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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님의 자선냄비 지면기사

    독특한 군복(?)과 군대식 편제로 눈길을 끄는 구세군(救世軍)은 1865년 영국 감리교의 유명한 부흥집회 목사 윌리엄 부스(W. Booth)가 창설, 1878년 개신교의 한 교단으로 독립했다. 글자 그대로 실업자와 빈민을 도와 '세상(世)을 구제(救)하겠다는 군대(軍)'며 박애, 자선 단체다. '비누로 몸을 닦아주고(Soap) 뜨거운 국물로 배를 채워주며(Soup) 구호하는(Salvation)' '3S 운동'은 그들의 구호 강령이고 자선 냄비(Charity pot)는 그들의 구세 도구다. 자선 냄비가 처음 설치된 것은 1891년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그 해 12월24일 한밤중 난파당한 한 척의 배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 러키 해안에 정박했고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승객은 인근 구세군회관에 수용됐다.그 때 구세군의 한 여사관이 국냄비를 거리에 내다 걸고 “저들을 위해 이 냄비를 팔팔 끓게 하자”고 호소함으로써 최초의 자선 냄비는 데워지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892년엔 미국 서부 해안지방의 30개 구세군 영문(營門)이 성탄절을 앞두고 거리에 자선 냄비를 내걸었고 1897년엔 미국 전역에서 15만명의 불우이웃이 성탄절 만찬을 대접받았다. 초기 자선 냄비의 그런 음식 대접은 오늘날 각종 구호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쓰이고 있고 자선 냄비 설치 100주년인 1991년 미국의 구세군은 퍼스트 레이디 바바라 부시여사를 모금위원장으로 추대하기도 했다.우리 나라의 자선 냄비는 1928년부터 끓기 시작했다. 그런데 75년만에 처음으로 '스님들의 자선 냄비'가 의정부 거리에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목탁 대신 구세군의 딸랑 종과 마이크를 든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가난한 난타(難陀)가 바친 정성어린 하나의 등이 국왕의 값진 등보다도 공덕이 크다'는 이른바 '빈자일등(貧者一燈)' 정신의 갸륵한 실현자들이고 종교를 초월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기독교 신약성서의 말씀까지 앞장서 실천하고 있음이 아니고 무엇인가. /吳東煥(논설위원)

  • 유학생(留學生) 지면기사

    정식으로 외국에 유학생을 파견하기 시작한 것은 고종 18년(1881)부터다. 1881년 1월 교육 군사 공업 등 여러 방면을 시찰하기 위해 일본에 파견한 신사유람단이 그들이다. 이 시찰단의 규모는 조사(朝士·조정에서 벼슬하는 사람) 12명을 정식 위원으로 하고 그 아래 각각 보조원으로 수원(隨員·외교사절 수행원) 2명 이상과 통사(通事·번역담당)와 종인(從人) 각각 1명씩을 대동케 하여 평균 5명을 1반으로 하는 총인원 62명이었다. 이들은 70여일간 일본에 머물면서 동경을 비롯한 대판(大阪) 등지를 시찰하고 돌아와 우리의 제도개편과 시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들 사행 중 어윤중(魚允中) 아래 수원(隨員)으로 갔던 유길준(兪吉濬) 윤치호(尹致昊) 유정수(柳定秀) 등은 그대로 일본에 유학생으로 남아 수학을 계속하기도 했다. 유길준은 2년뒤인 188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우리나라 서양유학생 1호를 기록하기도 한다. 같은해 9월엔 김윤식(金允植)을 영선사(領選使)로 삼아 그 아래 유학생 68명을 청(淸)에 파견, 신식무기의 제조 및 사용법을 습득토록 했다.가장 큰 규모의 유학생 파견은 1895년에 이루어졌다. 이 해 개화파 내각은 150여명에 달하는 관비유학생을 일본에 파견하여 경응의숙(慶應義塾)에 입학시켰다. 이 숫자는 당시 조선의 실정으로 볼 때 엄청난 규모의 유학생 파견이다. 우리나라가 관비(官費)가 아닌 해외유학생을 정식으로 보내기 시작한 것은 1948년부터였다. 1950년까지 유학생은 303명이었고, 그 가운데 90%이상인 284명이 미국에 갔다.올해 우리나라 유학생이 15만9천903명으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50여년만에 500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격세지감(隔世之感) 그 자체다. 반면 국내 외국인 유학생은 1만2천314명이며 유학수지적자도 15억3천만달러라고 한다. 그러나 이중 실제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유학은 얼마나 될까. 유학생중 대학정규과정 수강생은 61.5%고 나머지는 어학연수라고 하니 말이다. /鄭俊晟(논설위원)

  • 후세인의 아내들 지면기사

    구약성서 '열왕기(列王記)' 상편에 나오는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3대왕 솔로몬, 골리앗을 돌팔매로 때려 누인 다윗의 둘째 아들 솔로몬은 무려 1천명의 왕비를 거느렸다. 고대 중국의 제왕들도 120명까지의 처첩을 거느렸고 고려, 조선조의 왕들도 보통 수십명의 비빈(妃嬪)을 차지했다. 옛날 왕들뿐 아니라 요즘도 일부다처(一夫多妻·polygyny)를 허용하는 나라는 적지 않다. 압둘 하룬이라는 남자가 4명까지의 아내만 허용되는 이슬람 율법을 위반, 10명을 둔 죄로 말레이시아 남부 조호르(Johore)주 종교법정에 출두한 것은 1994년 4월이었고 벌금 1만4천링기트(약 420만원)와 25개월 징역형을 받은 것은 그 다음해인 95년 7월이었다. 그의 합법적인 아내 4명 외의 6명에겐 물론 별거명령이 내려졌다.아랍 공화국인 이집트나 이슬람교도가 많은 인도네시아, 중국 광둥(廣東)성과 에콰도르에도 일부다처는 흔하고 러시아연방의 잉구셰 공화국도 99년 7월 대통령령으로 일부다처를 허용했다. 최고 인권공화국인 미국까지도 일부다처의 천국인 모르몬교 신도뿐이 아니다. “저는 아내가 있는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17년 전 결혼 당시 그의 아내는 6명이었지만 지금은 9명입니다”라는 쇼킹한 편지가 뉴욕타임스 독자 투고란에 게재된 것은 91년 5월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투고자가 유타주의 빅워터에 사는 변호사 엘리자베스 조셉이라는 점이었다.후세인의 은신처 제보자가 그의 둘째 부인 사미라라는 설이 있어 화제가 분분하다. 그의 첫째 부인 사지다는 후세인보다 두 살 많은 외사촌 누나다. 생후 9개월에 부친을 잃어 외삼촌 집에서 자랐고 어릴 때 그녀와 약혼, 60년대 초 근친결혼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장이기도 했던 그녀를 비롯한 법적인 아내 4명 외에도 수많은 '후세인의 여인들'이 둘째 부인의 제보설을 사실로 확인한다면 그 미묘한 감회들이 각자 어떻게 다를까가 몹시 궁금하다. /吳東煥(논설위원)

  • '노짱'과 '대쪽' 지면기사

    지난 대선은 '노짱'과 '대쪽'의 한판 승부였다. 노사모 돌풍을 일으키며 신세대에 친근한 닉네임 '노짱' 노무현 후보와, 오랜 세월 축적된 개인적 이미지인 '대쪽' 이회창 후보간의 승부는 결국 노짱의 승리로 끝났다. 기성을 거부하는 2030세대의 응집력과 몇 번의 행운이 겹치면서 노짱은 파죽(破竹) 끝에 대통령으로 등극했고 대쪽은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해 야인의 길을 걸어야 했다.그리고 1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불법대선자금에 발목이 잡힌 노짱과 대쪽의 전혀 다른 처신에 세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노짱은 14일 “우리가 쓴 불법(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며 또 한번 대통령직을 정치도박에 내맡겼다. 반면 대쪽은 15일 500억원 가량의 불법대선자금 규모를 시인한뒤 “그 큰 돈은 당연히 대선후보인 저를 보고 준 것으로 제가 처벌 받는 것이 마땅하다”며 죄를 진술하기 위해 검찰에 출두했다.노무현과 이회창을 '노짱'과 '대쪽'의 이미지만으로 이해하고 있는 국민들은 이 대목에서 헷갈린다. 스타일상 서로 불법에 대한 진실을 고백하는 경쟁을 벌여야 할 두 사람인데도 노짱은 '10분의 1'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한 반면 파죽된지 오래인 대쪽은 스스로 또 한번 파죽을 결행했으니 말이다. 이쯤에서 노짱도 자신의 불법자금에 대해 진실을 고백하는 것이 순서이고 순리이지 싶다.도대체 대쪽이 사용한 불법자금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이 이 시점에서 무슨 소용인가.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의 모든 불법정치자금 사법처리에 있어 결백의 기준이 10분의 1이라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 11분의 1로 밝혀지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데 아무런 도덕적 결함이 없다는 것인가. 대쪽은 대쪽답게 갔다. 이제 노짱도 대국민 고백으로 '짱'다운 면모를 보여야 할 때 아닌가. /尹寅壽(논설위원)

  • 국회의원 물갈이 지면기사

    스트롬 서몬드 미국 상원의원은 놀랍게도 미 의회사상 최고령 현직 의원으로 작년 12월 100세를 맞았다. 그는 한 달 뒤인 지난 1월 5일 101세 의원으로 자퇴했고 그로부터 5개월 후인 지난 6월 26일 출신 지역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에지필드병원에서 영면(永眠)에 들었다. 우리로선 상상도 못할 '101세 현역(現役) 의원'을 실현한 그는 1902년 출생, 2차 대전 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했고 1948년 대선 때는 트루먼 대통령에 맞서 출마했던 거물이다. 그는 또 57년 공민권 법안 채택 지연 문제를 놓고 장장 24시간 18분간이라는 의회사상 최장 연설을 한 의원으로도 유명하다. 한 마디로 미 의회의 권위와 경륜의 상징이었다.그런가 하면 평소 '100살 현역' 실현을 공언했던 무려 20선(選)의 하라겐사부로(原健三郞) 중의원 의원이 일본 정치권의 최고령인 93세로 은퇴한 것은 2000년 5월이었다. 46년 첫 당선, 54년만에 자퇴한 그는 일본 자민당 '노인 정치'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고령인 18선의 사쿠라우치(櫻內義雄) 의원은 하라 의원이 은퇴한 바로 그 날 자신의 88세 생일 축하연에서 “절대로 떠날 수 없다. 10년은 더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자민당의 이른바 '73세 정년제'의 영향으로 85세의 나카소네를 비롯해 90세의 오쿠노(奧野誠亮), 82세의 시오카와(鹽川正十郞) 등 46명의 고령 의원이 지난 10월 은퇴 또는 불출마를 선언했다.한데 우리 국회는 겨우 '60대 고령' 물갈이론이 분분하다. 여론조사 결과 새 인물을 찍겠다는 유권자가 압도적이라니 내년 총선에선 속칭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20대 의원님과 3·8선 퇴직자의 30대 의원 나리가 대거 쏟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둔(老鈍), 노추(老醜), 노망과 노련, 노숙(老熟)과는 구별돼야 마땅하다. 수조(水槽)의 물갈이가 능사가 아니라 노소 관계없이 정신 상태가 비영비영하는 물고기를 가려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吳東煥(논설위원)

  • 정치보험(?) 지면기사

    ‘선거는 돈’이라는 말이 있다. 자금이 선거의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특히 최고 권력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이 들어간다는 것은 상식화돼왔다. 지난해 대선을 앞둔 10월 한나라당 중앙당 후원회 밤 행사에 무려 118억원을 모금해 목표액 7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당시만 해도 야당임에도 불구하고 후보 지지율 1위를 기반으로 한 '이회창 대세론'이 확산되는 분위기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민주당도 당시 인터넷 등을 통한 온라인 후원금과 ‘희망돼지 저금통’및 후원금 약정서인 ‘희망티켓’ 1차 정산금 등을 노후보에게 전달했다. 온라인 후원금은 13억원, 희망티켓 약정액은 20억원에 달하며 특히 직장인들의 월급날이 집중된 25일에는 하루 동안 3억6천여만원이 모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외의 모금액은 없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두 정당이 기업들로부터 거둬들인 불법 대선자금이 검찰에서 밝혀진 것만 벌써 수백억원이 넘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의 최측근들도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권력의 향배를 쫓는 정치자금의 속성 때문에 기업들이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안 갖다바칠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트럭을 동원해 1만원짜리 지폐를 '차떼기'로 가득 실어갈 정도로.문제는 이같은 후원금의 성격이 이른바 ‘정치적 보험’이라는 데 있다. 어느 정당이라도 혹시 집권했을 경우 있을 수 있는 불이익을 우려했고, 또 반(半)협박에 못 이겨 대선 후보 모두에게 지원하는 행위다. 기껏 수출해서 번 돈을 보험회사도 아닌 정치권에 어마어마한 보험(?)을 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한상의가 실시한 기업인 의식조사결과에서도 기업체 63%가 불이익을 우려, 정치자금을 제공했으며 반대급부를 기대하며 돈을 주었다는 대답은 3.3%에 불과해 정치자금은 ‘정치보험료’이었음이 입증됐다. 보험금을 받지도 못하는 5년 만기의 대선보험과 4년 짜리 총선보험이 이번 검찰수사를 계기로 과연 사라질 수 있을는지…. /李俊九(논설위원)

  • 광우병 없는 소 지면기사

    광우병뿐 아니라 광록병(狂鹿病)도 있다. 사슴의 뇌가 스펀지처럼 돼버리는 만성소모병(慢性消耗病·CWD)이 미국 북부 위스콘신주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작년 3월 13일이었고 콜로라도, 와이오밍 등 7개 주에서도 작년 가을 확인됐다. 사육장의 사슴은 물론, 사냥꾼에게 잡힌 야생 사슴도 감염돼 텍사스주 등에서는 아예 사슴 반입을 금지해버렸다. 이제 녹용이 으뜸 보약 제재(製材)에서 제외될지도 모를 일이다.영국서 발생, 유럽을 휩쓴 광우병(牛海綿狀腦症·BSE)의 공포를 나폴레옹에 비유한 외지(外紙)의 우두인신(牛頭人身) 사진이 눈길을 끈 건 작년 4월이었지만 광우병 공포는 나폴레옹 침략시대의 나폴레옹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은 사람조차 '인간 광우병'인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에 감염돼 뇌에 구멍이 뻥뻥 뚫려 사망한다는 것이다. 작년 1월 현재 영국에서 113명, 프랑스 5명, 아일랜드 1명, 홍콩 1명 등이 CJD에 감염됐다. 한국인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광우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프리온(prion) 단백질 함량이 높은 부위인 소의 뇌나 척수, 내장까지 먹고 간, 처녑(천엽) 등 육회까지 즐기는 한국인은 더욱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그런데 1996년부터 인간 광우병을 '제2의 에이즈'로 우려한 영국 과학자들의 귀엔 “미칠 광(狂)자가 싫으니 광우병이라고 하지 말고 BSE로 부르자”는 2001년 12월의 일본 농협 캠페인이 한가한 소리로 들렸을지 모른다. 그런 그들의 귀에 광우병에 내성(耐性)을 갖춘 소, 광우병 없는 소를 미국도 일본도 아니고 유럽 이웃나라도 아닌 한국에서 개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면 어떨까. 아마 콧대가 부러지는 아픔을 느낄지도 모른다. 미래산업의 치열한 경쟁거리가 될 생명공학의 대단한 개가가 아닐 수 없다. 쇠머리에서 발굽까지 깡그리 추려 먹고 발라먹는 한국인의 쇠고기 영양가 저력을 100% 발휘한 결과가 아닐까. /吳東煥(논설위원)

  • 동요 지면기사

    동화(童話)와 동시(童詩)는 어린이의 심성과 상상력을 아름답고 풍부하게 해주는 생명수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동요(童謠)는 이러한 동시에 음률을 붙인 것이고 어른들이 지어 어린이에게 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동요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구전동요(口傳童謠)가 있다. 또 언제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고, 지은이가 있더라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대중의 노래로 굳어진 구비동요(口碑童謠)라는 것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달아 달아 밝은 달아'와 '새야 새야 파랑새야'다. 앞의 것은 중국 당나라의 이태백(李太白)을 생각하면서 지은 동요고, 뒤의 것은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의 죽음을 미리 슬퍼하여서 지어 퍼뜨린 동요다.1880년대 구한 말의 비통함을 표현한 동요가 나왔으나 대부분의 곡조는 외국 민요나 일본 창가였으며 192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순수한 예술적 동요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창작 동요인 윤극영(尹克榮)의 '반달'(1924년)과 윤석중(尹石重)이 작사한 '퐁당퐁당' '오뚜기' '흐르는 시내'도 이 시기에 나온 곡들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요의 가사는 판에 박은 듯한 4·4조나 7·5조였다. 그러나 1933년 윤석중이 지은 동시집 '잃어버린 댕기'를 필두로 형식의 파괴가 이루어졌고 동요가 문학적 수준을 높이는 데 공헌하게 됐다. 해방이후에는 유희적 개념에서 교육·음악적인 개념으로 평가된 동요 새나라의 어린이, 어린이날 노래, 졸업식 노래 등이 등장, 동요의 인식도 바뀌어지게 됐다. 60년대엔 동요에 대한 가치관과 순수함이 흔들리고, 어린이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흐트려 놓기도 했다. 가창력의 수준과 작곡기법이 다양해졌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동요마저 정권에 이용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80년대들어 동요는 순수함을 찾기 시작하는 듯하다 최근들어 다시 전통을 벗어난 무국적풍의 동요와 강한리듬의 유행가에 묻혀 어린이 곁을 떠나고 있다. 평생 1천편이 넘는 순수동요 노랫말을 써온 윤석중옹이 우리 곁을 떠난 것처럼. /鄭俊晟(논설위원)

  • 수도 이전론 지면기사

    도쿄 이전론이야말로 오랜 세월 분분하다. 후보지만 해도 '60년대엔 도쿄만(灣) 후지산록(麓) 하마나(濱名) 하마마쓰(濱松), 70년대엔 기타가미교(北上京) 기타간토(北關東) 미카와(三河), 최근엔 나고야 고가(古河)주변 도호쿠(東北)광역'이라는 게 1988년 1월3일자 요미우리(讀賣)신문 보도였고 99년말엔 다시 도치키·후쿠시마(福島)와 기후(岐阜)·아이치(愛知)로 좁혀졌지만 미정이다. 천도 방법도 수도의 기능을 강화하는 개도론(改都論), 수도의 기능을 전개하는 전도론(展都論), 수도의 기능을 나누는 분도론(分都論), 고속교통 건설에 의한 확도론(擴都論) 등이 동시에 거론되고 있다. 천도 비용은 20조엔(88년 1월). 놀라운 건 2차 대전 때도 전황 악화와 본토 공습을 염려해 수도를 식민지 서울(京城)로 옮기려 했다는 게 92년 8월13일자 요미우리신문 보도였다.우리 나라 천도론도 수시로 불거졌다. 고려말엔 “송경(松京)의 기업(基業)이 쇠진했으니 서경(西京)으로 옮겨야 한다”는 요승(妖僧) 묘청(妙靑)의 제안으로 새 궁궐까지 지었다가 무산됐고 조선조 광해군 4년에는 술사 이의신(李懿信)이 “병란(兵亂)과 변고가 꼬리를 물고 도성의 산들이 벌겋게 벗겨진 것은 한양(漢陽)의 지기(地氣)가 쇠진한 탓”이라며 교하(交河) 천도를 주장했다. 한데 그의 주장에 대한 승정원 기록은 한 마디로 '해괴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었다.55년 쿠비체크 대통령 후보의 선거 공약에 따라 60년 4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아로 옮겼으나 94년부터 다시 논란에 휩싸인 브라질처럼 섣부른 천도론이란 그야말로 해괴하기 짝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천도라는 역사적인 대사를 일개 대통령 후보의 선거 공약이나 일개 정부가 함부로, 섣불리 정하고 옮길 순 없다. '서울→코리아'로 굳어진 이미지 훼손도 위험하다. 행정수도 특별법의 본회의 통과 여부가 주목거리다. /吳東煥(논설위원)

  • 세계인권선언기념일 지면기사

    국제연합(UN)은 1948년 12월10일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가 된다”고 천명하고, 모든 국민과 국가가 지켜야 할 인권의 기준으로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했다. 내일이 55주년 기념일이다. 그러나 강대국의 횡포에 약소, 후진국 국민들과 소수민족의 인권이 유린되고 상류층의 기득권을 위해 빈곤계층의 인권이 희생되는 양상이 뚜렷한 세상에서 '전 인류의 인권은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주장은 공허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의 상황도 다를 것이 없다. 우선 반인권적인 정부정책이 너무 많았다. 농가에 부채만 잔뜩 짊어지게 한 농정(農政), 도시서민들을 빚더미에 올려 놓은 카드·금융 정책, 빈곤계층을 거리로 몰아낸 주택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도시에서 농촌에서 더 이상 못살겠다며 자신의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소외계층이 국가의 사회보장제도 안에서 인권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병사한 어머니의 사체와 6개월간을 동거한 한 중학생의 사연은 구멍뚫린 사회보장제도를 증명한다. 국민의식도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잔인하고 이중적이다. 피부색에 따라 외국인을 차별하는 삐뚤어진 인간관, 북한의 인권을 외치면서도 국군포로의 인권은 외면하는 부조리, 종군위안부와 중국동포 등 역사의 희생자에 대한 냉담한 시선. 이 모든 것이 인권 유린의 시초가 된다. 정부는 지난 11월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법정기념일에서 제외시켰다. 법정기념일이 된 것은 지난 73년의 일로 박정희 독재정권이 극성을 부렸던 시절이었다. 독재정권이 기념일로 정한 것도 그렇지만, 인권변호사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이를 제외한 것 또한 아이러니칼 하다. 법정(法定)이든 비법정이든 우리가 세계 인류와 평화롭게 동반하기 위해 반드시 존중해야 할 절대적 가치가 '인권'이라는 점을 되새기는 하루가 됐으면 한다. /尹寅壽(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