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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가산점 논란 지면기사
국가 유공자 취업 가산점 제도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군복무 가산점제도 폐지 당시의 논란만큼이나 뜨겁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가 공무원 7, 9급시험 및 교원임용시험에 응시한 국가유공자 가족에게 10%의 가산점을 주도록 한 국가유공자예우 및 지원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관련 법조항이 일반인들의 취업 기회를 제약한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2007년 6월30일까지 위헌적인 법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헌법불합치 결정은 관련법규가 위헌적인 요소가 있지만 법률 공백을 막기 위해 법개정때까지 해당 조항의 효력을 유지하거나 한시적으로 중지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유공자 10%가산점 제도의 경우는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유효하다. 사회적인 동의가 필요한 제도개선이나 국가 사업에는 많은 물의가 따르게 마련이다. 미군기지이전, 핵폐기물처리장, 장례식장 등 지역간, 국가와 주민간, 주민과 주민간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설득과 인내가 필요하다. 물론 때로는 국가 또는 다수의 이익, 시대의 변화와 같은 이유로 강제해결이란 수순을 밟기도 한다.그러나 이번 만큼은 좀더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득권 박탈 대상이 대한민국의 현재를 가능케 한 국가유공자 및 그 가족들이기 때문이다. 헌재가 군복무 가산점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한 것과 달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도 이 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헌법재판소는 지난 1999년 12월23일 군복무 가산점제도를 폐지시키면서 그 이유로 남녀평등에 위배된다는 이유를 달았다. 또 가산점이 적용되던 98년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비제대군인이 합격자의 3.3%에 불과했던 것도 위헌결정을 끌어낸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군복무를 의무적으로 이행한데 대한 최소한의 국가보상을 박탈당한데 대한 전역자와 군복무자들의 불만은 대단했었다. 가산점이 결코 특혜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가산점이 군복무로 불이익을 강제당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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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에 떠는 중소기업 지면기사
요즘 만나는 기업인들마다 이구동성으로 환율 때문에 기업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수출관련 중소기업인들은 아예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달러환율이 2002년 2월의 1천327.7원을 정점으로 달러화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 최근에는 900원대 중반조차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새해 들어서는 달러화가 마치 봅슬레이를 타듯 빠르게 미끄러지고 있다.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고는 하나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고단하다. 장기간의 내수부진에다 중국 등의 저가공세로 매출이 신통치 못하다. 더구나 고유가 탓에 원자재가격이 상승행진을 거듭하는 터에 인력 확보난에 따른 인건비부담 가중까지 가세함으로써 수익성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납품업체들의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다. 그동안 정부는 대기업들의 납품업체에 대한 횡포를 억제하기 위해 납품대금에 대한 현금결제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을 강조하고 있으나 대기업들의 ‘기름 짜기’식 납품업체 압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경이니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차제에 중소기업들은 금리가 상대적으로 비싼 제2금융권으로 몰려 상호저축은행의 중소기업대출금액은 사상최고를 기록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중소기업들은 환율폭풍에 강타를 당하면서 휘청거리고 있다.그런데 환율문제는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될 것 같지 않다. 최근 새로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에 취임한 벤 버냉키 교수는 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최대주범으로 산유국을 포함한 아시아국가들의 비상한 경상수지흑자를 지목하고 이런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세계경제 전체가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중국 위안화는 물론 원화에 대한 압박강도를 더욱 높일 것은 명약관화하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원화가 여전히 고평가되어 있다며 버냉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러니 재계가 달러화의 추가하락여부에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기업들은 올해 경영계획을 수정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른바 환율경영이다. 그 와중에서 현대, 기아자동차가 환율하락으로 채산성이 악화되자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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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빼곤 다 괜찮다? 지면기사
영 개운치 않다. 지난번 국무위원 인사 말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쳤고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했고 신임장관들이 장관석에 착석했으니 그냥 넘어가도 될 법 한데 가슴속에선 불편한 잔상이 끊임없이 솟구친다. 어차피 떠나버린 버스인데도 “스톱, 스톱!” 외치며 손사래를 치고 싶으니 묘하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버스 떠난 정류장, 매캐한 매연이 가득한 그 자리에 음주운전으로 승차를 거부 당한 사람들이 콜록대고 있다. 발차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니요, 남들 보다 뒷줄에 선 것도 아닌데 그 웬수 같은 음주운전에 걸려 떼밀린 사람들이다. 문제는 떠나 버린 버스에 승차해 느긋한 사람들의 면면이다. 음주운전 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법 위반자와 범법 혐의자들이 태반이다. 택시기사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골라 태우다간 멱살잡히기 십상이다.버스를 타고 떠난 사람들의 문제는 이미 다 공개됐다. 유시민 복지부장관은 국민연금법의 지역가입자 신고의무를 위반하고 보험료를 미납했다.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선거법위반 혐의로 검찰이 소환을 종용하는 처지이다.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여당 의원 조차 그를 낙마시키려 국가기밀문서를 공개하는 바람에 톡톡히 봉변을 당했다. 김우식 과기부총리는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면서도 대기업으로 부터 사무실을 지원받아 사용했다. 그리고 정세균 산자부장관은 6년간 78차례나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 인품에 대한 인상주의적 비판이나 재산형성 과정의 도덕성 논란이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다 해도 법적 시비를 엄격하게 벌일 경우 얼마든지 장관 결격사유가 될 수 있는 커다란 '잡티'들이다.하지만 청와대와 당사자들은 인간적 이해나 상식선의 관용을 내세워 잡티 많은 이들 모두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유 장관은 고의적이 아니니 봐줘야 하고, 이 노동장관은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지켜봐야 하고, 정 장관은 지역구인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이 무진장 멀어 운전기사가 무리한 탓이니 어쩌겠느냐'는 변명을 달고서다. 물론 보통사람들의 일이라면 까짓거 살다보니 겪은 횡액으로 여길만한 변명이다.하지만 참여정부의 정체성에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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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아시아 3國은? 지면기사
중국의 용틀임이 대단하다. 중국은 작년 1년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파키스탄, 잠비아, 모잠비크, 미국 등 20개 재난국에 총 26회에 걸쳐 원조금을 보냈다. 인도양 쓰나미 발생 다음날 가장 먼저 2천163만위안을 전달한데 이어 5억위안(약 700억원)을 추가로 보냈고 국제기관을 통해 2천만달러를 기부했다. 인도네시아 해일 피해에만 약 1천억원의 엄청난 원조를 한 것이다. 의료팀, 국제구원팀, DNA 검사팀 등도 파견했고 복구사업에도 적극 가담, 지원 프로젝트를 신속히 실행했다. 미국 남부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에도 500만달러와 구호물자를 제공했고 파키스탄 지진 때도 2천673만달러의 돈과 1천930t의 물자를 보냈다. 의료팀도 2천명이 넘었다. 루마니아 수해, 이란 지진, 잠비아 폭약공장 폭발 등 지구촌 어디든 가장 먼저 달려가는 나라가 중국이다.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과시인가. ▲작년 무역총액→전년비 23% 증가한 1조4천221억달러 ▲무역흑자→전년의 3배인 1천20억달러 ▲GDP(국내총생산) 성장률→9.9% ▲GDP총액→6년간 2배 증가, 프랑스를 제치고 미, 일, 독, 영국 다음 5위 ▲상하이항 화물 취급량→세계 1위인 4억4천300만t…. 중국의 경제 성장은 가히 폭발적이다. 2017년이면 미국의 GDP를 추월할 것이라는 ‘이코노미스트’지 금년 보고서대로 실현될 것인가. 중국은 군사력 증강에도 혈안이 돼 있다. K8형 군용기 80기를 이집트에 수출한데 이어 파키스탄 등과도 수출계약을 체결했고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한 항공모함 보유도 제11차 5개년계획(2006~2010년) 안에 실현할 예정이다.쩡페이옌(曾培炎) 부총리가 지난달 스위스의 다보스 포럼에서 “중국은 이제 자본주의가 뿌리내렸다”고 선언한 그 중국을 가리켜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엊그제 상·하 양원 일반교서 연설에서 “중국과 인도(Chindia)가 새로운 경쟁국”이라고 선언했다. 일본이 140년 전 메이지 유신 때부터 “베이고쿠 오이쓰케 오이코시(미국 따라붙자 추월하자)”라고 외쳤다면 요즘 중국은 “메이궈 추이깐 추이꿔(미국 따라잡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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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영화와 정치광대 지면기사
Y! '왕의 남자'를 보았겠지. 평생 광대를 자처하는 자네가 이런 영화를 놓칠 리 있나. 공길과 장생이 마지막 줄을 타면서 그러더군. 다시 태어나도 광대가 되겠다고. 자네 생각이 많이 났어. 참 잘 만든 광대영화라는 생각에 한참 객석에 앉아 있었다네. 왕남폐인들이 영화를 보고 또 보는 심리가 이해가 가더군. 관객이 벌써 800만을 넘어섰다지?보고 와서야 흥미로운 평을 하나 발견했네. 어느 제작사 대표가 그랬더군. 10대와 20대는 이 영화를 멜로드라마로 보고, 30대·40대는 광대놀이로, 50대이상은 왕정극으로 본다. 재미있지 않나? 내 영화감수성이 나이에 딱 들어맞는다는 게 말일세. 탈춤 공연이 독재타도 시위로 이어지던 대학시절이 떠오르더군. 그 때 우리는 탈판의 신명이 데모의 전위가 아니라 그냥 삶의 신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지. '왕의 남자'는 그 세상에 한걸음 다가갔다는 증거일까 아닐까.하여튼 왕남의 결정적 성공요인은 이처럼 다면적 감상이 가능한 영화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은 정곡을 찔렀다고 보네. 대중들이 자신의 경험과 감수성과 눈높이에 따라 즐길 수 있는 한국영화가 어디 그리 흔한가. 앞서 관객 1천만을 돌파한 두 편의 영화(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만 해도 단일한 주제와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식 아니었나? 왕남은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영화일 듯하네.어느 대학교수가 한국인들의 영화감상 태도를 관찰한 이야기가 생각나는군. 한국인들이 한국영화를 보는 방식과 할리우드 영화를 감상하는 관점이 다르다는 거야. 국산영화는 비판적인 눈으로 보지만, 양코배기영화는 그저 즐긴다는 것이지. 그러니까 한국영화는 소수의 관객과 다수의 비평가가 객석에 앉아있는 셈이고, 할리우드영화는 그 반대라는군. 날카로운 지적 아닌가?약간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왕남을 둘러싼 이런저런 '정치적 해석'이 난비하는 것 또한 이런 감상태도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이. 영화를 즐기기보다 숨겨진 풍자코드를 애써 찾아내고 그걸 견강부회해서 이용하려니 객석에 앉아있는 동안 얼마나 골치가 아팠겠나. 하긴 미스터빈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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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과 지율스님 지면기사
인간과 자연, 자연과 개발은 영원한 화두다. 인간의 삶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자연이 파괴되서는 안되고 개발 또한 멈춰서는 안되기 때문에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지리적 특성상 자연과 개발이라는 화두는 늘 우리를 괴롭힌다. 하지만 자연의 논리는 개발의 논리와 대부분 수평선을 긋고 결국에는 개발의 논리에 밀리고 만다. 그러나 이번에는 만만치 않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이 동국대 일산병원에 입원하면서 전 국민의 눈과 귀가 다시 천성상에 쏠리고 있다. 부산 금정산과 양산 천성산에 건설되고 있는 경부고속철도 터널공사를 반대해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는 지율스님은 환경의 문제를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천성산대책위와 천성산을 위한 시민·종교단체는 “천성산과 도룡뇽은 단순히 환경문제의 화두가 아니라 경제발전에만 매진해온 결과 삭막해져 가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생명의 화두이며, 비도덕 비양심 부패라는 총체적 문제제기의 화두로서, 자신의 생명을 던지면서까지 지키려는 지율스님의 진실이 무엇인지 바로 보자”고 호소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지율스님의 단식에만 말초적 관심을 쏟을 뿐, 스님이 목숨을 내놓고 전하려 메시지에는 귀기울이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천성산 터널공사 중단을 찬성하는 네티즌들도 “ 지율의 죽음을 건 단식은 우리사회에 자연과 생명의 존중성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경각심도 울려주었고 도룡뇽 같은 하찮은 미물에 까지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며, 스님의 단식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소홀히 대했던 자연에 대한 귀중함을 일깨우는 함축의 메시지라고 화답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 여론도 꽤많다. 단식이 가져온 역풍으로 유명 포탈사이트에 오른 글을 보면, 지율스님을 비난하는 내용이 지상에 옮기지 못할 정도로 많다. 게다가 환경운동과 환경운동단체를 비난하는 부정적 여론까지 눈에 띤다. 토론도 뜨겁다. 한 토론자 경우 “지율의 외침은 분명 청명한 것이다. 도룡뇽 같은 미물의 생명까지 중하게 여기는, 그의 불제자로서의 종교적 신념은 훌륭하고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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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피로증후군 지면기사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장관 입각을 두고 열린 우리당이 한바탕 내홍을 겪었다. 한나라당도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여당과 죽기살기 식으로 일전을 불사하고 있는 야당 입장에선 어떤 형태로든 정부와 여당에 흠집을 내야만 하는 처지이기도 하겠으나 유 의원이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 혹은 ‘노 지킴이’ 등의 닉네임이 붙을 만큼 한나라당에 많은 상처를 준 장본인일 뿐 아니라 그의 개혁성향이 비위에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문제는 일반 국민들도 유 의원의 입각에 대해 별로 인 듯 하다. 일전에 모 일간지가 지난 1·2 개각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1%가 이번 개각이 잘못되었다고 답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잘못된 인사로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직 내정을 꼽았다. 불과 8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인 만큼 조사결과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유 의원이 워낙 튀는 발언을 자주 하는 인사이다 보니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론조사결과를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그의 개혁적 성향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 싶다.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면서 선거 때만 되면 선량 후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개혁을 외쳐댔다.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는 정략적 차원에서 차별화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이 내세우는 개혁의 목소리는 높아만 갔고 개혁강도도 더욱 심해졌는데 김대중 정권이 등장한 이후부터 특히 심해졌다.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지배구조 개선과 빅 딜, 벤처, 글로벌 스탠더드 등 생경한 신조어들이 속출했다. 내수진작을 위해 1가구 다주택 보유를 권장하고 카드 돌려 막기도 기승을 부렸다.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란 엄청난 충격의 와중에 출범한 탓에 김대중 정부의 개혁강도는 물론 그 파장도 클 수밖에 없었다.강도 높은 개혁 무드는 노무현 정권에서 절정에 달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빌미로 부동산부자들을 옥죄었으며 카드 돌려 막기도 금지했다. 투명하고 공평한 사회를 표방한다며 성매매 금지법 제정, 접대비 실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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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홀로 가기 행보 지면기사
노무현 대통령이 1·2개각을 통해 유시민, 이종석이라는 양날개를 달았다. 두 사람의 입각을 반대하는 당론과 여론을 단칼에 잘라내는 결단을 통해서다. 그 이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사이에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형성됐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이 집권여당을 핫바지로 여긴다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대통령이 제안한 만찬을 걷어차버린데서 분노의 수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와대는 한 발 더 나아가 유시민 의원의 입각이 차세대지도자 육성 차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동영, 김근태 의원의 경쟁양상으로 전개중인 여권의 차기 구도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이에대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육성'이라는 표현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반발중이다.이런 양상이라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앞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긴장의 이완과 고조를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런 상황을 노 대통령이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이다. 대통령에게 여당은 집권의 동반이자 정권유지의 토대이다. 갈등이 예상되면 당연히 겉으로나마 봉합하는 것이 상식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들고 일어선 것은 이같은 상식의 전복 탓이다. 아무리 인상주의적 비판이라지만, 동료의원들 대부분이 “유시민은 안된다”고 하는 판에, 당론 수렴 절차를 밟을 듯 하다가, 유시민 입각을 강행한 것은 통상적인 정치관행과 거리가 멀다. 게다가 당정회의 석상에서 국무총리와 동급인 당의장을 산자부 장관으로 차출한 것도 또한 노무현식 상식파괴로 여겨 넘어가기엔 의미심장한 복선이 느껴져 개운치 않다.그렇다면 대통령이 집권여당과의 상식적인 관계를 파괴하면서 까지 획득하려는 정치적 실익이 무엇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정답은 이미 실행된 개각과 발표된 청와대의 차세대 육성론에 담겨있다. 즉 대통령은 임기 후반의 국정과 정국에서 결코 자신이 소외되는 일이 없을 것임을 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정권의 핵심적인 현안인 사회개혁과 대북관계 진전은 임기 내내 자신의 철학과 의지대로 관철할 것임을, 차기 대선 구도 또한 자신이 관리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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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과 피칭의 ‘한국號’ 지면기사
‘롤링(rolling)’이라고 하면 영국의 록 그룹 ‘롤링 스톤(구르는 돌)’이나 미국의 대중잡지 ‘롤링 스톤’ 또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의 ‘롤링’부터 떠올릴 두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피칭(pitching)’이라는 단어는 어떨까. 십중팔구 박찬호나 김병현의 내리꽂기 식 아니면 올려 꽂기 식 야구공 던지기 피칭이나 동전 던지기 피칭, 으리으리한 빌딩 로비의 대리석 포석(鋪石)―돌바닥 등의 피칭부터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항해하는 마도로스에겐 롤링과 피칭이 전혀 다른 뜻이다. 뱃사람에게 ‘롤링’이라면 파도에 의한 배의 가로 흔들림이고 ‘피칭’은 상하 요동이다. 웬만한 파도에 의한 배의 롤링과 피칭이야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과 만원 승객의 극렬한 편 가르기 싸움과 심한 쏠림에 의한 롤링과 피칭이 격심하다면 어떻게 될까. 침몰은 시간 문제다. 2006년의 닻을 방금 올린 배 ‘한국호’는 롤링과 피칭이 너무나 심하다. 롤링은 좌우 이념 대결에 의한 가로 흔들림이고 피칭은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에 의한 상하 요동이다. 이 격심한 동요에 시 시크―멀미를 일으킨 나이든 세대, 지각 있는 얼굴은 노랗게 질려 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선상엔 멀미약을 판다는 간판 하나 보이지 않는다. 얼마만 더 항진하면 멀미약을 줄 수 있다든지 없다든지 그런 기색, 기미조차 없다. 더욱 불안한 건 항로와 중간 기항지, 그리고 종착 항이다. ‘한국호’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지난 12월 로마 교황청은 한국을 ‘브레이크 없이 비탈길을 질주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항로가 불분명한 위험한 논스톱 항진이 ‘한국호’라는 한국 평론이다. ‘대한제국호’는 1910년 일제의 파고에 의해 침몰했고 영국의 호화 유람선 타이태닉호는 그 2년 뒤 북대서양 빙산을 들이받아 가라앉았다. 이쯤에서 불길하게도 영화 ‘타이태닉’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 노파가 침몰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떠올라 지울 수 없이 괴로운 까닭은 무엇인가. 두 번 다시 ‘한국호’ 침몰은 없어야 한다. 지난해 ‘한국호’ 선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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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뒤따라올 시간 지면기사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이따금 멈춰선다. 그리고 말에서 내려 달려온 방향을 우두커니 쳐다본다. 쉬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미처 뒤따라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생각의 속도로 살지 못해 안달하는 현대인에게 이보다 쉽고 정곡을 찌르는 예화가 있을까. 고속철도처럼 달려온 한 해 끄트머리다. 한 과학자가 숨가쁘게 질주했다. 영혼이 뒤따라올 시간이 없었다. “3개면 어떻고, 1개면 어떻습니까. 또 1년이 늦어진들 어떻습니까.” 아쉽게도 그의 고백은 너무 늦었다. 그는 진작 멈춰섰어야 했다. 욕심을 다스리며 영혼이 함께 갈 시간을 벌었어야 했다. 대중은 그의 속도에 열광했다. 내달리는 선두를 좇아 미친 듯 달리는 들소떼처럼 그 뒤를 따랐다. 질주의 종착점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쓰디쓴 환멸이다. 우리는 너무 비싼 대가를 치렀다. 괴로운 연말이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달력조차 바꾸었다. 1년 365일을 30일 단위 12개월로 나누었다. 자연의 시간을 이성의 달력으로 규율하려는 시도였다. 30×12를 하면 360이 되고 닷새가 남는다. 혁명정부는 이 남는 5일을 축제의 기간으로 선포했다. 이들의 규정에 의하면 닷새는 달력에 없는 시간이다. 혁명력의 발상을 적용하면, 12월27일부터 31일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날들'이다. (물론, 혁명력은 9월22일을 1월(방데미에르·포도의 달)의 시작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우스력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프랑스 혁명사 시간에 배웠던 이 달력이 뜬금없이 떠오른 것은 차라리 이 날들이 없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 때문이다. 자연조차 이성으로 재편하려던 혁명주체들의 과욕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기다리던 인디언들의 겸손을 어찌 비교하랴만, 전혀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달력에서 이 날들을 비워버리고 지나온 시간 어디쯤인가에서 허위허위 나를 따라오고 있는 영혼을 기다린다면 이 또한 혁명적 발상일 터이다. 시간의 화살표는 늘 한 방향으로 흐른다. 거꾸로 뒤집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