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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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예비군 훈련 결석 처리 지면기사
국방력의 핵심은 병력(兵力)이다. 각종 첨단 무기로 무장해도 병력이 없으면 수수깡 군대다. 정규군외에 예비군을 두는 국방체제가 동서고금 변함이 없는 이유다. 스파르타 시민은 30세 까지 정규군으로, 50세까지 예비군으로 복무했다. 페르시아 전쟁이 터지자 레오니다스 왕은 항전을 선포했지만, 민회가 카르네이아 제전 중 전쟁금지 원칙을 내세워 반대했다. 왕은 300명의 전사를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을 지키다 전멸했다. 이때 왕을 따랐던 300명이 아들이 있는 예비역 노장들이었다.이스라엘이 스파르타의 상무체제를 계승한다. 정규군이 10만명에 불과하지만 유사시에 40만명의 예비군이 주력부대로 최전선에 투입된다. 하마스와 전쟁이 벌어지자 외국에 거주하는 예비군 전력들이 속속 귀국했다. 세계경찰을 자임하는 미국도 전세계 국지전 병력의 상당수를 예비군 자원으로 충당한다. 예비군 없는 군사 강국은 상상할 수 없다는 얘기다.정전국가인 대한민국도 267만명(2023년 기준)의 예비군 보유국이다. 1961년 향토예비군설치법으로 탄생했지만, 1968년 1·21 사태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제대로 군대의 꼴을 갖췄다. 노동적위군·교도대·붉은청년근위대 등 전국민이 예비군인 북한 비정규 전력에 대응할 수 있는 핵심 병력이다. 유사시 군사작전과 대간첩 작전에 동원하는 법정 병력이니, 예비군 훈련을 기피하면 법적 처벌을 면할 수 없다.최근 한 서울대 교수가 수강생들에게 예비군 훈련을 결석 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고 공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잊을 만 하면 대학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논란이다. 대학과 대부분의 교수는 예비군 훈련 결석을 인정한다. 예비군법에 직장과 학교에서 예비군 훈련으로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어서다.몇몇 교수들이 돌아가며 일으키는 말썽이다. 수업 재량권을 앞세워 법을 무시한다. 혹시라도 예비군 제도에 불만이 있다면 정부를 향해 예비군 폐지 투쟁을 벌이든지 할 일이지, 국방의무를 수행 중인 예비군 대학생을 못살게 굴 일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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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지면기사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이 위태롭다. 베를린 시장이 최근 도쿄에서 일본 외무상을 만나 "변화가 중요하다. 베를린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밝히면서 또다시 철거 논란이 일고 있다. 카이 베그너 시장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기념물은 찬성하지만 더 이상 일방적 표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관할 구청·연방정부를 포함한 모든 관련 당사자와 대화 중이며 독일 주재 일본대사도 논의에 참여시키겠다"고 말했다 전해진다. 베를린·도쿄 자매결연 30주년 '선물용 망언'인가. 역사에 죄를 지은 전쟁범죄 가해국인 일본의 일방적인 입장을 두둔하고 대변한 꼴이다.베를린 소녀상은 지난 2020년 9월 베를린 미테구 비르켄가 공공부지에 설치됐다. 독일 극우주의 테러 규탄·여성의 날 기념뿐 아니라 아시아계 인종차별 규탄·수요시위 기념 등 다양한 주제의 행사가 펼쳐지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하지만 독일 수도에서 소녀상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일은 순탄치 않다. 설치 직후인 2020년 10월 관할 미테구청이 철거를 명령했지만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가처분 신청으로 우여곡절 끝에 보류됐다. 이후 미테구의회는 여러 차례 존치 결의안을 채택했고, 2022년 설치 허가를 2년 연장해 올해 9월 28일 만료를 앞두고 있다.일본정부는 베를린 소녀상 존치를 연장해야 할 시점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철거를 압박하고 부추긴다. 참으로 집요하다. 지난 2022년 4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일본을 방문한 올라프 숄츠 총리에게 "베를린 소녀상이 계속 설치돼 있는 것은 유감"이라며 대놓고 철거를 요구한 바 있다. 일본의 전방위적 압박에 실제로 2023년 3월에는 독일 헤센주 카셀주립대 캠퍼스에 총학생회 주도로 설치됐던 소녀상이 기습 철거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대학이 일본정부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것 아니냐"고 강력 규탄했었다.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기억연대 등이 지난 22일 회견을 열고 173개 시민단체 및 1천861명의 시민이 서명한 항의서한을 주한 독일대사관에 전달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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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염치 없는 사회 지면기사
경찰이 22일 검찰에 가수 김호중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할 우려가 있어 신병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김씨와 소속사는 단순 음주운전 사고를 구속이 필요할 정도의 초대형 범죄종합세트로 키웠다. 공인의 '자멸의 경로'로 두고두고 회자될 테다.김씨를 무조건 감싸는 팬덤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그를 비난하는 대중의 분노는 훨씬 강력하다. 김씨의 몰염치 탓이다. 몰염치의 백미는 범죄행위보다 공연 강행이다. 지난 9일 발생한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예정된 공연을 모두 감행했다. 구속영장 청구에도 오늘, 내일 예정된 공연도 강행한단다.각종 범법 스캔들을 일으킨 공인들의 일반적 대응에서 한참 벗어났다. 대중의 사랑과 지지를 배신한 사실에 공인들은 '자숙'과 '반성'으로 법적 책임에 앞서 사회적 책임을 졌다. 염치가 작동하는 사회의 불문율이 법보다 무서워서다. 김씨의 공연 강행은 염치 사회의 불문율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 당황스럽다.막대한 위약금과 열혈 팬덤이 김씨가 염치불구하고 공연을 강행하는 이유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식이면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김씨의 공연을 막을 도리가 없다. 구속돼도 적부심과 보석 등 법적 대응을 통해 풀려날 수 있고, 3심 재판까지 이어가며 무대에서 팬덤들의 환호를 받아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안 된다.수오지심을 역행하는 '김호중 사태'의 근원으로 정치를 지목하는 평론이 적지 않다. 2심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대표와 원내대표의 정당이 지난 총선에서 제3당이 됐다. 보조금 횡령혐의로 재판 중인 시민단체 출신 여성 의원은 고법 유죄판결에도 의원 임기를 마치고 대법원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총선에선 허위대출 혐의가 사실상 밝혀진 후보가 당선됐다.염치가 작동했던 시절이었다면 공직과 정계에서 은퇴를 선언해야 할 스캔들이다. 하지만 무죄 추정의 시간 동안 개인과 정당 팬덤의 묻지마 지지로 선출직의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한다. 김호중의 공연 강행과 팬덤의 맹목적 지지를 비판할 염치가 없는 사회가 됐다.박완서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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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데이터 안보 지면기사
라인야후는 2011년 네이버(일본지사 NHN재팬)가 개발한 '일본판 카카오톡'으로 일본 인구 1억2천200만명 중 9천600만명이 이용하는 메신저 서비스다. 지난해 11월 라인은 51만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었다. 라인 서비스를 네이버가 운영하다 보니 라인의 데이터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네이버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을 빌미로 지난 5월 8일 이사회에서 라인을 개발한 신중호 CPO(제품 책임자)를 해임하고, 네이버에 자본 재검토를 요구하며 '라인 독식' 의도를 드러냈다. 배후에 일본 정부가 있다.미국 정부는 중국 바이트댄스가 운영하는 '틱톡 퇴출'에 진심이다. 상·하원이 '틱톡 강제 매각법'을 통과시켰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25일 서명했다. 미국인 틱톡 이용자들의 정보가 중국 정부로 흘러갈 수 있어 국가 안보 및 데이터 개인정보보호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틱톡 측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이달 14일 무효화 소송을 냈다.중국은 틱톡과 이커머스 전파에 열을 올리면서, 타국의 빅테크는 막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만리방화벽(Great Wall)이라 불리는 인터넷 감시 시스템을 통해 유튜브, 넷플릭스,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엑스 등의 접속을 차단·통제하고 있다.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디지털서비스법(DSA)을 근거로 빅테크 견제에 나섰다. 집행위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한 가짜뉴스 확산과 관련해 엑스(X·옛 트위터)를 조사하고 있다. 또 틱톡의 바우처 및 기프트카드 등 보상 프로그램의 중독성 문제를 제기했다. 틱톡은 조사가 시작되자 서비스를 중단하며 꼬리를 내렸다.세계 각국은 데이터 안보를 둘러싸고 전쟁 중이다. 데이터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중요한 자산이자 경쟁력이다. 각국 정부는 시장에 적극 개입해 공격-수비 맞춤 전략을 진두지휘한다. 국내에서는 틱톡라이트 가입 '앱 테크 붐'이 식지 않는다. 가입 후 친구초대하고 출석 미션을 완료하면 포인트를 지급한다. 현금 출금까지 가능하다. 우리 정부는 라인 사태에서 일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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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문화재'와 '국가 유산' 지면기사
인간을 지칭하는 학명은 '호모'로 시작한다. 인간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는 언어적 존재라는 점이며 이와 관련된 학명이 많다. 문법적 인간은 호모 그라마티쿠스, 이야기하는 인간은 호모 나랜스, 말하는 인간은 호모 로쿠엔스라 한다. 언어를 분석하고 어원을 밝히는 것은 언어적 존재인 인간은 물론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한국어도 다양한 민족과 문화와 접촉하면서 형성돼 온 국제어이며 다문화의 산물이다. 가령 결혼으로 맺어진 양가 부모를 사돈(査頓)이라 하는데, 만주어로는 '사둔'이라 하고 몽골어로는 '사든'이라 한다. 이런 말들은 고려 고종 18년(1231)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주는 증류주로서 아랍의 명의(名醫) 아비케니가 발명했는데 이것이 원나라를 거쳐 고려로 들어왔으며, 임금의 밥상을 가리키는 수라 역시 몽골어 '술런'에서 나왔다. 사냥 매에 다는 꼬리표를 가리키는 시치미를 비롯해서 족두리 역시 원나라에서 사용된 고고리(古古里)에서 나온 말이다.그런가 하면 우리 고유어로 알고 있는 말의 상당수가 한자어의 변용인 경우도 있다. 가령 사냥은 산행(山行)에서, 배추는 한자어 백채(白菜)에서, 김치는 침채(沈菜)가 '딤채'로 그 '딤채'가 다시 변한 말이며, 겨냥은 한 물건의 견본을 뜻하는 견양(見樣)에서, 상추는 생채(生菜)에서, 생쥐는 사향(麝香)쥐에서, 사랑은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사량(思量)에서, 그리고 서랍은 설합(舌盒)에서 나온 말이다.병자호란을 거치며 들어온 말도 있는데, 후레자식은 호노자식(胡奴子息) 곧 오랑캐 자식이란 뜻이며, 화냥년은 청에 끌려갔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란 뜻의 환향녀(還鄕女)가 변한 말이다. 참고로 호주머니는 청나라 복식으로 본래 우리 전통 한복에는 주머니가 없었다고 한다.지난 60년간 사용돼 왔던 일본식 용어인 문화재(文化財)가 '국가 유산'으로 바뀐다. 이에 따라 17일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개명됐다. 확실하지 않고 흐리멍덩하다는 말인 '흐지부지'는 한자어 '휘지비지(諱之秘之)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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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문재인 회고록 지면기사
정치인의 회고록으로 윈스턴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사'만한 대작이 없다. 종전 직후 총선에서 패해 수상직에서 물러난 전쟁영웅은 회고록 집필에 전념했고, 195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해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분야를 초월한 탁월한 천재성 때문에 가능했던 업적이다.처칠급이 아니면 회고록은 논란의 대상이 된다. 동시대인이 목격한 당대 사건에 대한 필자의 기억과 시선은 객관성 시비에 오를 수밖에 없고, 필자 자체가 논쟁적 인물이면 더욱 그렇다. 2021년 한 출판사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출판하자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보수단체와 탈북민 등이 판매·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우리 법원은 책으로 인한 피해와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반면 법원은 2017년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에 대해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했다며, 관련 부분 삭제를 판결했다. 전 전 대통령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 조비오 신부와 광주시민 등 왜곡 피해 당사자가 명확하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법리를 따랐을 테지만, 대한민국에 해를 끼친 범죄를 놓고 벌어진 김일성·전두환 회고록 논란은 가볍지 않다.지난 17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출간했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 회담에서 김정은이 "딸 세대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말한 사실을 공개하며 "상응 조치가 있다면 비핵화하겠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약속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문 전 대통령은 하노이 노딜로 물거품이 된 남·북·미 비핵화 외교가 두고두고 아쉬울 테다. 세차례 회동을 통해 김정은을 누구 보다 잘 아는 사람인 것도 맞다. 하지만 딸 김주애를 대동해 핵 전력 시험장을 순방하며 핵무장 유산을 물려주는 김정은의 행보를 전세계가 지켜보는 상황이다. 문 전 대통령이 도보다리에서 만난 김정은과,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김정은은 지킬과 하이드 만큼 양면적이다.윤상현 의원과 나경원 당선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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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김호중 소동 지면기사
가수 김호중은 한석규·이제훈 주연 영화 '파파로티(2013)'의 실제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낮에는 학교, 밤에는 유흥업소에서 일했다. 퇴학 위기에 놓인 김호중의 빛나는 재능을 알아보고 학교로 다시 이끌어준 서수용 선생님을 만나면서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돈이 없어서 음악을 포기했던 10대 소년은 성악 영재로 변신했다. SBS 예능 '스타킹'에 고등학생 파바로티로 출연 후 독일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 앨범을 내고 정식 가수로 데뷔한데 이어 미스터트롯 톱4까지 오른 인생역전 스토리는 감동과 희망의 아이콘으로 부족함이 없었다.호사다마인가. 석연찮은 교통사고와 비상식적인 대응으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자초했다. 지난 9일 밤 서울 강남구의 한 도로에서 SUV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서있던 택시를 들이받았다. 바퀴가 들릴 정도로 충격이 컸지만 운전자인 김호중은 아무런 조치 없이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2시께 김호중이 아닌 김호중의 옷을 입은 매니저가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차량 소유주가 김호중인 점을 들어 추궁했고, 매니저는 결국 자백했다. 김호중은 사고 17시간이 지난 다음날 오후 4시 30분이 돼서야 음주 검사를 받았고 음성이 나왔다. 사고 직전 유흥주점에 갔지만 술은 안 마셨고 공황장애라고 해명한다.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는 다른 매니저가 빼돌렸다. 조직적 은폐 의혹과 말 바꾸기에 여론은 싸늘하다.사태가 위중한데도 소속사는 사건 발생 직후인 11일과 12일에도 고양 공연을 강행했다. 시작된 투어 콘서트를 중단하면 수십억 대 손해는 당연하다. 소속사의 얄팍한 계산기가 작동했을 법하다. 매니저 약정금 반환 소송·불법 도박·병역특혜 의혹 등 논란이 있을 때마다 무한신뢰로 든든한 방패막이가 돼온 팬덤도 소속사가 버틸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싶다.김호중은 사고 즉시 현장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수습하지 못해 일을 키웠다. 음주운전이 아니라면 보험처리로 끝날 수 있던 사고였고, 음주운전이었다면 인정하고 자숙의 시간을 갖고 팬들의 용서를 구해야 했다. 하나의 거짓말을 덮으려면 일곱 가지 거짓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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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AI 시대'와 미지의 공포 지면기사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시즌1에서 중국 과학자 예원제는 "우리 문명은 더 이상 스스로 자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며 외계문명인 삼체를 지구로 초청한다. 하지만 구원자 삼체는 "우리는 거짓말쟁이와 공존할 수 없다"며 인류를 박멸해야 할 벌레로 규정한다. 일본 영화 '기생수'에서 외계생명체 '미기(오른쪽이)'는 주인공에게 말한다. "신이치, 악마에 대해 찾아봤는데 그에 가장 가까운 건 역시 인간인 것 같아."탐욕스러운 인류 문명에 대한 비판적 담론으로 허구의 개연성을 획득하는 방식의 전개는 공상과학 창작물의 흔한 작법이다. 창작물에서 외계 생명체와 쌍벽을 이루는 인류의 적이 '인공지능(AI)'이다. 1984년 개봉한 '터미네이터'의 서사는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인류를 적으로 간주해 핵전쟁을 일으키면서 시작된다.외계문명 삼체와 외계생물 기생수는 아직 공상의 영역에 갇혀있는 반면 AI는 현실에서 작동중이다. 인공지능이 인공(人工)의 영역을 벗어나 초월적 지능으로 독립할 가능성은 상상이 아닌 실제 상황이 됐다.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13일 새 모델 'GPT-4o'를 공개하자, 인류가 제2의 '오펜하이머의 순간'에 직면했다는 우려와 반론이 들끓는 배경이다.'GPT-4o'의 'o'는 모든 것이라 '옴니'(omni)를 의미한단다. 보고, 듣고, 말하는 수준이 인간과 거의 같다고 한다.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주변 상황을 기억하며 농담과 감탄사까지 구사한단다. 오픈AI 대표 샘 올트만이 인간과 AI가 연인으로 등장한 영화 '허'(HER)를 떠올린 것도 무리가 아니지 싶다. AI끼리 소통하며 스스로 진화할 수도 있다니 놀랍다.AI가 발전할수록 인류 문명은 혼돈에 빠질 듯하다. AI 등장으로 인문학 분야의 직업들이 사라지고, AI가 정치·경제·사회의 주역이 된다면 인류문명의 본질이 모호해진다. 인류 대다수가 영화처럼 AI와 노닥이는 동안, 악당들은 무인전쟁과 대형범죄에 악용해 전지구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최악은 예상대로 AI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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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괘불 지면기사
괘불(掛佛)은 불교 의식에 쓰이는 불화로서 족자처럼 걸도록 제작된 초대형 그림이다. 망자를 위한 천도재와 영산재, 생전에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예수재 그리고 그 외에 법당 밖에서 열리는 야외법회 때 내걸리는 그림이 바로 괘불이다. 이 중에서 영산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불교의식으로 태고종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바, 망자를 위한 천도재의 하나로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행한 영산회상을 재현한 불교의식이다. 이를 '영산작법'이라고도 한다.임진왜란 이후 1945년 광복 직전까지 제작된 괘불은 현재 117점이 현전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서 54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현전하는 괘불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은 나주 죽림사 '세존괘불도'로 1622년에 제작됐으며 보물 제1279호로 지정돼 있다. 괘불도는 보통 죽림사 괘불처럼 석가세존 등 한 명의 불보살상을 그린 '독존도', 여러 부처와 존자들을 그린 '다불도'와 '다존도', 수많은 보살과 나한과 천신 등을 그린 '군도'가 있다.이 중에서 죽림사 괘불은 석가세존만을 그린 '독존도'인데, 이 불화는 데리다가 제시하는 해체철학의 핵심 개념인 '파레르곤(parergon)'의 독법과 딱 들어맞는다. 통상 우리는 사물이나 사건 또는 인물을 볼 때 자기의 관점, 이른바 프레임을 가지고 보게 된다. 이처럼 사고의 테두리와 한계를 갖는다는 것은 관점의 협소함과 편견을 유발하게 된다. 데리다의 '파레르곤'에 의하면, 어떤 작품이든 작품을 둘러싼 액자와 테두리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작품에 대한 느낌과 인식이 달라지게 된다고 한다. 작품을 한정 짓는 액자와 같은 테두리를 치워버리면 작품과 사물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죽림사 괘불 석가세존은 독존도로서 법회에 참여한 그림 밖의 사람들 모두를 불화의 일원으로 참여시키는 의미가 있다.반면,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진천 영수사 괘불'은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현전하는 괘불 중 가장 많은 140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화기(畵記)에 161명의 시주자 명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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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대법원 양형위원회 지면기사
법원조직법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목적을 "형(刑)을 정할 때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量刑)을 실현하기 위하여"로 규정해 놓았다. 하지만 재판 현실은 딴 판이다. 중대 범죄자의 가벼운 형량으로 국민의 상식을 거스르는 바람에, 법원의 정의구현은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됐다.현행 사기죄 형량은 10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이다. 피해자가 다수인 범죄를 경합해도 최대 15년 징역형 선고만 가능하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범 남모씨가 지난 2월 1심에서 15년 형을 받은 이유다. 남씨의 15년 형은 684가구 550억원의 사기 범죄 대가다. 청년 4명이 좌절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680여 가구의 사기 피해로 추가 기소됐다. 그래도 15년이 선고형량 한계다. 이게 정의인가.분당 흉기난동 사건 피해자 유족들은 범인 최원종이 항소심에서 감형받을까 노심초사 중이다. 유족은 딸이 사망할 때까지 병원 치료비를 검찰로부터 지원받았다. 검찰이 범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고 선지급한 피해자 지원금이다. 그런데 범인의 변호인들이 이를 피해 보전 근거 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했단다. 실제 감형 사유로 판단한 판례가 있다고 한다. 유족들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검찰 지원금을 받았을지 의문이다. 항소심 재판에서 최원종이 무기징역을 면하면 유족들은 사망 피해자인 딸에게 못할 짓을 한 셈이 된다. 이게 정의인가.범죄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형량은 비상식적이고, 감형 사유 대부분이 시대착오적인 탓에 법적 정의 실현은 지연되고 좌절된다. 글로벌 코인 사기범 권도형은 미국 법원이 아니라 한국 법원에서 재판받으려 몬테네그로에서 법정투쟁을 벌인다. 조두순은 어린 영혼과 육체를 말살하고도 12년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했다. 부산 돌려차기 폭행범의 20년 형에 피해자는 20년 뒤에 나는 죽을 수도 있다며 절규했다.사기범죄 양형기준이 워낙 미미하니 늘려봐야 거기서 거기일 테다. 정부가 지난해 입법에 나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국회 법사위에 머물다 폐기될 운명이다. 22대 국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