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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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푸념하는 인천 문화예술계 지면기사
지난해 10월 초 독일 베를린 출장 때 옛 동베를린 시청사 인근에 있는 공공 복합문화공간 '알테 뮨즈(Alte Munze) 베를린'을 찾았다. '오래된 동전'이란 이름처럼 1930년대부터 독일 화폐를 주조했던 공장 건물을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을 위한 작업실과 전시실 등으로 재생시킨 공간이다.알테 뮨즈엔 공간 운영 취지를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붙어 있다. '도심에 위치해 미래, 도시와 사회에 대해 더 나은 그리고 멋진 아이디어에 집중하고 있다'.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곳에 작업실을 꾸린 30대 독일인 3D 애니메이터를 만났더니, 이 같은 운영 취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그는 "이곳은 누가 집권하느냐는 정치적 맥락에 따라 활성화하는 방향이 달라진다"며 "하지만 이곳은 다양한 문화활동이 일어나는 곳이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공간 운영 취지에 맞춰 정체성을 규정짓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료가 저렴하기 때문에 알테 뮨즈에 작업실을 마련했을 뿐이었다고 했다.때론 이 같은 예술가 특유의 '불화' 혹은 '저항'의 태도가 창작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본인이 혜택을 받는 공공시설(기관)조차 당당하게 비판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기류야말로 오늘날 베를린을 전 세계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만들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지난해 베를린에서의 경험을 떠올린 건 최근 인천 지역 현장에서 '지원 예산을 틀어쥔' 지자체 등 공공기관 간섭이 과도하다는 예술가와 관련 단체·기관 종사자들의 깊은 푸념을 자주 접해서다. "용역회사로 전락한 것 같다.", "자율성·전문성을 자꾸 침범한다.", "예술이 관광 상품 신세다.", "예술가는 쫓겨나는 존재인가."창작은 오로지 창작자의 몫일 때 온전한 가치를 발하는 게 아닐까. 문화예술 영역에서 이른바 '팔길이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것이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인천이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이기도 하다. 너무 뻔해서 꺼내기도 머쓱한 얘기다. /박경호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pkhh@kyeo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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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보랏빛 라벤더 향기에 취해보세요 지면기사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에 위치한 발랑솔 고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연 관광 명소이다. 이곳은 넓게 펼쳐진 라벤더 밭(8만㏊)으로 유명하며, 보랏빛 라벤더의 물결은 방문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프로방스 지역은 전 세계 라벤더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며 향수, 음식 등에 활용되는 라벤더 오일과 라벤더 꽃에서 채취한 꿀은 지역 경제에 크게 이바지한다. 또한 매년 7월에 열리는 라벤더 축제는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전라남도 영암군에서는 유채와 메밀을 활용한 경관단지(559㏊) 조성으로 농촌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 봄이면 황금빛 유채꽃이, 가을에는 하얀 메밀꽃이 관광 활성화와 이를 활용한 가공상품으로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한다.이 두 사례에서 보듯이 지역기반 농촌산업 육성은 다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며 농업정책 따로 관광정책 따로가 아닌 긴밀한 연계가 중요하다. 산업 규모 확대보다는 적정 규모로 산업을 육성하고 이를 유지하면서 산업 고도화를 추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이를 위해 여주시와 여주시의회는 이번달 제69회 임시회를 열고 '여주시 쌀산업특구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과 '여주시 농산업 공동브랜드활성화센터 설치와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심의 의결했다.여주시와 여주시의회가 농산물의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 향상을 위해 공동브랜드활성화센터를 설립하는 것처럼, 이를 관광자원과 연계해 여주시 전체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여주 농산물과 관광명소를 연계한 패키지 상품을 개발하여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라벤더 축제나 유채와 메밀 경관단지처럼 여주의 남한강과 들녘, 당남리섬 경관단지(14㏊), 강천섬, 여강길 및 자전거길 등을 활용한 농촌체험, 자전거 투어, 농산물 수확 체험, 지역축제 참여 등 다양한 '경관문화관광단지'를 꿈꿔본다. /양동민 지역사회부(여주)차장 coa007@kyeongin.com양동민 지역사회부(여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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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총선판' 이해하기 어려운 의왕시의회 운영 지면기사
제9대 의왕시의회의 최근 행보에 대해 시 집행부를 비롯해 산하기관, 언론들까지 안팎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시의회는 지난 11일 제300회 임시회를 열어 '의왕 백운PFV(프로젝트금융투자)(주) 공공기여 사업'에 관한 긴급현안질의를 실시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채훈(오전·고천·부곡) 의원은 '청계~오전 터널사업의 보류' 보도관련 백운PFV 관계자들과 관련된 시 집행부 책임자급 인사를 모두 불러 대질심문(?)을 했다.국토교통부에서 '청계~오전' 터널사업·청계IC 수원방면 램프 설치 등 백운PFV의 1천880억원 규모 공공기여 사업을 확정하기 위한 재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백운PFV측의 보류 소식에 국토부는 물론 주민들이 놀라 지역의원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그러나 진상을 규명하는 방식이 매우 잘못됐다. 보류 결정 보도 3일 뒤 "터널 사업 전면보류 결정은 백운PFV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공사 핵심 관계자발 보도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한 의원은 공직자·산하기관·민간기업 인사들을 불러 "백운PFV 관계자 맞나", "시 관계자 맞나" 등을 확인했다. 2007년 언론계 입문 후 국회와 경기도의회 등에서도 결코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익명성·취재원보호가 전제되는 언론 보도를 역으로 이용하듯 출석 인사들로부터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답변이 나오자 '허위사실 유포' 쪽으로 기류가 흐르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발언했다"라고 백운PFV 자산관리회사측 총괄관리자의 선언이 이뤄지자 상황은 역전됐다. 예상치 못한 백운AMC 측 입장 공개에 한 의원은 급작스레 청계IC 램프 설치 질의로 건너뛰었다.최종적으로 의원 한 명 개인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소집안을 발의했다고 그대로 본회의 일정을 확정한 의장에게도 책임이 있다. 민주당 3명·무소속 1명 의원들이 연대를 하면 남은 2년 간 무조건 특정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건데 과연 의장의 역할이 무엇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송수은 지역사회부(의왕) 차장 sueun2@k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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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급증하는 안성시 노령인구, 종합대책 필요 지면기사
안성시의 노령인구가 급증하는데 반해 관련 대책이 부족하다는 여론이 지역사회에 팽배하다. 안성시가 최근 발표한 '노인등록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관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외국인 포함 총 인구의 17.4%를 차지하는 3만6천32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대비 10.3%가 늘어난 수치로 2년 사이에만 10% 이상의 관내 노인 인구가 늘어난 셈이다. 또한 이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오는 2040년에는 관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8만여 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지역의 고령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특히 인구가 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노령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생산연령인구 대비 노령인구를 비교하는 노년부양비를 따져보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을 수준에 이른다. 통계로 보면 2022년 기준 안성지역 노년부양비는 24.2명으로, 생산연령인구 4.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지만 오는 2040년에는 생산연령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시와 정치권도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며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그 방향이 다소 엇나가 있는 듯하다. 현재의 정책들의 초점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정주 여건 개선을 통해 젊은 층 인구의 유입은 물론 출산 장려를 통해 생산연령인구를 높이는데 치중돼 있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 보다 몇 푼 안 되는 지원금으로 '퉁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현재의 노인들은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지금의 선진국 반열에 올리기 위해 본인 삶을 희생하며 자식 세대들에게 모든 것을 헌신한 사람들이다. 물론 안성지역 노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그러기에 시가 '노인등록통계 보고서'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토대로 단순히 경제적 도움이 아닌 노인들에게 지금 현재 꼭 필요한 것을 지원해주는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 muk@kyeongin.com민웅기 지역사회부(안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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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모처럼만에 가평군민 뭉친다 지면기사
모처럼 가평군민들이 하나로 뭉치고 있다.가평군은 최근 몇 년간 제2경춘국도 가평군 노선(안) 배제, 공동형 장사시설 건립사업 제동, 경기도 산하기관 유치 탈락 등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특히 공동형 광역장사시설 건립사업을 두고 민심은 찬반으로 격하게 대립했다.다수의 주민 등이 장사시설 건립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입지 후보지 선정에는 재공모까지 진행되는 등 주민 간 갈등이 고조됐다. 이 갈등은 군수 주민소환투표 서명운동으로 이어지면서 극에 달했다.이후 청구인 측이 시한 1주일을 앞두고 청구를 철회, 일단락된 것으로 보였지만 이 갈등의 문제는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뿐 지금껏 사회적 합의는 이끌어내지 못한 상태다.이런 가운데 지난해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2025~2026년 경기도 종합체육대회 가평군 유치 확정'의 희소식이 들렸다. 지역사회는 환호했다.3번의 도전 끝에 이뤄낸 성과로 2003년 제14회 경기도생활체육대회 개최 이후 20여 년 만이다. 그 사이 대회 규모는 4배 이상 커졌다. 대회 개최가 확정되자 군은 '경기도체육대회추진단'을 신설하는 행정기구 개편을 단행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군민들도 힘을 보탰다.지난달 이장협의회, 주민자치회, 노인회, 새마을지도자회, 지역사회보장협의회, 각 봉사단체와 사업체 등의 구성원들은 민간추진단을 발족했다.또 가평교육지원청을 비롯해 가평초, 가평고, 청평중, 청평고, 조종초, 북면중 등 관내학교는 대회기간 관련 학교시설 개방을 약속했다.다음 달에는 각급 사회단체장 등을 포함한 주민 200여 명으로 구성된 대회조직위원회도 출범한다. 여기에 약 300개의 숙박·외식업체 등도 속속 대회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그동안 민민·민관 등의 갈등으로 점철됐던 지역사회가 '2025~2026년 경기도종합체육대회'를 통해 분열과 반목이 봉합되길 기대해 본다. /김민수 지역사회부(가평)차장 kms@kyeongin.com김민수 지역사회부(가평)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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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고향 떠난 수자기 지면기사
황색 무명 천에 검정색 커다란 '장수 수'(帥) 자가 새겨진 세로 430㎝, 가로 410㎝ 크기 어재연 장군 '수자기(帥字旗)'. 수자기가 또 고향 강화(江華)를 떠나는 긴 여행길에 올랐다. 지난 12일 수자기가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을 떠났다. 수자기의 장거리 여행은 이번이 세번째다.첫 여행은 납치나 다름없었다. 150여 년 전 1871년 6월 미국의 조선 침략인 신미양요 당시 벌어진 광성보 전투에서 조선은 패배했고 깃발은 미군 손에 들어가 강제 여행을 떠나야 했다. 당시 전투에서 미군 전사자가 3명, 부상자가 10명인 반면 조선군 전사자는 어재연 장군을 포함해 무려 35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때 수자기는 군함에 실려 떠났고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담요처럼 둘둘 말린 채 전시됐다.두번째 여행은 2007년 10월의 일이다. 정부가 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과 협의 끝에 '장기 대여' 형식으로 수자기를 들여와 136년 만에 다시 고국에 들여오기 위한 여행길이었다. 10년으로 기한이 정해진, '반환' 아닌 '대여'였지만 최근까지 1~2년 단위로 대여기간이 연장됐다. 계속 머무를 것으로 알았지만 우리 바람처럼 되지 않았다. 미국 해군사관학교는 대여 기간을 더 연장하지 않았다. 오는 2025년 봄부터 2028년까지 3년 동안 진행할 아시아 유물 특별전에 전시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평소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수자기를 당분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많이 아쉽다. 수자기 실물과 인사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게으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우리에게 선택권조차 없고, 그저 보내야만 한다니 자존심도 상했다. 먼 길 잘 다녀오라고 작은 행사라도 치렀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바람처럼 되지는 않았다.부디 수자기의 이번 여행길이 편도가 아니기만 바랄 뿐이다. 다음 귀국길이 수자기의 마지막 여행이 됐으면 한다. 반갑게 다시 인사하는 날까지 모두 함께 착실히 준비했으면 좋겠다. /김성호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ksh96@kyeongin.com김성호 인천본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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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돌고 돌고 도는 민원 지면기사
김포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민들이 자주 찾는 등산로에 화장실이 없어 불편하다는 민원이 꾸준히 제기됐다. 아예 희망위치까지 지정해 민원이 이어졌다. 시에서 화장실 조성을 추진하자, 인근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악취와 청소년 비행 등을 우려한 이들의 반대민원으로 사업은 수개월 간 지연됐다.또 다른 장면 하나. 김포시는 여름철 땡볕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주요 사거리마다 접이식 그늘막을 설치했다. 그런데 어느 사거리 모퉁이에는 지난해 여름 내내 이 그늘막이 접혀 있었다. 그늘막을 펴면 자신의 매장이 완전히 가려진다는 항의민원 때문이었다.똑같은 사안을 놓고 민원이 충돌하는 경우는 이뿐만이 아니다. 누구는 주차단속을 요구하고 누구는 단속 예외를 요구한다. 현수막을 철거해 달라는 민원에는 '왜 우리 것만 떼느냐'는 반발민원이 따라붙는다. 공영주차장 입구가 어두워 사고위험이 있다는 민원을 받고 차단봉에 조명을 설치했더니 불빛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항의한 사례도 있다.김포 공무원 사망사건은 민원이 꼬리를 물다가 벌어졌다. 제설 요구 민원에 따른 염화칼슘 선제 살포, 염화칼슘 살포에 따른 포트홀 발생, 포트홀 항의민원에 따른 긴급 보수공사, 보수공사에 따른 교통정체로 특정 공무원에게 '좌표'를 찍고 분노를 쏟아냈다. 심야시간대에 공사를 진행했는데도 항의가 걷잡을 수 없이 빗발치다가 기어이 사달이 났다.민원이 끝모르고 계속되는 건 행정기관의 저자세와 무관치 않다. 헌법상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 규정된 공무원의 지위가 발목을 잡으면서 어떤 부당한 일을 겪고 공격을 당해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행정서비스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대다수 시민은 안다. 그럼에도 민원인들은 문제의 해결 여부를 떠나 감정쓰레기통 역할이라도 할 것을 공무원들에게 강요해왔다.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돌고 도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끊어내야 할 때다./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차장김우성 지역사회부(김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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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부천을 향한 선거 파동 지면기사
4·10 총선을 앞두고 부천지역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중앙 정치권의 혼란이 지역 정치권에 큰 파동을 안기는 모습이다. 파동은 크게 두 가지다. 선거구 획정 파동과 공천 파동이 있다.선거구 획정 파동은 전형적인 '중앙 발'이다. 기존 부천지역 선거구는 갑·을·병·정 4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해 말 부천시 4개 선거구를 3개로 줄이는 내용이 담긴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애초 지역에선 선관위 획정안을 '실현 가능성 없는 안'으로 치부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텃밭인 부천지역 선거구를 줄이는 선관위 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다만, 위기감은 높았다. 전례를 볼 때, 직전 국회에서 선거구 분·합구 얘기가 나오면 다음 국회에서 확정되는 일이 즐비해서다.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급변했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획정위의 원안을 받아 29일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다. 이로써 부천지역 선거구 축소는 시간문제가 됐다. 지역 정치권은 뒤집혔다. 4개 선거구 현역인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시민의 투표권과 평등권을 제물로 '국민의힘 지역구'를 지키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부천 선거구 획정의 정상화 협상에 즉각 응하라"고 촉구했다. 지역 민심도 크게 동요했다. 인구수가 더 적은 서울 강남이나 대구 달서가 아닌 부천의 선거구 축소에 자존심이 단단히 상했다.공천 파동도 심상찮다. 6선 고지를 바라보던 설훈 의원이 현역 의원 평가에서 하위 10%에 들었다. 부천지역에선 '비명계 수장' 격인 그의 행보와 관련해 '예상된 결과'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40여년 간 민주당을 지켜온 이에게 '가혹한 형벌'이 내려졌다고 입을 모았다. 설 의원은 결국 탈당을 선택했다. 이 무렵, 지역 정가에선 하위 20% 안에 또 다른 현역 의원이 포함됐을 것이란 풍문이 돌며 민심을 자극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부천지역 파동은 앞으로 더 커질 모양새다. 선거구 획정안의 향배가 곧 결정되고, 여야의 공천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김연태 지역사회부(부천)차장 kyt@kyeongin.com김연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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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철도 지하화 공약 남발 지면기사
"아무리 총선이지만, 예비후보들이 공약을 남발하는 모습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최근 만난 한 고위공직자는 "일부 공약을 보면 예산만 수조원이 들어가는데 어떻게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면서 이같이 꼬집었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철도 지하화 공약을 내놓았다. 국민의힘은 수원역~성균관대 구간, 서울 영등포역~용산역 구간, 대전역 인근 등을 철도 지하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상부 부지 통합 개발로 여가·문화 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더불어민주당 역시 철도, 광역급행철도(GTX), 도시철도 도심 구간을 모두 지하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철도 지하화와 상부개발을 함께 진행해 지역 내 랜드마크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라고 한다.철도 지하화는 지난 수십년간 선거의 단골 공약이었지만, 천문학적 사업비를 충당할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추진에 이르지 못했었다. 이렇다 보니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가 유권자 마음 잡기에 혈안이 돼 실현 가능성 없는 철도 지하화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고위공직자는 "요즘 이야기 나오는 철도 지하화 공약 중 일부 구간은 십여 년 전에도 전문가들과 여러 방안을 모색했었지만, 타당성 조사는커녕 초기 단계에서 검토만 하다가 끝났었다"면서 "공약을 발표하는 후보나 당 차원에서 제대로 검토는 해보고 추진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여야의 철도 지하화 공약으로 하락세를 이어가던 집값이 꿈틀대고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민심 잡기에도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사업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내놓지 못하는 현실이다. 현실성 없는 마구잡이식 선심성 공약과 희망고문은 정치인은 물론 정당의 신뢰 하락이란 부작용만 남길 뿐이다. 철도 지하화 공약이 총선 이후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그런 공약으로 남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상훈 사회부 차장 sh2018@kyeongin.com이상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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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사라진 애호박전과 물가통계 지면기사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면 인심이 흉흉해진다는 뜻이다. 사회가 삭막해졌다는 말로 요약하기도 한다. 그러니 다른 이의 '곳간'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정확히 진단해야 해결책을 내든,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든 처신을 바로 할 수 있다.이번 설 물가는 살인적이었다. 우리집의 경우 친정과 시댁에서 애호박전이 사라졌다. 시댁은 장손 집이라 손님이 많다. 명절엔 항상 과일을 박스로 사던 시부모님이 이번엔 정부 할인쿠폰이 붙은 배 3개들이, 사과 3개들이만 집어오셨다. 애호박전이 사라진 차례상은 처음 보고, 제수용 3개만 있는 과일상자는 결혼하고 처음본다. 아마 이 얘기를 대부분의 가정에서 공감할 것이다.다만 정부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설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8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16대 성수품의 소비자가격이 1년 전 설 같은기간보다 3.2%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수준'도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낮은 수준'이라니, 이번에도 국민이 보고 느낀 것 대신 '바이든·날리면'처럼 정부의 강변(强辯)을 믿어야 하나. 어딘가 더 싼 게 있는데 내가 장을 잘 못봐서 그렇구나, 하고 자책을 해야 하나.다행히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확인해주는 통계도 있었다. 한국물가정보는 전통시장 기준으로 차례상 비용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했다. 통계청도 각 품목별 통계에서 사과와 배가 10~20% 상승했다고 했다. 아마 시장 보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런 통계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누군가는 체감과 가까운 통계를 내는데, 정부는 체감과 동떨어진 통계에만 기댄 것이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지난 정권에서 부동산 통계는 국민 감정을 상하게 하는 데 일조했고, 잘못된 정책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리고 현 정권은 그것을 '통계조작'이라는 이름을 붙여 수사 중이다. 여기 이 시장 물가 통계를 내는 방법에도 토를 단다. 아둔한 통계인가, 목적이 있는 통계인가. 5천만의 곳간을 살필 방법도 못 찾는 것은 곳간에 별 관심이 없어서인가. /권순정 정치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