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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지 않는 것 지면기사
유학(儒學)에 깊이 젖어있던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이념적으로 지향했던 관리상은 맑고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淸白吏)였다. 여기에 정부는 의도적으로 청렴한 관리를 선발하여 청백리란 칭호를 부여하고 여러가지 특혜를 주면서 그들을 자극했다. 이 때 살아서 뽑힌 사람을 염근리(廉謹吏)라 했고, 죽어서 뽑힌 사람을 청백리라 불렀다. 그러나 대개 염근리로 선발된 사람이 죽으면 청백리가 되었으므로 두 경우를 가리지 않고 청백리라 통칭하기도 했다.청백리를 뽑는 목적은 무엇보다 재물을 탐하고 사치를 좋아하는 풍습을 막고 건강한 사풍(士風)을 진작시키자는데 있었다. 아울러 다른 이들의 귀감으로 삼아 공직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하자는 뜻에서였다. 따라서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만큼 당시 관리들의 사회가 맑고 깨끗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성 싶다. 꼭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조선시대 청백리나 염근리로 선발된 관리들은 그다지 많지를 못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태조 때부터 숙종 때까지 모두 110명 뿐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다산은 ‘400여년간 벼슬한 사람이 몇천 몇만인데 청백리로 뽑힌 자가 고작 이 정도라는 건 사대부의 수치’라고 한탄했다.며칠 전 대검(大檢)이 ‘2002 범죄분석’을 발간했다. 여기서 대검은 직무유기 직권남용 수뢰 증뢰를 공직에 직결된 4대 범죄로 규정하고 97년 530명, 98년 690명, 99년 1천298명, 2000년 956명, 2001년 1천76명이 이들 범죄혐의로 입건됐다고 집계했다. 이 집계대로라면 공직 4대 범죄만 따져도 4년새 2배 이상 늘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검은 지난 달에도 공직부패의 전형인 알선수재피의자가 현정부 4년간 737명으로 문민정부 같은 기간 491명의 1.5배라고 밝힌바 있다.다산이 한탄했던 시대로 부터 어언 200여년이 지났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 삶의 형태도 따라서 변한다고들 하던데. 아무리 청백리를 뽑는다, 사정(司正)을 강화한다 해도 좀처럼 바뀔줄 모르는 게 아마도 벼슬사회의 생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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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브랜드화 지면기사
경기도내 각 지자체와 농축산물 생산자단체가 추진하는 공동브랜드 개발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최근 경기농협 발표에 따르면 현재 도내에서 개발된 농축산물 공동브랜드는 18개, 개발중인 것은 4개 종류에 이른다. 파주시의 참외, 감자, 돼지고기 등에 사용되는 '통일로 가는 길목', 고양시의 '행주치마'(쌀, 열무, 국화), 화성시의 '숨쉬는 냉각쌀', 평택 안중농협의 '황토수박'과 '황토땅 두릅' 등이 그중 일부다.상품의 브랜드 전략은 원래 자기제품의 품질이 경쟁제품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차별화 전략중 하나다. 브랜드 전략이 성공하려면 브랜드 이름이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기억속에 오래 남아야 한다.80년대 말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결과 농산물 개방계획이 현실화 하면서 일본에는 각종 과일과 야채의 신품종에 마돈나의 눈동자(과일), 웃음(호도), 할머니의 향기(밀감), 스틱 시뇨르(브로콜리), 얌전한 흰살결(우엉), 여봉(女峰·딸기)등과 같은 수백가지의 브랜드가 붙여졌다. 47종에 대해서는 일본 종묘협회가 특별히 이름이 중복되지 않도록 관리했다. 여름의 맛(콩), 서늘한 저녁(콩), 호남아(오이)등 브랜드가 이중에 속했다. 특히 아키다 고마치(제일미인), 쓰가루 오토메(처녀), 히토메 보레(한눈에 반함)같은 브랜드 쌀은 수입쌀보다 가격이 2배 이상 비싼데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 덕분에 일본은 90년대 들어 일찍이 쌀 시장을 개방했는데도 수입쌀의 시장 점유율이 지금도 5%선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농축산물처럼 맛과 품질면에서 외국산에 비해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품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신토불이라는 독점적 독보적 경쟁력을 처음부터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중금속에 오염돼 있는 중국농산물은 가격이외에 품질면에서는 이미 국산하고는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외국산 과일의 맛도 국산에 비해 뒤진다. 농축산물의 브랜드 전략과 함께 디자인과 포장술을 개선한다면 농축산물 시장개방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국내 농업기술의 중심에 있는 경기도의 농산물 공동브랜드 개발붐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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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黨) 지면기사
깡패, 강도, 살인, 공갈, 사기, 밀수, 간첩 일당(一黨)이라고 할 때의 ‘당(黨)’이나 정당의 ‘당’이나 같은 ‘무리(朋, 輩) 당’자다. 끼리끼리 모인 패거리(朋黨), 떼거리, 동아리를 뜻한다. 다만 전자가 일당, 악당, 도당(徒黨), 잔당이라는 말이 따라붙는 사악한 무리(邪黨)로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당(私黨)인데 반해 정당이란 정치라는 공익의 이익을 위한 공당(公黨)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한데 ‘黨’이라는 글자가 심상치 않다. ‘堂’과 ‘黑’이 합쳐진 것으로 뭔가 흑심을 품은 사람들이 모인 집 또는 동아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선가 일찍이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당을 이루지 않는다(君子不黨)’고 했다. 그런 공자가 오늘날의 별의별 정당을 다 본다면 그 안색이 어떻게 바뀔까. 92년 영국에선 포주 출신인 신디아페인이라는 여성이 ‘쾌락당’을 결성, 총선에 출마했고 같은 해 이탈리아에선 포르노 여왕 모아나 포지가 포르노 배우 출신 국회의원인 치치올리나를 주축으로 한 ‘포르노당’을 만들었다. 일본엔 그 2년 뒤 ‘섹스당’이 출현했다. 일본판 치치올리나인 이노우에(井上)가 섹스산업에 대한 억압을 막기 위해 나선 것이다.폴란드의 ‘맥주애호당’은 90년 등장했고 체코의 ‘맥주 드렁커당’도 같은 해 결성됐는가 하면 94년 암살된 러시아의 ‘스포츠맨당’ 당수 크반트리쉬빌리는 마피아 두목이기도 했다. 일본엔 또 세금당, 연금당, UFO당, 태양의 모임, 바람(風)의 모임, ‘인간당’에다 ‘허무당’까지 출몰했다. 가장 무엄한 당은 이슬람 과격단체인 ‘신의 당(헤즈볼라)’일 것이고 가장 신선한 당은 유럽의 ‘녹색당’과 일본의 ‘녹색과 생명의 네트워크’쯤 될 것이다.이 땅에도 이승만의 자유당, 신익희의 민주당, 조봉암의 진보당, 박정희의 공화당 등 숱한 정당이 부침했다. ‘黨’자가 ‘자주(頻) 당’자이기도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고 잦은 이합집산 역시 정당 성격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름도 거창한 ‘새천년민주당’이라는 당명이 10년도 못가서 개명될 전망이다. ‘새천년’이라는 상표권이 아닌 소유권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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勝者에게 필요한 것 지면기사
조나라의 조양자는 책이라는 고을을 공략, 항복시켰다. 그럼에도 양자는 별로 즐거운 표정이 아니었다. 측근들이 물었다. “이처럼 큰 성과를 얻어 모두 기뻐하는데 폐하께서는 왜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양자가 말했다. “아무리 큰 홍수가 나도 사흘이면 강물은 줄어들게 마련이고 회오리바람이나 폭풍도 하루종일 계속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별로 덕을 쌓지도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한 고을을 점령했다. 생각컨대 이 세력은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이처럼 겸허한 양자의 말을 듣고 공자가 말했다. “군주에게 이러한 겸손함이 있다면 조나라는 더욱 번영할 것이다.” 공자의 예언대로 조나라는 후에 진(晋)나라 땅을 셋으로 나눠 그 하나를 차지하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인 한나라가 되었다. 이는 중국 전국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내용의 한토막이다. 승자가 앞 일을 걱정하는 것은 번영의 원인이 되고 기뻐하는 것은 망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도 여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승리를 얻기보다는 승리를 지키는 수성(守城)이 더 어렵다고도 한다. 그래서 현명한 리더는 이점을 알고 승리를 오래 지속시키려 하기 때문에 먼 후일까지 영광을 누린다는 얘기다. 승자의 자만을 경고하는 한 예에 불과하다.전국 13개 지역구에서 치러진 8·8재보선 결과 한나라당이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11곳을 석권하는 압승을 거뒀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국회 재적 272석 가운데 절반(136석)보다 3석이 더 많은 139석이란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의 표현대로 1당 독재가 가능한 의석을 갖게 된 것이다. “모든 일은 민주당과 협의해서 원칙대로 처리하겠다.” “국민들로부터 오만하다는 평판을 듣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반응이지만 모두 귀에 익숙한 말들이다.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 승리가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비리와 민주당의 실정에 의한 반사이익인지 아니면 원내 제1당으로서 할 일을 다해서 얻은 결과인지를 보다 겸허히 성찰해 봐야 한다. 세력이 커지면 언젠가는 쇠퇴해지기 때문에 이를 미리 걱정하는 조양자의 겸손함이 새삼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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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지면기사
알프레드 노벨은 자신이 산업용으로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인류를 살상하는 가공할 무기로 쓰이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속죄하는 뜻에서 자신의 유산 약 920만달러를 희사, 재단을 설립하여 “인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매년 상을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유지를 받들어 만들어진 게 오늘 날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고 최고의 영광을 안겨주는 이른바 노벨상이다.알베르 아인슈타인은 1939년 8월, 당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원자폭탄 개발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사실 이 편지는 유태계 물리학자 시라드가 쓴 것을 아인슈타인이 서명한 것 뿐이라 전해진다. 그야 어떻든 루스벨트는 그때부터 원폭 개발에 본격 착수, 그 첫 결실이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강타한 원폭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그 일을 후회하며 반핵운동에 몸을 바쳤다. 단박에 수십만의 인명을 살상한 가공할 위력에 치를 떨었던 것이다.인류살상 무기라면 오랫동안 개인용 기본화기 노릇을 해온 총을 빼놓을 수 없다. 고대의 활과 창을 대신하는 근현대의 기본 살상무기로 날이 갈수록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그런데 그런 총들 중 개발된지 수십년이 지났어도 명중률 및 살상력 등에서 현대의 어느 첨단 기종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소총(rifle)이 한가지 있다. 1941년 옛 소련에서 개발된 AK47이 그것이다. 이 총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그 성능이 뛰어나 전 세계적으로 크게 선호돼왔다. 지금도 가장 널리 사용돼 현재까지 무려 7천여만정이나 보급된 것으로 추정된다.그런데 60여년 전 이 무서운 화기를 처음 개발했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AK47이 악인들의 손에 들어가 많은 불행을 초래한 게 지금은 안타깝다.” 마치 노벨이나 아인슈타인을 연상케 해준다. 80세 넘은 고령이 되어서야 뒤늦게 후회했다는 게 다소 떨떠름하기도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싶긴 하다. 지금도 한창 살상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을 국가나 개인들에게 조금쯤은 교훈이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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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덩물 지면기사
세상 만사를 다스린다는 '다스릴 치(治)'자는 물을 다스린다는 '치수(治水)'가 본뜻이다. 일체의 다스림 중 그 제1장(章) 제1과(科)가 '치수'라는 것이고 그 제1과 첫 단원(單元)이 바로 붉덩물 다스림이다. '붉덩물'이란 '크게 흐르는 붉은 탁류' 즉 홍수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인류의 역사란 물을 다스리는 치수의 역사, 즉 붉덩물을 다스리는 홍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명은 인간이 물에 지배당하는 곳에서 일어났다. 이집트 문명은 제1왕조 창시자 메네스(Menes)부터가 기원 전 2850년 수도 멤피스 부근에 거대한 수리시설을 해 물에 도전했고 매년 범람하는 나일강에 대처하기 위해 그 이집트인들은 1년이 365일인 달력을 고안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그런 이집트를 가리켜 '나일강의 하사품'이라고 했다. 로마의 수리(水利) 기술도 뛰어나 당시의 11개 수도 중 3개가 아직도 로마시 수도의 일부로 사용할 정도다.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의 우(禹)왕도 그 역사를 치수로 시작했다. 황하의 수재를 막기 위해 3번이나 자기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고 치수에 전념할 정도였다.그러나 그 후 '황하' 하면 범람을 연상할 정도로 해마다 넘쳤고 중국의 비애와 하상(河 )의 상징이 돼버렸다. 1931년 8월의 범람으로 무려 370만명이 죽었고 1887년엔 90만명이 사망했다. 인도의 성스런 강 갠지스 역시 매년 넘쳐나는 붉덩물로 악령의 강이 되고 있다. 금년만 해도 중국에선 지난달의 홍수로 793명이 사망, 1억명이 수해를 입었고 러시아도 6월말 휩쓴 70년만의 홍수로 104명이 죽었다. 네팔에서도 지난달 15일의 산사태로 140명이 숨졌고 숱한 방글라데시인들이 홍수를 피해 지붕이나 나무 위로 피신했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기도 한다.연례행사 같은 이 땅의 수해가 금년에도 휩쓸었다. 그러나 사전에 점검, 대책을 세우면 유비'무환(無患)'은 몰라도 그 절반, 3분의1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선현 가라사대 '정치란 사람과 산과 물을 다스리는 것(政者治人治山治水也)'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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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자세 지면기사
왕정국가였던 조선의 왕들은 흔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것으로 보기 쉽다. 하지만 연산 광해군 등 일부를 제외하곤 전제적 왕권을 행사한 예가 극히 드물었다고 전해진다. 국왕의 독재를 견제하고 정치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거미줄처럼 짜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국정 총괄기구인 의정부와 그 휘하 행정집행기구인 6조가 있어 이들의 합의가 없으면 왕이라도 마음대로 국가정책을 결정하지 못했다. 여기에 왕에 대한 비판을 맡았던 사간원과 관리들의 비행을 규찰하는 사헌부가 통합적으로 운영되어 왕권을 견제했다.특히 실록이 편찬돼 후세의 평가를 받기에 왕권은 더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엔 왕이 죽으면 일정기간의 토론을 거친 뒤 그 왕의 실록을 편찬했다. 그리고 실록에 이용된 자료는 정부 각 기관에서 보고한 문서를 비롯, 승정원 일기와 사관(史官)들이 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쫓아다니며 기록한 사초(史草) 등 실로 다양했다.실록 편찬은 사실의 신빙성을 최대한 보호하는 역사기록 과정이었다. 그래서 설사 왕이라 해도 전왕의 실록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은 법, 성군 중 성군이라던 세종도 선왕의 기록인 ‘태종실록’을 무척 보고싶어 했던 모양이다. 그때 한 신하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실록에 기재된 것은 당대의 사실이며, 당대에 실록을 쓰지 않는 이유도 왜곡시킬 수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물며 전하께서 이를 보고 고치시기라도 한다면 후세의 임금이 또 본받아 행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관들이 두려워서 제대로 기록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쯤되니 세종도 머쓱해져 더는 조르지 못했다고 한다.내년부터 고교생들이 배울 ‘한국 근현대사’ 일부 교과서의 편파기술 시비가 좀처럼 그치질 않고 있다. 전 정부엔 비판적 서술이 많은 반면, 현 정부에 대해선 치적(治績) 일변도로 편향적 기술을 했는데도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경위야 어찌됐든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니다. 당대의 실록 쓰기를 굳이 피했던 선조들의 깊은 뜻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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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 지면기사
1989년 8월 23일 미국의 솔트레이크 시티 교외의 한 작은 마을에서 '그린하우스·글라스노스치'라는 이름의 지구 온난화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당시 소련의 아카데미 회원 사고데예프 박사는 세계를 향해 이처럼 호소했다. “인류는 일찍이 나치스와 싸웠던 것처럼 이제는 공동의 적인 지구 온난화와 싸워야 할 것이다.”에너지 절약기술의 개발, 프레온가스의 점진적인 사용금지, 산림벌채 억제 및 신규 조림 권장, 미소양국의 온실가스 배출억제 솔선수범등 구체적 행동계획을 제시한 것도 이 심포지엄에서 였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은 대기중 이산화탄소 외에 메탄, 아황산질소, 프레온가스 증가로 인한 지구의 온실효과 때문이다. 이중 55%가 이산화탄소, 24%가 프레온가스의 영향때문이라고 한다.온실효과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 농산물 감산으로 인해 식량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바다의 표면수온이 올라가 바닷물자체의 팽창으로 해수면이 높아진다. 여기에 온난화로 인해 남북극의 빙원 빙하가 녹아 내려 뉴욕과 도쿄등은 먼 미래에 물에 잠기는 대 재앙을 맞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의 해양과학자인 다카노(高野健三)박사같은 사람은 목욕물을 휘젓듯이 바닷물을 정기적으로 휘저어 차가운 물을 위로 올려 수온을 낮추면 지구 온난화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해결책을 내놓기도 했다. 지구 표면의 70%인 바다 표면의 수온을 1도만 낮춰도 육지의 기온은 곳에 따라 최고 20도나 내릴수 있다는 것이 그의 깜짝 제안 이유였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어디 가능한 일이겠는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아이디어까지 동원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최근 영국 기상청은 올해 지구의 평균기온이 전반기 평균 15.57도보다 훨씬 높아져 150년 기온측량역사상 가장 더운 한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간의 오염 행위로 온난화가 가속화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 여름 유난히 덥게 느껴지는 것이 이런 영향 아닌지 모르겠다. 온실가스의 배출을 억제하지는 못할망정 이산화탄소를 수용할 수 있는 산림의 파괴 행위라도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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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父子子 지면기사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 아버지는 아버지,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는 것은 '논어'의 공자님 말씀이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들과 지도자들의 아들만 보더라도 그렇지 못한(子不子) 예가 흔하다.미국의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는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아들답게 대통령이 됐고 지금의 부시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93년 아들답게 칠레 대통령이 된 에두아르도 프레이의 아버지 에두아르도 몬탈바도 64∼70년 대통령을 지냈다. 그러나 링컨 미국 대통령의 아들 로버트는 그렇지 못했다. 어머니의 낭비벽이 심하자 금치산자(禁治産者)로 몰려 했고 대통령 출마를 권고받았을 때도 '대통령의 방은 금빛 감옥'이라며 거절했다. 인도의 성자 간디의 아들 할리라르는 아버지를 팔아 돈을 모으고 장사에 실패하는가 하면 돈을 훔치고 알코올 중독과 여색에 빠져 요양소를 전전했다. 그러다가 술에 만취, 간디의 장례식에 나타난 그를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또 2차 대전의 포병장교 야콥이 권총자살 미수에 그치자 아버지 스탈린은 “그것 하나 똑바로 쏘지 못하느냐”고 핀잔을 주었고 독일군에 포로로 잡힌 그의 사진을 모스크바 상공에 뿌렸지만 스탈린은 “그런 자식 둔 바 없다”고 했다. 결국 그는 포로수용소 전기 철조망에 투신, 자살에 '성공'하고 말았다.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전 대통령의 아들 토미는 살인죄 등 8가지 죄목으로 구속, 지난 달 26일 금고(禁錮) 15년을 선고받았고 공교롭게도 같은 날 크레티앵 캐나다 총리의 30대 아들(입양아) 미셸은 술에 취해 소녀를 성폭행, 체포됐다.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志晩)씨는 어떤가. 아버지의 반만 닮았어도 벌써 2선, 3선 국회의원이 됐을 것이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든 어쨌든 누나를 앞질러 이미 대권 청사진을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도 노벨상으로 튜닝된 아버지의 심금을 구슬피 탄주(彈奏)하는가 싶더니 이회창씨 아들들의 5년 전 병역 문제가 또다시 불거져 나왔다. 대통령 재수생인 아버지의 발목이 또 한 번 잡히지 않을까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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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보 백보 지면기사
천하를 주유하던 맹자가 어느날 위나라의 혜왕을 알현했다. 혜왕이 물었다. “선생께서 원로에 여기까지 오신걸 보니 이 나라에 어떤 이익이 될만한 일을 가지고 오셨겠죠. 나는 국정에 대해 이웃 나라보다 몇 배 더 노력했는데도 별로 성과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에 맹자가 답했다. “폐하가 싸우기를 좋아하니 전쟁에 비유해서 말하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갑옷과 투구를 버리고 도망친 병사가 있었답니다. 50걸음을 도망친 자가 100걸음을 도망친 자에게 비겁하다고 욕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러자 혜왕은 “그건 이상하군요. 도망친 것은 둘 다 똑같은데…”하며 중얼거렸다. 이것이 맹자(孟子)에 나오는 '오십보 백보'라는 속담의 고사다.맹자는 이어 이같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장의 이익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 지켜야할 기본적인 도리, 즉 인의(人義)입니다. 폐하께서는 백성이 굶는 것에 대해 구제할 생각은 않고 흉년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는 사람을 죽여놓고 내 탓이 아니라 칼이 그랬다고 우기는 것과 같습니다. 남의 탓만 하는 태도를 버릴 때 나라가 잘 되고 백성들도 나라를 믿고 사랑하게 됩니다.”장상 국무총리서리의 인준을 부결시킨 여야당이 서로 우리 잘못은 없다며 '네 탓'공방만 계속하고 있다. 정말 볼썽사납기 그지 없다. 부결과정이나 그 이유에 잘못이 없다면 왜 당당한 태도를 보이지 못할까.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내분 탓으로,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위장 자유투표 탓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선을 앞두고 여성계 반발과 장 전 국무총리서리의 도덕적 흠이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도덕성 논란에 역풍으로 작용할 것을 걱정하고 있는 듯 하다. 민주당도 당내 불협화음 노출이 선거를 앞두고 결코 도움이 안돼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국회의원들도 모두 뒤가 구린데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자기들이 한 일에 대해 당당하지 못하고 남의 탓만 하는 정치인들이 감히 누구를 검증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모두가 인의를 모르는 오십보 백보의 병사들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