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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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비누 예찬 지면기사
인류가 비누를 사용한 역사는 길다. 기원전 2800년경부터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1세기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는 37권으로 이뤄진 백과사전 '자연사'에서 '비누는 갈리아인들이 만들었다. 비누는 동물의 기름과 재로 만든다. 특히 염소의 기름과 너도밤나무의 재가 비누재료로 가장 좋다'고 적었다. 그 후 시대별, 국가별로 비누와 유사한 제품이 꾸준히 만들어져 주로 상류층들이 사용했다.비누가 대중화된 데는 1790년 프랑스 화학자 르블랑이 소다 제조법을 발명하고, 1811년 슈브렐의 '유지(油脂)의 화학적 조성을 위한 연구' 덕이 컸다. 이후 인간은 몸을 규칙적으로 씻고, 세탁 가능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인들의 골칫거리였던 '옴'의 퇴치에 비누는 큰 공을 세웠다. 1853년 영국 정부가 비누에 부과된 세금을 철폐한 후로 가격이 하락하고 사용자가 늘면서 옴 환자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독일의 화학자인 리비히의 "한 국가가 소비하는 비누의 양은 그 문명의 척도"라는 발언이 이때 나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 비누는 1956년 애경 유지에서 나온 '미향'이었다. '미향'은 1958년 월 100만개 이상 팔리는 등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손에는 황색포도상구균과 살모넬라균을 비롯해 약 150종류의 세균이 득실거린다. 이를 그대로 두면 세균 수는 시간별로 급속히 늘어나 3시간이 지나면 26만 개체가 된다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악수나 엘리베이터 버튼, 문 손잡이 등을 통해 쉽게 옮겨지는 이유다. 이를 간단하게 차단해 주는 게 비누다. 세정제보다 비누로 손을 자주 씻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건 이미 수많은 연구에서도 입증됐다. 비누 속의 '카르복시기'와 '탄화수소 사슬' 성분이 바이러스를 제거한다는 것이다.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2주 더 연장했다. 상황이 나빠져서다. 그렇다고 손 씻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손을 씻을 때 반드시 비누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늘 옆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누도 그중 하나다. 세면대 옆에 늘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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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주식 대박의 꿈 지면기사
네덜란드 튤립 투기, 프랑스 미시시피 회사와 영국의 남해회사 투기 투자를 초기 자본주의 3대 버블로 꼽는다. 근대과학의 아버지 아이작 뉴턴은 1720년 남해회사 주식을 샀다가 되팔아 7천 파운드를 벌었다. 하지만 그가 주식을 매도한 후에도 주가는 더 올랐다. 땅을 치고 후회한 뉴턴은 재빨리 다시 사들였지만, 불행히도 그때가 상투였다. 결국, 2만 파운드를 잃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 미적분법을 창시한 이 수학의 천재에게 주가의 방향을 묻자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주식투자에서 대박을 노렸다가 쪽박을 찬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상대성원리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21년 노벨상 상금 2만8천 달러를 주식에 투자했다가 대공황이 불어닥치면서 원금을 거의 까먹었다.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도 재산 대부분을 주식으로 날렸다. 그래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트웨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10월은 주식투자에 특히 위험한 달이다. 그다음 위험한 달로는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다." 주식으로 돈 벌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이를 이용해 삼성전자 등 우량주를 집중 매수해 '동학 개미운동' 바람을 일으킨 우리나라 개인 투자가들의 매매 패턴이 바뀌고 있어 이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우량주들이 주춤한 사이 바이오 주, 원유선물 등이 급등하자 이를 추격 매수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주식 매수 대기자금은 44조원에 이른다. 정석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 '동학 개미운동'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주가의 흐름은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주식투자의 적정 기대수익률을 '금리+α'나 '채권 수익률의 2배'로 본다. 현재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연 1%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연 4∼5%가량이면 무난한 수준이다. 문제는 100억원 이상의 슈퍼 투자가의 기대 수익률이 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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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걱정 갈아엎어 주세요 지면기사
오래전 인천에서 한 고등학교 교가가 문제가 된 적 있다. 학교에서 자주 교가를 틀었나 본데 인근 주민들이 시끄럽다며 학교 측과 마찰을 빚기 일쑤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교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사까지 완벽히 꿰차게 됐다고 하니 노래의 힘은 참 대단한 것 같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교가가 이 정도이니 귀에 쏙쏙 꽂히도록 기획된 선거 로고송의 중독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오늘(2일)부터 4·15 총선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다. 거리 곳곳에서 갖가지 선거 로고송이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질 판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침체된 분위기지만 선거마케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로고송을 정치권이 포기할 리 만무하다. 로고송이 본격적으로 선거운동 현장에 등장한 건 1995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거리에서 확성기 사용이 허용되면서부터다. 그해 6·27 지방선거에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가 울려 퍼지며 로고송 시대의 막이 올랐다.'비틀스로 귀가 뚫렸다'는 김훈 작가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을 때 더 이상 대중음악의 흐름을 따라갈 자신이 없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댄스음악이 대중음악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중장년 유권자는 따라 부를 엄두조차 나지 않는 '난 알아요'가 선거 로고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96년 총선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의 로고송 '넌 그렇게 살지마'와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난 알아요'가 맞붙은 것이다. 선거 로고송에서도 여야 격돌현상이 벌어진 게 이때부터 아닌가 싶다.대통령선거에서 최고의 히트곡으로는 'DJ DOC'의 'DOC와 춤을'을 개사한 'DJ와 꿈을'이 꼽힌다.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는 로고송에 맞춰 관광버스춤까지 선보이며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다. 그가 당선되자 '김대중의 승리가 아니라 로고송의 승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번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걱정말아요 그대'(전인권)를, 미래통합당은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로 시작하는 '사랑의 재개발'(유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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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하얀 목련 지면기사
'일어나'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 히트곡이 쏟아진, 1994년 발매한 김광석의 4집 앨범은 명반으로 꼽힌다. 이들 노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앨범에 실린 곡 중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독 아끼는 곡이 있으니 다름 아닌 '회귀'다. 처연한 모습으로 피어난 목련을 통해 허무한 인간의 삶을 성찰한 곡이다. 김지하의 시에 황난주가 곡을 붙였다.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흙으로 가네/ 검은 등걸 속/ 애틋한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저 꽃들은 가네.'목련에 관한 노래는 셀 수 없이 많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도 그중 하나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거리엔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30대 초반 암 판정을 받은 양희은은 친구가 보낸 편지를 읽고, 때마침 창밖에 핀 목련을 보며 노래 가사를 적어 내려갔다. 여기에 김희갑이 곡을 붙였다. 봄날의 찬연한 슬픔과 삶의 쓸쓸함이 담겨있는 두말이 필요없는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목련(木蓮)은 말 그대로 '나무에 핀 연꽃'이다. 순백의 탐스러운 자태는 우아하고 귀족적이다. 아름답지 않은 봄꽃이 어디 있으랴마는 목련의 고고한 기품은 봄의 여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고귀함, 숭고한 정신, 우애 등 목련을 따라다니는 꽃말도 많다. 목련은 꽃송이가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피어 예로부터 북향화(北向花)라고 불리며 충절을 상징했다. 그래서인지 목련엔 왠지 처량한 구석이 있다. 절정을 지나 꽃잎을 떨구기 직전의 목련이 가장 슬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코로나19로 정신을 놓은 사이 봄이 벼락처럼 찾아왔다. 주위를 돌아보니 천지가 온통 목련 투성이다. 군무를 추듯 무리를 이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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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김종인'의 종횡무진 지면기사
지난 2016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절박했다. 안철수계가 동거를 거부하고 탈당하는 등 제1야당이던 민주당은 고립무원 상태에 빠졌다. 문 대표는 총선을 지휘해 줄 사령관이 절실했고 김종인에게 그 역할을 읍소했다. 그를 선대위원장으로 모시기 위해 그 스스로 "삼고초려했다"고 고백했고, 비상전권을 위임했다. 김 위원장은 결국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단 1석 차이의 제1당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옥새파동으로 자멸한 새누리당 덕을 톡톡히 봤지만, 이해찬을 공천에서 탈락시킬 정도였던 김 위원장의 강력한 지도력도 큰 몫을 한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4년 전 김 위원장의 행적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2012년 19대 총선과 그해 연말 18대 대선 때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 편에서 맹렬히 선거현장을 누비고 다닌 것이다. 보수의 본산인 새누리당에 '경제민주화'라는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이식시켜 큰 효과를 봤다. 총선은 새누리당의 과반수 승리로, 대선은 박근혜의 당선으로 끝났다.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도 김 위원장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두 사람의 득표율 차이는 3.6%, 미세한 득표율 차이에 김종인이 있었다.김종인이 이번엔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으로 21대 총선에 뛰어들었다. "제 인생의 마지막 노력으로 나라가 가는 방향을 반드시 되돌려 놓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라며 통합당 행을 설명했다. 이번에도 자택까지 찾아온 황교안 당 대표의 삼고초려에 몸을 움직였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복고적 구호를 회자시키며 선거 달인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자·타칭 킹메이커로 불리는 김 위원장은 선거가 끝나면 토사구팽 당하길 반복했다. 최근 출간한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한 내용이 적대적이고 냉소적인 이유일 것이다.코로나19,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인한 꼭두각시 비례정당 난립 등 전례 없는 초대형 변수 속에 치러지는 4·15 총선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갇힌 비대면 선거 캠페인, 50㎝가 넘는 정당투표용지 등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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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닥터 둠(Dr.Doom) 지면기사
누군가는 '퍼펙트 스톰'이 온다 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낙관론이 우세할 때,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올라타서 "곧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몰아치니 어서 이 배를 타시오!"라고 소리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2006년 9월 홀연히 나타나 "미국 경제가 머지않아 주택시장 붕괴와 금융회사 파탄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무시무시한 비관론을 설파한 학자가 있었다.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미국 내 대표적인 증시 비관론자, 누리엘 루비니. 우리에겐 '닥터 둠'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당시엔 낙관론이 넘쳐나던 때라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신출내기 학자의 도발적 발언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2년 뒤인 2008년 9월 그의 말대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는 등 전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넣은 금융위기가 들이닥치면서 그는 일약 스타가 됐다. '위기의 예언자'라는 별명도 그때 얻었다. 2009년 '타임'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후 각종 포럼과 세미나에서 인기 있는 초청 대상이 돼 돈방석에 앉았다.닥터 둠, 그가 돌아왔다. 루비니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경기 침체가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지금 상황은 대공황때보다 훨씬 더 나쁘다. V자나 U자형 회복은 기대하지도 마라. I자형 경제의 급전직하가 닥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장을 날렸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위기는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 세계 경제가 큰 상처를 입으면 단번에 V자 회복은 없으며 몇 년간은 낮은 성장세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는 눈사태와 같아 이를 극복만 하면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처럼 V자형 회복이 가능하다는 낙관론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건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공포에 휩싸인 지금, 루비니의 발언이 극단적 비관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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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의원 꿔주기' 지면기사
2000년 4월 13일 치러진 16대 총선은 재적 의원 273명 중 야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에 4석 모자라는 133석을, 여당인 민주당이 115석, 자민련이 17석을 얻어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됐다. 이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으로 훗날 이때를 회상하며 '정국안정을 희구했지만 나는 늘 뒤뚱거리는 선박의 선장'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예상대로 여소야대로 인한 불안정한 정치지형은 첫해에만 4번의 파행을 부르는 등 국회는 극심한 정쟁 속으로 빠져들었다.이 때문에 16대 국회는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한 '자민련 구하기'가 노골적으로 시도됐다. 그중 하나가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 마침내 2000년 7월 민주당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교섭단체 요건을 원내 의석 20석 이상에서 10석 이상으로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지만, 이만섭 국회의장이 거부해 본회의까지 가지 못했다.그러자 민주당 배기선 의원이 총대를 멨다. 의원 3명이 자민련으로 옮기면 원내교섭단체가 되는 것에 착안, 송석찬 의원과 송영진 의원과 전격 이적한 것이다. 국회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의원 꿔주기'다. 그때만 해도 이 추태가 헌정사상 유례없는 코미디로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리란 걸 아무도 몰랐다. 이뿐이 아니다. 송석찬 의원이 김 대통령에게 "저는 한 마리 연어가 되어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충성편지를 보낸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배기선 의원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튿날 새벽 김대중 대통령이 전화로 '배 동지가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줄은 몰랐소'라며 감사를 표했다"고 말했다.국회 창고 속에 처박혀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줄 알았던 '의원 꿔주기' 망령이 4·15 총선을 앞두고 정치판을 배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투표용지 상 앞 순번을 받기 위해서 비례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으로 현역 의원 7명을 보내기로 하면서 '의원 꿔주기'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국회 사상 처음으로 소속 의원 3명을 만장일치로 제명하는 거친 수법이 사용됐다.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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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독도표 진단키트 지면기사
퓰리처상 수상작인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박사는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란 제목의 논문에서 일본인의 조상에 대한 세 가지 학설을 소개한다. 첫째는 일본 열도의 원주민인 '조몬인'이 점차 현대 일본인으로 진화했다는 설이다. 두 번째 학설은 어마어마한 수의 한국인이 농업기술과 문화, 유전자를 가지고 이주했고, 현대 일본인은 한국인 이민자의 자손이라는 설이다. 마지막 학설은 한국에서부터 이주가 이뤄졌다는 증거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엄청난 규모였다는 견해는 부정한다. 하지만 이후 한국인의 수가 급격히 불어나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두 번째 학설과 맥을 같이한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골격과 두개골 분석결과 등을 토대로 첫 번째 보다는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학설에 더 무게를 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흥미롭긴 하지만 일본이 저지른 과거를 돌이켜 볼 때 별로 수긍하고 싶지 않은 학설이기도 하다. 일본인의 조상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리 만무한 일본이야 오죽할까.다이아몬드 박사도 이를 의식했는지 "한국인과 일본인은 오랜 시간 서로에 대한 적의를 키워왔지만 이러한 반목은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며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는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제언한다.그러나 '반목을 해결할 수 있다'는 다이아몬드 박사의 긍정적 전망은 상당기간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 같다. 일본이 근현대사마저 왜곡하는 마당에 양국이 '고대에 쌓았던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기 때문이다.일본 정부가 결국 24일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억지 주장이 담긴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총 17종의 검정을 승인했다. 수출·입국 규제에 이어 이번에는 교과서로 또 한번 한국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일본의 역사왜곡에 분을 참지 못했는지 한 시민이 독도와 관련한 이색 제안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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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비례대표 지면기사
4·15총선을 앞두고 막장의 진수를 보여주는 비례대표의 전신은 '전국구(全國區)'다. 1963년 6대 총선에서 첫선을 보인 전국구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직능대표성을 선출한다는 취지로 탄생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여당은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정치인과 직능별 지지세력 확보를 위해 전국구를 이용했고, 늘 정치자금이 부족했던 야당은 정치자금 모금창구로 전락시켰다.유신헌법하에 있었던 9, 10대 국회에서 전국구는 유신정우회(유정회)로 바뀐다.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한 유정회 의원은 여당의 입장을 관철하는 거수기 역할로 '원내전위대', '친위대'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11대 국회 때 부활한 전국구는 16대 국회까지 지역구 의석이나 득표율에 따라 의원을 뽑을 때 당선 가능한 앞번호를 받기 위해서 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30억원 내면 당선되고 20억원 내면 떨어진다는 '30당·20락'이란 말도 그때 나왔다. 특권은 누리면서 지역구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천국구(天國區)'라고도 불렸다.17대 총선부터 1인 2표제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돈 공천 논란은 줄었지만, 특정 계파 공천 논란은 오히려 더 커졌다. 여전히 비례대표 본연의 의미 대신 당 대표나 실력자의 측근들이 포진하는 구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번 4·15 총선 비례대표의 확보를 놓고 집권당이 급조한 정당과 손을 잡으며 추악한 전쟁을 벌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신생 정당의 난립도 문제다. 이는 작년 말 민주당이 제1야당의 반대에도 '4+1 협의체'를 앞세워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을 높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을 강행 처리해 가능해졌다. 20대 국회가 만든 최악의 부산물이다. 양당제 폐해를 줄이고 군소정당의 당선자를 늘리겠다고 선거법을 개정했지만 이제 두 거대 정당의 의석수가 더 늘어나는 꼴이 됐다. 이 때문에 4·15 총선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은 생전 처음 보는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망연자실할지도 모른다. 성인 양팔 길이의 투표용지와 당명을 읽는 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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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도쿄올림픽 덮친 팬데믹 지면기사
"스포츠적이고, 기사다운 시합은 인간의 최고의 자질을 깨웁니다. 그것은 또한 평화의 정신 안에서 국가들을 결속시키는 것을 돕습니다. 그것이 올림픽 성화가 죽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아돌프 히틀러의 개최 연설 중 한 대목이다. 겉으로는 스포츠를 통한 국제평화를 강조했지만, 나치정권을 수립한 히틀러는 독일 선전을 위해 최초의 성화봉송, 최초의 TV생방송 등 베를린올림픽을 철저하게 기획했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한 국제평화는 기만이었다. 히틀러는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의 지옥문을 열었다.1896년 아테네올림픽이 개최된 이래 4년 주기로 열리는 올림픽이 취소된 건 1, 2차 세계대전 시기뿐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191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이 취소됐는데,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나치의 세계대전 예고편이 됐다. 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인 1940년 일본 도쿄올림픽은 중일전쟁 개전으로 핀란드 헬싱키로 개최지를 옮겼지만 끝내 취소됐다. 1944년 영국 런던올림픽은 아예 개최를 상상할 수 없었다.하지만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올림픽은 단 한차례 중단 없이 이어졌다. 오히려 개최국, 개최도시의 영광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올림픽 개최가 선진국 통과의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냉전시대에는 동·서 진영의 체제 경쟁으로 인한 정치적 오염이 심각했고, 냉전시대 이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상업성과 개최국의 올림픽 불황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올림픽 개최는 여전히 나라와 민족의 자부심을 상징한다.일본 아베정권이 공들여 준비해 온 제32회 도쿄올림픽 개최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의 세계대전이 한창인 가운데, 올림픽 개최에 대한 부정적인 지구촌 여론 때문이다. 캐나다가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고, IOC도 개최 연기 검토에 들어갔다. 아베 총리도 마지못해 연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베 정권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 후유증을 극복하려, 2013년 개최권을 따낸 이후 수십조원을 쏟아부었다. 일부 종목의 후쿠시마 개최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