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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딱 한잔의 술 지면기사

    '마셔도 마셔도 싫지 않아 또 마시고(飮飮不厭更飮飮) 안 마신다 안 마신다 하면서도 또 마시고(不飮不飮更飮飮)…' 이렇게 읊조린 김삿갓의 술 가치관은 무엇일까. '역사―술=시시한 것' '세상―술=재미없는 것' 정도가 아니라 '인생―술=0'일지 모른다. 0.3, 0.4 소수점 이하는 그의 시문일 것이고…. 맥주 거품 목욕을 즐겼다는 클레오파트라도 대답하리라. '내 인생에서 술을 빼면 줄리어스 시저와 안토니우스만 남는다'고. 그리고는 요염한 미소로 반문할 것이다. 맥주에 빠져 죽든 다른 술독에 빠져 죽든 술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두보(杜甫)가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노래한 이백(李白) 등 음주 팔선은 시선(詩仙), 시성(詩聖)이지만 주성(酒聖)으로도 꼽혔다. 그런데 성인 성(聖)자는 놀랍게도 '맑은 술 성'자이기도 하다. '성인→맑은 술을 즐기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존경한다는 존(尊)자도 '술 그릇 존'자이기도 하고 고관대작이라고 할 때의 벼슬 작(爵)자도 '술잔 작'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술과의 거리는 존경받는 벼슬자리와의 거리와 비례한다는 암시 같기만 하다. 술을 가리켜 '천지미록(天之美祿)'이라고 일렀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좋은 복록, 하늘 복이라는 뜻이다. 미주(美酒)니 약주(藥酒)니 영주(靈酒)니 하는 찬사도 이 때문이리라. 아니, 술을 점잖게 이르는 말, 술의 대명사가 '약주' 아닌가.현진건(玄鎭健)의 소설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이 '술 권하는 12월'에 주당들의 술맛을 싹 가시게 하는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50대 이상에겐 적당한 음주는 물론, 딱 한 잔의 술조차 뇌 조직을 손상케 한다는 게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연구팀의 주장이다. 하기야 약간의 술은 몸에 좋다는 정설을 일축하는 주장은 전에도 나왔었다. 딱 한 잔의 술도 나쁘다는 게 1994년 11월 1일 세계보건기구(WHO) 한스 엠블라드 박사의 경고였다. /오동환(논설위원)

  • '얼짱'과 인조미녀 지면기사

    요즘 '얼짱'이라는 신조어가 10대에게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고 한다. 한동안 '짱'이라는 말이 나돌더니만 얼굴이 '짱'이라는 소리란다. '좋다' '최고다'란 듯의 '짱'은 또 싸움을 가장 잘하는 학생들에게도 붙여진다. 그러니 얼굴이 가장 잘 생긴 사람이 '얼짱'이라는 뜻에 도달하게 된다. 그 옛날 미팅에서 부르던 '킹카, 퀸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국어사전에는 등장하지도 않는 인터넷 신조어지만 생김새가 옹골차고 날래다는 의미의 '짱짱하다'는 단어에서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인터넷에는 이에 대한 수많은 카페와 사이트가 등장하며 10대들은 누구나 이 '얼짱'이라는 감투를 쓰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킹카의 조건으로 외모 경제력 패션감각 유머 성격 등을 들고 있지만 '얼짱'이 되려면 수려한 외모에다가 얼굴이 포토제닉('사진빨'이 잘 받는)해야 한다. 급기야 얼굴사진을 예쁘게 찍을 수 있다는 '얼짱폰'까지 출시됐다. 10대가 만들어낸 한 가상(假像)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고, 이 점에서 ‘아바타’하고는 사뭇 다르다. 아바타에 계절별로 옷을 입히다가 인터넷 결제요금 10여만원이 나온 초등생이 엄마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도 있지 않았던가.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사이버상의 '미남·미녀’가 아닌 실제 생명이 있는 새로운 대상을 찾으려는 욕구가 ‘얼짱’으로 탄생한 것은 아닌지.엊그제 중국에서는 우리 돈으로 6천만원을 들여 수술을 통해 인조미녀가 탄생했다고 한다. '얼짱'이 되기 위한 성형수술의 열풍이 중국에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얼굴에서부터 신체 구석구석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뜯어고쳤기에 본래의 모습이란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상하이에서는 추녀대회를 열고 수상자에게는 성형수술비로 2천만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은 인격의 도야(陶冶)이자 개성의 창출이건만 너도나도 ‘얼짱’에 내몰리는 오늘의 세태를 보면 씁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李俊九(논설위원)

  • 살인 독감 지면기사

    감기는 불공평하다. 지난 7월27일 영국 BBC방송이 '활동적이고 행복하고 편안한 성격의 사람이 우울하고 예민하고 화를 잘 내는 불행한 사람보다 감기 바이러스에 저항력이 강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미국 카네기멜런 대학의 셸던 코엔 박사가 'Psychosomatic Medicine(정신치료학)'지에 발표한 그 연구 결과가 사실이라면 화 잘 내는 사람의 화를 다시 한 번 돋울 만한 일이 아닌가. 한데 감기와 독감(인플루엔자)은 다르다. 원인 균도 다르고 증상도 다르다. 감기 바이러스는 200가지가 넘지만 독감은 특정 바이러스, 즉 세 가지 혈청형이 따로 있고 그걸 A, B, C라 부른다.30년 주기로 유행한다는 죽음의 독감이 곧 지구를 휩쓸 것이라고 보도한 것은 1997년 2월17일자 독일의 '슈피겔'지였다. 2천만명이 죽은 1918년의 살인 독감을 비롯해 수십만명이 사망한 1890년, 1900년, 1957년, 1968년의 독감이 곧 내습한다고 했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를 멸망케 했다는 그런 악성 독감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전세계에 내려진 중국 푸젠(福建)A형 독감 주의보 또한 심상치 않다. 유럽→북미→타이완을 거쳐 곧 한반도에도 상륙할 태세다. 그런데도 100% 예방 백신은 없다. 계란에서 불활화(不活化)시킨 백신의 효험도 50%에 불과하다. 그것도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쓸 수 없다. 일본서 개발 중인 인플루엔자 왁친의 효과도 어떨지 모른다.이쯤 되면 증세를 빤히 보고도, 알고도 막지 못하는 독감 고뿔 역시 괴질(怪疾)은 괴질이다. 아무리 '악(惡)'자와 '독(毒)'자가 겹친 '악성 독감'이라지만 국소 마취 심장 수술은 물론, 다수의 장기를 동시에 이식하는 21세기 첨단 의학 시대를 비웃는 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저 저항력을 기르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번 사스 유행 때처럼 김치에 소독된 한국인에겐 감히 접근할 수 없으리라 믿어 본다. /吳東煥(논설위원)

  • 복권 꿈 지면기사

    죽을 때, 임종 때 회고하는 일생이 '일장춘몽(一場春夢) 같다'고 한다. 어디 봄 꿈뿐이랴. 인생은 한 마당 여름 꿈, 가을 꿈, 겨울 꿈 같기도 하리라. 살아온 실제 인생뿐이 아니다. 온갖 영화를 누리다가 퍼뜩 깨어난다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든지 꽃 같은 여덟 선녀와 함께 달콤하기 그지없는 꿈 속 생활을 즐기다가 깨어난다는 김만중(金萬重)의 소설 '구운몽(九雲夢)'을 봐도 그렇고 80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는 노생(盧生)의 생생한 꿈, 20년간 길고 긴 잠을 자면서 온갖 꿈을 꾸는 동화 속의 주인공 립 밴 윙클의 천진한 꿈, 언감생심 아름다운 여인과 40년 동안이나 함께 사는 승려 조신(調信)의 꿈 등 온갖 유별난 꿈들이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가 되어 펄펄 날았다는 그 꿈처럼 꿈 같은 인생인가, 인생 같은 꿈인가를 사뭇 헷갈리게 한다.밤에 자면서 꾸는 꿈과 눈을 뜬 채 백일(白日) 하에, 광도(光度) 높은 대낮에 꾸는 희망과 포부의 꿈, 야망과 청운의 꿈 두 가지로 나눠 봐도 마찬가지다. 꿈이 없는 절망만으론 단 한 시, 한 나절의 삶도 지탱하기 어렵다. 삶의 끝 종이 땡땡땡 울릴 때까지도 보다 나은 내일을 희원(希願)하고 죽기 전날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인간이다. 인생은 자나깨나 꿈이다. 누가 인간을 희망하는 인간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s)'라고 했던가. 인간은 희망하며 꿈꾸는 동물이다. 누구나 이상적인 드림 부부와 드림 가정, 최고의 드림 일을 꿈꾸고 최상의 드림 인생을 꿈꾼다. 꿈이 없이는 만사휴의(萬事休矣), 말짱 헛 거다.꿈에서 본 사자(死者)가 암시하는 번호로 산 복권 60장이 모두 당첨됐다는 어느 주부의 꿈이야말로 신묘하기 그지없다. 그런 꿈의 효험(效驗)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꿈의 해석'을 쓴 프로이트라도 깨워 묻고 싶다. 그녀가 꿈에 본 사자는 분명 그리스 신화의 꿈의 신 모르페우스가 보낸 사자(使者)가 틀림없지 않나 싶다. /吳東煥(논설위원)

  • 국민교육헌장 지면기사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은 지난 68년 12월5일 공포된 뒤 한동안 정부의 모든 공식행사에서 낭독해야 했고 선포일은 교육관련 최고의 기념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초·중·고교 모든 교과서 맨앞에 실렸고, 학생 모두 이를 외워야 했다. 외우지 못하면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온 나라의 병영(兵營)에서는 그 짧지 않고 문맥이 까다로운 헌장을 줄줄이 암기하고 점호 때 차례로 소리쳐 외우게 하느라 소동이 일기도 했다. 73년엔 스승의 날마저 국민교육헌장선포일에 통합시켜 폐지하였다가 82년 5월 15일 다시 부활시킬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40대 이상이면 모두가 갖고 있는 기억들이다.모레는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된지 35년 되는 날이다. 그런가 하면 94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기전까지 가정·학교·사회 등 모든 교육의 근본 지표로 군림했던 국민교육헌장이 영원히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날이기도 하다. 지난 11월18일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올해부터 국민교육헌장 선포일을 국가기념일에서 완전 삭제하기로 의결했기 때문이다.이은상·박종홍 등 국내의 원로급 학자들이 기초했다는 339자의 한글국어체 국민교육헌장은 탄생의 화려함 만큼이나 시대가 바뀔때마다 부침도 심했다. 일제때 천황의 교육칙어(敎育勅語)와 비슷하다는 비판을 받았는가 하면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김영삼 정권이 출범한 94년에는 초·중·고 교재의 표지 바로 뒷부분에 있던 국민교육헌장을 모두 삭제시켰고 95년 12월에는 제정 28주년을 맞아 선포기념식 거행 및 교과서 수록 등 공식적 기능을 완전 폐지했다. 그후 이번에 대통령령으로 정한 국가기념일마저 삭제해 근대사에 묻히게 된 것이다. 중년의 머리속에 깊이 각인된 국민교육헌장. 나라가, 특히 정치와 교육이 혼란스런 이 시기에 개인과 국가의 조화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을 강조한 국민교육헌장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鄭俊晟(논설위원)

  • 사채(私債) 지면기사

    대금업(貸金業)은 유럽 역사에 점철된 유태인 수난사의 주요 원인이었다. 기독교도들은 성서에 “타국인들에게는 이자를 받되 형제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한 말씀을 들어 대금업 종사자가 많은 유태인들을 경멸했던 것이다. 기독교 중심의 유럽사회에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유태인들로서는 사채업이 가장 안정적인 생계수단이었다. 그들로서는 동족을 제외한 이방인에게 사채를 놓는 것이니 하나님의 율법에도 어긋나지 않았건만, 생래적으로 유태인을 적대시한 기독교인들은 이들을 '돈과 성교해 돈을 불리는 마법사들'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태인 샤일록은 빚 보증으로 '한파운드의 살', 즉 신체포기각서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 유태인의 대금업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기독교도에 대한 분노와 증오 때문이라고 독백한다.고리(高利)가 따르는 사채업, 즉 고리대금업은 기본적으로 증오를 배태하는 직업일 수밖에 없다. 고리를 무릅쓰고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그 만큼 사정이 절박한 사람들로 파산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사채가 고리인 이유와 채권 회수 방법이 악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근세까지만 해도 동·서양의 빈곤층은 모두 고리대금업자의 손에 고루한 세간살이 부터 시작해 종국에는 자식과 아내까지 팔아먹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최근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 한도를 일제히 줄이자 100만명에 달하는 '돌려막기족(族)'들이 일거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을 넘는 건 시간문제인 모양이다. 결국 이들이 몰려갈데라고는 사채업자 밖에 없는데, 샤일록 방식의 '신체포기 각서'가 난무하는 가운데 고리대금업자를 살해하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속출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큰 걱정이다. 성경에서 고리대금업자의 소득을 '개 같은 자의 소득'이라며 하나님 앞에 바치지 말라 한 것도 '사채'로 인한 인성 파괴를 예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환, 마마 보다 무서운 '사채'가 횡행하니 답답한 세상이다. /尹寅壽(논설위원)

  • 촛불 시위 지면기사

    작년 12월 높이 333m의 일본 도쿄타워를 사상 최대의 촛불 형상 불빛으로 만들어 장관을 이뤘지만 그 '촛불 타워'와 함께 떠오르는 촛불 영상이 있었다. 종악장에서 한 명씩 보면대(譜面臺)의 촛불을 끄고 퇴장하는 하이든의 45번 '고별 교향곡'과 1960년대 유대인 농부의 애환을 그린 노먼 주이슨(Norman Jewison) 감독의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리니스트(Fiddler on the roof)' 그 환상적인 밤 결혼식의 촛불 든 하객의 축하 장면, 그리고 촛불 20개만을 밝힌 어둠 속 연기로 유명한 폴란드 가르지니차 극단의 '아바쿰'―88년 8월 서울 문예회관 소극장에서도 상연했던 그 촛불 연극 장면 등이었다.인류의 촛불 사용은 고대 그리스, 이집트와 기원 전 3세기 중국의 전국시대, 한반도의 낙랑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까 공자, 노자 시절까지는 몰라도 제갈공명의 '출사표'부터가 촛불 밑의 일필휘지였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괴테의 '파우스트' 등 명작도 촛불 아래서 쓴 것이다. 고고(孤高), 환상, 처절, 죽음의 촛불 영상으로 뇌리에 찍힌 슈베르트 영화의 슈베르트 악보 또한 촛불 그림자와 함께 탄생했다. 그런 촛불은 르네상스기 이후 여러 개의 촛불을 켜는 다등가(多燈架)의 출현과 함께 주로 결혼식, 장례식과 교회, 사찰 등의 종교의식 때 사용됐다. 1882년 에디슨의 전기 발명 이후에도 여전히 '화촉(華燭)을 밝힌다' '촉대(燭代)를 바친다'고 하지 않는가.그런데 2월 2일 기독교의 성촉절(聖燭節) 거리 행진이나 부처님 오신 날의 제등행렬 등 특별한 예가 아니고는 촛불의 옥외 출타는 드물었다. 그런 촛불이 언제부턴가 집단적인 맹세와 고별 등 의식화(意識化) 의식에 불가결한 존재가 됐고 광장 시위의 상징처럼 돼버린 것이다. 지난 주말에도 서울, 부안 등을 뒤덮은 촛불 시위는 1년간 무려 500만명이나 참여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吳東煥(논설위원)

  • 치마 지면기사

    치마는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통한다. 그래서 '치맛바람'도 여자가 일으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치마는 본래 사람이 입는 옷의 근본이듯이 남자도 입었다. 옛날 고대시대에는 옷만드는 기술이 없었던 터라 옷감을 대충 둘러입었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문헌에는 상(裳)·군(裙)으로 표기되어 있고 고구려벽화(4~6세기)에서도 치마를 입은 남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다가 북방 기마민족이 사냥이나 전쟁에서 불편을 겪자 바지를 입기 시작해 유럽과 동남아로 퍼지기 시작했다. 삼국시대 이후에 들어서는 남자=바지, 여자=치마의 불문율이 생겨 여자의 옷으로 자리잡았다.일본에서는 조선옷으로 불리는 치마저고리가 한국인의 상징이었을 정도다. 3·1운동 당시 유관순열사의 사진을 보면 그녀의 복장도 영락없이 그러했다. 치마하면 또 '행주치마'를 들지 않을 수 없다. 행주산성에서 권율장군과 왜구들의 싸움이 벌어졌는데 부녀자들이 앞치마에 돌을 날라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데서 유래한다.서양에도 스커트라는 이름의 치마가 있다. 17세기 중반에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이에 리본이 장식된 화려한 스커트를 남자도 착용했으며 그 당시의 남자 스커트가 현재도 스코틀랜드 지방에 킬트(kilt)라는 이름으로 있다. 그래서 옛날 영국에서는 한 때 각국 대사가 신임장을 제정받을 때는 어느 나라이건 관계없이 긴 스커트를 입도록 했다는 얘기도 있다. 중세의 무사들을 보아도 예외없이 스커트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최근 여성부가 일선 중·고교에서 여학생에게 치마만 교복으로 입게 하는 것은 남녀 차별의 소지가 있다는 결정을 하고 여학생들이 교복으로 치마나 바지중에서 선택해 입을 수 있도록 일선 학교에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여학생에게 치마만 입게 하는 것은 전근대적 발상으로 여학생 교복이 반드시 치마여야 하는 합리적 이유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다. 여학생들의 행동과 태도를 규제하지 않겠다는 취지이지만 얼마나 많은 여학생들이 바지를 선택할 지 궁금하다. /李俊九(논설위원)

  • 단식투쟁 지면기사

    먹을 게 없어서 '당하는' 단식으로 굶어죽는 사람의 눈엔 일부러 굶는 단식 투쟁자들의 행위가 사치로 비칠 지도 모른다.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최고(最古)의 도시 여리고(Jericho) 서쪽 '유혹의 산'에서 40일간이나 단식했다는 예수를 비롯해 1918∼48년 사이 14차례나 단식을 해 단식투쟁의 전설적인 존재가 된 마하트마 간디부터도 그렇게 비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결사적(決死的)'인 현재진행형의 단식 투쟁이 아닌 '결사(決死)' 그대로의 현재완료형으로 죽어간 단식 투쟁자들이란 처절하기 그지없다. 수양산의 백이(伯夷) 숙제(叔齊)를 위시해 가야국 월광사 숲 속에서 굶어죽은 월광태자(月光太子), 백제의 충신 성충(成忠), 한음(漢陰)대감 이덕형(李德馨), 면암(勉菴) 최익현 등. 무더기로 굶어죽은 예는 또….작년 1월 호주 남부 우메라 억류센터에 억류된 62명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처럼 아예 입술을 바늘로 꿰맨 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으면 단 1주일도 못 간다. 그러나 '정글'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미국 작가 업턴 싱클레어의 저서 '현대인의 생활전술'을 보면 1920년 10명의 대(對)영국 아일랜드 반란 주동자의 경우 옥중 단식 20일째가 돼서야 모두 빈사 상태에 빠졌다. 더구나 맥스 위니 콜크시(市) 시장은 74일째에 죽었고 88일째에 또 한 사람이, 나머지는 94일째에야 단식을 중단, 살아났다.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작년 8월 인도 서부 구자라트(Gujarat)의 한 사나이는 물만 홀짝거리면서 400일을 넘김으로써 기네스북의 스코틀랜드 사나이 바비어리의 382일 기록을 깨버렸다.선배 단식 투사들인 YS, DJ, 전두환씨 등이 유독 관심 깊게 지켜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단식이 며칠이나 계속될지 궁금하다. 정국이 180도로 호전돼 단식 투쟁자의 몸도 상하지 않고 정치권 전체도 상하지 않는 단시일의 상징적인 단식 투쟁으로 끝나길 기대한다. /吳東煥(논설위원)

  • 食蟲植物 지면기사

    열대지방에 사는 벌레잡이식물(食蟲植物) 네펜데스는 곤충을 잡는 통의 길이가 60㎝에 이르고, 그 주둥이의 지름이 18㎝나 되는 것이 있다. 큰 곤충뿐 아니라 거미, 달팽이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쥐 같은 작은 짐승이나 제법 큰 새를 잡아먹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크기가 1㎝정도로 식충식물중 세계에서 가장 작다하여 이름 붙여진 피그미 끈끈이주걱이란 것도 있다. 물속에 사는 벌레먹이말이는 뿌리도 없이 통발을 열고 물 속을 둥둥 떠다니다 걸리는대로 물벼룩이나 장구벌레 등을 잡아먹는다. 단 한번의 자극에도 100분의 1초라는 속도로 번개처럼 통발을 닫는다고 한다. 이때 발생하는 전압으로 먹이를 기절시켜버리는데 그 전압이 자그마치 130V라니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속도와 힘이다. 포충엽을 벌리고 있다가 벌레를 잡는 파리지옥풀의 촉각은 한번 건드리면 닫히지 않고 꼭 두번을 연속 건드려야 닫힌다. 이때 닫히는 힘이 얼마나 센지 붙잡힌 파리의 배가 터질 정도란다. 두번 건드려야 닫히는 이유는 낙엽이나 바람 등 무생물이 건드릴 때 속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번과 두번을 통해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구별해내는 것이다. 지각 능력이 없다고 알려진 식물이 얼마나 정교한 생존장치를 가지고 있는지 신기할뿐이다. 식충식물이 먹이를 잡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포충엽을 이용하는게 있는가 하면 다가오는 벌레를 빨아들여 잡아먹는 통발식도 있다. 벌레를 일단 끈끈이에 달라 붙게한뒤 샘털과 잎몸을 움직여 먹이를 포위해서 소화 흡수하는 것도 있고 샘털은 가만히 있고, 잎몸으로 감아서 잡아먹는 것도 있다. 이밖에 함정식 역모식 활연 등도 있다. 식충식물은 전세계적으로 563종에 이른다. 우리나라에도 16종이 산다. 청정지역에서만 자생한다는 이런 희귀식충식물중 하나인 땅귀개의 국내최대군락지가 인천시 중구 무의도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환경오염이 전국최고라는 인천의 오명(汚名)을 조금이라도 덜것같은 생각에 반가움이 절로 느껴진다. /鄭俊晟(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