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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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코로나19 전국민 진단검사 지면기사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자가진단키트 보급을 통해 코로나19 전국민 진단검사를 주장했다. 한 달에 4억 개인 자가진단키트 생산능력을 감안하면 "한두 달 안에 전국민에 대한 검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100개국 이상에 수출하는 자가진단키트를, 수출국인 우리나라 국민도 써야 한다는 논리였다.주 원내대표의 지적은 상당수 국민들이 갖는 의문을 반영한다. 많은 국민들이 전국민 진단으로 확진자를 가려내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전체 국민 중 확진자만 가려내 방역행정을 펼치면, 방역도 쉽고, 경제활동도 정상화할 수 있다면서다. 당연한 의문이다. 단 전제가 있다. 진단키트의 정확도가 100%여야 한다.포털사이트의 한 블로거(위니버스)가 이런 의문에 친절하게 답변해놓았다. 이 블로거에 따르면 진단키트의 성능은 민감도와 특이도로 결정된다. 민감도는 감염자를 양성으로 판정하는 확률을, 특이도는 비감염자를 음성으로 판정하는 확률을 말한다. 즉 민감도와 특이도가 99%인 진단키트라도, 감염자를 음성으로 판단하고, 비감염자를 양성으로 판단할 확률이 1%라는 얘기다. 인구 5천만명 중 2%가 감염자라는 가정하에 이 진단키트로 진단을 실시하면, 감염자 100만명 중 1만명이 음성판정을 받고, 비감염자 4천900만명 중 49만명이 양성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이렇게 되면 심각해진다. 가짜 양성자 49만명은 억울한 통제에 갇히고, 국가는 의료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음성 판정을 받는 1만명이다. 이들이 거리를 활보한다면, 그야말로 악몽이다. 현재 민감도와 특이도가 99%인 진단키트 자체가 없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진단키트 승인기준이 민감도 90%, 특이도 95%다. FDA 기준 진단키트로 전국민 진단검사를 하면 상황은 더욱 참혹해질 것이다. 특히 자가진단키트들의 정확도가 70~85% 정도라는 보도가 있었다. 방역현장에서 쓰는 PCR진단키트의 정확도에 한참 못미친다. 자가진단키트를 이용해 개인이 진단결과를 확신하고 행동하는 순간 대참사가 벌어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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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초대 질병관리청장 '정은경' 지면기사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19세기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런던은 암울했다. 썩어버린 템스 강의 악취로 강변의 국회의사당은 창문을 열 수 없을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해 마다 창궐하는 콜레라였다. 전염병의 원인을 나쁜 공기로 단정했던 의학계로선 대책이 없었다. 그런데 1854년 존 스노우라는 의사가 콜레라 발병자와 사망자들이 특정 지역 식수 펌프를 중심으로 집중된 사실을 발견한다.전염병 역학조사인 펌프 지도를 작성한 스노우는 최초의 방역행정가인 셈이다. 로베르트 코흐가 1883년 콜레라균을 발견했으니, 스노우는 병원균의 정체마저 모른 채, 오직 발병자 역학조사만으로 집단감염원을 차단한 것이다.어제 국무회의에서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질병관리본부를 독립기관인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키고, 문재인 대통령은 초대 청장에 정은경 현 질병관리본부장을 내정했다. 질병관리청은 12일 공식 출범한다. 중앙보건원(1959년)-국립보건연구원(1966년)-국립보건원(1981년)을 거쳐 2003년 사스 발생을 계기로 2004년 질병관리본부로 확대됐지만 복지 부처 산하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그러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독립해 방역행정사에 신기원을 열었다.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한창이니 질병관리청과 정은경 초대 청장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현 정부는 전 세계에 K-방역의 우수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실제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당국자들이 지난 3월 질병관리본부를 방문해 우리나라 코로나19 대응 시스템을 벤치마킹했을 정도다. 하지만 대구 1차 대유행에 이어 현재 수도권 2차 대유행이 증명하듯 방역은 작은 틈만으로도 무너진다. 중국 공산당은 코로나19 종식을 공식 선언했지만, 공산당이라서 가능한 배짱으로 봐야 한다.정 본부장은 지난 6월 코로나19 집단감염과 대유행을 예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을 소비 전선에 내몰았다. 이제 정 청장 내정자는 독립기관의 장으로서 경고의 메시지를 확실하고 단호하게 밝혀야 하고,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은 질병관리청의 방역지휘에 따라야 한다.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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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바둑의 메카 한국기원 지면기사
8~9살 무렵, 형들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웠다. 단수(單手)를 '아다리'라 불렀다. 상대의 돌을 완전히 둘러싸기 바로 전 상태를 말한다. 일본말 아타리(アタリ)에서 비롯됐다. 상대가 '아다리'라 외치는 건 돌을 거두란 뜻이었다. '호구(虎口)'는 누구나 아는 바둑용어다.1954년 사단법인 한국기원이 발족했다. 한국 바둑의 총본산이다. 8 ·15광복과 더불어 바둑계의 재건을 위해 국수(國手) 수준의 고수들이 모여 만든 한성기원(漢城棋院)이 전신이다. 그 후 조선기원(朝鮮棋院)과 대한기원(大韓棋院)으로 변천했다.1968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한국기원회관'이 건립됐다. 1970년 재단법인으로 바뀌었다. 1989년 월간 '바둑생활'을 창간, 바둑 보급 활동이 본격화됐다. 1년에 4명만 프로 초단이 된다. 1990년도부터 여류 입단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1994년 본원회관을 서울 성동구 홍익동으로 이전했다.한국 바둑의 메카인 한국기원이 2023년까지 의정부시로 이전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임채정 한국기원 대표, 안병용 의정부시장이 지난주 경기도청에서 '한국기원 이전 및 바둑 전용 경기장 건립 협약'을 체결했다. 부지는 의정부시 호원동 403번지 일원이다.1950~60년대 한국바둑은 조남철 시대였다. 현대바둑의 개척, 성장기다. 그는 6개 신문 기전의 1기 대회를 독점 우승했고, 국수전 9연패, 최고위전 7연패, 패왕전 4연패를 이뤘다.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은 1960년대 중반 이후 10년간을 지배했다. 이어 70~80년대 조훈현에 이어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신진서가 패자(覇者)의 계보를 잇는다.바둑의 기원은 중국 요순시대로 알려졌다. 5천년 가까운 역사다. 가로·세로 19줄, 반상의 수는 무궁무진하고 변화무쌍하다. 국제기전 판도는 한·중·일 3국이 패권을 다툰다. 70년대까지 일본이 우세했으나 이후 한국, 최근에는 중국이 앞서는 양상이다.수년 전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알파고'가 등장해 인간계를 평정했다. 이세돌 9단만 유일하게 1승을 거뒀다. 프로기사들 대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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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디지털 교도소'와 '법의 정의' 지면기사
서부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셰인'(Shane). 떠돌이 총잡이 셰인은 개척민 농가에서 하룻밤 신세 지는 바람에 악당의 무리와 맞선다. 개척민들의 땅을 빼앗으려는 목축업자와 그가 고용한 총잡이들을 한 자루 총으로 처리한 뒤, 부상당한 몸을 말에 싣고 쓸쓸하게 떠난다. 지금이라면 그는 떠나는 것으로 용서받을 수 없다. 살인죄로 기소돼 법정에서 죄의 유무를 가려야 한다.현대 문명사회에서 개인 및 단체가 사적으로 형벌을 가하는 사적제재(린치)는 금지된다. 개인이나 집단이 법을 초월해 형벌을 집행하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야만적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건맨과 협객이 악당들을 처단하는 서부영화와 무협영화의 정의는 픽션에 머물러야 한다.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몽둥이로 살해한 택시기사 박기서가 법의 심판을 받고, 아들을 폭행한 가해자를 사적으로 폭행한 한화 김승연 회장이 구속돼 법정에 선 이유다.지난 6월 개설된 웹사이트 '디지털 교도소'가 사적제재 논란에 올랐다. 디지털 교도소는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고 사이트 개설 목적을 밝혔다. 고 최숙현 선수가 지목한 가해자들과, 세계 최대 아동 성범죄 영상 유포자 손정우 등의 신상정보가 공개돼있다. 신상정보 기간은 30년이라니, 여기에 오르면 사실상 사회적 종신형을 받는 셈이다.그런데 최근 디지털 교도소가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하는 '지인 능욕'을 사주한 혐의로 신상을 공개했던 고려대 학생 A씨가 결백을 주장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범죄사실을 부정하고 신상정보를 해킹당했다고 주장했다는데, 디지털 교도소는 그의 신상을 계속 공개했다고 한다.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디지털 교도소는 사회적 심판자가 아닌 가해자일 뿐이다. 경찰은 A씨 주장의 진위를 밝히고, 그와 상관없이 '디지털 교도소'에 대해 추적에 나서야 한다.디지털 교도소는 '법의 정의(正義)'가 의심받는 사회의 위기를 보여준다. 성범죄에 관대한 판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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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아베 총리의 리트윗 지면기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러시아의 야권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를 돕자고 의기투합했다. 지난주 프랑스 대통령의 여름 별장지인 지중해 연안 브레강송 요새에서 가진 정상회담 자리에서다. 두 정상은 나발니 측에 병원 치료나 망명, 보호조치 등 필요한 모든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나발니는 지난달 중순 여객기 안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로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러시아 옴스크 병원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이송돼 현지 샤리테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웃인 프랑스와 독일은 숙적이다. 침략과 약탈, 양민 학살의 흑역사가 반복됐다. 역대 정상 간 사이가 좋을 리 없다. 마크롱과 메르켈은 이런 통념을 깨고 밀월 중이다. 기자회견장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다정한 오누이 같았다.마크롱은 2018년 메르켈이 위기일 때 앞장서 도왔다. 총선 패배로 연정 구성에 실패해 낙마 위기에 몰린 메르켈을 지원 사격했다. 마크롱은 "메르켈 총리는 유럽에 대한 열망을 보여줬고, 사민당의 대표도 마찬가지다. 연정의 골격 역시 그렇다"며 사민당의 연정 참여를 촉구했다. 사민당은 연정에 참여키로 했고, 메르켈은 사지(死地)를 벗어났다.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달 말 사임 발표를 했다. 일본 헌정 사상 최장기간 집권 기록을 세웠다. 각국 정상들이 그의 업적을 치하했다. 아베는 트위터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상왕(上王)'으로서의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기 위한 행보라는 평가다.'친절한 아베 씨'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감사 인사를 받지 못했다. 문 대통령도 아베에게 트윗을 날리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시진핑 주석도 마찬가지다.문 대통령과 아베는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 뒤 한 번도 일본을 국빈방문하지 않았다. 아베 역시 현 정부에서 대한민국을 공식방문한 적이 없다. 정상회담은 수차례 가졌으나 제3국이거나 G20 등 정상회의 기간 짬을 낸 이벤트 성격이었다.새 총리로 지명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취임해도 양상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위안부 문제와 징용 배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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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추미애 장관 아들의 '병가 논란' 지면기사
한국 여성들이 손사래 치는 대화 주제가 군대와 축구다. 그러니 군대 가서 축구한 얘기라면 질색하는 게 당연하다. 공감할 수 없는 대화에 꼼짝없이 갇히는 일 만한 고역이 없어서다. 연애 초반 군대 가서 축구한 추억을 더듬는 남성은 퇴짜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한국 남성들이 여성들의 구박을 무릅쓰고 평생 군대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건, '군 복무' 경험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다. 징병제로 강제되는 병역의무는 청년들에게 경력단절과 사회적 격리를 강요한다. 인생의 절정기에서 맞는 두려운 공백이다. 남성이면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연대감이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공백이다. 남성들이 군대에서 누가 누가 더 힘들었나 무용담 경연을 펼치는 건 '공백'을 채우기 위한 자기 보상심리의 발동일 것이다. '뻥'인 줄 알면서 '뻥'으로 받아치며 넘어가는 이유다.현역 복무기간이 짧아진 지금은 옛날 얘기가 됐지만, 386세대들은 현역 복무기간에 따라 신의 아들(병역면제자), 장군의 아들(6개월 방위), 사람의 아들(18개월 방위), 어둠의 자식(현역 복무)으로 스스로를 구분했더랬다.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부담이다. 병역의 형평성을 무너뜨린 '특혜자'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유다.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 서모씨의 휴가미복귀 의혹 사건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1월 야당의 고발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8개월째 결과가 없는 가운데, 야당의원이 '추미애 의원' 보좌관의 병가연장 청탁 전화를 증언하는 녹취록을 공개하면서다. 1차 병가 후 복귀하지 않았다는 당직 사병의 기억만큼 중요한 증언이다. 서씨는 21개월 복무기간 중 19일을 병가로 썼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휴가 명령서가 없다"면서도 "행정상의 오류"라고 답했다.'휴가명령서 없는 휴가'라니. 군대를 다녀 온 대한민국 남성들은 이런 휴가는 없다는 걸 다 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 말대로 "병역 문제가 역린의 문제"인 이유는 서툰 변명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 절반이 남성이고, 이중 30대 이상은 거의 군 복무자였다.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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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BTS', 역사를 쓰다 지면기사
방탄소년단(BTS)이 세계 대중음악의 성지인 미국에서 마침내 역사를 썼다. 빌보드는 1일 BTS의 최신 영어 신곡 '다이너마이트'가 메인 싱글차트 '핫 100'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2018년 5월 7일 앨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를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위에 올린 지 2년여 만에, 가장 의미 있는 인기곡 순위에서도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BTS는 그동안 '빌보드 200' 1위 앨범을 4장이나 내놓았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앨범 차트 1위로 뮤지션의 음악적 역량은 과시했지만, 대중의 인기를 즉각 반영하는 싱글 차트에서는 비영어권 노래의 한계 때문에 정상 부근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앨범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국내에선 비틀스와 영국 뮤지션들의 미국 진출을 일컫는 '영국 침공(British Invasion)'에 빗대어, 'K-팝의 침공'이라 대서특필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이유다. 그런데 작심하고 내놓은 영어 신곡으로 '싱글 차트'마저 정복했으니, "역사를 썼다"는 이방카의 말대로 'K-팝의 침공'은 명실이 상부하게 됐다.2013년 데뷔 이후 7년 만에 이룬 BTS의 성취는 신화적이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해 "BTS의 국내총생산 창출 효과가 46억5천만달러(약 5조5천억원)"라며 "7인의 BTS가 삼성 등 대기업들과 같은 경제리그에 참여하게 됐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BTS의 활약은 전공 분야를 초월한다. 2018년엔 유엔총회에서 청소년들의 꿈을 역설하는 연설로 감동을 주었다. 같은 해 일본 방송사들이 BTS 멤버 지민이 2년 전 착용한 광복절 티셔츠를 문제삼아 예정된 방송출연을 취소했다가, 전범국 일본의 과거를 조명하는 전세계 유력 언론의 보도에 시달리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BTS는 이제 K-팝의 상징을 넘어 세계 대중문화계의 리더로 떠올랐다. 국내외 팬클럽 아미(A.R.M.Y)의 저변은 엄청나다. BTS는 단지 곡을 쓰고 노래하는 뮤지션을 넘어 세계 청년문화의 뉴노멀이 됐고, K-팝은 현상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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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심야영업 제한 지면기사
해방 뒤 시작된 야간통행금지는 1982년 초까지 이어졌다. 통금 시간대는 세상이 조용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집 밖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후 11시부터 12시 사이, 서울은 귀가 전쟁이 극심했다. 부처님 오신 날과 성탄 이브, 12월 31일은 예외였다. 이런 날, 명동·종로통은 자유를 찾아 나선 청춘들로 들끓었다.밤 12시 사이렌이 울린 뒤 거리에 남은 시민은 경찰서에 구금됐다, 오전 4시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학원도 교습 시간을 줄여 야간 통금에 맞추었다. 당시 김포공항에 착륙하지 못한 국제선 비행기는 일본이나 홍콩, 타이완 등지로 회항해야 했다. 먼 옛날 얘기가 아니다.통금을 해제한 건 전두환 군사정부 초기 시절이다. 안보와 사회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한 조치를 군사정부가 끊어냈다. 대민(對民) 유화책이다. 국민 생활은 확 달라졌다. 술집과 식당의 심야 영업이 일반화됐다. 젊은이들은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의 밤을 보냈다.1990년, 노태우 정부는 유흥업소의 영업을 자정까지 제한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다. 시간 제한이 없는 길거리 포장마차가 애주가들의 발길을 잡았다. 노래방에서 문을 잠그고 망을 보면서 영업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탈·불법의 온상이 된 심야영업 제한은 95년 자율화됐고, 99년 폐기됐다.수도권에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음식점 영업이 밤 9시까지 제한됐다. 다음날 오전 5시까지는 포장·배달만 가능하다. 배달주점, 호프집, 치킨집, 분식점, 패스트푸드점, 빵집 등이 같은 지침을 적용받는다. 헬스장, 골프연습장, 당구장, 볼링장, 수영장, 무도장, 탁구장 등 실내 체육시설은 죄다 문을 닫았다.자영업자들의 한숨이 커진다. 빵집은 되고 카페는 안되는 이유가 뭐냐는 불만도 있다. 힘들다 보니 짜증이 나고, 불만이 폭발하면서 엉뚱한 사고가 잇따른다. 마스크 때문에 지하철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웃픈' 나라가 됐다.'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세상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9시 영업제한'은 낯설고 어색하다. 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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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시무7조 신드롬 지면기사
지난 달 한 국내 신문이 다이쉬(戴旭) 중국 국방대학 전략연구소 교수의 강연, '중국이 미국에 대해 생각 못한 네 가지와 10대 새로운 인식'을 소개했다. 미국의 경제패권을 넘보는 중국을 향한 트럼프의 경제보복이 상상을 초월하자, 중국의 대미(對美)인식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했는데 우리 입장에서도 경청할 만하다는 취지였다.비판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원한이 이렇게 깊고, (보복) 수법이 이처럼 악독할 줄 몰랐는데, 중국을 지지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고,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여야가 하나가 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오판했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을 새롭게 볼 10대 인식을 제안하는데 그 중 세 가지를 연결하니 '미국은 종이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 잡아먹는 진짜 호랑이라는 점을 깨닫고', '세계의 큰 형님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미국과 끝까지 붙어보겠다고 순진하게 생각해선 안된다'이다. 트럼프의 강공에 허둥지둥 하는 중국 지도부를 향한 '대미정책 시무 10조'쯤으로 볼 수 있다.지난주 '진인(塵人) 조은산'이 폐하(문재인 대통령)께 바친 '시무7조'가 시중의 화제였다. 정권을 향한 비판과 조언이 직설과 은유, 풍자와 해학으로 버무려져 술술 읽힌다. 정권은 뼈아팠겠지만, 대중들은 앞다퉈 돌려 읽으며 열광했다. 청와대는 27일 뒤늦게 청원 게시판에 공개했는데, 나흘만인 30일 오후 청원동참자가 40만 명에 육박한다.야당은 '폐하의 답변'을 궁금해 하지만, 여당의 입은 셧다운을 유지 중이다. 여당은 시무7조에 대해 언급하고 대응할수록, 진인 말씀의 영향력과 파장만 키울 것을 우려하는 모양이다. 무시하고 외면하면 먼지(塵)는 가라앉고 '조은산'이라는 사람(人)은 잊힐 것이다. 시무7조에 대한 폐하의 하교(下敎)는 당금 정치의 수준을 보여주는 가늠자일테지만, 하교가 내려올지 확신하기 힘들다.'시무(時務) 상소'는 왕이 반응해야 의미 있다. 그러려면 진지해야 하고 권력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 다이쉬의 강연이 의미 있었던 건, 중국 군부내 대표적인 매파이자 주목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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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예비 퍼스트레이디'들의 전쟁 지면기사
"코로나로 아파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가 남편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찬조연설에서 한 말이다. 지난 25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장에서다.그는 "여러분이 불안과 무력감을 느끼겠지만,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알아줬으면 한다"고도 했다. 미국 언론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코로나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과 위로가 처음 나왔다"고 평가했다. 앞선 연설에서 남편과 두 아들, 딸 티파니는 코로나를 무시하거나 자화자찬으로 일관했다.그녀가 입은 군복 스타일의 카키색 의상도 주목받는다. '패션모델 출신인데 너무 평범한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반응이 나쁘지 않다. 단아함과 절제, 결연한 의지를 담은 '패션 메시지'란 거다.앞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 부인 질 바이든의 지지 연설도 호응을 받았다. 전당대회 마지막 연사로 등장해 코로나 19로 힘든 시기를 겪는 국민을 위로하고 질곡의 가정사를 극복한 면모를 부각했다. 그는 지난 18일 델라웨어주 브랜디와인 고등학교의 텅 빈 교실에서 연설했다. 1990년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곳이다. 그는 "새로운 공책의 종이나 왁스칠이 된 복도의 냄새는 여기 없다. 학생들은 네모난 컴퓨터 스크린에 갇혔고 교실은 어둡기만 하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 문을 닫게 된 현실을 언급한 것이다. 바이든 후보는 질 여사와 함께 화면에 등장해 활짝 웃었다. 미 언론은 대선 도전 삼수에 나선 바이든이 든든한 조력자를 얻었다고 했다.미 대선은 후보뿐 아니라 '예비 퍼스트레이디'들의 경쟁도 관심거리다.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 부인 낸시 레이건은 현모양처 이미지로 사랑을 받았다. 힐러리 클린턴은 뛰어난 명석함과 뛰어난 언변으로 남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미셸 오바마는 털털한 언행으로 친근한 이웃 아줌마가 됐다.국내 정치에서 대선 후보 부인의 찬조연설은 여전히 낯설다. 선거 기간 남편을 따라다니거나 전통시장, 불우이웃 시설을 찾는 게 일상화됐다.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