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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경유착의 고리 지면기사

    정경유착(政經癒着)의 '유착'이라는 말은 원래 의학 용어다. 외과 의사들이 수술 때 또는 회진(回診) 때 암호처럼 주고받는 말 중에 들어 있는 단어 어드히전(adhesion)이나 니팅(knitting) 등이 바로 '유착'이다. 유착이란 하나의 장기, 하나의 기관(器官)이 생리적으로 관계없는 다른 장기 또는 다른 기관에 조직적으로 얽히고 엉기는 결합이며 그런 상태다. 가련한 영아들을 예로 들어 안됐지만 머리끼리, 배끼리, 등끼리 붙어 있는 샴 트윈, 샴 쌍둥이의 이신동체(二身同體)가 다름 아닌 유착 상태다. 그러니까 TV 앵커나 토론회 참가자들이 걸핏하면 일컫는 정경유착의 '고리'란 있을 수 없다. ?를 거꾸로 매단 모양(¿)의 기중기 고리나 열차 차량의 연결 고리 같은 건 환자의 장기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아무튼 새 대통령만 뽑혔다 하면 산더미 같은 국사는 미뤄둔 채 온통 나라가 시끄러운 대선 자금, 거기 얽힌 악질적(惡疾的)인 정경유착 구조는 언제쯤 떨어져나갈 것인가. 그것은 신이 내린 외과 의사 팀이 혜성처럼 나타나 '역사적'인 분리 수술을 하기 전에는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지난 여름 샴 쌍둥이 사랑과 지혜양의 분리 수술에 성공한 싱가포르의 래플즈(Raffles) 병원 수술 팀을 초청하는 것도 한 방편일지 모른다.일본에는 '오야카타 히노마루(親方日の丸)'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기업 경영이 부실하고 서비스가 엉망이어도 '히노마루' 즉 나라가 배후에 있는 한 도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민영화 이전의 국철(國鐵)이 그랬다. 형편없는 부실기업도 권력층이 봐주면 끄떡없고 건실한 기업도 권력층의 '괘씸죄 1조'에 저촉되면 하루 아침, 반나절에 망해버리는 풍토가 지속되는 한 정경유착의 분리는 요원할 것이다. SK만 해도 얼마나 억울하고 분할까. 바쳐야 할 곳엔 다 싸다 바치고도 감옥에 갔고 그런데도 속수무책이었던 전(前) 대권자의 심정은 또 오죽했을까. /吳東煥(논설위원)

  • 은행나무 지면기사

    가로수 가운데 눈에 많이 띄는 것이 은행나무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다보면 소리없이 바뀌는 계절을 느끼기가 쉽지 않지만 샛노란 은행잎을 보면 만추(晩秋)의 서정을 느끼게 한다. 청소년 시절에는 노란 은행잎을 골라 책갈피 속에 끼워놓은 아름다운 기억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은행잎은 방충효과도 뛰어나 좀이 책을 스는 것을 막는 효과 때문이라고도 한다. 공해에 강하다 보니 환경정화수의 역할을 해 도심의 가로수로도 적합하다. 수령 1천100여년을 자랑하는 용문산의 은행나무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 해우소(解憂所)가 있는데 수십년간 치우지 않아도 될 정도인 것을 보면 그 뿌리의 힘찬 흡인력을 알아줄 만하다.그 뿐 아니다. 열매인 은행을 익혀먹으면 폐를 다습하게 하고 기를 돋우며 천식과 기침을 다스린다고 본초강목에서 전한다. 징코민 성분은 혈액순환을 도와 성인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도 있어 수출에도 효자노릇을 한다. 은행나무는 한자로 은행(銀杏)이라고 쓴다. 열매가 살구를 닮았지만 흰빛이 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잎이 오리발을 닮아 압각수(鴨脚樹), 손자대에 가서나 열매를 수확한다는 뜻에서 공손수(公孫樹)라고 불린다. 고생대 이첩기(2억5천만년전)부터 자라 살아있는 화석으로 지칭된다.은행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교나 불교와 함께였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공자의 행단(杏檀)에 많이 심어졌던 이 나무가 문묘나 향교 등에 주로 심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교단체의 상징이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S대학교의 배지도 은행잎으로 도안했다.그런데 요즘 도심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의 잎마름 현상이 가속화되고 열매도 그전같지 않다. 그래서인지 지자체마다 열리는 은행줍기행사도 시들해진다고 한다. 극심한 공해에 어쩔수 없는 탓인지 갈색으로 말라가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신목(神木)으로 불리는 은행나무도 나라 안팎이 시끄러운 혼돈의 시기를 대변해주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李俊九(논설위원)

  • 겁화(劫火) 지면기사

    불교에서 이르는 세계 파멸의 괴겁(壞劫)에는 세 가지가 있다. 노아의 홍수와 같은 겁수(劫水), 태풍 매미와 같은 겁풍(劫風), 고대 로마의 대 화재와 1870년의 시카고 대 화재, 그리고 대형 산불과 같은 겁화(劫火)다. 인간은 이런 자연 재해에 속수무책이다. 겁화, 대형 산불만 해도 얼마나 무서운가. 근년의 예만 들더라도 1988년 미국 와이오밍주 산불은 6∼9월 석달 동안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포함해 65만㏊를 잿더미, 겁회(劫灰)로 만들었고 번개가 주범이었다는 89년 캐나다 매니토바주 산불은 2개월간 무려 200만㏊를 재로 만들었다. 87년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다싱안링(大興安嶺) 화재 또한 27일간 55만㏊를 태웠고 96년 내몽골 자치구의 산불도 4개월간 100만㏊의 산림을 초토로 만들었다.그런데 LA를 포함한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대형 산불이 잦은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건조한 날씨에다 이맘 때 그 지역을 통과하는 건조한 푄현상의 사막풍, 즉 시속 150㎞의 산타아나(Santa Ana) 계절풍 탓이라고 한다. 우주선 콜롬비아호가 시커먼 연기의 사진을 전송하기도 했던 93년 10월의 그 산타아나 산불은 LA의 라구나비치 주택가를 휩쓸어 할리우드 스타 실베스터스탤론의 호화 별장 등 300여 채를 집어삼켰고 그 한 달 뒤 2차 발화한 산불은 찰스브론슨, 브루스윌리스 등의 대형 주택을 태워버렸다. 지난 27일 미 국립 기상청 인공위성이 촬영한 이번 화재 사진은 시커먼 연기도 아닌 시뻘건 화마(火魔)의 모습 그대로다.한데 그런 대형 산불의 원인이 고의적인 방화(放火)라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18만㏊를 태운 작년 6월의 애리조나주 산불은 근무수당을 노린 한 임시직 소방대원의 방화로 밝혀졌고 이번 화재 역시 방화 용의자 2명을 쫓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구의 허파를 불태우는 그런 '살산(殺山) 죄인'들이야말로 100년 200년 징역 감이다. /吳東煥(논설위원)

  • 우울증 주부 지면기사

    “우울(憂鬱)이란 살아 있는데도 죽어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고 감각에 대한 무능력이며 기쁨도 슬픔도 경험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건전한 사회'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도 감각의 무능력 탓이고 슬픔조차 경험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인가. 미국 영화배우 말론 브랜도의 딸 쉔 브랜도(25)는 오빠의 약혼자가 오빠한테 살해당한 후 심한 우울증에 빠져 1995년 4월 남태평양 타히티 섬에서 자살했고 모델 출신인 피카소의 둘째 부인 재클린 피카소(60)도 피카소 사후 심한 우울증에 싸여 86년 10월 프랑스 남부 칸 시 부근 별장에서 자살했다.남자들의 우울증 자살도 많다. 2세, 3세 때 각각 부모를 잃고 하나뿐인 누나도 삶의 곁을 떠난 16세 때엔 할아버지마저 백내장으로 눈이 멀어 그의 소설엔 늘 우수에 젖은 서정성과 짙은 우울의 안개가 깔려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그는 72년 4월 한 줄의 유서도 없이 가스관을 입에 문 채 자살했다. 차이코프스키의 '우울한 세레나데'가 아니더라도 그의 삶 자체의 주조(主調)가 우울이었다. 셸 보네비크 노르웨이 총리는 자신의 우울증을 아예 공개, 호소했다. 98년 10월 “정신적 능력이 쇠진해 병가를 신청합니다”라는 성명을 발표,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웠지만 '솔직해서 좋다'며 오히려 세인의 동정을 받았다. 지난 4월 홍콩 영화 스타 장궈룽(張國榮)의 자살 동기도 우울증이었다.서울 주부의 절반에 가까운 45%가 우울증이라는 대한우울조울병학회 조사 결과가 충격적이다. 특히 30대 주부가 많다는 건 그럴 만하다. 삶의 기대치(値)가 가까이서 멀리서 사방에서 사뭇 어긋나는 환멸을 실감하는 연령층이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철엔 더욱 우울증을 유발하기 쉽다니 걱정이다. 실내 조명을 밝게 하고 자주 햇볕을 쬐는 것도 효과적이라지만 무엇보다 남편 등 주변의 배려와 격려가 필요하다. 오동환

  • 카지노(casino) 지면기사

    1860년 모나코는 매우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그때 프랑코스 블랭크(Francois Blanc)라는 남자가 궁핍한 모나코를 구하기 위해 카지노를 오픈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는 받아들였고 3년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박휴양도시 몬테카를로(Monte-carlo)가 탄생했다. 마카오에선 이보다 앞선 1850년 카지노가 생겼고 환락과 쾌락 도박의 천국(?) 미국의 카지노는 19세기 중엽부터 남북전쟁 때까지 미시시피강(江)에 있던 200여 척의 도박선(賭博船)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서 카지노의 합법화가 이루어진 프랑스는 심각한 폐해로 1837년 불법으로 선언하기도 했으며 이 시기 독일에서는 카지노에서 베팅을 하기 위한 최초의 '칩'이 사용됐다. 우리나라는 1967년 인천오림포스 호텔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카지노(casino)의 어원은 작은 집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카자(casa)다. 이는 르네상스 귀족들이 소유했던 사교·오락용 시설의 별관을 뜻하는 것이다. 상류계층은 이곳에 모여 사업적 거래뿐만 아니라 정치, 도박 심지어 육체적인 욕망까지 해결했다. 카지노가 타락행위나 파멸을 의미하는 말이 된 것도 이런 연유다.오늘날 카지노라는 도박 중독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세계 곳곳에서 룰렛, 블랙젝, 바카라 등 여러 카지노 게임들이 대박을 꿈꾸는 이들을 유혹하면서 파멸로 치닫는 패해가 날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도박중독은 치유가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도박중독협회도 지난 1980년 도박중독을 정신병으로 인정하면서 숨겨진, 또는 비밀스런 중독(Hidden Addiction)이라 부르고 있다. 얼마전 모국회의원이 미군 카지노에서 심야도박을 해 국민적 비난을 샀다. 본인은 처음이라 우겼지만 숨겨진 중독증세가 아니면 할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망각에 중독된 요즘 정치인들의 단면을 보는 것같아 씁쓸하다. /정준성(논설위원)

  • '브랜드 쌀' 지면기사

    얼마 전 BBC가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가 발견됐다고 보도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소로리 볍씨'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공인받았던 중국 후난(湖南)성 출토 볍씨 보다 4천500년이나 더 묵은 1만5천년의 나이로 밝혀졌다고 한다. '소로리 볍씨'의 출현은 쌀을 주식이자 신물(神物)로 삼았던 우리 민족의 '쌀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반가운 고고학적 쾌거다. 쌀을 재배해 밥을 지어 먹었던 농경민족이 1만년 전부터 한반도에 존재했다면 '개천(開天)의 역사'를 한참 위로 올려놓아야 할 일 아닌지 모르겠다.쌀은 한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작물이다. 작은 쌀 한톨 마다에 조상의 혼과 얼이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주단지에 조상의 신체로 여긴 쌀을 넣어 섬기면서, 그 양이 줄거나 빛이 변하면 재난의 징조로 여겼다. 소반위에 낟알을 흩어뿌려 몇알 거두어 점을 치는 쌀점은, 쌀이 신의 현신(現身)으로 신탁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성이 88번이나 거듭 닿아야 거둘 수 있는 쌀이니 신성화는 당연지사다.그런데 누천년 신성의 대상이던 쌀이 최근 몇년 사이에 화려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예부터 진상미로 유명한 경기미만 해도 '임금님표(이천)' '대왕님표(여주)' '통일로 가는 길목(파주)' '남토북수(연천)' '임꺽정(양주)' '수라청(화성)' '해솔촌(포천)' '햇토미(시흥)' 등 18개 브랜드를 달고 고장의 명예가 걸린 명품대결을 펼치고 있다. 이같은 양상은 경기미에 대항하기 위한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소비가 해마다 줄어들면서 쌀이 신성(神性)을 잃고 보관이 골치아픈 천덕꾸러기로 전락한지 오래다. 문제는 쌀의 신기(神氣)가 빛을 잃은 산업화 과정에서 현대인의 인성도 그만큼 천박해졌다는 점이다. 모쪼록 '브랜드 쌀' 경쟁이 우리 먹거리로서 쌀의 위상을 되찾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尹寅壽(논설위원)

  • '열린 우리 당' 지면기사

    '열린 우리 당'이라는 새 정당 이름을 놓고 제소 설 등 말들이 많다. '우리(We)'라는 '1.5인칭' 대명사 때문이다. '우리 당의 도전에 대한 우리 당의 응전(應戰)' 따위 말도 안 되는 말의 후자 '우리 당' 대신 '저희 당' '쇤네(소인네) 당'으로 낮춰 부를 수도 없고 하긴 그럴 만도 하다. 더욱 우스운 건 '우리(We)'에 이어 연상되는 '우리(terrarium)'다. 육생(陸生) 동물 사육장, '돼지우리'라고 할 때의 '우리'다. 큰 '우리'가 돼지우리, 작은 '우리'가 도마뱀, 곤충 등을 기르는 상자다. 따라서 '열린 우리'라고 하면 갇혀 있던 돼지 떼가 모두 뛰쳐나갈 수 있다. 우리 안의 돼지들을 위해서는 '열린 우리'보다 '닫힌 우리'가 나을 것이다. 하기야 인간의 집(家) 자체가 '지붕 밑의 돼지' 형상이다.13억 중국인은 '우리'를 어떻게 들을까. '우뚝 서다'는 '올립(兀立)'이나 '만물의 이치'의 '물리(物理)' 등 괜찮은 뜻보다는 그렇지 않은 말이 많다.탐관오리의 오리(汚吏), 버릇없고 예의 없는 무례(無禮), 비합리와 억지의 무리(無理), 비속하고 조잡한 무리(蕪俚), 무력(武力) 등이 모두 '우리' 발음이다. 이자 5푼의 5리(五厘), 방안과 마누라의 옥리(屋里), 가물치도 '우리'라고 하고 안개 속에서 꽃을 본다(霧里觀花)고 할 때의 안개(霧里)도 '우리'다. 1억3천 일본인의 귀엔 또 어떨까. '팔아먹다'의 '우리(賣り)'부터 들릴 것이고 오이과(科)의 1년생 풀을 연상할 사람은 드물지도 모른다.정당 이름이야 아무러면 어떤가. 참여 정부라니까 정부 시책과 개혁에 참여하기 위해선 '닫힌 우리'보다는 '열린 우리'라야 할 것이다. 현재 이라크엔 무려 200여 정당이 난립했다고 한다. 금수강산 우리 땅에 '열린 우리 당'이든 '닫힌 남의 당'이든 한 두 개쯤 느는 건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른다. 요는 수명이다. 100년, 200년 열린 우리로 지속되길 기대해 본다. /吳東煥(논설위원)

  • 전 방송사 사장의 출가 지면기사

    불교에서는 세상을 고통과 괴로움, 108가지의 번뇌로 가득한 곳이라고 말한다. 중생들은 ‘참다운 나’를 알지 못하고 욕망과 무명(無明)에 허우적댄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는 각종 비리와 부정, 계층간의 갈등과 반목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그래서 불교에서는 깨달음과 부처의 길을 위해 부모형제 등 현실과의 인연을 끊고 속세를 떠나는 것을 출가(出家) 또는 사신(捨身)이라고 한다. 죄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는 깊은 고뇌에 빠졌다가 출가해 조계종 종정까지 지낸 판사출신의 스님에서부터 지난해 이맘때는 치안감으로 서울지방경찰청 차장이었던 김기영씨가 명예퇴직서를 내고 불교에 귀의했다. 이번에는 일간지 편집국장과 방송사 사장, 국회의원, 대학총장을 역임한 박현태씨가 고희(古稀)의 나이에 선운사에서 동료 196명과 함께 지연(志淵)이라는 법명과 함께 계(戒)를 받아 화제다.고행이나 수도보다는 말년에 사회에 봉사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사회의 최고위직을 두루 지냈던 그로서는 모든 것이 허망할 뿐이라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기독교 신자인 두 딸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더 이상 잃을 것도, 바랄 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 길을 택했다는 박 전사장은 내년 7월 남양주 경춘도로변의 한 절에서 주지를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마음에 수련을 쌓으려는 이는 박 전사장이나 김 치안감 뿐만은 아닌 것같다. 세태가 각박해져가면서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절을 찾아 산사체험을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현실이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가져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세상살이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으려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모든 종교가 '깨달음'이 없으면 무의미하게 되듯이 자신을 깨달아야 할 때다. 요즘같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에게는 결국 마음을 스스로가 잘 다스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준구(논설위원)

  • 정치인의 입 지면기사

    이런 프랑스 유머가 있다. 어느 신사가 파리 번화가에 걸려 있는 '뇌 세포 팝니다'라는 간판에 호기심이 끌려 들어갔다. 가게엔 여러 직업인의 뇌 세포가 포르말린 병 속에 간직된 채 고이 진열돼 있었다. “이걸 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신사가 묻자 주인은 자신감 넘치는 목청으로 말했다. “저희 가게와 특별계약을 한 고명한 외과 의사가 선생의 뇌 세포 대신 이 걸로 감쪽같이 갈아 끼우는 개체(改替)수술을 해 드리는 겁니다.” “그럼 값은 어떻게 됩니까.” “가장 비싼 게 정치가의 것이고 예술가나 과학자의 뇌 세포는 다소 떨어집니다. 예? 아니지요. 정치가의 것이 가장 비싼 까닭은 그들의 뇌 세포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새것들이기 때문입니다.”쓰지 않아 텅텅 빈 머리에다 입은 어떤가. 테너 엔리코 카루소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한껏 최고의 목청을 포르티시시모로 뽑아 올릴 때의 입들처럼 정치인의 얼굴은 대부분 입이 차지한다. 아니, 정치인의 '얼굴-입=0'이라고 한다. 그런 입들을 열었다 하면 거짓말이 새 나온다. “정치 연설을 듣거나 영도자들의 연설문을 읽을 때마다 인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경이(驚異)를 품는다. 항상 똑같은 거짓말을 똑같은 말로 하고 있는 것이다.” 카뮈의 '비망록'에 나오는 말이다. 흐루시초프도 “정치가란 시냇물도 없는데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공약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그런 뇌 세포에 '정치란 바른 것(政者正也)'이라는 논어의 말씀이 각인될 리 없다. 100억, 200억 현찰을 받는 순간 10만원, 100만원 고액권이 있다면 얼마나 간편할까 따위 생각으로 가득 찰 사람들이다. 만약 그런 고액 수수설에도 “1원도 안 받았다”는 검찰 출두의 변(辯)이 끝까지 '정말'로 밝혀지는 정치인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그의 뇌 세포는 그래도 꽤 사용한 적이 있는 '신기한 정치인'으로 이 땅의 청사(靑史)에 길이길이 기록될 것이다. /이준구(논설위원)

  • 핼러윈 데이 지면기사

    국내에서 상영, 히트한 영화 숀코너리의 '카메롯의 전설'은 영국 아서왕을, 멜깁슨의 '브레이브 하트'는 스코틀랜드 민족 지도자 윌리엄 월레스를 소재로 다뤘다. 그리고 주인공은 모두 켈트족이다. 켈트족 하면 쉽게 떠올릴수 있는 것이 남자가 입는 체크무늬 치마 킬트(Kilt)일것이다. 상의 타탄(Tartan)과 함께 켈트족의 전통의상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아일랜드와 웨일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하면 타탄과 킬트를 입고 백파이프를 부는 모습을 연상하기도 한다.서구에 흩어져 살아가는 켈트족은 고유언어와 음악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과 그들만의 결속을 다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켈트족나름의 독특한 문화가 유럽과 미주지역으로 전파되기도 했다. 대표적인게 '핼러윈(Halloween)데이'다. 10월의 마지막날인 핼러윈데이는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켈트족의 의식에서 비롯됐다.오늘날 미국의 경우 어른아이 할것없이 크리스마스 버금가는 명절로 인식하고 있다. 켈트족으로 구성된 영국의 식민지였던 탓도 있지만. 대통령선거의 우열을 핼러윈데이 축제행사를 앞두고 팔리는 후보얼굴 가면의 수를 비교해 판단할정도다. 당선도 가면이 많이 팔린 후보가 된다고 믿고있다. 지난 80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과 민주당의 지미 카터 대결이후 대선이 있는 해 핼러윈데이때 얼굴가면이 많이 팔린 후보가 선거에서도 승리다는 묘한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2000년 대선도 10월 가면 판매율을 집계한 결과 부시 58%, 고어 42%로 부시가 16%포인트 앞섰고 결국 부시가 당선됐다.서양명절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요즘 국내 일부 계층에서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의상과 소품구입에서부터 호화 파티를 계획하느라 난리법석이라고 한다. 화이트데이니, 블랙데이니 하는 국적불명의 이벤트에 이어 우리와 아무관계가 없는 켈트족의 풍습까지 돈과 시간을 들여 즐기려는게 요즘 세상이라니 이해가 안간다./정준성(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