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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金상사'의 교훈 지면기사
5·16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1961년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 행정부에 월남 파병을 자청한다. 겨우 미국의 허락을 얻어 후방군사원조 지원단인 비둘기부대를 파병한 때가 65년2월의 일이다. 10월에는 해병 청룡부대와 육군 맹호부대 등 전투병력이 월남땅에 상륙하면서 '따이한의 전설'이 시작된다. 이후에도 전투병력인 백마부대와 군수지원 부대인 십자성부대 등이 추가 파병되면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4만8천명의 병력을 상주시킨다. 8년간의 파병기간 중 총 34만여명의 젊은 따이한들이 정글을 누볐고 이중 5천68명은 혼백으로 흩어졌다. 당시 월남전 파병은 한국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한 국책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경제·군사 분야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꽃 같은 청춘들을 포화의 현장으로 보냈다. 참전 장병들의 목숨값은 경부고속도로, 한국중공업으로 바뀌었고 소위 월남특수로 이어져 종국에는 '한강의 기적'에 초석이 됐다. 그래서였나. 전세계가 반전시위로 몸살을 앓던 시절 우리는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따라 부르면서 10억달러 짜리 전쟁특수를 구가했으니 두고두고 부끄러울 노릇이다. 말썽쟁이 총각에서 전쟁영웅으로 변신해 훈장달고 금의환향한 그 때의 金상사 李하사 朴병장 등 6만여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투병 중이니 더욱 그렇다. 최근 미국이 우리 정부에 사단규모의 전투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추악한 전쟁으로 판정을 받고 있다. 당사국인 미국 조차도 명분을 세우기 힘든 전쟁터에 우리의 젊은 목숨을 빌려줄 이유가 없다. 일각에서는 파병으로 챙길 국가이익을 거론하는 모양이지만 또다시 후세의 망신거리를 남기느니 포기하는 편이 백번 낫다. 월남전이 종전으로 치닫던 지난 70년 미국 상원 대외안보공약소위원회가 월남 참전 한국군을 '피의 보상을 노린 용병'으로 조롱했던 사실을 상기할 때다./尹寅壽〈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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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 지면기사
1959년 9월 849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태풍은 '사라(Sarah)'였다. '사라'란 로마자 문화권의 여자 이름이고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이자 이삭의 어머니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이복(異腹) 누이로 근친결혼도 아닌 남매결혼, 91세에 이삭을 낳고 127세까지 살았다. 91세에 아들을 낳았으니 얼마나 센 여자였던가. 그리고 '사라'의 뜻은 '여왕'이다. 그래서 태풍 '사라'가 그토록 혹독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사라'의 위세조차 뭉개버린 이번 '매미'의 정체는 무엇인가. 마귀나 도깨비, 두억시니(夜叉)도 아닌….매미라면 고대 그리스인도 높이 평가했고 그 유명한 로크리의 류트(lute) 연주 전설이 말해주듯 오직 사랑 연주, 사랑의 노래밖에 모르는 로맨틱한 곤충이며 행복과 영원한 청춘의 상징이다. 그러나 5개의 눈으로 적을 경계할 뿐 아니라 고대 중국인들은 매미의 탈바꿈을 불멸의 부활 그런 상징으로 여겼다. 또한 향년 17년, 가장 오래 사는 곤충이다. 그래서 태풍 매미가 그토록 지독했던 것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북한 제(製)'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앤디(앤드류), 세실, 사라 등 태풍 이름은 미 태풍합동경보센터가 정해왔지만 2000년부터는 14개 회원국의 고유 이름을 번갈아 쓰고 있지 않은가. 매미, 도라지, 기러기, 봉선화, 민들레 등이 북한 것이고 개미, 장미, 수달, 노루 등은 '메이드 인 코리아'다.이번 태풍 매미는 '사라'의 최악을 능가한 사상 최악이다. 기상 관측 이래 최강인 초속 60m의 광풍이 훑고 간 영·호남과 영동지방의 피해는 너무나 엄청나고 참혹하다. '사라' 때와 똑같은 피해 지역이다. 한없이 무서운 대자연의 재해 앞에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 우리 인간의 존재가 답답하기 그지없다. 태풍 방지야 불가능하겠지만 날아가는 지붕과 깨지는 유리창부터 막을 수 있는 내풍(耐風) 건물 설계의 의무화 등 철저한 대비만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오동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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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달 지면기사
옛날 사람들은 달을 토끼로 여겨 토끼 달 '토월(兎月)'이라 했고 토끼 혼령 '토백(兎魄)'이라 했다. 옥토끼 '옥토(玉兎)'라고도 했고 달 그림자를 가리켜 '토경(兎景)'이라고도 했다. 행성, 위성 차원의 달을 까맣게 모르던 옛 사람들은 또 달을 두꺼비로 보았고 달의 혼백을 두꺼비 혼백인 '섬백(蟾魄)'이라 불렀다. 같은 두꺼비라도 때에 따라 금두꺼비(금빛 달), 은두꺼비, 옥두꺼비(素蟾)로 구별했다. 옥두꺼비…그래서 달을 또 '옥백(玉魄)' 또는 옥바퀴 '옥륜(玉輪)'에다 옥갈고리 '옥구(玉鉤)'라고 했던가. 초승달이 곧 옥구다.선녀로도 여겼다. 달을 '선아(仙娥)'라고 하는 것도 '항아(姮娥)' 또는 '상아'라고 하는 것도 선녀, 즉 '달 미녀'를 가리킨다. 상아의 '상'은 '女'변에 '常'이 붙은 글자다. 또 달 속에 월궁이 있어 거기 사는 미인을 '월궁항아'라고 부르고 달을 희디희게 소복한 미인에 비유, '소아(素娥)'라고 일렀다. 춘화추월(春花秋月)이라고 했다. 봄꽃과 가을달이 꽃과 달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보름달 만웨(滿月), 잉웨(盈月)를 왕웨(望月)라고도 한다. '바라보는 달'이다. 우리도 그렇다. 특히 일본 사람들은 보름달 망월(望月)을 한 글자로 '望(모치)'이라고도 한다. '바라보는 달'이란 즉 희망이라는 뜻이다.열두 보름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달이 십오야(十五夜) 밝은 달, 삼오야(三五夜) 밝은 달인 추석 달이다. 그렇다면 그 바라보는 마음도 가장 희망적이어야 하고 그 감상하는 달(賞月) 또한 가슴 속속들이 포근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추석은 너무나 어둡다.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내일의 망월, 추석 달도 못내 아쉽지만 금년 여름 내내 지긋지긋하게 쏟아진 빗줄기에 썩어버린 농작물, 쭉정이 들판에다 생활고에 퀭하니 뚫린 가슴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2003 이런 최악의 추석이 두 번 다시 오지 않기를 빈다./오동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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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제 지면기사
재작년 6월 전국이 불가마속에 든 듯 가뭄이 한창일 때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비만 온다면 기우제를 지내고 싶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피력한 바 있다. 김 전대통령의 기우제는 '비과학적 대통령'이라는 얘기가 나올까봐 불발됐지만,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기청제(祈晴祭)라도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듯 하다. 입추가 지난지 한달이 넘고 내일모레 추석인데도 일기예보는 연일 비소식 일색이다. 벼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논에 불을 지르고 과수농가들은 과일에 단물이 빠져 난리다.사실 벼농사에 의존해온 우리 선조들은 비가 안와도 걱정, 와도 걱정이었다. 벼를 키울 때는 비를 바라는 기우제를, 알곡이 영글어야 할 때는 햇볕을 바라는 기청제를 올려야 했으니 나라가 온통 하늘만 바라보는 형국일 밖에. 현대인에게 생소한 기청제는 입추가 지나도록 장마가 계속되면 어김없이 행해졌다. 태종조 18년간은 한해를 제외하곤 해마다 기우제와 기청제를 지냈을 정도였다. 기우제 때는 남문인 숭례문(崇禮門)을 닫아 양기를 막았고 기청제 때는 북문인 숙청문(肅淸門)을 닫아 음기를 막았다. 고려 태조의 할머니 용녀(龍女)가 팠다는 개성대정(開城大井)은 기청제를 드리는 성소(聖所)로 유명했다. 우리 뿐 아니다. 중국에서는 비가 너무 내리면 우사(雨師·rainmaker)인 용왕(龍王)을 감금하고 협박까지 한다.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쬐는 하루 땡볕에 쌀 12만섬이 증산된다고 한다. 또 백로와 추석 사이의 짱짱한 가을햇살에 단물이 듬뿍 드는 과일로 포도가 있다. 선조들은 이 시기에 편지를 쓸 때면 으레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옵시고'로 시작했는데 올 가을엔 택도 없는 소리가 됐다. 기청제라도 올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은 이유다. 그래도 추석은 온 가족이 모이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힘든 세상살이 잠시 잊고 따스한 정과 희망을 나누어 가질 일이다./윤인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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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시계 지면기사
로마 가톨릭 교황이 다스리는 성스런 왕국이며 시국(市國)인 바티칸에서도 '범죄 시계'는 돌아간다. 돌아가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돌고 돌아 1인당 범죄율이 단연 세계 최고다. “바티칸 범죄율은 이웃 이탈리아보다도 20배 이상 높고 작년에 가장 많이 발생한 범죄는 도둑질과 뇌물, 사기 등”이라는 것이 지난 1월8일 니콜라 피카르디 바티칸 검찰총장이 교황청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이었다. 세계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의 범죄 시계도 느리지 않다. 목사와 교회 간부들이 권총을 차고 교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법안을 1998년 7월15일 통과시켰던 게 켄터키주 의회였다. 물론 헌금(獻金)을 노리는 강도나 도둑 탓이다.죄수 천국이 미국이다. 기타 선진국보다 5∼7배나 많은 약 200만명이 투옥돼 있고 450만명이 가석방 또는 집행유예 상태라는 것이 작년 8월10일자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보도였다. 그래선가 클린턴 정부는 94년 8월 '경찰 10만명 증원, 19가지 공격용 무기 사용 금지, 연방 사형제도 확대, 3번 중죄엔 무기징역'을 골자로 한 '범죄방지법'까지 만들었다. 일본의 형무소(교도소)도 넘쳐난다. 작년 6월말 현재 수용률이 103%였다. 사상 최다인 325만6천건의 형사사건에 역대 최저인 42.7%의 검거율을 보임으로써 그들의 이른바 '치안 신화'가 깨졌다는 시점이 2000년이었다.그러니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느려터질 범죄 시계가 아니다. 작년 1∼7월의 살인이 9시간30분에 1건, 강도와 강간이 각각 1시간30분에 1건이었는데 비해 금년 같은 기간의 살인은 8시간53분에 1건, 강도와 강간은 각각 1시간18분과 1시간22분으로 범죄 시계가 빨라졌다는 게 엊그제 경찰청 통계 발표였다. 교도소, 구치소도 정원 초과다. 8시간53분에 1건 꼴로 살인을 저지르다니 도무지 오금을 펴고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나 홀로' 절해(絶海) 무인도에 주민등록을 옮길 수도 없고…./오동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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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白露) 지면기사
하얀 이슬 산들바람 가을을 보내주자/발 밖의 물과 하늘 청망한 가을일레/앞산에 잎새 지고 매미소리 멀어져/막대 끌고 나와 보니 곳마다 가을일레./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사계시(四季時)중 가을을 노래한 시구(詩句)다. 백로는 24절기의 하나로 들녘의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히고 가을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때이다.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에 들며 음력 8월이고, 올해는 양력으로 9월 8일이다. 이 때가 되면 고추는 더욱 붉은 색을 띠기 시작하며 맑은 날이 연이어지고 기온도 적당해서 오곡백과가 여무는데 더없이 좋은 날씨다. 밤기온도 내려가 제법 쌀쌀하기도 하고 대기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연하게 나타난다.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 입기일(入氣日)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侯)로 나누어 초후(初侯)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侯)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侯)엔 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했다. 백로 전후의 날씨가 농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때쯤의 날씨에 관심이 많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하지만 한낮 초가을의 노염(老炎)은 벼이삭을 영글게 하는데 더없는 보약이고 과일들도 단 맛을 더해간다. 그래서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 내리 쬐는 하루 땡볕에 쌀 12만섬이 증산된다고 한다. 중위도 지방의 농사는 그간 여름 장마에 의해 못자란 벼나 과일들이 늦더위에 알이 충실해지고 과일은 단맛을 더하게 된다. 이 때의 더위로 인해 한가위에는 맛있는 햅쌀과 햇과일을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포도가 제철을 만나 이른바 포도순절(葡萄旬節)인 요즘 지긋지긋한 비때문에 농민들이 시름에 젖어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리고 일조량이 부족해 농사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지우제(止雨祭)?'라도 지내야 할판이다. '백로에 비가 오면 오곡이 겉 여물고 백과에 단물이 빠진다' 하는데 백로(白露)인 모레는 정말 쨍쨍한 햇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이준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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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수확 포기 지면기사
태양의 열렬한 키스를 받은(sunkissed) 맛있는 과일이 선키스트(sunkist)이고 햇빛, 햇볕, 햇살을 잘 받아 무르익은 과일이 선키스트다. 태양의 뜨거운 키스가 없으면 과일뿐 아니라 모든 농작물이 죽는다. 해가 기후를 지배, 4계절을 베풀기 때문이고 해가 농작물의 생장(生長) 조건인 광선과 기온을 조종, 공기를 다스리고 강, 호수, 바닷물 등 지상의 모든 물을 마치 세금 거두듯이 거둬 올렸다가 단비로 내려주는 등 자연환경 조건을 지배,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작물이 죽으면 사람도 못산다. '오 그대는 나의 태양'의 '그대'만이 아니라 해가 없이는 동물도 죽고 해바라기를 비롯해 기타 식물도 숨을 못 쉰다.'햇빛이 적다(sunless)'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sunny, sunniness, sunshiny)와 '선리스'와는 천당과 지옥의 차이다. 이 여름의 햇빛, 햇볕, 햇살이 너무나 그립고 열렬한 태양의 키스가 너무나 아쉽다. 비가 저토록 지겹게 내릴 수 없다. '해의 날'인 선데이(Sunday)고 뭐고 쏟아진다. 그런데 기가 막혀 땅을 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논바닥의 벼를 갈아엎고 불태워버리는 농가가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여름 6∼8월의 절반 이상을 비가 내려 수확을 해봤자 쭉정이뿐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과잉생산→가격 폭락으로 갈아엎는 무 배추밭은 봤어도 5곡 중에서도 으뜸인 벼를 깔아 뭉개버리는 모습은 금시초견(今時初見)이다.1993년의 냉하(冷夏)로 지린(吉林)성을 비롯한 중국의 쌀 수확은 20%, 북한은 10%나 줄었다. 그 해는 한국, 일본 등 동북아뿐 아니라 미국 등 지구 전체의 현상이었다. 금년이 10년만의 냉하다. 광화학(光化學) 스모그가 감소하는 등 냉하의 이점도 없진 않지만 농작물 피해가 너무나 크다. 과일 맛은 또…. 냉하에 견디는 내랭(耐冷)벼, 극랭(克冷)종 개발과 태양의 뜨거운 키스가 없이도 잘 자라고 여무는 내습(耐濕)벼 개발이 시급하다./오동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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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膳物) 지면기사
퇴계(退溪)선생은 남에게 법도에 벗어나는 선물은 한번도 받아본 일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산(陶山)에 왔을 때 김이정이라는 사람이 노새를 선물로 보내온 일이 있었다. 이미 연로했으므로 나들이를 다닐 때에 타고 다니라고 보내준 것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받지 않고 주인에게 돌려보냈다.제자 이덕홍(李德弘)이 물었다. 옛날 공자(孔子)는 친구가 보낸 거마(車馬)를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고 하는데, 내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선생은 대답했다. 공자는 의로운 선물이었기 때문에 사양하지 않고 받은 것이다. 다시물었다. 그러면 받으신 노새는 의로운 선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남의 선물을 받는데는 법도가 있는 법이다.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남에게 거마를 선물로 주는 법은 없다. 부모가 생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도를 몰라 단순한 호의로 나에게 노새를 보냈지만 법도를 알고 있는 내가 어찌 그 노새를 받을 수 있겠느냐. 그런가하면 조선 성종때 청백리(淸白吏) 이약동(李約東)은 제주목사로 있다가 떠날 때 제주도민들이 청백에 감격하여 선물한 갑옷을 뒤늦게 발견하고 받을 수 없다며 바닷속에 던졌다는 기록도 있다. 뒷날 사람들은 그곳을 투갑연(投甲淵)이라 부르며 생사당을 지어 선생의 청빈을 기렸다고 한다. 비록 호의를 보이는 것이지만 이렇듯 받는 사람에게 조차 부담이 되는 것이 선물이다. 특히 투자와 보상을 염두에 두고 계산적으로 하는 선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선물은 무릇 주어서 흐뭇하고 받아도 부담이 없어야 한다. 예전(禮典) 통례편(通禮編)에도 “증답(贈答) 즉 사람에게 물품 등을 증정함에는 정성을 표시하는 데에 그치고, 분수와 도의에 맞도록 할 것이며 예에 맞지 아니한 증물은 받지 말것”이라 적고 있다. 모처럼 확산되고 있는 추석 선물 안주고 안받기 운동이 이처럼 인간의 정이 묻어나는 건전한 선물문화로 정착돼 밝은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정준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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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비엔날레 지면기사
'비엔날레(biennale)'는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이다. 2년마다 열리는 미술 전람회가 비엔날레다. 가장 오랜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해 파리, 도쿄, 상파울루가 유명하다. 이제 또 하나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2년마다'가 엊그제 막이 오른 제2회 이천 여주 광주 도자기 비엔날레다. 동서고금의 명품 도자기 800점을 위시해 2천400여점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그림에만 천재가 아니라 만년(晩年)엔 조각과 도자기에도 손을 댄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에까지 근접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도자기라면 스페인도 어디도 아닌 중국이다. 일본인이 2차대전말까지만 해도 '지나(支那)'라고 부른 영어 표기가 China, 불어 표기는 Chine이었지만 China라는 국명 자체가 도자기(chinaware)를 뜻한다. china shop은 도자기 가게, china clay(중국 찰흙)는 도자기를 만드는 도토(陶土), 즉 고령토(高嶺土)다. 중국의 주요 도자기 산지는 광시(廣西), 광둥(廣東), 푸첸(福建)성이지만 10세기 북송대부터의 도자기 메카인 칭떠전(景德鎭) 부근의 고령산 진흙이 바로 고령토인 까닭이다. S W 부셀(Bushell)의 '중국 미술(Chinese Art)' 등을 참고로 하지 않더라도 그 중국 도자기가 동으로는 조선반도→일본으로, 서로는 북아프리카→유럽으로 진출한 것이다.그런데 사기에다 예술을 입힌 자기(磁器)와 질그릇, 오지그릇의 도기(陶器)는 구별해야 한다. 중국 도기의 역사는 5천년을 헤아리지만 예술적인 감각의 화려한 자기라면 한오채(漢五彩)와 당삼채(唐三彩), 우아한 자기라면 송삼채(宋三彩)부터 꼽힌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중국 고유의 찻잔은 손잡이가 없었다는 점이고 고려청자는 '청자'가 아니라 녹색을 주조로 한 '녹자(綠磁)'라고 불러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튼 '인격을 도야한다'고 할 때의 '도야(陶冶)'가 바로 도자기를 굽는다는 뜻이다. 인격 도야는 도자기 비엔날레에서부터 하는 게 정상이다./吳東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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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주문시대 지면기사
한국인들이 이민을 희망하는 우선순위 국가인 미국, 캐나다, 호주는 17세기 무렵만 해도 영국의 식민지로 기아에 시달린 유럽인들의 생계형 도피안이자 유형수의 땅이었다. 영국이 미국 제임스강 연안에 식민자를 정착시키고 제임스타운으로 명명한 것이 1607년이다.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으로 부터 문명 불모의 상황이 100여년이나 지속된 뒤였다. 그러다 유럽 전제정치의 희생자들인 농노들이 집단 이민의 길을 선택하면서 오늘날 백인국가를 형성했다. 한때 백호주의를 표방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던 호주의 과거는 더욱 초라하다. 1776년 미국에서 독립혁명이 발발하자 그때까지 미국으로 죄수를 처리했던 영국은 대안으로 호주를 새로운 유형식민지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건설된 도시가 현재의 시드니이다. 캐나다 역시 이들 나라와 건국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불모의 땅에 이주하거나 이주당한 사람들의 처지는 예나 지금이 똑같다. 1902년 12월22일 제물포(인천)항을 떠나 1903년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한국 최초의 이민자 100여명도 마찬가지 처지였을 것이다. 어느 누가 물 설고 낯 설고 말도 안통하는 타국살이를 좋아서 결심하겠는가. 조국에서의 하루하루가 암담한 처지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그것이 설령 나이트메어(惡夢)로 끝날지라도 붙잡고 볼수 밖에…. 그것이 요즈음은 '캐나다 드림' '뉴질랜드 드림'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최근 한 홈쇼핑 업체가 캐나다 마니토바주 이민을 알선하는 '이민 상품'을 내걸어 80분만에 175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박을 터트렸다 해서 화제 만발이다. 사지육신 멀쩡한 20~30대들이 불티나게 '이민'을 주문하는 세상이 됐다니 정말 이나라에 꿈과 희망이 고갈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모두 자문해 볼 일이다./尹寅壽〈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