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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다운 구휼(救恤) 지면기사

    ‘공짜라면 양잿물도 받아 마신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거저 얻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뜻이다. 하기야 아무 조건없이 값도 치르지 않고 힘 안들이고 쉽게 얻을 수 있다는데 굳이 마다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덕(智德)을 쌓아 세인의 모범이 된다는 성인군자들이야 무어라 하든, 어쩌면 이런 마음이 우리네 장삼이사(張三李四:보통사람)들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세상 이치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먹을 것이 없어 아사 직전에 있는 국민이 무려 1천만명이 넘는데도 식량원조를 한사코 거부하는 국가들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잠비아 짐바브웨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들이다. 그리고 굳이 싫다는데도 거의 강압적으로 윽박지르며 원조를 고집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역시 가장 부자나라답고 또 인정이 철철 넘치는 나라처럼 보이기도 한다.참 별일도 다 있다 싶은데, 그럴만한 속사정이 있기는 있었다. 원조하겠다는 식량이 다름아닌 유전자 조작(GM) 옥수수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측은 “GM식품이 안전하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고 뻗댄다. 이에 미국은 “아직까진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먹어도 된다”는 주장이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식의 다툼같다. 게다가 미국은 또 “아사 직전에 있는 1천280만명을 죽이겠다는 것이냐”고 윽박지르기도 한다.얼핏 넘치는 미국의 인정을 너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 아프리카측이 야속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측은 원조식량의 유해성 여부도 문제지만 이로 인한 GM농작물의 자국 농작물 잠식을 더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미국이 이 기회를 이용, 자국에서 소비되지 않는 GM옥수수를 수출해 시장확대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이래서 무슨 일이든 속단은 금물인 모양이다.그나 저나 아사 직전에 있는 1천만이 넘는 목숨들은 도대체 어찌해야 하나. 미국이든 아프리카 국가들이든 참다운 구휼(救恤)정신이 열쇠라고들도 하던데….

  • 마시는 물 지면기사

    '물은 우주의 원질(原質)'이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의 말처럼 모든 생명체는 물에서 생겨난다. 화성 등 외계의 생명체 존재 여부도 물의 유무에 달려있다. 눈물 외에는 그 색깔이 빨갛고 노랗고 희뿌옇고…그렇게 다를 뿐 인체의 70% 이상도 물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도 삶의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飯蔬食 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는 공자의 안빈낙도(安貧樂道)와는 관계없이 인간은 하루도 물을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체중)당 1일 필요 수분 35㎖(어린이 40∼80㎖) 없이 빵만 먹으면 7일을 버틸 수 없고 물만 마시면 60∼70일이 한계라고 한다. 다만 특수 체질은 있다. '인도 서부 구자라트(Gujarat)주의 한 남성(64)은 물과 햇빛만으로 411일을 버텼다'는 게 지난 8월28일자 '타임스 오브 인디아'지의 보도였다.갈증에도 마실 물이 없을 때 인간은 '사막의 배'로 불리는 동물, 물 없이도 8일을 견딘다는 낙타를 부러워한다. 그래선가 3류 소설이나 기행문엔 낙타의 육봉(肉峰)을 갈라 물을 들이켰다는 엉터리 대목이 나온다. 등 껍데기 안쪽에 0.5ℓ의 물주머니를 갖고 있는 거북과는 달리 낙타의 혹은 물주머니가 아니라 지방질 덩어리다. 단지 수분 배설을 최소로 억제하는 특수 신장 기능을 가졌을 뿐이다. 한데 육봉이 없는 라마(llama)라는 낙타(약대)는 어떻게 수분을 섭취할까 궁금하다. 그런가 하면 주머니쥐나 캥거루쥐처럼 먹이 속의 수분 외엔 따로 물을 먹지 않는 동물도 있다.그러나 인간은 수시로 마셔야 한다. 태풍 피해로 며칠째 고도(孤島)처럼 갇혀 세숫물은커녕 마실 물도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산하가 온통 물(홍수)로 넘쳐나는데도 마실 물이 없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인가. 파키스탄의 훈자(Hunza)나 코카서스(카프카스)의 압하스(Abkhaz) 등 세계적인 장수촌의 장수 요인이라는 청정수나 육각형분자 물이 아니라도 좋다. 신의(神醫) 허준이 분류한 수십 가지 맑은 물 중 최고의 물보다는 우선 수돗물이 급하다.

  • 길 (路) 지면기사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길(La strada)'은 지능이 모자라지만 그만큼 순수한 영혼을 지닌 젤소미나와 야수적 본능에 충실한 차력사 잠파노가 걸었던 삶의 여로(旅路)를 단아한 흑백화면에 담아낸 영화사의 고전이다. 이렇듯 '길(路)'이 '인생'이나 '삶'으로 치환되면 철학, 종교, 예술 등 모든 인문분야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된다. 또 인류의 역사가 어차피 인간들이 걸어온 길을 의미한다는데 생각이 미치면 '길'이라는 단어가 빚어내는 사유(思惟)의 광대함에 저절로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실크로드(Silk Road)'를 단순히 '비단길'로 이해하면 곤란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토펜은 중국과 서양을 연결했던 육·해상의 모든 교역로를 통칭해 실크로드로 명명했다. 그러나 실크로드는 통상로보다는 동서양의 문화소통로로서 인류사적 의미가 더욱 크다. 중국보다 비단을 먼저 접한 로마인들은 비단을 '세리카(serica)'로 불렀는데 학계에서는 비단을 지칭하는 중국말 '시(絲)'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중국을 세계의 끝에 있는 신비한 세르(몽골말로 비단)인의 나라로 지칭하며 “세르인은 200~300년까지 산다”고 생각했다. 중국 또한 로마를 대진국(大秦國)이라 칭하며 '후한서'에 “그나라 사람들은 모두 키가 크고 윤곽이 뚜렷한데 중국사람과 비슷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동서문명의 양축이면서도 서로 신비한 대상이었던 로마와 중국을 연결시킨 최초의 '엔터 키(Enter key)'가 바로 비단이었던 셈이다.최근 국내에서는 이 실크로드가 '철의 실크로드'로 다시 환생해 한창 각광받고 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된 한반도종단철도(Trans Korea Railway·약칭 TKR)가 가져올 미래의 경제번영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최근 남북간에 경의선, 경원선 복원이 구체화된 덕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개통을 서둘러야 할 것은 경제적으로 '한국'을 관통하는 TKR보다는,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한국인'을 관통하는 평화로,

  • 아폴로 눈병 지면기사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아폴로 눈병이 드디어 도내에도 상륙, 수원 안양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부 학교에 대해서는 휴교령까지 검토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아폴로 눈병은 눈곱이 끼면서 심한 통증과 함께 충혈현상이 며칠 동안 계속되는 증세가 나타나는 출혈성 결막염이다. 20세기 인류 최대의 탐험이라는 아폴로 11호 우주선이 달표면에 착륙한 1969년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우주선이 달에서 바이러스를 갖고 오지 않았나 의심해서 붙여진 매스컴적 용어다.이 때문에 전문의들도 증세가 아주 비슷한 유행성 각 결막염과 급성출혈성 결막염 가운데 어느 것이 아폴로 눈병인지 혼동하는 일이 많다. 공통점은 둘 다 전염성이 강하고 공기전염이 아닌 손 타월 등에 의한 접촉전염이라는 점이다. 다른 점은 아폴로 눈병인 급성출혈성 결막염은 충혈이 있다는 현상 정도라고 전문의들은 구분한다.한의학에서도 요즘은 때때로 이처럼 어려운 전문용어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보통 두루뭉술하게 눈병이라 칭했다. 다만 전염성이 있는지 없는지만 구별했을 정도라고 한다. 옛날에는 이러한 전염성 눈병을 천행적안(天行赤眼)이라 했다. 말하자면 하늘이 내린 빨간 눈이라는 뜻인데 이걸로 보아 충혈현상이 있는 요즘의 아폴로 눈병을 이같이 표현한 것 아닌가 싶다. 왜 하늘이 유행시켰는지는 전염의 원인을 몰라 하늘에 핑계를 댄 것으로 추측된다는 전문가들의 말이다.이러한 아폴로 눈병은 지금까지는 7∼8월 한 여름에 주로 유행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여름의 끝자락인 8월 말부터 발생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장마와 무더위도 7월에서 8월로 이동한데다 태풍마저 계절을 뛰어 넘은 기상이변의 여파다. 더욱이 태풍 루사의 영향으로 전국의 수해지에서는 각종 수인성 전염병이 번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아폴로 눈병은 치료를 한다 해도 일주일 이상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고 하니 손을 깨끗이 하는 등 예방을 철저히 하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수해와 태풍의 피해극복도 힘겨운 판에 제발 전염성 질병의 위험이라도 없어야 할텐데….〈成定洪 (논설위원)

  • 태풍 루사 지면기사

    장자(莊子)는 태풍을 가리켜 대지가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뿜는 것이라고 했다. 고대 중국의 신화는 또 '대풍(大風)'이라는 거대한 봉황새(大鳳)가 날 때마다 태풍이 분다고 한다.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둔갑을 한 새, 한 번 날갯짓에 9만리를 난다는 대붕(大鵬)과 같은 새였던 모양이다. 옛날에는 '風'과 '鳳'이 같은 글자로 쓰였고 발음도 같았다. 따라서 '大風=大鳳'이다. 그런데 그 신화처럼 거대한 화살로 새의 가슴을 꿰뚫어 떨어뜨리는 그런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죽일 수는 아직 없다. 그러나 기상 조작으로 태풍의 강도를 다소 낮추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로 69년 8월 미국 기상청은 시속 182㎞의 허리케인을 5시간 뒤에 126㎞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또 발생 초기의 회오리 상태인 태풍 상공에 드라이아이스나 요오드화은을 뿌려 비를 내리게 함으로써 강도를 줄일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1970년 11월13일 방글라데시는 해일을 동반한 태풍에 무려 30만명의 목숨을 빼앗겼고 1876년 10월과 1882년 6월엔 각각 21만5천명과 10만명의 인도인이 사망했다. 1900년 9월 미국 텍사스주와 1928년 9월 플로리다주 태풍도 6천명과 4천명의 목숨을 앗아갔다.우리나라에 오는 태풍의 발생 길목인 필리핀과 대만 등도 상습 피해 국가다. 작년 7월과 11월만 해도 필리핀은 위투(Yutu)호와 링링(Lingling)호에 121명과 350명이 사망했고 대만도 작년 7월 북한 이름 도라지호에 200여명이 희생됐다. 이번 말레이시아제(製) 루사(Rusa)에 당한 우리의 피해도 어마어마하다. 대자연, 태풍과 같은 천재(天災) 앞에 인간은 얼마나 취약하고 나약하고 미약한 미물(微物) 같은 존재인가. 아름드리 가로수와 전주, 철탑 등이 엿가락처럼 꺾이고 슬레이트 지붕과 기왓장이 낙엽처럼 날리는가 하면 육·해·공로가 모두 끊긴 채 통신은 두절되고 수도, 가스, 전기까지 나가버린 암흑 속 패닉(恐慌)과 포비아(공포)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신은 태풍 '루사'편에 어떤 메시지를 전

  • 장기기증 릴레이 지면기사

    니콜라스 효과라는 말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60대 중반의 남자가 뒤늦게 얻은 니콜라스라는 7살된 아들 등 가족과 함께 지난 1993년 이탈리아를 여행 중 강도를 만났다. 니콜라스는 불의의 총탄을 맞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니콜라스는 식물인간이 돼 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소년의 부모는 아들의 장기를 기증키로 결심했다. 이러한 결심으로 죽음을 앞둔 이탈리아인 7명이 니콜라스의 장기를 기증받아 새로운 생명을 찾았다.자신의 목숨을 빼앗은 나라의 사람들에 대한 이러한 어린 소년의 장기기증은 이탈리아 국민모두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소년의 뜻을 잇기 위해 장기기증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니콜라스 효과는 이처럼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같은 행동에 스스로 동참하도록 하는 연쇄효과를 뜻하는 말이 됐다. 아버지 니콜라스 그린은 아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장기기증을 받아 새 생명을 찾은 7명의 이탈리아인들의 그후 소식을 'The Nicholas Effect'라는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은 하나의 섬이다. 섬은 차갑고 험악한 바다에 둘러싸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란 섬은 따뜻한 정이 넘치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적고 있다.경기도 용인 '사랑하는 교회'의 고성원목사가 신장기증을 하는 것을 계기로 29일부터 14명이 장기기증 릴레이를 펼친다고 한다. 고 목사가 서모씨에게 신장을 기증해서 수술을 받으면 서씨의 가족이 다른 환자에게 다시 신장을 떼주는 방식으로 수술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환자에게 장기를 기증해서 새생명을 찾게 해준 사람의 어머니들이 오는 9월10일 장기주간을 맞아 '장기기증자 어머니 클럽'(MDC)을 결성할 예정이다. 장기기증후의 보람과 긍지를 서로 나누고 새 생명을 살리기 위한 장기기증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함이다. 장기기증릴레이, MDC결성이 우리나라에도 니콜라스 효과로 승화됐으면 한다.'보람있게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자리를 가져오듯이 보람있는 일을 한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말이 생각난다.

  • 최고 또 최고 지면기사

    뉴욕에선 웬만큼 절친한 사이라도 “담배 한 개비만 빌립시다”했다간 상당한 실례가 될 수 있다. 담배 한 갑에 자그마치 7.5달러(약 9천원)나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주점에선 9달러 이상에 팔리고 있다고도 한다. 건강에 해로운 흡연을 막기 위해 담배세를 엄청나게 올려논 결과다.지금 세계 각국은 다투어 담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흡연금지는 기본이고, 아예 담배세를 대폭 올리는 나라들이 많다. 어린이들마저 서슴없이 담배를 피워대 담배천국이라 불리던 베트남도 몇년 전부터는 담배 광고와 수입을 금지시켰을 뿐 아니라 새 공장을 짓지 못하게 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미국과 같은 경우는 담배를 마약 수준의 건강 유해물로 규정, 흡연행위를 엄격하리만큼 가혹하게 규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들에 대해선 자기네 담배를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며 갖은 압력을 가하는 아이러니를 빚기도 하지만.이처럼 전 세계가 금연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면 좀처럼 흡연인구가 줄지를 않고 있다. 줄기는커녕 아시아 국가들에선 청소년 및 여성들의 ‘흡연 전염병’까지 급속히 번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한국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지난 연초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의 페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잠시 금연열풍이 부는가 싶더니, ‘언제 그랬나’싶게 역시 반짝 바람에 그치고 말았다. 지금 우리나라 남자 성인의 흡연율은 무려 68%로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한다.최고는 또 있다. 외국산 담배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지난 달 26%에 근접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7월 중 외국산 담배 판매량이 무려 20억8천700만 개비로 전월 대비 5억 개비에 가까운 급증세를 보인 것이다. 흡연인구 4명 중 1명은 외국산 담배만 피운 셈이 된다. 워낙 외제를 선호해온 국민이라 담배마저 외제만 찾게된 것인지, 아니면 양담배 많이 피우라는 미국의 끈질긴 권유(?)에 드디어 국민들도 화답하기 시작한 것인지…. 그나 저나 피땀흘려 모은 외화 상당액이 한낱 담배연기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게 못내 아쉽다. (박건영 (논설위원)〉

  • 코미디 황제 지면기사

    ‘남자는 허(her)허허 웃고 여자는 히(he)히히, 요리사는 쿡(cook)쿡쿡, 축구선수는 킥(kick)킥킥, 자동차 레이서는 카(car)카카, 범인 잡는 수사관은 후(who)후후 웃는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아무튼 남을 웃기기에 일생을 바치는 위대한 코미디언도 적지 않다. ‘타임’지가 98년 5월 선정한 ‘20세기 문화인 20인’에는 피카소, 제임스 조이스, TS 엘리엇, 마사 그레이엄, 프랑크 시내트라 등과 함께 코미디언 루실 볼(Lucille Ball)도 당당히 끼어 있다.그런데 그들과 함께 20세기를 살아온 많은 사람들은 코미디언 하면 희극왕 찰리 채플린부터 연상할지 모른다. 꽉 끼는 연미복과 헐렁한 멜빵바지, 콧수염, 벗겨져 날아가고 뒹굴 것 같은 낡은 중절모와 신(발), 휘젓는 지팡이, 주저앉을 듯한 거위걸음 등이 전매특허였던 게 그 사람이다. 그의 콧대와 배포는 높고도 두둑했다. 40년간 자기 작품과 자신의 연출이 아니면 출연치 않을 정도로 명코미디언, 명감독에 명작가였다. 83세에 아카데미 특별상을 탔고 영국 황실의 명예 작위, 옥스퍼드대 명예문학박사 학위까지 받는 등 88세까지 살았다.87년 5월11일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프 공군기지에서 열린 원로 코미디언 특별 TV공연에 84회 생일로 출연해 레이건 대통령의 축하와 격찬을 받은 보브 호프는 어떤가. 나란히 섰던 그 때 그는 오히려 레이건보다도 더 위압적이었다. 레드 스켈튼, 조지 번즈, 잭 베니, 패니 브라이스 등은 어떻고 88년 9월 공연을 위해 내한했던 프랑스 코미디 프랑세스 극단 주연배우 롤랑 베르탱은 어떤가.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던 그 사람, “못생겨 죄송합니다”로 유명한 이 땅의 코미디 황제 이주일(본명 鄭周逸)이 62세에 서둘러 하늘나라로 갔다. 온갖 설움과 배고픔을 딛고 이제 한창 연기가 무르익을 나이에 부랴부랴 천국행 예약을 해 뒀던 까닭은 무엇일까. 채플린과 호프의 90세 100세 ‘현역’이 부럽지도 않았던가. 못다 한 연기를 그곳 천국 무대에서 마저 펼치기 위함인가 “담배 끊어요” 금연 캠페인을 그 나라

  • 기적 지면기사

    ‘돈 나와라 뚝딱’하며 방망이를 두들기니 돈 꾸러미가 쏟아져 나왔고, ‘집 나와라 뚝딱’하니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솟아나왔다. 전래되는 민화 ‘도깨비 방망이’이야기다. ‘흥부전’도 비슷하게 전개된다. 흥부내외가 큰 박을 톱으로 썰어 가르니 그 속에서 천상의 일꾼들이 나왔고, 그 일꾼들은 고래등 같이 큰 기와집을 지어주고 갖가지 재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뒤 사라진다.세상이 부러워하는 변호사와 의사 부부이건만 그들은 가난하기 그지없다. 4년간 그들은 3천300만원밖에 벌지 못했다. 기껏해야 연소득 800만원이 조금 넘는다. 그들 부부가 운영하는 변호사 사무실과 병원이 온종일 파리만 날렸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양심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나 저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이니 마땅히 생활보호자에 포함돼야 할 것 같다.그런데 놀랍게도 도깨비 방망이나 흥부전에서와 같은 기적이 그들 부부에게도 일어난 모양이다. 지난 1999년부터 사들인 재건축 아파트 10채를 포함, 그들 부부는 서울 강남과 수도권 지역의 상가와 주택을 무려 16채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건 그들 부부만이 아니다. 한푼의 소득도 없어 그야말로 남들의 동정으로나 간신히 생계를 이어갔을 듯싶은 한 50대 주부는 아파트를 자그마치 26채나 갖고 있었다. 하도 가난하고 불쌍하다보니 하늘이 도운 것일까, 기적도 이런 기적이 또 없겠다.하지만 그렇게 감탄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그같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내막을 누구든 웬만큼은 짐작해낼 수 있겠기 때문이다. 다만 결코 빈틈이 있을 수 없다는 세무당국이 어떻게 그토록 오랜 기간 청맹과니가 될 수 있었는지 쉽게 납득이 안될 뿐이다. 전문직 종사자나 자영업자 등의 턱없이 낮은 신고소득이 비단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폭넓은 공평 과세를 외쳐온 것도 한 두번이 아니건만….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공염불이었음을 세무당국 스스로 확인해준 셈이 되고 말았다. 국민이 안타까워하는 건 바로 그 점이다. 투기는 그 다음의 문제다.

  • 나눔, 그리고 보은 지면기사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얘기 한 토막. 한 마을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이웃하며 살고 있었다. 부자는 매일 창고에 쌓인 곡식가마를 세는 재미로 살았다. 가난한 사람은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내려와 곡식이 생길 때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즐겁게 살았다. 부자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우리 부자 맞아요? 우리보다 옆집이 더 부자인 것 같아요. 우리는 아무리 곡식이 많아도 남에게 줄 것은 하나도 없는데 옆집은 창고에 곡식이 없는데도 남에게 줄 쌀은 항상 많거든요.” 나눔은 반드시 많이 가졌다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전북 전주시 이전우(81)옹이 매년 30여명의 학생에게 100만원씩 3천여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해온지 20년. 그 수혜자들이 지난 25일 이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꽃다발을 증정하는 사은의 자리를 마련해서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수혜자중에는 판사 변호사 의사 기자등 사회지도층도 많았다고 한다. 한 사람의 나눔이 사회에 얼마만큼 큰 기여를 하는지 보여주는 징표다.지난 16일 전재산 270억원을 불우이웃에 써달라고 내 놓은 강태원(83)옹, 수천억원대의 장학재단을 설립한 이건희 삼성회장, 이종환 삼영화학 회장, 그리고 토목기술발전을 위해 30억원을 학회에 기증한 김형주 삼안코퍼레이션 회장등에 이어 숨겨진 나눔의 정신이 잇따라 밝혀져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전략)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성공한 다음에 나누겠다는 굳센 다짐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 잘 나누어 쓰는 능력입니다. 두텁게 언 흙을 헤치고 나온 저 작은 여린 새싹은 여유가 있어서 떡잎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자기가 바로 살기 위해서, 자기가 바로서기 위해서 그 작고 여린 자기를 처음부터 나누는 것입니다’. 박노해 시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시에서 호소한 나눔의 철학이다. 정치권이 아무리 사생결단으로 막가파식 정쟁을 일삼고 있어도 사회에 희망이 보이는 것은 이러한 나눔의 철학을 실천하는 이들의 아름다움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