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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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디지털 마약, 숏폼 지면기사
지하철을 타면 거의 모든 승객이 휴대폰 보기에 여념 없다. 숏폼(Short-form: 10~60초 길이의 짧은 영상 콘텐츠) 알고리즘의 바다를 헤엄치는 손가락이 아래위로 분주하다. 걸그룹 AOA 김설현이 지난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숏폼 광인(?)의 면모를 보이며 친숙한 매력을 발산했다. 침대에서 눈 뜨자마자, 양치하고 식사할 때는 물론 숏폼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탄다니 '디지털 폼생폼사'(form生form死), 우리의 모습이다.유튜브가 카카오톡을 제치고 국내 사용자 1위 앱에 등극한 것은 숏폼의 힘이 크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월 국내에서 모바일로 유튜브를 본 시간은 19억5천만시간이다. 2위 카톡은 5억5천만시간, 3위 네이버는 3억7천만시간이다. 유튜브가 카톡의 무려 3.5배다. 또 와이즈앱 조사결과를 보면 지난해 기준 한국 스마트폰 사용자 1인당 숏폼 플랫폼 월평균 사용 시간은 46시간29분으로 집계됐다. 하루에 1시간30분 이상 숏폼 시청에 할애하는 셈이다.2005년 오늘(2월 14일)은 유튜브 사이트가 설립된 날이다. You(당신)와 텔레비전 별칭 Tube를 더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당신을 위한 텔레비전', '당신이 곧 텔레비전' 정도의 뜻이 된다. 'TV는 바보상자'라 했지만, 지금은 유튜브가 사람들의 뇌를 바보상자로 만드는 형국이다. 일상생활에 흥미를 잃고 팝콘 터지듯 더 강렬한 자극을 찾게 되는 악순환, 절제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세상이다.전 세계적인 트렌드 숏폼은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정보를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엔터테인먼트가 됐지만, 도파민 중독의 폐해는 심각하다. 디지털 마약으로 불리는 숏폼은 집중력과 이해력을 저하시키고 우울감을 높인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이어진다. 기억력, 사고력,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활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말은 무심코 넘길 수 없다. 중국에서는 2021년 14세 이하는 하루 40분만 틱톡을 사용하도록 했다. 미국 유타·메릴랜드·사우스다코타주는 주정부 기기의 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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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인재 영입과 장항선의 인물들 지면기사
설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차례상, 떡국, 세배, 귀성·귀경 행렬을 꼽을 수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들과 인파가 넘치는 기차역에는 귀성의 설렘과 귀경의 아쉬움이 가득하다. 뉴스도 신문도 앞을 다퉈 경부선이나 호남선을 중심으로 설 풍경을 보도로 내보낸다. 이에 비해 서해안고속도로나 장항선이 보도되는 경우는 드물다. 장항선은 현재 천안에서 익산, 군산까지 이어지는 철도 노선으로 일제강점기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의 사설 철도로 시작됐다.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에 대륙 침략을 염두에 둔 일제의 철도 정책이 남북의 축을 중시하는 X자형 종관철도였기에 경부선이나 호남선에 비해 사설 철도로 출발한 장항선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장항선은 뜯어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노선으로 경부선이나 호남·전라선만큼 붐비지는 않지만, 한적한 여행 코스로 제격이다. 장항선이 지나는 기차역마다 관광지와 문화유산들이 있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인과 학자들이 있다. 이를 장항선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장항선의 시발역인 천안에는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있다. 동양학의 대가인 벤자민 슈워츠 교수에게 '왕선산 주역'을 연구하여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음으로는 장항선이 지나는 고덕의 인물로 원로 미술사학자 최완수 박사가 있다. 그리고 보령의 인물로 대표적인 한국 현대문학 연구자인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가 있다. 장항선이 지나는 길목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각 분야의 학자들이 있다.그뿐 아니라 장항선 문화권인 아산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있다. 아산 출신의 무관이자 부자였던 방진의 사위가 되어 처가 재력을 바탕으로 온축의 과정을 거칠 수 있었고 결국 역사적 인물이 됐다. 충무공 이순신은 본관이 덕수 이씨인데,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기영도 이 덕수 이씨 가문의 인물이다. 또 장항선이 지나는 예산 인근의 신양에는 '김일부 정역'에 정통한 주역 학자이자 충남대 총장을 역임한 이정호 박사가 있다. 모두 장항선이 낳은 인물들이다. 보면 볼수록 장항선은 매력이 넘치고 유서 깊은 노선이다.평소 무관심했던 장항선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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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한국 축구 '카타르 참사' 지면기사
64년 만의 축구 아시안컵 우승이 물 건너갔다. 7일 새벽, 결승 진출을 확신하며 TV 앞에 모였던 '붉은 악마'들의 열기는 먹다 만 치킨과 함께 차갑게 식었다. 요르단을 결승을 위한 행운의 제물로 여겼다. 몸 풀린 대표팀이 예선 무승부 수모를 갚아줄 것이라 단정했다. 0대 2 완패. 요르단이 경기력으로 한국을 압도했다.언론은 한국 대 요르단전을 카타르 참사로 명명했다. 상처받은 국민 정서를 생각하면 참사, 비참하고 끔찍한 사건이 맞다. 예선부터 조짐이 있었다. 조 1위가 당연시됐던 피파랭킹 23위 한국은 87위 요르단과 130위 말레이시아와 비겨 조 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호주와는 선제골을 내주고 고전하다가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와 역전골로 승리했다. 현지에서는 좀비축구라 했다. 찬사인 줄 착각했다. 지고 나니 조롱이었다.'황금세대'라 했지만, 선발과 예비 자원의 격차에 문제가 있었다. 선발 선수를 혹사하는 구조에 구멍이 나면 대책이 없다는 얘기다. 두 번의 연장 경기를 포함해 전 경기에 출전한 손흥민, 이강인, 황희찬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김민재가 결장하니 수비가 무너졌다. 간판스타들이 무너지자 허세 가득한 랭킹의 실상이 드러났다.손흥민의 부친 손웅정의 아시안컵 개막 전 인터뷰가 화제다.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우승해 버리면 그 결과를 가지고 얼마나 우려먹겠느냐"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번에 우승하면 안된다"고 했다. 한국 축구가 단단히 병든 상태라는 지적이, 호화판 엔트리에 꽂힌 집단적 희망에 묻혔다. 근거 없는 희망은 무너졌고 경고는 경종이 됐다.비단 축구뿐일까. 부산엑스포 유치가 가능하다는 허세 보고에 끌려다니다가 대통령이 실없는 사람이 됐다. 북한의 핵폭탄에 수다로 맞선다. 선거철 허세, 허언은 어떤가. 정부 여당은 수십조원 사업들을 쏟아내고, 야당 의원들은 대표가 거듭 머리 숙여 사과한 비례대표 선거방식을 "고뇌의 결단"이라 떠받든다. 중소기업이 없는 대기업 경제이고, 미래 한국의 인구는 고갈 중이다.명과 실의 부정교합이 심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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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미친 과일값 지면기사
설 명절을 앞두고 과일값이 장난이 아니다. 경인지방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1월 경기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사과는 52.1%, 배는 48.6%나 올랐다. 마트에서 제수용 사과 3개에 1만6천원이라니 입이 떡 벌어진다. 사과는 지난해 봄 저온현상과 여름철 폭우, 6월과 10월엔 우박 피해까지 입었다.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전년보다 30% 줄어든 39만4천t. 격감한 출하량에 소비자는 울고 농민은 별 재미가 없다. 배도 기상악화로 작황이 부진해 생산량이 전년보다 27% 감소한 18만3천802t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월 영하로 떨어진 이상저온에 개화기 꽃눈이 흑변 괴사했다는 뉴스가 소환된다.제수용 사과와 배 가격이 급등하자 대체용 과일들이 불티난다. 그중에서도 만감류가 인기다. G마켓에서는 오렌지 판매량이 556% 늘었고, 한라봉과 천혜향은 28% 증가했다. 한라봉과 천혜향 판매량은 명절 대표 제수 과일인 사과를 이미 추월했다. 딸기(130%), 바나나(67%), 키위(15%)도 덩달아 잘 팔린다. 비교적 저렴한 바나나도 金바나나가 될까 두렵다.유례없는 고물가에 시민들의 시름이 어느 때보다 깊다. 지갑 두께는 그대로인데 씀씀이는 커지니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이 편치 않다. "차례상에 사과 한 알만 올리겠다", "사과·배 대신 귤과 바나나로", "고깃값보다 비싼 과일이라니"라는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정부는 과일 파동이 예고된 지가 언제인데 이제서야 840억원을 투입한다며 법석이다. 선거철 서민체험에 나선 정치인들의 전통시장 순례가 잦아졌다. 어묵 국물 호호 불어 마시고, 떡 사 먹고, 사진 찍고 떠나면 4년 뒤에나 올 사람들이다.대목이어야 할 전통시장에 신명나는 흥정소리가 잠잠하다. 덤을 얹어준다고 구애해도 과일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 선뜻 장바구니에 담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가격표를 보는 소비자들의 눈은 말 그대로 '동공 지진'이다. 올해 설 차례상에 못난이 과일을 올려야 하나 고민할 지경이다. 시류에 맞춰 차례상 차림이 많이 간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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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봄꽃 이야기 지면기사
꽃을 사랑하는 마음은 옛 선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였다. 사대부들 가운데서도 화훼나 원예에 대해 조예가 깊은 이들이 많았다. 세종조의 문신 강희안(1418~1465)의 '양화소록'은 꽃과 분재에 관한 최고의 고전으로 꼽힌다. 강희안에 못지않은 마니아로는 영·정조 시대의 인물 유박(1730~1787)이 있는데, 그는 과거시험을 보거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평생 꽃 가꾸고 글 쓰며 살았다. 그의 '화암수록'에 실린 시들을 보면 그의 꽃 사랑은 애호의 수준을 넘어 역대급 화훼 전문가였음을 알 수 있다.화성시 송산면 지화리 출신의 문인 이옥(1760~1815) 또한 꽃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인물로 그의 글 '꽃 이야기(花說)'가 눈길을 끈다. "아침 꽃은 어리석어 보이고, 한낮의 꽃은 고뇌하는 듯 보이고, 저녁 꽃은 화창해 보인다. 비에 젖은 꽃은 파리해 보이고, 안개 젖은 꽃은 꿈꾸는 듯하고, (중략) 달빛 받은 꽃은 요염하고, 물가의 꽃은 한가롭고"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보듯 꽃에 관한 그의 글은 역대급 화론(花論)이다. 그는 정조시대의 문인으로 발군의 실력과 문장력을 지녔으나 문체가 '패관소설체'로 지목되어 유배를 가기도 하고 별시에서 장원을 했으나 꼴등(傍末) 처분을 받는 등 문체반정으로 인한 고초를 겪었다. 이옥의 '꽃 이야기'의 압권은 꽃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반드시 꽃과 거리를 둔 수풀 아래 집을 짓고 살"('완역 이옥전집 1권', 426쪽)겠다는 반전 있는 마지막 문장이다.꽃은 계절별로 달라 그 아름다움이나 매력이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봄에 피는 꽃들에 미치지 못한다. 봄꽃의 명소로 강화 고려산 진달래, 이천 백사면과 양평 개군면 산수유, 광양 매화, 진해 벚꽃, 여수 영취산 진달래, 하동 쌍계사 벚꽃, 지리산 산동 산수유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모진 겨울을 지나 산천을 곱게 물들이는 봄꽃들의 향연은 언제나 아름답고 생각만으로도 흐뭇하기만 한데, 총선을 앞두고 오가는 이재명 대표, 한동훈 비대위원장, 김동연 지사 간의 설전과 신경전은 국민들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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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홍콩발 ELS 사태 지면기사
"광기의 가장 큰 징후는 금융상품이 복잡해지고 사기가 증가한다는 것이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에 나오는 대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은행들이 남아도는 유동자금을 부동산 담보대출에 쏟아부으면서 시작됐다. 치솟는 부동산가격에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은행 돈으로 집을 샀다. 은행들은 채권으로 파생상품을 팔아 자금을 모아 다시 대출했다.이때 부동산 시장 몰락을 예상하고, 부동산 채권 폭락 때 돈을 버는 공매도(Short)상품을 개발한 사람들이 '대박 공매도', 즉 '빅쇼트'의 주인공들이다. 영화의 대사 중엔 금융 파생상품에 대한 경고성 금언들이 즐비하다. "아무도 관심 없어요. 은행들은 판매수수료를 거하게 챙기고 있는데, 채권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홍콩H지수에 기초한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생돈을 날렸거나 날릴 위기에 처했다. H지수는 홍콩증시에 상장된 중국 대표기업 50개 종목의 주가지수다. 투자 시점의 홍콩H지수가 만기시 30% 가량 떨어져도 원금이 보장되는 ELS 상품을 증권사가 운용하고 은행이 판매했다. 그런데 지수는 절반 이하로 폭락하고, 만기가 도래했다. 올해 상반기 만기도래 금액 10조2천억원이 반토막이 날 상황이란다.은행에서 ELS를 산 고령 개미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은행을 자산 보전과 증식의 반려 기관으로 철석 같이 믿었던 세대들이다. 2일까지 금융감독원에 3천건에 달하는 민원이 쏟아졌다. 안전한 고수익 투자라는 은행의 설명을 믿었다는 피해자들의 호소는 절규에 가깝다.파생상품은 예적금과는 다른 전문가들의 고위험 투자 대상이다. 콜옵션, 풋옵션 등 상품의 손익을 설명하는 용어들은 외계어나 다름없다. 일반 투자자들은 은행에서 파는 상품이니 최소한의 원금보장을 확신했을 테다. 은행은 '오래된 고객'의 신뢰를 ELS 판매 수수료와 바꿔 먹었다.고객들이 독박을 써도, 은행엔 수수료가 남고, 방지 대책을 세운 증권사의 손실은 미미하단다. 예대마진으로 수십조 영업이익을 올리는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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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나혜석 논란 지면기사
나혜석은 정조대왕과 함께 수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정조는 화성 건축으로 수원의 역사적 정체성을 재창조했다. 나혜석은 파격적인 행보로 남존여비 시대에 저항했다. 정조가 왕조시대 수원의 역사적 시원이라면, 나혜석은 근대 수원의 표상으로 시 문화행정의 집중 지원 대상이었다.나혜석이 문제가 됐다. 수원시청이 최근 나혜석의 '독립운동가' 기록을 삭제하기로 결정하면서다. 인계동에 '나혜석거리'가 있다. 수원시가 2000년 그녀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문화예술구역의 명칭이다. 거리엔 두개의 나혜석 동상이 있다. 한복 입은 동쪽의 나혜석이 서쪽의 양장 차림 나혜석을 마주한다. 동쪽 동상 조형물엔 나혜석을 '최초의 서양화가', '최초의 여성소설가', '최초의 전시회 개최', '독립운동가', '여성운동가'로 새겨 놓았다.나혜석의 독립운동 이력에 대한 시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3·1운동으로 5개월 투옥됐다는 사실이 유일한 독립운동 근거인데, 당시 일제의 신문조서 기록에 따르면 항일운동 가담을 부인하고 무죄 방면됐다는 주장과 충돌한다. 이 때문에 '독립운동가 나혜석'을 부정하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끊이지 않았고, 이번에도 한 시민의 반복적인 민원에 시청이 조형물 문구 삭제 계획을 밝힌 것이다.나혜석의 삶은 지금 봐도 개인이 감당하기엔 벅찰정도로 반시대적이었다. 그녀의 생애는 대한제국 말기와 일제강점기 여권 부재의 시대를 관통했다. 두 번의 결혼, 자유연애, 이혼으로 남성의 세계를 직격한 여류화가의 비극적인 서사는 후대의 관심을 받기에 족하다. 관심의 호오에 따라 나혜석의 평가가 엇갈린다. 시대에 저항한 선각자로 보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기행을 일삼은 자유연애자로 폄하하는 시선도 있다.관점에 따라 엇갈리는 나혜석 평전을 역사로 규정하려니 문제가 발생한다. 남성 사회를 향한 도발적 행적은 여권운동의 빈약한 기원을 메울 만큼 신화적이다. 반면 친일을 생래적으로 거부하는 사회에서 독립운동은 명백하게 기록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신화만으로도 충분했을 나혜석에게 기록으로 확정해야 할 독립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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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인공지능 컴퓨터' 지면기사
제임스 와트가 1765년 증기기관을 발명하자, 니콜라 퀴뇨가 1769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증기자동차를 시장에 풀었고, 조지 스티븐슨은 1830년 상용 증기기관차를 레일 위에 올렸다. 1860년 발명된 휘발유 내연기관으로, 미국의 헨리 포드는 1908년 T 모델을 대량생산해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 산업혁명은 수십세기 지루했던 인류 문명을 2세기 만에 뒤엎었다. 몇 세대에 걸친 혁명의 시간은 인류가 적응하기에 충분했다.컴퓨터 기술이 선도하는 작금의 기술혁명은 산업혁명과 달리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2007년 애플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하면서 인류는 만능 컴퓨터를 손아귀에 쥐었다. 인류 전체가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정보통신 디바이스에 열중했다. 덕분에 컴퓨터는 인간과 문명을 학습해 전지전능한 인공지능(AI)으로 진화했다. 최근 개최된 2024 라스베이거스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는 AI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불과 17년 만의 일이다.최근 종영한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딥페이크 기술로 고인인 송해가 1994년 제주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장면을 탄생시켰다. 조만간 AI가 대본을 쓰고 딥페이크 연기자와 배경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날이 머지 않았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서 딥페이크는 재앙이다. 누구나 AI를 활용해 2분 만에 딥페이크로 사람을 내키는 대로 복제할 수 있다. 수많은 가짜들이 진짜들의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급기야 일론 머스크는 아예 칩으로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동시키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실험을 시작했다. 뇌가 컴퓨터를 지배할지, 컴퓨터가 뇌를 통제할지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발을 디딘 느낌은 서늘하다.산업혁명에 비해 수십 배 빠른 컴퓨터의 진화 속도로 인한 문화지체 현상이 심각하다. 인간의 제도·문화·의식과 AI컴퓨터가 세계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AI가 도구를 넘어 사람을 대체하고 지배할 것이라는 공포가 현실이 되고 있다. 권력은 오만했다. 통제를 자신하며 컴퓨터의 진화를 찬양하고, 보통 사람들의 딥페이크 피해를 방치했다.경선 불참을 촉구하는 조 바이든 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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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동네서점과 도서정가제 지면기사
초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 틈새에서 동네서점은 전멸 위기다. 반경 1~2㎞ 안에 동네서점이 있다면 행운일 정도다. 마실 가듯 들르는 서점이 아니라 마음먹어야 방문하는 서점이 됐다. 서점에서 책의 표지와 목차, 내용을 훑어보고 온라인 주문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쇼룸처럼 이용하는 소비자, 서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야속하지만 어쩌겠나.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부가 최근 민생토론회에서 '도서정가제 개선안'을 내놓으면서 또다시 논란이다. 도서정가제는 서점 간 과도한 할인 경쟁을 방지하고 출판물의 최소 제작비용을 보전해 창작자와 출판사를 보호해 출판 생태계를 안정화한다는 취지다. 영어권을 제외한 독일·프랑스·네덜란드·스페인 등 대부분의 출판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도서정가제를 도입해 2014년부터 3년마다 제도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출판사는 책을 발간할 때 정가를 표시해야 하고, 서점은 정가의 10%와 각종 마일리지를 포함해 최대 15%까지만 할인할 수 있다.정부가 지역 영세서점에 한해 할인 한도를 풀어주고, 웹툰과 웹소설 등 전자출판물은 도서정가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다. 출판계는 "동네서점은 대형서점보다 매입원가 자체가 높은데 어떻게 더 할인하란 말이냐", "헌법재판소가 전자책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를 기각했는데 정부는 6개월 만에 뒤집나"라고 깊은 한숨이다. 웹툰·웹소설계에서는 "획일적인 규제가 풀려 다행"이라며 일단 반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작자 권리가 약해지지 않을까", "출판물 부가세 면세 혜택도 사라지나" 하는 염려도 크다.동네서점 주인장들은 하루하루 분투기를 쓰고 있다. 동네서점은 꽃집과 카페, 문구·소품점 등과 숍인숍으로 변신하면서 생존 중이다. 예약제 공유서점 간판을 달고 독서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약사가 주인인 서점부터 독립영화관 서점, 게스트하우스 서점, 한옥 서점까지 '뜻밖의 컬래버'가 그래도 다행이고 반갑다. 대형서점에 장르·순위별로 진열된 베스트셀러가 아닌 예쁜 인생책 한 권 발견하는 기쁨, 동네서점에서 누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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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쇼펜하우어와 한국정치 지면기사
한국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거치게 되면 보통 16년 동안 교육을 받는다. 개인 사정에 따라 교육 기간이 짧을 수도, 더 길어질 수도 있겠으나 문제는 시험에 나오는 것만 배우거나 해당 분야에서 요구되는 교육만 받았을 뿐 정작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삶의 지혜라든지 인생을 풍요롭게 할 근원적인 물음들과는 무관한 과정들만을 이수하게 된다. 사람들이 종교 서적을 탐독하고 철학서를 뒤적이는 것은 학교 교육을 통해서 채워지지 않은 근원적인 의문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만나는 이가 쇼펜하우어나 톨스토이 '인생론' 같은 책들이다.쇼펜하우어는 학문이나 이론으로서의 철학보다는 철학으로서의 철학을 한 진짜 철학자다. 칸트 철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주저를 남겼으나 철학분야에서보다는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서재에 쇼펜하우어의 초상화만 걸어둘 정도였고, 바그너·토마스 하디·프루스트·말러·사무엘 베케트·보르헤스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쇼펜하우어에 영향을 받았다. 프로이트도 자신은 쇼펜하우어를 심리학으로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말했을 정도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이른바 한국의 동경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데칸쇼'라고 하여 칸트, 데카르트, 쇼펜하우어가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쇼펜하우어는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를 통해서 힌두교와 불교 등 인도 철학에 깊은 이해를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그는 심금을 울리는 잠언들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쇼펜하우어 정도는 읽어야 한다.요즘 한국 정치의 쟁점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논란과 묻지마식 정치 테러 그리고 신당 소식일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정치사상 처음으로 쇼펜하우어가 언급됐다는 사실이다. 발언의 당사자는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으로 "제가 쇼펜하우어를 말하면 내일쯤 또 '쇼펜하우어는 누구에 비유한 거냐' 이렇게 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며 쇼펜하우어를 거론했다. 한국정치인들의 인문 교양과 상식에 실망이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