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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예의 죽음 지면기사

     지난 6일 밤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州) 무자파르나가르 지구의 한 마을에서는 젊은 남녀가 양가의 가족에 의해 지붕 끝에 목이 매달려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이유는 복잡하지 않았다. 최고위 카스트(caste) 신분 계급인 바라문(성직자) 집안의 소년(16)이 맞은편 동네에 사는 평민, 상인의 하위 계급이자 불가촉(不可觸) 천민인 바이샤 집안 처녀(20)와 교제를 해 결혼 금기(禁忌)를 깰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귀족과의 혼인은 물론, 관직도 갖지 못했던 고대 로마의 평민층인 플레브스(plebs) 신분의 비극과 같은 게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마에 표시하는 백적황흑(白赤黃黑)의 계급 색깔 중 다른 색깔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시대착오적인 신분제도의 어처구니없는 인도판 '명예살인(honor killing)'이 아닐 수 없다. 명예 살인 전통은 터키에도 엄존한다. 두 달 전 아버지에 의해 칼과 도끼로 무참히 살해당한 이스탄불의 13세 소녀 딜버 키나의 예만 봐도 그렇다. 이유는 길거리에서 소년들과 이야기하고 가출을 해 이웃의 조롱을 사는 등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터키의 명예살인범은 복역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 사회에도 명예살인이나 다름없는 '자살 명령'이라는 게 있었다. 양반가 규수에게 명예롭지 못한 소문이 들릴 경우 가문의 권위로 자살 명령을 해 결국 '명예 자살'을 하도록 했던 것이다. 명예를 죽음보다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었다. 명예살인이든 명예자살 명령이든 잔인하고 가혹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비극이 없도록 죽도록 명예를 지킴으로써 명예를 더럽히지 말자는 뜻만은 소중하고도 고귀하고 존중받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남의 명예 훼손은 물론 자신의 명예에도 별로 민감하지 않은 것 같다. 너무도 쉽게 훼손하고 훼손을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들이다. 그까짓 명예쯤 한 때 좀 훼손당한들 어떠랴 싶은 것인가. 명예란 훼손해서도 안되고 훼손당해서도 안된다.

  • 성숙한 사회 지면기사

     각계의 원로들로 구성된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은 최근 성명서를 발표, 한국사회의 현재상항을 「적과 동지의 2분법으로 가르는데 온힘을 쏟고 있는 살벌한 풍경」이라고 지적했다. 이 모임은 이어 이러한 사회병리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남의 생각과 주장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수 진보 중도 모두가 당당하게 제 색깔을 드러내 합의점을 도출해서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가자고 제창했다. 국가 이익은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자신과 당의 이익, 그리고 대권욕에만 사로 잡혀 사사건건 흑백논리와 말 꼬리 잡기식 감정싸움만 벌이고 있는 정치권에 대해 국민들은 신물이 나 있는터라 아직도 우리사회에 이러한 목소리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다. 성숙한 사회는 나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윤리 도덕이 살아 있는 사회다. 주역에서는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의 세계가 있다고 본다. 형이상은 사물이 형체를 갖기 이전의 근원적인 본모습이고 형이하는 감각할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을 뜻한다. 이득이 안되는 장사를 열심히 생각해 내서 이득이 되는 사업으로 만드는 것은 형이상이고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쫓아 다니는 장사는 형이하의 세계다. 예술이나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도 원래는 형이상의 세계다. 정치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것이냐는 동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당의 목적이 집권이라고 해서 대권욕에만 사로 잡혀 있다면 이 집권욕이 다른 이익 집단의 이기주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오늘의 한국사회의 병리는 이러한 이익 집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형이하의 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레빈이라는 심리학자는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는 지도자가 하자는 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일 뿐만 아니라 다른사람에게 대하는 태도가 감정적이며 사회관계에서도 공격적이고 약한자를 못살게 구는가 하면 파괴적이라고 분석한바 있다. 집단 이기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가 이러한 소아적 단계를 벗어나 성숙한 사고와 행동의 형이상적인 세계로 발전할때가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 마루타 박물관 지면기사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9년 이시이 시로(石井四郞)가 창설했다는 일본의 생화학 실험기지, 만주 관동군 731부대. 이 부대는 2차대전이 끝나는 1945년 여름까지 쥐나 다른 동물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무려 35종류의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곳으로 악명높다. 일명 마루타(丸太=통나무)라 불린 실험 대상자들은 대다수가 한국인을 포함한 중국인 러시아인 등이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통나무처럼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채 생체실험 재료에 불과했으며, 개개인의 번호로만 구분되었을 뿐 이름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이 부대에서 자행한 실험 가운데 핵심 비밀 중 하나가 산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한겨울에 알몸인 채로 밖에서 냉동시켰고, 여름이면 사람을 냉동실에 넣어 실험했다. 또한 원심분리기에 넣고 실험하는 원심분리실험, 인간의 상처 부위가 외부 압력을 견디는 한계를 알아보는 진공실험, 두개골을 노출시킨 후 신경을 건드려 움직임을 알아보는 신경실험, 독가스를 살포해 죽어가는 과정을 연구한 가스실험 등 그들이 자행한 잔혹한 생체실험은 수도 없이 많다. 그 곳에서 처참하게 실험대상으로 죽어간 사람의 수만 해도 무려 4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숱한 증거물과 증인들이 있음에도 731부대의 존재를 계속 부정하고 있으나 정작 그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은 1980년 일본인 기자에 의해서였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전까지 이 부대의 존재는 실험자료를 건네받은 대가로 만행을 눈감아준 미국만이 알고 있던 극비 사항이었다는 것이다. 731부대의 잔학상과 부대의 모습을 재현하는 영구 박물관이 국내에 처음으로 들어서게 됐다. 한 중소기업인의 집념으로 마루타 유물 1천여점이 모아졌고, 충남 아산시가 부지 제공과 함께 공사비 일부를 지원해 설립한다는 것이다. 과거 잘못을 감추기에만 급급해 역사교과서마저 왜곡하고, 총리까지 자진해서 A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며 소란을 피워댄 일본이라는 나라. 박물관이 완공됐을 때 계면쩍은 시늉이나마 할 수 있을는지 궁금하다.

  • 야스쿠니 지면기사

    전쟁을 일으킨 전범(戰犯)을 야스쿠니(靖國) 귀신의 집(神社)에 모시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靖國"의 '靖"은 '편안할 정" '편안히 할 정"자다. 정(靜)과 같은 글자다. 따라서 '정국(靖國)"은 '나라를 태평히 다스린다"는 뜻이다. 역사 드라마에서 자주 일컫는 '정난공신(靖難功臣)"도 난리, 즉 '위난을 다스려 진정시킨 공신"이라는 뜻이고 '정광(靖匡)"도 '천하를 다스려 바로잡음"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망친 패전의 전쟁 범죄자를 정난공신처럼 정국(靖國) 귀신 집에 모신다는 것부터가 망발이다. 그런데도 야스쿠니 신사에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을 비롯한 28명의 전범까지 모셔져 있는 것이다.독일의 뉘른베르크 재판과 함께 사상 최대의 전범 재판인 도쿄재판 결심 판결은 48년 11월12일 이치가야(市ケ谷)법정에서 열렸다. 그 때 '데드 바이 행잉!" 웹 재판장의 추상같은 선고에 의해 교수형이 확정된 사람은 도조(東條英機) 전 총리(육군대장)와 히로다(廣田弘毅) 전 총리겸 외무장관, 이다가키(板垣征四郞) 육군장관 등 A급 전범 7명이었고 그해 12월23일 곧바로 처형됐다. 바로 그런 A급 전범 28명을 비롯한 B급 이하 전범의 위패가 봉안된 야스쿠니의 떼 귀신들 앞에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가 기어코 머리를 조아리고 딱 딱 손뼉을 쳐가며 참배를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처구니없게도 A급 전범들을 구국(救國)의 정난공신으로 인정한 꼴이고 그들의 침략전쟁 행위를 당연했던 것으로 인정한 결과다.한데 '국왕의 선전 포고권과 교전권"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 일본 헌법 제 1장 13조다. 따라서 46년 5월3일 전범 재판 시작 무렵 A중의 A급 전범인 히로히토(裕仁) 국왕부터 단죄해야 한다는 연합국측 주장이 드높았다. 그걸 반대한 사람이 스탈린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독일 총리는 히틀러, 괴링, 로젠베르크 등 2차대전 전범 귀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나치스 친위대 병사가 끼여 있는 서부 비트부르크 전몰 용사 묘지도 찾지 않는다. 일본 총리의 행위가 가증스럽기만 하다.

  • 또 8·15가 됐지만 지면기사

     ‘한반도의 남과 북은 온통 눈물바다였다.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서울과 평양에서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모습에 온겨레가 울었다. 생사조차 모른 채 반세기 넘게 찢겨져 살아야 했던 한서린 세월, 그 길고 긴 세월의 벽은 눈물로 녹아 내렸고, 단장의 한은 통곡으로 터져 나왔다.’ 1년 전 오늘(8월 15일 광복절),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처음 가졌던 이산가족상봉 때의 모습이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은 그래도 그것으로 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아니 큰 행운이었다. 그 많은 이산가족 중 제일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에. 더구나 언젠가는 또 그런 날들이 오리란 기대가 있었기에 다시 헤어질 용기가 생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올 2월까지 그같은 만남이 두번 더 이어졌다. 그리고 끝이었다. 계속해서 그런 날들이 또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미상봉 이산가족들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한 채, 느닷없이 남북적십자회담이 무한정 연기되고 말았다. 지난 봄 일이다. 무엇에 삐쳤는지 북한측이 4월로 예정됐던 회담을 무산시켜버린 것이다. 한때는 “면회소를 설치하자” “생사 및 주소 확인을 확대하자”는 등 꽤나 법석들을 떨어댔었는데. 오늘 또 광복절을 맞았지만 미상봉 이산가족들 마음은 누구보다 착잡하다. 지난 번 몇차례의 감격적인 상봉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데, 이제 그들을 위한 남북회담은 재개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음 상봉 때는 꼭 명단에 포함될 것 같았는데”하면서 괜한 아쉬움도 삭여보지만, 그럴수록 더 서럽고 한스럽다. 대다수 이산가족들에겐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한적(韓赤)도 그래서 더 애가 마른다. 기회 닿는대로 회담재개, 면회소 설치, 생사·주소확인 확대 등을 북측에 누누이 호소해 보지만 아직은 대답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무엇이 북한을 그토록 삐치게 만들었을까. 정녕 짐작대로 소원해진 대미관계 때문이라면, 도대체 왜 그것이 남북관계, 특히 이산가족 만남에마저 영향을 미쳐야 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답이라도 속시원히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 자립형 사립고 지면기사

     2차 세계대전후 패전국인 독일은 연합국과의 협상에서 항복은 받아 들이겠지만 두 가지만은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나는 규모는 작더라도 일정 수준의 군대를 보유할수 있게 해 줄것과 또 하나는 교육제도 만큼은 손을 대지 말고 자신들에게 맡겨 달라는 것이었다. 전쟁에서는 패했더라도 군대와 교육을 그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으로 여기고 있었다. 미국의 매크랜드라는 학자는 학교교육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목표를 향해서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달성동기를 부여하고 강하게 의식시켜주는 사회는 반드시 몇십년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80년대 후반 일본대학 교수인 오오하시 미유키(大橋 幸)는 이러한 가설이 일본에서도 적용되는지를 검증하는 조사를 실시했다. 1868년 메이지(明治)부터 1988년 쇼오와(昭和)까지 무려 120년 동안의 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 1세대 즉 30년후 그 영향이 나타났다고 오오하시교수는 밝혔다. 학교교육이 이처럼 먼 장래의 국운과 직결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입증 자료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은 교육을 군대와 동일시 하고 남의 나라에 맡기지 않으려 했다. 재미없는 수업, 학생들의 무반응, 사교육 천국, 학생지도의 불가능 상태, 학교교육의 위기, 공교육의 붕괴등이란 단어들이 현재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현실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현재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비극이라 할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학교교육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이미 추진중인 대학 입시제도 개혁과 함께 자립형 사립고 지정 방안이 나왔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청과 전교조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존 듀이는 교육을 '경험의 끊임 없는 개조'라고 정의하고 학생들에게 일방적인 지식주입이나 반대로 학생들의 자발성에만 의존하면 불충분 하므로 여러 가지 경험에 참여 시킴으로써 창조력을 기를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육제도의 틀을 바꾸는 것은 공교육 붕괴에 대한 겸허한 반성으로 부터 출발, 이처럼 학생들의 창조력을 발휘할수 있도록 하는 방향에서 생각해야 한다.

  • 回回靑 지면기사

     '너무 구워 타버린 게 흑인, 덜 구운 게 백인, 알맞게 구운 작품이 황인'이라는 속설처럼 인간은 진흙으로 빚어졌다. Adam의 뜻이 '흙'이듯이 최초의 인간부터가 그렇다. 라틴어의 인간 '호모(Homo)'도 흙을 뜻하는 Homus에서 왔다. 중세 라틴 신화도 인간의 몸은 흙이라고 했고 중국의 천지 창조 신화도 여신 여와(여왜)가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다. 인디언만이 '토인(土人)'은 아니고 '토착인(土着人)'만이 토착인도 아니다. '인간=흙'이다. '흙-'로 흙에서 왔다가 '흙+'로 돌아가는 인간 자체가 신이 빚은 진흙 작품인 도기(陶器)다. '陶'는 진흙을 구워 만든 '질그릇 도'자다. 인격 도야의 그 '도'자다. 도자기를 굽는다는 것은 신의 진흙 작품인 인간이 인간의 진흙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데 도자기(陶瓷器)와 자기(磁器)를 혼동하기 쉽다. 도자기엔 질그릇과 오지그릇, 사기(砂器)가 있다. 진흙을 구워 잿물을 입히지 않은 것, 테석테석하고 윤기가 없는 게 질그릇(陶), 즉 오줌장군 등 옹기다. 오지그릇(瓷)은 진흙을 구워 잿물을 입힌 단단한 것, 즉 꿀단지나 물동이, 뚝배기 등이다. 사기는 신분 차원이 다르다. 진흙, 장석(질돌), 규석, 백토를 구워 유리처럼 매끈하고 단단한 밥 사발, 찻잔 등이다. 그 사기에다 채색과 채화의 예술을 입혀 분장, 고이 대(臺)에 올려놓은 게 즉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 자기(磁器)다. '자기'하면 중국이다. China의 C가 대문자면 중국을, 소문자면 자기를 가리키듯 그들은 5천년 전부터 자기를 만들었다. 중국인에게 한오채(漢五彩) 당삼채(唐三彩) 송삼채(宋三彩) 명삼채(明三彩) 등 한 두점이 없으면 체면은 구겨진다. 특히 당삼채다. 사쓰마야키(薩摩燒)나 아리타야키(有田燒) 등 조선이 뿌리인 일본의 도자기나 독일의 마이센, 프랑스의 하빌랜드도 중국이 원류다. 이번 도자기 엑스포가 우리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고려청자의 그 회회청(回回靑)의 신비를 어느 나라가 감히 감지할 수 있으랴.

  • 플레이 보이 지면기사

     바니 걸은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사의 상징이자 상표다. 1953년 '에스콰이어'지의 카피라이터였던 휴 헤프너가 시카고에서 남성 전문 월간지 '플레이보이'를 창간하면서 당시 개봉한 영화 '나이아가라'로 유명해진 마릴린 먼로를 플레이 메이트로 선정해서 그의 누드사진을 잡지 한가운데 센터 폴더로 끼워 넣고 선정적인 내용과 디자인으로 편집 판매함으로써 잡지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섹스 예찬론자인 휴 헤프너는 잡지 발행과 함께 전국 주요 도시에서 플레이 보이클럽을 개설, 토끼 모양의 옷을 입은 풍만한 유방의 섹스어필한 여성인 이른바 바니 걸(Bunny Girl)을 동원해서 광고 효과와 함께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이것이 바니 걸의 탄생 과정이다. 당시 플레이 보이지의 과감한 편집내용과 디자인은 그때까지 음지에 가려져 있던 미국인들의 성행동과 성의식을 양지로 끌어내어 성 해방의 물결을 주도해 왔다.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사는 지난해 출판 엔터테인먼트 상품판매 카지노 플레이보이 온라인등 5개 사업부문에서 3억800만 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그러나 잡지는 90년대 들어 포르노 영상물에 밀려 발행 부수가 미국내에서 조차 350만부에서 지난해 315만부로 줄어드는 등 지금은 16개국 500만부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카고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종업원 780명중 지난해 120명을 해고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최근 한통하이텔이 이러한 플레이보이 온라인 사업중 하나인 플레이보이 닷 컴과 손잡고 오는 10월부터 국내에서 성인용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한다. 미국의 플레이보이 닷 컴은 잡지의 기사와 사진·플레이보이 TV의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어 한통 하이텔이 이를 들여와 그대로 서비스를 할 경우 국내에 만연한 성 개방 바람에 어떠한 변화가 올는지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포르노 영상물과 인터넷 사이트가 범람하는 마당에 이쯤이야 하고 넘어가기에는 어쩐지 탐탁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새 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

  • 피부색 조절약 지면기사

     19세기 호주에선 이른바 백호(白濠)주의라 하여 인간의 피부색을 따져가며 유색인종 차별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던 때가 있었다. 유색인종의 이민을 배척하고, 정치 경제에서 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백인사회의 동질성을 유지해야 한다던 어처구니 없는 백인 우월주의 운동이었다. 그같은 유색인 차별 사례는 이것 말고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15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들에 의해 잔혹하게 자행되던 흑인노예 무역, 18~19세기 미국의 인디언 학살 추방,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아시아에서의 갖가지 만행 등등…. 물론 현대에 와서는 유엔에서 ‘인종차별 철폐 협약’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뿌리깊은 백인들의 우월의식이 많이 희석되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도 미국같은 곳에서는 유색인들에게 테러를 서슴지 않는 소위 KKK단이란 게 툭하면 물의를 빚고 있는 걸 보면, 시대착오적 인종차별 의식이 말끔히 가셔졌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게다가 피부색이 마치 아름다움과 추함, 우열(優劣)의 기준이라도 되는양 무작정 백인들을 동경하고, 또 어쩌면 백인들에게 열등감마저 느끼는 유색인도 아주 없지는 않다. 오죽하면 백인을 닮고싶어 성형수술을 하고, 갖가지 약품 화장품 등으로 피부색을 억지로 감추느라 여념이 없는 이들까지 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따위의 일들을 모두 무의미하게 만들 때가 곧 올 모양이다. 최근 ‘흑인들에게는 마이클 잭슨의 창백한 피부를, 백인들에겐 일광욕으로 잘 태운듯한 적갈색 피부를 갖게 해주는 피부색 조절약이 개발되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미국의 한 제약사가 피부세포의 멜라닌 색소 형성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작용을 하는 화학물질을 개발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이 성공하면 백인도 유색인이 될 수 있고 유색인도 쉽게 백인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다. 그렇게 되면 백인과 유색인종 중 누가 더 많이 그 약을 이용할까. 얼핏 생각해도 유색인이 더 많을듯 싶긴한데. 조상 대대로 물려온 피부색마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게 과연 낭보일는지 비보일는지.

  • 인공 쌍둥이 지면기사

     신은 숱한 쌍둥이를 창조했다. 그리스 신화의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부터가 쌍둥이다. 하늘의 베타(β)별과 알파(α)별인 폴룩스와 카스토르도 쌍둥이고 전설상의 로마 건국자 로물루스도 쌍둥이다. 죽음, 출산의 여신 헤카테도 등이 붙은 3체 쌍둥이다. 기독교 성경에도 쌍둥이는 쌨다. 형 에서로부터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상속권을 샀다는 야곱 형제부터가 쌍둥이고 유다가 며느리를 창녀로 잘못 알고 동침해 낳았다는 베레스와 세라도 쌍둥이다. 속세 인간의 쌍둥이는 말할 것도 없다. 20세기 스위스의 유명한 실험 물리학자와 화학자인 피카르 형제도 쌍둥이고 프랑스의 천재 쌍둥이 형제 아탈리도 있다. 일본의 프로 기사(棋士) 하타야마(창山) 형제와 108세와 109세의 장수를 누린 쌍둥이 자매 할머니 가니에(蟹江)도 유명하다. 신이 창조하는 쌍둥이엔 일란성(一卵性)과 이란성, 샴 트윈(Siam twin) 세 가지가 있다. 동성끼리만 태어나는 일란성 쌍둥이는 100% 같은 유전자를 갖기 때문에 얼굴 체격 체질 목소리뿐 아니라 성격과 마음까지 닮아 너무나 혹사(酷似)하다. 그러나 이란성 쌍둥이는 동성끼리 또는 이성끼리 태어날 수도 있고 닮은 정도도 보통 형제와 비슷하다. 또 몸이 붙은 기형 샴 트윈은 머리와 가슴은 하나인데 머리 양쪽에 두 얼굴이 있는 야누스체(Janus體)와 팔 둘, 머리 둘 혹은 팔 셋에 머리가 둘인 이두체 두 가지가 있다. 하지만 신의 작품은 완벽하다. 두 몸의 분리 수술도 못받고 결혼해 63세까지 살면서 각각 11명과 10명의 자녀를 낳은 19세기 태국의 엥 벙커와 창 벙커 형제의 예가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인간이 과연 완벽한 쌍둥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인가. 이탈리아의 체외수정 전문의와 미국의 국제 인간복제 컨소시엄 등이 오는 11월 '인공 쌍둥이' 즉 인간 복제를 강행하겠다고 해 논란이 분분하다. '과학, 의학의 혜택을 포기할 수 없다' '유전적 결함을 찾을 수 없다. 불가능하다' 그보다도 신의 '대외비(對外秘)'까지 그렇게 까 봐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