서 지능지수(IQ)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덕지능(Moral Intelligence)과 공존지수(Network Quotient), 쉽게 말해 '인성'이다. 요즘 들어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고, 자식이 부모를 폭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등 인성 붕괴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기간에도 처남이 매제를 흉기로 살해하는 등 재산다툼이나 모욕, 가치관 차이 등으로 인한 사건들이 발생했다.우리나라는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해 2015년 7월부터 시행했다. 이 법 제2조에서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인성교육의 목표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8가지 '핵심 가치·덕목'을 설정했다.인성교육의 현주소그렇다면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인성교육의 현황은 어떠할까. 인성교육 목표로 정한 8가지 '핵심 가치·덕목' 중에서 우리사회에 가장 긴요한 것은 다른 사람, 공동체 및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배려를 기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원활하게 소통·협동하며 커닝과 가짜 학위 및 불량식품이 없이 정직하게 공부하거나 사업하는 것, 자신의 일에 책임지는 것. 하지만 이러한 인성 덕목을 기르는데 시간을 투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육당국에서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안전교육, 진로체험교육, 소프트웨어교육 등을 추가하니 인성교육을 강화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인성교육의 시기와 주체가 모호하다. 인성교육은 10살 이전에 집중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사람다운 행동을 하게 만드는 도덕적 추론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前頭葉)은 이 때 발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능력을 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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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미의 나무이야기] 늘 푸르고 변함이 없는 잣나무 지면기사
요즘 경기도 가평에는 잣 수확이 한창이다. 전국 생산량의 45% 이상을 차지하는 가평 잣은 잣알이 굵고 윤기가 흐르며 맛이 담백하고 고소해 경기도를 대표하는 임산물이다. 올해는 자연재해가 없고 일조량까지 풍부해 잣이 대풍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잣나무는 늘 푸르고 변함이 없어 소나무와 함께 고고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나무다. 잣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꼽히는데 잣나무를 영어로 코리안 파인(Korean Pine)이라고 하며 학명에도 한국의 나무라는 것이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잣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에만 자란다. 추운 곳을 좋아하는 한대수종으로 우리나라에는 백두산과 개마고원에 주로 분포하고 강원도 오대산과 설악산 등 높은 산에서 자라는데 남부지방에서는 표고 1천 미터 이상 되는 고산지대에서 자생한다. 잣나무는 1970년대부터 조림을 시작했으며 리기다소나무와 낙엽송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심어져 있다. 잣나무는 토심이 깊고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데 어렸을 때는 그늘을 좋아하지만 커갈수록 햇빛요구량이 많다.잣나무는 높이는 30m, 가슴높이 직경이 1m까지 곧게 자라고 가지가 돌아가며 고르게 뻗어 긴 삼각형의 안정된 형태를 보인다. 나무껍질은 흑갈색이고 가로세로로 얇게 갈라져 있으며 바늘 모양의 잎은 짧은 가지 끝에 다섯 개씩 모여서 달리는데 유난히 짙푸르고 무성하다. 꽃은 적황색으로 5월에 피고, 열매는 다음 해 10월에 열리는데 솔방울처럼 생겼으나 긴 타원형으로 크기가 어른 주먹만 하고 비늘 밑에 잣이 들어있다. 보통 잣송이 하나에서 100개 정도의 잣이 나오는데 열매를 맺으려면 적어도 12년 이상 자라야 하고 25년 정도 지나면 결실량이 많아진다.잣은 죽을 쑤거나 요리나 다과에 고명으로 얹어 먹었는데 단백질 등 기본 영양성분은 물론 무기질과 비타민까지 고루 갖춘 완전식품이다. 잣은 지봉유설 등 옛 문헌에 보면 중국 사람들이 잣을 좋아해 당나라 때는 신라사신들이 갈 때마다 잣을 많이 가지고 가서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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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카르발류가 없다 지면기사
1755년 '리스본 대지진'때 리스본 재건시킨 영웅누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재난상처 달라져불법 연루된 권력자들 틈에 국민들은 유기된 느낌지진이 일어난 그 밤에 난생 처음 집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나라 사람 대부분이 그러했겠지만, 이전의 나와는 달라졌다. 지진이 일어나 집이 무너지고 가족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했다. 예전에 사놓고 다 읽지 못한 책 하나를 다시 꺼내든 것도 그 다음날이었다. '운명의 날'(니콜라스 시라디, 강경이 옮김, 에코의서재, 2009)은 '리스본 대지진'(1755년 11월 1일)의 경과와 결과를 잘 정리해 놓은 책인데, 애초 이 책을 사게 된 것은 리스본 대지진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른 기분으로 이 책을 펼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이 책의 후반부, 즉 당대 유럽 지식인들의 다양한 지적 반응과 상호 논쟁을 정리한 대목만 읽었다. 이 세계야말로 신이 설계할 수 있는 최선의 세계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책 '신정론(변신론)'(1710)이 리스본 대지진 이후 볼테르의 '캉디드'(1759)에 의해 어떻게 논박 당했는지를 살피고 이로부터 세계관의 두 유형을 추출해내서 그 논리적 완결성과 인간적 호소력의 차이를 가늠해보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내 협소한 관심사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책의 앞부분을 읽었다. 지진이 발생한 그 날의 상황, 1차에서 3차까지 계속된 지진의 경과, 그리고 그 막대한 피해와 끔찍한 고통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포르투갈 왕가와 그 측근들의 대처가 눈에 밟혔다. 그날 주제 1세와 그의 가족들은 리스본이 아니라 휴양지 벨렝에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 무능력한 왕은 망연자실 상태였고 신부들은 신의 심판을 받은 땅을 버려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었다. 그때 구원자처럼 나타난 것은 당시 대다수 권력자들보다는 낮은 계급 출신이었던 신하 카르발류였다. "하느님께서 내리신 이 형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