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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대통령 지면기사

     세계 최초(74년)의 여성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페론(Peron)여사였다. 그녀는 남편 후안 페론장군의 후광(後光)으로 73년 부통령이 됐다가 이듬해 남편 사망으로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권불십년(權不十年)은커녕 2년만에 쿠데타로 피체(被逮), 스페인으로 망명하는 비운을 겪었다. 다음은 교사 출신인 바버라(Barbara)여사가 국회의원과 장관을 거쳐 82년 몰타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잘 알려진 대로 필리핀의 아키노여사가 피살된 남편 아키노의 배광(背光)으로 권좌에 오른 것은 87년이었다. 이어 90년은 '여성 대통령의 해'였다. 불과 25세의 상원의원에다가 변호사 출신인 로빈슨여사가 아일랜드 대통령이 된 것도 그해였고 '중미의 아키노' '민주주의의 부인(夫人)'으로 불린 차모로여사가 남편 차모로의 후광으로 니카라과 대통령으로, 인권판사 출신 트루이요여사가 아이티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도 그해였다. 파나마의 모스코소여사 역시 세 번이나 대통령이 된 남편 아리아스의 영향으로 99년 대권을 잡았고 라트비아의 프라이베르여사도 같은 해 대통령이 됐다. 결혼은 하지 않고 동거만 해 화제를 낳고 있는 할로넨여사가 핀란드 대통령이 된 것은 작년 3월이었다. 더욱 세계인의 주목을 끈 것은 여자 대통령끼리의 대권 릴레이다. 바로 그 아일랜드의 로빈슨이 97년 10월 가수와 간호사 출신인 매컬리스여사에게 권좌를 물려준 일이다. 마카파갈 필리핀 전 대통령의 딸 아로요여사가 아키노에 이어 지난 2월 필리핀의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된데 이어 이번엔 인도네시아의 국부(國父) 수카르노의 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여사가 국가 원수가 됐다. '수카르노푸트리'라는 이름 자체가 '수카르노의 딸'이라는 뜻이듯이 아버지 음덕이 크다. '차모로'가 '참으로 참으로'로 들리고 '아로요'가 '알어요(알아요) 알어요'로 들린다면 메가와티는 mega+watt로 들린다. 100만W(와트)다. 과연 그녀가 '수카르노푸트리'가 아닌 100만W의 파워로 험난한 인도네시아호(號)를 잘 이끌어갈 것인지 궁금하다.

  • 이젠 ‘더 낳자’로 지면기사

    “프랑스에선 아이를 낳으면 국가에서 돈(출산 및 육아수당)을 준다.” 30~40년 전만해도 우리로선 꿈도 못꿀 꽤나 부러운 이야기였다. 하긴 그때 우리 나라에선 출산 및 육아수당을 주기는 커녕 되레 정관·난관수술을 하면 정부에서 수술비를 지원하던 시절이었다. 지지리도 가난하던 때라 아이를 많이 낳으면 그만큼 먹여살릴 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잖다’. 60~70년대 어딜가나 흔히 보이던 산아제한 구호다. 가족계획요원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피임약 등을 주어가며 홍보도 했다. 그래도 대다수 국민들은 들은 체도 안했다. 한 가정에 5~6남매 이상 자녀를 예사로 두었지만, 피임이나 임신중절 등은 엄두도 못냈다. 하늘이 점지해주는 자식을 피하는 건 조상님에 대한 불경일 뿐 아니라, 아무리 가난해도 ‘자기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는 일종의 주술적 믿음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훗날 노동력을 불린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그토록 완고하던 국민들도 점차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가 싶더니, 이제는 아예 한 자식마저 기피하려는 젊은 부부들이 많아졌다. 특히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육아문제가 큰 장벽으로 작용, 출산율이 줄어들었고 결혼연령이 높아진 것 또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절로 산아제한이 이뤄지는 셈이다. 그런데 역시 ‘넘치는 건 부족함만 못한 것’일까. 지금은 오히려 출산율 급감이 더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1970년 4.53명이던 출산율이 83년 2.1명으로 줄었고, 99년엔 1.42명으로 크게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결국 수년 뒤엔 노동력 부족이 불가피해 졌다 한다. 상대적으로 고령인구가 늘면서 생산성을 떨어뜨려 국내총생산에도 악영향을 끼치리라 한다. 이쯤되면 가족계획을 다시 세워 다산 권장사회를 만들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노동력을 불린다던 옛 어른들 말씀이 결국은 옳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땐 무척이나 어리석어 보였는데….

  • 誤診 지면기사

     의사의 오진(誤診)으로 인한 환자들의 피해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소비자 연구원이 밝힌 의료 피해 구제 건수중에 진단 잘못으로 인한 것이 99년 8.9%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18.9%, 올들어서는 23.7%나 됐다는 것이다. 진단은 환자치료의 첫걸음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성공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의사의 진단이 질환의 객관적인 실체와 합치되지 않는 경우를 오진이라고 한다. 그런데 시진, 문진, 타진, 촉진으로 시작해서 각종 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병상의 성상을 판단한다 해도 인체의 불가 예측성으로 인해 오진이 발생하는 일이 있다. 이 때문에 아무리 의술과 의료기기가 발달한다해도 오진을 100% 방지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오진으로 피해를 당한 환자의 가족들은 “의사가 진단도 제대로 못하느냐”며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2년전 서울대 병원의 오진율이 16%라고 발표됐으나 전국적인 통계는 정확히 알수 없다. 미국의 의학저널 '제스트'지의 올해 2월호를 보면 미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클리닉 파운데이션의 연구진이 지난 2년동안 사망한 중환자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명중 1명이 오진 이었다고 한다. 환자가 숨진 다음에야 질환의 정확한 원인을 알게 된 것이다. 일본의 의학자인 시바타 지로는 지난 93년 '의사의 오만, 이제는 버릴때다'라는 글을 한 잡지에 기고 해서 관심을 모은적이 있다. 그는 이 글에서 의학자로서 최초 20년은 생명은 끝내 과학적으로 해명할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 다음 20년이상은 인간이 정체를 알수 없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기간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고백은 똑같은 질환이라 해도 그 정도에 따라 치료한후 건강을 회복하리라 생각했던 환자는 오래 살지 못하고 반대로 곧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여겼던 사람은 건강을 되찾는 많은 사례를 보면서 의사로서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의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환자의 적극적인 협조, 첨단 의료기술과 장비등 삼위일체가 됐을 때 오진율은 낮아질수 있다는 것이

  • 벌칙금 지면기사

     이탈리아 카프리섬의 벌칙금은 혹독하다. 관광객이 경치에 취해 멈춰선 채 두리번 거리다간 '교통체증 유발죄'로 625달러(약 82만원)나 물어야 한다. 파리 지하철 낙서 벌칙금 50만프랑(약 8천650만원)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파리시 공공시설 낙서를 지우는 데만 연간 1억4천만프랑(약 240억원)이 들기 때문이다. clean(청결)과 green(녹색)의 도시국가, 숱한 벌칙금(fine)과 깨끗한(fine) 환경으로 '파인 컨트리'라 불리는 싱가포르의 껌 전장(戰場)엘 가 봐도 놀란다. 지하철 등에서 껌을 갖고만 있어도 처벌을 받는다. 껌을 수입하다 적발되면 6천달러(약 780만원), 팔다 들켜도 1천200달러나 물어야 한다.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면 300만원. 그러니까 순 '벌칙금 클린' '벌칙금 그린'과 벌칙금에 의한 질서다. 일본 와카야마(和歌山)시의 '미관보호 조례'도 담배 꽁초 하나를 버리면 2만엔(약 20만원)을 내야 한다. 누진제는 벌칙금에도 있다. LA 시의회가 93년 6월 가결한 '레스토랑 금연 벌칙금'은 1회에 50달러, 2회에 100달러, 3회에 250달러다. 궁금한 것은 그런 엄청난 벌칙금의 징수 방법이다. 그래서 나온 게 영국의 이른바 '벌금 차등제(Unit Fine)'로 음주 소란의 경우 가난뱅이에겐 20파운드(약 3만7천원), 부자에겐 그 25배를 물린다는 것이다. 벌칙금을 못내 교도소에 가면 교도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쯤 되면 '빈부 등급 증명서'라도 갖고 다녀야 할 판이다. 또 하나 약삭빠른 상혼(商魂)은 벌칙금 대납이다. 1년에 1만엔만 내면 교통 '반칙금'을 대신 내 주는 보험회사가 이미 93년 일본에 등장한 것이다. 우리도 내년부터 금연구역 흡연 벌칙금이 10만원이라고 한다. 무질서 퇴치 특효약은 벌칙금밖에 없다고 믿는 나라가 점점 늘고 있긴 하지만 계도와 양심만으로는 정녕 안되는 것인가. 하기야 DH 로렌스의 '양심 재배법'처럼 양심도 물을 주고 비료도 주는 재배 관리와 고된 훈련이 필요하긴 하다. 

  • 바캉스 지면기사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됐다. 해외 피서지행 항공기 좌석과 국내 피서지 숙박업소의 방은 일찌감치 동이 났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주위를 살펴보면 집에서 조용히 지내겠다는 사람이 그 어느때 보다 훨씬 많은 분위기다. 휴가를 그리스어로는 소코레라고 한다. 고전적 참뜻은 '보람있는 생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휴가는 보람있는 생활의 조건이라 할수 있다.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일반인들에게 특별히 휴가라는 제도가 없었다. 다만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 휴일을 지정하는 일은 많았던 것 같다. 기원전 1세기말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즉위했을 때 로마의 역(曆)에는 76일의 축제일을 정해 휴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점차 늘어서 로마가 멸망한 5세기 말에는 175일이나 됐다. 거의 1년중 반을 먹고 마시고 놀아서 로마가 망했다는 해석도 제기 됐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에서의 휴가는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근로자들에게 피로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 제공이라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가져다 주었다. 이러한 의미의 바캉스는 프랑스가 원조다. 1936년 사회당 정권당시 근로자의 유급휴가 법안이 발효되면서 바캉스는 휴가를 뜻하는 대표적 단어가 됐다. 당시 2주였던 바캉스는 지금 연중 5주로 늘어나 이 기간중 파리지앤느들은 도시를 텅비우고 피서길에 올라 파리에는 관광객들만 남는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들어서야 휴가제도가 정착됐다. 휴가는 먹고 마시고 노는 그런 것이 아니고 피로에 쌓인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일정기간 생활의 쉼표를 찍는 것이다. 일의 책임감 때문에 매일 밤늦게 까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는 사람, '이 일만 끝내고 쉬자'며 계속 휴식을 미루는 일 중독자들. 이들은 과로의 자각증세도 못느끼고 있다가 큰 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전문의들의 지적도 있다. 바캉스의 어원은 '비운다'는 뜻이다. 정치권도 바캉스 기간만이라도 서로 트집을 잡아 정쟁을 일삼는 그런 짜증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았으면 좋으련만….

  • 인심매매 소굴(?) 지면기사

     ‘유다가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 동생이요 우리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구약성서 창세기 37장 26~28절〉.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인신매매 기록이다. 야곱의 아들들이 막내동생 요셉을 시쳇말로 왕따시켜 돈을 받고 팔아버렸다는 내용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고 파는 일은 그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는 최악의 인권유린이다. 그런데도 이같은 죄악이 고대는 물론, 현대에 와서도 수시로 자행되고 있다. 특히 오늘날 여성의 인신매매는 성의 상품화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지구촌 은밀한 곳곳에서 좀처럼 그치질 않는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주로 미국에 인신매매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 등 다른 나라 여성들도 한국을 통해 다른 국가들로 팔려가고 있다.” 미 국무부가 발표한 ‘인신매매 보고서’ 한 대목이다. 그들은 한국을 최하위 3등급, 즉 인신매매 주요 거래국이며 이를 퇴치하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않는 나라로 분류했다. 한마디로 인신매매 소굴이란 지적에 다름 아니다. 우리 정부가 항의했듯 그들 기준이 좀 의심스럽긴 하다. 마약거래국으로 악명높은 콜롬비아도 1등급이고, 섹스 관광지 태국 등도 2등급인 형편이다. 그래서 더 부아가 치민다. 혹여 그 배경에 어떤 악의가 숨겨진 건 아닐까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겐 자성할 부분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대답은 노(NO)일 수 밖에 없다. 국내 및 주변국 여성들이 한국을 거쳐 해외로 팔려간다는 소식이 결코 낯설지만은 않다. 부녀자를 납치·감금해 노예매춘을 강요하는 인간 사냥꾼들 만행 역시 심심찮게 보도되는 실정이다. 이를 다소 과장되게 꼬집은 미국이 밉살스럽긴해도 민망하고 부끄러운 건 그 때문이다.

  • 휴대폰 소음 지면기사

     B4→Before·전에, BBL→Be Back Later·곧 돌아오겠다, TX→Thanks·고맙다, HAND→Have A Nice Day·좋은 하루 보내길. 핸드폰으로 띄우는 이런 문자 메시지의 축약(縮約) 언어가 드디어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올랐다고 며칠 전 런던 타임스가 보도했다. 한데 '핸드폰'이라는 말은 좋지 않다. 붙박이 집 전화도 발가락으로 거는 '풋폰(footphone)'이 아니라 손으로 거는 '핸드폰'이 아닌가. 미국에서는 주로 cellular phone, cell phone 또는 wireless phone(무선전화)이라 부르고 영국에서는 mobile phone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우리말로는 '휴대폰'이다. '휴대(携帶)'의 携는 '이끌 휴' 帶는 '띠 대'자로 '몸에 지닌다'는 뜻이지만 정확히는 옛날의 마패(馬牌)나 육모 방망이, 요즘의 수류탄이나 권총처럼 '허리띠에 차고 다닌다'는 뜻이다. 아무튼 '마이 카'와 '우리 집 전화' 시대를 넘어 국민 개전화(皆電話)의 '마이 폰' 시대가 활짝 열렸다. 우리 대한민국의 휴대폰만도 이미 1천만대를 넘었고 초등학생까지 경쟁적으로 갖고 있다. 하기야 며칠 전 영국의 가디언지도 16세 이하 영국 아이들의 90%가 휴대폰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중국 역시 마이 카 시대를 훌쩍 건너뛴 채 벌써 1억대가 넘었다고 한다. 휴대폰의 착신음도 가지가지다. 중국에서는 요즘 재미있는 '착신음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의용군 행진곡'까지는 좋지만 애국가만은 불경스러운 게 아니냐, 그렇지 않다, 미국인들은 수영 팬츠에도 국기를 달고 있지 않으냐 등이다. 어떤 곡이냐의 착신음 내용보다는 때도 장소도 없이 울려대는 포르팃시모 소음이야말로 짜증거리다. 지난 3월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도 삐리릭 빼리릭 울려대는 휴대폰 소리에 부시 미국 대통령도 왕짜증을 냈다지만 드높은 휴대폰 '소음(騷音)'을 적당히 '소음(消音)'케 하는 장치야말로 아쉽다. 다행히 환경부가 70㏈을 68㏈ 이하로 규제한다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 베이징 올림픽 지면기사

     고대 그리스인들은 올림픽 평원에 웅장한 제우스신전과 경기장을 만들어놓고 4년마다 갖가지 특별한 경기를 벌였다. 이것이 올림픽의 시원이다. 이 올림픽은 그들의 주신(主神)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전행사로 종교·예술·군사훈련이 삼위일체를 이뤘었다. 최초의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에 열렸고, 기원후 394년 폐지될 때까지 장장 1천200년 가까이 이어졌었다. 그러나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정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올림픽을 이교도들의 종교행사로 규정, 폐지를 명함으로써 몰락의 운명을 맞았다. 그러다 1천500여년 뒤 다시 부활됐고, 고대에 그랬던 것처럼 4년마다 열리는 국제 경기대회로 자리잡았다. 올림픽의 부활은 프랑스인 피에르드 쿠베르탱 남작의 남다른 집념과 노력의 결과였다. 그는 스포츠 제전을 통해 세계 청소년들의 상호 이해와 우정을 다져 세계평화를 이룩하자는 뜻에서 그 부활을 줄기차게 역설했다. 그의 그같은 의지와 노력이 결실을 맺어 마침내 1896년 아테네에서 첫 대회를 갖게된다. 그후 근대올림픽은 인류의 가장 큰 평화운동으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베이징이 2008년 여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중국의 올림픽 개최는 그 의미가 사뭇 각별하다. 티베트 문제, 반체제인사 탄압 등 인권 및 민주주의에 대한 갖가지 우려에도 불구, 국제사회가 베이징의 손을 들어준 것은 이미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실체를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중국이 지구촌의 대축제를 주최할 자격이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중요한 정치적 승리를 거둔 셈이라 하겠다. 혹자는 1936년 히틀러가 파시즘 홍보를 위해 베를린 올림픽을 악용한 것처럼 중국 또한 공산주의 체제의 성공을 자랑하기 위한 기회로 삼을 것이란 우려를 나타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한국의 정치적 발전에 도움을 주었듯이 베이징 올림픽 역시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 개선에 기여하는 계기가 될 것을 믿고 싶다. 하긴 그런 기대가 없었다면 중국이 제아무리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해도 국제사회가 결코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았으리라.

  • '법의 독재' 지면기사

     공자의 정치사상은 인(仁)에 바탕을 둔 덕치주의이다. 반면 한비자(韓非子)는 철저한 법치주의자다. 때문에 유교에서는 인간의 신분질서는 고정돼 있고 질서의 기초가 되는 것은 도덕이다. 이에 비해 한비자의 인간관은 천자, 제후, 인민을 구별하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따라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법치국가 실현 밖에 없다는 것이 한비자의 사상이다. 한비자를 논한 일화들을 보면 너무나 각박할 정도다. '한나라의 소후(昭候)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대기하고 있던 모자 담당자(冠役)가 옷을 군주의 몸에 덮어줬다. 잠에서 깬 소후는 누가 덮어 줬는지를 물었다. 신하가 관역이라고 답하자 군주는 모자 담당자와 의복담당자 모두를 처벌했다. 의복담당자는 업무 태만죄, 모자 담당자는 타인의 직무를 범한 월권죄 였다'. 소후도 잠을 자다 몸에 냉기가 드는 걸 좋아했을 리는 없지만 법의 위령을 세워 질서를 잡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이런 일화도 있다. 진(秦)나라 소(昭)왕은 몸이 아팠을 때 소를 사서 자신에게 제물로 바친 인민에게 오히려 갑옷 2벌을 공출하라는 벌을 내렸다. 이유는 제물을 받은 왕이 나중에 인민들의 요구대로 법을 완화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법령을 이만큼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한비자 사상의 대목들이다. 최근 한나라당의 李會昌총재가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법의 이름을 빌려 법으로 포장했기 때문에 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법의 독재'라고 비난하자 야당은 '질서를 위반한 사람을 발견했는데도 단속하지 말라는 얘기냐'고 반박, 법리공방을 벌였다. 여야간 논쟁이야 어찌됐든 한때 모든 일은 '법 대로'하자고 주장해서 유행어까지 만든 법조인 출신이 법의 집행을 '법의 독재'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쩐지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공정한 법 집행을 요구하는 것이 훨씬 타당한 것 아닌가 싶다. 오늘은 제헌절이다. 헌법에 명시한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법치주의이고 법치주의는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거해서 행정을 행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사실을 다시

  • 벼락 지면기사

     홍수도 무섭지만 벼락도 무섭다. 벼락은 그리스 신화의 주신(主神) 제우스가 악을 징벌하는 무기다. 인도 베다 신화의 벼락의 신 인타라(因陀羅)의 가장 무서운 무기도 벼락이다. '이 벼락을 맞을 ×아!' 따위 욕설처럼 벼락은 악마에 대한 신의 응징인지도 모른다. 95년 5월18일 미국의 밥 팩우드 상원의원 사무실에 벼락이 떨어지자 '17명의 여성을 성희롱한 혐의로 받은 하늘의 징벌'이라는 등 구설수에 오른 것 등이 그렇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93년 5월 아빠와 함께 볼티모어의 엄마 무덤을 찾았다가 아빠마저 벼락으로 숨진 조이라는 미국 소년의 경우는 어떤가. 마르틴 루터는 왜 1505년 7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가다가 벼락을 만났고 93년 7월19일 러시아의 소 111마리가 벼락으로 불타 죽은 까닭은 무엇인가. 소나기구름이 급상승, 세찬 빗방울과 마찰을 일으켜 엄청난 정전기를 일으킬 때 발생하는 벼락은 그 구름 밑의 전압이 1억V를 넘고 번개 둘레의 온도만도 태양 표면 온도의 3배에 가까운 1만7천도를 넘는다. 그런 벼락이 매년 평균 160명의 짐바브웨인과 150명의 미국인을 저승으로 데려간다. 무소불타(無所不打)다. 96년 7월23일엔 버킹엄궁 영국 여왕의 가든 파티장에 떨어졌고 같은 해 10월17일엔 존 하워드 호주 총리가 탄 여객기를 가격해 비상착륙시켰다. 무엄하게도 우리의 청와대 구내에 떨어진 것은 97년 5월30일 이었고 90년 11월에도 청와대 경내에 떨어졌다. 더욱 만만한 것은 파리 에펠탑(92년 6월)이나 서울 타워(〃) 등 뾰족탑이다. 시간당 90㎜가 넘는 폭우와 함께 전국적인 벼락 피해 또한 심하다. 인명 피해는 물론 부산 산업단지의 낙뢰로 400여 업체가 일손을 놓아 수백억원의 손해도 보았다고 한다. 지난 6일 일본 다네가시마(種子島) 우주센터에 5번 연속 떨어진 벼락을 연상케 하는 무서운 일이다. 뾰족한 수든 뭉툭한 수든 벼락을 막는 무슨 수는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