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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풍속도 지면기사
설을 앞두고 민족의 스승 안창호 선생의 일화가 잠시 스치고 지나간다. 이는 나라와 민생을 우선시한 선생의 삶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이 약관을 갓 넘긴 젊은 나이 때 일이다.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은 선생은 동포의 옳지 않은 삶을 보게 된다. 크지도 않은 조그만 한인사회에서 동포들은 분열과 불신, 가난 등 누추한 삶을 살고 있었다. 선생은 먼저 비를 들고 더럽혀진 동포 집을 청소하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한인 한사람 한사람이 곧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이 선생의 지론이었다. 이를 동포들에게 강조하고 실천하면서 동포사회는 그의 모범적인 삶을 따라 살게 됐으며, 1년 후에는 미국인도 감탄하게 됐다고 한다.선조들은 한해를 시작하는 날인 설을 상서롭게 여겨 근신하며 온갖 정성을 들여 맞이했다. 설의 유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설은 '시린다' '사간다'라는 옛말에서 유래됐는데,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의 뜻을 갖고 있다 한다. 여기에 더해 농사가 근본이었던 농경사회에서의 새해 첫 시작은 축원을 드리는 매우 뜻깊은 명절로 여겼다. 온가족이 모여 복과 무병, 무사와 풍년을 기원하며 조심스레 한해를 시작했고, 조상을 살피고 덕담을 주고 받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통과의례였다.이쯤에서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자. 복을 빌고 덕담을 나누며 조상을 찾아 뵙는 설을 잊고 사는, 잊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이 중 일자리를 잃고 고향찾기를 포기한 사람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물어 보면 대답하는 사람마다 이유와 책임져야 할 계층이 거의 같다. 정치권이다. 입은 민생을 얘기하면서 생각과 행동은 기득권과 정권창출에 맞춰져 있어, 이들이 말하는 민생은 믿음이 전혀 가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이다. 개인적인 것을 제쳐 놓고 모든 것을 정치권으로 모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몇 년간 이어지는 일자리 감소에도 내논 대책은 이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치권이 정권창출을 위한 목전지계만을 생각, 정작 해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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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터널에 갇힌 부모들 지면기사
지난 주말의 고향. 동네 입구에 큼지막한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대산읍 ㅇㅇㅇ씨 자제 ㅇㅇ대 합격. 고향을 떠난 지가 오래되어 현수막의 주인공이 정작 누구인지는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이웃을 축하해주는 동네 인심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일종의 편안함을 만끽한다. 사실 대학에 있다 보면 두 가지 부탁이 가장 많다. 하나는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하는데 대학병원에 아는 사람 없느냐는 것이다. 행정체계가 달라 별 도움을 주지 못할 때마다 미안하다. 다른 하나는 대학입학 정보다. 성적이 얼마쯤인데 과연 가능한가 하는 문의다. 그러나 대학마다 입학기준과 반영비율이 달라 알 수 없다는 답변을 할 때마다 답답하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힘 빠진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백성이 되려면 고3부모를 거쳐야 된다는 말을 되새긴다. 그 때문일까.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대학입학 여부를 먼저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되어 버렸다. 많은 부모가 내 자식이 천재 혹은 영재가 아닌가 하고 기대를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학입시라는 현실에 부딪히면 내 자식이 이 정도였던가 하는 자성과 함께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된다. 대학에 입학시키기까지 우리의 부모들은 변화무쌍한 입시정책과 치열한 경쟁에 끝없이 시달린다. 사교육비 때문에 가계가 기울고, 자식의 입시스케줄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는 부모가 없다. 자식에게 공부 좀 잘 하라고 호통을 쳐 보지만 성적 때문에 가출한다거나 자살했다는 뉴스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렇게 키운 자식이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 받는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어려운 분노가 된다. 교육부의 3불 정책과 자율화의 이름으로 기형화된 대학의 입시잣대. 그 긴 고통의 터널을 겪어 본 부모들에게 남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식이 어느 대학에 입학했는가에 따라 부모의 능력을 판단하는 나라. 자식의 사교육비를 위해 부정을 했다던 공직자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나라. 선진 국가에 필수적이라는 산업클러스터는 없어도 대치동의 대입 학원 클러스터·공무원 시험을 위한 노량진 클러스터·사법시험을 위한 신림동 학원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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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대학교수 지면기사
올 시즌 대학가의 스토브리그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근래 들어 메이저대학들을 중심으로 교수확보율 제고에 열을 올리는 까닭이다. 금년에도 상당수의 대학교수들이 직장을 옮겼다. 그 와중에서 수도권 모 대학의 촉망받는 젊은 교수 2명이 동시에 직장을 옮겼다. 한 교수는 월급이 너무 적어 도저히 생활하기가 힘들다며 일반 기업으로, 다른 한 교수는 연구 부담이 지나치게 과중하다며 다른 대학으로 각각 전직했다. 두 교수의 공통점은 계약제 교수이다. 계약제 교수란 연봉 및 근무기간을 계약으로 정한 교수로서 계약이 만료되면 다시 재계약하던가 아니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교수로서 비정규직인 셈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에 이 제도가 언제부터 국내 대학에 도입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분명한 점은 지난 외환위기 이후부터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학령인구수는 점차 감소하는데 반해 대학수는 급증했다. 지방자치제 실시는 대학수 증가를 부채질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국내 대학들을 더욱 압박했다. 정부 또한 당근식 지원정책으로 대학의 변화를 강요했다. 차제에 대학들은 다투어 품질경영과 수익성 위주의 경영으로 전환했다. 신상품을 출시하는가 하면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매출증대와 비용축소에 주력한 결과 대학들 또한 기업들처럼 현금보유율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계약제교수 숫자도 덩달아 급격하게 늘어났다. 비정년 교수 채용건수는 2004년 384명에서 2006년 상반기에는 837명으로 늘어나는 등 불과 2년도 채 못되어 2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이로 인해 2006년 4월 현재 196개 대학의 비정년 교원수는 2천268명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매년 재계약철만 되면 크고 작은 일이 빈발하곤 한다. 수년간 근무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직해 대학들을 당혹스럽게 하는가 하면 부득이 재계약을 해야만 하는 교수들은 계약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머리털이 한 움큼씩 빠지기도 한다. 살아남느냐 혹은 탈락하느냐 그야말로 비정규직 교수들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연봉 2천만원짜리 등 상식이하의 저임금을 받는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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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이 꿈꾸는 세상 지면기사
우리네 서민들에게는 요즘처럼 힘든 세상이 없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경기불황이 서민들 삶을 옥죄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그냥 노는 사람이 100만명을 넘어섰고 청년 백수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있다. 소득은 줄고 체감 물가는 천정부지이다. 계층간 양극화 심화로 상대적 박탈감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해 민생이 도탄에 빠졌다는 말이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서민들을 속타게 하는 것은 특히 물가 오름세이다. 연초부터 버스, 지하철, 철도 등 공공요금을 필두로 밀가루, 소주, 오렌지주스 가격이 대폭 오르거나 인상을 대기하고 있다. 그것도 최고 10%이상씩 오르는 것도 많다. 뒤따라 학원비, 중·고 수업료, 대학 등록금 등과 각종 사회보험료도 덩달아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물가가 자꾸 오른다고 서민들의 근로 임금이 인상되는 것은 분명 아닐텐데도 말이다. 오히려 소득은 줄거나 제자리 걸음할 가능성은 더 크다. 문제는 서민들의 근심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부동산 대책으로 다주택자들은 세금 폭탄을, 재산이라고는 달랑 집한채인 한가구 집주인들은 집값 폭락을 걱정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어렵사리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이들은 금리 인상으로 곤란을 겪고 있으며 집없는 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집값은 이미 천정부지로 올라있어 혼자 힘으로 집장만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어디 한군데 마음 편한 구석이 없을 정도이다.여기에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은 서민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한다. 내수경기, 다시 말하면 서민경제는 찬바람이 쌩쌩이다. 오죽했으면 한 금융계 고위인사는 금년 경제를 임갈굴정(臨渴掘井)이란 사자성어를 사용하면서 경고했겠는가. 임갈굴정은 목이 마른 뒤에야 우물을 파는 것처럼 위기가 닥친 후에야 비로소 서두르는 상황을 경고하는 의미이다. 현 경제상황과 비교하면 아주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가계는 소득이 줄고 있는데 빚이 사상 최대인 560조원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서민가계는 원리금 상환에다 세금과 사교육비 대느라 소비여력이 없다. 이는 내수침체의 원인이고, 부동산거품 붕괴와 맞물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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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 지면기사
기원전 5~4세기 고대 그리스엔 소피스트(Sophist)라 불리는 일군의 철학자들이 있었다. 소피스트란 '지혜'를 뜻하는 그리스어 소피아(Sopia)에서 유래한 말로 현인(賢人) 또는 지자(知者)를 의미한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히피아스 프로디코스 등이 당시의 대표적 소피스트들이다. 그들은 주로 수사(修辭)와 설득으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기술을 가르쳤다. 사실 설득의 힘은 민주정치가 시행되던 당시 그리스에서 지위 상승을 바라는 사람들에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신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선(善)을 도모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는 길'을 가르친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분히 양면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수사학이 민주정치 발전에 얼마쯤 도움은 됐지만,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소위 말 잘하는 이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대중을 기만하는 행위에도 수사학이 이용됐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실제로 가르친 것은 '선이란 이런 것'이라는 지혜가 아니라, 선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면서 선한 자인 체 하는 기술만 가르친 데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소피스트를 '궤변을 일삼는 무리'라 하여 궤변론자라 부르기도 했다. 이같은 불합리를 밝혀낸 철학자가 다름아닌 소크라테스다. 따라서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던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그릇된 이론으로 선동, 타락시킨 죄'로 독배를 마셔야 했던 것도 여기에 큰 원인이 있다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허물을 드러낸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에겐 용서 못할 적일 수밖에 없었고, 또 그들의 궤변에 넘어가지 않을 재판관이 있을 리도 없었던 것이다.올해는 17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해다. 비록 아직 11개월 정도나 남아 있지만, 차기 대선 예비주자들의 발걸음은 마냥 바쁘기만 하다. 저마다 국민의 환심을 사고 인기도를 높이고자, 거친 이전투구(泥田鬪狗)마저 서슴지 않으며 선거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제의까지 편승, 새해 들머리부터 나라 전체가 마치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있다. 으레 그렇듯 선거 정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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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표트르에게 지면기사
스 노븜 거덤! 러시아에서는 새해 인사를 이렇게 한다지요? 인터넷을 뒤져 알았습니다. 발음이 정확한지는 모르겠구요. 표트르!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세요.볼고그라드 벌판은 요즘 매우 춥겠군요. 벌판에서 움집을 짓고 이 겨울을 날 고려인들이 걱정됩니다. 한국도 지난 주말부터 소한 추위가 몰려왔지요. 하지만, 매서운 칼바람 피할 곳이라고는 땅속 집밖에 없는 볼고그라드만 하겠습니까. 12시간을 달려도 작은 언덕 하나 없던 그 벌판이 떠오릅니다.벌써 반년이 훌쩍 지났군요. 지난 여름 볼고그라드 공항에서 표트르를 처음 만났지요. 말투만 아니라면 우리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로의 아저씨같던 표트르. 자그마한 키에 그을은 얼굴을 보고 처음엔 중앙아시아계 고려인인줄 알았지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생화학 박사학위까지 받고 교수를 지낸 분이라는 건 짐작도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대에 두만강을 건넌 한인 3세라고 하셨지요?볼가강 댐 검문소에서 러시아경찰에게 영문도 모르고 잡혔던 일 기억나시나요? 꼬박 이틀간 볼가강변에서 열심히 농사짓던 카레이스키들을 만나고 돌아오던 길이었지요. 그 때 운전대는 '우리민족서로돕기'에서 볼고그라드로 파견돼 일하는 이봄철 부장이 잡았고, 표트르는 조수석에, 우리 취재진 셋은 뒷좌석에 있었지요. 러시아경찰은 동양인들만 탄 우리 차를 무조건 잡았지요. 표트르는 엄연히 러시아인인데도 말입니다.총을 든 경찰이 내리지도 못하게 하는 바람에 차에 두시간 가량 붙잡혀 있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유창한 러시아말에 러시아식 사고방식을 가진 표트르가 이런 대우를 받는데, 중앙아시아에서 계절농사를 지으러 왔다가 불법체류자가 된 카레이스키들은 오죽할까. 한때 소련의 잘 나가는 지식인이었다가 이제는 고려인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는 표트르의 지금 심중은 어떨까.표트르가 엄포반 사정반 해서 검문을 겨우 통과할 수 있었지요. 부패하고 무능한 러시아경찰을 향해, 그리고 그들의 '밥'이 된 고려인들을 생각하며 울분을 토해내는 이봄철 부장에게 그래도 러시아인을 감싸려고 더듬거리는 우리말로 애쓰던 표트르의 속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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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돼지를 갈구하는 뜻은 지면기사
원단(元旦)의 으뜸 화두(話頭)는 단연 희망이다. 올해도 예외 없이 수많은 인파들이 새해 소원을 빌기 위해 전국의 산과 바다를 가득 메웠다. 소득수준 향상과 주5일 근무제에 따른 관광수요 증가 때문이기도 하나 근래 들어 그 숫자가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다. 한때 자취를 감추었던 점쟁이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무당들도 성업 중이란다. 오죽 했으면 뜬금없는 황금돼지가 클로즈업되었겠는가. 미신이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차 엷어지고 행복지수 또한 둔화됨을 반증하는 것이다."돈과 행복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에드 디너 교수의 주장은 그동안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네먼 교수는 소득격차가 큰 집단 간에는 행복도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즉 부자들은 가난뱅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국가 간에도 확인된다. 영국 레스터대학의 에이드리언 화이트 교수가 작성한 '세계행복지도'에 따르면 덴마크, 오스트리아, 스웨덴, 캐나다 등이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이고 러시아, 인도, 콩고, 짐바브웨, 브룬디 등이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의외인 것은 조사대상 178개국 중 부탄이 8위에 랭크된 반면 일본이 90위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돈이 행복의 절대기준일 수는 없으나 부의 축적과 행복도 간에는 '정'의 상관관계가 높음을 알 수 있다.국별 행복지수랭킹에서 우리나라는 중국(82위)보다 낮은 102위로 하위권에 속했다. 이런 현상은 지난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전국 3만3천 가구의 15세 이상 가구원 7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제력, 직업, 건강 등 현재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이 28.9%에 불과하고 '나는 중산층'이라 답한 이는 3년 전에 비해 2.8%나 줄어들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일생동안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46.7%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줄어드는 반면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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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소망들 지면기사
올해는 유난히도 시끄러운 한 해였다. 숱한 우여곡절 속에 우리를 힘들게 한 일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정치·경제적으로나 하다못해 북한의 핵실험까지 사회를 혼란과 위기속으로 몰아넣으며 편안히 놔두지 않았던 세월이었다. 격정의 한해였음이 틀림없다.돌이켜보면 우리 사회 모든 부분이 따로 살림이었고 각각의 이해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편을 갈라 대립하는 이전투구 또한 심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 여론의 향배도 극명하게 달랐으며 그 해결책과 문제의 접근 방법도 상반된 입장이 태반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부동산 정책이 그랬고 북핵문제에 대한 접근도 같았다. 전시작전권 환수문제와 한미 FTA 협상도 다름이 없다. 찬반시위가 연일 계속되었으며 의견대립은 그 골을 더욱 깊게 했다고 본다.하지만 문제는 새해가 온다고 해서 이런 모든 상황이 조금도 달라질 게 없다는 점이다. 희망은 희박하고 위기의 전조들만 너울거린다 하겠다. 새해가 걱정스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난국을 헤쳐나갈 기대라도 갖고 싶은 것이 현재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단순 소박한 새해 소망을 기원해 본다.우선 앞으로 닥칠 대선을 무탈하게 잘 치러내길 바란다. 이번 17대 대선은 그 어느 대선보다 대립과 쟁투가 심할 것으로 염려된다. 벌써부터 정치권이 요동을 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10년 집권의 진보·개혁 정부가 계속될건지 아니면 보수·중도의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이며 국민의 선택만이 남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진영 간의 이념 대립 구도는 더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치열할 것으로 보여 큰 정치적 격동이 예상된다. 여기에 동서의 지역대결까지 가세할 경우 그 혼란상은 지금으로선 생각하기에도 끔찍할 정도이다. 이처럼 이번 대선은 우리의 운명을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선택임과 동시에 국민의 합리적 선택여부에 따라 국운의 부침이 결정되는 절체절명의 시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첫번째 소망은 당연히 우리 사회가 이런 국가적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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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들 사셨습니다 지면기사
2006년이 열흘 남짓 남았네요.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좀 길지만 전문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 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 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일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 왔으니/ 열심히 살았으니!'안도현 시인이 쓴 '열심히 산다는 것'이라는 시입니다. 행갈이를 제대로 해서 인용했더라면 감칠 맛이 더했을텐데, 이렇게 옮겨놓아서 죄송하군요. 한 장의 스냅사진 같은 시입니다. 한 번 읽으면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떠오르고, 다시 읽으면 마음이 짠해 집니다. 참, 교통카드 찍고 버스에 오르는 요즘 세태로 보면 '육이오 때'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아파트값이 다락같이 오르고, 애들 교육비도 허리가 휠 지경으로 뛴 한해였습니다. 같은 사무실 동료라도 집이 있고 없고에 따라, 어느 동네에 몇 평짜리 아파트를 가졌느냐에 따라 계급이 갈린다지요. 창문도 없는 고시원 쪽방에서 잠을 자다 화재로 숨진 가장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강남 어느 동네 중학생 한 달 사교육비가 비정규직 평균 월급의 두 배나 된다는 기사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던 기억도 있습니다.고작 30원을 아껴보려고 머리를 쓰고, 그걸 밝혀내느라 기를 쓰던 버스를 우리가 이제는 완전히 갈아 탄 걸까요? 종부세 세금폭탄론을 들을 때마다 이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두 얘기는 다른 논리를 따라 작동하는 별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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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앞세우는데엔 신물났다 지면기사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 주역들의 첫 마디가 이랬다. 즉 부패와 무능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어 군부가 일어섰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른바 혁명공약에서도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새로운 기풍을 진작한다"고 다짐했다.당연히 부정부패는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후 그들에 의해 가장 먼저 저질러진 게 대형 경제비리사건들이다. 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 사건, 파친코 사건 등이 그것이다. 후진국 특유의 권력과 부패 고리를 그들도 여간해선 떨쳐버리기가 쉽지않았던 모양이다. 그 뒤로도 군사정권하에서의 크고 작은 부정부패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국공유지 불하 의혹사건, 6대 재벌기업 금융특혜 사건, 율산파동 등 이루 다 헤아리기도 어렵다. 그리고 마침내 두 전직 대통령들의 거액 비자금 사건까지 일어났다.수십년 군부통치가 물러나자 이제부터야말로 그같은 부패구조도 말끔히 청산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계속 이어진 사정(司正)작업에도 불구, 날이면 날마다 무슨 무슨 게이트, 무슨 무슨 리스트 등 온갖 비리사건들이 온통 세상을 뒤흔들어왔다. 거의가 칙칙한 정경유착 및 정·관계 로비의혹 등을 남기면서…. 지금 온 나라를 강타한 바다 이야기나 제이유(JU)게이트 등만 해도 그렇다. 얼마나 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개입됐는지, 아직은 윤곽조차 그리지 못할만큼 숱한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다.하도 비리가 많다 보니 이젠 웬만큼 큰 사건이 아니면 국민들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다만 맥없는 국민들로선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에 분하고 억울해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남들은 부정으로 치부할 때 자신은 무얼했나 싶고,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자리에 있지 못한 처지를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차라리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부정 요령을 가르치자"고 열변을 토하는 이들도 있다. 어차피 부패 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