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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이 비난받아야할 이유 지면기사

     16세기 르네상스운동은 이탈리아반도의 유서 깊은 상업도시 피렌체공화국의 메디치가(家)에서 비롯되었다. 메디치재벌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된 것은 14세기말에 창업자 지오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가 메디치은행을 설립하면서부터였다. 메디치은행이 유럽 최대의 금융자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교황청의 재정을 담당하면서부터였다. 돈으로 교황청을 주무르면서 자기편 인사를 교황에 추대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메디치재벌은 마지막 후계자 지안 가스토네가 1737년에 사망할 때까지 무려 3세기동안 생존하면서 막대한 부(富)를 배경으로 경쟁자들을 제압했을 뿐 아니라 권력을 이용하여 반(反)메디치정서를 잠재웠다. 심지어 조각가 도나텔로 등 유명한 미술가는 물론 지식인들까지 돈으로 매수하여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유럽 최대의 재벌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메디치가는 이번에는 직접 정치권력의 장악을 시도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왕실과 혼맥(婚脈)으로 연결하고 정적(政敵)들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교황 클레멘스 7세(1478~1534)는 창업자 지오반니의 고손자이기도 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가난이 싫어 돈벌이에 나섰던 피렌체의 평범한 상인 메디치는 끝내 유럽을 뒤흔드는 최고권력 중의 하나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메디치재벌의 과욕이 빚은 바벨탑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슈퍼재벌 삼성그룹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비록 이미 지난 일이나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볼 때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잘 가늠되지 않는다. 그간 풍문으로만 떠돌던 재벌들의 정, 관, 언 커넥션이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창업이래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삼성그룹이 “왜 나만 가지고 그래”하며 반발할 경우 이 문제는 재벌들 전체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의 새판 짜기 주장이 힘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차제에 언론개혁요구도 한층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왜 하필 이때 MBC가 사건을 터뜨렸는지 그 배경이나 동기도 자못 궁금하다. 삼성공화국 시비가

  • 빗나간 겨냥, 춤추는 과녁 지면기사

     “하늘이 두쪽이 나더라도 부동산 만큼은 확실히 잡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이라는 과녁을 향해 또 한번 화살을 날렸다. 부동산 과녁을 꿰뚫고 말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불굴의 염원으로 승화된 듯 하다. 임기의 절반이 다 되도록 한번도 과녁을 맞추지 못한채 무수한 화살(부동산 대책)을 낭비한 대통령의 입장에 서 보라. 오기가 날 일이다. 말이 곱게 나갈리 없다. 전쟁도 모자라 하늘의 운명까지 걸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부동산종합대책이라는 회심의 한 발을 시위에 걸어 놓은 마당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동안 대통령과 정부가 부동산이라는 과녁을 명중시키는데 실패한 이유는 춤추는 과녁에 겨냥을 잘못한 탓이다. 셀수 없는 대책들이 하나같이 살아움직이는 과녁인 부동산 시장을 묶어 놓아 투기세력들을 고사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녁은 춤추며 겨냥이 빗나간 화살을 요리조리 피해 나갔다. 대통령과 정부는 날려버린 정책이 잘못이 아니라 과녁인 시장이 잘못됐다고 강변한다. 살아있는 과녁을 맞추려고 나선 사수가 과녁이 움직인다고 푸념하는 꼴이다. 이번엔 제대로 겨냥해 시장도 살리고 투기세력도 박멸하기를 기대해본다. 대통령의 과녁 겨냥이 빗나간 사례는 또 있다. 통합논술을 대입 본고사 부활로 단정하고 서울대를 과녁으로 삼은 일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대통령이 과녁을 제대로 세운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문제는 대통령이 '나쁜 뉴스'라고 과녁을 세우자 마자 벌어진 일이다. 국정홍보처장은 모교를 비겁한 집단으로 매도했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초동진압을 외쳤다. 그러나 여권이 화살을 난사했음에도 정작 과녁은 차분한 스텝으로 비난의 화살을 흘려버리며 꼿꼿하다. 정운찬 총장은 통합논술고사 도입 계획에 변함이 없다며 오히려 고교평준화를 재고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제 이 과녁을 잡아내기 위해 대통령이 얼마나 극언을 쏟아내야 할지 모른다. 답답한 일이다. 대통령이 아예 걷어차버린 과녁도 있다. 낙하산인사 과녁이 대표적이다. 참여정부의 인사는 과거 정권의 인사와는 달리 철저한 인사검증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던 대통령의 약

  •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 지면기사

     1980년대 말 미국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20개의 영어 단어’는 이러했다. 1, melody(멜로디) 2, adoration(숭배) 3, virtue(덕, 善) 4, splendor(壯觀) 5, joy(환희) 6, honor(명예) 7, lone(고독) 8, divine(神聖) 9, hope(희망) 10, innocence(순결) 11, faith(신뢰) 12, modesty(겸손) 13, harmony(조화) 14, happiness(행복) 15, eloquence(웅변) 16, liberty(자유) 17, purity(청렴) 18, nobility(숭고) 19, sympathy(동정심) 20, heaven(천국). 그러자 많은 학생이 벌 떼처럼 토를 달았고 이의를 달았다. “참말로 고상한 단어들만 고르셨습니다. 그런데 음악 교수라면 몰라도 멜로디가 그리도 중요합니까. 고독은 또 뭐고 순결은 다 뭡니까. 웅변은 무슨…”을 비롯해 “그게 없으면 인간의 존재도 불가능한 love는 왜 빠졌습니까.” “모든 사람이 철이 들자마자 꿈꾸는 fortune(부자)은 왜 없습니까.” “전쟁은 해도 괜찮고 peace(평화)는 생략해도 좋다는 겁니까.” “glory(영광)는 왜 또…” “저희 보고 버르장머리 없다 하시면서 manner는 왜…” 등. 이런 이의 중 단연 으뜸과 백미, 장원 감은 어느 경제학과 학생이 제기했다. “교수님들! 20개 단어 중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단어가 빠졌습니다. payday 말입니다. 월급을 타셔야 기운도 차리시고 멜로디에도 취하시고 나중에 빠이빠이 천국에도 가실 게 아닙니까.” 독일인의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그들 민족성처럼 보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이다. 괴테학회와 독일어협회가 작년 5월부터 8월까지 111개국 독일어 사용자 2만2천838명의 추천을 받은 95개 단어 중 각계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 가장 아름다운 독일어 단어 1위는 Habseligkeiten(소유)이었다. 2위는 geborgenheit(든든함)가 차지했고 가장 많은 추천을 받

  • 판문점에서 생긴 일 지면기사

     지난 주 판문점에 다녀왔다. 처음이다. 쉽지 않았다. 거의 한달 전에 인적사항을 넣고 기다렸다. 꼭 최일선을 봐야 분단을 실감하나? 그래도 가보고 싶었다. 몇 차례에 걸친 주민등록증 검사, 견학을 위한 교육, 인원과 소지품 점검…. 드디어 2열 종대로 정전회담장에 들어섰다. 영화에서 보았던 것보다는 좁아보였다. 테이블 한 복판을 가로지른다는 군사분계선. 그보다는 경비병들의 자세가 더 눈을 끈다. 차렷자세도 아니고, 기마자세도 아닌, 각도 잡힌 엉거주춤. 밀랍인형 같다. 유럽 관광지에서 보던 수비병과도 또 달랐다. 얼마나 힘들까. 몇교대 합니까. 군사기밀입니다. 인간을 지키기 위한 비인간적 자세. 판문점식 평화의 아이콘? 문제는 팔각정에서 터졌다. 팔각정에 오르시면 절대로 손짓을 하시면 안됩니다. 옛 자유의 집 자리에 세웠다는 팔각정에 오르기 전 안내사병은 다시한번 주의사항을 환기시켰다. 절대로? 그게 말처럼 쉬우랴. 저기가 북한 초소인가요? 자연스레 몇몇 팔이 올라갔다. 이야말로 자유대한식이다. 말로만 듣던 게 코앞에 있는데, 입만 움직여 물으라고? 그러나, 그걸로 견학은 끝이었다. 북한 관측병이 그 손짓을 수신호로 해석한다고 했다. 남북 간에 합의한 견학 규칙에도 손짓은 금지돼 있단다. 믿기 어려웠다. 설마, 가리키는 손짓을 북한을 그리워하는 신호로 해석할까. 그러나, 규칙이 그렇다는데 어쩔 것인가. 이른바 도끼사건이 일어났던 자리는 갈 수 없었다.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 규탄데모에 동원되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궁금했던 현장이다. 아쉬웠다. 유엔경비사 캠프로 되돌아가는 버스 운전병이 그랬다. 판문점 견학단은 70%가 외국인입니다. 그 사람들은 규칙을 잘 지킵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아닙니다. 규칙을 위반해 놓고는 명함부터 들이밉니다. 나 이런 사람인데, 한 번 봐 줘라. 이런 얘기지요. 일동 썩소. 캠프엔 안보와 별 상관 없을듯한 물품을 파는 기념품점이 있었다. 분단 최일선까지 파고든 상혼이 놀랍다. 잘못하면 견학도중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가 무색하다. 아니다. 언뜻 스쳐지나가는

  • 세상에 공짜는 없다 지면기사

    옛날 이야기다. 중국의 한 현명한 왕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정리해 달라고 당시 석학들에게 특명을 내렸다. 장기간의 연구와 노력을 통해 12권의 책을 만들었는데 왕은 이것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핵심만 정리해서 좀 더 간략하게 줄여보도록 하라”고 명했다. 석학들은 다시 내용을 정리해 “이것이 모든 지혜를 담은 한 권의 책입니다”라고 하며 올렸다. 그러나 왕은 세상엔 우민이 많아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을 수가 있으니 더욱 줄여보라고 명했다. 결국 줄이고 줄이다가 한 페이지로 정리한 후 다시 최종적인 한 문장이 완성됐다. 왕은 이 문장을 보고 매우 만족했다. 왕은 “후세 사람들이 이 문장의 지혜를 깨달으면 그들이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겠구나”하면서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그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였다. '2005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가 58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유명작가는 물론이고 젊은 작가의 작품이 실용성이나 예술적인 면에서나 상당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도자의 수준이 이제는 세계가 공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특히 도공들의 노력으로 이천·광주·여주 주민은 물론 인근 수도권을 비롯 전국에서 모인 국민들의 도자에 대한 관심이 첫해와 두해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한다. 단적인 예가 도자기 값을 후려 깎으려들거나 어떻게 공짜 도자기 하나 얻어보나 하는 관람객이 많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는 도자의 세계를 이해하는 일반인이 늘어났다는 증거로서 도자발전의 근간이 되는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작 행사의 주체로서 모처럼 형성된 분위기를 살려야 할 관(官)에서 재(?)를 뿌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 들린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세계의 경기도자를 알리는 행사건만 관공서 주변인물들은 엉뚱한 행태를 보이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비엔날레 한 관계자가 들려준 뒷얘기는 씁쓸하기만 하다. 행사 홍보 등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도 시원찮을 광역단체 고위간부들이 오히려 공짜도자기 상납을

  • 부자들을 위한 변명 지면기사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예정이란다. 소위 부자로 대표되는 ‘강남과의 전쟁’에서 정부가 판정패한 듯 싶다. 그 와중에서 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명예회장이 부자예찬론을 들고 나왔다. “많이 쓰고 많이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쳐야 황우석 교수 같은 영웅들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매우 당연한 지적이다. 자본주의사회의 꽃은 자본가들이다. 이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할 때 새로 일자리가 생겨나고 조세수입도 증가할 뿐 아니라 이들이 활발하게 소비활동을 해야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인구경제학의 창시자 로버트 멜더스는 부자 옹호론자로 유명하다. 그는 지주나 자본가 등 부자들을 옥죄는 정책에 반대하면서 불황일수록 부자들의 소비를 장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심지어 경제사상가 헤일 브루너는 졸부예찬론까지 부르짖으며 한술 더 뜬다. 즉 근검절약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보다 부정한 방법으로 쉽게 돈을 번 자들이 훨씬 더 많이, 더 자주 소비한다. 따라서 부의 축적방법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경제발전을 위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석유재벌 록펠러나 철강왕 카네기, 철도왕 벤더빌트 등은 어떤 유형의 부자들인가. 그들은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미국민들로부터 ‘강도귀족’으로 맹비난 받을만큼 천민자본가들의 전형이었다. 포드자동차의 창업주 헨리 포드는 근로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악랄한 경영자였다. 출발부터 자본의 국적성(國籍性)이 무의미했던 미국자본주의의 역사를 고려해볼 때 돈을 어떻게 벌었건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한 무방했던 것이다. 그리고 축적한 부의 일부를 기부 등의 형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면 그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자본주의를 ‘비열한 자본주의’(crazy capitalism)로 혹평하겠는가. 이런 풍토에서 성장한 제프리 존스에게 한국민들의 반부자정서는 개탄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 프로들의 세상을 꿈꾸며··· 지면기사

    얼마전인데요, 초등학교 6학년 아들놈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습니다. 햇살 좋은 날 모처럼 부자가 공원을 찾았더랬습니다. 이런저런 말을 이어가던 끝에 화제가 컴퓨터 게임으로 옮아갔지요. 저야 뭐 '너무 게임에 넋놓지 말라'고 상투적인 잔소리를 늘어놓았지요. 그런데 이놈이 아비의 잔소리가 귀찮아서 말을 잘라먹을 심산이었는지 대뜸 “아빠 그런데 정부가 썩었어요” 그러더군요. 참 기도 안차서 “왜냐” 하니 대답이 시원합니다. “우리집 컴퓨터는 인터넷이 빵빵하게 터지는데 학교 컴퓨터는 인터넷 한번 접속하려면 친구들하고 한참 놀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인터넷을 클릭하고 지루하게 기다리던 중 컴퓨터 옆구리가 눈에 들어 온 모양입니다. 거기에 문제의 정부 조달 마크, 무궁화 문양에 정부라고 쓰여진 그 마크가 떡하니 붙어있더라 이겁니다. 아차 싶었지요. '아 초등학생 꼬마도 정부를 이렇게 가까이 체감하는구나' 하고 말이지요. 그리곤 곰곰이 생각을 키워보았더니 보통 문제가 아니더군요.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아이들이 정부 조달 컴퓨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정부의 '능력'을 판단할테니 말이지요. 속도가 미덕인 디지털 세상에서 학교의 먹통 컴퓨터는 아이들에겐 그 자체로 정부의 아이콘일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체감할 또 다른 먹통 정부가 하나 둘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 미래는 안중에 없는 공교육 현장, 지옥같은 입시부담, 바늘귀 같은 취업문, 적개심이 가득한 사회에 부딪힐 때 마다 이 아이들도 아비 세대와 마찬가지로 먹통 정부를 성토하는 비난쟁이들이 되지 않을까 무섭더군요. 아비 세대와 다름 없는 세대란 얼마나 무섭습니까. 요사이 이런저런 정책들이 표류하는 모양이 반복되자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습니다. 정부의 뒷배를 봐주어야 할 여당 부터가 아마추어들이 정부를 점거한 모양 난리입니다. 야당은 '그걸 이제 알았느냐'며 생뚱맞다는 반응입니다. 사실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이 문제입니다. 과거사 청산, 각종 국토균형발전 정책, 부동산투기 대책, 영세사업자 지원 정책

  • 아, 몽골 초원에도 韓流가… 지면기사

    몽골에 가면 두 번 놀란다. 먼저 몽골 가구의 60%가 넘게 사는 전통가옥 게르(ger)에서 황당하면서도 은근히 놀란다. 게르는 원룸이다. 남쪽으로 난 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두 기둥이 버티고 서 있을 뿐 부부 방, 아이 방, 노인 방이 따로 없고 칸막이 구조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은밀한 부부 사랑 실천 공간은 어디서 확보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런 순진하고 때깔 고운 의문은 전혀 뜻밖의 10배, 100배는 더 순진무구하다 못해 수만 년 원시에 근접한 지독히도 자연스런 답변을 비켜낼 수 없다. 원룸의 “생긴 그대로 누릴 뿐”이라는 아주 태연스런 대답이기 때문이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초원의 말들, 양들의 행위와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 해발 1천600m의 고원 국가, 한반도 면적의 7배의 땅 중 80%가 넘는 광활한 초원의 밤하늘 아래 섰을 때 가슴 벅차 터지도록 놀란다. 북두칠성을 비롯해 오른쪽의 큰곰, 작은 곰, 기린과 왼쪽의 뱀, 알파카 등 숱한 별들이 저렇게도 커 보이고 유난히 반짝일 수 없다. 금세라도 이마에 쏟아질 것 같지 않은가. 초원의 가을, 청정하기 그지없는 공기 탓인가, 하늘이 그만큼 가까이 내려앉은 1천600m 고원 덕택인가. 달도 몽골의 달은 유달리 크고 밝다. 한국의 20분의 1에 불과한 인구, 1인당 국민소득 300달러, 평균수명 남자 64세, 여자 67세. 아직 개발 바람, 문명의 광풍이 미치지 못한 자연 환경은 너무나 청정하고 아름답고 인심 또한 어질고 후박(厚朴)하다. 그 몽골 고원, 드넓은 초원까지 우리의 한류(韓流)가 가파른 기세로 타고 오르다니! 국영방송의 ‘욘사마’ 주연 ‘호텔리어(hotelier)’ 방영을 신호로 같은 욘사마 주연의 ‘초련(初戀)’과 역사물 ‘장금이의 맹세’ 등 6편의 한국 드라마가 방영돼 무려 60%의 시청률까지 돌파했다. 민간방송도 ‘겨울 연가’ 등을 방영했고…. 고비사막 가까이 사는 어느 유목민의 6인 가족 중 3녀인 뱐반스렌 양(22)은 “한국 드라마는 스토리가 좋다. 그런데 때로는 마구 눈물이 난다”면서 한국 배우들의 사진을

  • 녹색 상상력 지면기사

    천수만 갈대밭이 불탔다. 폭죽도 터졌다. 새떼를 쫓기 위해서다. 아니, 이런 '야만'이! 가끔 새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경악했다. 녹색과 청정을 꿈꾸는 사람들도 놀랐다. 그러나, 매일 새를 보고 사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새보다 인간이 먼저 잖아! 뒤이어 화성 송산 사람들도 머리띠를 묶었다. 시화호 생태자연도 1등급이 웬말이냐! 푸른 5월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오래 된 레퍼토리다. 개발이냐, 보전이냐. 좀 지겹다. '보전파'들은 점잖게 나무란다. 이젠 그런 차원 낮은 이분법에서 벗어날 때도 됐잖아? '보전파'가 대세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딴동네' 보전이라면 모를까 '내 땅'이 걸리면 상황이 다르다. 우린 어떡하라고?! 우리만 손발 묶고 살라고? 죽기살기로 소리부터 내지르지 않을 수 없다. 어영부영 하다간 대세에 밀릴 테니까. 크게 보면, 수도권 규제 논란도 이 테두리 안에 있다. 사실, '생태자연도 1등급' 소동은 오해에서 비롯됐다. 환경부가 뜬금없이 들고 나온 새로운 규제가 아니다. '국토청정도'를 다시 파악하도록 한 법에 따랐을 뿐이다. 1등급이 된다고 아무 일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절차가 까다로워질 따름이다. 당연한 일 아닌가? 국토를 몽땅 '자유개발경쟁'에 내맡길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기업도시', '시화호 개발'에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주민들에겐 날벼락이다. 이제야 살림 좀 피나 했더니, 또 묶는다고? 그렇겐 못 한다! 앞뒤 없이 불지르고 시위에 나선 건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지역이기주의'라고 일축할 수 있을까? '개발망령'에 들씌운 경거망동이라고 나무라도 괜찮은 걸까? 이들은 정녕 '1등급'이 좋은 줄 모르는 바보들일까? 답답하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현실을 뚫을 '녹색 상상력'이 절실하다. 환경부는 안이했다. 켜켜이 쌓인 오해와 불신의 두께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 '녹색 희망'과 '개발 욕망'이 얼마만큼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지 외면했다. 1등급 지정이 불러올 파장을 짐작조차 못한 게 틀림없

  • 공직사회의 인재등용 지면기사

    요즘 공무원사회에서는 인사철이란 용어가 따로 없다. 1월과 7월 상·하반기에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다는 의미의 관행적 인사는 관선에서 민선으로 넘어 오면서 용도폐기된지 오래이다. 연공서열식 승진인사와 관례적인 순환인사로는 자치단체들이 직면하고 있는 경쟁의 시대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폭주하는 행정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게 기구의 신설과 통폐합은 불가피하고 이에 따른 인사를 시간을 기다려 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인재의 등용과 운용의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성공 여부는 인재등용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명제는 가장 어려운 리더의 실천 과제이지만 요즘 처럼 경쟁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세계화와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아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모든 조직이 핵심 인재의 발굴과 육성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리더의 인사 능력은 인재등용만으로 끝나선 안된다. 인재들의 개별적인 능력을 엮어 조직의 힘으로 승화시키는게 더욱 중요하다. 이런 조직의 힘을 바탕으로 조직의 목표를 달성토록 독려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그러자면 안팎에서 분출하는 욕구를 수렴해 한발 앞선 조직의 목표를 설정하고 변화를 선도하는 능력 또한 리더의 몫이어야 한다. 선출직인 자치단체장 역시 한 지역의 행정조직의 리더로서 마찬가지 인사능력을 요구받는다. 그런데 우리 공직사회는 인사만 실시되면 그 전후로 만만찮은 후유증으로 조직의 균열을 겪고 있으니 문제다. 이는 공직에서 자리를 다투어야 할 공무원들의 과잉경쟁 탓이기도 할테지만 리더인 단체장들의 인사 원칙과 철학의 부재 탓도 크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부정한 방법으로 당선됐다가 법망에 걸려 도중하차 하거나, 기사회생했으나 도덕성에 상처입고 초라해진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런데 단체장 본인의 입신양명 과정이 부도덕한 지방자치단체일수록 정실인사와 부당인사 후유증으로 공직사회 전체가 기능마비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