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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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안산에 랜드마크가 있나요? 지면기사
랜드마크란 어떤 지역을 식별하는 데 목표물로서 적당한 사물이다. 특이성 있는 시설이나 건물을 말하며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추상적인 공간도 포함된다. 사람은 도시의 각 부분을 상호 관련시키며 각자의 정신적 이미지를 환경으로부터 만들어 내 어느 도시를 떠올리면 보통 랜드마크부터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 랜드마크가 안산에는 있을까. 시민 대다수에게 물어본다면 오히려 '안산에 랜드마크가 있어요?'라고 되물을 듯 싶다.만약 17년 전 초지역세권 개발이 애초 계획대로 돔구장을 조성해 현재 프로야구 구단이 운영되고 있다면 안산의 랜드마크가 됐을까?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 서울 고척동 하면 바로 서울스카이돔을 떠올리듯 말이다. 이후 2014년 민선 6기가 들어설 당시에 초지역세권은 아트시티를 표방했다. 주거·교육·쇼핑·문화예술 등이 모두 집약된 복합테마타운으로 조성을 추진했다. 고층 타워를 포함해 문화시설, 시민광장, 예술대학 캠퍼스, 쇼핑센터, 스포츠시설, 쉼터 등을 그렸다. 만약 이 개발 사업이 성공했다면 안산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로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민선 7기에서는 해당 부지의 도시개발구역을 해제하고 공유재산 매각을 시도했다. 이 또한 성공했다면 지금 초지역세권은 랜드마크를 표방하기 위해 뭐 어쨌든 개발이 한창일 것이다. 하지만 초지역세권은 여전히 방치돼 현재도 주말농장 용도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민선 8기 이민근 시장도 임기 절반 시점에서 관내 가장 노른자땅으로 불리는 초지역세권 개발 계획을 내놓았다. 시장이 이례적으로 마이크를 잡고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정도로 무게를 뒀다.그렇지만 이번에도 안산시의회의 문턱에서부터 고전하고 있다. 의회의 뜻대로 민간사업자의 이익 독점을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했고 개발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됐지만 여전히 시간이 필요한 모양새다. 이번엔 언제될지도 모르는 국가 사업인 철도 지하화와 연계의 필요성마저도 검토해야 한다. 이번에도 개발의 타이밍을 놓칠까 우려된다. /황준성 지역사회부(안산) 차장 yayajoon@kyeongin.com황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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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떠나는 기업 붙잡아야 진정한 공익사업 완성 지면기사
정부는 2018년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 등의 일환으로 수도권 주택시장 및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대규모 공공주택지구 건설 계획인 3기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하남시는 천현동·하사창동·교산동·광암동·초이동 등 일원 686만2천463㎡가 3기 신도시(이하 교산신도시)로 지정됐다.교산신도시는 지난해 9월 착공돼 현재 3기 신도시 개발에 따른 기업 이전이 한창이다. 오는 2028년 준공 예정일까지 이전할 기업은 2천900여 곳으로, 대부분이 물류·유통기업이다.하남시는 과거 개발제한구역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상수원보호법 등 각종 중첩 규제에 묶여 있다보니 사실상 공장 등을 갖춘 제조시설에 대한 사용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하남지역은 농·축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농·축산업 또한 각종 중첩 규제로 쇠퇴의 길로 접어들면서 그 자리를 물류·유통기업들이 채워나가기 시작했다.어느샌가 물류·유통기업들은 하남지역 고용 창출과 세수를 책임지는 대표 기업군으로 성장했다.하지만 이젠 과거의 영광으로 명맥만 이어가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강제 수용이란 명목하에 기업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전체 이전 대상 기업 가운데 절반가량의 기업이 건축물의 각 층 바닥면적의 합계인 연건축면적으로만 보상을 받은 채 영업에 필수적인 대지를 보상받지 못했다.대지를 보상받지 않으면 수배송 차량의 주차 공간 등을 확보하지 못해 사실상 영업이 불가능하다. 이는 추후 하남시의 세수 부족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높다. 우려는 이미 차츰 현실이 되고 있다. 하남시는 올해 세수감소에 따른 긴축재정에 돌입한 상태다.불특정 다수에는 강제 수용된 기업들도 포함된다. 각종 공익 개발에 상관없이 기업 활동이 이어진다면 세수 확보와 고용 안정, 지역 개발 등 진정한 불특정 다수인의 이익을 위한 개발이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김종찬 지역사회부(하남) 차장 chani@kyeongin.com김종찬 지역사회부(하남)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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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서울시, 변화된 태도로 별내선 개통 이끌어야 지면기사
"저희는 6월 개통을 발표한 적이 없습니다." 지하철 8호선 연장선(별내선) 개통이 8월 말로 연기된 후 내놓은 서울시의 대답이다. 별내선 시행을 맡은 서울시가 '열차의 국제규격 준수, 보완'을 이유로 영업 시운전 일정을 당초 4월에서 5월말로 일방적으로 변경하더니, 개통 지연 비판이 일자 뒤늦게 "차량의 형식 승인이 미뤄졌기 때문"이라고 말을 바꿔 논란이다.윤호중(구리·5선) 의원 측은 이번 사태를 두고 "서울시가 신조전동차 완수검사 절차를 누락해 개통 지연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서울시의 무책임한 행정 실수를 꼬집으며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윤 의원 측은 지난 2월 현장 방문 당시나, 그 이전 국토부·경기도 보고자료에도 줄곧 별내선의 2024년 6월 말 개통계획서가 존재했다고 했다. 그간 정치인들과 각 지자체는 언론매체를 통해 '별내선 6월 개통'을 다뤄왔고, 이 계획은 사실상 기정사실화돼 왔다.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남양주시 별내역을 잇는 별내선은 구리·남양주 지역에서 잠실·강남 등 서울권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오랜 꿈이다. 서울 통근인원이 일 평균 30만명에 이르지만 교통수단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앞서 별내선은 2020년 8월 구리시 교문동에서 발생한 지반침하 사고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인한 주요 자재 수급 지연으로 개통 예정일자가 연기된 바 있다. 잇단 개통 지연에 교통지옥을 감내하는 시민들에게 그 어떤 설명도 없이 개통 시기를 발표한 적 없다는 서울시의 유체이탈식 화법은 더욱 기만적 행위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피해는 시민뿐만이 아니다. 개통 일자와 무관한 남양주시는 시민들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진땀을 빼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알려줘야 우리도 시민들에게 이해와 협조를 구할 것 아니냐"고 한숨을 내쉬었다.또 다시 예정된 8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 서울시는 변화된 태도로 관계기관과 협력을 강화하고 철저한 점검을 진행해 별내선의 원활한 개통을 이뤄내길 바란다. /하지은 지역사회부(남양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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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소통과 갑질사이 지면기사
행정사무감사를 앞둔 지난 일주일 동안 의정부시의회 의원실 앞이 공무원들로 북적였다. '사전설명'이라는 이름으로 시청의 거의 모든 과 직원들이 줄지어 시의원들을 찾아오고, 복도에서 한참을 기다려 만나고 가는 일이 반복됐다.어떤 과는 팀장이, 어떤 과는 국과장이 나섰다. 13명 시의원 중 적게는 예닐곱에서 많게는 전부를 만나느라 시청과 시의회 사이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 샛길이 적잖이 붐볐다고 한다.행감에서 나올 만한 주제에 대해 시 집행부와 시의회가 사전에 소통하는 것이 어쩌면 필요할 수도 있다. 행감 당일 엉뚱한 질문이 나오거나, 생각지도 못한 지적이나 답변에 당황하느니 어느 정도 준비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그러나 최근 목격된 '사전설명'의 모습은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시의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요식행위로 변질 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어떤 시의원은 어느 과가 왔는지 안 왔는지를 체크한다고 하고, 공무원이 많이 찾아온 시의원은 마치 영향력이 대단한 것처럼 대접받는다는 후문은 무엇을 위한 사전설명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다들 가는데 안 가면 눈치가 보여 현황자료라도 들고 시의회를 다녀왔다는 몇몇 공무원의 한탄은 행감의 목적 자체도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시의회의 이런 사전설명 문화는 지난 제8대에선 없었던 일이다. 제9대 들어 시의회가 소통을 계속 강조하다보니 감사조차 사전에 소통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는 게 공직사회의 해석이다.사전설명이 행감 전 꼭 필요한 일이었는지, 아니면 의정부에서만 벌어지는 촌극으로 전락할지는 시의원들이 앞으로 행감에서 보여줄 모습에 달렸다.시 행정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면 공무원들이 억지로 찾아오게 만드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료를 찾으며 노력할 수도 있다. 소통의 영역은 어디까지인 것인지 되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겸손하면서도 본질에 충실한 시의회의 모습을 기대한다. /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차장 doran@kyeongin.com김도란 지역사회부(의정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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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공든 탑 무너질라 지면기사
커피숍을 운영하는 지인이 있다. 여름철이면 생과일 주스를 만들어 판매한다. 과일 주스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건 단연 수박 주스다. 출하량이 많은 이맘때는 수박 가격이 내려가 매출 올리기에도 그만이다. 하지만 요즘 수박 1통 가격이 보통 2만원을 훌쩍 넘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씩 농수산물도매시장과 대형마트, 인터넷쇼핑몰 등을 통해 수박값을 비교해 구매한다. 그는 될 수 있으면 손님들에게 맛도 좋고 품질까지 인증받은 수박을 구매하기 위해 주로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직접 찾는다고 했다. 물론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그런데 요즘에는 같은 크기라도 수박 가격은 물론 당도 차이가 거의 없어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찾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며칠 전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6㎏짜리 수박 1통을 1만8천원에 샀는데, 집 근처 대형마트나 인터넷쇼핑몰은 물론 집 앞 청과물가게도 가격 차이가 없었다"며 "농협중앙회가 보증한다는 '뜨라네' 스티커까지 붙어 있었는데, 품질이나 당도 차이도 없어 크게 실망했다.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쪼개가며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찾았는데, 매번 실망만 하고 돌아오니 이젠 갈 이유가 사라졌다"고 했다. 요즘 소비자들은 '과일값이 너무 부담스럽다', '비싸서 아예 보지도 않아요', '사고 싶은데 가계부 때문에 그냥 안 쳐다보고 지나간다'는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수익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형마트나 인터넷쇼핑몰과 달리 농수산물도매시장은 소비자들이 시중보다 크게는 30% 정도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 탓에 믿고 찾는 곳이다.예년과 달리 올해 3월에는 비가 너무 잦아 일조량이 부족했고, '이상 저온'이 계속되면서 과일값이 치솟고 있다. 앞으로 저렴한 가격에 과일을 구매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신뢰를 쌓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농수산물도매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그간 쌓아 온 신뢰도 잃어가고 있음을 주의하길 바란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sh2018@k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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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22대의 미래, 우리는 이미 봤다 지면기사
"법사위 기능을 법안 발목잡기에 악용하니 이번엔 우리가 맡아서 이 관행을 끊어버리겠다.", "우리나라가 '1당 독재국가'가 됐다." 앞말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의 것 같지만 4년전 김태년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뒷말은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가 아닌 국민의힘 전신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의 것이다.지도체제도 유사하다. 그 당시 민주당은 강성 이해찬 대표 체제였고, 미래통합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였다. 이해찬을 이재명으로, 미래통합당 김종인을 지우고 국민의힘 황우여를 넣으면 똑같다. 4년 전 21대 국회가 개원할 때 상황은 잔인할 만큼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차이가 있다면 여야가 바뀌었다는 것. 게다가 대통령실을 겨냥한 특검으로 야당은 여당이 맡아온 운영위까지 노리고 있다. 싸움의 영역이 넓어졌다. 논리도 유사하다. 4년전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책임국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일하는 국회'도 자주 쓰던 문구였다. 22대 민주당도 '책임국회를 위해 법사위 운영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당시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1당독재'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대야 논평에선 '민주당의 입법 독재'가 거의 매일 등장하고 있다.그럼 4년전 상황은 어떻게 진행됐나. 김 원내대표는 주 원내대표를 찾아다니며 '협의를 위해 할만큼 했다'는 명분을 쌓았다. 1차(15일)와 2차(29일)로 나눠 단계적으로 17개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독차지했다. 현재의 민주당은 1차 선출을 7일로 잡고 있다. 그때보다 인내심이 줄었다.그럼 일은 잘했나. 당시 추경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 진보 매체는 야당이 없는 추경심사는 정부 부처에 대한 질문도 없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4년전 원구성협상은 21대 국회가 정쟁의 늪에서 허우적댄, '일 못하는 국회'의 전주곡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22대 국회가 시작된 지 2일 기준 4일 됐다. 22대는 정치신인과 강성팬덤으로 '협치'가 설 자리가 더 좁다. . 안타깝지만 정치를 맡겼던 국민들이 다시 이곳으로 마음을 써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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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항만 재개발과 인천항 지면기사
장기간 표류했던 인천 내항 1·8부두 재개발사업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사업 주체인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 iH(인천도시공사) 등은 최근 인천 내항 1·8부두 재개발사업의 타당성을 검토받았고, 늦어도 연말까지 사업계획을 고시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인천 내항 1·8부두 재개발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내항 내 다른 부두의 재개발 여론도 커지고 있다. 심지어는 인천시의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내항뿐 아니라 인천 남항 컨테이너 터미널도 재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인천지역에서 거론되는 이 같은 여론을 두고 인천 항만업계에선 관련 법률에도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항만 재개발 및 주변지역 발전에 관한 법률'을 보면 항만 재개발 사업의 목적을 '노후하거나 유휴 상태에 있는 항만과 주변지역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정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천 내항이나 남항 컨테이너 터미널은 노후하거나 유휴 상태에 있는 항만이 아니다.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1·8부두를 제외한 내항 2~7부두에선 지난해 인천항 전체 물동량 중 10%를 처리했다. 특히, 양곡이나 자동차 등 인천항 내 다른 부두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화물들도 여전히 수출입 되고 있다. 인천 신항의 중요성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남항 컨테이너 터미널도 인천항 전체 컨테이너 물량 중 30% 이상을 처리하고 있는 주요 부두다.인천 시민들에게 바다를 돌려주고, 낙후된 구도심을 되살리는 항만 재개발사업은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 중인 항만을 재개발한다면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상상 이상으로 많을 것이다. 인천항은 지역 경제 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해왔다. 인천항이 인천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지금도 많은 인천 시민이 인천항을 중심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항만 재개발 확대를 섣불리 거론하면 안 된다. 그것이 진정으로 인천 경제를 생각하는 마음일 것이다. /김주엽 인천본사 경제부 차장 kjy86@kyeongin.com김주엽 인천본사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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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어딘가 분명 있을 이야기들 지면기사
지난 22일 폐막한 '제12회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흥미롭게 본 단편 극영화 2편을 소개한다.'거북이'는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 중국계 한국인 소녀의 짤막한 성장담이다. 그의 출신을 둘러싼 혐오의 시선이 두려운 소녀는 중국어로 말을 걸며 차를 권하는 자신의 할머니가 너무 싫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집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거북이를 선의로 집으로 들이게 되지만, 그 일로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다시 접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따스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주인공 소녀를 바라보는 이 영화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유학 중인 콜롬비아 출신 야라 가리 감독이 연출했다. 우리가 흔히 알듯 바다나 물가에 사는 게 아닌 육지에 사는 거북이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은유다.한원영 감독의 '되돌리기'는 육군 대위와 탈북민의 청춘 연애담으로 보인다. 강원도의 한 부대에서 복무하는 육군 대위는 여성이고, 인근 작은 양식장에서 일하는 탈북민은 남성이다. 이 영화 프로그램 노트에 쓰였듯 '탈북민과 군인이라는 신분이 서로 정치적으로 대립하거나 군사적으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위치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이질감이나 긴장감을 느낀다면 그건 이 커플이 아니라 우리의 선입견이나 편견과 연관된다.영화 속에서도 탈북민 남자친구를 주변에 소개하길 꺼리면서 이들은 갈등하고 다툰다. 그런데 탈북민 남자친구는 우리가 익히 봤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우선 꽃미남이고, 사투리가 전혀 없다. 양식장 작업복을 입고 있긴 하지만, 전자시계와 티셔츠 등 패션 스타일도 좋다.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다. 이들의 연애는 가능할까. 영화에선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있을 법한 이야기 혹은 어딘가에 분명 있을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는 이들이 적을뿐이다. 디아스포라영화제의 가치는 이 지점에서 나온다. '천만 영화'도 좋지만, 더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다. 그럴 수 있는 장소가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박경호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pkhh@kyeongin.com박경호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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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은퇴자들을 새 인구로 맞이하자! 지면기사
며칠 전 우연히 실버타운 탐방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노인들을 위한 온천과 마사지실 등의 훌륭한 시설을 갖춘 이 시설의 입주 비용도 궁금했지만 더 호기심이 당긴 것은 '이 실버타운 입주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시설은 무엇인가'였다. 정답은 파크골프장이었다.파크골프는 공원을 뜻하는 파크와 골프의 합성어로 경기방식은 골프와 비슷하지만 장비나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장타'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 시니어들에게 적합한 스포츠다. 지난해에는 국민생활체육 정식종목으로 선정됐다. 어느새 파크골프가 은퇴자들의 국민스포츠가 된 것이다.여주에도 2021년 7월 파크골프장이 공식 개장했는데 해마다 30%에 가까운 이용객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여주시는 이런 생활체육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36홀의 여주 파크골프장에 16억원을 투입해 오는 8월까지 27홀을 증설한다. 올 연말에는 18홀의 파크골프장을 한 곳 더 개장한다. 강변 둔치에 자리잡아 전망이 좋을뿐만 아니라 라운딩이 끝난 뒤 하루를 보낼만한 관광명소도 인근에 많다. 이쯤되면 이 글의 시작을 왜 실버타운으로 삼았는지 눈치챌 것이다. 인구 감소는 대다수 지방소도시의 가장 큰 고민이다. 반면 실버타운 조성으로 인한 건강한 고령자의 인구 유입은 곧바로 규모의 경제가 실현돼 지역경제의 활력이 될 수 있다. 이들의 활발한 사회활동과 의료서비스의 확충은 지역민의 생활환경에도 도움이 된다.여주만큼 빼어난 자연풍광에 수도권 접근성이 좋은 생활환경을 갖춘 도시도 드물다. 여러 규제 탓에 아직 개발의 여지도 많다. 우리나라의 노령화 속도는 세계 1위지만 실버타운 수는 최하위다. 지방소도시의 인구정책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양동민 지역사회부(여주)차장 coa007@kyeongin.com양동민 지역사회부(여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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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친절하세요 지면기사
김포 공무원 사망사건을 계기로 악성민원 대응 부처합동 TF를 꾸렸던 정부가 다양한 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민원전화를 처음부터 자동 녹음할 수 있게 하고 폭언이 계속될 시 공무원이 먼저 통화를 종료할 수 있게 했다. 온라인에서 단시간에 민원폭탄을 퍼부을 경우 이용을 제한하거나 동일내용 반복민원에 대해서는 사안을 종결토록 하고, 기관 홈페이지 등에서 공무원 개인정보를 비공개하도록 권고하는 등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대책을 내놓았다.수사·사법기관도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숨진 공무원을 비난하고 협박성 전화를 건 민원인들이 경찰의 발 빠른 수사로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달 고용노동청 공무원을 장기간 협박한 민원인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자 검찰은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악성민원 사건에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항소했다. 이달 초에는 불법 주정차 견인 도중 자신의 외제차량이 고장 났다며 공무원을 협박한 일가족이 항소심에서 1심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았다.하지만 공무원들은 여전히 불안해한다. 어떠한 대책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규정된 신분상 한계는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을 향한 하대의 밑바탕에는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짙게 자리하고 있다. 공무원들에게는 심지어 '친절의 의무'도 있다. 또 다른 의무사항인 '영리업무 금지', '정치운동 금지', '종교 중립' 등과 비교해 유독 잣대가 모호한 족쇄다. 자의적으로 해석될 감정의 영역을 법으로 규정하다 보니 '불친절하다'며 감사를 청구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공무원이라면 부당한 일을 겪어도 무조건 친절하게 봉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한, 악성민원은 변함없이 공직사회를 교묘하게 파고들 것이라고 현장의 공무원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를 방치함으로 인한 인력 공백과 행정서비스 질 저하는 정부에 대한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추후 관련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차장 wskim@kyeongin.com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