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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자(富者)들 지면기사

    몇년 전 미국의 몇몇 심리학자들이 ‘부자(富者)들은 대부분 검약하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부자들이 검약한 것은 두려움, 죄의식, 습관 때문이다. 즉 갑작스런 경제파탄이나 특히 재산이 노출됐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두려워하고, 덜 가진 사람들에게 항상 죄의식을 느낀다. 남다른 자선자업을 많이 하는 것도 다 그런 두려움과 죄의식의 발로에서다. 또 일생동안 검약이 몸에 뱄기 때문에 자신이 부자임을 숨기려고도 한다.’ 그들 분석이 맞다면 대부분 부자들은 분명 마음이 여리고 무척 양심적인 사람들인 것 같다.그래서일까. 부자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부국(富國)이라는 미국의 부자들 중엔 자선자업을 벌인 이들이 꽤 많다. 대표적인 예로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를 들 수 있다. 록펠러는 말년에 재산 대부분을 시카고대학 록펠러연구소, 일반 교육이사회 등에 내놓았다. 카네기 역시 2억5천만달러로 대학 무료도서관, 병원, 교회 등을 짓게 했고, 죽기 전까지 3억5천만달러 이상을 내놓아 사회복지시설 확충에 크게 기여했다. 이들 외에도 1999년 사망 전 재산의 90% 이상인 900만달러를 적십자사 구세군 등에 기부한 고든 엘우드, 1986년 세상을 뜨면서 재산의 3분의 2인 3천100만달러를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들에게 희사한 에머 하우 등 자못 많다.지난해 말 현재 100만달러(약 13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재력가가 전 세계적으로 71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이중 한국인도 5만명 정도라 한다. 수십억 세계 인구에 비하면 몇 안되는 것 같지만, 그들 재산을 금액으로 따진다면 실로 엄청난 액수가 될듯 싶다. 개중엔 수백만 수천만달러에서 수십억 수백억달러를 보유한 이들도 꽤 있을테니까.그런데 그들이 과연 심리학자들 분석대로 남모를 두려움 죄의식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다. 진정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 하루 생활비가 1달러 미만인 극빈자가 3억명에 이른다거나, 북한 주민들이 여전히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 등도 그다지 걱정은 안될듯 싶은데.

  • '코리아'敎 지면기사

    승부의 세계에 '졌지만 잘했다'는 반어(反語)는 없다. '이겼다〓잘했다' '졌다〓못했다'가 어순(語順)이다. 하지만 망친 꼴을 보고도 '그 꼴 참 좋다'고 말하는 등 반어의 월드컵 적용은 다르다. 당초 우승이 목표였던 나라의 패퇴라면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잘했다'는 말은 가당치 않지만 16강이 고소원(固所願)이었던 우리의 4강전 패배에 '졌지만 잘했다'는 칭찬은 썩 제격이기 때문이다.한국식 '파워 축구'의 축구 강국 부상도 부상이지만 우리는 '축구 내셔널리즘(국가주의)'이라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2차대전 때 나치 독일과 파시즘의 이탈리아가 축구 내셔널리즘을 이용했다든지 미국 영화 '어느 멋진 날', 영국 영화 '케미컬 제너레이션' 등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축구만큼 내셔널리즘에 강한 경기도 없다. 69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전쟁까지 벌였고 감정이 안좋은 나라끼리의 경기는 더욱 무서운 내셔널리즘의 독을 품는다.우리도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전국민 100%가 신도로 가입한 '대∼한민국' '코리아교(敎)'라는 지순(至純), 지성(至誠)의 종교를 만들었다. 태극기 문양 또한 얼마나 뜨거운 '코리아교' 심벌인가. '대∼한민국'의 '大'자도 광개토대왕의 고구려에나 어울리는 글자였다. '대백제' '대신라'도 과대였고 한말의 '대한제국'도 어울리지 않았다. '작은 대국(大國)' 따위 이른바 형용모순(形容矛盾)의 대표적인 예 같기 때문이었다. 한데 이번만은 '대∼한민국'의 '大'자가 눈에도 귀에도 거북하지 않았다.무섭다, 경이롭다, 유럽 국가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등 우리는 세계 언론의 과분한 찬사를 받았다. 22일 오후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한 우리 항공기가 'Red devil(붉은 악마)'이라는 착륙 호출부호까지 받았다고 하지 않던가. 붉은 악마와 길거리 응원을 우리 스포츠 문화코드로 정립, 수출길까지 열어놓은 것이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응원 또한 가슴 찡한 울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3, 4위전을 넘어 2006년 독일 대회에 대비할 차례다.

  • 날씬함의 한계 지면기사

    ‘사장님 배’라 하여 아랫배가 불룩 나온 사람들을 몹시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 대다수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비쩍 말라있는 중에 누군가 살이 찌고 배까지 나왔다면 그는 분명 잘먹고 잘사는 부자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남보다 뚱뚱한 몸, 튀어나온 배가 무엇보다 건강과 사회적 성공의 상징처럼 비쳐졌으리라.다소 차원은 다르지만, 폴리네시아인들도 예부터 줄곧 ‘큰 것이 좋다’는 가치관 속에 크고 뚱뚱한 몸매를 자랑해왔다고 한다. 몸집이 커야 힘이 세 어려운 일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긴 과학과 기술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는 무슨 일이든 힘으로 해결해야 했을테니, 크고 뚱뚱한 몸매를 좋아한 것이 비단 폴리네시아인들 만은 아니었으리라 짐작된다.하지만 지금까지도 크고 뚱뚱한 몸매를 부러워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우선 몸집이 비대하면 그만큼 거동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또 의학의 발달과 함께 비만이 고혈압 심장질환 등 성인병을 불러와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는 것을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게 됐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볼륨있는 것이 아름답다’던 전통적인 미적 감각도 ‘날씬한 것이 멋있다’로 바뀌었다. 너도 나도 살 빼기에 여념들이 없어졌다. 덕분에 갖가지 헬스클럽에 살빼는 약·식품 등이 불티가 난다. 심지어 일부러 몇끼씩 굶으면서까지 살과의 전쟁을 치르는 이들도 적지않다.그러다 보니 날씬하다는 것도 도대체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모를 정도가 돼가는 모양이다. 얼마 전 영국 서리대학과 호주 멜버른대학 연구진이 312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사뭇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불과 일곱살 짜리 어린이들도 스스로 너무 살이 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7~12세 어린이 가운데 여자아이의 거의 절반과 남자아이의 3분의 1이 더 날씬해지고 싶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철없는 아이들이 과연 건강이나 미를 제대로 알고 그같은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어린이들이 비단 영국과 호주에만 있지는 않을진대, 끝간데 모르는 다이어트 열풍이 자꾸만 두려워진다.

  • 소비자 권리 지면기사

    1962년 45세의 젊은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은 연방의회에 하나의 특별교서를 보낸다.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할 소비자의 4대 권리에 관한 것이었다. 첫째 상품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둘째 알 권리, 셋째 선택할 권리, 넷째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개입할 권리 등이다. 이러한 소비자 권리는 소비자 보호 운동이 정부차원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조치였다. 이는 곧바로 입법화돼 각종 법원의 판례를 통해 미국인들의 생활속에 자리 잡았다. 미국의 민간 소비자 운동의 선구자인 랄프 네이더가 '어떤 속도로의 위험'이란 책을 저술, GM의 결함차를 고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소비자 운동을 펴기 시작한 것 보다 무려 3년이나 앞선다.그후 소비자 운동은 봇물을 이루어 1975년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가 소비자의 5대권리를, 1980년에는 국제 소비자연맹(IOCU)이 8대권리를 선언한다. 케네디가 주창한 4대권리에 △기본적 욕구가 채워질 수 있는 권리 △피해 구제를 받을 권리 △소비자 교육을 받을 권리 △건강한 환경에서 생활하며 일할 수 있는 권리등 네가지가 추가됐다.이 가운데서도 알 권리와 구제받을 권리는 모든 소비자 권리중 가장 우선 순위에 있다. 상품이나 기업에 관한 정보를 알아야 소비자의 선택의 폭이 넓고 피해를 입을 경우 구제를 받아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 권리는 '정보 공개법', 구제받을 권리는 소위 'PL(Product Liability)법'이라고 하는 제조물 책임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월드컵 축구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서도 오는 7월 이러한 PL법 시행을 앞두고 각 기업이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고 한다. 제조물 책임이란 상품의 안전성이 결여돼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제조자가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고 손해 배상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유럽연합(EU)은 이미 1980년부터, 필리핀 호주 중국도 1992년, 일본은 1995년부터 시행중이다. 우리나라는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다. 이제나마 '소비자는 봉'이라는 일부 기업들의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成 定 洪(논설위

  • 4강신화 지면기사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광복절 노래를 두 달 앞당겨 부르고 싶다.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이 땅의 흙을 다시 만져 보고 싶고 허리가 아프도록 바닷물도 춤을 춰 줘야 마땅하다. 그런데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은 어찌하리. 이 기쁨에 앞서 떠나간 ‘벗님'이 너무나 불쌍하고 이 감격을 모른 채 한 달 전, 1년 전 하늘나라로 이민 떠난 ‘어른님'이 너무도 슬프다.단군이래 가장 큰 기쁨이라는 월드컵 4강 신화를 노인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기쁜 일을 보려고 이토록 오래 살았나 보다”고. ‘땡' 4강이 울리는 순간 전 국민의 ‘순간 눈물 농도'가 이보다 더 진할 수는 없고 전 민족의 ‘순간 감격지수'가 이보다 높을 수는 없으리라. 그것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신화(神話)였고 ‘신(神)나는' 신들이나 만들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정말 4강까지 올라갔는가…. 믿어지지 않는 자문(自問)들이 빗발치는 이유 또한 신화 같은 일을 창조했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 언론인들도 이렇게 벅찬 가슴으로 기사를 써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강적, 무적(無敵), 전사(戰士), 공격, 혈투, 승전 등 용어만 보더라도 월드컵은 이제 단순한 공차기 유희(遊戱)만은 아니다. 운동, 경기, 오락, 재미, 농담, 희롱 등 스포츠(sports)라는 말뜻에 ‘전쟁'을 추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32개국이 뒤얽혀 싸우는 심각하고도 잔인한 국가간 전쟁에다 무참한 세계대전이 바로 월드컵이기 때문이다. 국명 브랜드를 내건 그 냉혹한 90분 전쟁엔 그 나라 명예와 자존심이 걸려 있고 체면과 위상이 달려 있다. 우리 국민과 해외 동포가 한결같이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한민족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하지 않던가.우리는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가장 역동적인 대낮의 나라, 가장 떠들썩한 밤의 나라다. 외신들의 찬탄처럼 ‘한국의 꿈'은 아직도 살아 있고 ‘기적의 행진(miracle run)'은 이 6월 끝까지 뻗쳐 있다. 더 소리치고 더 감격할 일만 남아 있다.

  • 무적함대의 패배 지면기사

    1580년대 중반 스페인의 펠리페2세는 사상 최강의 함대를 편성한다. 전함 127척, 수병 8천명, 육군 1만9천명, 대포 2천500문의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대함대였다. 목적은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양분하고 있는 세계 해상 무역권에 대한 영국의 도전을 사전에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이름하여 '축복받은 함대'(Felicisima Armada)였다. 그러나 함대의 위용과 화력에 지레 겁먹은 영국인들은 이를 무적함대(Invincible Armada)라 해 오늘까지 전해 내려온다.1588년 7월 23일 막강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영불해협에 그 위용을 나타냈다. 이에 대항하는 영국의 전력은 배 190척이 전부였으나 반절은 거의 쓸모없는 선박이었고 화력도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전투결과 전혀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8월7일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선박침몰 63척, 익사 전사자 1만8천명인데 비해 영국은 배 1척침몰과 전사자 100여명에 그친 대 승리를 거뒀다. 영국은 무적함대와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그동안 스페인이 갖고 있던 세계 최강국의 위상과 명성을 이후 300여년에 걸쳐 누리는 영광의 시절을 맞는다.스페인의 무적함대 격침은 영국의 장거리 함포의 우세, 스페인의 오만함과 전술상 오판, 폭풍으로 인한 스페인함대의 피해 등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 스페인의 지배에 있었던 네덜란드 함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던들 불가능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14세기에는 프랑스, 15세기 오스트리아, 16세기에는 스페인의 지배에 있었던 네덜란드가 이 전쟁을 계기로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17세기 들어 영국과 함께 해상 무역강국으로 등장한 것은 이 전쟁에서의 전공(戰功) 때문이라는 해석이다.이제 오늘 오후 3시30분, 한국과 무적함대라고 하는 월드컵 축구의 강력한 우승후보 스페인군단과의 4강 진출을 건 한판승부가 치러진다. 태극전사들의 조련사는 410여년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괴멸시키는데 공을 세운 네덜란드인의 후예 거스 히딩크. 이번에도 스페인을 상대로 한국을 도와 승리

  • 화제와 재미 지면기사

    세상엔 전직 대통령들도 많지만 그중 미국의 빌 클린턴처럼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모으는 인물도 꽤 드물성 싶다. 우선 그는 퇴임 직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퇴임 임박해서 그에 대한 국민 지지율이 8년 전 첫 취임 때 보다 오히려 더 높은(직무능력 지지도 68%) 유일한 대통령으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퇴임 때는 수백만달러의 빚을 안고 백악관을 떠나는 바람에 또 한차례 화제의 인물이 됐었다. 돈을 모아 떠나도 시원찮을 판에 빚까지 졌으니 오죽했겠으랴. 물론 그가 진 빚이라는 게 재임시절 갖가지 스캔들에 대한 변호사비용이긴 했지만.그 클린턴이 요즘 또 화제에 오르고 있다. 퇴임 후 그가 지난 한햇동안 강연료로 벌어들인 돈이 자그마치 920만달러(약 112억원)나 된다는 것이다. 물론 퇴임 후 강연으로 돈을 번 전직 대통령으로는 로널드 레이건을 비롯,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친 부시, 지미 카터 등 꽤 있다. 하지만 그들은 기껏해야 서너번이 고작이었다. 이에 비해 클린턴은 미국은 차치하고라도 호주 폴란드 중국 등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무려 60여차례나 강연을 해 거액을 벌어들였다. 그의 강연료는 1회에 7만5천~35만달러 수준으로 일본의 제약회사, 유럽의 유대인 로비단체, 미국의 투자은행,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체 등의 초청을 받았다고 한다. 화제의 인물인 만큼 그의 대중적 인기도 꽤나 대단한 모양이다.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살 만도 하다.사실 화제를 모은 전직 대통령이라면 우리나라에도 클린턴 못지않은 인물들이 없지않다. 백성들에게 배척받아 망명지에서 고국을 그리다 세상을 떠난 이도 있고, 철석같이 믿었던 심복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퇴임 후 역사의 심판을 받아 옥살이를 한 이들도 있다. 화젯거리라면 이보다 더한 게 또 있을까.그런데도 그들이 남긴 화제와 클린턴이 뿌리고 다니는 화제가 주는 느낌은 도저히 같을 수가 없다. 한쪽은 기억하기조차 싫을 만큼 생각할수록 우울해지는 반면, 한쪽은 들을수록 부럽고 유쾌하고 또 재미를 더해 가기에….

  • 위대한 6월 지면기사

    이 6월이 폭발해 5월과 7월로 날아갈 듯이, 또는 동해와 서해로 흩어질 듯이 너무도 위대하다. 월드컵 첫 승전의 6월 4일만 국경일(國慶日)은 아니었다. 16강이 확정된 14일도 국경일이었고 8강까지 오른 18일도 위대한 6월의 국경일이었다. 아니 22일도, 30일도 더 큰 국경일일 것이다. 구슬픈 눈물의 현충일과 6·25의 6월을 온통 기쁨과 감격의 눈물로 적셔버린 종료 2분전과 연장 끝 3분전의 기적 골 신화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전세계 테너와 소프라노가 일제히 기적의 땅 대∼한민국을 향해 베토벤의 '환희의 노래'와 베르디의 오페라 '축배의 노래'를 합창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 환청(幻聽)을 느낀다.'이탈리아(Italia)'란 황소를 뜻하는 'italos'와 나라를 가리키는 'ia'가 합쳐진 말로 즉 '황소의 나라'다. 그 사나운 황소들을 우리 투우사들이 물리쳐 '8강 이탈(離脫)리아'를 만들어버리다니! 그것은 '슬픔 속'에 짐을 싼 스트라이커 '비에리(悲哀裏)'를 비롯한 황소들의 슬픔만이 아니었다.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가 지중해에 잠기는 슬픔이었고 기독교 문명의 본산이자 보고(寶庫)인 이탈리아가 바다 속에 잠기는 어둠이었다. 우리의 어떤 힘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고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가 아닌 '대∼한민국 코리아의 불꽃놀이'로 만발케 했는가. 그것은 30억 아시아인이 기(氣)를 모아 응원해준 덕이었는지도 모른다.위대한 6월 연속 국경일 창시자 히딩크는 아직도 승리에 배고프고 '진행중인 꿈'이라고 했다. 그럼 인터넷 주민등록증의 다정한 이름 '희동구(喜東丘)'의 갈증과 꿈은 어디쯤서 멈출 것인가. 걱정거리도 있다. 첫승과 16강 8강에도 목이 쉬고 어깨뼈가 빠지고 숨지기까지 하는데 4강과 우승까지 가면 어떻게 될 것인가. 대문짝 같은 신문 글자도 그 때가 걱정이다. 일본과 우리가 결승에서 만나 전 세계인을 기절케 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우리는 북한의 66년 잉글랜드 대회 8강을 보도하는데 반해 북한은 우리의 8강에 대해 19일 오전 현재 일언반구도 없다는 사실은 또 얼마

  • 미국과 CIA 지면기사

    1958년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혁명 성공은 미국에게 이만 저만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쿠바의 공산화는 바로 미국의 턱밑에 암덩어리를 달고 있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미국은 1961년 4월 사뭇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즉 미국에 망명한 열렬한 반카스트로 쿠바인들을 지원, 쿠바를 침공키로 한 것이다. 1천400명의 반카스트로 쿠바인들이 미 중앙정보국(CIA)의 훈련을 받고, 그 지도아래 마침내 쿠바의 피그만에 상륙했다. 하지만 싸움 한번 제대로 벌여보지 못하고 대부분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만다. 원래 미국은 이들의 침공으로 쿠바내에서 반혁명운동이 일어나 카스트로 정권이 패망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미국 역사상 가장 쓰라린 패배와 수모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이 사건의 여파는 한차례 망신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일로 일단 오명을 뒤집어 쓰게된 미국과 CIA는 그후로도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으레 그 배후세력으로 지목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1963년 월남의 고딘디엠 대통령이 피살됐을 때도 CIA 개입설이 파다하게 나돌았고, 1970년 캄보디아에 쿠데타가 일어나 론놀정권이 들어섰을 때도 그랬다. 심지어 1979년 한국의 10·26사태도 CIA 작품이란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진위 여부야 확인할 길 없지만, 여하튼 미국으로선 꽤나 난처했을 법하다.그런 미국이 요즘 또 비슷한 파문에 휩싸였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CIA에 치명적인 군사력 등 모든 가능한 수단을 사용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정부를 전복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이 여차하면 후세인 대통령의 살해까지도 허용했다고 한다. 9·11테러 참사까지 겪은 미국이 차마 그랬을까 싶긴 한데, 한편으론 피그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르기도 하고. 그나 저나 만에 하나라도 그게 사실이라면 미국의 반테러 및 테러응징 정책은 과연 어떻게 되는 셈인지 모르겠다. 하긴 남이 저지르면 테러요, 내가 하면 정당방위란 말도 있긴 하지만.

  • 토너먼트 경기 지면기사

    11세기 프랑스에서는 기사(騎士)들간에 마상(馬上)시합이 성행했다. 말을 타고 창이나 칼, 방패를 들고 힘을 겨루는 경기다. 기사들이 두편으로 나뉘어 상대방을 한명이라도 많이 떨어뜨리는 쪽이 승자가 됐다. 승자는 패자쪽으로부터 무기, 투구, 말들을 얼마나 빼앗았는지 계산해서 포로의 몸값을 받았다. 이런 경기는 기사들에게 무예를 닦는 좋은 기회가 됐다. 그러나 이러한 경기가 유행하자 아예 시합을 전전하며 돈벌이를 하는 기사도 생겨났다.경기가 거칠고 난폭해지자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 때문에 15세기 들어서는 게임 형식이 정비되고 기사들이 호화스럽게 무장, 귀부인 앞에서 1대1 승부를 겨루는 것으로 변모했다. 기사들은 여기서 이기는 것을 최고의 명예와 멋으로 알았다. 프랑스 앙리 2세가 상대방의 창에 눈을 찔려 숨진 것도 이 무렵이다. 이러한 마상시합이 형식을 갖춰 승자만이 다른 팀의 승자와 대결,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방법으로 정착해서 유래된 것이 스포츠에서의 토너먼트 방식 경기이다.리그전은 경기에 참가한 개인이나 팀이 적어도 한번은 다른 선수나 팀과 대전토록 돼 있는 경기다. 토너먼트 방식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선수나 팀의 평균적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토너먼트 방식은 단 한판으로 패자는 떨어져 나가고 승자만 살아남는 냉엄한 승부의 세계를 보여준다. 리그전처럼 다음 기회도 없기 때문에 박진감이 넘치고 살아 남으려는 의지와 노력은 처절하다.2002월드컵 축구 16강전이자 한국의 월드컵 첫 토너먼트 전인 한·이탈리아 전이 오늘밤 대전에서 벌어진다.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때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된 골든골 제도도 토너먼트전의 흥미를 더욱 고조시킨다. 강팀들이 연장전에서 소극적으로 임하는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먼저 골을 넣는 팀을 승자로 가리도록 한 골든골 제도는 토너먼트게임과 연장전의 열기를 더욱 달아 오르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역사적인 한·이탈리아간 16강전. 한판 승부를 앞둔 한국 축구대표팀으로부터 승리에 환호하는 장한 기사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