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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여정…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걷다 지면기사
내가 아는 사람 이름 부르며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지은죄와나에게 아픔 줬던 사람들도용서했습니다, 새해엔 그동안맺혔던 마음 내려놓고 감사하는마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얼마 전에 '연합뉴스TV Y'의 5부작 다큐멘터리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멘토로 초청돼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습니다. 멘티는 공모를 통해서 선발된 사람들입니다. 멘티, 방송촬영팀 등 11명이 배낭을 메고 30일 동안 800㎞를 걸으면서 대화와 강의를 통해 멘티를 힐링시키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국경이 끝나고 스페인 국경이 시작되는 지점인 론세스바예스에서부터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스페인 땅끝,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있는 산티아고 성당까지 이어지는 800㎞의 길입니다. 이 길은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한 길로 야고보가 참수당한 뒤 그 유해를 실은 배가 도착해 묻힌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가는 길입니다. 야고보를 에스파냐어로 산티아고라고 합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의 거리입니다.1천년 전부터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길의 풍경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나이가 얼마나 됐는지 알 수 없는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한 숲, 코발트 빛 하늘, 만들어 놓은 그림 같은 뭉게구름,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일출과 일몰,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밀밭, 아무리 다가가도 더 멀어지는 지평선을 쫓아 하루에 25~35㎞씩, 6~9시간을 산티아고를 향해 끝없이 걷는 길입니다. 중간에 이 길을 걷다가 죽은 사람들을 묻은 '순례자의 무덤'도 많이 있습니다.이 길을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구는 얻으려고, 누구는 버리려고, 누구는 찾으려고, 누구는 잊으려고, 누구는 보려고, 누구는 보지 않으려고 이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과연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걷게 됩니다. 마지막 목적지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하면 순례자들은 광장에서 서로 부둥켜안거나 광장 바닥에 누워서 뜨거운 울음을 터뜨립니다. 자신이 순례길을 완주해냈다는 것을 느끼는 감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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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와 '크리스마스' 동서(東西)의 동거 지면기사
동짓날은 모든 생명활동이극저점에 이르지만새로운 태양과 함께새생명의 도래를 의미함으로써동서를 막론하고 철학·종교적비중을 가질수 밖에 없다동짓날을 지내자마자 바로 크리스마스이다. 동지는 농경사회에서 중시되던 24절기의 하나이기 때문에 보통 음력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양력으로 태양의 주기를 계산해서 얻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크리스마스도 예수의 탄생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로마제국의 동지축제의 변형으로서,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 무렵을 택해서 부활의 의미로서 이 날을 기념일로 정했다고 한다.새해 첫날과는 열흘 차이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동짓날이 한 해의 마지막이다. 그 이유는 한 해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끝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풍속으로 동지는 작은설(亞歲)이라고 부르면서 이날 팥죽을 쑤어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한 것이나,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동짓날에 다음 해의 역서를 만들어 궁중에 바치고 관아에서 동지 선물로 책력을 선사하던 풍습이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날이 그날 같고 또 그날이 그날 같기만 했을 일상의 나날속에서 정확한 1년의 주기를 파악하고, 동지란 극점까지 알아낸 것은 대단한 발견이며 인류 지성의 쾌거라고 아니할 수 없다.아무튼 이 날까지로 모든 생명활동은 극저점(極低點)에 이르지만, 새로운 생명이 꿈틀거리며 부활하는 희망의 날로 전환된다. 그렇게 동지는 새로운 태양과 함께 새 생명의 도래를 의미함으로써, 동과 서를 막론하고 철학적 종교적 비중을 가질 수밖에 없다.그래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에도 페루의 마추피추에도 영국의 스톤헨지에도 동짓날 새 태양이 떠올라 비친 각도와 그림자를 기준으로 배열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필자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동짓날 아침 피라미드나 마추피추에 가서 그 고대의 신비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동지는 생명이 부활하는 성스러운 시간이자 우주질서의 중심축(axis mundi)이다. 그래서 전통시기 중국에서는 동짓날이 되면 천자가 남쪽의 교외에 둥그런 제단(圓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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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홀몸노인들 보살펴야 한다 지면기사
가족붕괴로 홀로 사는 노인 늘며고독하게 살다 안타깝게 生 마감노인들에 작은 일자리라도 제공지역사회 공헌 기회 주고더 중요한건 주위 구성원들이자주 돌보는등 많은 관심 가져야연말연시(年末年始)다. 등 따습고 배부른 사람들은 흥청(興淸) 좋아하다 망청(亡淸)되기 쉬운, 그러나 춥고 배고픈 사람들은 더욱 비참하고 서러워지는 희비(喜悲)가 갈리는 계절이다.필자는 연극연출가이다. 사정이 없는 한 연말에는 따듯한 사랑을 전하는 감동적인 작품을 주로 공연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필자가 아프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봉사라 생각하기에 그럴 것이다. 청춘을 다 바친 직장에서 젊은 사장에게 내쳐지고 오냐오냐 키우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빌빌대는 자식을 위해 보험금을 타게 해주려고 자동차를 타고 나가 고의사고를 내는 이 시대 최고의 비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연말에 공연했고 우리나라 최고의 설화로 자리잡은 버려진 딸이 버린 아비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으로 목숨을 걸고 생명수를 구하러 가는 도저히 현실에서 특히 이 시대에 납득하기 힘든 효를 행하는 '바리공주' 이야기도 연말에 공연하였다. 비슷한 주제인 '효녀심청'을 각색하여 만든 '명랑소녀 심청'도 연말에 공연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연말에는 힘겨운 주변이 더욱 크게 보이는 탓일 것이다. 그러나 주위를 돌아보면 이것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약하기 짝이 없어 자괴감이 든다. 너무도 힘겹고 현실이 고통이며 지옥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 힘겨운 주변에 더욱 힘겨워 보이는 분들이 21세기 가족의 붕괴와 더불어 증가하고 있는 홀몸노인 분들이다. 기존에 독거노인으로 명칭하고 이제 순화된 용어로 쓰이는 홀몸노인은 배우자나 가족과 함께 하지 않는 노인을 의미하거나 부양해 줄 가족이 없어서 혼자서 생활을 하는 노인을 말한다. 이 홀로 사는 분들이 우울하고 고독하게 살다가 방에서 홀로 삶을 마감하는 그리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 후에 발견이 되는 비극이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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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신 어머니를 상담하다 지면기사
노일을 위한 진정한 상담은가까이 지내면서 옛 기억도죽음이 뭔지도 잊고 살게끔바쁜 일상으로 채워 드리고좋든 실든 얼굴 맞대고옆에 같이 있는 최선이다타지에 사는 탓에 여든이 훨씬 넘은 어머니를 명절이나 제사 때 말고는 보기가 쉽지 않다. 전화로 자주 안부를 묻지만 늘 성에 차지 않는다. 다른 자식들이 같은 고향에 살고 있는데도 유독 혼자 사는 것을 고집한다.집안의 형은 그게 못내 안쓰러워 최근에는 아파트 가까이에 방을 하나 얻어 수시로 음식과 반찬을 해 나르면서 들여다본다. 그래도 남이 봤을 때는 영락없이 독거노인이다. 노인이 혼자 밥해 먹는 게, 말벗이 없어 종일 티브이를 보면서 지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든 넘은 어머니의 삶은 거의 공황상태라 할 만하다. 혼자 밥 먹고, 주위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많고, 미래 계획도 없고, 거동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눈물이 날 것이다. 전화로는 바쁘지 않느냐고 하면서도 한번 말문을 열어놓으면 끝이 없다. 며칠 전에는 집안에 일이 있어 내려갔었는데 시무룩하신 게 화가 난 듯하다. "너는 자식이 되어 오랜만에 어미를 봐도 손도 한번 잡아주지 않는구나." 속이 뜨끔하여 가까이 앉아 열심히 손등을 쓰다듬고 손가락도 만져드렸다. 늙은 자식이 하는 속내가 뻔해 보일 듯 한데도 이내 웃으신다. 시조 시인 이종문의 '효자가 될라카머-김선굉 시인의 말'이라는 시가 재미있다.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너거무이 보자마자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 기 와 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언젠가 이 시를 읽고는 나도 한번 따라 해봐야지 했는데 확신이 서지 않아 그랬는지 젖은 둘째고 손도 한번 잡아드리지 못한 꼴이 되었다. 고향에 가면 어머니와 잠시지만 의도적으로 가까이 있으려고 한다. 처음엔 네 방에 건너가 일찍 자라고 하지만 내심은 같이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것을 잘 아는지라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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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 지면기사
가속도와 힘의 방향은 같아매사 긍정적인 사람은지속적인 성공을 이끌어 내고늘 부정적인 사람은한번 실패하면또다른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도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개척하고 도전하는 사람만이 더 큰 것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뉴턴이 확립한 역학의 기본이 되는 운동의 법칙입니다. 바로 관성의 법칙과 가속도의 법칙입니다. 운동의 제1 법칙인 '관성의 법칙'에 따르면 '외부로부터 물체에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정지하고 있던 물체는 계속해서 정지해 있고, 운동하고 있던 물체는 언제까지나 같은 속도로 운동'을 합니다.지구는 공전운동과 자전운동을 합니다.그런데 만약 거대한 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면 지구의 공전운동과 자전운동은 깨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외부의 힘입니다. 그래서 외부의 힘이 작용하면 관성의 법칙은 깨지는 것입니다.이런 관성의 법칙은 물체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을 비관하며 미래를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벗어나오지 못합니다. 이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비난하고 주변을 험담합니다. 자기가 잘못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 세상의 잘못이라고 단정짓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계속 정지해 있고, 그 절망의 깊이는 더욱 깊어집니다. 그 절망의 늪을 깨고 나오기가 더 어렵습니다. 이 사람들은 또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만나고 그들과만 대화합니다. 그들 역시 세상을 비난하고 헐뜯습니다. 패배의식은 늘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들죠. 관성의 법칙에 따라 그들은 계속 절망 속에서 정지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자기 인생에서 자신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늘 도전합니다. 현실을 긍정하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희망을 갖습니다. 현실은 힘들고 어렵지만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에는 대부분 자신이 꿈꾸던 성취를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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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법 발의를 보며 지면기사
판단력 부족한 어린 학생들에게게임 즐길지 말지 선택하라는건'공정한 게임이 아니다'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고건강한 습관을 가지도록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최근 신문지상과 TV에 게임중독법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 천만명이 넘는 인구가 알코올 도박 마약 인터넷 중독 등에 빠진 중독 고위험군이라고 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던 도박이나 마약 사건 정도는 이제 인터넷게임 중독 사건에 밀려서 아예 기사화되지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돌이켜보면 40년 전에도 전자오락이란 게임이 있었다. 필자가 고등학생이던 1970년대 중반 지방 도회지의 번화가 귀퉁이에 오락실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기껏해야 17인치 흑백TV를 보던 시절, 대형 화면 위에서 푸른 창공을 날아다니는 비행기 공중전 '전자오락'은 시골 소년에겐 그야말로 놀라운 신천지였다. 다음날부터 들락날락하면서 한 달 용돈을 며칠 만에 다 탕진했지만, 적기의 꼬리를 물고 공중제비를 돌면서 기총사격을 가하면 굉음과 함께 적기가 폭파되던 순간의 짜릿한 느낌은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마지막 코인까지 다 털어넣고 난 뒤에 오락실문을 나서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이전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기계문명의 쾌락은 맛보았지만 어린 나이에도 이건 아니다라는 느낌을 직감할 수 있었다.그런데 지금의 인터넷게임은 이보다 훨씬 강렬한 쾌감을 주는데다가, 누구나 어디서나 바로 접근할 수 있다는 데에 문제는 심각성을 띤다. 중독은 이성적 판단력을 잃고 황홀상태에 빠뜨린다.그러나 중독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단순하지만 한번 건강한 중독과 불건강한 중독으로 구분해보자. 요즘 문제가 되는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은 불건강한 중독들이다. 기계가 주는 쾌락에 빠져서, 사이버공간과 현실세계를 혼동하며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빠지는 게임 중독은 불건강하고도 나쁜 중독이다. 얼마 전 TV토론장에서 어느 학부모가 그 잔혹하고도 절망스러운 실상을 통곡하면서 고발하는 것을 보았다. 어둔 골방에 처박혀 가상의 세계에 빠져버린 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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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범죄와 학교폭력 중등교육 확 바꿔야 지면기사
국·영·수 입시위주의 교육아이들 정서·인성·역사의식 실종예체능과 도덕·역사 과목중심으로 나라를 위하고인권 존중과 감성이 풍부한사람을 만드는 교육과정 필요참으로 많은 뉴스거리가 등장하는 현대사회이다. 한마디로 뉴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매체가 없던 시절 들을 수 없었고 듣지 말아야 할 듣고 싶지 않은 소식도 어쩔 수 없이 무조건 들어야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듣기 싫지만 점점 늘어가는 뉴스가 청소년 범죄이고 학교폭력이다. 이 나라의 미래인 청소년들의 날로 흉폭 해지는 범죄소식을 들을 때면 미안함과 함께 참담함, 어른으로서 부끄러움, 결국엔 책임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19세 소년이 여자 친구를 유인해 성폭행하고 시신을 훼손한 후 SNS에 죄책감 대신 시신을 조롱하며 지옥에 가고 싶다고 글을 올린 최악의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여론은 들끓었지만 이내 시간이 흐르며 별다른 대책도 없이 잊혀져가고 있다.청소년들의 극악한 범죄는 학교 안에서도 자연스러울 정도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대구에서 중학교 2학년을 다니다 친구들의 악랄하고 지속적인 폭력으로 아파트 집 베란다에서 유서 한 장 남겨놓고 자살한 권모군의 유서 내용은 분노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온갖 폭력에 돈 갈취, 개 줄을 하고 바닥의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게 하는가 하면 피아노 의자에 구금하고 장시간 때리기 등 도저히 성인들도 생각하기 힘든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어쩌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사소한 이유로 부모에게 폭력을 가하고 학교선생을 고발하며 집단으로 폭력과 강간을 저지르며 범죄 후에도 뉘우침이 없는 아이들, 이러한 무서운 현상이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무엇이 그토록 우리들의 청소년을 흉악하게 만들고 있나. 그 원인은 너무나 많아 보인다. 영화, TV, 인터넷 등 온갖 매체들의 무자비한 폭력 막장드라마에 갖은 선정성. 뿐인가. 현실에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비상식적인 법치가 판을 치고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에 취해 추한 싸움질을 해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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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검사' 때문에 사회가 멍든다 지면기사
심리검사하듯 해서 될 일 아냐출처 불분명 적용도 의구심취업생 상당수 합격위한 거짓말자신속이는 것으로 사회생활 시작회사 명운 생각하면 '위험'좋은인성 여유·세심 관찰로 충분필자가 만약 회사 대표라면 직원 채용을 위해 지금의 인성검사와 같은 일은 하지 않겠다. 문항수 100개의 인성검사로 인성을 테스트하겠다는 생각은 무지이기도 하고 직무유기에 가까운 게으름일 수도 있다. 1천개의 문항이 있다고 한들 좋은 품성을 갖춘 인재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인성은 이렇게 심리검사하듯이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여러 인성검사지를 면밀히 살펴봤지만 그 출처도 불분명할뿐더러 제대로 적용될까싶은 의구심이 든다. 채용하는 입장에서 좋은 인간관계나 적극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성 좋은 인재 찾기에 이런 식으로 회사의 명운을 건다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하다.인성검사에 대해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 취업생이 인터넷 상에 글을 올린다. "이번 하반기에 ○○회사에 지원했는데 인적성검사가 고민입니다. 기업 인재상에는 사교성과 창의력이 높은 인재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 실제로 답하게 된다면 사교성 부분에서 낮은 점수가 나올 듯합니다. 인성검사 시에 기업문화를 고려해서 적당히 답변을 바꿔 선택해야 하는지 정말 걱정입니다…." 이 취업생이 인성에 대해 갖는 고민은 예측 불가능에 더해 거의 공포에 가깝다. 그리고 뭣보다도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왜 이 젊은이로 하여금 이렇게 비극적인 고민을 하게 하는가.이에 대한 인스턴트 식의 댓글을 보면 그 비극이 얼마나 왜곡되어 나타나는지를 알 수 있다. "되도록이면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합니다. 시험 보러가기 전에 외향적인 사람들과 같이 자주 대화를 하거나 그런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그런 사람인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같이 있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적당히 답을 선택해서 합격하고 나면 다행이라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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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과 자존감 지면기사
내마음의 주인이내게 있느냐 타인에게 있느냐가인생을 결정한다자존심 버리고 자존감을 키울때내마음의 진정한 주인은비로소 내가 되는것이다'자존심'과 '자존감'은 글자 하나 차이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본질적으로 보면 판단기준의 문제이다. 내 마음의 주인이 '나'냐, '타인'이냐의 문제이다.자, 이 둘의 관계를 풀어보자.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이다. 자존심은 남이 세워주는 것으로 상대에게 존중 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무시당하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은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자존감은 내가 세우는 것으로 자신에게 존중 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실망하면 자존감이 손상된다고 느낀다. 결국 자존심은 외부 평가나 비교에 민감한 관점이고, 자존감은 외부평가는 아무런 상관없이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의 관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존심 때문에 패망한 인물도 많고, 자존감 때문에 성공한 인물도 많다.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두 인물을 분석해보자.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킨 인물로 8년 동안 70여 차례의 싸움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무적의 전사였다. 팽성전투에서는 고작 5만 명의 군사로 11배에 달하는 56만의 유방군사를 무찌른 천하무적이었다. 그러나 항우는 의심 때문에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은 부하로 등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죽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대단했던 항우가 유방과 한신의 군대에 포위당해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오자 항우가 실성한 사람처럼 얘기했다. "큰일 났군, 큰일 났어. 유방이 초나라를 점령한 모양이군.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많은 초나라 사람이 한나라 군영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사면초가라는 말은 이때 나온 말이다.그 많던 병사들이 죽고 항우의 곁에는 20여명의 병사들만 남아있을 때 부하인 정장이 강 기슭에 배를 댄 후 속히 배에 오르라고 항우를 재촉하면서 말한다. "강동은 비록 작지만 1천여 리가 넘는 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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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꿈' 지면기사
꿈은 타임머신 이다단군에서 현재까지 5천년을단숨에 뛰어넘고 지구 끝이라도순식간에 연결해 주는 통로다한국인은 꿈을 이룰 줄 아는창조적 민족, 이제 무슨꿈을 꿀까아프리카에 머물며 연구를 하던 서양의 한 인류학자가 어느날 아침 소란스런 소리에 잠을 깼다. 옆집에 살던 원주민이 빌려간 닭을 내놓으라며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그는 "어젯밤 꿈에 자기에게서 닭을 빌려갔으니 돌려달라"고 했다. 이 원주민에게 꿈은 현실과 구별되지 않는 세계였던 것이다.중국에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이란 멋진 고사성어가 있다. 하지만 남가일몽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의 꿈'에 비한다면 그 스토리로나 교훈적 의미로 봤을 때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조신의 꿈 이야기는 인생의 허무를 주제로 한 '꿈의 문학'으로서 한국에서는 그 원조가 되는 설화다. 승려 조신이 속세에 있는 김 태수 댁 규수를 보고 반해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서는 그녀와 40여년을 같이 살며 자식을 다섯이나 두었으나, 살림은 몹시 가난해 나물죽조차 넉넉지 못했다. 그러다 15세 된 큰 아이는 굶어죽고 말았다. 조신이 깜짝 놀라 꿈을 깨고 보니, 날은 이미 저물어 밤이 이슥히 깊어가고 있었다.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은 조신은 그뒤로 김랑에게 반했던 마음을 깨끗이 씻고 불도(佛道)에만 힘썼다는 이야기이다.우리 민족에 면면히 내려오는 '단군신앙'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꿈의 힘이었다. 솔거가 단군화상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꿈속에서 단군할아버지를 봤기 때문이고, 정훈모 선생이 단군석상을 구월산에서 모셔왔던 것도 꿈을 꾼 결과였다. 또 계룡산 일대에 있던 단군전 역시 모두 꿈을 통해 이루어졌다. 일제강점기 이진탁 선생은 아동들의 훈학에 힘쓰다가 단군의 현몽을 얻어 작산에 최초의 단군전을 지었다. 해방후 남예훈 여사는 단군의 현몽을 얻어 단군전을 착공했고, 꿈에 보았던 모습대로 영정을 그려 모셨다. 그 뒤에는 대전의 한학자 조병호 선생이 꿈을 꾸고 그 날로 보령 성주산에 가서 환인 환웅 단군의 석상을 찾아서 모시기도 했다.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