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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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쓸쓸한 참성단 지면기사
해마다 개천절이 되면 지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이 있다.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이다. 참성단은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오래된 단군 유적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전해지는 이곳에서는 해마다 개천절이면 '개천대제'(開天大祭)가 열린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의 원종은 직접 참성단에 올라 제사를 올렸고 이후에도 조정에서는 가뭄이나 홍수 등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관리를 파견해 제사를 지냈다. 일제강점기를 제외하고 개천대제의 전통은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종교의식을 따르고는 있지만 현대에 이르러 개천대제는 민족의 문화와 얼을 계승하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문화행사를 지향하고 있다. 집례자들이 강화군수, 강화군의회의장 등 종교인이 아닌 공직자로 구성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단군신화에 보면 단군의 셋째 아들인 부소는 세상에 전염병이 돌자 부싯돌로 불을 만들어 없애 버렸다. 개천대제에서도 하늘의 불을 선녀가 채화하는 엄숙한 의식이 행해진다. 강화지역 여고생 중에서 선발된 7선녀가 제천무(祭天舞)를 추고 참성단 계단을 사뿐히 내려와 향로에 불을 붙이는 모습은 개천대제의 백미다. 이 장면은 해마다 지역신문의 1면을 장식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이처럼 1년 중 개천절에 딱 한번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장소인 참성단이 올해 쓸쓸한 개천절을 맞게 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지는 바람에 개천대제 부활 후 처음으로 행사가 취소된 것이다. 돼지열병의 확산방지가 급선무인 터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 세상에 이로움을 주기 위해 선녀가 불을 붙이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선조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오른 곳이 참성단인데, 후손들은 가축전염병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정작 참성단을 외면한 것 아닌가. 이색이 시를 통해 '이 몸이 몇번이나 이곳을 찾을 수 있을는지'라며 아쉬워했듯이 참성단은 선조들에게 각별한 곳이다. '강화도, 미래신화의 원형'이란 책의 저자인 이동연 작가는 '강화도는 구슬과 같은 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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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노벨상 시즌 지면기사
잘못된 부고 기사가 없었다면 노벨상은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오보 문제가 나올 때 늘 거론되는 알프레드 노벨의 부고 얘기다.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막대한 부를 일궜던 스웨덴 기업가 노벨은 1888년 프랑스의 한 신문에 실린 자신의 부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신문사가 칸에 살던 형 루드비히의 죽음을 잘못 알고 부고를 낸 것. '죽음의 상인이 사망했다'는 부고 제목은 말할 것도 없고 "알프레드는 더 많은 사람을 빨리 죽이는 방법을 찾아 돈을 모았다"는 내용에 노벨이 받은 충격은 컸다. 가뜩이나 다이너마이트로 인명이 살상되는 것을 목격해 마음이 무겁던 노벨은 죽기 1년 전인 1895년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재산을 상금으로 준다'는 유언을 남겼다. 세계 최고의 영광이라 일컬어지는 노벨상이지만 선정과 수상과정에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20세기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했던 반면,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독재자가 평화상 후보로 오르는 일도 있었다. 수상 거부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1958년 '닥터 지바고'로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수상을 거부해 큰 파문이 일었다. 장 폴 사르트르도 1964년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문학적 우수성을 놓고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습성"이라고 이유를 댔다. 1973년 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된 레둑토 베트남 전 총리는 "아직 베트남에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노벨상 계절이 돌아왔다. 7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8일 물리학상, 9일은 화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문학상은 10일, 평화상은 11일이고 경제학상은 14일이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는 지난해까지 118년간 생리 의학·물리·화학 등 607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수상자 가운데 97%(587명)가 남성일정도로 여성에게 인색하기로 유명하다. 노벨위원회가 늘 성차별의 중심에 서 있는 이유다. 올해 역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 명단에서 한국인을 찾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1년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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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트럼프와 우크라이나 게이트 지면기사
재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심각한 정치 위기에 빠졌다. 우크라이나 게이트의 지옥문이 열린 탓이다. 미 언론들은 닉슨 대통령을 자진 사퇴 시킨 워터게이트와 견주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민주당은 하원 6개 위원회 조사 개시로 대통령 탄핵절차에 착수한 상태다.우크라이나 게이트 전말의 발단은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이 자신의 아들이 취업한 우크라이나 에너지 업체를 수사하는 검찰총장의 교체를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요구해 관철했다고 한다. 미국의 10억달러 대출보증 보류 위협이 제대로 먹혔다고 한다.트럼프가 이를 알고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 통화를 통해 바이든 부자에 대한 조사를 종용하고, 젤렌스키는 적극 호응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또한 젤렌스키를 압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군사원조 카드를 활용했다고 한다. 이같은 내용을 전해 들은 내부고발자가 상·하원 정보위원장에게 내부고발장을 발송했고, 결국 공개되면서 트럼프 탄핵정국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트럼프로서는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바이든을 쳐내려다, 본인의 발등을 찍은 셈이니 환장할 일일 테다. 하지만 권력자의 거짓말에 단호한 미국과 미국인은 외세를 끌어들여 미국을 모욕하고 이를 은폐하려 한 트럼프를 정조준하고 있다.워터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닉슨은 법무장관에게 특별검사 해임을 명령했지만 장관은 이를 거부하고 사임했다. 그러자 장관대행이 된 부장관에게 다시 명령했지만 그 또한 사표를 던지고 물러났다. 그런 미국에서 하원이 탄핵절차를 밟고 있으니 문제는 심각하다."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며 항변한 닉슨은 하원이 탄핵안을 가결하기 직전 스스로 사임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닉슨과 다르다. "내부고발자는 스파이"라며 비난하고 "하원정보위원장은 사기와 반역죄로 조사받아야 한다"고 역공에 나섰다. 탄핵 처지에 몰린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탄핵 메신저에 대한 공세로 물타기에 나선 느낌이다. 이 미묘한 기시감은 뭔가 싶다.아무튼 최대의 정치위기에 몰린 트럼프의 다음 행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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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지식인의 이중성 지면기사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교육철학에서 한 획을 그었지만 실제로는 자식들을 보육원에 내다 버린 비정의 아버지였다. 노동자의 해방을 부르짖었던 카를 마르크스는 가정부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무려 45년간이나 노동력을 착취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병적일 정도로 거짓말을 일삼았으며, 논쟁을 즐기기로 유명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상대방에게 저주를 퍼붓던 과대망상증 환자였다. 여성 해방의 주창자로 알려진 헨리크 입센은 실제로는 여성 해방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물론, 여성을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위대한 명성에 가려진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파헤친 영국의 언론인 폴 존슨은 '지식인의 두 얼굴(을유문화사 刊)'에서 겉과 속이 다른 지식인의 이중성을 이렇게 신랄하게 비판한다. 폴 존슨은 책에서 지식인은 인격이 미성숙한 어린애이면서 동시에 자기 이익이 관련된 일에는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악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서는 자기선전, 거짓말, 기만, 표절, 허위, 위선, 직무 유기, 무력함 등 모든 악덕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한다는 것이다. 볼리비아 정글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게릴라전을 펼쳤던 행동하는 지식인 레지스 드브레는 그의 책 '지식인의 종말(원제:프랑스 지식인-연속과 종말)'(예문 刊)에서 오늘날 지식인들이 5가지 중병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자신들만의 틀에 갇혀 대중과 단절된 '집단 자폐증', 둘째 공부도 안 하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현실감 상실증', 셋째 자신들이 사회의 도덕을 선도한다고 자만하는 '도덕적 자아 도취증', 넷째 들어맞지도 않는 예측을 늘어놓는 '만성적 예측 불능증', 다섯째 자신의 이름이 잊힐까 두려워 매스컴의 장단에 맞춰 설익은 견해를 유창한 언변으로 포장하는 '순간적 임기응변증'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에 말과 글이 따로 놀고, 정치적, 사상적 이중성을 당연시하는 얼치기 지식인들이 차고 넘친다. 조국사태로 드러났듯, 일부 지식인들이 학연을 바탕으로 끼리끼리 맺은 추악한 유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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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주한미군 철수론 지면기사
2017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스티브 배넌 미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언론에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시키는 대가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내용의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해 큰 파문이 일어났다. 배넌은 책임을 물어 곧바로 해임됐지만, 트럼프 정부 아래 주한 미군철수가 거론됐다는 점에서 우리의 충격은 컸다.주한미군 철수는 한미동맹 70여년 동안 수없이 거론됐다. 주한미군 철수론자였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11월 헨리 키신저에게 "이제 주한미군 병력을 줄일 때가 됐다. 철수 실행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1970년에는 주한미군 감축 내용을 담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그리고 1971년 6월 한국군 현대화를 조건으로 주한미군 1개 사단의 병력 2만명이 처음으로 철수했다. 이때부터 주한미군의 수는 꾸준히 줄어 2006년 이후 지금까지 2만8천명 선에서 유지되고 있다.지미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국의 인권상황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 때문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사사건건 부딪쳤다. 실제 카터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한 이유는 한국의 방위력이 크게 증강돼 미군이 한반도에 있어야 할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철수 계획은 의회의 반대로 백지화됐지만, 실제로는 북한 지상군 규모가 남한보다 크게 앞선다는 '존 암스트롱 보고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후에 밝혀졌다.미 워싱턴 정가에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을 방문한 존 햄리 미 전략 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이 24일 최종현 학술원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북한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더는 주한미군이 필요 없다는 기류가 미 의회와 외교가에 확산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주한미군 철수론은 한미관계가 삐걱거릴 때 늘 등장했던 메뉴다. 한미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지금,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행보는 여전히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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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양자물리학과 영화 지면기사
출판계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물리학 교양서를 펴낼 때 '수학방정식 하나 넣을 때마다 독자가 천 명씩 떨어져 나간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물리학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것이고, 한편으로는 방정식 없이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물리학 중에서도 '양자얽힘', '불확정성' 등 난해한 용어들로 가득 찬 양자역학은 더할 나위 없다. 심지어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조차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일반인, 특히 비(非)이공계 출신은 오죽하겠는가.그래도 방정식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양자역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교양서 저자들 덕에, 양자역학이 그렇게 낯선 용어로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대중문화 영역인 영화에서 양자역학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이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는 양자역학이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키 역할을 한다. '양자 수트'를 장착한 어벤져스가 시간을 거슬러가는 게 영화의 반전이다. 국내에서도 '양자 물리학'이란 제목을 단 영화가 25일 개봉했다. 그런데 줄거리를 보니 학구적인(?)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주인공의 양자역학적 세계관이 스크린에 조금 비치는 정도랄까. 하기야 영화 '기생충'에서 회충 한 마리 보지 못했으니 이 영화제목 또한 은유일 듯싶다.사실 전자 등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양자역학이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IT강국인 우리나라야말로 양자역학을 발전시키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구글이 양자컴퓨터 성능을 구현하는 데 성공하고 IBM이 53큐빗짜리 양자컴퓨터를 공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등 외국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데 국내에서는 양자역학과 관련한 낭보를 듣기 어렵다. 오히려 양자암호통신 관련 예산이 전액 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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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그레타 툰베리 지면기사
지금 뉴욕에서는 139개국이 참석하는 'UN 기후 행동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단연 관심 인물은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16세의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다. 지난해 8월 스웨덴 국회 앞에서 기후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한 달 넘게 1인 시위를 벌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툰베리는 이 회의 참석을 위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자 태양광 요트를 타고 영국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횡단했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툰베리는 우리 행성의 위대한 변호인 중 한 명"이라며 그와 주먹 인사를 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세계기상기구(WMO)는 이 회의에 맞춰 최근 5년간 세계는 역사상 가장 덥고 이산화탄소 농도도 최고치였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2015∼2019년 지구 기후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지구 평균 해수면은 연평균 5㎜ 올라갔다. 1993년 이후 연평균 3.2㎜ 상승한 것과 비교해 최근 상승률이 크게 증가했다. 남극과 북극, 그린란드, 에베레스트, 파미르, 스위스 빙하의 '사망'이 원인이다.지난 22일 스위스 북동부, 해발 2천700m 알프스 산맥 기슭에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알프스의 피졸 빙하가 사라지게 된 것을 추모하는 빙하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피졸 빙하는 2006년 이후부터 녹아내리면서 원래 크기의 80~90%를 잃어 사망선고를 받았다. 지난달 19일 아이슬란드에서도 빙하장례식이 열렸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아이슬란드 서부 오크 화산지대에 700년 동안 존재했던 오크예퀴들 빙하가 사라지게 된 것을 아쉬워하며 '미래로 보내는 편지'추모비까지 세웠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사라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0년 안에 전 세계 빙하가 모두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인도 지역의 가르왈히말라야 빙하는 2035년 완전히 사라질 전망이다.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1912년 이후 녹기 시작해 현재 20%만 남았다. 히말라야 전체 빙하는 1970년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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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조국 미스터리' 지면기사
유가(儒家)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장자도 유교를 개창한 공자를 존중할 때가 있었다. 가령 공자를 평한 이런 대목이다. "공자는 나이 육십에 육십번 달라졌다고 합니다. 처음 옳다고 했던 것을 나중에는 아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 옳다고 하는 것이 과거에 쉰아홉번이나 아니라고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장자 잡편 우언)" 말에 뼈가 있지만, 전체 맥락은 옳다고 한 것에 갇히지 않았던 공자의 대범한 사유체계를 존중한 것이다.자기 말에 갇히지 않기로는 정치인 만한 부류도 없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이 '옳다'고 했다. 하지만 여권은 과거 야당 시절 조 장관에 비하면 조족지혈급 의혹이 제기된 수많은 공직 후보자들을 '아니다'며 낙마시켰다. 문제는 '지금은 옳다'만 주장할 뿐 '그 때는 틀렸다'는 반성이 없는 점이다. 말에 갇히지 않는 합리적 대범이 아니라 말에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이다. 그러니 말은 두서를 잃고 행동은 설명할 길이 없다.장자는 기본적으로 유자(儒者)를 '시경'과 '예기'라는 지식권력으로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꾼 쯤으로 여겼다. 도굴의 목적인 무덤속 시신의 입에 물린 구슬, 즉 권력과 명예다.(장자 잡편 외물) 조 장관은 과거 서울대 법대 교수로서 현실 권력의 부패와 부조리에 대해 일일이 비판했다. 법 철학으로 무장한 비판 논리는 주옥 같고 추상 같았다. 그렇게 진보의 상징이 됐고 권력과 명예라는 구슬을 입에 물었다.조국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여당은 지금 옳다고 한 것을 계속 옳다고 우기기 난감해졌고, 조 장관은 자신의 지식권력으로 획득한 권력과 명예의 구슬을 토해내야 할 위기에 몰렸다.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정주행 중인 검찰의 칼날이 조 장관을 직접 겨누고 있다.시중에 '조국 미스터리'가 회자되는 건 이런 사태의 전개가 뻔히 예상됐기 때문이다. 뻔히 보이는 파국에도 불구하고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한 이유를 그 누구도 설명하지 못하니, 그 배경을 놓고 구구한 억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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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8K TV 전쟁 지면기사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 전쟁 역사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경남 출신에 사돈 관계로 돈독했던 고 이병철 회장(의령)과 고 구인회 회장(진주)의 관계는 삼성이 전자 산업에 진출하면서 서먹한 관계가 됐다. 삼성은 일본 전자회사의 도움을 받아 1969년 삼성 산요전기를, 1970년에는 삼성 NEC를 설립해, 1958년부터 가전 산업에 뛰어든 금성사( 현 LG전자)를 위협했다. 하지만 금성사는 1959년에 국내 첫 라디오를 생산했고 냉장고, 흑백 TV 등 품목 대부분에서 '국산 1호'를 기록하는 등 명실상부한 한국 가전 1위. 삼성전자는 금성사에 눌려 '만년 2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60년대 시중에는 미군 PX와 일본에서 밀반입한 TV, 월남 참전 용사들이 가져온 TV가 유통됐다. 정부는 1965년 말 'TV 부품 도입에 드는 외화는 라디오를 수출해 벌어들인 달러를 활용한다'는 등의 조건을 달아 금성사에 부품 수입을 허가했다. 금성사는 일본 히타치사와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1966년 8월 국산 흑백 TV 1호 VD-191을 생산했다. 삼성전자는 그보다 한참 늦은 1972년 흑백 TV를 생산했다. 냉장고, 세탁기를 두고도 두 회사는 크게 맞붙었다. 2012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급인 900L 지펠 냉장고 'T9000'을 출시한 후 LG전자가 좀 더 큰 용량의 910L 4도어 디오스 냉장고 V9100을 내놓으면서 양사 간 경쟁이 붙었다. LG전자는 허위 광고라면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10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 독일 가전전시회에 참가한 LG전자의 간부 연구원이 삼성전자의 가전 매장에서 세탁기 도어의 연결부를 파손해 수사를 받기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 발광다이오드(QLED)와 LG전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8K TV'를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공정위에 제소까지 가는 등 아무리 마케팅 전략이라지만 도를 크게 넘어선 느낌이다. 중국의 기술 발달로 OLED 시장이 3년을 버티기 힘들 것이란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국내 업체 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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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언론 지면기사
장기미제사건 형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TV 드라마 '시그널'에서 프로파일러 박해영은 '연쇄 살인'의 조건으로 "최소한 3명의 피해자가 발견되고, 살인사건 사이에 냉각기가 있으며 서로 분리된 상황에서 피해자가 살해된 정황이 확실할 때"라고 정의한다. 1986년 9월 19일 오후 2시, 하의가 벗겨지고 목이 졸린 채 숨진 이모(71) 씨가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에서 발견됐을 때, 이를 보도한 언론이 단 한 곳도 없었던 것도 어쩌면 이와 무관치 않다. 더 변명하자면, 5일 전 5명이 사망한 '김포공항 국제선 대합실 폭발사고'와 다음날 개막하는 아시안 게임으로 이 사건을 언론은 주목하지 못했다.'선보러 집 나갔던 처녀 수로에서 알몸 시신으로…. 10월 23일 오후 2시 30분께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콘크리트 용수로 내에서 박모(25) 양이 알몸으로 숨져 있는 것을 근처에서 콩을 뽑던 윤모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는 기사가 24일 경인일보 사회면에 2단 기사로 실렸다. 2차 희생자였다. 그러나 더 이상의 후속 보도는 없었다. 이때까지도 이 사건이 영구 미제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그로부터 두 달 후 1986년 12월 12일 3차 사건이, 14일 4차 사건이 이틀 만에 발생했다. 하지만 3차 사건의 시신이 4개월 뒤인 1987년 4월 23일, 4차 사건은 1주일 후인 12월 21일 발견돼 경찰과 언론이 큰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 모방사건인 8차를 제외하고 다섯 차례 더 발생했지만,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2차부터 후속 보도를 좀 더 충실히 했다면 사건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후회'는 경인일보 편집국엔 뗄 수 없는 큰 짐이었다.그 후 2001년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만든다며 경인일보를 찾았을 때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픈 부채의식을 조금 덜어내도 되는 것일까. 살인죄로 부산 교도소에 수감 중인 56세 이모씨의 DNA가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