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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어렵다고 자식들 밥그릇부터 빼앗겠다고요?

    경제 어렵다고 자식들 밥그릇부터 빼앗겠다고요? 지면기사

    초등학교시절 숨어서강냉이죽을 먹던 상처나허기져 눈칫밥 안먹겠다던외환위기 시절…그 아이들의 아픔더는 되풀이돼선 안된다최근 경기도는 내년도 예산을 세우면서 무상급식 예산 860억원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고 기다렸다는듯 인천시와 경상남도도 내년부터 무상급식을 확대하려던 계획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뒤이어 경상북도와 대구시도 무상급식 대상을 더는 늘리지 않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그 이유는 한결같이 세수 부족에 따른 살림살이 어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경제침체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예산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삭감 대상 1호가 급식 예산이어야 하는지는 다시 짚어봐야 할 것 같다.60년대 중반 내 초등학교 시절에도 도시락은커녕 아침밥도 제대로 못먹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 급식으로 강냉이 죽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는 당시 어린 눈으로 보기에 정말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이 소리를 내면서 타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던 누런 강냉이 죽이 설설 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철없던 나는 그 죽이 먹고 싶어서 안달을 부렸지만, 죽을 받아먹는 친구들은 우리들과 눈을 못 맞추고 슬금슬금 피해 고픈 배를 채우는 모습을 보였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0년이 더 지나 만난 한 동창은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속에 그 시절을 회상하며 고픈 배의 설움보다 쭈그리고 앉아 강냉이 죽을 먹을 때 친구들의 눈길이 그리 서러웠다고 털어놓았다.외환위기 시절 당장의 경제 위기는 우리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 해체를 가져오고 많은 결식아동을 양산했다. 당시 지역 시민단체들은 결식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식사 제공이나 바우처 제도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많은 아이들은 차라리 배를 곯을지언정 그 프로그램에 참여를 꺼려 이유를 물으니 '창피해서'라고 했다. 이 아이들의 창피해서라는 것은 '부끄럽다'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는 자기 존재를 흔드는 자존감의 문제이다. 밥을 앞에 놓고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이런 정책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 제발 한자어를 존중하자

    제발 한자어를 존중하자 지면기사

    언문일치를 향한500년 역사를 되돌리려는한자관련 정책과 법안들초등교과서 한자 병기는교육과 역사의 후퇴한자어 배척은 안된다서울시교육청과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의 한자교육 강화 정책안은 한자 병기와 혼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의 예로 설명하자면, "농업은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하여 식물이나 동물을 기르는 산업을 말한다"라는 표현을 "농업(農業)은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必要)한 물건(物件)을 생산(生産)하기 위하여 식물(植物)이나 동물(動物)을 기르는 산업(産業)을 말한다"라고 한자 병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農業은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必要한 物件을 生産하기 爲하여 植物이나 動物을 기르는 産業을 말한다"라는 한자 혼용으로 가기 위한 전단계 방식이다. 한자 혼용이 아닌 한자 병기 방식이라도 쉬운 글말 쓰기를 위해 노력해 온 역사를 되돌리는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왜 그런가 곰곰이 따져 보자.첫째, 한자 병기는 비록 한자를 괄호 안에 넣는다 하더라도 언문일치 정신이나 효율적인 소통을 거스른 것이다. 인류의 문명사는 입말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기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소통하게 하는 언문일치를 향해 싸워 온 역사다. 유럽이 상류층만이 쓰던 라틴어를 버리고 쉬운 영어 쓰기를 해 온 것도 그러하며 중국이 경전에서 쓰는 고전문에서 좀 더 쉬운 백화문으로 바꾸고, 백화문에서 다시 간결한 간체자를 만들어 쓴 것도 그런 흐름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도 세종 임금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여 그 기틀을 마련했고 한글전용이라는 언문일치를 실제 삶 속에서 온전히 이루는 데 500년 이상이 걸렸다. 이러한 언문일치 역사는 자유와 평등을 이뤄온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해 왔다.한자 병기는 한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정보이며 오히려 자연스러운 소통을 방해할 것이다. 설령 한자를 안다 해도 표기 양 자체가 두 배 가까이 늘어 판독과 이해의 경제성이 떨어진다. 영어도 라틴어에서 온 낱말이 무척 많은데 그것을 괄호에 넣는다고 생각해 보면 이러한 병기가 얼마나 우리의

  • 우리가 원하는 미래, 역사에서 배우자

    우리가 원하는 미래, 역사에서 배우자 지면기사

    역사에 대한 외경심이 강한민족만이 아름답고 가치있는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나갈것이다최근에 왕조실록이라 할 수 있는대통령기록이 사라졌다고 하니우리 역사에 부끄러울 따름이다한국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역사전쟁이 한창인데 우리는 여유롭게 무장해제를 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불안하기만 했다. 요즈음 들어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에 대한 전망의 능력은 과거에 대한 지식에 비례한다"고 말한 바 있다. 더구나 연일 뉴스에 등장하는 현실에서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물론 종교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에게 도대체 진정성이라는 게 있는가 하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진정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무엇보다 사실대로 적고자 노력했다. 직필을 중시했던 우리의 역사관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문화, 한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일이라 하겠다. 걸핏하면 되풀이되는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 사건이나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국의 것으로 편입시키려는 의도 등은 우리의 직필관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사실 역사서술에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만을 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는 일이다. 사실을 왜곡하여 미화 또는 폄하하지 않고 후세를 위해 그대로 적고자 했던 강한 의지 속에 우리 역사에서는 당대의 업적은 당대에 써 남길 수 없는 것이 법도가 돼 왔다.매우 효성스러워 아버지 능 옆에 미리 자기 자리를 정해 놓기까지 했던 세종은 '태종실록'이 완성되자 한 번 보고 싶다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파란 많았던 아버지의 일대기인지라 보고 싶었음직하다. 이에 우의정이었던 맹사성은 "전하가 보시더라도 아바마마를 위하여 고치지도 못할 것이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후대의 사관들이 의구심이 들어 그 직책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할 것이니 보일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또한 세종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오늘 일은 없었던

  • 차세대 환경교육 제자리 찾기

    차세대 환경교육 제자리 찾기 지면기사

    기후변화 등 글로벌 환경문제우리에게도 책임 커졌으므로이젠 학생들에게 어려서부터방학중 환경봉사나 체험 통해환경에 대한 올바른 의식갖도록체계적인 실천교육 반드시 필요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유학을 시작할 때 환경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복사기가 흔하지 않을 때여서 각종 자료 복사는 학교 주변의 복사 전문점에서만 가능했다. 수업자료 복사를 위해 복사 전문점을 찾은 나에게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여러 대의 복사기가 양쪽에 놓여있었는데 한쪽에는 사람이 한두 명 있고 다른 쪽에는 학생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학생들이 몰려있는 곳의 인쇄용지는 재생용지라는 설명이었다. 양쪽의 가격이 동일하다는 설명을 들은 나는 깨끗한 복사용지가 있는 곳으로 가서 복사를 마쳤다. 복사를 마치고 긴 줄에 있는 동료에게 깨끗한 종이도 똑같이 5센트이니 그 쪽에 가서 복사하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수업자료 복사는 재생용지를 써도 아무 문제가 없어서 재생용지를 자주 이용한다고 했고, 이래야만 재생용지가 잘 유통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나는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몸소 실천하는 그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점차 유학 생활을 하면서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활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짧은 기간 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의 환경 인식은 매우 편협적이다. 환경이라는 것이 그저 개발을 반대하는 것, 또는 개발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이제 우리는 환경에 대하여 똑바로 살펴보고 미래를 책임지게 되는 차세대들에게 올바른 환경교육을 해야 할 때이다.첫째로, 왜곡된 환경 인식은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동안 경제 발전을 이루다보니 주변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급기야 이러면 안 되겠다는 각성이 일어나게 되었고 환경과 관련된 시민단체들이 여기저기에 만들어졌다. 이러한 와중에 시민사이에서의 갈등도 심각하게 생겨났다. 환경을 고려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발을 억제하는

  • 잘 늙어가는 길

    잘 늙어가는 길 지면기사

    은퇴후 해오던 일이나주변사람들과 관계 정리하고오로지 자신에 몰두할 수 있는건내면과의 깊은 대화의 결과이다인생의 가장 젊은날인 오늘이결국 남은 인생길을 결정하는것얼마 전 대학 교수직을 조기 퇴직하고 전남 고흥에 둥지를 튼 지인을 만나고 왔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4시간, 다시 승용차로 40분 정도 거리의 작은 마을에서 그는 살고 있었다. 그의 집은 전원생활하면 으레 떠오르는 서양풍 전원주택도, 고풍스러운 한옥도 아니고 그 마을 네댓 채 집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33㎡여의 어촌주택이었다. 집주변 작은 공터에서는 고추와 상추, 오이, 토마토가 자라고, 오가는 길섶에는 백일홍, 봉숭아, 채송화 등 오래전부터 보아온 꽃이 한창이다. 툇마루에 앉으니 앞이 툭 트인 가운데 작은 섬이 오밀조밀 바다풍경을 그리고, 작은 만 가장자리는 해송이 울울창창하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어촌 풍경이 고스란히 앞마당을 채우고 있다. 부인은 아직 출가 전 자식들 부양으로 서울살이를 하고, 남편 혼자 낙향을 해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그를 보며 우리 모두는 그의 용기와 결단, 그리고 그의 선택에 동의해 준 가족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박수를 보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멀지 않은 날 자신에게 닥치는 늙음의 시간과의 조우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 싱싱한 회접시를 앞에 놓고 소줏잔을 기울이며 고흥살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독일 유학을 포함 30여년 연구와 가르침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이 그렇게 살아왔는데, 어느날 문득 국내 유수 대학 교수라는 껍데기 속의 낯선 자신과 대면하면서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고, 아쉽고, 허망한 생각이 들어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기 퇴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 후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 후 살 곳을 정하고, 집을 마련하고 그리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 단출한 삶을 10년간 충분히 즐기고 그 후는 다음 다시 생각할거라며 구릿빛 얼굴에 행복한 웃음을 보인다. 진짜 행복해 보인다.리차드(Reich

  • 한글의 편리성과 국정원 댓글 사건

    한글의 편리성과 국정원 댓글 사건 지면기사

    세종대왕이 이룬 위대한 문자혁명사람끼리 소통하자는 '소박한 꿈'국정원 사태 민주주의 근본 위협진실 가로막는 잘못된 역사 기록일본의 독도 왜곡과 다를바 없어아이들에 무엇을 가르칠 것 인가?광화문 근처에 연구실이 있어 광화문 광장을 자주 찾는다. 요즘은 한 손에 책을 들고 서 있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서면 눈물이 흐른다. 양심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똑같은 심정이겠지만 국가정보원 댓글 개입 문제에 대해 한글학자로서 더욱 걱정스런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편리한 한글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더욱 무서운 것은 고등학생까지 나서서 시국선언까지 했지만 댓글 사건이 언제 일어났느냐는듯이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세종대왕 앞에 이렇게 나직이 소리쳐 본다."대왕이시여. 당신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쉽다는 한글, 소통을 위해 만들었다는 편리한 한글이 소통은 커녕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키고 민주주의의 근본을 뒤흔드는 도구로 사용되었나이다. 어찌 하오리까?"물론 모든 언어는 양면성이 있는 것이니 어찌 한글이 악한 도구로 쓰였다고 한글과 한글을 만든 세종을 탓할 것인가? 한글은 디지털 시대의 욕망의 해방구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댓글을 달 수 있는 여건을 한글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조차도 자유롭게 참여하는 댓글 문화가 열렸다. 그만큼 악플(악한 댓글)로 인한 부작용도 심심찮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제 댓글은 나이와 학력과 계층을 넘어선 국민 대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익명성에 힘입어 의사 소통의 주된 디지털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다른 언어권보다도 더 빨리 그런 문화가 자리 잡힌 것은 디지털 공간에서 잘 어울리는 한글의 힘일 것이다. 그러한 한글이 온 국민의 눈과 귀를 어둡게 만드는 거짓 문화의 중심에 놓여 있지 않은가?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동기와 목표가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었다. 소통하고 싶어도 어려운 한자, 한문때문에 그럴 수 없었던 근본 모순을 극복하게 해 주었다. 세종은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가

  •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 지면기사

    정치가·기업인·교육자·부모…자기일 충실할때 가장 아름답다행복한 삶을 위해서는재능이나 개성만으론 안되고성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서둘지말고 지혜롭게 기다려야아시아나 항공기 승무원들의 영웅적 자세에 대한 보도는 우리를 안도하게 하고 기쁘게 한다. 그들은 물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지금도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에 떳떳하고 편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일순간 몸을 피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더라면 쏟아지는 비난과 함께 얼마나 자괴감에 시달릴 것인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많다. 음악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운동이나 독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공부할 수 있어 늘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우리는 행복하다. 더구나 해야 할 일을 다 했을 때 더욱 보람을 느낀다. 정치가, 기업인, 교육자, 성직자 등은 물론 부모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고 학생이나 자녀가 자기 할 일을 충실히 실천할 때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할까.재능(氣)과 성찰을 통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먼저 재능, 즉 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뿔 있는 짐승은 윗니가 없고, 꽃이 좋으면 열매가 시원찮다. '천불여이물(天不與二物)'이라 하여 하늘이 두 가지를 주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씩 재능이 있음을 의미한다. 미인박명 · 미인박덕이라 하여 얼굴이 예쁘면 단명하거나 덕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똑똑한 자들은 참을성이 부족하고 교활해지기 쉽다고도 한다. 이를 깊이 깨달아 자신이 지닌 재능이나 기량을 계발하지 않은 채 남을 따라가고 닮으려 노력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너는 왜 누구처럼 못하느냐?'라는 뜻을 지닌 '엄친아'라는 말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자신의 개성을 찾지 못하고 남과 같은 꿈만 꾸어야 한다는 말인가.'장자'에 동시효빈(東施效嚬)이라는 고사가 나온다. 춘추시대 월나라에 서시(西施)라는 미인이 있었다. 가슴 병을 앓은 그녀는 증상이 나타날 때

  • 대한민국, 교육은 죽었다!

    대한민국, 교육은 죽었다! 지면기사

    비정규직 10만 대학강사와실업자인 박사인력 특채해초중고 정규과목 등에 투입수준높은 교육기회 제공하고실력 갖춘 스타교사들 발굴이동식 수업할 수 있도록해야"도대체 한국에는 학원과 PC방이 왜 그렇게 많습니까." 필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한국에 교환교수로 와 있는 외국교수들이 가장 놀라면서 하는 질문이다. 이런 얘기도 많이 한다. "시내버스보다 스쿨버스가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어딜 가나 길가에 항상 스쿨버스들이 서 있습니다." 학생들을 실어 나르려고 길가에 주차해 있는 노란 색 학원버스들을 스쿨버스로 알았던 모양이다. 참 씁쓸하다.현재 대한민국 교육에는 공교육은 없고 사교육만 살아있다. 대한민국 가정에는 터무니없는 사교육비로 멍들어가는 아이의 상처와 하나밖에 없는 자식 교육비도 대지 못하는 경제적 무능력함에 절망하는 부모들로 가득하다. 자식들의 사교육비를 대느라 등골이 휜 부모들은 사는 재미가 없다. 대한민국 부모에게 가장 오싹한 '등골 브레이커'(가격이 비싸 등골을 휘게 만드는 제품)는 사교육비다. 교과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사교육비는 2007년 이후 해마다 20조원을 넘고 영유아 교육비, 방과 후 학교, 어학연수 등을 포함하면 40조 가까이 된다는 통계도 있다. 사교육비 세계 1위다.몇 달 전 세계적 컨설팅업체 매킨지가 '제2차 한국보고서 신성장공식'에서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악의 축은 '가계 부채'와 '교육비'라고 지목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불행을 막아 줄 출구정책은 보이지 않는다.'돈 안 드는 개운한 교육'은 살아있다…대학을 활용하고 스타교사를 만들자수요자(학생과 학부모)들은 다양한 사교육을 통해 눈높이가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다. 그러나 공급자(교사)의 수준은 제자리걸음이다. 도대체 이 간격을 좁히지 않고는 사교육을 포기하라는 말을 할 수 없다.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일 불균형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사교육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현재 10만 명이 넘는 대학 강사를 활용하면 된다.초중고

  • 내 이름은 셋이었답니다. 그 시절

    내 이름은 셋이었답니다. 그 시절 지면기사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소위 '운동'이라는것을 하려면내신분을 드러낼 수 없었던 시절보안과 형사를 보고 도망쳤던기억들이 정국이 어수선해지면꼭 꿈을통해 의식밖으로 나온다나는 한때 이름이 셋이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촌스럽기 그지없거나 주로 기생 이름을 가진 친구들 중 가명을 쓰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내 경우는 좀 다르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소위 ' 운동' 이라는 것을 하려면 내 신분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학교 내에 경찰 상주가 당연시되고, 시국 관련 이야기를 하려면 따라붙는 사람이 있는지 주변을 살펴야했고, 전화 통화 중 자그마한 소음이라도 들릴라치면 도청에 긴장을 해야만 했던 시절이니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중앙정보부에서 이루어졌던 수많은 가혹 행위와 인권 탄압 소식은 국민들로 하여금 일상생활을 긴장 속에서 살도록 했고,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유지조차 특별한 용기와 안기부에 끌려가 치도곤을 각오해야만 했던 시절, 본인 이름조차 제대로 쓸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국가영역과 시장(경제) 영역만 존재하던 그 시절, 시민사회 영역 확장과 시민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활동을 하던 사람 중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가명을 썼다. 지금 생각하면 참 비겁한 행동이었지만 그 당시로는 기관원의 눈을 속이면서 세상 일에 참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나는 세 개의 이름을 썼다. 그 후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지방정부에 직·간접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그 때 내 이름 세 개가 문제되었다. 그 동안 단체활동 경력에 올라 있는 이름 '한은경'과 주민등록 이름 '한옥자', 그리고 후원금을 내던 이름 '한여해'는 동일인지, 다른 사람 3인인지 참으로 황당한 노릇이었다. 그 당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그리 살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물론 무용담으로 자랑하고 싶지도

  •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의 상처와 믿음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의 상처와 믿음 지면기사

    어려운 형편에 도시락 못싸오자친구들 밥 한술씩 떠서 모아 줘되레 과식했던 고교시절 추억…어렵고 힘든 이웃들 볼때마다배고픈 벗을 잊지않고 챙겼던'십시일반 미덕' 그때가 그립다최근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역장이 한 달 가까이 입원을 했다. 2003년 영등포역에서 아이를 구하고 잘려 나간 두 다리에 생긴 심한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병문안을 갔더니 스스럼없이 다친 곳을 보여 주며 의족 탓에 생활하는데는 큰 불편이 없다고 씩 웃었다. 문득 그 때 목숨을 구한 아이는 얼마나 커서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궁금했다.글쓴이는 김행균씨의 철도고등학교 같은 반 동창이다. 3년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탓에 형제나 다름없는 친구다. 철도고등학교는 지금은 없어지고 철도전문대학으로 바뀌었지만 내가 입학하던 1970년대 후반에는 전액 국비 장학금으로 배우는 탓에 전국 각지에서 가난한 수재들이 몰려들었던, 철도공무원을 양성하는 특별목적고등학교, 그야말로 특목고였다.글쓴이가 다녔던 구내업무과는 50명 딱 한 반이었는데 다들 가정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 고만고만했다. 학교 근처 사설독서실에서 다녔던 나, 신문보급소에서 다니던 친구들 등등을 포함해 몇몇은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남은 숟가락이나 젓가락과 함께 도시락 뚜껑에 밥 한 술씩을 모아서 함께 먹었다. 그런데 참으로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곤 했다. 도시락을 싸온 친구들 밥보다 안 싸온 친구들의 도시락 뚜껑밥이 더 많은 것이었다. 어렵고 힘든 이웃을 볼 때마다 과식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김 역장이 아무 거리낌 없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도 배고픈 벗을 챙기던 십시일반 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때 함께 도시락을 나눠 먹었던 친구들 대부분은 전국 각지에서 승무원으로, 역장으로 사람들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열의 한 술 밥이 한 그릇 푼푼하다"라는 우리 속담과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사자성어가 늘 반갑고 고마운 이유이기도 하다.속담이나 사자성어나 모두 비슷한 의미이지만 미묘한 뜻 차이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