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분노의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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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분노의 포도 지면기사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는 대공황의 후폭풍에 시달리는 193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에 사는 농부 조드 일가가 하루 아침에 비참한 이주 노동자로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참혹했던 당시 미국의 현실을 그려낸 작품이다. 대공황 이후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알알이 맺힌 분노가 얼마나 컸던지, 소설은 출간 즉시 43만권이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듬해인 1940년 존 포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다. 일자리를 찾다 지친 헨리 폰다의 분노 표정 연기가 얼마나 처연했던지 지금도 중장년층의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있다.이 작품에서 포도는 민중의 고통과 분노를 의미한다. 스타인벡이 분노를 포도에 비유한 것은 처음엔 작은 알갱이로 시작해 시간이 흐르면서 커다란 포도송이가 되듯, 작아 보이는 개개인의 분노도 함께 모이면 큰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는 출판 초기 '계층 간의 반감을 조장해 폭동을 선동하는 공산주의 소설'이란 소릴 들으며 금서로 지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분노의 포도'가 절망으로만 읽히는 것은 아니다.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뒤늦은 자각과 연대야말로 황석영의 소설 '객지'의 마지막처럼 그것은 '희망'과 다름 없다.코로나19 사태로 국민들이 '일상이 정지했다'고 느끼고, '분노'가 매우 증가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2월 25~28일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4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일상이 절반 이상 정지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59.8%, 코로나19 뉴스를 접할 때 떠오르는 감정으로는 '불안' (48.8%), '분노' (21.6%)를 꼽은 비율이 높았다. 이는 1월의 1차 조사 때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국민의 분노가 작은 알갱이에서 시작해 점점 커다란 포도송이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스크 수급 대책 하나 제대로 수립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무능으로 국민의 분노가 폭발 직전에 놓여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판매처마다

  • [참성단]옥중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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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옥중서신 지면기사

    감옥은 끔찍한 유배의 공간이지만, 사람에 따라 자신의 철학을 피력하고 완성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역사에 남을 수많은 저작이 감옥에서 쓰였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에게 감옥은 창작의 공간이었다. 무솔리니 정권이 그에게 20년이란 장기형을 선고하며 "우리는 이 자의 두뇌를 작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지만, 수형생활 10년째를 맞은 1937년 4월 숨을 거둘 때까지 그는 주옥같은 문체로 '감옥에서 보낸 편지'와 3천쪽에 이르는 '옥중수고'를 썼고 이는 20세기 위대한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인도의 독립 영웅이자 초대 총리 네루는 감옥에서 13살 된 외동딸 인디라 간디의 생일 선물로 장문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3년간 보낸 196통의 편지는 '세계사 편력'이란 이름으로 출간돼 지금도 읽히고 있다. 독일의 행동하는 신학자이자 목사인 본 회퍼가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했다가 처형될 때까지 2년간 감옥에서 쓴 편지가 훗날 '옥중서신'으로 출간됐다. 나치의 지독한 검열로 글쓰기가 어렵자 은유나 추상적 표현이 편지를 가득 채웠다. "미친 운전자(히틀러)가 인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그 미친 운전자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이다.""감옥에 오지 않았다면, 수많은 진리를 모른 채 죽었을 것"이라고 토로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 갇혀있는 동안 가족에게 29통의 편지를 보냈다. 이를 묶은 단행본 '김대중의 옥중서신'은 정치인이 아닌, '인간 김대중'의 모습을 부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고 신영복도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생활 중 자신에 대한 성찰과 사유를 담은 편지를 출옥 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제목으로 출간, 큰 인기를 끌었다.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이 전격 공개됐다. 3년여 옥중생활 중 보낸 첫 편지이자 총선을 40여 일 앞둔 상황이라 국민적 파장이 크다. 직접 지칭하지 않았지만, 거

  • [참성단]'중성자탄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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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중성자탄 잭' 지면기사

    '철의 경영인'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이 2일 신부전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그는 1981년부터 2001년까지 제너럴 일렉트릭(GE)의 CEO 재임기간 시장가치 120억달러에 불과했던 GE를 4천500억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키운 인물로 평가된다. 엄격한 품질관리시스템인 식스 시그마(6-Sigma)와 워크아웃, 변화 가속화 운동, 벽 없는 조직, 세계화, e비즈니스 등의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혁신 경영기법을 창안해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잭 웰치가 '전 세계 CEO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기업가'인 이유다.잭 웰치는 1935년 매사추세츠주 피바디에서 태어났다. 심하게 말을 더듬어 어린 시절 친구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놀림을 받았지만, 그를 늘 격려한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 네가 말을 더듬는 것은 머리회전이 너무 빨라서 혀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뿐이야"라며 웰치에게 자신감을 북돋워 주었다. 그는 1960년 일리노이주립대학교를 졸업한 그해 GE에 입사했다. 여러 사업본부를 거치며 맡은 조직마다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경영방식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고속 승진했다. 1973년 기획전략실 실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GE그룹 경영에 참여했고 마침내 1981년 당시 만 45세의 나이로 100년 GE 역사상 최연소 CEO에 임명됐다.스티브 잡스가 21세기 경영인이라면 20세기는 단연 잭 웰치의 시대다. 웰치는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를 늘 입에 달고 다녔다. GE 경영상태가 양호했음에도 그는 다가올 시장의 변화를 예견하고 한발 빠르게 개혁을 단행했다. 세계 1·2위가 될 수 없는 사업은 모두 매각하거나 문을 닫았다. GE 내 170개 사업부 중 110개가 사라졌다. 사업부 폐쇄에 뒤따르는 것은 당연히 인원감축. 그는 이때 10만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이다.터지면 건물은 남고 인명만 살상되는 가공할 만한 '중성자탄'이란 별명을 웰치는 무척 싫어했다. 세계 여러 강의와 수많은 저서에서 당시의

  • [참성단]대통령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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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대통령 시계 지면기사

    대통령 기념 손목시계가 첫선을 보인 건 1969년 박정희 정권 때였다. 우리 기술로 개발에 성공한 전자시계를 알린다는 게 제작 이유였다. 박 대통령은 이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과 청와대에 초청된 새마을 지도자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봉황 휘장과 대통령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시계는 당시엔 신분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손목시계가 그리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시계를 구하기 위해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고 한다.김영삼 전 대통령 시계는 선거 때부터 뿌려져 1992년 대선 때 금권선거 논란까지 불렀다. 앞면에 이름을, 뒷면엔 '대도무문(大道無門)'을 모두 한자로 새긴 시계는 '영삼시계'로도 불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에는 3종류의 시계가 제작됐다. 대통령 시계와 별도로 민간업체가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해 2종류를 제작했다. 진품을 구하기가 어렵자 일부 업자들이 짝퉁 시계를 만들어 유통하다 경찰에 적발된 적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각형, 원형 두가지 손목시계를 제작해 청와대 방문자를 위한 기념품으로,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 상품으로 주었다. 시계 뒷면엔 '원칙과 신뢰, 새로운 대한민국'이란 문구를 새겨넣었다.박근혜 전 대통령 시계는 임기 초반에 대량 제작되는 역대 정권과는 달리 워낙 적은 수만 제작돼 구하기가 어려웠다. 시계 제작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박 전 대통령이 제작 개수, 비용 등을 직접 결재했기 때문이다. 당시 새누리당 관계자들이나 대통령 핵심지지 그룹 인사들도 시계를 받지 못했다. 시계 인심이 가장 박했던 대통령이란 소리를 듣는 이유다. 이렇게 역대 대통령 시계는 가격과 관계없이 손에 차고 있는 것만으로도 '권력' 취급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짜가 만들어지고, 사기행각에 동원돼 사회적 물의를 빚는 경우도 있었다.코로나 19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자청했던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이 대국민 기자 회견에서 '박근혜 시계'를 차고 나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기자회견을 본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당시 금장시계를 만들지 않았다며

  • [참성단]'조국백서'와 '코로나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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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조국백서'와 '코로나백서' 지면기사

    영국 정부가 의회에 제출하는 정부보고서의 표지는 흰색이다. 정부보고서를 의미하는 백서(白書)의 유래다. 대부분의 국가가 국방백서, 외교백서, 경제백서, 산업통상백서를 정기적으로 발표한다. 아무래도 자국 중심적이고 정권의 국정홍보 기조를 벗어나기 힘들다. 북한 대남선전매체는 우리의 '2019 외교백서'에 대해 "미꾸라지국 먹고 용트림하는 격의 치적 자랑"이라고 비난했다. 반대로 우리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방위백서에 진저리를 친다.해마다 국제기구, 각국 정부, 공공기관, 시민사회단체 등이 홍수처럼 백서를 쏟아낸다. 각종 환경 분야 백서는 인류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경고등을 켠 지 오래다. 백서는 이처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철저한 분석과 집단지성의 대안이 담길 때 의미를 갖는다. 일본과학기술진흥기구(JST)가 2005년 3월부터 무료로 공개하는 '실패 지식 데이터베이스'는 자국 내 모든 백서뿐 아니라 대구 지하철 화재 등 한국의 주요 사건 관련 보고서도 수록돼 있다. 실패의 공유로 더 큰 낭패를 막자는 지혜의 소산이다. 그런데 공식 보고서라는 백서의 표면적 공신력을 특별한 목적에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부는 대형 사건·사고가 날 때마다 백서 발간을 만병통치약으로 내세운다. 지난해 정부와 지자체는 '산불 백서'를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야당인 당시 자유한국당은 '文 정부 불안백서'로 맞불을 놓았다.최근엔 진보진영 일부 인사들의 '조국백서' 추진이 화제가 됐다. 순식간에 모인 3억원의 백서발간 후원금에 대한 한 진보 문인은 '조국 팔이'라고 비난했고, 여론조사기관 임원의 필진 참여도 논란이 됐다. 하지만 가장 상식적인 문제 제기는 재판도 안 끝난 사안에 대해 '백서'가 가능하냐는 대목과 정치적 편향에 대한 우려다.하지만 반드시 남겨야 할 백서는 따로 있다. '2020 코로나19 백서'다. 2015년 질병관리본부가 발간한 '메르스 백서'가 무용지물이 된 대감염 사태에 속수무책인 현실은 차후에 절대 반복해선 안될 일이다. 2일 신천지교회 이만희

  • [참성단]무색해진 '여권(旅券)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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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무색해진 '여권(旅券)지수' 지면기사

    여권은 외국을 여행하는 국민에게 그 나라 정부가 발급하는 국제신분증이다. 외국에 나갔을 때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여권의 권위는 사전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 수가 몇 개냐에 따라 결정된다. 영국 컨설팅그룹 헨리앤드파트너스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최신 여행 정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기마다 '헨리 여권지수' 순위를 발표한다. 사전 비자 없이 방문 가능한 외국 국가 수에 가장 큰 점수를 주고, 국가의 신뢰도, 개인 자유 수준 등을 합산해 순위를 결정한다. 두 달 전에 발표된 지난 4분기 세계 199개국의 여권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89개국으로 독일과 함께 공동 3위에 올랐다. 1위는 일본(191개국), 2위는 싱가포르(190개국)였다.여권지수만 놓고 볼 때, 우리는 세계 톱 클래스 국가다. 1989년 1월 1일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시작된 걸 고려하면 30년 짧은 시간에 대단한 일을 해낸 셈이다. 이 모두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나라 위상도 높아진 덕분이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무사증입국 국가는 171개국. 자랑이라고 하기엔 쑥스럽지만, 여권밀매업자들에게 가장 비싸게 거래되며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게 한국 여권이다. 누가 뭐래도 여권은 국력의 척도다. 하지만 알다가도 모르는 게 세상일이다. 그제 인천에서 출발한 하노이행 아시아나 항공기가 이륙한 지 40분 만에 인천공항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벌어졌다.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베트남 당국이 29일 0시부터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을 임시 불허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조치는 한국인에게 15일간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던 2004년 7월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박항서'를 떠올리면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정상국가다.코로나 19 확진자가 확산하면서 한국인의 입국 금지·제한 국가가 79개국으로 늘어났다. 외교부가 각국에 자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확진자 증가에 따라 매일 3~5개국씩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 여권으로 비자 없이 무사 통과했던 나라들이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

  • [참성단]설화(舌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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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설화(舌禍) 지면기사

    말은 입속에 감춘 칼과 같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은 칼이 되어 상대방의 마음을 벤다. 그래서 말로 받은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다. 손을 떠난 화살은 다시 잡을 수 없듯, 한 번 뱉어낸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말을 정치인들이 국민을 상대로 할 경우 상황이 복잡해진다. 아무리 실언이어도 정치적으로 해석되면 순식간에 '설화'가 되어 정치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판에 설화로 상처 입은 정치인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설화'는 '혀를 잘못 놀려 입는 화'다. 말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게 설화는 늘 따라다닌다.2002년 스승의 날에 서울의 한 여고를 찾은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인사말 도중에 "제게도 여러분 같은 빠순이가 많아요"라고 했다가 혼쭐이 났다. '오빠 부대'를 말한다는 게 술집여자를 뜻하는 '빠순이'로 실언한 것이다. 분위기를 잡으려고 했던 말이 독이 된 셈이다.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총선을 앞두고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된다"고 했다 큰 파문을 불렀다. 이 노인폄하 발언은 정 의장의 정계 은퇴를 요구하는 시위로 이어졌고 결국 그는 모든 직에서 사퇴해야만 했다. 이 말은 정동영의 꼬리표가 됐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입조심'에 대한 속담은 차고 넘친다. 우리 속담에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는 말이 있다. 아랍에도 이와 유사한 '듣고 있으면 이득을 얻는다.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란 속담이 있다. 가능하면 좋은 말만 하고 웬만해선 입을 다물라는 소리다. 독일인들은 '진짜 암탉은 알을 낳고 나서 운다'는 속담을 즐겨 쓴다. 할 일은 제대로 하고 자랑은 나중에 상황을 봐서 하라는 의미다.현실과 동떨어진 여권 인사의 실언이 코로나 사태에 불을 질렀다. '대구·경북 최대 봉쇄조치' 발언으로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대변인직을 사퇴한 데 이어 박광온 최고위원은 "확진자 수가 느는 것은 국가 시스템이 잘 작동

  • [참성단]'정치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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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정치 바이러스' 지면기사

    종교개혁의 혼란, 대기근, 페스트에 시달린 근세 유럽 대중들은 불행의 이유를 찾았고, 지배층은 마녀를 내밀었다. 그렇게 사냥 당해 재판에 넘겨져 죽은 마녀들이 4만여명이다. 지금도 감당할 수 없는 혼란에 직면한 사회는 책임 질 희생양을 찾는다. 중국 같은 전체주의 국가는 외부에서 희생양을 찾는다.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을 조롱하고, 한국인 입국자 격리에 나선 중국의 배은망덕은 1당 독재 권력에서 희생양을 찾을 수 없는 정치구조 탓도 있을 것이다.반면 민주주의 국가는 선거라는 대속(代贖)기능이 있다. 대중들이 투표로 혼란을 책임질 정당, 정치세력을 심판한다. 따라서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정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유례 없는 전염병 펜데믹에 직면한 대한민국 국민도 이 지경에 이른 이유를 묻고 있다. 잠재된 분노가 섬뜩할 정도다. 정치권은 이 분노를 감당해줄 희생양을 찾느라 혈안이다.코로나19 대확산을 둘러싼 책임공방의 주제는 중국인 입국금지다. 보수야당은 중국인 입국금지를 망설인 정부 책임을 묻고 있다. 진보여당과 정부는 대확산이 내국인 감염 때문이라며 신천지교회가 대감염의 진앙임을 강조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역학조사반을 이끌고 과천 신천지교회 강제 조사에 나서 교인명단을 받아오는 개가를 올렸다. 기독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신천지 교회는 속수무책이다.진보진영의 반격도 본격적이다. 유시민은 권영진 대구시장이 정부의 중국인 입국허용에 아쉬움을 표하자, "아주 정치적인 발언"이라며 "전염병이 번져서 이걸 문재인 폐렴이라고 공격하고 싶은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그의 되치기로 진보 대통령과 보수 광역시장의 방역 이견은 '아주 정치적'이 됐다. 그는 신천지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를 향해 "신천지를 정상적인 기독교의 한 교단으로 인정하는 것인지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통합당은 진보진영의 '신천지=새누리'라는 낙인을 경계하고 있다.모두 4·15 총선을 겨냥한 낙인찍기이자 변형된 마녀사냥이다. 코로나1

  • [참성단]각자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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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각자도생 지면기사

    모든 사자성어가 중국 고사에서 나왔지만, '각자 살기를 도모한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은 그 어떤 중국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순수하게 우리 조상들이 쓰던 말인데, 조선 시대 백성의 비참한 삶을 떠올리면 이만큼 슬픈 사자성어를 찾기란 쉽지 않다. 각자 각(各), 스스로 자(自), 꾀할 도(圖), 살 생(生). 그냥 보고만 있어도 네 글자에서는 절박함이 묻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시대는 '일천즉천(一賤則賤 :부모 중 한쪽만 노비면 자손도 노비)' 원칙이 무려 500년간 유지된 사회였다. 하층민의 숫자가 전체인구의 50%를 넘었다. 1894년 갑오개혁에서 신분제가 철폐됐지만 땅 한 마지기 없는 농민은 노비나 다름없었다. 조선 시대에 수많은 환란과 기근이 있었다. 농민과 노비의 삶이 비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누구도 그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임진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선조, 병자호란 때 유린당하는 백성을 놔둔 채 홀로 남한산성에 숨어 들어가 온갖 수모를 당한 인조, 길바닥엔 굶어 죽은 시신이 널브러져 걷기조차 힘들었다는 1809년 대기근과 삼정의 문란으로 부패가 극에 달했던 순조. 모두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임금들이다. 백성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그때 그들이 터득한 삶의 철칙 중 하나가 '스스로 살길을 찾는다'였다.방역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 확진자가 하루 200명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상황이 크게 악화하고 있다. "정부를 믿고 국민들은 경제 활동에 임해 달라"던 문재인 대통령이 느닷없이 "국민도 방역주체"라고 말한 후 이런 분위기는 더 심해졌다.'대구·경북 봉쇄' 발표가 나오자 일부에선 '각자도생'을 주장하며 정부에 강한 불신을 보이고 있다.하지만 지나친 불안은 금물이다. 코로나 19는 전염성이 매우 강하지만 치사율은 메르스보다 낮다. 각자 기초적인 위생 수칙만 잘 지켜도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가벼운 증상인데도 겁을 먹고 무작정 큰 병원을 찾는 건 피해야 한다. 가능하면 다중

  • [참성단]대통령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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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대통령의 '운명' 지면기사

    베토벤 교향곡 5번 제목은 '운명'이다. 1악장 첫 네 음표는 너무 강렬하다. 베토벤 스스로 이 네 음표를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했다는데, 정설은 아닌 모양이다. 아무튼, 전 악장에서 변주되며 반복되는 이 소절로 5번 교향곡은 제목에 걸맞은 '운명'의 서사를 완성한다. 운명은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초인간적인 굴레다. 실향의 운명을 예상한 이산가족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패륜도 운명의 장난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아버지의 복수를 고민하는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라며 운명의 굴레를 쓸지 말지 번민한다. 운명의 세 여신의 물레에 매달린 인간의 운명은 예술의 영원한 주제다. 누군가 운명을 거론하면, 숙연하게 경청하기 마련인 이유다.설명할 수 없는 인생사 역시 곧잘 운명으로 귀결되곤 한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 마지막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적당히 안락하게 살았을지 모르는' 삶이 친구 노무현을 만나 각성됐다며, 노무현과 문재인의 운명적 동반을 서술했다. 그래서일까. 노무현-문재인의 운명적 연대에 감화된 추모, 추종자들은 스스로 운명공동체로 여기는 강한 결속력을 보여준다.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조국 전 장관에게 그토록 관대했던 것도 운명공동체의 무조건적 연대가 아닐까 싶다.최근 대통령이 중국을 운명공동체로 강조했던 지난 어록들이 화제다. 대통령의 한·중 운명공동체론이 코로나19에 대한 근본 방역대책인 중국인 입국금지를 지연시킨 결정적 원인이라는 비판 때문이다. 일부에선 한·중 운명공동체론이 팩트가 아니라지만, 중국을 향한 대통령의 언행이 한·중 운명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대통령은 야인 시절 노무현의 숙제에 갇힌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그러나 이젠 대통령의 운명이다. 그의 운명은 국가와 국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