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여배우와 엘긴 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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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여배우와 엘긴 마블 지면기사

    바흐 음악만큼 영화에 많이 쓰이는 경우도 드물다. 줄스 다신 감독의 '페드라'도 그중 하나다. 1962년 작. 국내 상영시 제목은 '죽어도 좋아'였다. 앳된 알렉시스 (안소니 퍼킨스 분)가 스포츠카를 몰고 '페드라!' 를 외치며 죽음을 향해 절벽 너머로 질주하는 엔딩은 지금 봐도 가슴이 저민다. 그때 흘러나오는 곡이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다. 영화는 미국과는 달리 유럽과 한국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이유가 있다. 페드라역을 맡은 멜리나 메르쿠리의 농염한 연기 덕분이다. 그리스 출신인 그녀는 다신 감독의 아내이며 그리스 민주화의 영웅이기도 했다. 훗날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문화부 장관도 지냈다.배우로서 전성기였던 1962년 메르쿠리는 런던을 방문했다가 대영박물관에서 '엘긴 마블'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엘긴 마블'은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외벽에 만들어진 수십 개의 사람 모양 조각을 비롯한 200여 점의 그리스 조각물. 영국은 이 조각물들을 1801년부터 1812년 사이 부조 길이의 절반에 해당하는 구간을 통째로 뜯어내 대영박물관에 전시해 왔다.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그 조각물을 런던으로 이송하는 작업을 주도한 사람이 오스만제국 주재 영국 대사 토머스 엘긴이었다.메르쿠리는 장관이 된 후, '엘긴 마블'이 그리스로 돌아오면 전시할 박물관까지 지어놓고 반환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1994년 74세 일기로 눈을 감는다. 다신 감독은 아내를 기리며 '멜리나 메르쿠리 재단'을 설립하고 전 세계에 흩어진 그리스 문화재의 반환운동을 주도했지만, 그 역시 꿈을 이루지 못하고 2008년 세상을 떠났다.'엘긴 마블'을 둘러싸고 그리스와 영국은 오랜 시간 갈등을 빚어왔다. 그리스정부의 반환 요구에 영국 정부와 대영박물관 측은 '엘긴 마블'이 그리스만이 아닌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이며, 대기오염으로 악명높은 아테네에 돌려줄 경우 훼손이 우려된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내세우며 반환을 거부해 왔다. 하지만 영국이 EU(유럽연합

  • [참성단]프레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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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프레임 전쟁 지면기사

    선거는 프레임 전쟁이라고 한다. 프레임이란 '정치·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인 틀'을 말한다. 그 힘이 너무 강력해 보수건, 진보건 프레임 앞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남부의 작은 주 아칸소 주지사를 지낸 '40대 촌뜨기' 빌 클린턴이 조지 H W 부시에게 승리를 거둔 건 경제 프레임 덕이 컸다.클린턴은 구소련 붕괴에 따른 외교적 수혜, 여기에 1차 걸프전 승리로 지지율이 한때 90%까지 치솟았던 부시를 정상적 선거전략으론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 클린턴 진영은 부시의 강점은 무시하고, 약점인 경제 성과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한 줄의 프레임 속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늙은 부시 vs 젊은 클린턴'이란 프레임을 하나 더 추가했다. 스트레이트 한 방, 어퍼컷 한 방에 부시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로 유명한 '프레임 이론'의 창시자 조지 레이코프는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정당의 개별 정책이나 후보의 도덕성이 아닌 프레임에 있다고 주장한다.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 제시된 틀을 반박하려다가는 역으로 해당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레이코프는 미국의 진보 세력이 선거에서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를 프레임의 부재 또는 실패에서 찾았다. 평범한 사람들, 심지어 진보적인 시민들까지도 공화당에 투표하는 이유는 그들이 '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진보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설파할 프레임을 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거에서 이렇게 상대의 프레임에 말려들면 백전백패란 뜻이다.더불어 민주당 강서갑 지역구 공천경쟁이 '조국수호'란 프레임 속에 갇힌 꼴이 됐다. 금태섭 의원이 "총선을 '조국수호'총선으로 치를 수 없다"고 한 게 발단이었다. 여론이 금 의원 쪽으로 흐르는 듯하자 김남국 변호사는 자신의 출마를 '노무현 정신'에 따른 것이라며 '노무현 정신'

  • [참성단]공천 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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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공천 놀음 지면기사

    정치 선진국에선 선거를 코앞에 두고 '공천 물갈이'나 '공천 학살', 심지어 무협지에나 나올법한 '자객 공천'같은 반민주적인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리 권한이 막강한 당 대표라 해도 지구 당원 의사에 반해 마음대로 현역 의원을 잘라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처럼 안정된 민주사회에선 누구든 소속정당의 지역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자연스럽게 의회로 진출하게 되고, 심지어 총리도 할 수 있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도 그랬고 존 메이저도 테리사 메이도 그랬다. 이들은 물갈이 공천으로 정치에 참여한 참신한 인물도 아니고, '영입'으로 입당한 인물도 아니다. 지역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경력을 쌓아 지역 주민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의회에 진출해 총리까지 올랐다.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물갈이'와 '영입'이란 단어가 거부감 없이 쓰이고 있다. 현역의원이 버젓이 있는데도 '전략 공천'이란 핑계로 영입인사를 특전사 낙하산 부대처럼 지역구에 마구 떨어뜨린다. 이러니 지역에서 묵묵히 활동했던 정치 지망생들에겐 기회조차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비민주적이고 후진적인 정치문화가 아닐 수 없다. 말로는 '시스템 공천''상향 공천' 운운하지만, 실제 선거가 임박해서는 모든 규칙은 무너져 뒤죽박죽이다. 이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여야 모두 '물갈이'와 '영입'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이념도 노선도 찾아볼 수가 없다. 지구당과의 협의라든가 지역 정서 같은 것은 아예 무시된다. 국회의원 한 명이라도 더 당선시키기 위한 절박한 전략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지만, 표만 얻을 수 있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는 식이다. 여기에 '험지 출마'라는 말이 덧씌워져 '물갈이 공천'이 자연스러운 용어가 돼버렸다. 종편 등 TV 출연으로 약간의 지명도만 있으면 아무 지역이나 마구잡이로 내려보내는 게 일상화가 됐다.교과서 같은 얘기지만, 정당이 제구실하려면 무엇보다 지역 주민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지금같이 선거가 임박해서 펼치는

  • [참성단]앵테르미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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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앵테르미탕 지면기사

    미당 서정주가 시를 쓰던 시절만 해도 가난은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가난은 더는 시인의 무기가 아니다. 그래도 함민복은 시 '긍정적인 밥'을 통해 시인의 가난을 이렇게 은유적으로 노래했다.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너무 박하다 싶다가도/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국밥이 한 그릇인데/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시집이 한 권 팔리면/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박리다 싶다가도/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몇 해 전 최영미 시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간소득 1천300만원 미만의 무주택자라 생활보호 대상자가 됐다"며 "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비참한 생활고를 밝힌 적이 있다. 50만권이 넘게 팔린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시인의 슬픈 고백은 독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시인만 가난한 게 아니다. 몇몇 스타급 예술가를 빼곤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봉준호 감독도 무명시절 영화 '호텔 선인장' 조연출을 하면서 1년 10개월 동안 650만원의 연출료로 생활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더불어민주당이 가난한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형 앵테르미탕' 를 도입하겠다는 총선 공약을 내놨다. '불규칙적' 이란 뜻의 '앵테르미탕'은 문화예술인의 생계 안정을 위해 프랑스 드골 정부 때부터 시행하고 있는 실업급여제도. 봉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에 얹혀가겠다는 얄팍한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 미안하게도 이 공약이 전혀 가슴에 와닿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미 우리에겐 '최고은 법'이라는 예술인복지법이 있기 때문이다.2011년 1월 33세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은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다면 저희집 문 좀 두드려 달라'는 쪽지를 남긴 채

  • [참성단]'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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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표현의 자유' 지면기사

    2018년 10월 더불어민주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북한군 침투설', '문재인 대통령 건강 이상설' 등 100여건의 유튜브 동영상 삭제를 구글코리아에 요청했다. 구글코리아는 "현재 진행되는 사건에 대한 '진실'은 파악되기가 종종 어렵다. 또한 언제나 옳거나 그르거나의 이분법적이지 않다"며 삭제 요청을 거부했다. 이에 민주당 가짜뉴스 대책 특별위원회 위원장 박광온 의원은 "불량식품이 가게에서 팔리는데 가게 주인이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국 여당의 가짜뉴스 삭제 요구에 구글은 '표현의 자유'로 맞섰다."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볼테르 사상이 아니더라도, '표현의 자유' 없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없다. 중국의 '코로나19 대참사'도 신종 바이러스 출현을 알린 젊은 의사 리원량의 입을 막은데서 비롯됐다. 시진핑의 공산당이 세운 통제와 검열의 장벽 뒤에서 코로나19는 세계로 번지고, 리원량 등 중국 인민 1천700여명이 사망했고, 죽음의 행렬은 진행중이다.그런데 중국도 북한도 아닌 한국에서, 그것도 진보정권의 여당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시비에 걸린 최근 상황은 낯설고 당혹스럽다. 임미리 고대 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민주당만 빼고'가 두고 두고 민주당의 올가미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임 교수와 경향신문을 고발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정당이 됐다. 사과 없이 고발을 취소하면서 임 교수를 '안철수 사람'으로 낙인찍고, 지지자들의 임 교수 신상털기를 방치함으로써 오만한 정당이 됐다. 진보 진영 내부에 '#민주당만 빼고'에 동참하는 '반문'의 세력화가 뚜렷해졌다. 이낙연 선대위원장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임 교수가 수용했지만, 여당과 정권의 상처는 깊다.인종차별이나 아동포르노와 같은 반사회적, 비인간적 영역에선 표현의 자유도 제한받는다. 하지만 권력에 대해서는 무제한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권

  • [참성단]소매업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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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소매업의 종말 지면기사

    지난 11일 미국 델라웨어 주 연방 법원은 운영자금 부족으로 파산을 신청한 '포에버 21' 매각 방안을 최종 승인했다. 지난 9월 파산신청 한 지 5개월 만이다. '포에버 21'은 1984년 무일푼의 장도원·장진숙 부부가 창업해 미 교포들 사이에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던 유명 의류회사다. 한때 세계 57개국에 80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질 정도로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대명사로 자리 잡을 만큼 성장했다. 2015년 매출이 44억 달러(약 5조 2천억 원)로 자라·H&M 등 세계적 브랜드를 누르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회사가 단돈 8천만 달러(1천억 원)에 넘어간 것이다.'포에버 21'의 실패원인은 방만한 경영, 유사업체와의 경쟁 등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신규업체의 온라인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내에서 온라인 공세에 밀려 폐업한 오프라인 매장은 한둘이 아니다. 125년 전통의 미국 백화점 시어스, 100년 역사의 바니스 뉴욕도 영업을 중단했다. 미국 최대 완구점인 토이저러스, 저가 신발 유통업체 페이리스 슈소스, 아동의류 전문점 짐보리 등도 폐업에 동참했다. 이를 두고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소매업의 종말(retail apocalypse)'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공교롭게도 '포에버 21'이 파산신청을 냈던 지난해 9월 중소기업연구원이 '온라인 거래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를 낸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보고서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도 급변하는 유통환경을 고려해 온라인 쇼핑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유통업의 흐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소매업의 종말'이라고 규정하고 '온라인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유통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경영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그 경고가 현실이 됐다. 롯데쇼핑이 2~3년 이내에 백화점, 마트, 슈퍼 등 700여 곳의 오프라인 매장 중 200여 곳을 정리한다고 발표했다. 모든 게

  • [참성단]연주가와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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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연주가와 악기 지면기사

    50세에 요절한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병균을 옮거나, 손가락이 다칠까 봐 아무하고나 악수를 하지 않았다. 피아노 선택도 까다로웠다. '굴드의 피아노'의 저자 케이티 헤프너는 '굴드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빛을 쏟아내는, 맑고 투명한 소리를 찾아 헤맸다'고 적었다. 그리고 마침내 스타인웨이앤드선스의 'CD 318'을 만났다. 굴드는 이 피아노를 자신의 손에 익숙하게 길들이는 데 7년이 걸렸다.폴란드 출신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피아노 들고 다니는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다. 해외 공연마다 자신의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물론, 전속 조율사까지 대동하는 '지구 최강의 까다로운 연주자'로 통한다. 2006년 미국 카네기홀 연주를 위해 뉴욕 JFK공항에 입국하려다 피아노를 폭발물로 의심한 세관의 착각으로 피아노가 심하게 부서지는 '사고'를 겪은 후, 피아노를 직접 분해한 뒤 현지에서 조립하고 조율까지 하며 사용했다. 이 모두 무결점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이고 싶은 연주가들의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연주가가 그런 건 아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1960년대를 풍미했던 '현대의 리스트'라 불리던 리히테르는 달랐다. 71세였던 1986년 그는 홀로 자동차를 몰고 당시 레닌그라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역사적인 대륙 횡단 연주회를 가졌다. 작은 도시, 시골 마을도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낡고 조율이 덜 된 피아노에서 감동의 선율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연주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그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자타가 공인하는 21세기 최고의 바흐 연주가인 피아니스트 안젤라 휴이트가 레코딩할 때 늘 사용하던 '파치올리 피아노'가 운반 과정에서 실수로 떨어뜨려 완전히 파손돼 그녀가 깊은 슬픔에 빠졌다는 소식이 요즘 클래식계의 화제다. 이탈리아 명가 파치올리가 제작한 F278로 페달이 네 개나 달린 세상에 단 한대 밖에 없는 피아노다. 악기는 연주가에게 육체의 연장이다. 좋은 악기에서는 좋은 소리가

  • [참성단]'짜파구리'와 '독선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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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짜파구리'와 '독선 정치' 지면기사

    아카데미를 강타한 '봉준호'와 '기생충'의 여진이 수많은 에피소드를 낳고 있다. '짜파구리' 열풍도 그 중 하나인데 예사롭지 않다.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는 한우 채끝살을 토핑한 초호화 간식이다. 한 네티즌이 유행시킨 서민형 짜파구리에 한우를 얹어 양극화의 상징으로 활용한 '봉테일'의 연출은 감탄스럽다. 전세계 기생충 관객들이 짜파구리 레시피에 열광하는 것도, 영화의 주제와 여운을 미각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아닐까 싶다.짜파게티와 너구리 제조사인 농심은 신이 났다. 유튜브 채널에 11개 언어로 짜파구리 레시피 영상을 올려놓았단다. 지난해 국내에 이어 올해 국제적인 기생충 특수를 공짜로 누리니 봉 감독에게 절이라도 할 판이다. 그런데 짜파구리가 다양한 장르를 융합해 스스로 장르가 된 봉준호를 설명하는 레시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블랙코미디와 스릴러를 절묘하게 섞은 봉 감독의 기생충은 짜파게티와 너구리가 만나 새로운 맛을 창조한 짜파구리를 닮았다.짜파구리는 비빔밥처럼 무엇이든 섞고 보는 한국인의 융복합 유전자를 보여준다. 이어령은 "날것도 익힌 것도 아닌 그 중간 항(項), 자연과 문명을 서로 조합하려는 시스템 속에서 음식을 만들어 낸 것이 비빔밥"이라며 비빔밥을 '맛의 교향곡'이라고 했다. 유전자 덕분일까. 지금도 우리는 열심히 음식을 섞어 새로운 음식을 탄생시키고 있다. 레토르트 음식을 조합한 편의점 레시피가 매일 업데이트 되고, '전치찌개'는 명절 뒤 먹어야 할 메뉴가 됐다. 모든 음식을 받아들이는 김치의 수용성, 모든 식재료를 조화시키는 쌈채소의 융합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없이 변주되고 있다.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봉준호 장르와 짜파구리 문화에 세계인들이 열광하지만, 조화와 상생의 유전자가 딱 문화분야에서만 작동하는 점은 아쉽다. 국민들은 빈부의 양극화보다 심각한 정치의 양극화에 매일 절망한다. 이어령은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독재는 힘으로 쓰러트릴 수 있지만 독선은 의식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독선이 독재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짜파구리와 비

  • [참성단]오스카는 왜 스콜세지를 외면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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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오스카는 왜 스콜세지를 외면했나 지면기사

    잔치는 끝났다. 불은 꺼지고 사람들은 뿔뿔이 집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무려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 맨'은 왜 단 한 개의 오스카도 받지 못했을까. '택시 드라이버' '비열한 거리' 등 영화사에 길이 빛날 명작의 감독이자 뉴욕대학 영화학과 교수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마틴. 하지만 제92회 아카데미는 그를 외면했다. 그나마 위안을 찾는다면 감독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수상소감 중 "마틴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 공부를 했다"는 헌사, 그로인한 기립박수 정도였을 것이다.'기생충'의 기세에 눌리고 넷플릭스 영화라는 탓도 있지만, 굳이 이유 하나를 더 꼽는다면, 지난해 '마블영화'에 대해 쏟아낸 비판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에스콰이어지'와의 인터뷰에서 "마블영화는 테마파크에 가깝다.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적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는 영화(cinema)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한술 더 떠 뉴욕타임스에 '마틴 스콜세지: 나는 마블 영화가 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왜 그랬는지 설명해주겠다'는 기고문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나갔다'는 느낌이다.물론 마틴의 발언에 동조하는 감독들도 등장했다. 론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멍청이 같다. 마블영화에서 사람들은 웃긴 슈트를 입고 뛰어다닌다"고 말했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도 "슈퍼히어로 영화는 문화적 학살"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지적은 더 날카로웠다. "슈퍼 히어로 영화는 서부극 장르의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서부극 장르가 죽은 시대를 살고 있다. 서부극이 쇠락의 길을 걸었듯이 슈퍼 히어로 영화도 서부극과 같은 방식으로 사라질 것이다."하지만 할리우드의 대세는 마블이라고 생각하는 팬들은 발끈했다. 이를 반영하듯 '버라이어티'지는 '아카데미 위원회의 젊은 회원들에게 반발을 살 것'이란 전망기사를 내놓았다. 이들이 마틴의 '아이리시 맨'에 우호적일 리 없으며 수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 [참성단]'봉준호'와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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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봉준호'와 '기생충' 지면기사

    "저는 그냥 12살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 먹었던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습니다. 이 트로피를 이렇게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2019년 5월 16일(한국시간), 봉준호가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남긴 소감이다. 국내언론은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릴 쾌거로 대서특필했다. 당시만 해도 황금종려상은 그저 기생충이 만들어 낼 기적의 서막에 불과했음을 아무도 몰랐다. 어제 열린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봉준호와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4개부문을 석권하자 전세계 언론이 흥분했다. 뉴욕타임즈는 "한 편의 영화를 넘어선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제목 컷 하나로 기생충의 기적을 완성했다.하지만 봉준호에게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한국 영화관객들은 기생충의 기적이, 준비된 기적임을 안다. 그가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쏟는 피와 땀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의 그를 만든 '살인의 추억'은 경인일보 자료실에서 출발했다. 그는 "범인이 작품을 볼 것을 염두"에 두고 사건 당시 경인일보 보도를 샅샅이 살펴봤다. 이춘재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 암흑 같은 터널을 통해 세상에 나왔을 때, 봉준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봉준호의 어록도 그의 역량과 내공을 증명한다.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 그 언어는 영화다." 골든글로브 수상소감은 영화철학의 깊이를 보여줬다. "오스카상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그저 로컬일 뿐"이라는 냉소로 아카데미의 폐쇄성과 제3세계 영화인의 자존심을 동시에 보여줬다. 마틴 스코세이지에 바친 헌사에선 품격이,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을 '인셉션'에 비유한데서는 재치와 유머가 넘친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이 국제영화상으로 명칭이 바뀐 뒤 첫 수상자로서 "오스카가 추구하는 방향을 보여주었다"는 수상 소감은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세계 언론이 봉준호 어록을 재생하고, 할리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