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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소나기 지면기사
태양과 지구와 달은 별이 아닌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그게 아니다. 태양은 지구와 약 1억5천만㎞ 거리에 있지만 가장 가까운 항성(恒星)이고 지구 또한 태양계의 아홉 행성(行星) 중 하나다. 달 역시 지구와 평균 38만4천400여㎞ 거리지만 지구를 끼고 도는 지구의 위성이다. 인간은 별을 쳐다보며 별에 산다. 그러나 별도 별 나름이다. 태양별은 크기만도 지구의 130만 배나 된다. 그러니까 1억5천만㎞ 밖의 태양별에서 지구별을 바라본다면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달'이라는 별은 더욱 그럴 것이다.천지 창조주가 어딘가로부터 한 움큼씩 움켜다가 홱홱 뿌려놓은 듯한 은모래 밭…은하계엔 적어도 1천억개의 별이 흩어져 있다. 그토록 많은 별의 밝기, 즉 광도(光度), 휘도(輝度)의 등급은 모두 다르다. 육안으로 보이는 별이 1∼6등성(等星), 작은 망원경으로 보이는 별이 7∼11등성, 대형 망원경이라야 보이는 별이 23등성까지다. 가장 밝은 '특등성'은 태양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1999년 8월26일 미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가 우주 공간에 띄워놓은 챈드라 망원경이 촬영한 별 퀘이사(Quasar)는 태양보다도 수천만∼수억배나 밝다. 그런 별을 '특등성'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거꾸로 '마이너스 몇 등성'으로 등급을 매긴다. 백색 별 시리우스(Sirius)가 마이너스 1.5 등성이다.그럼 최하 등성은 어떤 별일까. 아무리 지구별로 부서져 내리는 부스러기 별, 별똥별일지라도 그 이름에 별 성(星)자가 붙는 한 별이고 그게 유성(流星)이다. 그런 별똥별 소나기가 오늘 새벽 쏟아져 우주 쇼를 연출했다. 2001년 11월19일 오전 3시의 시간당 3만개와는 비교가 안되지만 그래도 신비로운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별 신통한 일도 없는 세상사 잠시 까맣게 잊고 '생겨나서 크고 늙고 사라져 가는' 과정이 인생과 닮은 별똥별 소나기에 자지러지게 취해 봄도 어떨까. /오동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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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카우' 목장 지면기사
경제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중 캐시카우(Cash Cow)란 말이 있다. 1970년대 초반 미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경영자문회사 BCG(보스턴컨설팅그룹)가 성장은 완만하지만 시장에서 강세를 유지하는 흑자사업을 지칭해 만들어낸 조어(造語)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에 막대한 현금을 제공해주는 상품이나 사업분야를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개척시대부터 '소'가 네발 달린 달러나 마찬가지였으니 '현금 소' 캐시카우란 작명이 그럴듯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의 현금성이 이에 못지 않으니 빌려쓰는 부담이 적은 단어다.캐시카우 상품의 예로는 '○○파이' '○라면' '○카스' 등을 꼽을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찰을 끊임없이 공급해주는 든든한 화수분이자 효자상품인 것이다. 또 캐시카우 사업의 대표로는 단연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정보통신 사업을 꼽을 수 있다. 삼성전자가 며칠전 발표하기를 올 3분기에만 11조2천600억원의 매출을 올려 2조5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 이중 반도체사업이 1조3천500억원, 정보통신사업은 7천5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고 한다. 특히 반도체사업은 지난 2000년 6조57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영업이익을 안겨주었으니 삼성전자의 '캐시카우'로 부족함이 없다.기업이 성장하려면 동력인 현찰을 만들어내는 캐시카우 사업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캐시카우 기업이 있어야 국부(國富)가 커진다. 그래야 일자리도 생기고 국민들의 삶도 풍족해진다. 그런 점에서 수도권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한국의 '캐시카우 목장'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캐시카우 목장에 암운이 깃들고 있으니 웬말인가. 정부의 각종 규제로 초지가 메마르면서 캐시카우 기업들이 더 나은 목초지를 찾아 외국으로 탈출중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초지를 되살리기는 커녕 여건이 더 나쁜 초지로 캐시카우들을 이주시키려 하니 죽겠다고 내지르는 '소(기업)'들의 비명에 귀가 멍멍할 정도다. 기업들의 아우성이 정녕 소 울음으로만 들리는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윤인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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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지면기사
기적이 있긴 있다. 1990년 3월27일 미 위스콘신 대학병원 신경과 전문의 앤드리스 캐너씨는 “저희 병원에 8년간 식물인간으로 입원 중인 한 교통사고 환자가 지난 12일 깨어났다”고 발표했고 우리 나라에서도 94년 9월 전주예수병원에서 6년만에 소생한 식물인간이 있었다. 6년, 8년이 아니라 장장 19년만에 소생한 기적 중의 기적도 있다. 20세 때인 84년 교통사고를 당한 미 아칸소주의 윌리스라는 청년은 39세인 지난 6월에야 “맘(엄마)”이라는 첫 마디와 함께 그 곳 한 재활센터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또 하나의 기적, 이중(二重)기적은 사고를 당한 날도, 깨어난 날도 서양인들이 가장 꺼리는 '13일 금요일'이었다는 것이다.보다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한 경우도 있다. 식물인간이 아기를 분만하는 예(例)다. 2001년 7월23일 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임신 2주 때 교통사고를 당한 24세의 식물인간 여성이 3.6㎏의 건강한 아기를 낳았고 중국 쓰촨(四川)성 충징(重慶)시에서도 뇌사 상태의 한 36세 여성이 같은 해 9월6일 2.3㎏의 아기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70년 7월 2년간의 식물인간 끝에 사망한 포르투갈의 40년 철권 통치자 살라자르처럼 대부분의 경우는 소생하지 못한다. 머리는 저승에, 몸은 이승에 둔 뇌사(腦死) 상태, 식물성 상태(vegetative state)란 소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데 같은 한자문화권이지만 중국에서는 '식물인(植物人)'은 물론 '식물기업(간판만 걸어 놓은)'이라는 말까지 쓰지만 일본에서는 '식물인간'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10년이 넘은 식물인간 딸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숨지게 했다는 어느 부정(父情)이 너무나 참담하고 가슴이 아프다. '소생 가능성이 없는데도 엄청난 치료비를 들여 생명을 연장해야 하는가' '그래도 생명의 존엄성은 끝까지 지켜져야 한다'는 팽팽한 의견 대립엔 창조주 신이라도 선뜻 해답을 내릴 수 없을지 모른다. /오동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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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배(神舟) 5호 지면기사
“우주여 안녕!” “위대한 조국에 경례! 로맨틱하다. 지구는 정말 아름답다!” “지구는 중국인의 지구, 우주는 중국인의 우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 “내친 김에 달까지 날고 싶다. 허락해 달라” “중국인의 오성홍기(五星紅旗)가 화성까지 뻗칠 날도 멀지 않도다!”… 지난 9일 중국 인터넷 뉴스 사이트 '신랑왕(新浪網·신랑망)'의 앙케트 '당신이 만약 우주 비행사라면 지구를 향한 제 1성(聲)으로 어떤 말을 터뜨리겠는가'에 네티즌이 보낸 답들이다. 가장 많은 '첫 마디'는 '우주여 안녕!'으로 1천250여건이었다. 그런데 정작 중국의 첫 우주인 양리웨이(楊利偉·38)의 제 1성은 “모든 게 정상입니다. 느낌이 좋습니다”로 평범하고도 사무적이었다. 물론 그런 질문 탓이겠지만.그들은 '유인 우주선'을 '재인비선(載人飛船)'이라 한다. '사람이 실려 날아가는 배'라는 뜻이다. '우주인'도 '항천원(航天員)'이고 “항천원 공작(工作)이 정상”이라고 했다. 아무튼 '술 샘(酒泉) 발사 센터'에다 '신(神)의 배(舟)'로 이름도 멋진 첫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으로 13억 중국인의 함성과 흥분은 대단하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위대한 조국적 영예(偉大祖國的榮耀)”라 했고 TV 앵커는 “천년의 꿈이 실현됐다”고 목청을 높였다. '神舟五號載人飛船發射成功(신주 5호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 '中國人今上太空(중국인 지금 우주에)' 등 신문 제목들도 대문짝 같다. 경제 대국에 이은 우주 강국의 호쾌한 비상이 아닐 수 없다.'집 우(宇), 집 주(宙)'의 '우주'란 시공(時空)을 함께 이르는 4차원의 세계다. 즉 '우'는 상하와 사방이고 '주'는 시간을 의미한다. 넓고 넓은(洪) 우주를 거칠(荒) 것 없이 내 집(宇宙)처럼 배를 타고 마치 동화 속처럼 날아간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소련→미국→중국 다음엔 한국 차례였으면 오죽 좋으랴. /오동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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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타포르테 지면기사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 도쿄콜렉션을 세계 5대콜렉션이라고 부른다. 시즌보다 6개월쯤 앞서 패션샘플을 선보이는 이들 콜렉션은 1년에 두차례 열린다. 가을 겨울옷은 3월, 봄 여름옷은 10월에 선보인다. 기간이 겹치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한 일이 없는한 런던을 필두로 밀라노-파리-뉴욕-도쿄의 순으로 열리는게 관례다.콜렉션은 패션쇼와 달리 제한적 의미를 가진다. 패션쇼가 디자이너의 작품 또는 일반 브랜드의 상품을 일반관객에게 소개하는 반면 콜렉션은 바이어와 프레스 등 패션관계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의상박람회인 콜렉션의 양대산맥은 프레타포르테(pret-a-porter)와 오트쿠트르(houte couture)로 구분된다. 프레타포르테는 기성품이라는 뜻이며 복식용어로는 고급기성복을 말한다. 크리스찬디올 구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계적 유명디자이너가 참여하고 있다. 이 말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파리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오트쿠트르란 주문복, 맞춤복의 뜻이다. 장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짓는 옷으로 프레타포르테와는 정반대다. 보석을 사용하는 등 화려함의 극치로 세계부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사실상 판매 보다는 부의 상징으로 평가되는 오트쿠트르와 달리 프레타포르테는 대중적 세계패션시장을 선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파리 프레타포르테는 디자이너와 빅 바이어들이 모이는 세계 최대의 견본 시장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러한 콜렉션의 모든 것을 준비하고 개최하는 곳이 프레타포르테연합회다. 따라서 세계패션산업에 미치는 연합회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이런 프레타포르테연합회가 경기도 성남에 패션산업단지를 조성한다고 나섰다. 패션전문 쇼핑몰을 비롯 컨벤션센터 호텔 물류센터 등 투입되는 총사업비만도 1조4천억원이라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외자유치로 인한 고부가가치 창출은 물론 성남이 세계패션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 기대가 크다. /정준성(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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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지면기사
'비(非)국민투표'란 없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모든 선거는 국민이 한다. 따라서 영어로 레퍼렌덤(referendum)이나 플레비사이트(plebiscite)라 일컫는 '국민투표'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선거 이외의 국정상 중요 결정사항에 대한 투표'에 적합한 어휘가 아쉽다. 아무튼 국민투표는 고대 로마 때부터 민회(民會)에서 시행했지만 전체 국민의 본격적인 국민투표는 1852년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의 경우가 처음이다. 쿠데타를 일으켜 10년 임기의 대통령이 되자 그는 국민투표로 추인받은 뒤 스스로를 나폴레옹 3세라 불렀던 것이다. 그런 프랑스는 1945∼80년대까지 무려 18번이나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69년엔 드골이 국민투표 패배로 하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독일도 1934년 히틀러가 국민투표로 총통에 취임했고 55년 자르(Saar)의 서유럽화(化)도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하지만 국민투표 만능 국가라면 스위스부터 꼽힌다. 92년 9월의 국민투표만 해도 ①알프스산맥에 무개(無蓋)화차가 통과하는 터널 2개를 뚫을 것인가의 여부 ②증권거래 때 물리는 인지세 폐지 여부 ③공공택시 존폐 여부 등 6건이었다. 잦을 땐 월 1회도 불사한다. 같은 시기 아일랜드에서는 “86년 부결된 이혼·낙태 합법화 국민투표를 내년(93년)에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의 개인적인 마약 사용 합법화도 93년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지난달에도 구 소련에서 독립한 라트비아와 발트해 연안국인 에스토니아가 EU 가입에 찬성했는데 반해 스웨덴의 유로화(貨) 도입 국민투표는 부결됐다.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도 없었던 게 아니다. 93년 러시아 국민투표는 4개 결정 사항 중 첫 번째가 '옐친대통령 재신임 여부'였다. 이제 12월중의 노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는 기정사실처럼 돼버렸다. 1천억원의 엄청난 비용도 비용이지만 쓸 데 없는 국력 낭비와 깊어지는 갈등의 골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吳東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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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楓 유감 지면기사
대서양을 건너 북아메리카에 첫발을 디딘 영국 이주민들은 불타는듯한 단풍의 화려함에 취했던 모양이다. 캐나다 사람들이 국기(Maple Leaf Flag) 한가운데 빨간 단풍잎을 새겨넣었을 정도이니 단풍의 미감(美感)이 얼마나 강렬했나 짐작할 수 있다. 캐나다 뿐 아니다. 개척 초기 이민자들이 첫발을 디딘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단풍은 아름답기로도 유명하지만 개척시대의 애환까지 서려있어 의미가 더 하다. 설탕이 귀했던 개척민들은 인디언들에게 단풍나무 수액으로 메이플시럽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 당분을 섭취할 수 있었다. 개척자들에게 단풍은 심신의 피로를 달콤하게 달래준 묘약이었던 것이다.한창 단풍철이다. 단풍 고운줄이야 눈 달린 사람이면 다 공감하는 바이겠고, 그래서 전국의 풍악(楓嶽)이 단풍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이 올해도 어김없다. 권금성을 오르는 케이블카 한번 타는데 5시간이나 기다리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 것도 한번 올라 본 단풍 장관에 눈과 마음이 한없이 달기 때문이리라. 단풍관광은 또 지역에도 이롭다. 태풍 매미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끔찍한 재난을 당한 영동지역은 단풍 특수가 지역경제 회생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도시인들이 자연과 공감하는 중에 분배의 경제원리가 작동하니 누이좋고 매부좋은 셈이다.고약한 것은 대자연이 연출하는 색채의 향연을 어지럽히는 인간의 타락이다. 전국 고속도로를 메운 관광버스 중 상당수가 내년 총선과 공천경쟁을 겨냥한 선심관광 행렬을 이루고 있다니 그렇다. 전국 규모의 선거가 있을 때 마다 유권자를 명산대처로 실어나르는 관광버스 행렬이 이번이라고 예외일까마는 대통령이 부패한 우리정치를 바꾸기 위해 자신의 도덕성을 걸고 재신임 국민투표를 결단한 마당이다. 재신임 정국과 고속도로를 누비는 선심관광 행렬이 빚어내는 대조가 단풍 만큼이나 현란하다. 단풍은 결국 낙엽으로 지고 만다. 표를 사겠다는 정상배들의 말로(末路)도 이와 같기를 소망해 본다. /尹寅壽〈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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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왕 지면기사
네로나 진시황 같은 폭군은 차라리 낫다. 무능한 왕이야말로 구제불능이다. 철딱서니 없고 행실조차 나쁜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와 함께 프랑스혁명으로 처형당한 루이16세만 해도 그렇다. 국정이야 '나 몰라라'했던 그는 폭군의 기질은 전혀 없는 평범한 호인형(好人型)이었다. 춤도 추지 못했고 화려한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취미라면 작은 작업장에서 몸소 열쇠를 만드는 일과 사흘에 하루는 사냥을 하는 것이었고 1789년 7월13일, 14일 등 사냥이 없는 날의 일기(日記)는 뻥 뚫린 공란(空欄)일 뿐이었다.셴양(咸陽)의 진시황 아방궁에 불을 지르는 등 만행과 약탈을 서슴지 않은 초(楚) 패왕 항우(項羽), 힘만 세고 우직한 그는 어떤가. 항우를 가리켜 한생(韓生)이라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초인(楚人) 항우를 일러 원숭이가 관을 썼을 뿐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군” 하고 탄식했다. 한데 그 말이 항우의 귀에 들어가자 항우는 한생을 붙잡아 끓는 기름가마에 처넣어 죽였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얘기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도 항우의 모신(謀臣)인 범증(范增)이 항우를 한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아아, 어리석은 사람! 더불어 대사를 도모할 위인이 못되는구나.”무능하고 형편없는 왕의 추방책이 맹자의 이른바 '방벌(放伐)'이다. 지난 8월21일 DJ도 언급했던 '방벌'이란 악정의 군주를 백성이 쫓아내는 방법이다. 오늘날의 방벌책으로는 탄핵소추라는 법적 장치가 있다. 1992년 9월의 콜로르 브라질 대통령, 2001년 7월의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이 그렇게 쫓겨났다. 취임 7개월의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은 거론 자체만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지난 9일 창간 10주년을 맞은 어느 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노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는 16.5%라고 했다. 엄청난 비용이 드는 국민투표를 무릅쓰고서라도 국민의 지지도와 인기가 무섭게 치솟기만을 바랄 뿐이다. /吳東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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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전령사 지면기사
-가을의 전령사- 매미소리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어느덧 지나고 가을이 깊어간다. 우리들에게 가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은 역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다.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는 유난히 잘 들린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지면서 지표의 온도가 떨어져 풀벌레들의 소리도 그만큼 위로 퍼지지 않기 때문이다. 들에서 암컷을 부르며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사랑의 세레나데'는 역시 가을의 상징이다. 가을의 전령사로 불리는 귀뚜라미는 또, 가난한 사람들의 온도계로도 지칭된다. 화씨(華氏)온도를 쓰는 나라의 사람들이 붙여준 별칭이다. 화씨 온도는 1720년대 독일의 파렌하이트라는 사람이 쓰기 시작한 온도 눈금으로 어는 점인 섭씨 0도가 화씨로는 32도다. 중국 사람들이 파렌하이트를 '화륜해'로 불러 화씨가 됐다.시계도 없고 달력도 구하기 어렵던 옛 시절, 사람들은 달을 쳐다보며 세월을 짐작했듯이 기온도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로 짐작했다는 것이다. 즉, 귀뚜라미가 15초간 몇 번 소리를 내는지 헤아린 뒤 거기에 37을 더하면 화씨 기온이 나온다고 한다. 쌀쌀해질수록 조용해지는 가을 풀벌레들의 속성을 계량화했던 옛 사람들의 지혜다. 또 ‘귀뚜라미가 들녘에서 울면 7월, 마당에서 울면 8월, 마루 밑에서 울면 9월, 방에 들어와 울면 10월이다’란 옛말도 있는데 귀뚜라미는 달력 구실도 했던 모양이다. 고려때와 중국 송나라때는 애완용으로 길렀던 것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기도 하다.'귀뚜리 저 귀뚜리, 가련하다 저 귀뚜리/지는 달 새는 밤에 긴 소리 짧은 소리 절절히 슬픈 소리, 제 혼자 울어예어, 紗窓(사창) 여윈 잠을 살뜰히도 깨우누나/두어라, 제 비록 미물이나 無人洞房에 내 뜻 알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는 작자미상의 작품도 전해온다. 님은 떠나고 홀로 텅빈 방을 지키는 아낙네와 외로움을 함께 했다는 얘기다. 올 연말부터는 축산법시행규칙이 개정, 시행돼 귀뚜라미도 지렁이, 메뚜기와 함께 가축으로 인정된다는 것을 보면 우리와 친근한 벌레임에는 틀림없다./李俊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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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知事 지면기사
'동쪽 숲(Eastwood)'을 뜻하는 이름의 할리우드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1986년 4월8일 동쪽 숲이 아닌 서쪽 숲의 카르멜시 시장 선거에서 72.2%를 득표, 당선됐을 때 언론의 반응은 대단했다. 전세계 130여개 언론매체에서 몰려들어 취재 경쟁을 벌였고 연예 잡지들은 '대성공을 거둔 한 편의 영화'라는 등 대대적인 특집을 실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널드 슈워제네거(56)가 지사로 당선된 그 캘리포니아주에 속한 카르멜시는 샌프란시스코 남쪽 70㎞ 지점의 조그만 관광도시에 불과하다.캘리포니아주는 면적만도 한반도의 두 배에 가까운 41만1천42㎢로 미 50개 주 중 텍사스에 이어 두 번째로 넓고 인구 또한 2천500만명이다. 최상위 국민소득에다 대학만도 170여개다. 그러니까 우리의 노랫가락에도 나오는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이나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와 코리아타운, 리틀 도쿄부터 연상하기 쉬운 캘리포니아주는 웬만한 나라보다도 크고 그런 주의 지사란 웬만한 대통령보다도 낫다. 그러니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스터 유니버스' 슈워제네거, '터미네이터'의 명배우인 그가 지사가 됐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55세에 당선된 레이건에 이어 37년만의 명배우 당선이다.'배우'의 '俳'는 광대 배, '優'도 '광대 우'자다. 일본에선 '야쿠샤(役者)'라고도 하고 중국에선 '얀유안(演員)'이라 한다. 특이한 건 배우의 '優'자다. 우등생이라고 할 때의 '나을 우' '이길 우'자이기도 하지만 '근심(憂)에 차 있는 사람(仁)'의 형상이다. 정치가는 흔히 배우에 비유된다. 대중의 인기를 위해 대본대로, 또는 대본 없이도 끝없는 연기를 해야 하고 평판과 비난, 모함 등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는 점이 그렇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통령' 자리란 결코 만만치 않다.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정치에도 뛰어난 해결사의 우등생이 될 것인지 아니면 근심에 찬 광대로 거쳐갈지는 전적으로 그에게 달렸다.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