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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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원로 이길여 총장의 편지 지면기사
춘추시대의 패권을 다투던 제나라 환공이 고죽족을 정벌하고 돌아오던 중 길을 잃자 관중이 늙은 말을 풀어놓았다. 전군이 뒤를 따르니 이윽고 큰 길을 찾았다. 늙은 말의 지혜, 노마지지(老馬之智) 고사의 유래다. 군대가 길을 잃으면 말을 풀어놓듯이, 사회와 나라가 길을 잃으면 원로에게 지혜를 구한다.로마의 원로원(senatus)은 건국 초기 왕에게 조언하던 부족 장로들의 모임에서 기원했다. 현대에선 양원제 국가의 상원이 명맥을 잇는다. 존 매케인은 자신의 지지자가 대선 경쟁자인 버락 오바마를 "아랍인"이라 비난하자 "그는 훌륭한 시민"이라고 면박을 주었다. 정치적 금도(襟度)의 본보기를 남긴 상원의원 매케인은 고인이 됐지만 미국 정치가 미로에 빠질 때마다 길잡이로 소환될 것이다.이길여 가천대학교 총장이 지난 8일 의대생들의 수업 복귀를 호소하는 편지를 대학 홈페이지에 게시하자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이 총장은 편지에서 "긴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일을 겪었다"며 "피난지 부산 전시연합대학에 전국의 의대생들이 모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같이 공부하던 남학생들은 학도병으로 나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다"며 "나는 그들에게 빚이 있고, 그들 몫까지 다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지금 전쟁이 터져도 다르지 않을 테다. 피난지에 전시연합대학을 세워 교수들은 강의하고 학생들은 공부할 테고, 그래야만 한다. 올해 92세인 이 총장은 의업(醫業) 외길에 매진해 온 원로다. 가천대와 가천대의대는 환자를 위해 청진기를 가슴으로 데우던 의사 이길여의 초심이 평생 무르익어 솟아난 '가천(嘉泉)', 아름다운 샘이다. 의대생을 향해 "강의실로 돌아오라"는 원로 의사 이 총장의 호소가 묵직한 이유는 일가를 이룬 인생의 무게 때문이다.이 총장의 호소에도 의대생들은 수업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집단 유급 사태가 목전이다. 의사단체들이 이 총장의 호소에 동참해야 한다. 정부와 전쟁을 해도 의대생들은 강의실로 보내야 어른이고 의사답다. 원로의 조언을 가볍게 여기면 업계의 권위와 대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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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전등사 솔로 탈출 지면기사
결혼을 기피하는 시대에 연애 리얼리티 콘텐츠는 화제성을 낳으며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나의 결혼은 시큰둥해도 타인의 연애에는 몰입한다. 사랑의스튜디오(1994.10~2001.11)부터 짝(2011.3~2014.2), 나는 솔로(2021.7~ )까지 수많은 콘셉트가 쏟아진다. 헤어진 연인들이 모여 새 연애 상대를 찾거나 골프를 치면서 데이트를 즐긴다. 돌싱의 연애를 관찰하고 동성간 매칭을 다루기도 한다. 지상파, 종편,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유튜브 등에서 '썸' 타는 프로그램들이 간판이다.연애세포를 깨우는 청춘남녀들의 만남이 천년고찰로 무대를 옮겼다. '나는 솔로'가 아닌 '나는 절로'다. 솔로탈출을 간절히 원하는 30대 스무명이 강화 전등사에 모였다. 결혼기피 세태와 세계 최저 출산율에 불교계가 나서 1박2일 단체미팅을 주선했다. 신선하고 유쾌한 시도다. 남녀 10명씩 총 20명 모집에 337명이나 지원했다. 남자 14.7대 1, 여자 19대 1로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MZ세대는 어색한 맞선·소개팅보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선호하고 낯선 경험 자체를 힙(hip)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취향저격이다.저출산·고령화 극복 교육을 받은 뒤 소원지에 각오와 설렘을 담아 대웅전 연등에 매달면서 일정이 시작된다. 자신이 정한 가명으로 참여한다. 사전정보 없는 상태에서 만나기 때문에 선입견도 없다. "고즈넉한 곳에서 마음을 내려놓으니 이야기가 잘 통합니다", "전문 레크리에이션 MC가 진행하는 게임도 하고 수학여행 온 기분입니다" 풍경소리 들리는 천년고찰에서 힐링과 만남을 동시에 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법복을 입고 벚꽃 흐드러진 오솔길을 산책하면 속세는 금세 잊게 된다.불교에서는 인연의 무게를 겁(劫)으로 헤아린다. 겁은 천년에 한 번 떨어지는 물방울이 4방 1유순(약 15㎞)의 바위를 뚫는 시간이다. 부부가 된다는 건 8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니 기적 같은 일이다. 사찰 안 청춘남녀는 하루 동안 길을 동행하는 것만으로 2천겁의 인연을 맺었다. 전등사의 '나는 절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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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낙랑클럽과 '낙랑'의 유전(流轉) 지면기사
언어도 운명이 있고 부침을 겪는다. 어떤 언어는 귀한 대접을 받고, 어떤 언어는 유행어가 되거나 사어가 되며, 어떤 언어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최근 선거 유세 과정에서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된 단어가 있다. '낙랑'이란 말이 그렇다.낙랑(樂浪)은 역사학계의 뜨거운 쟁점이다. 전한 무제가 위만 조선을 무너뜨리고 세운 한사군의 하나가 낙랑인데, 이 낙랑이 한반도 안에 있었는가, 한반도 밖에 있었는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동경제대 교수 세키노 다다시·경성제대 교수 이마니시 류·와세다대 교수 쓰다 소키치 등의 식민사학자들은 한사군이 대동강 주변에 있었고, 따라서 한반도는 식민의 역사이며, 정체된 나라였다는 식민사학 이론을 널리 유포했다.그런가 하면 낙랑은 1930년대 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문화예술의 산실이기도 했다. 끽다점(喫茶店) '낙랑파라'가 그것이다. '낙랑파라'는 이상·박태원·구본웅 등 예술인들의 아지트였고, 서양화가 길진섭의 전시회가 열리는 등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공간이었다. 위치는 현 서울시청 맞은편 플라자 호텔 인근이었다. '낙랑파라'의 주인은 이순석 서울대 미대 교수였다. 이순석 교수는 '이명래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의 막내동생으로 본래 이름은 이평래다. '낙랑파라'는 '낙랑'이란 단어에 응접실을 의미하는 영어 팔루어(parlour)의 일본식 축약 표현인 '파라'를 결합시켜 만든 신조어다.낙랑이 다시 전면에 부상한 것은 해방 직후였다. '낙랑클럽'이 그렇다. '낙랑클럽'은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김활란 총장과 시인 모윤숙이 만든 고급 사교클럽이었다. '우리는 점령군이다, 우리의 명령을 따르라'는 요지의 '맥아더 포고문'에서 보듯 미군은 은인이면서도 두려운 존재였고, 당연히 미군의 일거수일투족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낙랑클럽'은 미군정청 소속 미군 장교들과 교분을 쌓고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신생 대한민국의 외교 채널이었다.'낙랑'이 22대 총선 과정에서 다시 뜨거운 쟁점으로 불거졌다. 이처럼 언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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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일식(日蝕) 소동 지면기사
"임금이 소복을 입고 인정전의 월대위에 나아가 일식을 구(救)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4년 1월 1일의 기록이다. 세종은 새해 첫날부터 구식례(救蝕禮)를 치렀다. 태양이 달에 먹히거나 좀먹힌 현상이 일식(日食/日蝕)이다. 왕을 상징하는 해를 신하를 의미하는 달이 가리니 흉조다. 서둘러 해를 구하는 의식이 구식례인데, 정확한 시간에 의식을 치러야 한다. 일식 시간이 예상보다 일각(15분) 늦자 세종은 천문관리 이천복에게 곤장을 쳤다.현대의 천문학자들이 곤장 맞을 일은 없다. 일식, 월식은 물론 혜성의 출현을 분 단위까지 확정할 수 있는 과학 덕분이다. 우주탐사선 보이저1호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한 지구 사진을 전송하고 태양계와 작별한 때가 34년 전인 1990년의 일이다.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는 대신 구름씨앗을 뿌려 인공강우를 만드는 시대이니, 주기적인 천문현상도 초대형 우주쇼로 수년 전부터 흥행거리가 된다.미국이 난리가 났다. 8일 낮 12시18분(현지시각)부터 2시간40분 동안 발생하는 개기일식을 보려고 수백만명이 나이아가라 폭포 등 일식 명당을 찾아 나섰다. 미 대륙에선 7년 만의 개기일식인데, 넓은 국토 탓에 뉴욕은 99년, 오하이오주는 218년만의 일식이란다. 메이저리그 낮 경기가 밤으로 변경되고, 교도소 재소자들은 "일식을 보게 해달라"고 주정부에 소송을 냈다니 이런 소동이 없다.지구 반대편 미국의 개기일식이니 당연히 우리는 볼 수 없지만, 우리 땅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하기는 쉽지 않다. 1948년 개기일식 같은 금환일식이 가장 최근의 일식 관측이다. 2035, 2041, 2063, 2095년에 개기일식과 금환일식이 번갈아 오는데 남한에선 관측이 거의 불가능하고 북한에서나 잠시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한반도가 작아 지구-달-태양의 일직선에 걸리기가 그만큼 힘든 탓이다.일식 관측이 힘들 정도로 작은 나라에서 일식 같은 현상이 범람한다. 환자를 뒷전에 두고 정부와 의사가 싸우고, 총선판에선 택도 없는 후보들이 뻔뻔하게 국민의 선택을 요구한다. 이권이 명분을 잡아먹고 권력이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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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특수교실 녹음전쟁 지면기사
특수교육 현장에서 녹음전쟁이 한창이다. 이른바 '주호민 사건' 이후 녹음기를 소지하고 등교하는 장애학생들이 늘고 있다. 전국특수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올해 1학기 개학 이후 한 달간 녹음기가 발견된 사례가 50여건에 달한다.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한 학부모들은 녹음기를 가방에 넣었다. 옷소매 안에 바느질로 숨기기도 한다. 20여일 동안 반복적으로 녹음기를 사용한 경우도 확인됐다.불안해진 교사들은 사비를 털어 녹음방지기를 구입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혹시 모를 아동학대 민원에 대비한 자구책이다. "트집 잡히지 않을 말만 하는 영혼 없는 AI가 돼야 하나" 한탄한다. 지난해 서이초 사건 등 잇단 교권침해를 겪으면서 교사들은 집단적 방어기제로 무장했다.지난 2월 1일 웹툰작가 주호민씨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특수교사 A씨에게 1심에서 유죄판결(벌금 200만원 선고유예)이 내려졌다. 교원단체들은 "특수교사들은 장애학생들을 밀착 지도하는 과정에서 폭행·폭언까지 감내하면서 교육과 안전·생활지도를 위해 버텨왔다"면서 "교실이 불법 녹음장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고 A교사의 무죄를 촉구하고 나섰다. 쟁점이 된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이 인정된 탓에 '몰래 녹음'의 빗장이 풀리고 있다는 우려다.특수교육을 받는 학생 수는 2021년 9만8천154명에서 2022년 10만3천695명, 2023년 10만9천703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반면 공립학교 특수교사는 2021년 1만7천257명에서 2022년 1만8천364명, 2023년 1만8천454명으로 장애학생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특수교사 1인당 학생 수는 5.94명으로 전년(5.65명)보다 0.29명 많아졌다. 특수교육법 시행령은 특수교사를 학생 4명당 1명씩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과밀학급 해소는 갈 길이 멀다.교권 추락의 본질은 교육 시스템의 오작동이다. 학부모와 특수교사의 대립 프레임 뒤에 숨어있는 교육당국의 무책임이 원인이다. 소극적인 대처로 사태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특수교사 개인이 민원의 맨 앞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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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SNS 리스크 지면기사
트럼프는 트위터로 미국 대통령이 됐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페이스북으로 대러 항전을 선포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출현으로 전통 언론의 게이트키핑에서 풀려난 정치는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직접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정치팬덤이 형성됐고 정치 스타들이 탄생했다.한국형 SNS 정치스타는 단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무명의 성남시장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손가락혁명군'과 '개딸(개혁의 딸)'이라는 SNS팬덤의 역할이 지대했다. '손가혁'은 문재인의 '달빛기사단'과 처절한 내부투쟁을 벌였고, '개딸'은 이재명 공천의 전위였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못지 않다. SNS 발언록 조만대장경으로 진보진영의 빅마우스로 추앙받더니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밀물이 크면 썰물도 크다. 이 대표의 대선 패인도 SNS였다. 대장동, 형수욕설, 집사 공무원 등 부정적 키워드가 SNS를 통해 반복되고 확성됐다. 일가의 입시비리가 터지자 조국의 조만대장경은 내로남불의 바이블이 됐다. 팬덤과 촛불로 막을 수 없었던 실패와 추락을 만회하려 다시 SNS팬덤과 함께 총선판에 섰다.총선판에서 SNS 리스크가 야당을 강타하고 있다. 민주당 김준혁 후보는 유튜브 채널에 남긴 '성(性)' 발언의 파장이 심각해졌다. 박정희, 위안부, 김활란, 이대생을 향한 근거 없는 성적 모욕이 상식선을 넘었다. 해당 채널의 성향상 구독자용 립서비스였지 싶다. 진영의 SNS 팬덤용 발언이 선거라는 공적 영역에 발을 딛자 학자의 양식과 정치적 자질을 자박(自縛)한 올가미가 됐다.SNS정치의 작동 방식은 전광석화다. 설명하고 해석할 시간을 안준다. 진실을 담은 맥락은 사라지고 선정적인 사실만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정치가 SNS와 만나면서 선명한 '단문(短文)정치'가 설명하고 설득하는 정치를 압도한다. 대신 정치인의 흥망성쇠 주기도 짧아졌다. 쉽게 떠오르고 허무하게 사라진다. SNS가 직접민주주의의 성배인지 중우정치의 독배인지 모호한 지경에서 정치인들의 운명을 희롱하는 형국이다.범죄자는 스마트폰을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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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맹견 사육 허가제 지면기사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더 많이 팔리는 세상이다. 쇼핑몰에서도 아기 대신 개들이 앉아있는 개모차를 애지중지 밀고 가는 애견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펫박람회에서 개소파와 개영양제를 구입하거나 '댕댕런'에 참가해 함께 달리기를 즐기기도 한다. '멍집사'들은 퇴근 후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애견스튜디오에서 견생 네 컷을 찍어준다. 반려인 1천500만시대 다운 풍경이다. 펫팸족(Pet+Family)은 강아지의 행복이 가족의 행복이다.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보호·복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등록된 반려견은 2022년말 기준 302만5천859마리다. 2017년 117만5천516마리였던 반려견이 5년 만에 157.4%나 급증했다. 반려견 등록률은 2023년 기준 76.4%로 실제로는 더 많은 반려견들이 집사들을 부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반려견이 많아지면서 개 물림 사고도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소방청 119구급대 개물림 환자 이송 현황을 보면 지난 2019년 2천154건, 2020년 2천114건, 2021년 2천197건, 2022년 2천216건이다. 하루 평균 6명이 구급차 신세를 진다.개 물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맹견 사육 허가제가 오는 27일 첫 시행된다. 6개월 이내인 10월 28일까지 시·도지사에게 허가를 받으려면 동물 등록과 함께 맹견 책임보험 가입, 중성화 수술도 반드시 해야 한다. 맹견에는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 테리어, 로트와일러 5종과 그 잡종까지 포함된다. 독일에서는 기질 평가와 개면허시험을 통과한 견주에게 맹견 사육을 허가한다. 호주도 맹견 소유자에게 연간 사육비를 부과하고 안전조치를 갖춘 특수 사육장에서 개를 키우도록 한다. 운전면허처럼 맹견 사육에도 자격이 필요하다.개 물림 사고는 특정 견종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다. 견종 특유의 기질보다는 성장과정과 환경에 따라 공격성이 생기기도 한다. 난폭견도 강형욱 훈련사가 기르면 개과천선 되는 논리다. 덩치 큰 도사견이든 작은 몰티즈든 견주의 태도가 중요하다. 공원에 가면 목줄 없이 뛰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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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혁신과 개혁 지면기사
탈모로 고통받는 사람이 25만명에 이른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탈모로 고통받는 청년들의 진료비를 지원하는 정책과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자연계에서 탈모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을이 오면 짐승들은 털갈이를 하여 털이 매우 촘촘해진다. 겨울의 추위를 막기 위해서다. 이를 추호(秋毫)라 한다. 추호는 가을철에 가늘어진 짐승의 털이란 뜻인데, '아주 적거나 조금인 것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개혁(改革)'의 원뜻은 가죽을 간다는 것이 아니라 털갈이를 한다는 뜻이다. 이 혁(革)과 관련된 것이 '주역'의 49번째 '택화혁' 괘인데, 괘사는 "기일 내 변화를 추진하면 사람들의 이해와 믿음을 얻어 크게 형통하니 정도를 지키면 이롭고 후회하지 않는다(革, 已日乃孚 元亨利貞 悔亡)"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주역'의 '잡괘전'에 보면 "혁은 옛것을 버림이요, 정은 새것을 취함이라(革, 去故也. 鼎, 取新也)"라고 하여 가죽 혁 자가 '고칠 혁'의 의미로도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연계에서 새롭게 털갈이하는 현상이 바뀌고 고친다는 의미로 확대된 것이다. 또 '주역' '대상전'에 보면 "연못 가운데 불이 있는 것이 혁이니 군자는 역을 다스리고 사계에 응할 때를 명확하게 한다(澤中有火革 君子以治曆明時)"라 했다. 치력명시(治曆明時)란 절기를 다스리고 때와 시간을 밝히는 일, 다시 말해 때와 시간을 제대로 밝히는 일을 '혁'이라 했다.혁신(革新)은 낡은 제도·조직·관습을 바꾸는 것인데, 시간을 제대로 밝힌다는 뜻을 담은 '주역'의 '혁'괘와 '대학'에 나오는 '나날이 새롭게 한다(日新又日新)'와 '생명을 북돋아 준다'는 '신'이 결합된 단어다. 혁신의 영어 표현은 '이노베이션'인데, 이 이노베이션을 현재와 같은 혁신의 의미로 정립한 경제학자가 슘페터다. 그의 '경제발전이론'(1911)은 마차 시대에서 철도 시대로 넘어가면서 생긴 사회경제적 변화를 관찰하면서 특유의 혁신 이론을 완성해 냈다.윤석열 정부의 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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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명실상충(名實相衝)의 시대 지면기사
'죽을죄를 졌습니다. 하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속초시가 페이스북에 게시한 문구다. 지난 30일 벚꽃 없이 개막한 영랑호 벚꽃축제를 사과했다. 벚꽃의 변덕스러운 개화로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일상이 됐다. 29일 개막한 여의도 벚꽃축제도 벚꽃이 없다. 인간의 간섭에 분노한 대자연의 보복이 빚어낸 명실상충 현상이다. 벚꽃 없는 벚꽃축제는 대자연이 인류에 던지는 경고이다. 축제기간을 연장해 억지로 벚꽃축제의 명실상부를 실현해봐야, 이미 어긋난 자연의 질서를 외면하는 눈속임일 뿐이다.하늘과 땅이 붙어있는 상태가 혼돈이다. 하늘이 하늘이 아니고 땅이 땅이 아닌 명실상충의 상태다. 명실이 상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람 사는 세상이 혼돈에 빠진다. 공자가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며 정명(正名)을 강조한 이유다. 장자는 도척의 궤변을 지어내 공자의 현실 정치 참여를 조롱했지만, 실제로 도척이 공자를 박해하는 명실상충의 세상이라면, 망조든 세상이다.목하 선거의 계절이다. 정당과 후보들의 유세전이 치열한데, 명과 실이 상충하는 난장엔 굉음이 가득하다. 야당은 정부여당을 무능한 검찰독재 악당이라 하고, 여당은 야당을 재판받는 악당이 이끄는 무리라 한다. 억지와 근거가 뒤섞인 캠페인이 여야의 명과 실을 분리한다. 명과 실이 상충하는 후보들도 한 둘이 아니다. 성직인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되는 위선자, 불법혐의자들의 실체가 속속 드러난다. 실체가 드러나도, 공자를 겁박하는 도척처럼 언론과 여론을 겁박한다.명실이 상충하는 인간의 간섭으로 자연의 질서가 무너졌듯이, 말세적 명실상충 현상이 사람 사는 세상을 혼돈에 몰아넣는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공산주의 만큼 위험해졌고, 종교는 신의 이름으로 인류를 전쟁에 가둔다. 거짓말과 위선으로 무장한 정치꾼들의 정치로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제도가 무너지고 법이 무의미해진다. 정치가 붕괴되면서 모든 분야에서 고귀한 가치들이 타락했다.명실이 상충하는 언행은 거짓말이고 실체는 가짜다. 벚꽃축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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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초등학교 앞 성인 페스티벌 지면기사
"초등학교 코앞에서 성인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국내 최대 성인 페스티벌이 수원 지역사회에 돌을 던졌다. 지난해 12월 한국 최초 타이틀로 광명에서 하루 개최한데 이어 오는 4월 이틀로 규모를 확대해 두 번째 행사를 앞두고 있다. 미성년자였던 2005년생 여자 아이돌 그룹 멤버가 과도한 성적 노출을 하고 영상까지 공개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배포 논란이 불거졌던 바로 그 행사다. 수원 행사에도 일본 AV(성인 비디오)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SM(Sadomasochism·가학피학성향) 패션쇼가 예정돼 있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 프로그램들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성인식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도발적이다.더 큰 문제는 하필 행사장이 초등학교와 왕복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50m 남짓 마주 보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만 건너면 쉽게 갈 수 있는 도보 1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초등학생들의 등하굣길이다. 행사가 주말에 열린다지만 인근에는 쇼핑몰이 밀집돼 있어 가족단위 유동인구가 많다. "아이들이 성을 돈 주고 사고파는 상품 정도로 인식하면 어쩌나" 학부모들의 걱정은 자연스럽다.여성·사회단체들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피켓을 들었다. 이재준 수원시장도 "시민들과 함께 행동하겠다"며 철회 촉구에 힘을 실었다. 국민동의청원까지 등장했다. 교육지원청은 교육환경보호에관한법률에 따라 조치를 취해 달라며 경찰 수사를 요청했다. 여성의당도 주최사 대표를 경찰에 고발했다.수원 지역사회 전체가 들썩이고 있지만 주최사는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적 문제가 없다고 항변한다. 행사 장소인 민간 전시장은 운영규정에 '사회질서 및 공익에 반하는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며 청소년 유해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사용조건 항목이 명시되어 있는데도 대관 계약을 맺었다. 자본주의 논리와 성 문화 잣대가 충돌하는 형국이다."아파트 단지와 초교 코앞이라니… 선 넘은 장소 선정" vs "성인인증 후 입장하고 실내에서 하는데 뭐가 문제냐" 언론에 보도된 여론은 갑론을박 중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바로 코앞에서 성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