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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커 천국 지면기사

     “개인적으로 인터넷에 더 많은 포르노사이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해 2월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무척이나 당혹케 했던 글이다. 어느 짖꿎은 해커가 백악관 컴퓨터에 침입, 이처럼 민망한 글을 클린턴 이름으로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것도 클린턴이 전 세계 1만여명의 네티즌들과 온라인 회견을 하면서 ‘해킹공격에 대한 보안강화’를 호언장담한 직후였다. 해킹 당했다는 사실이 곧바로 밝혀져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클린턴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까는 새삼 긴 설명이 필요없을듯 싶다. 하지만 이 정도는 차라리 애교로 보아줄만 하다. 지난 해 여름 우리나라 월드컵조직위원회 영문 홈페이지는 온통 나라 망신시키는 글들로 도배질을 했었다. “한국에선 장티푸스 소아마비 파상풍 디프테리아 접종을 고려해야 한다. CIA요원임을 입증하면 월드컵 경기장 입장료 할인혜택도 받을 수 있다.” 마치 나라 망신시키기로 작정이라도 한듯한 어처구니 없는 글들이 홈페이지를 그득 메웠었다. 월드컵조직위가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악의에 찬 해커들의 소행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이런 글들이 언제부터 올려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한다. 답답한 일이었다. 흔히들 우리나라 전산망이야말로 국제 해커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보안감시체계가 하도 허술하다 보니 외국 해커들의 연습장이 되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언제 어떻게 당했는지도 몰라 외국 정부와 전문가들로 부터 신랄한 비판과 조롱까지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을 반증이라도 하듯 올들어 7월 말까지 기업과 대학가 등에서 발생한 해킹 피해가 자그마치 3천건이 넘는다는 소식이다. 이는 지난 해 같은 기간의 999건 보다 3배 이상이나 늘어난 수치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나라 체면이 정말 말이 아니다. 정보통신 분야에선 선진국 수준에 올라 있다고 자처하면서도, 정작 정보 보안엔 도통 관심들이 없었던 것일까. 안이한 탓인지 기술과 능력이 부족해서인지는 몰라도, 이러다 애써 키우는 정보통신 사업이 ‘죽 쑤어 뭐 주는 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赤潮 지면기사

     흔히 쪽(藍)빛 바다니 코발트(群靑色) 하늘색 바다니 한다고 해서 벽해(碧海), 창해(蒼海), 남해(藍海) 등 늘 푸른 바다만 있는 건 아니다. 황하가 흘러들어 늘 누른 바다, 한반도와 중국 대륙 사이의 그 황해(Huang Hai)부터가 누른 바다(黃海)다. Red Sea, 붉은 바다도 있다. 수에즈 운하부터 떠올리게 하는 바다, 아프리카 동북부와 아라비아 반도 사이의 그 내해가 붉은 바다, 홍해(紅海)다. Black Sea, 흑해(黑海)도 있고 White Sea, 백해(白海)도 있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 경계에 있는 내륙해로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 등이 끼고 있는 바다를 검은 바다, 흑해라 하고 러시아 북부 바렌츠해(海) 최대의 만(灣)을 하얀 바다, 백해라 한다. 5월 중순∼10월 초순을 빼고는 늘 허옇게 얼어붙어 있는 바다라고 해서 백해다. 상상의 바다 색깔 또한 다양하다. 해뜨는 동해나 해지는 서해의 그 시뻘겋게 물든 적해(赤海)뿐이 아니다. 중국의 전설에서 해뜨는 동해 속에 있다고 믿는 나무가 부상(扶桑)이라는 뽕나무다. 지난 번 역사 왜곡 교과서를 만든 바로 그 일본 출판사 이름 '扶桑'이고 '내일 아침 뜨는 해를 부상에 매어 두고…'라는 '심청전' 구절의 그 '부상'이다. 그 부상의 동해야 말로 뽕나무 열매인 오딧물에 진하게 물든 자줏빛 바다(紫海)일 것이다. '피바다'는 상상하기도 싫다. 또 꾀꼬리 울고 꽃이 만발한 때의 경치를 앵화해(鶯花海)라 한다면 그런 바다는 붉은 바다도 아닌 '울긋불긋한 바다'일 것이다. 인산인해(人山人海)의 바다 역시 울긋불긋할 것이다. 옥빛 바다도 있다. 기개가 뛰어나고 거룩하며 지모가 깊은 인격을 금산옥해(金山玉海)라 하기 때문이다. 녹색 바다 수해(樹海)도 있고 하늘의 운해(雲海)도 있다. 검은 구름이면 흑해, 흰 구름이면 '백해'가 아니겠는가. 이런 꿈같은 바다 타령으로만 그치기 에는 남해안의 적조(赤潮) 피해가 너무나 심각하다. 바다 오염에 대한 근본대책이 없는 한 허연 배를 하늘로 드러낸 채 둥둥 떠 있는 물고기 수효는 해마다 더해갈지

  • 두꺼운 얼굴 지면기사

     극우 보수 덕에 국내에서 인기가 치솟고 있다는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그는 그런 인기를 타고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까지 참배하는 등 사뭇 득의양양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꽤나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기야 국내 인기야 어떻든 주변국 사이에선 아무리 화해 친선의 제스처를 써도 어느 한 곳 덥석 손을 잡아주는 곳이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처음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에 손을 내밀었었다. 다음 달 뉴욕서 열리는 유엔아동특별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측의 냉담한 반응에 머쓱해진 그는 뉴욕행을 포기하고 동남아시아 국가 순방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10월 20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이전 한국과 중국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며칠 전엔 외무부에 사전준비에 착수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하지만 이 역시 한·중 양국의 시큰둥한 반응에 부딪혀 속앓이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은 ‘역사교과서 왜곡 및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 대한 일본의 성의있는 조치가 없는 한 그의 방한이나 한일 정상회담은 성사되기 어렵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 했다. 중국 역시 ‘일본이 과거 역사문제와 관련해 예전에 약속한 조치를 이행하고, 그 자세를 존중하고 있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이즈미의 악수 제의를 속없이 흐물흐물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한 나라의 총리가 방문이나 정상회담을 요구할 때, 상대국에서 마뜩찮아 하고 심지어 은근한 거절의 뜻까지 내비치는 경우는 국제관례상 극히 드물다. 하지만 상대국들과의 관계훼손 사고들을 거침없이 저질러 놓은 후, 아무런 해명이나 사과도 없이 일방적으로 화해하잔다고 선뜻 응할 나라 또한 거의 없다. 고이즈미가 저능(低能)이 아니라면 이를 결코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선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이 무작정 구걸 외교에만 정신을 쏟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고이즈미란 인물의 얼굴도 무척이나 두꺼운 모양이다.

  • 성매매 명단공개 지면기사

     인류에게 매춘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없을 것 같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초를 쌓은 수메르인의 기록에는 기원전 5천년쯤 신전창부(神殿娼婦)가 있어 매춘을 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왕이 곧 신이었고 왕의 부인은 여사제(女司祭), 신을 옆에서 모시는 사람이 신전창부였다. 신전창부의 역할은 신전에 공납하는 모든 남성과 감사의 표시로 성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매춘의 효시는 이렇지만 원조교제의 원조는 일본이다. 1980년들어 일본에는 다케노코족(竹子族)과 안논족이란게 있었다. 다케노코족은 죽순껍질을 벗기듯 자신의 옷을 하나 둘씩 벗고 대가를 받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안논족은 여성 패션월간지 안안(Anan)이나 논노(Nonno)를 읽고 이 잡지가 보여주는 생활스타일을 본따 행동으로 옮기는 여성들이다. 이들에 이어 등장한 것이 한국에서는 신세대, X세대라고 불리는 신인류세대다. 신인류는 고도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고 자랐고 기성세대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가치관과 생활감각을 지닌 젊은 세대다. 이들 가운데 원조교제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매춘이 생계유지 수단이라면 원조교제는 비툴어진 성의식을 가진 성인 남자들이 분별력없는 미성년자의 사치성, 호기심을 부추겨 빚는 행위란 점이 다르다. 이러한 원조교제가 한국에 폭넓게 감염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조교제는 말 그대로 도와주며 사귄다는 뜻이다. 이 말이 청소년들의 성 매매를 더욱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해서 정부는 청소년 성 매매로 이름을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이러한 궁리까지 했을까. 정부는 더 나아가 원조교제를 비롯한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169명의 명단을 30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해 7월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러한 명단공개가 청소년 성매매의 근원적인 예방책은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나온 각종 대책 가운데 가장 강력한 효과를 기대할수 있는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서 적발과 단속, 고발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가 관건이다.

  • 빨간 요일 지면기사

     고대 로마의 1주일은 8일, 이집트는 10일이었다. 요일 이름에 해와 달과 화, 수, 목, 금, 토 다섯 행성을 갖다 붙인 것도 이집트의 점성술이었다. 그런데 왜 하루 쉬고 6일 일하는 ‘日, 月, 火, 水, 木, 金, 土'의 1주일로 정착했던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6일간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 휴식을 취했다는 구약성서 하나님의 창세기를 믿는 유대(猶太)인의 기독교 문명에서 비롯됐다. 그러므로 1주일에 두 번 쉰다는 것은 신의 천지 창조 정신에 위배된다고 믿는 종교인이 많다. 또 월요일에 심장마비 확률이 높다는 독일의 슈테판 빌리히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라 ‘일, 월'을 휴무로 정한 독일 기업도 기독교 정신에 어긋난다. 어쨌든 반공일(半空日)인 토요일이 온공일(全空日)이 됐고 실질적인 캘린더가 '日, 월, 화, 수, 목, 금, 日'이 돼버린 5일 근무제란 참 좋은 세상이구나 하는 표징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일벌(蜂) 시대' 개발 연대와 경제 발전 연대인 60∼70년대엔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고 근무 시간도 따로 없었다. ‘월, 월, 화, 수, 목, 금, 금'의 연속으로 빨간 요일이란 없었고 밤중도 새벽도 까만 요일의 근무 시간일 뿐이었다. 그런 ‘블랙 캘린더'의 요일에 빨간 숫자가 좌우로 붙다니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다. 더욱 신기한 것은 92년말 어느 일본 기업의 ‘木, 金, 土, 日, 月, 火, 水'로 '土, 日'의 빨간 요일을 중간에 모신 달력이었다. ‘휴일을 중요시하자'는 뜻을 담았다는 것이다. 또 아랍권에서는 금요일이 빨갛고 일요일은 까맣다. 코란의 가르침대로 금요일이 휴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달력은 이제 금요일과 일요일이 빨간 요일이 될 참이다. 주 4일 근무제를 논란중인 독일과 프랑스 등의 빨간 요일은 또 어떻게 배열될 것인가. 그러다간 온통 빨간 숫자 투성이인 ‘레드 캘린더'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유 근무제, 플렉시블 근무제, 재택(在宅) 근무제, 집중 근무 시간제 등 보다 다양하게 발전할 것이다. 요는 까만 요일의 성과만 좋다면야 빨간 요일이 며칠이 됐든 그게 무슨

  • 어떤 눈물 지면기사

     우리 한국인들처럼 눈물이 많은 민족도 드물성 싶다. 이별 사랑을 할 때 눈물이 있고 슬플 때, 기쁠때도 눈물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의 종말을 보면서 울었다는 서양관객은 없어도 이도령과 성춘향의 안타까운 러브스토리에 옛날 우리 관객들은 눈물을 흘렸다. 80년대 까지만해도 영화는 관객의 눈물을 많이 짜낼수록 흥행에 성공했고 TV드라마도 그래야만 시청률이 높았다. 1971년 12월 정부는 급기야 대중예술 제작에 관한 지침을 내리면서 “눈물 한숨등 불안 요소를 배제하라”고 지시한 적도 있으나 어디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눈물은 하루종일 펑펑 울어대도 하루 분비량은 기껏해야 1~1.2ml이고 울고 나면 감정이 가라앉고 눈속의 노폐물이 씻겨 나온다니 조물주의 배려가 신비롭기만 하다. 여성의 눈물은 정신적 카타르시스와 자기 방어용이라는 말도 있다. 오죽하면 소크라테스는 '여자의 눈물을 믿지 말라. 마음대로 되지 않을때 우는 것은 여자의 천성이다'고 했을까. 그런가 하면 얼마전 비리에 연루돼 검찰에 출두한 권력의 핵심부에 있던 어떤 인사는 기자들 앞에서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눈물을 보이며 해명했다. 또 어떤 여성은 국회 청문회에서 성경을 들먹이며 눈물을 흘리고 잘못이 없음을 증언했으나 그 후에 모두가 거짓으로 밝혀졌으니 이는 차라리 악어의 눈물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러나 눈물의 진수는 역시 용의 눈물이다. “비를 내려 주소서. 모든 악업은 내가 지었습니다. 잘못은 이몸에게 물으소서.” 한때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TV드라마 '용의 눈물' 마지막 장면에서 태종은 정권 쟁취시에 수많은 목숨을 빼앗은 잘못을 참회의 눈물로 용서를 빌고 가뭄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하늘도 이에 감응했다. 각설(却說)하고, 최근 평양축전에 참가한 남측 대표단중 어떤 사람들은 묘향산 국제친선회관에 전시된 김일성 전 주석의 밀랍인형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니 도대체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 사람들이 천안의 독립기념관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밀랍인형을 보고서도 과연 그러한 눈물을 흘렸는지…. 그 대답을 듣고

  • 처량한 UN 지면기사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은 전후 국제평화를 위한 새 국제기구 설립을 검토했다. 1920년 설립된 국제연맹(LN:League of Nations)이 전쟁 발발을 막지 못한 데에 실망, 보다 일반적이고 범세계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1941년 8월 14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대서양헌장을 통해 종전 후 새로운 세계평화의 정착을 희망했고, 다음 해 1월 1일 26개국 대표들이 워싱턴에서 만나 연합국선언(Declaration by United Nations)에 서명하게 된다. 루즈벨트에 의해 제안된 국제연합(United Nations)이란 용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한 게 바로 이 선언이다. 그후 1943년 10월 30일 모스크바 외상회의에서 미국 영국 소련 중국 4개국이 일반적 국제기구 설립의 필요성에 합의했고, 1944년 8~10월 덤바턴오크스회의에서 ‘일반적 국제기구 설립에 관한 제안’을 채택, 전문 12장의 국제연합헌장 초안을 마련했다. 1945년 4월 25일엔 50개국 대표가 샌프란시스코에 모여 ‘국제기구에 대한 연합국회의’를 개최했고, 그해 6월 25일 국제연합헌장을 채택, 다음 날 51개국이 서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성사된 국제연합이 그해 10월 24일 공식 출범했다. 국제연합은 반세기여 동안 전쟁억제와 평화유지에 큰 성과를 남기었다. 또한 제3세계 국가들의 정치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개발도상국 경제성장에도 이바지한 바 크다. 이같은 국제연합이 최근 직원들의 봉급도 지불하지 못할만큼 처량한 처지가 됐다. 일부 국가의 기부금 체납 때문이다. 현재 모두 189개 회원국 가운데 86개국이나 기부금을 체납한 상태다. 그 중에서도 미국은 무려 4억6천만달러나 체납, 전체 체납액의 64%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이 일본으로 1억2천만달러다. ‘부자가 더 인색하다’더니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라는 나라들이 체납 1~2위를 차지했다. 더구나 미국 같은 경우는 국제연합 설립 때부터 주도적 역할을 했다던데, 돈에는 체면도 무엇도 없는 모양이다.

  • 수염 지면기사

     요즘 미국의 앨 고어 인기가 연일 상종가를 치는 까닭은 최근 기른 그의 텁수룩한 수염이 수더분한 친근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수염의 원래 의미가 변한 것인가 상한 것인가. 수염 하면 단군 할아버지가 아닌 '단군 아저씨'처럼 보이는 새까만 수염과 그야말로 파뿌리 같은 산신령의 새하얀 수염부터 연상할지 모르지만 사자(死者)를 심판하는 염라대왕이나 옥황상제의 수염 길이는 대 자(5尺) 아니면 댓발(5丈)쯤 될지 모른다. '수염이 대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그 대 자 길이(약 150㎝)의 길고 긴 수염이야 말로 남자의 권위와 권능의 상징이자 제왕, 신성(神聖)의 표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신전 석상(石像)이 수염 그대로의 모습이듯이 자고로 그랬다. 텁석부리의 링컨과 마르크스, 엥겔스는 물론 염소수염과 콧수염의 레닌과 스탈린, 히틀러, 히로히토는 어땠으며 호메이니, 아라파트는 또 어떤가. 이슬람 국가에선 헤밍웨이나 숀 코너리처럼 수염을 기르도록 아예 율법으로 정하고 있다. 아니, 만물의 형체인 '形'자부터가 수염난 얼굴의 상형(象形)이다. 요즘엔 매일 수염을 깔고 잔다. 침대에 들어 있는 용수철이 바로 '용의 수염(龍鬚)처럼 생긴 철사'라는 뜻이 아닌가. 일본에선 '수염의 날(八월八일)'까지 두어 수염 콘테스트를 열고 있다. 수염 중에서도 턱수염을 수(鬚)라 하고 구레나룻을 염(髥)이라 한다. 합쳐서 '수염'이다. 콧수염은 '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엄격히 말하면 코밑 털은 '수염'이 아니다. 아무튼 호랑이 표범 살쾡이 등 고양이과 동물은 물론 염소, 산양, 그리폰(사냥개), 토끼, 고양이, 쥐의 암컷까지도 수염이 있는데 인간 여자에겐 수염이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메기, 뱀장어, 미꾸라지를 비롯, 이름 자체가 '수염고래'도 있고 잠자리, 메뚜기, 매미 등 곤충의 암컷까지도 수염이 있는데 인간 여자에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귀비나 클레오파트라 같은 미인의 얼굴에 수염이 나게 하는 망발을 태초의 조물주가 알아서 막았던 것일까.

  • 자축할 일 지면기사

     1997년 1월 한보를 시작으로 몇몇 대기업들의 연쇄부도가 나고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할 때만 해도 이것이 조만간 밀어닥칠 끔찍한 대환란(大換亂)의 신호탄임을 짐작한 이들은 별로 없다. 그저 전에도 몇차례 경험했던 한때의 가벼운 경기불황쯤으로 여겼을 뿐이다. 그러기에 한보사태 이후 진로 대농에 이어 기아의 부도사태에도 우물 우물 시간 땜질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11월 들어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사태해결의 열쇠가 우리의 손을 떠난 뒤였다. 경상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 외국자본들이 돈을 급작스레 빼나가자 달러는 부족하고 환율은 마구 치솟았다. 게다가 단기외채를 급하게 갚아야할 상황에까지 몰리자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고갈됐다. 마침내 국가경제가 대외지급불능상태에 이르러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요청을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우리는 IMF가 요구하는 일방적인 요구들을 무조건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마디로 경제주권이 상실된 것이다.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IMF는 한국 정부에 초긴축 정책과 개방, 구조조정 등을 요구했다.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각종 긴축정책과 구조조정은 대량실업과 낮은 임금, 높은 물가, 높은 세금으로 서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말았다. 실업자가 100만을 넘어섰고 노숙자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하루 아침에 붕괴되는 가정, 결식아동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업체들이 턱턱 쓰러지고 해체되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헐값에 외국으로 팔려나가는 기업 금융기관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다시 생각하기조차 몸서리쳐지는 끔찍한 고통의 세월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4년, 드디어 우리 정부가 IMF 차입금 잔액을 모두 상환한다고 한다. 바로 내일이면 명실상부한 IMF 졸업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 국민 모두가 함께 자축할만한 일이다. 경제상황이 얼마나 나아졌고 실업자는 얼마나 줄었으며 경제시스템은 어느만큼 단단히 정비됐는가 등은 차치하고라도, 어쨌거나 경제주권은 다시 찾게된 셈이니까.

  • 평양축전 유감 지면기사

     “민간단체들의 시민운동의 가장 큰 전제는 공신력과 도덕성이다”(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그 동안 민간단체들의 시민운동은 국회와 정당의 역할실패로 반사이익을 얻어 성장했다”(김석준 이대 교수). 지난 7월초 경희대 평화복지 대학원에서 열린 한 시민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이처럼 민간단체들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이들에 대해 겸허한 자기 반성과 신뢰성 회복이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어쩌면 이번 평양 8·15 민족 통일 대축전에 참석한 남측 민간 대표단의 행동을 예견이라도 한듯한 경고성 메시지였던 셈이다. 평양 8·15 축전이 지난주 막을 내리고 이에 참석한 남측 참가자들이 오늘 돌아온다. 개막식 첫날 당초 가지 않기로 정부에 각서까지 썼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방문은 그 기념탑이 북한의 통일노선을 상징하는 조형물이었기 때문에 이에 반대했던 정부입장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폐막식 참석, 김일성 생가에서의 방명록 기록 내용등 사사건건 보여준 돌출행동과 이를 둘러싼 남측 방문단 끼리의 반목 분열의 모습은 초청자앞에서 객들끼리 싸우는 웃지 못할 추태만 보였다는 소식이다. 원래 민간단체의 운동은 정부가 파악하지 못했거나 정책으로 반영하지 못한 민의를 대변, 시민운동을 통해서 관철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번 평양에서 보여준 남측 참석자들의 행동은 누구의 뜻이었는지 의문이다. 특히 통일 문제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의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면 몰라도 일부 보수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북 교류를 활발히 추진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정책으로 적극 반영하고 있는 마당에 이러한 민간단체의 어설픈 행동은 본래의 운동 영역을 벗어난 자만이 아닌가 싶다. 방북 대표단이 이러한 일련의 행동에 사과 성명을 내기는 했지만 씁쓰레한 뒷맛은 영 가시지 않는다. 민간단체들은 이제 시민 운동이란 말을 내세우면 민주주의와 사회에 봉헌하며 권력의 횡포와 보수성에 저항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정형화된 사고에서 벗어나 이번 기회를 보다 내실을 기하는 전기로 삼아야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