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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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이강인 대표팀 발탁 논란 지면기사
이강인의 축구 국가대표팀 복귀를 두고 온라인이 찬반 논란으로 뜨겁다. 찬성측 주장의 근거는 '손흥민의 용서'다. 당사자 사이에 화해하고 끝낸 일에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의 막말엔 날이 바짝 서있다. "이강인은 국대가 아니라 깡패"라 하고 "대한민국은 죄를 저질러도 실력만 있으면 되는 거냐"고 분통을 터트린다. 국가대표팀 경기 관람·시청 거부 주장도 올라왔다.공론장이 이렇게 무섭다. 손흥민과 이강인은 지난달 21일 함께 미소지으며 찍은 사진으로 화해를 인증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적 화해로 진정되기엔 공론장의 주제가 너무 거창했다. 64년 만에 찾아온 아시안컵을 날려버린 카타르 참사의 원인이다. 처음엔 도마 위의 생선이 엉터리 감독 클린스만과 그를 뽑은 대한축구협회였다. 외신이 탁구게이트로 도마 위의 생선을 이강인으로 바꾸었다.이강인의 결정적 실수는 도덕과 규범의 선을 넘은 점이다. 우리 사회의 공론장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다.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대중적 인물들이 도덕과 규범의 잣대를 건드리는 바람에 공론장에 올라 퇴출됐다. 손흥민은 동시대 한국인이 인정한 국가대표의 규범이다. 이강인이 손흥민에게 대든 것은 공적 규범에 대한 도전이었다. 선을 넘은 것이다. 스물세살 이강인이 깨닫기엔 너무 심오한 공론장의 작동 방식이다. 이번에 크게 깨달았으리라 믿는다.이제 이강인을 향한 비난을 거둘 때도 됐다. 약이 과하면 독이 되고, 훈육이 지나치면 폭력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이강인을 향해 마음껏 돌팔매를 날릴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공수처가 수사중인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을 호주대사로 부임시켰다. 2년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 창당한 정당이 기세등등하다. 의사들은 환자 곁을 떠나 대정부 투쟁을 벌인다. 공론장의 금과옥조였던 도덕적 규범이 흔들리면서 정의와 불의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옳고 그름이 뒤섞여 사회 전체가 자가당착으로 오염됐다. 표적을 찾아 헤매는 평범한 악당들이 활개친다. 이강인이 제대로 물렸다.스포츠 선수는 명료한 규칙에 따라 투명하게 실력을 겨루고 결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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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산불 조심 지면기사
2000년 4월 7일 발화해 15일까지 191시간 동안 이어진 동해안 산불은 역대 가장 큰 면적을 화마가 휩쓸었다. 고성·삼척·동해·강릉·울진 일대 산림 2만3천794㏊, 무려 축구장 3만5천개를 태워 없앤 셈이다. 건물 800여채가 불타 850명의 이재민이 피눈물을 흘렸다. 2022년 3월 4일 발생한 울진·삼척산불은 1만6천302㏊를 소실시켜 9천86억원의 피해를 입혔다. 진화하는데 213시간43분이 걸린 역대 최장기간 산불로 기록됐다.두 초대형 산불은 양간지풍(襄杆之風)에 속수무책이었다. 양양과 간성에 부는 국지적 바람은 소형 태풍급에 버금간다. 동해안 산불은 최대풍속 23.7m/s, 울진·삼척산불은 27m/s였다. 실제로 30도 경사면에서 바람이 없을 때는 분당 0.57m의 느린 속도로 확산되지만, 6m/s의 속도만 불어도 분당 14.82m로 26배나 빨라진다. 바람에 화염이 옆으로 누우면서 열기를 쉽게 전달하니 불길이 순식간에 번진다. 우리나라는 산림의 37%가 소나무 중심의 침엽수림으로 구성되어 있어 화재에 더 취약하다. 테라핀 같은 정유물질을 약 20% 포함하고 있는 송진은 불쏘시개가 된다. 소나무 가지와 솔방울, 껍질 등에 불이 붙으며 생긴 불똥은 상승기류와 강풍을 만나면 2㎞ 가까이 날아갈 수 있다.산불이 나면 동물들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덮친다. 2019년 4월 발생한 강원산불만 봐도 가축 4만여 마리가 폐사하거나 화상을 입었다. 축사에 갇힌 채 불길에 소 등껍질이 벗겨지고 뿔까지 뽑힌 현장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다. 2005년 4월에는 양양산불로 천년고찰 낙산사가 한순간 재로 변해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보물 제479호 동종이 녹아내렸고 원통보전이 전소됐다. 문화적 재앙이다.최근 10년간 3~5월 봄철 산불이 56%를 차지한다. 원인을 보니 입산자 실화, 논·밭두렁 소각 등이 66.5%로 사람 탓이 컸다. 역설적으로 사람이 조심하면 산불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담배꽁초 하나라도 무심코 버릴 일이 아니다. 황폐해진 산불피해지가 산림의 골격을 갖추는데 30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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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광장 정치와 모바일 선거운동 지면기사
최인훈의 '광장' 하면 곧바로 연상되는 명문장이 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껍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일상이 통제되고 규제가 넘치던 억압의 시절 광장은 간절한 바람이었다. 사람들이 만나 자유롭게 소통하고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는 '아고라'와 '아크로폴리스'가 국민적 간절함이었던 정치적 억압기가 있었다. '유신시대'와 '5공화국'이 그러했다.아고라는 그리스 고대도시 광장으로 각종 민회(民會)·재판·시장·사교 등이 이뤄지는 소통의 공간이었으며,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상징이자 서구 민주주의의 원형으로 통한다. 아고라는 본래 회랑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본질은 장터 곧 스토어(store)였다. 스토아(stoa) 학파란 말도 이 스토어에서 나왔다. 장터에서 활발한 소통과 토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크로폴리스의 아크로는 높은 곳이란 뜻으로 방어를 위해 산정(山頂)에 조성한 고대도시를 뜻하는데, 후일 이것이 고대 민주주의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우리에게 광장의 정치가 허용된 것은 1987년 이후다. 1987년 11월 30일 13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여의도광장에서 김대중 후보의 유세가 있었고, 같은 해 12월 5일 그와 경쟁 관계에 있던 김영삼도 같은 곳에서 같은 규모의 군중을 광장에 모았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과 AI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과거와 같은 대규모 광장 정치는 흘러간 과거의 풍경이 됐다.교통 혼잡과 고비용에 비효율적인 대규모 오프라인 집회보다는 이제 모바일이나 유튜브를 이용한 선거운동이 새로운 선거운동 방식으로 정착하면서, 문자폭탄 세례와 AI 등을 이용한 가짜 영상과 딥페이크(Deepfake)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광장의 정치든 모바일 정치든 도덕성과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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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포트홀 공화국 지면기사
지난 8일 김포시청에서 가족과 동료들의 비탄 속에 한 공무원의 발인식이 있었다. 김포한강로 포트홀 보수공사를 담당했다가, 차량정체 민원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그 공무원이다. 민원인들은 그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좌표를 찍었다.포트홀은 주행 중인 차량에 치명적이다. 방치하면 안된다. 고인은 자신의 의무인 공무를 수행했다. 민원인들은 야간 보수공사로 발생한 교통정체에 걸린 짜증을 고인에게 배설했다. 포트홀 보수를 며칠 미뤘다면, 늑장 보수라며 실명을 공개했을 사람들이다. 익명에 숨어 공무원을 포트홀에 가둔 채 마녀사냥을 했다. 잠시의 불편 때문이다. 악질적인 이기심이다. 다음날 태연하게 깨끗이 보수된 도로를 안전하게 이용했을 것이다.도로 포트홀만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이기심, 욕망, 위선이 파놓은 심리적 포트홀이 널려있다. 국제적인 코인 사기 혐의자 권도형은 몬테네그로 법원에 기를 쓰고 한국 송환을 떼썼다. 미국에선 100년 받을 형을 한국에선 절반도 안받을 것이란 신뢰(?) 때문이다. 한국의 범죄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관용을 남발하는 한국 사법의 위선에 절망한다. 김포시는 악질 민원인을 특정해 법의 심판대에 올린다지만, 공무원의 생명에 상응하는 응보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대한민국 정의의 도로엔 사법 포트홀이 지천이다. 정의가 지체되고 탈선한다.국민이 지지하는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해 환자를 팽개친 전공의 집단 대신 환자를 지키는 소수의 전공의들이 실명으로 배신자 포트홀에 갇혔다. 환자를 배신한 당사자는 누구인가. 같은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비정규직은 임금 포트홀에 빠졌다. 자영업자, 소비자, 배달노동자들이 독점 플랫폼이 파놓은 포트홀 생태계에서 제 살을 깎아 바친다. 계층, 세대, 지역의 이기와 욕망이 SNS를 타고 스며들어 파놓은 수많은 포트홀 탓에 대한민국 사회는 정주행을 멈추고 저출산 포트홀에 고였다.정치는 사회적, 문화적 포트홀을 보수할 유일한 분야다. 민생 현장에서 충돌하는 욕망을 중재하고 조화시켜 나라와 국민의 정주행을 책임져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현실은 절망적이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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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MZ들의 복고 열풍 지면기사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가 옛것을 추앙 중이다. '푸마'나 '잔스포츠' 같은 왕년의 스포츠 브랜드의 스니커즈와 백팩이 30년만에 각광받는다. MZ세대에겐 올드하기는커녕 심플하고 풋풋한 아이템이란다. 꽃무늬 자수가 놓인 '할머니 스타일' 카디건이 유행하더니, 올해는 '할아버지 스타일'이 패션 트렌드로 떠올랐다. 꽈배기 니트와 체크 셔츠, 오버핏의 럭비 셔츠가 거리를 누빌 듯하다. 오래 입을 수 있는 세련된 멋과 기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여유로움은 힙 그 자체다. 혹시 할아버지, 할머니 옷장을 슬쩍 열어보는 손주를 발견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막걸리는 힙걸리(hip+막걸리)가 됐다. 더 이상 고리타분한 탁배기에 담긴 아재술이 아니다. 투명 플라스틱 통에 담긴 싼 술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캐릭터와 탄생 스토리로 변신했다. 사과, 딸기, 한라봉 막걸리부터 밤, 잣, 메밀, 곤드레, 얼그레이, 꽃막걸리까지 무한 진화 중이다. 상상 밖의 맛과 향을 창조하는 다양한 재료와의 성공적인 컬래버로 MZ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전국 각지 도심 골목과 전통시장에 MZ세대 양조사들이 터를 잡고 독창적인 발효실험에 나서더니, 최근에는 애주가로 소문난 가수 성시경까지 막걸리를 출시했다.2000년대 드라마도 역주행하고 있다.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167부작), 커피프린스 1호점(2007. 17부작), 꽃보다 남자(2009. 25부작)를 보면서 유년기 감성으로 돌아간다. 꽃보다 남자 OST 유튜브 영상은 덩달아 조회수 2천500만회를 훌쩍 넘어섰다. 대세에 힘입어 드라마 수사반장(1971~1989. 880회)이 1958버전 레트로 휴먼수사극으로 4월 컴백하고 대장금(2003~2004. 54부작), 궁(2006. 24부작) 리메이크작도 내년에 볼 수 있다.청년들이 왜 옛것에 빠져들까. 학원 뺑뺑이에 치열한 대입·취업 전선,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물가, 비현실적인 집값에 결혼은 엄두도 못내는 N포 세대. 닿을 수 없는 꿈을 좇으며 절망하느니, 현실에서 가능한 소소하고 작은 행복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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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수원 '영통하우스토리' 지면기사
지난 1월12일자 참성단 제목이 '인천 하나3차 아파트'였다. 아파트 경비원을 향한 반인륜적 입주민 갑질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경비원 5명의 휴게실을 쾌적하게 리모델링해준 하나3차 아파트 주민들의 인간애는 갑질 병리현상에 찌든 우리 사회에 단비 같은 뉴스였다. "갑질의 악행이 워낙 도드라져서 그렇지, 전국 아파트 입주민 대다수가 하나3차 아파트 주민들과 다르지 않을 테다"라 했다.막연한 희망과 믿음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번엔 수원 '영통하우스토리'이다. 98세대가 살고 있는 주상복합아파트다. 8년간 입주민들의 손발이 되어준 경비원이 혈액암을 진단받자 아파트 운영위원회가 모금 안내문을 게시했다. 1주일 만에 1천만원의 성금을 모아 퇴직하는 경비원에게 전달했다. 진심어린 자필 답장이 게시됐다. "많은 분들이 격려와 성원을 해주신 것처럼 치료 잘 받고 완쾌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안부인사를 드릴 것입니다."모두 2월에 시작되고 끝난 이야기다. 한 배달 라이더가 4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언론들이 5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아파트를 출입하는 배달 라이더가 한 두명이 아닐 테다. 1주일 시차를 두고 게시된 모금 안내문과 감사의 답장에 담긴 감동을 포착한 배달원의 눈썰미가 대단하다. '배달하다가 본 수원의 명품 아파트', 제목도 탁월하다. 기자 뺨칠 정도다.사연이 알려지자 입주민들은 한사코 아파트 이름이 알려지는 걸 꺼렸다지만, 악행도 선행도 감추기 힘든 초연결 세상이다. 영통하우스토리는 순식간에 검색창에 떴다. 맹자는 "사람은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이 있다"고 성선설을 밝혔다. 사람이면 차마 남을 해할 마음을 먹을 수 없으니, 선행은 인간의 본성으로 자랑할 일이 못된다는 것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 말씀과 상통한다. 선행은 겸양을 겸비할 때 진정성을 갖는다는 얘기다.하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는 악행들로 공동체에 향한 불신은 넓고 절망은 깊은 시대다. 한줄기 따스한 봄바람으로 겨울이 끝났음을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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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공짜 버스킹 사절 지면기사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이자 중심지는 인천 부평이다. 1945년 9월부터 주둔하던 미군기지 애스컴시티(ASCOM CITY)에는 아나작(1948)이란 클럽이 있었다. 이후 1960년대 영내 클럽만 20~30개가 운영됐다. 당시 미8군 클럽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엄격한 밴드 오디션을 통과해야 했는데, 각지에서 실력파 뮤지션들이 모여들었다. 스윙재즈 밴드 토미스(Tommy's) 악단, 캄보밴드(브라스 악기 포함된 4~6인조) '파이오니아' 등이 연주를 했다. '돌아가는 삼각지' 배호는 가수 데뷔 전 드러머였다. 미8군 쇼에서 활약한 밴드들은 초창기 미국에서 유행한 최신 스윙과 재즈를 연주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점차 한국형 대중음악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다양한 장르로 발전시켰다.부평구는 지난 2021년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된 후 '음악도시 부평' 브랜드에 공들이고 있다. 지역 뮤지션을 발굴하고 음반 제작비와 제작 과정을 지원해왔다. 올해부터는 버스킹(Busking·거리 공연)에 힘을 싣겠다는 구상이다. 부평구문화재단은 최근 청년 지역 음악가와 '간담 서늘' 간담회를 마련했다."버스킹은 공짜가 아닙니다." "지자체에서 마련한 무대는 정말 감사하지만, 뮤지션들의 공연을 재능기부 정도로 여기면 안 됩니다." 기관과 시민의 의식 변화가 절실하다는 간담 서늘한 일침이다. 축제마다 섭외 경쟁을 벌이는 인기 가수 몸값이 수천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수긍이 간다.한국 밴드의 발상지 부평이라면 여느 지자체보다 더 세심하게 지역 뮤지션들의 자부심을 지켜줘야 한다. 간담회에 참여한 강백수는 시인 겸 싱어송라이터다. 인디 뮤지션을 바라보는 시선이 백수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아 '백수'라는 예명을 지었단다. 강백수의 노래 '삼겹살에 소주' 가사처럼 삼겹살에 소주만 있어도 이렇게 행복한데, 지자체의 진심 어린 배려와 시민들의 함성만 있다면 뮤지션은 행복할 수 있다.부평구는 시민 주도의 문화두레를 미션으로 삼고 있다. 선조들의 두레도 연대와 협업 후에 임금을 결산해서 주고받았다. 공공의 영역에서 거리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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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혈의 누, 2억5천만원 낙찰 지면기사
'혈의 누'는 한국 신소설의 첫 번째 작품이다. '혈의 누(血의 淚)'는 '피눈물'이란 뜻으로 어법상 혈루(血淚) 또는 홍루(紅淚)라고 해야 하는데, 일본식 한자 표현방식을 따르고 있다. 제목이 말하듯 '혈의 누'는 난감한 소설이다.'혈의 누'의 작가 이인직(1862~1916)은 개인의 영달과 입신출세를 위해 자진해서 친일의 길을 걸은 사람이다. 39세 나이에 관비 유학생으로 1900년 9월 동경정치학교에 입학한다. 동경정치학교는 마쓰모토 군페이가 1898년 고등문관·외교관·신문기자 등을 양성할 목적으로 세운 3년제 학교다. 동경정치학교 재학 시절 고마쓰 미도리에게 국제법을 같이 공부한 인연으로 이인직은 구한말 내각의 농상공부대신이 된 조중응과 각별한 관계를 맺게 된다.이런 경력으로 이인직은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육군성의 한국어 통역관으로 임명된다. 이때 '이그재미너' 신문 종군기자로 잭 런던도 합류했다. 잭 런던은 SF이자 정치소설인 '강철군화'(1908)로 유명한데, 종군기자 시절의 경험을 살려 '조선 사람 엿보기'란 여행기를 남겼다. 이때 통역관 이인직과 종군기자 잭 런던이 만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소설과 SF가 만난 셈이다.이인직은 일본군 통역관 경력을 앞세워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1906년 '국민신보' 주필이 되고, '만세보' 주필을 거쳐 1907년 '대한신보' 사장에 취임한다. 신소설 '혈의 누'는 이 시기에 집필하고 발표한 소설이다. 1906년 7월부터 10월까지 '만세보'에 총 53회에 걸쳐 연재했고 1907년 광학서포에서 초판을, 1908년 같은 출판에서 재판을 찍었다. 그가 이완용의 비서가 된 것도 이즈음이고, 이완용을 보필하여 친일의 길을 걷다 생을 마쳤다.'혈의 누'는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한 신소설로 옥련이 일가의 수난과 재회를 다룬 작품이다. 현재 1907년 초판본은 없고, 1908년 재판본이 지난달 28일 코베이 옥션에서 2억5천만원에 낙찰됐다. 종전 최고가는 1억6천500만원에 낙찰된 김소월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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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밥 보다 고기 먹는 한국인 지면기사
한국인이 쌀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 지난해 국민 1인당 3대 육류 소비량 추정치가 60.6㎏이다. 돼지고기 30.1㎏, 닭고기 15.7㎏, 소고기 14.8㎏ 순이다. 쌀 소비량은 56.4㎏에 그쳤다. 2022년부터 발생한 현상인데 앞으로도 육류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늘 것이란다. 평소 식탁을 떠올려보니 맞다 싶어 고개를 끄덕인다.아재의 꼰대력을 발휘하자면, 한국인은 쌀 뒤주부터 채워야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민족이었다. 강화도 시인 함민복은 시 '긍정적인 밥'에서 "시 한 편에 삼만원"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했다. 시를 발표했던 때가 1996년, 불과 30년 안쪽이다. 육고기는 반만년 이상 계급과 계층을 나누는 칸막이였다. 소나 돼지를 잡으면 머리, 꼬리, 내장은 물론 뼈까지 알뜰하게 고아 먹었던 것도 그만큼 귀했고 그래서 갈망했던 육향 탓이었다. 덕분에 잡은 소를 120 부위 이상으로 나누는 세계 최고의 해체 신공을 보유한 민족이 됐다.밥심으로 산다는 한국인의 주식(主食)이 고기라니, 식탁 혁명으로 명명해도 과하지 않다. 산업화 시대 도시 노동자들의 보약이었던 삼겹살이 주도한 혁명이다. 세계 최고 최대의 치킨 프랜차이즈가 뒤를 받쳤다. 소고기는 광우병 내란을 극복한 수입산으로 대중화됐다. 김일성의 국정 목표였던 '이밥에 고깃국'은 손자인 김정은 시대에도 신기루에 불과하다. 한민족은 고기 먹는 대한민국 국민과, 고기 먹는 꿈을 꾸는 북한 동포로 분단됐다. 육류 소비량은 체제 승리의 완벽한 증거다.국민의 주식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가격이 폭등하면 나라가 흔들린다. 바게트와 파스타 물가 관리에 실패한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권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반만년 왕조와 70여년 대한민국 정권들이 쌀 공급과 가격 안정에 목매 온 이유다. 이제 양곡관리만큼이나 축산물관리가 민생의 척도가 됐다. 민심은 치솟는 육류 가격에 흔들리고, 비계삼겹살에 분노한다.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안 남는다고 했다. 육류에 길들여진 한국인이 꼭 그 모양이 됐다. 쌀이 없어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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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나훈아의 은퇴 지면기사
가수 나훈아가 27일 은퇴 의사를 담은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일이 이렇게 용기가 필요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며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의 깊은 진리의 뜻을 따르고자 한다"고 밝혔다. 4월에 시작하는 마지막 공연 타이틀도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라니 진심인 듯싶다. 팬들은 충격에 빠졌고 언론은 진의 파악에 분주하다.나훈아는 수식어가 거추장스러운 전설이다. 1966년 데뷔한 이후 그의 말대로 "한발 또 한발 걸어온 길이 반백년을 훌쩍 넘어 오늘"에 이르렀다. 발표한 앨범이 200장이 넘고, 800곡 이상의 자작곡을 포함해 취입곡이 2천600곡에 달한다. 전쟁세대의 부모와 산업화·민주화 세대의 아들딸이 대를 이어 그의 명곡들을 애창하고, MZ세대들은 '테스형'에 열광했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대중성은 압도적이고 예술적 카리스마는 독보적이다.현악기의 음이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듯, 가수의 노래도 세월이 쌓일수록 깊어진다. 국보급 가수들이 공백기는 있을지언정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장수하는 이유다. 폴 매카트니는 팔순이 넘은 고령에도 해외 공연을 쉬지 않는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78세에 대박 앨범 'Duet'을 발매했다. 82세로 그가 숨지자 클린턴 대통령, 레이건 전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못지 않을 대한민국 국보급 스타로 손색없는 나훈아다.나훈아와 동년배인 송창식은 최근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 "노래를 부를 때 한 번도 똑같이 부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듣는 귀도 마찬가지다. 세월에 따라 같은 노래가 달리 들린다. 청년 송창식의 호흡 짱짱한 '고래사냥'에 피가 끓었다면, 나이 든 송창식이 읊조리는 '사랑이야'에선 위로를 받는다.나훈아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노래하려 훈장까지 거부한 사람이다. 노래에 진심이고 완벽한 무대를 추구한다. 2020년 코로나로 격리된 국민들을 위해 출연한 KBS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대표적이다. 완벽한 가창과 무대, 명품 신곡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