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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정부의 이상과 현실 지면기사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세계는 다시 혁신에 주목하고 있다. 세금 먹는 하마인 우정(郵政) 민영화 및 정부계 금융기관들을 통폐합하고 공무원수를 지금보다 10% 줄여 향후 10년 내에 공무원의 총인건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현재의 절반수준으로 억제, 반드시 작은 정부를 실현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결과일 것이다. 혁신(innovation)이란 무엇인가. 일찍이 슘페터(J. Schumpeter)는 자본주의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 혁신을 강조했다. 혁신의 구체적 사례로 새로운 상품의 개발, 새로운 시장개척, 새로운 생산방법의 도입, 새로운 반제품 획득, 새로운 경영관리조직의 개발 등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선행조건으로서 혁신자(entrepreneur)들은 우선 혁신에 대한 확신과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래서 슘페터는 혁신행동을 '창조적 파괴행위'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케인지언(Keynesian)들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다가 지구촌(Globalisation)시대를 맞아 화려하게 부활했다.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효율성이 최우선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실패(government failure)를 절감했던 선진국 정부들은 앞다투어 정부조직을 슬림화하고 ‘선택과 집중’식의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자본주의사회 특유의 역동성을 제고하기 위해 능력있는 자들이 열심히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감세정책도 병행했다.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수상은 늙은 대륙 유럽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으며 잭 웰치는 죽어가는 공룡기업 GE를 살려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설파했다. 비록 지금의 부시정부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기습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으나 작은 정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참여정부도 이 대열에 동참, 정부이름도 ‘혁신정부’로 명명했다. 만시지탄이나 올바른 선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며 혁신자역할을 자임했다. CEO형 대통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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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광고와 '비데공주'의 눈물 지면기사
“한국인들은 삼성컴퓨터로 e메일을 확인하고 삼성에서 만든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며 삼성생명에 보험을 들고, 주말이면 삼성이 소유한 에버랜드에서 여가를 보낸다.” LA타임스가 25일자로 보도한 '삼성공화국이 반격을 받고 있다'는 서울발 기사중 일부이다. 전근대적인 재벌과 첨단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가 혼재된 삼성에 대한 한국인의 애증은 외국 저널리스트에게도 기괴한 장면이었던 모양이다.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삼성의 재벌 근성 타도를 외치는 가운데 국민의 일상 생활은 삼성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모순을 설명하기에 삼성만한 기표도 없으니 과연 특파원의 눈썰미답다. 자본의 사회지배를 합법적으로 보장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거대자본의 영향력은 막강할 수 밖에 없다. LA타임스는 삼성공화국을 언급했지만 일본에선 도요타 공화국이, 미국에선 마이크로소프트 공화국이 대중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LA타임스가 거론한 삼성식 라이프스타일을 제대로 완성시켜 보자. 삼성의료원에서 태어나 40평대 래미안에 살면서 매직스테이션이나 센스로 정보화 시대를 구가하고 애니콜로 통화하며 삼성생명에 보험을 들고 에버랜드에서 주말을 보내다가 노후를 노블카운티에서 보낸 뒤 삼성의료원에서 수많은 문상객들의 재배를 받는 인생! 삼성 라이프 스타일은 한국인이라면 대다수가 도전해서 성취하고 싶은 열망의 대상일 것이다. 이런 삶을 천박하다고 욕할 지식인이 있을지 몰라도 대중들이 이런 삶을 열망하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자본이 대중의 현실 뿐 아니라 대중의 환상까지 지배하려는데 있다. 기업은 직접적인 재화로 대중을 유혹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대중의 욕구와 환상을 자기 것으로 하는데 더 많은 비용을 치른다. 기업과 대중 사이에서 욕구와 환상을 매개하는 집단이 바로 방송·신문·잡지와 같은 대중매체이다. 대중매체의 광고는 대중의 욕구를 끊임없이 분발시켜 기업에 거대한 소비집단을 제공한다. 그래서 광고는 산업이자 시장이다. 대중매체는 당연히 주 수입원인 광고시장의 확장과 점유를 위해 경쟁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방송사의 간접광고 허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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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부기 증후군 지면기사
지난 7월 18일 오후 2시35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을 지나다가 깜짝 놀랐다. 30대로 보이는 거지 차림의 한 여인이 엉덩이를 벌겋게 드러낸 채 대로변에 쭈그리고 앉아 한길 쪽을 향해 소피(소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숱한 차량이 상상도 못할 그 진기한 모습을 목격했음은 물론이고 방금 지하도 층계를 올라온 한 부인은 에구머니나 비명을 지르며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순간 퍼뜩 떠올라 거지 여인과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었다. 신라 충신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文姬)가 아니라 그녀의 언니 보희(寶姬)가 서형산(西岳) 꼭대기에 앉아 소변을 보는 바로 그 장면이다. 보희가 어느 날 밤 서악 마루에 앉아 소변을 보는 꿈을 꿨는데 그 액체가 온통 홍수를 이뤄 나라 안에 가득 찼다지 않던가. 그 신기한 꿈을 예사롭지 않게 여긴 동생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언니의 꿈을 샀고 처남인 김유신과 함께 3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춘추―태종무열왕의 아내(文明王后)가 되는 야망을 성취한다. 신라 처녀 보희가 산마루에 앉아 소변 홍수를 일으켰다는 건 어디까지나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꿈속도 아니고 보는 눈이 빗발치는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 하고도 청와대가 코앞 1천m 거리도 안 되는 대로변에서, 그것도 하필이면 프레스센터를 등지고 앉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볼 일을 봐버린 그 여인은 도대체 누구이며 무슨 의도였던 것인가. 혹여 그녀도 신라 처녀 보희의 방뇨 사태처럼 소변으로 가득 찬 서울 땅을 상상했던 건 아닐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녀는 그런 전설조차 까맣게 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뇌세포의 불들이 모두 꺼져 머리 속이 칠흑 같은 정신장애 여인이 무얼 어떻게 더 상상할 수 있으랴. 밤, 도토리 등의 한 부분이 썩어 퍼슬퍼슬하게 된 상태를 순수한 우리말로 ‘수리먹었다’ 하고 살아 있는 나무가 오래 돼 저절로 썩어 구멍이 훤하게 뚫린 상태를 ‘구새 먹었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보리, 밀 등의 이삭이 흑수병(黑穗病)에 걸려 새까맣게 썩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이삭을 농부들은 ‘깜부기’라 부른다.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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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비즈니스 지면기사
재작년 초겨울 금강산 구룡연코스를 혼자 내려온 적이 있다. 상팔담까지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중간에서 되돌아선 참이었다. 하늘이 녹수 위로 내려앉은 계곡을 따라 푹신한 낙엽 양탄자를 밟으며 호젓하게 홀로 걷는 기분이 각별했다. 이렇게 금강산을 밟는 남쪽 사람이 500만명을 넘어서면 통일이 이뤄지지 않을까. 밑도끝도 없는 '싸구려 감상'까지 밀려온 건 아마도 쭉쭉 뻗은 금강송 사이로 부는 바람이 여간 상쾌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국민 여러분께서 비리 경영인의 인사조치가 잘못 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시점에서 저는 비굴한 이익보다 양심을 선택하겠습니다'. 밤하늘 별과 달을 보며 썼다는 현 회장의 '국민 여러분께'는 사뭇 비장하다. 그렇구나. 금강산 관광은 북한과 현대아산이 벌이는, 냉엄한 통일 비즈니스였구나. 새삼스러운 자각이 머리를 친다. 현대-북한의 거래에서 비즈니스 성격이 도드라지지 않은 까닭은 시작이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고 정주영 회장이 소떼 방북을 한 것부터가 '역사적인 사건'이었기에, 양자의 거래는 사업이라기보다 통일을 향한 진전으로 평가됐다. 4천만달러 송금이 뒤늦게 불거졌어도 그건 당시 정권과 야당의 정치싸움 성격이 강했지 비즈니스 자체가 부각되지는 않았다. 퍼주기니 통일쇼니 하는 비난과 전 회장의 자살 등 숱한 곡절을 겪기는 했어도 현대와 북한의 사업 파트너십은 꾸준히 전진할 수 있었다. 일단 불이 댕겨진 남북의 통일열망이 그 정도는 태워버린 탓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김윤규 부회장 퇴진시킴으로 시작된 현대와 북한의 줄다리기는 양쪽이 전형적인 비즈니스 관계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일반인들로서는 그 이면의 비밀을 알 수 없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잘린 부회장의 비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건 그룹 내부 사정이다. 흘러나온 소문만으로 보자면 그만 일로 대북사업 성사와 진전에 지대한 공헌이 있는 인물을 물러나게 했다는 게 의아하지만, 어쨌거나 남의 회사 인사까지 감놔라 배놔라 할 일은 아니다.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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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나가니 한국군이 들어오나 지면기사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미군 기지를 반환받는 도내 자치단체들이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의정부 동두천 양주 등 경기 북부 자치단체들은 반환받게 될 미군공여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발전의 걸림돌이었던 미군기지가 이제는 지역 발전을 견인할 알토란 같은 희망의 땅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날벼락을 맞은 지역이 있으니 하남시 경우가 그렇다.하남시는 미군 기지 '캠프 콜번'의 이전이 확정되면서 다른 기지 이전 지역과 마찬가지로 쌍수를 들어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미군 기지 바로 그자리에 국군이 새롭게 기지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하남시나 시민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결정이다. 미군기지가 떠날 줄만 알았지 그자리를 우리 국군이 차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으니 말이다. 시민 전체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경기개발연구원은 최근 '반환공여지의 효율적 활용방안'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군 이전부지 활용방안이 해당지역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계획적인 개발이 필요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부활용 계획을 제시한 보고서이다. 하남시의 경우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 골프장 및 산업단지로 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하남시도 자체적인 용역을 통해 청소년 영어마을과 수련관, 실버타운, 대형 병원, 경찰서 등 공공복지시설 조성계획을 세웠다. 이달중 이같은 내용을 종합한 '미군공여지 활용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경기도의 부속 연구기관이나 하남시가 이같은 반환기지 이용계획을 세운 것을 보면 반환기지를 국군이 이용한다는 계획을 전혀 몰랐음을 방증한다. 국방부의 기지 인수 계획이 그만큼 전격적이었다는 얘기다.62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인 하산곡동 일대 토지 8만6천204평에 캠프 콜번이 주둔해 왔다. 이 부지는 의정부나 동두천 등지의 미군부대에 비해 규모가 작고 주둔병력이 적지만 시전체 면적중 97.2%가 그린벨트로 활용부지가 턱없이 부족한 하남시로서는 도시개발의 숨통을 터줄 노른자위 땅이다. 캠프 콜번 이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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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노릇도 못해먹겠다? 지면기사
참여정부의 임기 절반에 즈음하여 대중매체들은 경쟁적으로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중간평가작업을 추진했다. 대체적으로 공(功)보다는 과(過)가 더 큰 쪽으로 결론을 냈는데 특히 부동산정책 등 참여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일수록 낮은 점수를 받았다. 잔여기간 동안의 국정운영에 대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느낌이다. 그리고 특히 서민층일수록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이 결과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극히 일부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인데다 상업주의에 매몰된 언론사들의 보도경쟁까지 가세한 때문이다. 또한 경제란 내생변수는 물론 외부환경의 변화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정책을 추진하는 시점과 결과가 나타나는 시점 간에 길든 짧든 시차(time-lag)가 있어 칼로 두부 자르듯 참여정부의 경제성적을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하물며 2년여의 국정운영만으로 그 결과를 논하는 것은 벼꽃도 체 피기 전에 풍, 흉을 거론하는 것과 진배없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에 응수하듯 지난 25일에는 모 공영방송에 출연하여 그간의 경제성과를 조목조목 밝혔다. 요지는 참여정부가 국정을 잘 수행해서 양호한 성적을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언론들이 집단으로 '이지메'를 가해 도저히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바 원한다면 “권력을 통 째로 내놓을 수도 있다”고 해서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조기숙 대통령 홍보수석은 한술 더 떠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계신데 국민들은 아직도 독재시대의 문화와 지도자에 빠져 있다”며 국민들까지 한패로 몰아가고 있다. 현 정부의 고뇌는 충분히 이해한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닮고 싶다던 노 대통령이 측은해 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네 경제의 현주소가 어떠한가. 참여정부 집권기간 동안 수출이 크게 신장되고 주가지수가 배로 향상되었으며 신용불량자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일자리수도 지난 2년여 동안 새로 60만개 이상이나 늘었으며 기업들의 투명경영면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다. 국가신용등급도 제고되었다. 그러나 소득불평등도는 외환위기 수준으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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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무한 책임 지면기사
노무현 대통령이 내일로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한다. 여기 저기에서 임기 절반을 보낸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가 쏟아지고, 나머지 임기 절반을 이렇게 저렇게 채워달라는 주문이 쇄도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임기에 반환점이 따로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통령의 임기 반환 시점은 차기 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2008년 2월의 일이다. '반환점'의 의미가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의미라면 더더욱 부정확한 표현이다. 2003년 2월 25일 제 16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바로 그 순간, 노 대통령은 다시는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장정에 돌입했으니 그렇다. '반환점'이라는 용어에 시비를 거는 이유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의 결과는 결코 되물릴 수도 되돌릴수도 없는 것임을 강조하려는 뜻에서다. 노 대통령이 외로운 건 결코 대통령이 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이다. 물러나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지금껏 여론의 도마에 올라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중 자행된 정보기관의 도청행위로 곤경에 처했다. 국민과 역사앞에서 짊어져야 할 무한책임은 대통령된 사람의 숙명이다. 국민은 지난 2년 반의 통치행위의 결과로 현재의 노 대통령을 평가하고 있고, 향후 2년 반의 통치행위 결과에 따라 또 다른 평가를 내릴 것이다. 노 대통령에게 임기 절반의 의미는 이와 같을 뿐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에게는 지나온 절반의 임기보다는 앞으로 남은 절반의 임기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나머지 절반의 임기를 통해 그는 자신의 통치행위를 완결지어야 할테고 그 결과로 국가와 국민이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지나온 절반의 임기를 반추하고 자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자신의 실정과 실책을 거울 삼아 나머지 임기를 채울수 있는 생산적 추진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대통령이 말하기 보다는 듣기에 신경써야 한다. 그동안 대통령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말을 쏟아냈다. 그 많은 말들이 대부분 피아를 구분하고 전선을 형성하는데 쓰였다. 개혁 대 수구,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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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황금률’을 가르치랴 지면기사
인류사상 가장 위대한 시기는 언제일까. 두말 할 것도 없이 인류의 4대 성인으로 꼽히는 석가모니와 공자가 단 8년 차이로 탄생한 기원 전 560년과 552년으로부터 70~80년 사이일 것이다. 그 시기엔 공자가 예를 배웠다는 노자도 존재했고 공자가 숨지기 1년 전엔 머리에 먹물이 가장 많이 들었을 것 같은 ‘묵자(墨子)’도 공자와 같은 노나라에서 출생했다. 그리고 묵자가 죽은 지 각각 18년과 25년 뒤엔 유가(儒家)에서 공자 다음으로 위대해 ‘아성(亞聖)’이라 일컫는 맹자는 물론 장자도 태어났고 맹자가 죽기 9년 전엔 순자(荀子)까지 릴레이로 출생했다. 그런가하면 힌두교와 함께 인도의 대 종교인 자이나(Jaina)교 개조 마하비라(Mahavira)도 묵자와 같은 시기 사람이다. 그러니 그 시기야말로 얼마나 위대했던가. 중국 최고의 철학자, 유가의 비조, 육경(六經)을 다듬고 ‘논어’를 지은 사람. 그러나 공자가 위대한 점 중에서 한 가지 간과하기 쉬운 게 있다. 전쟁을 벌인 국가들을 찾아다니며 국가간의 평화를 입술이 말라 터지도록 역설했다는 점이고 더욱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은 다름 아닌 황금률(黃金律)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황금률(golden rule)’이란 ‘뜻이 심오해 인생에 유익한 잠언’이라는 본뜻도 있지만 쉽게 말해 ‘남이 네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너도 남에게 하지 말라’는 룰이다. 공자는 황금률을 들어 전쟁을 일으킨 또는 일으킬 나라들을 간곡히 설득했다. “남의 나라가 당신네 나라에 일으키지 말았으면 하는 전쟁을 왜 당신네 나라는 남의 나라에 일으키느냐”는 것이다. 묵자 또한 전쟁을 막기 위해 분투했다. 그는 전운(戰雲)이 감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공격 국가로 달려가 “제발 공격을 말아 달라”고 막았다. 놀라운 건 공자, 묵자보다 몇 백 년 뒤의 예수 또한 황금률을 역설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산상수훈(山上垂訓)에서 보인 기독교의 기본적 윤리관이 바로 ‘무엇이든지 남에게서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공자와 묵자가 입술이 부르트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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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형 공채'가 주는 희망 지면기사
외환은행이 실시한 '개방형 공채'가 화제다. 학력 나이 성별을 묻지 않고 신입행원을 뽑았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한다. 40대 '고령'이 10명, 전업주부가 5명, 고졸자와 2년제 전문대 졸업자도 10명이 넘었다. 경상계나 어문계가 아니면 원서도 넣기 힘들었던 신입행원에 이공계 출신이 6명이나 끼였다는 점도 이채롭다. 대학별로 봐도 지방대 10곳을 비롯해 33개 대학 출신이 붙었다. 능력과 적성, 인성 만으로 선발한 결과라는 게 은행측 설명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이거 기쁜 소식인가, 서글픈 소식인가. 잠시 2002년 초로 거슬러올라가 보자. 당시 교육부총리가 기업체의 입사지원서에서 학력란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력란을 철폐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폐지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학력란 없앤다고 뿌리깊은 학벌주의 연고주의가 치유될까마는 그렇게라도 노력해 나가야 교육과 사회가 바로 설 게 아니냐는 아주 작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는 '뭇매'를 맞았다. 국무회의 석상에서 경제부총리와 국무회의스럽지 못한 설전을 벌여야 했다. 일부 언론의 십자포화도 이어졌다. '위헌 소지가 있는 획일적 수평주의 발상'이라는 규정에서부터 '홍위병식 학벌 평준화 밀어붙이기'라는 욕설까지 들었다. 결국, 며칠 후 개각에서 그 교육부총리는 낙마했다. 입사원서 학력란 폐지유도 소신이 결정적인 퇴진 사유였다고는 지금도 믿고 싶지 않다. 설마 이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교육수장을 갈아치우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불과 3년반 남짓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그 사이 '학력난'과 관련해서 꽤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전력, 한국방송공사 등 일부 공기업에서 입사지원서에서 학력난을 없앴다. 이랜드 등 일부 민간 기업에서도 자진해서 학력난을 폐지했다. 급기야 학력 나이 성별을 묻지않고 행원을 뽑는 은행까지 생겼다. 디지털 세상에서 1년은 10년 맞잽이라고는 하지만, '학력난을 없애는 게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던 교육부총리가 잘린 일이 마치 한 세대 전 '그 때를 아십니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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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수준의 방송사고 지면기사
KBS가 패륜 시비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문제의 장면은 지난달 27일 KBS 2TV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전국의 안방극장에 노출됐다. 시어머니가 돌보던 어린 손자가 국그릇을 엎어 손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는데 병원에 쫓아온 젊은 며느리가 '애를 어떻게 봤냐'는 질타와 함께 시어머니의 뺨을 올려친 것이다. 더욱 가관은 아들조차 아내의 이같은 패륜행위를 나무라기는 커녕 어머니의 잘못을 탓하며 외면해 버리는 대목이다. 제작진은 빗발치는 비난에 사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다급하게 시청자들에게 사과를 하며 '표현의 수위조절에 무리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실화에 바탕을 두고 제작했어도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장면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작진의 의도는 '개탄스런 세태에도 무한한 부모의 자식사랑을 표현하는데 있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의 가족붕괴 현상과 그 부작용을 가감없이 표현하고 싶었다는 제작진의 의도를 아무리 이해하고자 해도, 별다른 긴장없이 이를 목격해야 했던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표현 자체를 문화적 테러로 여겼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격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초록은 동색인가. MBC에서는 며칠후 생방송인 '음악캠프' 출연자가 성기를 노출시키는 희대의 엽기적 광란을 그대로 공중파에 실어보내는 대형사고를 쳤다. 일부 출연자들이 빚은 순간적 일탈 행위라고는 하나 이들이 성기를 드러낸 채 무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사태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국민들이 느꼈을 수치감을 생각하면 이 또한 무책임한 대국민 방송 테러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출연자들은 단순히 분위기를 띄워달라는 부탁에 평소 클럽무대에서 보여주던 자유스런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사과가 아닐 수 없다. 양 방송사는 사과와 관련자 고발, 재발방지 등 발빠른 조치와 함께 너그러운 시청자 관용을 구하고 있다. 방송위원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방송사에 너그럽던 과거의 태도와는 다르게 강력제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인 양 방송사 사후 조치는 무언가 미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