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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성단] 카타르 월드컵

    [참성단] 카타르 월드컵 지면기사

    다음 주 월요일 카타르 월드컵이 개막한다.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이래 스물두 번째 월드컵이다. 우리 월드컵 역사는 1954년 5번째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지역 예선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다가 1986년 32년 만에 멕시코 월드컵에 진출했고, 이를 기점으로 10회 연속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월드컵에서 본선 16강 이상의 성적을 낸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단 두 번이다. 한국 축구팬들의 염원은 매번 조별 예선 3경기만을 보고 경우의 수를 따지다가 끝이 나는 남의 잔치 월드컵이 아니라 토너먼트의 주역이 되는 경기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이번 월드컵에서도 16강 진출을 장담하기 어렵다. 호날두가 이끄는 우승 후보 포르투갈이 있고,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선수만 해도 10명이나 되는 우루과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최대 장점은 세계적 경기력을 지닌 토드넘의 손흥민, 나폴리의 김민재, 그리고 마르요카의 이강인 등이다. 한국 대표팀의 핵심인 손흥민은 출전 명단에는 포함이 됐으나 출전이 불투명하고 혹 출전한다고 하더라도 안와골절 부상의 회복과 과연 부상 이전의 월드클래스 급의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강인은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큰 선수로 한국 축구의 미래라 할 수 있으나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빌드 업 축구와는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김민재의 단단한 수비능력이나 이강인의 화려한 개인기와 발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며, 손흥민은 앞으로 두 번 다시 나오기가 어려운 선수다. 프로 선수들의 실력은 미세한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이 종이 한 장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 가령 보통의 프로선수들은 볼만 보고 상황을 보지 못하거나 상황을 보다 볼 컨트롤에 실패하는데, 손흥민 수준의 선수들은 볼과 상황을 다 보며 슈팅의 정확성이 월등하다. 이 작은 차이가 경기의 승부를 좌우하는 것이다.요즘 국내외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 많다. 세계적인 경제난에 나라도 이태원 참사 후유증으로 뒤숭숭하다

  • [참성단] 낙엽(落葉) 침수 피해

    [참성단] 낙엽(落葉) 침수 피해 지면기사

    낙엽은 엽록소의 퇴화로 인한 잎의 소멸이다. 입동(立冬) 즈음해 나무는 생존을 위해 잎들 양분을 줄기로 모은다. 잎 속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알록달록 단풍이 들고, 특수 세포층이 형성돼 잎이 분리된다. 이때 생장조절 물질이 분비돼 잎과 줄기의 분리를 촉진한다. 마침내 쓸모를 다한 잎이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것이다.낙엽의 상징어는 이별과 추억일 게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박인환 시인(1926~1956)의 '세월이 가면' 중에서).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가는 줄 왜 몰랐던가'. 스물여섯에 요절한 가수 차중락(1942~1968)은 번안곡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에서 낙엽을 밟으며 옛 연인을 그리워했다.현실 속 낙엽은 아름답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도 시간은 간다'는 군에서 낙엽은 애증의 대상이다. 눈은 어쩌다 내리지만, 가을철 낙엽은 달포에 피해갈 도리가 없다. 종일을 쓸어도 또 쌓이고, 자고 나면 수북한 게 여간 귀찮지 않다. 그래도 나뭇잎 물드는 계절을 두어 번 겪고 나면 제대일이 성큼 다가오지 않던가.청소원들을 애먹이는 낙엽의 민폐가 하나 더 늘었다. 지난 주말 요란하게 내린 가을비에 수도권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었다. 불과 50㎜ 안팎 강우량에 차량과 행인들이 쩔쩔맨 이유가 가로수 낙엽이 하수구를 막아 물길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인천에선 지난 토요일 밤 연수구 청학사거리, 계양구 임학지하차도가 침수되는 피해가 났다. 이날 인천에서만 낙엽이 배수로를 막아 도로가 물에 잠겼다는 호우 피해 신고가 200건을 넘었다고 한다. 경기도에서도 230건 넘는 도로 장애 신고가 접수됐고, 광주에선 정전 피해가 발생했다.가뭄 끝 단비가 환영받지 못했다. 낙엽 지는 거리에 비가 내리면 침수 피해를 걱정하게 됐다. 가로수 사이 은행잎 고운 거리를 더는 볼 수 없을 듯하다. 시골에서도 토양의 산성화로 썩지도 못하면서 산

  • [참성단] 정진상 미스터리

    [참성단] 정진상 미스터리 지면기사

    '좌동영 우형우'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평생 동지 김동영, 최형우 전 의원이다. 두 사람은 YS를 주군으로 모시며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돌파했다. 김동영은 YS의 대통령 당선을 못보고 1991년 암 투병 끝에 작고했다. YS는 "이 문디 자슥아, 저 시상에 무신 맛있는 떡이 있다꼬 와 이리 빨리 가노"라며 통곡했다. 뇌졸중으로 정계를 떠난 최형우는 2015년 YS 빈소를 불편한 몸으로 통곡하며 지켰다.YS의 상도동계 못지 않게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도 DJ에게 헌신했던 측근들이 가득했다. DJ의 망명과 자택연금 시절 최측근인 '양갑', 권노갑과 한화갑은 그의 눈과 귀가 되어 주군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YS의 '좌동영 우형우'와 DJ의 '양갑'은 도원결의의 낭만을 연상시킨다. 지금 같은 내로남불 정치판에선 상상하기 힘든 낭만정치 시절의 전설이다.측근 없는 정치 지도자는 없다. 진정한 측근, 가신은 주군과 운명을 같이한다. 토사구팽 당할 정도라면 측근이 아니다. 진정한 측근이라면 세상의 이목에서 숨을 자리가 없다. 주군과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주군의 권력을 대행하니 그렇다. 한동훈 법무장관도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평판 때문에 야당의 표적으로 매일 언론에 등장한다.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인 정진상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이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검찰이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인물로 겨누면서다. 이 대표가 "측근이라면 정진상, 김용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라고 했던 그 사람이다. 그런데 신기할 정도로 이 대표가 공인한 최측근 정 실장의 공적 행보가 거의 백지에 가깝다.정씨는 이 대표가 성남시장에 당선된 2010년 이후 이 대표와 공직을 함께했다. 성남시 정책실장, 경기도 정책보좌관, 이재명 대선후보 비서실 부실장에 이어 민주당직에 이르기까지 최소 10년 이상 공직과 공당에서 이 대표를 보필했다.하지만 성남시, 경기도, 민주당에서 정 실장을 직접 봤다는 사람이 드물고, 수 많은 언론사들이 확보한 얼굴 사진도 단 한장의 자료사진뿐이다. 사진 속 얼굴과 지

  • [참성단] 한국시리즈 유감

    [참성단] 한국시리즈 유감 지면기사

    KBO 리그 한국시리즈에서 SSG 랜더스가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상대 팀 키움과의 전적은 4승 2패. 에이스 김광현이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았고, 외야수 김강민이 2개의 홈런을 때려내는 등 노장들 투혼이 빛났다. 위기 때마다 무서운 뒷심으로 판세를 뒤집는 저력을 발휘했다. KT 위즈와 LG 트윈스를 잇따라 제압하며 기세를 올린 키움은 결정적 순간에 실책이 쏟아지고, 체력이 고갈되면서 우승컵을 내줬다. 정규리그 우승팀 SSG의 포스트시즌 승리는 예상된 시나리오였다. 투·타 모두 객관적 전력이 앞서는 데다,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체력이 바닥난 상대이기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지난해 우승팀 KT 위즈도 정규리그에서 극적으로 1위에 오른 뒤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정규리그 1위 팀에 유리한 한국시리즈를 두고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2~5위 팀은 와일드카드, 준플레이오프(3판 2승제), 플레이오프(5판 3승제)를 거치면서 피투성이가 되고, 주력 선수들은 녹초가 된다. 1위 팀은 보름 넘는 기간 체력을 보충하고, 상대는 그로기가 된 상태로 싸우는 불공정한 룰(Rule)이다. 더구나 7차전 가운데 다섯 차례를 1위 팀 홈에서 치른다. 난타전 끝에 시리즈에 진출한 팀이 4승을 올린다면 기적 아닌가.얼마 전 끝난 미국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 우승팀은 휴스턴 애스트로스. 상대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였다. 내셔널리그 최고 승률 팀 LA 다저스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져 일찌감치 탈락했고, 아메리칸리그 최다승을 거둔 뉴욕 양키스도 휴스턴에 패해 중도에 짐을 쌌다. 각 리그 1위 팀들도 디비전 시리즈(3판 2승제), 챔피언십 시리즈(7판 4승제)를 거쳐야 하기에 이변이 속출하고, 팬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퍼시픽리그와 센트럴리그로 운영되는 일본 프로야구도 포스트시즌은 메이저리그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진행된다.한국프로야구리그 포스트시즌은 개선돼야 한다. 1위와 4위 팀, 2위와 3위 팀이 맞붙게 해 승자끼리 4선승제로 겨루는 방안이 있다. 이런 정도라면 2~4위 팀도 수긍할 만하다. 승부가 뻔한 경

  • [참성단] 제60주년 소방의 날

    [참성단] 제60주년 소방의 날 지면기사

    어제는 '제60주년 소방의 날'이었다. 환갑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나라이니 특별한 기념행사가 준비됐을 것이다. 하지만 소방청은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를 취소했다. 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민 애도 분위기를 고려해서다.소방의 날은 1963년 11월 1일 시작됐다. 소방 망루에서 화재를 감시하던 시절 화재가 빈발하는 겨울 초입에 기념일을 정했으니 불조심 계몽 목적이 컸다. 1991년 '119'와 같은 11월 9일로 변경하면서 소방관의 노고와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정부 행사로 자리잡았다.소방관의 근무 현장은 사람들의 목숨이 오가는 모든 형태의 사고 현장이다. 생명을 구하려면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한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소방관들이 복무신조로 여기는 '소방관의 기도'의 첫 구절이다. 신의 가호로 초인적 용기를 발휘해야만 화마와 재난의 한복판으로 뛰어들 수 있다.야속하게도 신의 가호에도 한계가 있나 보다. 시대의 변화로 재난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소방관들의 희생도 늘었다. 2001년 홍제동 주택 화재에서 6명이 순직했고, 2015년 서해대교 화재에서는 이병곤 소방관이 끊어진 케이블에 희생됐고, 지난해엔 쿠팡 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김동식 소방관이 우리 곁을 떠났다. 소방헬기 추락, 구조보트 전복으로 하늘과 해상에서도 순직했다. 심지어 취객에 폭행당해 숨진 여성 소방관도 있다. 우리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소방관을 가장 신뢰하고 존경하는 직업으로 꼽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이태원 참사 원인을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입건했다. 최 서장은 참사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갔고, 국민에게 최초로 설명한 공무원이다. 마이크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던 화면은 충격적인 현장을 대변했다. 전국의 소방 공무원들이 최 서장의 현장 대응이 '더할 나위 없는 최선'이었다며 경찰 수사를 규탄하고 나섰다.결정적으로 여론 또한 최 서장과 소방관들을 지지하고 있다. 소방관들이 재난 현장에서 쌓아 온

  • [참성단] '화담숲' 암표

    [참성단] '화담숲' 암표 지면기사

    '화담(和談) 숲'은 광주와 용인 땅을 가르는 백마산 발리봉(481m) 기슭에 자리한다. 여의도 절반 크기인 135만5천372㎡ 면적에 4천 종 수목이 식생한다. 소나무원, 이끼원, 진달래원 등 17개 테마원과 5.2㎞ 탐방로를 갖췄다. 본래는 '곤지암 수목원'이었으나 숲을 가꾸고 다듬은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2018년 작고)의 호를 따 개칭했다.탐방로 입구에 들어서면 모노레일 탑승구가 보인다. 몸이 불편한 노인과 약자에겐 부담스런 가파른 경사다. 맑은 샘이 흐르는 소류지를 두고 이끼원과 푸른 소나무원이 내방객을 반긴다. 일본의 정원 풍경을 옮겨온 듯 절제된 미(美)의 공간이다. 중턱을 지나 오르면 자작나무 참나무 무리가 하늘을 가린다. 손을 타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생태계가 건강하다. 낙과한 도토리가 길을 막아 피해 가기 쉽지 않다.숲속엔 '물 주는 노인'이 있었다. 새와 나무를 끔찍이 아낀 산(山) 주인은 머슴처럼 일했고, 직원들도 알아채지 못했다. 허리춤에 전기 가위 주머니를 찬 할아버지가 물을 건네는데, 풍객(風客)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작고해서도 숲을 떠나지 않았다. 구 회장 유해는 화장돼 수목장으로 안장됐다.화담숲 입장권이 암거래된다고 한다. 이달 13일까지 이어지는 가을 단풍축제 기간 입장객 수를 일정 범위로 한정하면서다. 주말 2인 기준 2만원인데, 적게는 3만원에서 많게는 4만6천원까지 웃돈이 붙어 인터넷 중고사이트를 통해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 구매 아르바이트생이 가격을 흥정하기도 한다. 안전 확보와 환경 보호를 위해 방문객을 제한한데 따른 과수요 현상이다.야구장이나 공연장에서 암표를 거래하다 적발되면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온라인 암표 거래는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다. 거래가 성사되면 QR코드로 넘겨받는 단순한 방법이기에 실행하기가 손쉽다. 숲 운영진도 암거래를 막기 위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지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다고 한다.화담은 숲에서 영리를 구하지 않았다. 성수기에 입장객을 막고, 겨울철 문을 잠그는 이유다. 화담의 생은 담백하

  • [참성단] 여류 바둑

    [참성단] 여류 바둑 지면기사

    바둑은 언제부터 두어졌을까. 전설의 군주인 요순이 어리석은 아들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바둑을 만들었다는 '요순기원설'이 가장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여러 고문헌과 기록들에도 불구하고 바둑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고 확정적인 정설을 찾기 힘들다. 배태일 박사 등의 연구를 보면 1954년 중국 허베이성에서 182년경의 후한시대 고분에서 17줄 바둑판이 출토되었고, 내몽골에서 요나라 시대(916~1125)의 무덤과 당나라 시대의 비단 그림에서 13줄 바둑판이 발견됐다고 한다. 19줄바둑은 당나라 때 크게 성행했다고 하는데, 19줄바둑은 훨씬 이전부터 두어져왔다. 1959년 고고학자들이 허난현 안양 부근에서 수나라 개황 15년(서기 595년) 장성(張盛)의 묘에서 사기로 만들어진 19줄 정방형 바둑판을 발굴했다. 설화와 기록을 종횡무진하는 바둑의 역사이다.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의 승려 도림이 백제 개로왕의 판단을 흐려놓기 위해 바둑을 두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바둑을 즐겼고, 여성의 바둑에 대한 기록도 있다. 고려 시대 기생 진주와 동인홍이 바둑을 두었다고 전해지며, 허난설헌의 '궁가(宮訶)'와 '유선가(遊仙訶)' 등의 시편들에서 바둑이 등장한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여류바둑대회는 1963년 4월 13일 조선일보사에서 주최한 '여류왕위전'이다. 이때 당시 신광여중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영숙이 여류 왕위에 올랐다. 또 1963년 을조 여류왕위전에서 우승한 윤희율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으로 바둑유학을 떠났다. 그러다가 1975년 제1회 여류입단대회가 열려 조영숙과 윤희율이 최초의 여류프로기사가 됐다.지난 4일 2022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4강전에서 최정 9단이 한국프로기사 랭킹 2위인 변상일 9단을 불계승으로 누르고 결승전에 올랐다. 최 9단의 세계바둑대회 결승전 진출은 바둑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내친김에 우승까지 차지해서 바둑의 새 역사를 써주기 바란다. 최9단의 결승 진출은 어떤 분야이든 이제 성별이 특별한 의미가 없음을 잘

  • [참성단] 봉화 광산의 기적

    [참성단] 봉화 광산의 기적 지면기사

    장마철 먹구름 짙은 하늘도 아주 잠시 한 줄기 햇빛을 허락할 때가 있다. 지난달 26일 봉화 아연광산 막장에 갇혔던 광부 2명이 4일 밤 극적으로, 그것도 제발로 걸어 생환했다. 그들이 빛 한줄기 없는 갱도에 갇혀 있는 동안 이태원 환한 밤 골목에선 156명의 청년들이 숨졌다. 대한민국 국가 애도기간에 북한은 사정없이 미사일을 쏘아댔다. 초대형 뉴스에 묻혔던 사람들이다. 간간이 이어진 구조 상황도 절망적이었다. 망각과 절망을 뚫고 그들이 지상에 발을 디딘 그날 밤은 대낮처럼 환했다.2010년 칠레 대지진으로 구리 광산이 붕괴되면서 33명의 광부들이 갇혔다. 광부들이 모여있던 700m 지하의 갱도 대피공간에 구조대의 드릴이 17일 만에 숨통을 열었다. 광부들은 '전원 생존' 쪽지를 올려보냈고, 이들을 구조하기 위한 국제 공조가 작동했다. 교황은 묵주를, 미 항공우주국(NASA)은 특수 식량을, 스티브잡스는 아이팟을 내려보냈다. 33명이 미국 기술자들이 뚫은 구조 터널로 69일 만에 지상에 도착하자 전 세계가 환호했다.칠레 때처럼 봉화에서도 본능적인 생존 의지가 광부들을 살렸다. 반드시 살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헤드랜턴을 의지해 직접 곡괭이로 탈출 갱도를 팠고, 발파도 시도했단다. 가지고 있던 커피믹스 30봉을 나누어 먹으며 체력을 유지했고, 비닐하우스를 치고 모닥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했다. 노련한 광부 박정하씨는 광부 이력 며칠에 불과한 보조작업자와 체온을 나누며 구조대를 기다렸다.인체는 신비하다. 극단적인 위기 속에서도 생존을 향한 본능이 작동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 갇혔던 박승현씨는 음식은 커녕 물도 없이 견디다 17일만에 구조됐다. 봉화 광부들을 살린 것도 커피믹스가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힌 의지와 지혜였다.무너진 광산 지하에서 두 광부가 생존 의지를 불태울 때, 지상의 번화가에선 156명의 희생자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너진 치안 조직에 압사당했다. 위기는 기적을 낳았고, 고장난 제도는 비극을 불렀다. 이렇듯 얇디 얇은 삶과 죽음

  • [참성단] '연경(燕京)의 우정' 특별전

    [참성단] '연경(燕京)의 우정' 특별전 지면기사

    지전설(地轉說) 주장한 덕보(德保) 홍대용(1731~1783)은 지적(知的) 호기심이 왕성했다. 30대 중반에 연행사(燕行使) 서장관으로 임명된 숙부를 따라 청나라 북경에 가는 호기를 잡았다. 두 달을 머물며 선진 문명·문화를 체득했다. 우연한 기회에 유명 석학들과 교류하면서 식견을 넓히고 만리장성(萬里長城)과도 같은 우애를 쌓았다.덕보는 항저우 출신인 엄성(嚴誠)·반정균·육비와 유독 가까웠다. 셋은 문장과 예술에 두루 능한 대학자들이었다. 그런데도 모두가 덕보를 추앙해 대유(大儒)로 여겼다고 한다. 이들과 더불어 필담한 내용이 누만언(累萬言)에 전한다. 덕보가 귀국하는 날 서로 눈물을 흘리며 "한번 이별로 그만이구려, 저승에서 만나도 부끄럼이 없이 살기를 맹세한다"며 발길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홍대용의 절친 연암(燕岩, 박지원)은 덕보와 엄성의 각별한 우정을 부러워했다. 동갑내기 엄성과 뜻이 잘 맞았던 덕보는 "군자가 자기를 드러내고 숨기는 것은 때야 따라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에 엄성이 깨우침을 얻어 과거를 접고 남쪽으로 가 칩거했으나 수년 뒤 숨졌다. 부고를 받은 덕보가 제문을 쓰고 제향을 보냈는데, 마침 이것이 고인의 집에 도착한 날이 2년 차 제삿날이었다. 모인 이들이 영감(靈感)이 통했다고 경탄했다 한다. 9년 뒤 엄성이 남긴 유고가 덕보의 손에 쥐어졌는데, 직접 그린 초상화였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홍대용의 유일한 초상화다. 일하제금집(日下題襟集)에 덕보와 청의 석학들이 나눈 필담과 편지들이 전한다.남양주 실학박물관이 '연경(燕京)의 우정'이란 특별전을 연다. 18~19세기 조선과 중국, 두 나라 지식인들의 소통과 우정을 새김질한다. 홍대용 초상화는 물론 실학자 박제가와 화가 나빙(羅聘)이 주고받은 편지, 선물, 서화를 볼 수 있다. 추사 선생과 당대 최고 대학자인 완원(阮元), 화가 주학년(朱鶴年)의 정(情)은 또 어떠했던가.특별전은 한·중국 수교 30주년을 기념한다. 근자에 양국관계가 썩 유쾌하지 않기에 울림이 더 클지 모른다. 조상들 교유엔 명리(名利)가 끼어들지 않았다.

  • [참성단] 만원사례(滿員謝禮) 유감

    [참성단] 만원사례(滿員謝禮) 유감 지면기사

    70, 80년대 추석이나 설 때면 대도시 극장엔 명절 대목에 맞춰 개봉한 영화를 관람하는 인파로 장사진이 펼쳐졌다. 당연히 일찌감치 줄서지 않으면 표를 구할 수 없었고, 표를 다 판 극장은 '만원사례(滿員謝禮)'를 내걸고 매표소를 닫았다. 정작 객석을 꽉 채운 손님들이 아니라 매표에 실패해 낙담한 사람들 앞에 내걸렸으니, 감사보다는 사과에 가까웠던 것이 '만원사례'의 아이러니다.분단문학의 거장 이호철이 동아일보에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를 연재한 때가 1966년이다. 이 시절에 태어난 세대들은 어딜가나 '만원사례'인 과밀시대를 관통했다. 출퇴근, 통학시간대 만원버스들은 문도 닫지 못한 채 어린 차장들을 매달고 질주했다. 막차가 끊기고 통행금지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은 브리사, 포니 택시에 예닐곱명이 아무렇지 않게 합승했다. 어린이날이면 동물원이었던 창경원이 돗자리 깔 자리도 없이 붐볐고,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했다. 통금이 풀린 새해 전야엔 타종행사가 열리는 보신각 주변을 중심으로 사람 파도를 타고 종로로 명동으로 휩쓸려갔다.과밀시대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든든한 배경이었다. 값싼 노동력으로 산업을 일으켰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는 전쟁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의 교육에 헌신했다. 만원버스를 타고, 콩나물 교실에서 공부했던 베이비붐세대는 부모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산업현장으로 향했던 인파가 독재정권에 맞서 해일처럼 일어나 민주화도 이루어냈다.선진국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전쟁세대와 전후 베이비붐세대의 과밀의 피로를 온몸으로 감수했다. 그리고 이제 조금 인간적인 공간을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선진국으로 만들어 놓은 대한민국 길거리에서 생때같은 자식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과밀시대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우리 주변의 만원(滿員) 위험 구역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수도권과 서울을 오가는 출퇴근 광역버스와 전철이 대표적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지난해 김포 경전철을 체험 승차했다가 혼쭐이 났다. 하지만 해결책은 여전히 묘연하다. 부모 세대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