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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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문과(文科) 침공' 지면기사
문과생들은 대체로 수학·과학 과목을 싫어한다. '수포자'(수학 포기자)라 의사나 엔지니어의 길을 접었다는 학생이 많다. 반면 국어·외국어와 역사·지리가 부담인 학생들은 장래 희망과는 거리가 먼 이과를 선택한다. 수십 년 이어진 계열별 분리 학습의 폐해가 심각하다.교육부가 2015년 '문·이과 통합형 개정 교육과정'을 내놨다. 미래 정보지능사회에 맞는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2018년부터 문·이과의 칸막이를 허물어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수업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시행 4년이 지났으나 교육현장은 달라진 게 없다. 인문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문과 공부만 하고, 이공계열 지원자는 이과 공부만 하는 칸막이 학습이 여전하다. 정부 바람과 달리 문·이과의 벽은 견고했다는 게 교육계 목소리다.2022학년도 서울대 인문·사회 정시합격 44%가 이과생이라고 한다. 최초 합격자 486명의 수능 수학영역 선택과목을 분석한 결과다. 이과생들 영역인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학생이 216명(44.4%)에 달했다. 심리학과는 9명 중 8명이 이과생이었다. 자유전공학부 95%, 경제학부 44%, 경영대 43%, 영어교육과 63%를 점령했다.이과생들의 '문과 침공'은 지난해 처음 도입된 '문·이과 통합 수능' 영향이다. 수학은 과거 이과생은 '수학 가형', 문과생은 '수학 나형'을 치렀고 성적을 분리 산출했다. 그런데 이번 수능부터 문·이과생이 시험도 같이 보고 성적도 함께 산출했다. 입시업체들은 1등급 90% 가까이가 이과생인 것으로 본다.서울 주요 대학은 자연계열 지원생의 경우 수학은 '미적분'이나 '기하'를, 탐구는 과학탐구 중에서만 고르도록 해 문과생의 이과계열 지원을 막았다. 교차 지원하는 이과생에는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이과생들에게 자리를 빼앗긴 문과생들은 '이번 생 폭망했다'고 절규한다.문과에 지원한 이과생들은 수준이 2단계 높은 대학에도 합격했다. 수도권 대학에서 인 서울로, 지방대에서 수도권으로 합승한 이과생들이 많다. 눈치 빠른 입시학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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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무너진 코로나19 방역 지면기사
작금의 코로나19 방역현장을 보면 우리가 지난 2년간 온갖 희생을 치르며 벌였던 방역전쟁이 허탈하다. 정부는 2020년 1월 '우한 폐렴'이 국내에서 발생하자 감염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확진자 동선파악과 접촉자 격리에 방역 역량을 집중했다.바이러스 감염을 원천 차단한다는 발상은 곧바로 발생한 대구 팬데믹으로 허구가 됐다. 그 책임을 온전히 31번 확진자와 신천지교회가 뒤집어썼다. 정부는 자영업자 영업을 제한했고, 국민을 사회적 거리두기로 격리했다. 생존권과 기본권을 제한하는 대가로 국가재정을 위협할 거금인 수십조를 국민에게 푼돈으로 뿌렸다. 정부가 자랑한 K-방역의 성과는 방역통제와 국민희생 덕분이었다.하지만 백신 접종 이후 거리두기와 위드코로나 사이에서 줄을 타던 정부 방역이 오미크론 변이로 속수무책이 됐다. 지난 7일 정부는 고위험군 치료역량에 집중하는 방역체계 전환을 발표했다. 고령자와 기저질환자 빼고는 모두 재택 치료를 하라는 각자도생 방역을 선언한 것이다. 코로나19와의 2년 전쟁에서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 셈이다.갑자기 코로나19와의 게릴라전에 내몰린 국민만 황당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장비와 정보부족이다. 자가진단키트는 씨가 말랐고 가격이 폭등했다. 2년 전만 해도 두 달이면 전국민이 자가진단을 할 수 있을만큼 생산량이 충분했던 키트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자가진단 양성 결과자에게만 PCR 검사를 허용한다면서, 정부는 자가진단키트 재고 확인은 물론 비축도 하지 않은 것이다. 보건소에선 무료인 키트가 시중에선 부르는 게 값이다. PCR 검사비는 재난지원금보다 비싸다. 수십조 재난지원금을 뿌린 정부가 각자도생의 기본인 바이러스 검사는 시장에 내맡겼다.상담과 치료를 전담할 병원은 부족하고 보건소 전화는 먹통이다. 재택 치료 중 위급해지면 조력을 받을 경로 파악이 힘들어 우왕좌왕한다. 12일 기준 PCR 검사자 중 확진율이 16.5%이다. 선거 출구조사에 빗대면 5천만 국민 중 수백만 명이 확진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무증상 확진자나 감염후 자연 치유자들이 3차, 4차 백신 접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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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분노의 질주' 지면기사
빙상 영웅 김동성은 1998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천m 우승자다. 강력한 우승 후보 중국 리자쥔(李佳軍)과 숨 막히는 접전을 벌이다 결승선 날 들이밀기 신공으로 신승했다. 불과 0.053초 차이로 승부가 갈렸고, 리자쥔은 패배가 믿기지 않는 듯 심판에게 수차 확인을 하고서야 경기장을 떠났다.2002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천500m 유력한 금메달 후보는 이 종목 세계 1위 김동성이었다. 결승에서 미국의 안톤 오노, 리자쥔 등과 경쟁한 김동성은 여유 있게 1위로 통과했으나 어이없게 실격 처리됐다. 레이스 도중 오노 선수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거다. 유명한 '할리우드 액션' 사건이다.같은 해 세계선수권대회 1천500m 결승에서 김동성은 초반부터 치고 나가 2위 그룹을 한 바퀴 반 이상 따돌리는 압도적 기량으로 우승했다. 2분21초72 기록으로 2위 선수에 10초 이상 앞섰는데,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대담한 전략이었다. 상대 선수가 반칙하거나 편파판정 요인을 원천봉쇄하려는 의도로, '분노의 질주'라는 찬사를 받았다. 비록 오노와 숙적 리자쥔이 출전하지는 않았으나 월등한 기량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 없이는 엄두도 못 낼 작전이다.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남자 쇼트트랙 1천500m 황대헌이다. 10명이 출전한 결승에서 황 선수는 9바퀴를 남겨두고 선두로 치고 나와 레이스를 주도했다. 후반 들어 속도를 더 높였고, 단 한 차례 역전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황 선수는 "아무도 제 몸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준비한 전략이 통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틀 전 1천m에서 뼈아픈 오판으로 실격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중국 매체들도 "논쟁 없이 진짜 실력을 발휘했다"는 반응을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 네티즌들의 존중(respect)을 받았다. 올림픽은 이래야 한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반칙왕 리자쥔은 스케이트 날을 고의로 뻗어 김동성을 다치게 했으나 우승을 막지 못했다. '나쁜 손' 런쯔웨이(任子威)는 교묘한 손기술과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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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중화(中華) 리스크' 지면기사
1971년 일본 나고야에서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폐막 즈음 중국 선수단이 미국 선수단을 중국으로 초청했다. 미·중 정부의 획기적인 외교 이벤트를 감춘 스포츠 교류였다. 당시 중국은 소련과 국경분쟁을, 미국은 소련과 냉전 주도권을 다투고 있었다. 양국은 소련 견제라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모색해 왔던 은밀한 외교를 탁구 친선경기를 통해 공개한 것이다. 냉전시대 국제질서를 바꾼 핑퐁외교의 전말이다. 탁구 교류는 헨리 키신저-저우언라이 회담에 이어 1972년 역사적인 닉슨-마오쩌둥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탁구로 '죽(竹)의 장막'을 걷고 국제무대에 등장한 중국이 50년 만에 쇼트트랙으로 죽의 장막에 유폐될 처지에 몰렸다. 한복 개막식으로 한국인과 척지더니, 편파판정으로 세계인의 지탄을 받고 있다. 전세계가 목격한 편파 판정은 엽기적이다. 쇼트트랙에선 한 번도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지 않는 중국 선수들이 금메달 2개를 챙겼다. 한국 선수들은 예선에서 줄줄이 실격됐고, 헝가리 선수는 결승에서 금메달을 도둑 맞았다. 스키점프 강국 독일, 일본 선수들은 복장 규정 위반으로 실격당해 점프대에 서보지도 못했다. 편파 판정은 점잖은 표현이고, 4년간 올림픽을 준비한 선수들에겐 명백한 폭력이다."반칙이 한국팀의 전통"이라느니 "땅이 좁아서 속도 좁다"느니, 중국 관영언론과 네티즌들의 적반하장도 가관이다.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는 중국과 중국인을 향한 세계 각국의 연대 움직임도 뚜렷하다. BTS(방탄소년단) RM이 편파판정 희생양인 황대헌에게 남긴 '엄지척' 이모티콘을 중국 네티즌들이 '구토' 이모티콘으로 오염시키자, 전세계 아미들이 보라색 하트로 세척해버렸다. 세계인들은 올림픽을 통해 중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중국은 이번 동계올림픽을 중국 패권의 선전장으로 활용하기로 작정했던 모양이다. 소수민족의 중화 복속을 주제로 한 개막식이나, 최고 지도자(시진핑)에게 보답하려 막무가내로 금메달을 가로채는 편파판정의 배경에 중국의 패권주의가 어른거린다. 결과는 의도와 전혀 다르다. 세계인이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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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로또와 복권 지면기사
'아라비안나이트'는 탐험가 리처드 버튼이 편집, 영역함으로써 아랍권을 넘어 세계 전역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라비안나이트'가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 즉 액자소설적 구성에 독특한 화법으로 낭만주의 문학은 물론 근대소설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천일야화(千一夜話), 요컨대 천일(千日)이 아니라 천일일(千一日) 야화다. 이는 무한을 뜻하는 천(thousand)에 하나(one)를 더해 영원한(forever) 이야기라는 뜻을 부과하기 위해 만든 제목이다.지난 주말 한국로또가 1001회를 넘기고 이번 주 1002회째에 돌입했다. 2002년 12월 7일 1회 추첨이 시작된 이래 20년 만에 1천회를 넘긴 것이다. 로또(lotto)는 제비뽑기를 뜻하는 'Lot'에서 나왔는데, 이런 제비뽑기나 복권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성경의 '민수기'에도 모세가 요단강 서쪽 땅을 나눠줄 때도 제비뽑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연회를 베푼 다음 계산서로 추첨하여 참석자들에게 상품을 지급한 것이 복권의 효시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진짜 로또는 1476년 이탈리아의 모데나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나 지금 같은 로또의 형식과 방법은 유력 정치인이었던 베네데토 젠틸레가 90명의 입후보자들 가운데 제비뽑기로 5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제도에 착안하여 5/90 형태의 복권을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의 6/45 방식 로또의 모체가 되었다는 것이다.로또는 '고통 없는 세금'이라는 말대로 주로 국가가 재정을 확충할 목적으로 시행하는데, 사회주의의 종주국을 자처하던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구 소련)에서도 1970년대 스포츠 로또를 시행했으며, 폴란드는 1973년에, 프랑스는 1976년에 6/49 로또를 시작했다. 미국에는 26개의 주립 복권기관들이 연합하여 만든 파워볼(powerball)이 있는데, 규모나 당첨금을 기준으로 보면 세계 최대 규모다.한국 로또도 계속 성장하여 작년 로또 판매액만 약 6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경제난이 가중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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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악플러 살인' 지면기사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2020년 3월 연예뉴스 댓글 서비스를 종료했다. 경쟁사인 다음이 댓글을 없앤 지 6개월 만이다. 네티즌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방법은 '좋아요' '화나요' '훈훈해요' 등 감정 이모티콘을 추천하는 것으로 제한됐다. 다양한 의견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드러내는 댓글에 비해 영향력이 미미하다.네이버와 다음이 댓글을 막아선 데는 연예인들의 극단 선택이 결정타였다. 2019년 말 가수 설리와 배우 구하라가 잇따라 세상을 등졌다. 악플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젊은 연예인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거셌다. 다른 많은 연예인도 악플로 고통받는다는 주장과 함께 '악플러 살인'이란 극단적 비판이 제기됐다. 격앙된 사회 분위기가 양대 포털의 댓글 금지로 이어진 것이다.유튜브와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에서 활동해온 20대 여성 BJ가 지난달 갑자기 방송활동을 중단했다. 페미니스트란 비판과 무분별한 악플로 인해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지난 2019년 어머니가 악플이 원인이 돼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소환되면서 신변을 걱정하는 팬들이 많았다. 2주 만에 접속이 재개됐지만, 그가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청와대 게시판에 가해자 처벌을 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며칠 사이 여성 BJ에 이어 20대 남자프로배구 선수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4일 자택에서 숨진 명문구단 소속 선수는 신변을 비관하는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지인들은 고인이 외모와 벤치에 자주 앉는 경기력을 비웃는 SNS 악성 댓글에 힘들어 했다고 전했다.연예인에 대한 비판이 포털뉴스에서 동영상 콘텐츠로 옮겨붙고 있다. 출연 연예인에 대한 비난은 의도가 불순하고 악의적이다. 유튜브와 네이버 TV 동영상 콘텐츠에는 수많은 댓글이 올라온다. 이미 TV나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공개된 영상이나, 당하는 연예인들에 심적 고통을 주기는 마찬가지다.소셜네트워크가 악플러들 만행으로 위협받는다. 포털 댓글이 막히자 동영상 서비스로 활동무대를 바꿨다.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를 먹잇감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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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베이징 동계 올림픽의 한복 지면기사
중국은 국력이 커진 21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역사왜곡 계획을 착착 실행한다. 2002년부터 5년간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둔갑시킨 동북공정이 대표적이다. 위구르족 역사를 조작한 서북공정, 티베트 역사를 날조한 서남공정, 흉노·돌궐·몽골제국 등 유목제국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막북공정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소수민족의 분리가 걱정인 중국 입장에서는 역사왜곡이 정략적으로 유용할지 모르나, 당하는 쪽에선 민족적·역사적 치욕이다. 하물며 엄연한 독립국가의 역사를 훼손한다면 전쟁에 준하는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중국은 동북공정 이후 집요하게 대한민국 문화를 노략질해왔다. 김치의 원조를 자처하고 아리랑을 국가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 했다. 그래도 역사적 기록과 사실이 알량한 왜곡의 논리를 압도하기에 인내해 온 한국 정부와 국민이다.중국이 기어코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한국의 반중 정서를 폭발시켰다. 중국 국기를 받쳐 든 소수민족 대표 56명에 한복을 입은 여인이 포함된 개막 공연을 전세계에 송출한 것이다. 올림픽 보이콧까지 주장하며 중국의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특히 북한보다 중국에 더 거부감을 보이는 20, 30대의 반발이 거세다.MZ세대 지지에 목마른 대선주자들도 반중 정서에 편승했다. 중국의 반발을 이유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사드 추가배치 공약을 격렬하게 비난한 민주당 이재명 후보도 "대국으로서 과연 이래야 되느냐"고 중국을 직격했다. 윤 후보는 "고구려와 발해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럽고 찬란한 역사"라며 문화공정의 모태인 동북공정 자체를 부정했다. 반중 정서가 대선 캠페인의 변수가 됐다. 유독 정부만 조용하다. 한복 차림으로 개막식에 참석한 황희 문체부 장관은 외교적 항의는 필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중국이 한복(韓服)을 자국 문화로 왜곡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한푸(漢服)'라는 왜곡용 신조어를 만들었을 정도다. 중국인 대부분이 정부가 왜곡한 역사와 문화를 사실로 알고 있다. 멀지 않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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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베이징 동계올림픽 지면기사
컬링 경기 '스톤' 모양의 수륙양용 로봇이 성화를 장착하고 빙판 위에서 물속으로 미끄러졌다. 성화봉의 불꽃은 물 안에서 꺼지지 않았다. 로봇은 물 안에 대기하던 다른 로봇의 성화봉을 점화시켰다. 불을 넘겨받은 로봇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상에서 다음 주자가 넘겨받을 때까지 성화는 활활 타올랐다. 정밀한 로봇 조작기술과 불꽃이 물 안에서 꺼지지 않도록 하는 첨단기술이 지난 2일 시작된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의 백미를 장식했다.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4일 개막돼 17일간 열전에 돌입했다. 코로나 19 여파로 분위기는 썰렁하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축하사절을 파견하는 관례를 깼다. 선수촌과 미디어 숙소, 경기장 주변엔 경찰 공안이 배치됐고, 외부인들 이동이 제한됐다. 상황은 여의치 않으나 대회가 진행될수록 지구촌 축제답게 명승부가 연출되고 열기가 뜨거워질 것으로 주최 측은 기대했다."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를 획득, 종합 15위에 오를 것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지난달 5일 동계올림픽 개막 D-30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밝힌 한국선수단 예상 성적이다. 2018 평창올림픽 금메달 5개에 비해 3~4개나 적은 야박한 예상치다. 정초부터 엄살이 심한 것 아니냐는 반응과 여러 (나쁜) 환경을 고려한 판단이라는 견해가 갈렸다.대한체육회가 지레 찬물을 끼얹은 건 효자 종목 쇼트트랙에 대한 걱정에서다. 쇼트트랙이 정식종목이 된 1992 알베르빌 이후 매 대회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고, 역대 24개 금메달을 수확했다. 평창에서도 3개의 금메달을 따냈으나 최근 상황은 비관적이다. 평창 금메달리스트 임효준(26)이 불미스러운 일로 중국으로 귀화했다. 대표팀 선발전 1위 심석희(25)는 국가대표 2개월 자격정지로 출전하지 못한다. 대표팀은 쇼트트랙 남자 500m 황대헌과, 여자 1천500m 최민정 선수에 기대를 건다. 쇼트트랙은 운이 작용하는 변수가 많은 데다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아 섣불리 낙관할 수 없다.올림픽에선 이변이 속출하는 반전 드라마가 연출된다. 우리 대표팀도 예외가 아니다. 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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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설날 축구 삼국지 지면기사
축구는 공과 골대와 선수만 있으면 가능한 스포츠이다. 진입장벽이 없고 직관적인 경기규칙 덕분에 세계 어디에서나 남녀노소가 참여하고 관전하며 즐기고 열광한다. '공은 둥글다'는 격언대로 의외의 승부가 속출하는 것도 축구의 매력이다. 덕분에 축구는 많은 나라의 국기(國技) 대접을 받고 있지만, 그 탓에 앙숙 관계인 국가 대항전은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긴다. 1969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축구 때문에 전쟁을 했고, 한·일전은 양국의 자존심 대리전으로 격상한지 오래됐다.한국, 중국, 베트남의 설날 축구 삼국지가 화제다. 설날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지역 예선경기 결과에 삼국 국민의 표정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시리아를 2대0으로 제압한 한국은 월드컵 본선 10회 연속 출전을 확정했다. 10회 연속 출전은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에 이어 여섯번째인 대기록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위업 만큼이나 대단한 업적이지만 국민들은 덤덤하다. 탈락이 이변이지, 본선 진출은 당연하다는 자신감 때문일 테다.오히려 중국과 베트남의 설날 축구대첩 결과가 더 흥미롭다. 중국은 최약체 베트남에 1대3으로 패한 충격에 나라 전체가 가라앉았다. 축구팬들은 춘제(중국의 설)를 망친 대표팀에게 '귀국하지 말라'고 악담을 퍼붓고, 한 축구팬은 TV를 때려부쉈다. 본선 진출은 이미 물 건너 간 상태지만 베트남에까지 지자 국가 자존심에 제대로 상처를 입었다.반면 베트남은 축제 분위기이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대표팀은 월드컵 지역 최종예선 최초 진출, 첫승으로 축구 역사를 새로 썼다. 박항서 매직에 중국이 희생양이 된 드라마에 베트남 전체가 열광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불편했던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베트남에게 이번 승리는 각별한 모양이다. 설날 최고의 선물에 총리는 선수단에 세뱃돈을 뿌렸다.세 나라는 아시아에서도 음력 설이 명절인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올해 설엔 영어권 국가와 기업들이 음력 설(Lunar New Year)을 중국 설날(Chinese New Year)로 표기하는 문제가 논란이 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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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코로나19 3년차 설날 지면기사
오늘부터 사실상 설 연휴가 시작된다.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지만 양력 새해를 한 참 전에 시작한 터라 음력 새해라는 문화적 의미는 조금씩 시들해져왔다. 농업과 어업에서는 여전히 음력의 절기가 유용하지만 일상은 양력이 지배한지 오래이다. 나이 기준만 해도 양력 기준의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는 대통령 선거 공약이 나올 정도이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쳐주는 문화가 없어지면 설 상에서 '떡국'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그래도 명절 분위기 망치기로는 코로나19 만한 원흉이 없다. 이번 설은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후 세 번째이다. 2020년 설 연휴는 국내 코로나19 발생 직후에 시작됐다. 당시엔 공식 명칭 없이 '우한 폐렴'으로 불렸다. 우한 폐렴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제 이름을 찾자 순식간에 공포가 확산됐고 사상자가 속출했다. 사람들은 이동을 멈추고 거리는 어두워졌다.2021년 설날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명절이 됐다. 경기도민 85%가 귀향을 포기하고, 64%는 연휴 '집콕'을 선택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명절 귀향을 종용하는 시댁을 고발하자는 며느리들의 항변이 온라인에 가득했다. 재고 폭탄에 산화한 전통시장 상인들이 속출했다.하지만 최악은 올해 설날이다. 코로나19 감염이 폭발하는 시점과 겹쳤다. 이달 중순 3천~4천명대이던 확진자 수가 27일 기준 1만4천명 이상으로 폭증했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 탓이다. 일일 확진자 규모가 늘자 정부의 방역대책도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감염자를 놓칠 우려가 있다며 한사코 거부했던 간이검사를 시작했고, 확진자 폭증에도 현재의 느슨한 방역대책을 유지한다는 말도 들린다. 치명률이 낮은 오미크론 집단감염을 집단면역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코로나19 3년 차 국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수천 년 각인된 문화적 본능이 강력하다. 고향과 가족을 찾는 집단적 회귀본능을 신뢰를 상실한 정부의 호소로 막기엔 역부족이다. 그래도 오미크론은 가장 악질적인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다. 치명률은 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