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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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명품주택과 양극화 지면기사
평소대로 살았는데 내 통장은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텅장'이다. 소득의 양극화는 곧 소비의 양극화다. 짠내 나는 염전족과 노머니족(꼭 필요한 곳에만 최소 지출),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 해결)과 핫딜 노마드족(온라인 쇼핑몰에서 특정 시간대 할인가 비교 쇼핑), 모루밍족(오프라인에서 제품 보고 모바일로 쇼핑)은 서민의 다른 이름이다.양극화는 이미 사회 전 분야로 번져 국가적 문제가 됐다. 특히 빚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부자들은 이자 부담을 줄이려고 대출 갚고 지출 방어에 나서는데, 서민들은 생활비가 부족해 상환은커녕 추가로 빚내는 형국이다. 실제로 10억원 이상 부자들의 평균 부채 규모는 지난해 4억8천만원으로 전년보다 2억3천만원이나 줄었다. 하지만 채무불이행자 수는 올 들어 3개월동안 1만1천669명이 늘어나 1분기말 68만6천178명이 됐다.서민의 고통지수는 높아만 가는데 현실감 없는 뉴스가 보인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명품 브랜드 펜디가 인테리어를 맡은 초고가 복합주택이 들어선단다.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로 아파트 29가구(248㎡)와 오피스텔 6호실(281㎡), 근린생활시설이 올 9월 착공 예정이다. 유명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하고 명품 브랜드 가구와 카펫, 식기까지 구비된다. 맞춤형 럭셔리 인테리어는 물론이다. 분양가는 200억~300억원대로 예상된다. 한술 더 떠 분양대금만 있다고 입주할 수 없는 하이엔드 명품주택이다. 펜디 까사 본사가 직접 입주자 직업군과 자산 규모 등을 심사한다. 30가구 이상 아파트를 분양할 때 청약 등 법에서 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현행 주택법을 적용받지 않도록 딱 29가구만 짓는다.드라마 속 재벌가 이야기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웃어넘긴다. 그런데 드라마가 현실이 되면 서민들은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자산으로 만들어지는 서열사회", "21세기형 계급제의 부활"이라는 푸념과 "자기 재산으로 누린다는데 어쩌겠냐", "이미 드라마는 현실이다"라는 자조가 상충한다. 한국사회는 중간이 실종되고 상·하 극단이 비대해지는 모래시계 구조가 심화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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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국민음식'의 불안한 미래 지면기사
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대형 김 생산업체들은 판매가를 10~30% 가량 올렸고, 지난달 마른김 도매가격은 1년전 보다 80% 급등해 속(100장)당 처음으로 1만원을 넘겼단다. 덩달아 김밥 가격도 오르고 있다. 김값 고공행진은 수출이 늘어 재고가 감소한 탓이다. 지난해 김 수출액이 7억9천만 달러로 한국은 세계 최대 김 수출국이다. 김이 건강식품으로 각광받자 김과 김밥 수출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생산량 증가에 비해 수출량 증가가 압도적이라 국내 유통물량이 부족하니 가격 폭등은 당연하다. 한류의 역풍이다.어느 나라나 공동체의 정서적 유대를 상징하는 국민음식이 있다. 김도 그렇다. 산업화 시대의 소풍 도시락은 김밥이었다. 빈부와 계층의 격차로 속재료는 달랐지만 김 한장으로 둘둘 말면 '김밥'으로 평등해졌다. 조리법이 단순한 김은 김치와 함께 부자나 가난한 자의 밥상에서 평등한 맛을 구현하는 반찬이었다.김 파동이 일자 정부는 할당관세 0% 품목에 김을 포함시켰다. 최대 김 생산국은 중국이다. 중국산 김이 시장에 풀린다. 물가는 잡을지 몰라도 국민 반찬으로 지켜 온 국민적 연대는 깨진다. 지난해 김치 수출은 4만4천여t, 1억5천561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였다. 하지만 수입량이 28만6천여t, 1억6천357만6천달러다. 전량 중국산이다.김치 종주국이 세계 최대 김치 수입국이 된 건 소비 격차 때문이다. 경제력에 따라 값비싼 국내산 재료로 만든 국산 김치 소비층과 알몸 김치 파동을 겪은 중국산 김치 소비층으로 나뉜 것이다. 중국산 김이 수입되면 같은 현상이 벌어질 테다. 프랑스 국민에게 바게트를, 독일 국민에게 소시지를, 이탈리아 국민에게 파스타를 수입해 공급하면 국민이 봉기할 것이다. 민족 정체성의 상징인 국민음식을 함부로 수입품으로 대체하는 건 정권을 걸어야 할 일이다.작은 국토의 기후 온난화 재해는 더욱 치명적이다. 사과 파동에서 보듯 토종 농수산물의 재배 한계선이 북상하고, 작황은 기후변동으로 해마다 널을 뛴다. 사과는 북한에서 수입해야 할 판이고, 배추·고추·마늘은 번갈아 김장 공포를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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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백년가게·백년소공인 지면기사
"우리는 보틴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중 하나다. 우리는 새끼돼지구이를 먹고 리오하 알타 와인을 마셨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장편소설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1926)'에 레스토랑 보틴(Botin)이 등장한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이 레스토랑은 지난 1725년 문을 열어 300년째 영업 중이다. 기네스북으로부터 인증서까지 받았다. 단골손님 헤밍웨이는 굉장한 PPL(간접광고)을 작품 속에 남긴 셈이다. 헤밍웨이가 영감 받던 그 공간에서 역사와 문화를 향유하는 식객은 감동할 수밖에 없겠다.일본에는 와(和) 문화가 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 맡은 자리에서 할 일을 하면서 조화를 이룬다는 사고방식이다. 오래된 가게들 주변에 비슷한 가게를 차리기도 꺼린다. 가게 터를 잡고 오래 버티다 보니 노하우도 쌓이고 자연스럽게 장수가게가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100년 이상 된 가게·기업이 2만7천여개, 무려 1천년 넘는 곳도 21개나 되는 이유다.우리나라도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지난 2018년부터 운영하는 제도 '백년가게·백년소공인'이다. 백년가게는 업력 30년 이상, 백년소공인은 업력 15년 이상의 지역사회 터줏대감들이다. 올 4월말 기준 전국 백년가게 1천369곳, 백년소공인 956곳이 지정되어 있다. 경기지역은 각 190곳·230곳, 인천지역은 각 47곳·40곳이다. 하지만 오래된 가게를 팔 걷어붙이고 키워도 부족할 판에 제도시행 7년차만에 길을 잃었다. 올해 정부 예산이 23억원에서 4억원으로 80% 넘게 깎인 탓에 신규 가게·업체 지정마저 올 스톱이다. 지역 소상공인을 힘 빠지게 하는 변덕스러운 정책이다.우리나라 소상공인의 1년 차 생존율은 64.1%, 3곳 중 1곳이 몇 개월 만에 셔터를 내린다. 5년 차까지 버티는 곳은 겨우 34.3%뿐이다. 코앞에 동종업종 간판이 달리는 일이 허다한 약육강식 상권이다. 최악의 조건에서 장인정신을 대물림하는 우리 백년가게·백년소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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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아버지 부재 시대 지면기사
아버지를 뜻하는 한자 아비 부(父) 자는 도끼 부(斧) 자와 자형이 유사하다. 그 이유는 도끼가 노동과 권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때로 도끼는 결연한 의지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구한말 흥선대원군의 섭정 중단과 고종의 친정을 주청했던 면암 최익현의 도끼 상소가 비근한 예다.문학의 오랜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아버지 찾기'다. 유명한 고전의 상당수가 다 아버지를 찾거나 아버지 부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그린 경우가 많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대표적이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인 선왕을 죽이고 어머니 거트루드와 결혼하고 왕위에 오른 숙부 클라우디우스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 명작이다.'일리아드 오디세이'를 소재로 한 프랑수와 드 페늘롱의 소설 '텔레마코스의 모험'도 아버지 찾기다. 아버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하자 왕위를 노리는 자들로 넘쳐난다. 소설은 루이 14세의 손자를 위해 쓴 작품으로 텔레마코스가 스승 멘토르와 함께 모험하면서 제왕학을 익힌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텔레마코스가 모험을 감행하는 까닭은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찾아 모든 혼란을 종식시키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고대 그리스 비극의 대표작 에우리피데스의 '오레스테스' 역시 아버지를 위한 복수가 핵심이다. 어머니 클뤼타이메드가 정부인 아이기스토스와 짜고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인다. 이를 모르고 아버지를 찾다 결국 어머니와 정부를 죽여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완수한다. 그러나 여동생인 클뤼타이네스트라는 왜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함으로써 희대의 비극적 상황이 연출된다.그런가 하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등장하는 인물인 스티븐 디덜러스의 이야기는 혈연의 아버지를 떠나 정신의 아버지를 찾는 얘기다. 그의 아버지 사이먼 디덜러스는 경제적인 실패로 부르주아 중산층에서 밀려난 인물이다.현재 사회를 아버지 부재 사회라 한다. 아버지 부재 상황은 전통적 가부장제의 소멸과 여권 신장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직장에 매여 집에 없고 늘 부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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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평화누리특별자치도' 지면기사
경기(京畿)라는 이름이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018년 현종 8년 때다. 당나라에서 도성 안을 경현(京縣), 밖을 기현(畿縣)으로 구분했던 데서 비롯됐다. 당시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부터 사방 500리를 아울렀다. 경기의 기(畿)자는 전(田·밭)+과(戈·창), 즉 도성 관리를 위한 녹봉을 책임지는 곳, 도성의 방어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경기도를 기전(畿甸) 지역이라 하는 이유다. 강원도를 관서·관동, 전라도를 호남 등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경기도는 대한민국 국토 면적의 10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인구의 4분의 1 이상(1천363만명)이 밀집해 사는 곳이라 선거 때마다 이슈의 중심에 서 있다. 경기분도론은 1987년 대선 때부터 경기북부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등장했다. 선거가 끝나면 조용히 퇴장했다 선거철 다시 살아나는 단골 메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지난 2022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올 4월 22대 총선에서 여권이 서울 편입론과 서울 메가시티론을 띄우면서 공방이 오갔으나, 야권의 압승으로 요란했던 편입 바람은 사그라들었다.김동연 지사는 지난해 3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로드맵을 발표한데 이어 올 1월 18일부터 2월 19일까지 새 이름 대국민 공모전에 나섰다. 지난 1일 경기도청 북부청사 평화누리홀에서 열린 대국민 보고회에서 의수 화가 석창우 화백의 붓끝을 통해 새이름 '평화누리특별자치도'가 공개됐다. 무려 5만2천435대 1의 경쟁을 뚫고 선정된 새 이름이다. 세 차례 전문가 심사와 온라인 투표를 거쳤다.김 지사는 대국민 보고회에서 "마라톤으로 따지면 최종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한 마지막 구간에 도달한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행정안전부가 주민 투표를 승인하지 않은 데다 특별법 입법도 22대 국회에서 재추진해야 한다. 설상가상 새 이름이 발표된 당일 경기도민청원 홈페이지에 분도 반대 청원이 올라와 하루 만에 3만명 넘게 동의했다. 1만명이 넘으면 김 지사가 직접 답변해야 한다. 국가 개조급 현안인 경기 분도는 경기도만 나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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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인천시 명예도로명 지면기사
로마는 돌을 깔아 포장한 8만㎞의 375개 간선도로로 제국을 지배했다. 제국을 향해 뻗은 혈맥의 시작점이 바로 기원전 4세기 초에 건설된 '아피아 가도'다. 로마는 이 도로를 건설해 이탈리아 반도를 석권한 뒤, 이 도로 부터 길을 내며 제국을 확장했고, 영국에 하드리아누스 방벽으로 국경을 세웠을 때 최전성기를 맞았다. 아피아 가도는 모든 길의 어머니가 됐고, 가도를 건설한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도로명으로 영원히 남았다.사람과 물류가 끊이지 않는 길의 영속성은 위대한 인물을 기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우리도 해방 직후 일제식 도로명을 새롭게 고치면서 위인들을 대거 소환했다. 일제 명칭인 혼마치(本町)와 고가네마치(黃金町)를 '충무로'와 '을지로'로 고쳤다. 충무공과 을지문덕을 소환해 국치를 씻어낸 것이다. 명군 세종과 명신 이황도 '세종로'와 '퇴계로'로 오늘을 산다.도로명주소제가 도입되면서 인물 도로명이 눈에 띄게 늘었다. 역사적 인물에서 지역 정체성을 찾으려는 지자체들의 경쟁 덕분이다. 경기도에도 수원 정조로, 화성 세자로(사도세자), 여주 세종로·명성로(명성황후), 파주 사임당로·율곡로 등이 있다. 5만원권의 주인공인 사임당은 서울과 강릉에도 길을 갖고 있으니, 아들 율곡의 명예를 한참 앞선다.인물 도로명을 정할 때는 해당 인물의 역사적, 사회적 평가가 엄정해야 한다. 자칫하면 '정율성' 처럼 사회적 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천의 '양녕로'는 양녕대군이 기릴만한 수준의 인물인지 의아하고, 화성의 '최루백로'는 수많은 효 설화의 주인공이기에 독창성이 부족하다.인천시가 최근 명예도로명 9개를 발표했다. 명예도로명은 법정 도로명에 국제교류, 역사, 특정인을 기리기 위해 추가로 부여하는 이름이다. '이승훈베드로길' '최기선로' '윤영하소령길' '송암박두성길' '공양미삼백석길' '고유섭길' '해양경찰로' '수인선바람숲길' '재외동포청로' 등 인물, 역사, 문화, 시정을 망라한 도로명들인데, 개인적으론 공감과 위화감이 교차한다.'윤영하소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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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4월 모기 지면기사
인류보다 먼저 지구에 터 잡은 모기는 끈질기게 사람을 괴롭혀왔다. 백악기(기원전 1억4천500만~6천600만년)에 출현한 작은 모기는 살아남고, 주인공인 거대 공룡들은 멸종됐다. 보통 15㎜, 무게 2~3㎎의 모기는 지구상에서 살인을 가장 많이 하는 동물이다. 말라리아, 뇌염, 황열병, 뎅기열 등을 전파해 매년 약 7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뱀이 1년에 죽이는 사람이 5만명, 개가 2만5천명, 체체파리가 1만명, 인간은 47만5천명이다. 인간보다 무서운 '죽음의 사자'가 모기인 셈이다.모기는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말라리아는 고대 로마부터 인도와 중국까지 이미 5·6세기에 풍토병으로 자리잡았다. 1594년 4월 임진왜란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3도 수군 병력 2만1천500명 중 5천663명이 말라리아에 걸려 1천904명이 사망했다. 당시 왜군과의 전투 사망자가 150명인 것에 비하면 매우 심각한 피해다.이상 기온으로 4월부터 모기떼가 출몰하고 있다. 기상청이 집계한 올해 4월 평균 기온은 지난 29일 기준 경기 14.9℃, 인천 14.5℃로 지난 10년 중 가장 높다. 겨울이 짧아지고 봄·여름은 길어지면서 아열대기후화되고 있다. 모기는 9℃에 날기 시작하고 13℃ 이상에서 흡혈한다. 통상 5월부터 모기 개체 수가 급증하는데 매년 등장 시기가 빨라져 걱정이다.비행기나 선박을 통해 뎅기열과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등을 유발하는 모기종이 국내에 유입된다. 국내 말라리아 환자 수는 지난해 747명으로 3년 연속 증가세다. 경기·인천지역에서만 560명(75%)이 감염돼 무려 12명이 사망했다. 바이러스를 옮기는 흰줄숲모기는 겨울철에 대부분 죽기 때문에 아직까지 바이러스가 다음 해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1월 평균기온이 10℃ 이상 되면 성충은 살아남게 된다. 머지않은 미래, 365일 모기에 시달릴 수도 있다.지구는 모기의 바이러스 공격에 이미 무방비다. 신기술로 모기의 게놈을 조작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지구온난화가 본질이다. 다산 정약용은 '모기를 증오한다'는 의미의 '증문(憎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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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칸트, 기윤 그리고 독서 정책 지면기사
올해 300주년을 맞는 인물들이 있다. 서양철학의 대명사 임마누엘 칸트와 청나라 문신 기윤(紀윤)은 모두 1724년생으로 올해가 탄생 300주년이다. 그런가 하면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도 즉위 300주년이다. 왕세제였던 연잉군 영조는 30세가 되던 1724년 즉위하여 1776년까지 무려 52년간 재위했다. 조선의 왕들 가운데서 제일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다.독일 관념 철학의 완성자 칸트는 단순하고 정확한 삶을 살았다. 평생을 쾨니히스베르크에 살았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기상하여 홍차를 마시고, 7시에 강의하고 9시에는 집필을 했으며, 1시에 지인들과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3시가 되면 산책을 했다.기윤은 희대의 천재였으나 시대를 잘못 만나 편찬 사업으로 일생을 보낸 불우한 학자였다. 청의 통제로 역량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사고전서'의 편찬에만 매달렸다. '사고전서'는 명나라 때 최고의 백과사전인 '영락대전', 청 강희제의 최대 업적인 '강희자전'과 유서(類書)인 '고금도서집성'과 함께 건륭제 시대 최고의 업적인데, 공교롭게도 '순수이성비판'이 나온 1781년에야 완성됐다. '사고전서' 편찬을 총괄한 학자가 바로 기윤이다. 기윤이 쓴 지괴소설 '열미초당필기'는 1천244종의 이야기가 수록된 저작물로 '요재지이'처럼 귀신과 여우 등 신비한 이야기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사고전서'는 워낙 방대한 양이라 찬수(撰修)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목판으로 간인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하여 대추나무로 만든 목활자를 이용했는데, 이를 '취진(聚珍)'이라 한다. 수원화성 축성의 전 과정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를 인쇄한 정조 연간의 활자를 정리자라고 하는데, 정리자는 '사고전서 취진판'을 모방하여 만든 금속활자다.오늘 우리가 먹은 세 끼 식사와 일상생활 속에는 수많은 이들의 땀과 노고와 은혜가 숨어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리는 삶과 정신문명의 발전은 수많은 예술인·학자·사상가들의 덕택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6명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독서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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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고장난 한국 축구 지면기사
"너무 기쁘고 행복하고 기분이 좋지만 마음 한편으로 착잡하고 힘들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감독이 한국을 꺾고 난 뒤 남긴 소회다. 한국은 지난 26일 U-23(23세 이하)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에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했고, 파리 올림픽 출전도 불발됐다.'공은 둥글다'는 격언대로 축구에선 의외의 결과가 속출한다. 대한민국의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은 세계 축구사의 가장 충격적인 이변 중 하나로 꼽힌다. "항상 독일이 이기는 게임이 축구"라는 찬사를 들었던 독일 축구는 러시아 월드컵에선 한국에, 카타르 월드컵에선 일본에 잡혀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참사를 겪었다.최근 아시아 축구 변방들의 활약이 눈부시고 그 중심에 한국 지도자들이 있다. 베트남의 '박항서 매직' 을 신태용, 김판곤 감독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재현하고 있다. 국가 대항전에서 패배가 당연했던 국대팀들이 면모를 일신하자 세 감독은 각국에서 2002년 대한민국의 히딩크급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인도네시아 국민은 신 감독을 '한국 최고의 수출품'이라고 환호한다.반면 아시아 축구 강국 한국은 잇따라 이변의 제물이 됐다. 손흥민·이강인·김민재 등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중인 스타 플레이어들로 64년만의 우승을 장담했던 아시안컵에서는 요르단에 덜미를 잡혀 4강에서 탈락한데 이어, 2개월여 만에 동생들이 또 다시 카타르 참사의 희생양이 됐다.한국 축구가 단단히 고장났다. 한국 감독들을 만난 아세안 국가 대표팀들이 2002년 한국 대표팀처럼 신바람을 내는 동안, 한국은 감독보다 스타들에 의존하면서 '팀 코리아'가 무색해졌다. 축구만의 얘기가 아닐 듯 싶다. 인구와 자원이 풍부한 아세안 국가들은 언제든 한국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성장의 기본을 닦고 성공의 경험이 쌓이면 잠재력은 폭발한다. 아세안 국가들의 제조업은 한국을 대체 중이다.신 감독은 조국의 10연속 올림픽 출전을 막은 심정이 착잡할 테지만, 우리 축구팬들은 팀 대신 선수만 남은 한국 축구가 착잡하다. 축구는 감독의 리더십과 선수들의 조직력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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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복원 완료된 화성행궁 지면기사
의궤(儀軌)는 국가적인 의례나 행사를 정리한 백서다. 특히 정조는 왕실 활동·정책은 물론 문화·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활자와 그림으로 상세히 기록하도록 했다. 화성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도, 화성행궁 복원이 가능했던 것도 화성성역의궤 등 기록문화 덕분이다. 화성성역의궤는 각종 시설물 도면, 축조 기술, 자재 가격, 공사에 참여한 백성들 이름까지 담아냈다.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됐다. 567칸의 정궁(正宮) 형태로 조선시대 지방에 건립된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다. 평상시에는 관청으로, 정조가 수원에 행차할 때는 궁실로 쓰였다. 단순히 잠시 머무르는 행궁 개념이 아닌 정조의 장기적인 개혁 추진 공간이었다.화성행궁은 일제강점으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조선통감부의 압력이 작용했다. 그해 우화관에 수원군공립소학교가 들어서고, 1911년 봉수당은 자혜의원으로, 낙남헌은 수원군청으로, 북군영은 경찰서로 사용됐다. 급기야 1923년 일제는 화성행궁 일원을 허물고 경기도립병원을 신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89년에는 경기도립병원을 현대식 건물로 신축하겠다는 발표가 났다. 이때 민-관의 열망과 노력으로 화성행궁 복원의 단초가 열렸다. 같은 해 10월 수원 출신 서지학자 고(故) 이종학 선생 등 42명이 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 창립총회를 열었고, 우여곡절 끝에 복원의 첫 삽을 떴다. 그리고 2002년 7월 봉수당(奉壽堂) 등 482칸에 이르는 1차 복원이 완료됐다.2013년 신풍초등학교가 이전하면서 우화관 등 후속 복원사업도 속도를 냈다. 우화관은 임금을 상징하는 전(殿) 글자를 새긴 나무패를 모신 화성유수부 객사(客舍)다. 1795년 혜경궁 홍씨 회갑 진찬연 때 70가지 음식을 준비하고, 음식예법 문서를 보관한 별주(別廚)까지 35년의 복원사업이 지난 24일 마무리됐다.시민들은 119년 만에 드디어 화성행궁의 완전체를 볼 수 있게 됐다. 건축물 복원을 뛰어넘어 상하동락(上下同樂) 대동세상(大同世上)을 꿈꾼 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