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샘터'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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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샘터'의 기적 지면기사

    답답한 세상에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렸다. 경영난으로 이번 12월호, 통권 598호를 끝으로 휴간키로 했던 월간 '샘터'가 그 결정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내년이면 창간 50주년이고 통권 600호 발간을 눈앞에 둔 샘터의 휴간 소식이 많은 이들을 몹시 슬프게 했던 모양이다. 전국에서 성원이 답지했다.샘터는 가난했던 시절, 글로서 국민에게 '희망'을 준 잡지였다. 피천득과 오천석, 법정 스님, 소설가 최인호, 이해인 수녀, 동화작가 고 정채봉 등 '샘터'의 간판 필진의 글을 읽으면서 잠시 고단한 삶을 접어뒀던 기억을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있을 것이다. 특히 고 최인호 선생은 1975년부터 35년간 '가족'을 400개월을 연재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법정 스님은 '산방한담'을 120회를 연재하며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의 글도 빼놓을 수 없다. 월전, 운보, 산정, 남정 등 동양화계 원로들과 장우성, 김기창, 서세옥, 장욱진, 천경자 등 서양화계 거장들 대부분이 샘터에 헌정하듯 표지화를 그렸다. 제호는 당대 최고의 명필 소전 손재형 선생이 썼다. '샘터'는 작지만 강한 잡지였다. '담배 한 갑의 가격을 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초창기 가격이 100원에 불과했으나 가치는 그 열 배, 아니 백배 이상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한 샘터를 읽으며 독자는 '삶 속의 작은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미국에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샘터'가 있었다. 모든 게 메말랐던 1970년대 샘터는 한국인의 교양을 무한 확장한 마른 땅의 '샘물'같은 존재였다. '샘터'는 한때 월 50만 부가 팔린 적도 있었지만, 최근엔 2만 부로 부수가 뚝 떨어졌다. '샘터 가족은 하루 한쪽 이상의 책을 읽습니다'는 메시지가 무색하게 정치에는 관심을 가져도 책을 외면하는 세상 때문이다. 이에 따른 매년 3억 원의 적자는 큰 짐이 됐다. 그렇다고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에서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 [참성단]급등하는 '이재명 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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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급등하는 '이재명 주가' 지면기사

    정치권을 주식시장에 비유하면 지금은 상장 종목들의 치열한 시세조정으로 요동치는 등락장의 형세다.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은 공천 여부에 따라 상장 유지 여부가 결정된다. 차기 대선정국을 지배할 대장주들도 총선을 거치면서 시세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특히 진보 아이콘으로 여권의 유력한 대장주로 주목받았던 조국이 상장폐지 되면서 여권의 대장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양상이다.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관심종목으로 떠올라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시발은 지난달 28일 이 지사가 더불어민주당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김경수 경남지사와 함께한 수원 만찬이다. 문재인 대통령 복심 두 사람이 비문으로 낙인찍혔던 이 지사와 원팀을 외치고 형제애를 나눴다. 이 지사는 다음날 수원에서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한 문 대통령을 향해 "모친께서 위중한 상황임에도 대통령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시는 모습을 대하며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그 책임감에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고 최상의 예의를 표했다. 그날 저녁 대통령은 모친상을 당했다.이해찬 대표도 지난 8일 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경기지역화폐 등 이 지사의 정책을 당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며 '이재명 띄우기'에 동참했다. 급기야 11일 경기도지사 후보 당내 경선에서 뜨겁게 맞붙었던 문재인 복심 전해철 의원 마저 이 지사와 수원 만찬을 갖고 "우리는 하나다", "이재명 파이팅"을 외쳤다고 한다. 오늘은 이 지사와 이 대표가 귀여운 돼지탈을 쓰고 돼지고기 소비 캠페인을 벌인다니, 여권 전체가 이재명 주가관리에 나선 형국이다.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문 대통령과, 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문의 복심 전 의원과 척이 져 친문진영의 비토에 시달린 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전 의원의 탄원서에 힘입어 대법원 관문만 잘 통과하면 이 지사는 관심종목을 넘어 여권의 새로운 대장주로 몸집을 키울 가능성도 높다. 아쉬운 건 "문프(문 대통령)께 모든 권리를 양도"한 공지영 작가처럼 여전한 친문진영의 이 지사를 향한 반감이다.정치시장

  • [참성단]윤정희와 알츠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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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윤정희와 알츠하이머 지면기사

    알츠하이머는 유대계 독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가 1906년 학계에 보고하면서 그 존재가 드러났다. 뇌 신경질환으로 입원했지만, 남들과 전혀 다른 증상을 보이다 사망한 여성의 뇌 조직을 관찰하다가 대뇌 피질이 갈색 덩어리의 끈적끈적한 섬유농축제로 덮여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알츠하이머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데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레이건은 1994년 자신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고백하면서 "내 생애의 황혼으로 이끌어 갈 여행을 시작한다"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노벨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 맨부커상 수상자이자 영국의 지성 아이리스 머독도 알츠하이머로 힘든 말년을 보냈다. '사랑에 대한 영화 중 가장 오래 기억될 걸작'이라는 타임스의 호평을 받은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는 알츠하이머가 불러온 삶의 변화를 다룬 영화다.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던 음악가 출신 80대 노부부 조르주와 안느. 어느 날 안느가 치매 증상이 보이면서 그들의 삶은 하루아침에 달라진다. 조르주는 안느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갈등에 빠진다. 마침내 고통스러워하는 아내 안느를 베개로 질식사시킨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관객들은 '폭풍 눈물'을 쏟았다.배우 윤정희가 10년째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그는 2010년 이창동 감독 영화 '시'에서 알츠하이머 초기 증세를 겪는 미자 역을 맡아 청룡영화상은 물론 대종상 여우주연상과 LA 비평가협회상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아마도 이 영화를 촬영할 즈음 알츠하이머가 찾아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1960년대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윤정희는 1976년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와 도피하듯, 파리로 건너가 결혼식을 올려 큰 화제가 됐다.평생 영화를 찍었던 배우들도 이처럼 '영화 같은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는 영화처럼 모나코 왕비로 살다가 차 사고로

  • [참성단]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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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베를린 장벽 붕괴 30년 지면기사

    역사는 수다를 떨지 않는다. 역사적인 사건은 언제나 조용히 찾아온다. 객관성과 냉철함, 통찰력이 빛났던 앙드레 모루아는 역저 '프랑스사'에서 '프랑스 혁명'부분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은 폭동이 아니라 목가적인 분위기로 시작되었다…7월 14일 온종일 사냥을 하느라 고단하게 잠들었던 국왕은 다음 날 아침 리앙쿠르 공에게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반란인가?"라는 루이 14세의 물음에 그는 "혁명"이라고 대답했다.' 하긴 1950년 6·25 전쟁도 모두 잠든 일요일 새벽 4시에 발발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남침이었다.베를린 장벽 붕괴도 조용히 찾아왔다. 동독 공산당 공보비서 귄터 샤보브스키가 주민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여행 자유화 조치를 발표했던 그 날, 한 기자가 여행 자유화가 언제부터냐고 물었고, 그는 우물쭈물하다 "지금, 즉시"라고 말했다. 이 장면이 동독 주민에게 그대로 전파됐다. 사실 확인을 위해 많은 동베를린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었다. 이에 놀란 국경 수비대는 우왕좌왕하다가 국경 문을 열었다.내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장벽은 1961년 8월 13일 새벽,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을 오가는 통행로가 브란덴부르크 문을 기점으로 철조망으로 차단되며 만들어졌다. 장벽에서 100m 이내 건물이 모두 철거되고 사람 없는 '죽음의 지대(Death Strip)'가 만들어졌다. 1965년에 여기에 다시 콘크리트 벽이 세워졌고, 1975년에 장벽이 세워졌다. 이토록 견고했던 장벽이 하룻밤에 무너진 것이다.당시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통일이 손에 잡히는 근거리까지 왔음에도 낙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통일이라는 말을 값싸게 함부로 남발하거나 남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며 측근의 입을 조심시켰다고 한다. 불면 꺼질까, 만지면 깨질까 봐 마치 무슨 보물단지 다루듯 통일 문제를 취급했다. 들뜨지도 서두르지도 흥분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조용히 통일을 이룩했다. 통일 후에도 게르만 민족이 우수해서 통일이 이뤄졌고, 자신이 통

  • [참성단]생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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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생존왕 지면기사

    축구에 '승강제'가 도입된 계기는 좀 불순(?)하다. 영국에서 풋볼리그가 출범할 당시, 영국에는 이미 FA컵이라는 축구대회가 있었다. 풋볼리그 창시자들은 리그가 더 성장하려면 리그 창립 멤버가 아닌 팀도 리그에 참가하게 해서 언젠가 최상위 리그로 승격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경쟁리그가 출범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리그를 독점하기 위해 일종의 '열린 시스템'을 도입한 셈이다. 승강제의 도입 배경이 그리 순수하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대박'이 났다. 시즌 막바지까지 팬들에게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선사하면서 승강제는 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2013년 국내 프로축구에 승강제가 도입된 이후, 매 시즌 최하위권을 전전하다 막판에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하는 팀이 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생존왕'이다. 바로 인천유나이티드로, 매 시즌 '짜릿한 잔류 성공기'라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쓰고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가 2016년 11월5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수원FC와의 경기다. 시즌 내내 최하위권에 머물며 부진을 면치 못했던 인천은 리그 최종전이었던 이 경기에서 수원을 누르면서 10위를 기록, 강등권에서 탈출했다. 비록 꼴찌들의 경기였지만, 이 경기는 결승전을 능가하는 빅매치로 기록된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고 나서는 구름처럼 몰려나온 팬들과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오죽하면 경기장 밖을 지나다 함성 소리에 놀란 시민들이 '결승전이 벌어지는 줄 알았다'고 했을까.올해에도 역시 인천은 잔류와 강등의 갈림길에 서 있다. 단 두 경기만을 남겨둔 올해 상황은 더욱 녹록지 않다. 인천(10위), 경남(11위), 제주(12위) 등 세 팀의 승점 차가 3점으로 좁혀지면서 치열한 생존 경쟁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인천은 조금만 삐끗해도 강등이 확정되는 12위, 또는 2부리그 승강플레이오프 승자를 이겨야 잔류가 가능한 11위로 추락하게 된다. 세 팀의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이들의 경기를 따로

  • [참성단]'코세페'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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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코세페'를 아시나요 지면기사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블프)는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11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시작된다. 실제 가격의 반값 이하로 살 수 있는 물건이 허다하다. 일부 업체의 경우 1년 매출의 약 70%를 이 때 팔아 치운다. 품질 좋고 저렴하니 소비자들은 전날부터 백화점 앞에 텐트를 치고 기다린다. 서로 사려고 다투다 총격전까지 벌이는 경우도 있다.중국에서는 11월 11일을 '광군제(光棍節)'라고 부른다. '광군'은 배우자나 애인이 없는 독신을 뜻한다. 혼자를 상징하는 '1'이라는 숫자가 4개나 겹치는 날이라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날을 제대로 잡은 셈이다. 2009년 첫 광군제 행사에는 27개 브랜드가 참여해 하루 5천200만위안(약 8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행사에는 18만개 이상 브랜드가 참여해 하루 2천135억위안(약 35조원)을 팔아 치웠다. 폭발적인 성장 배경의 이유는 단 하나다. 상품도 다양하고 값까지 싸다.'코리아 세일 페스타(코세페)'가 지난 1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코세페'가 뭔지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홍보 부족 탓도 있겠지만, 추수감사절과 겹치는 '블프'와 독신자를 위해 시작한 '광군제'와 달리 '코세페'는 소비자를 끌어들일 매혹적인 스토리가 없는 것이 치명적이다. 비록 일부지만 '떨이'라는 인상을 줄 만큼 상품 구색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올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할인행사 시 유통업체가 행사비의 50% 이상을 부담하도록 하는 지침 개정을 예고하면서 백화점 업계가 코세페 보이콧 방안을 검토했다가 철회하는 등의 혼란이 찬물을 끼얹었다.코세페는 올해가 네 번째다. 그동안 참담한 흥행참패를 겪었다. 그래서 올해는 민간 주도로 바꾸고, 행사기간도 11월로 옮기면서 기간도 오는 22일까지 2배로 늘렸다. 그런데도 흥행몰이를 못 하고 있다. 유통업체 입장에선 제조업체에서 물건을 직접 구매하고 가격 결정권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가격을 낮출 수가 없는 것도 문제다. 이왕 불황을 타개하겠다고 만들었으면 다양한 상품

  • [참성단]다문화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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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다문화 정치인 지면기사

    대한민국 최초의 귀화인 국회의원으로 유명한 이자스민 전 의원이 정의당에 입당하자 뒷말이 무성하다. 19대 총선에서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 15번으로 공천받아 국회에 입성한 이자스민 의원은 다문화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정치적인 상징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보수당인 새누리당의 이자스민 공천은 진보정당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의표를 찔렀고, 그 덕분인지 전체 300석 중 152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머쥐었다.이민자들이 가장 강력한 기득권 집단인 정치분야에서 성공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기 만큼 어렵다. 한국계 미국인 김창준이 최초의 미 연방 하원의원(공화당)에 당선된 때가 1992년이다. 1903년 1월 13일 한국 이민 선구자들이 하와이 호놀룰루 제2부두에 첫발을 내디딘지 한세기에 이를 무렵이다. 김창준이 2000년 4선 도전에 실패한 뒤 지난 2018년 선거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한 앤디 김이 간신히 입성했다. 공화당의 영 김 후보는 막판 우편투표에서 역전당해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 2명 당선 신화가 깨져 아쉬움이 컸었다.유럽의 대표적인 혼혈국가인 프랑스에선 한국계의 각료입각이 두드러졌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입양아 출신 플뢰르 펠르랭(한국명 김종숙)과 장뱅상 플라세(한국명 권오복)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올해 이민 2세대인 세드리크 오(37·한국명 오영택)를 입각시켰다. 최초의 한국계 장관인 플뢰르 펠르랭은 한국계를 상기시키는 한국 언론들에게 "나는 프랑스인"이라고 강조해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다.이자스민 전의원도 바늘구멍은 통과했지만 20대 총선에선 공천을 받지 못한 채 잊혀졌다. 정의당이 그녀를 입당시키자 뒤늦게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이자스민은 다문화가정 뿐 아니라 우리사회 소외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상징성이 여전하다. 21대 총선을 앞둔 여야 정당들 입장에선 포용과 혁신의 아이콘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였다.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다문화가정 인재영입 경쟁을 벌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물에 그밥인 토박이 한국인들의 적대적 정치문화를 생각하면

  • [참성단]공무원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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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공무원 증원 지면기사

    관료조직의 비대화를 비판한 학자로 영국의 해군사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을 꼽는다. 그는 1958년 출간한 '파킨슨의 법칙'에서 '일이 많아서 사람을 더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많아서 일자리가 더 필요해지는 상황'이라며 공무원 조직을 꼬집었다. 특히 '공무원의 수는 해야 할 일의 경중, 때로는 일의 여부와 관계없이 상급 공무원으로 출세하기 위해 부하의 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일정한 비율로 증가한다'는 '관료조직의 자기 증식성'을 수학적 법칙으로 증명해 관심을 끌었다.파킨슨은 업무량과 관계없이 공무원 수가 늘어나는 근거를 두 가지로 꼽았다. 첫째가 '부하 배증의 법칙'으로 '공무원이 과중한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 동료에게 도움을 받아 경쟁자를 늘리는 방법보다 자신의 부하 직원을 늘리기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다음이 '업무 배증의 법칙'. '부하 직원이 늘어나면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업무를 부하 직원에게 지시하고 보고받는 등의 과정이 파생되어, 결국 서로를 위해 계속 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파킨슨은 이외에도 '예산심의에 필요한 시간은 예산액에 반비례한다'거나 '각종 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정원은 5명 이내로 한정시켜야지 20명 이상의 위원회는 운영불능'이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60년 전 주장인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내년도 공무원 채용 규모가 국가직 (1만8천815명), 지방직(1만5천명) 등 3만3천815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를 포함 2022년까지 17만4천명의 공무원이 증원된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에 따라서다. 정부는 청년 실업난 해소, 대국민 서비스 향상 등 사회적 편익 때문에 공무원 증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재원이다. 국회 예산 정책처의 발표로는 공무원 17만4천명을 증원할 경우 앞으로 30년간 자그만치 327조7천847억원의 인건비(9급 기준·공무원연금 부담액 제외)가 필요하다.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의 공무원 조직에 대한 발언은 더 자극적이다. 그는 '공무원 조직은 외압에 의해 파괴되기 전

  • [참성단]삼성전자 창립 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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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삼성전자 창립 50주년 지면기사

    시작은 초라했다. 1969년 허허벌판이던 수원시 매탄동에 '삼성전자공업(주)'가 문을 열었다. 처음엔 일본 산요전기와 합작해 흑백 TV와 선풍기를 생산했다. 하지만 금성사(현 LG전자)에 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적자가 지속됐다. 1974년엔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이 한국 반도체를 인수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말이 많았다. TV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첨단으로 가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거였다. 1983년 2월 73세의 호암이 전 재산을 내걸고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도쿄 선언'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외 반응이 차가웠다. 인텔은 호암을 가리켜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호암의 선택이 '신의 한 수'였음을 증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83년 64K D램을 처음 개발했다. 당시 인텔과의 기술격차는 4년 반이었다. 그 격차가 1989년에 없어지고, 1992년 64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이 분야의 1위로 올라섰다. 지금은 후발기업도 범접할 수 없을 '초격차(超格差)'로 벌려놓았다.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이제 삼성전자는 시가 총액 300조원, 브랜드 가치 611억달러로 애플, 구글 등에 이어 세계 6위의 기업이 되어 한국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삼성전자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온갖 수모를 참아가며 선진기술을 배우고, 여기에 창의성을 가미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일궈 낸 연구진, 좀 더 좋은 제품을 더욱 싸게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땀 흘린 근로자들의 공이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업이 적자를 내고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큰 죄를 범하는 것"이라며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며 인재중시와 사업보국을 기치로 '한국판 산업혁명'을 일으킨 호암 이병철 회장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1995년 품질 결함이 있던 애니콜 휴대전화를 불태우며 삼성 스마트 폰 신화를 만든 이건희 회장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오늘, 삼성전자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 부회장은 3년간 재판

  • [참성단]잊힐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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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잊힐 권리 지면기사

    "어린 날/물수제비뜨기의/가뭇없이 가라앉은/조약돌인 듯/후미진 마을의 오두막/홀로 조는/등잔불인 듯 …중략 …나/ 그렇게/ 없어진 있음으로/조용히/지워지고 싶어."故 이가림 시인(1943~2015)의 '잊혀질 권리'란 시다. 살다 보면 이따금 이 시에 공감하는 순간과 맞닥뜨리곤 한다. 현실속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잊힐 권리'를 주장한 이는 '마리오 곤살레스'란 스페인 변호사다. 그는 2010년 자신의 이름을 구글로 검색하다 빚 때문에 집이 경매에 부쳐진 과거의 기록을 발견하고 "검색 결과를 지워달라"며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어 2014년 재판부가 곤살레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잊힐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는 '인터넷 이용자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포털 게시판 등에 올린 게시물을 지워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 판결의 여파로 우리나라에서도 방송통신위원회가 2016년 '자기 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당연히 잊힐 권리는 스페인의 변호사처럼 살아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20년 전 숨진 인천 중구 인현동 화재참사의 희생자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잊힐 권리에 목말랐을지 모른다. 호프집에 갔다는 이유 하나로, 세상 사람들 눈에 그들은 단지 '불량 청소년'이었다. '숨진 여학생 중에 속옷도 안 입은 여학생이 있었다'거나 심지어 '임신한 여학생이 있었다'는 식의 유언비어는 어린 영혼들을 더욱 슬프게 했을 것이다. 당시 사건을 취재한 기자에게 든 확신은, 그들이 동네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반에서 1~2등을 다투던 모범생도 있었고,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다 변을 당한 학생도 있었다. 다행히 화재참사 20주년을 맞아 유족회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추모준비위원회'가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고, 어른들의 잘못을 되돌아보며 공공기록물을 만드는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 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