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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象牙塔)에서 취업기관으로… 지면기사
진리·학문 탐구 지성의 전당민주화 후 설립 쉬워져 우후죽순본질 퇴색 부 축적 수단 변질교육부는 취업률로 대학평가예술·문학·사학 사라질 판구조조정·퇴출로 본모습 찾아야상아탑이란 세속적인 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예술지상주의 입장을 취한 19세기의 프랑스 낭만파 시인 알프레드 비니를 평론가 생트뵈브가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사용한 말에서 비롯되었다. 그 후로는 대학 또는 대학의 연구실을 지칭하는 말로 전용되었고 현실과 거리를 둔 정신적 행동의 장소라는 개념으로 유럽 대학들이 상아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말인즉 대학은 학문을 탐구하고 국가와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연구를 하도록 하는 공적인 기관인 것이다. 당장 눈앞의 돈벌이를 목적으로 취업할 직장인을 찍어내는 수단이 아닌 것이다.대한민국의 근대적 형태를 갖춘 대학은 일제 강점기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곤고히 하려 세운 경성제국대학을 비롯해 연희전문 보성전문 이화학당 혜화전문 등이 시작일 것이다. 대부분 일제의 교육억제와 탄압으로 전문학교로 시작해서 일제강점기 후에 연차적으로 대학으로 승격하게 된다. 한국전쟁 전 20여개의 국립 사립대학이 전쟁 후 70여개로 늘었고 민주화 후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우후죽순 대학의 수가 마구잡이식으로 불어나 현재 300여개가 넘는 대학이 들어서 있다. 학령인구의 증가와 재수생의 사회문제 특히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교육열이 대학의 양적팽창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었지만 질보다는 양적으로만 늘어난 우리의 대학문제는 커다란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뇌관이 되고 있다. 실제로 대학을 나온 고학력 실업자는 늘어나고 고등학교 졸업수준의 노동력은 매년 3만명 정도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현실이다.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대학은 식민지를 겪고 전쟁을 넘어 개발시대에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지금은 또 무엇인가! 필자가 유년시절을 보낸 60, 70년대에 어머니는 내게 흥얼거리듯 습관적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나오고 판검사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전쟁으로 최악의 빈곤국가가 되어서도 자식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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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그 시시한 모든 것들 지면기사
청소년 대상 인성교육은성실·정직·양심·의사소통 등추상적인 내용들 보다는실생활에서 우리의 행복을갉아먹는 인간성 문제점을조목조목 짚어볼 필요가 있다얼마 전 교실에서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상에서 우리를 화나게 하거나 짜증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조별로 분석도 해보고 해결책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뭣보다도 학생들이 내 놓은 항목들이 얼마나 많은지 200여개가 넘을 정도로 그 양이 대단했다. 개수가 많아 영역별로 분류를 하기도 어려웠지만, 대체로 학생들의 생각은 인간성이나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나 길거리, 아파트, 지하철, 식당 등의 공공장소에서의 경우처럼 내적, 외적인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설문의 주제를 약간 비틀어서 '현대사회에서 놀부 되기'라는 식으로 우리 스스로가 남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자고 했는데 학생들은 상당히 신이 난 듯 했다. 몇 가지를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력 착취하기, 새치기하기,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물 내리지 않기, 자기 할 말만 하기, 이간질하기, 앞뒤가 다르게 행동하기, 뒤에서 험담하기, 다른 사람 말 끊기, 다 같이 밥 먹고 계산할 때 빠지기 등. 물론 학생들이라서 학교에서 발생하는 대리출석이나 표절 등도 있었지만 아마 이런 물음을 일반인이나 직장인들로 확대했다면 우리 사회의 거대한 인성문제 지도를 그려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사회가 괴로워하고 피곤해하는 것은 계층 간의 갈등이니 복지니 하는 거창한 문제 이전에 이러한 시시한 인성의 모든 것들 때문인지도 모른다.이 설문이 있은 후 가족들 사이에서 겪는 인성 문제에 대한 항목을 다시 제시해보라고 했는데 가정에서도 상당한 양의 인성 문제가 도출되었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유사한 문제는 그대로 잔존해 있었다. 역시 가정에서도 서로에 대한 존중이나 돌봄, 또는 배려의 부족 탓이 컸고 우리 자신의 이기심이 그 중심을 차지했다. 이전 수업에서의 폭력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항목들에 대한 답도 내막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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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리더, 현명한 리더 지면기사
조직 구성원들에게 질문을 통해몸과 마음, 머리를 쓰게하고꿈을 만들어 비전을 제시하며인간존중과 솔선수범으로변화를 주도하는 영향력을발휘할 줄 알아야 '진정한 리더'미국의 경영컨설턴트인 해리가 기업의 인재 채용형태를 다년간 분석해 도출해낸 법칙이 있다. 해리의 법칙(Harry's Rule)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고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법칙이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리더들은 자기 부하들보다 뛰어나게 일을 잘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부하들의 재능이 자신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들을 내치기보다는 오히려 등용함으로써 큰 일을 이룩할 수 있었다. 유방은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한신, 장량, 소하를 기용하고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우는 자신보다 유능한 부하를 내쳤기 때문에 비참한 결말을 맞았던 것이다.리더는 세가지 타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멍청한 리더: 모든 일을 자신이 하는 사람이다. 멍청한 리더도 처음에는 업무를 아랫사람에게 위임하려고 시도하지만 아랫사람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결국에는 자신이 모든 일을 하는 리더이다. 업무에 투여하는 물리적인 시간은 많지만, 성과는 한정적이며 조직은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구조이다.둘째, 보통의 리더: 구성원의 몸만 쓰는 리더이다. 이 타입은 구성원을 단순한 심부름꾼으로 전락시키는 사람이다. 이런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활력이 없다. 마지못해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이다. 물론 발전도 제한적이고 성과도 미미하다.셋째, 현명한 리더: 구성원의 머리와 마음을 모두 쓰게 하는 리더이다. 지시 받고 행동하는 것에 익숙한 조직은 통상적인 일조차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지시가 없으면 삼척동자도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해도 구성원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리더의 잘못이다.누구나 현명한 리더가 되고 싶어한다. 어떻게 하면 구성원들이 몸은 물론 머리와 마음을 쓰게 할까? 정답은 질문이다.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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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암각화와 윷판 바위 지면기사
윷판암각화는 최소 1만년전이란오랜 역사와 아메리카대륙에이르는 넓은 분포를 갖고 있어전세계 선사시대 어느 암각화보다가치가 매우 높아 파괴 되지않게각지자체와 정부는 적극 보호해야대통령께서 반구대암각화를 생각하면 '저녁에 잠이 안 온다'고 할 정도로 강한 애정을 표명했다. 대통령의 관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로 이어서 문화체육관광부나 문화재청 등에서 정부 대책들이 신속하게 나오고, 카이네틱댐 설치안이니 반구대보존위원회니 심지어는 반구대에 관한 정기간행물까지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선사문화 유산에 대한 썰렁했던 분위기에 비해 볼 때, 이런 뜨거운 관심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하지만 우리의 선사시대 유적으로 반구대암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선사시대 한반도의 2대 유적으로 고인돌과 윷판형 암각화를 들고 싶다. 고인돌은 선사시대의 무덤이나 제례의식과 관련된 종교건축물로 추정되는데, 한반도에만 약 3만5천기가 남아있다. 이는 전 세계 고인돌의 40%에 달하는 것으로, 만주 지역까지 합산한다면 전 세계의 70%가 우리 조상들의 거주지역에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그러나 이보다 더 놀랍고 신기한 것은 윷판형 암각화이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우리만의 독특한 바위그림이다. 그 숫자는 제대로 집계된 적은 없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까지 200여개소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체계적으로 조사해 본다면 이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를 보일 것이다.윷판형 암각화는 윷놀이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고인돌 위에 새겨진 것도 몇 점 발견되었다. 대체로 지금까지는 대부분 윷놀이를 위한 것이 아니면 아들을 기원하는 성혈(性穴)의 민속으로 간주했고, 기껏해야 철기시대의 별자리 정도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역사나 의미를 분석해 보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해와 달과 별의 운동 규칙 및 사방과 사계(四季) 등 고대인의 세계관과 종교관을 담고 있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사실 윷놀이는 같은 동아시아지역에는 없고, 오히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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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연출을 바라며… 지면기사
경제는 침체되고사상은 둘로 나뉘어극단적 대립이 춤을 추고…모든 연출이 무대를 상당히어지럽게 만들어 버렸기에이젠 보듬어주는 연출 필요연극이라는 예술이 탄생한 것은 대륙과 나라마다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연극경연대회를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는 기원전 3세기쯤으로 축제의 성격을 띤 부여의 영고와,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띤 고구려의 동맹과 예의 무천, 마한의 시월제 등이 있다. 이때는 농경사회로 사회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의식주 모든 것을 하늘에 기대며 신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며 춤추며 노래 부르는 축제가 연극으로 발전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연극 또한 희곡과 코러스 그리고 넓은 마당이 있으면 되는지라 연출의 기능이 발휘될 곳이 별로 없었고 연출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연극은 역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발전하였고 19세기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전기가 발명되고 대량 생산과 함께 사회의 중심이 왕이나 귀족 따위가 아니라 나와 가족, 우리라는 인간보편의 가치가 중심이 되어 한층 복잡한 양상을 이루게 된다. 이때 등장한 것이 연출이라는 기능이고 역할이며 직업으로서도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비단 연극뿐 아니라 탄생한지 100년 조금 넘은 영화, TV 쇼 행사에서도 연출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연출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연출을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공연 예술이나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희곡 또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연기, 장치, 의상, 조명, 소품, 음악 따위의 요소들을 종합하여 통일성과 독창성을 갖춘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거나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을 연출이라 할 것이다. 작품의 주제 의식은 연출가의 연출을 통해서 드러난다.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이야기가 관객에게 전혀 다르게 비춰질 수도 있다. 필자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무대도 늘 누군가에게서 연출되어져 왔다.내가 태어난 60년대에는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연출지시가 내려지고 배우인 국민들은 따르고 또 따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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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제 대학이 나설 때다 지면기사
정부가 인문학에 대해 더이상관심과 지원을 안할때를 대비현재 인문학 르네상스의좋은 기회를 살려야 하고이제부터라도 주변의 이웃과사회문제에 적극 관심 가져야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인문학의 향연이 펼쳐진다. 교육부는 2013년 시민인문강좌지원사업에 15억원의 예산으로 57개 과제를 선정하여 9월부터 전국 도시에서 시민과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 속에는 10월 29일부터 일주일 동안의 '인문주간' 행사도 포함된다. 또한 3회째를 맞이하는 세계인문학포럼(WHF)이 광역자치단체를 중심으로 10월에 예정되어 있다. 이 모든 인문학의 잔치는 인문학이 대학 밖으로 나와 시민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인문학 대중화'의 일환으로 기획되어 있다.인문학 대중화는 지방 정부의 중요한 사업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수원시의 경우 '인문도시 수원' 만들기 사업이 지자체 차원에서 2년간 이어져 왔고 내년에도 계속된다. 경기평생교육진흥원의 노숙인 인문교양교육사업과 같이 소외계층 대상의 인문학지원사업을 통해 인문교육의 질적 다양성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가 인문학에 대해 갖는 관심, 그에 따른 인성교육의 강화는 우리사회가 인문학을 보는 관심이나 열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한때 인문학이 천대받던 시절, 목소리를 높이며 인문학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던 때가 있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과히 인문학 천국의 문에 와 있다고나 할까, 대략 그런 분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속내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평화롭지 만은 않다. 경쟁 사회이다 보니 대학들마다 정부나 지자체의 인문학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바삐 움직이며 선정 시기에는 희비가 엇갈린다. 선의의 경쟁이긴 해도 인문학 교수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인문학 교수들이 과제를 얻어내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남들이 인문학을 알아주기만을 기다리는 자세에서 벗어난 그 자체로 인문학은 반쯤 성공했다.그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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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읽으면 기회가 잡힌다 지면기사
위기는 발생 전 신호 보내9·11테러 쓰촨성 지진신중 대처했다면 피해 줄였을 것베이비부머 713만명 은퇴 시작자식에 헌신만… 노후준비 못해미리 상황 감지 기회 만들어야2001년 9월 11일 미국을 경악하게 하고, 세계를 벌컥 뒤집어놓은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에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첩보를 입수했다. 9·11테러가 터지기 전에 FBI가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알카에다 조직이 민간항공기를 납치해서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을 공격하고 백악관까지 들이받는다는 첩보가 입수된 것이었다. 당시 FBI는 이 첩보를 국가정보위원회에 이첩했고, 국가정보위원회에서는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라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2008년 중국 쓰촨성에 지진이 발생한 것 역시 기억할거다. 뉴스 보도에서 하루종일 댐과 산이 무너지고, 건물이 무너지면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보도했는데, 본인이 정작 놀란 것은 쓰촨성에 지진이 터지기 3일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면 두꺼비떼 수십만마리가 마을을 덮치면서 이동을 하는 사진이었다. 두꺼비떼는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마을을 지나갔기 때문에 밟으면 두꺼비가 깔려서 발을 디딜 틈이 없어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두꺼비떼가 지나가고 3일후에 쓰촨성에 지진이 터졌다는 사실이다.우리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가 주는 신호를 읽지 못하면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두꺼비를 미물이라고 하지만, 위기가 주는 신호를 읽으면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위기는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다. 만약 위기는 터지기 전에 신호를 보낸다는 것을 감안하여 좀더 신중하게 대처했더라면 9·11테러의 상황은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이고, 중국 쓰촨성의 지진 피해는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위기는 터지기 전에 신호를 보낸다는 이론이 있다. 그 이론이 '하인리히 법칙'이다. 1930년대 초 미국 한 보험회사의 관리자였던 하인리히는 수많은 보험사고를 분석한 결과 '1:29:300'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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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어렵다고 자식들 밥그릇부터 빼앗겠다고요? 지면기사
초등학교시절 숨어서강냉이죽을 먹던 상처나허기져 눈칫밥 안먹겠다던외환위기 시절…그 아이들의 아픔더는 되풀이돼선 안된다최근 경기도는 내년도 예산을 세우면서 무상급식 예산 860억원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고 기다렸다는듯 인천시와 경상남도도 내년부터 무상급식을 확대하려던 계획은 없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 뒤이어 경상북도와 대구시도 무상급식 대상을 더는 늘리지 않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그 이유는 한결같이 세수 부족에 따른 살림살이 어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경제침체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예산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삭감 대상 1호가 급식 예산이어야 하는지는 다시 짚어봐야 할 것 같다.60년대 중반 내 초등학교 시절에도 도시락은커녕 아침밥도 제대로 못먹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 급식으로 강냉이 죽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서는 당시 어린 눈으로 보기에 정말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이 소리를 내면서 타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던 누런 강냉이 죽이 설설 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철없던 나는 그 죽이 먹고 싶어서 안달을 부렸지만, 죽을 받아먹는 친구들은 우리들과 눈을 못 맞추고 슬금슬금 피해 고픈 배를 채우는 모습을 보였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0년이 더 지나 만난 한 동창은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속에 그 시절을 회상하며 고픈 배의 설움보다 쭈그리고 앉아 강냉이 죽을 먹을 때 친구들의 눈길이 그리 서러웠다고 털어놓았다.외환위기 시절 당장의 경제 위기는 우리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 해체를 가져오고 많은 결식아동을 양산했다. 당시 지역 시민단체들은 결식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식사 제공이나 바우처 제도 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마련한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많은 아이들은 차라리 배를 곯을지언정 그 프로그램에 참여를 꺼려 이유를 물으니 '창피해서'라고 했다. 이 아이들의 창피해서라는 것은 '부끄럽다'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는 자기 존재를 흔드는 자존감의 문제이다. 밥을 앞에 놓고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이런 정책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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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한자어를 존중하자 지면기사
언문일치를 향한500년 역사를 되돌리려는한자관련 정책과 법안들초등교과서 한자 병기는교육과 역사의 후퇴한자어 배척은 안된다서울시교육청과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의 한자교육 강화 정책안은 한자 병기와 혼용을 염두에 두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의 예로 설명하자면, "농업은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하여 식물이나 동물을 기르는 산업을 말한다"라는 표현을 "농업(農業)은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必要)한 물건(物件)을 생산(生産)하기 위하여 식물(植物)이나 동물(動物)을 기르는 산업(産業)을 말한다"라고 한자 병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農業은 땅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必要한 物件을 生産하기 爲하여 植物이나 動物을 기르는 産業을 말한다"라는 한자 혼용으로 가기 위한 전단계 방식이다. 한자 혼용이 아닌 한자 병기 방식이라도 쉬운 글말 쓰기를 위해 노력해 온 역사를 되돌리는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왜 그런가 곰곰이 따져 보자.첫째, 한자 병기는 비록 한자를 괄호 안에 넣는다 하더라도 언문일치 정신이나 효율적인 소통을 거스른 것이다. 인류의 문명사는 입말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기함으로써 누구나 쉽게 소통하게 하는 언문일치를 향해 싸워 온 역사다. 유럽이 상류층만이 쓰던 라틴어를 버리고 쉬운 영어 쓰기를 해 온 것도 그러하며 중국이 경전에서 쓰는 고전문에서 좀 더 쉬운 백화문으로 바꾸고, 백화문에서 다시 간결한 간체자를 만들어 쓴 것도 그런 흐름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도 세종 임금이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여 그 기틀을 마련했고 한글전용이라는 언문일치를 실제 삶 속에서 온전히 이루는 데 500년 이상이 걸렸다. 이러한 언문일치 역사는 자유와 평등을 이뤄온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해 왔다.한자 병기는 한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정보이며 오히려 자연스러운 소통을 방해할 것이다. 설령 한자를 안다 해도 표기 양 자체가 두 배 가까이 늘어 판독과 이해의 경제성이 떨어진다. 영어도 라틴어에서 온 낱말이 무척 많은데 그것을 괄호에 넣는다고 생각해 보면 이러한 병기가 얼마나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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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미래, 역사에서 배우자 지면기사
역사에 대한 외경심이 강한민족만이 아름답고 가치있는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나갈것이다최근에 왕조실록이라 할 수 있는대통령기록이 사라졌다고 하니우리 역사에 부끄러울 따름이다한국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역사전쟁이 한창인데 우리는 여유롭게 무장해제를 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불안하기만 했다. 요즈음 들어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에 대한 전망의 능력은 과거에 대한 지식에 비례한다"고 말한 바 있다. 더구나 연일 뉴스에 등장하는 현실에서 정치인이나 기업인은 물론 종교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에게 도대체 진정성이라는 게 있는가 하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진정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무엇보다 사실대로 적고자 노력했다. 직필을 중시했던 우리의 역사관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문화, 한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일이라 하겠다. 걸핏하면 되풀이되는 일본의 교과서 역사 왜곡 사건이나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국의 것으로 편입시키려는 의도 등은 우리의 직필관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사실 역사서술에서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만을 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는 일이다. 사실을 왜곡하여 미화 또는 폄하하지 않고 후세를 위해 그대로 적고자 했던 강한 의지 속에 우리 역사에서는 당대의 업적은 당대에 써 남길 수 없는 것이 법도가 돼 왔다.매우 효성스러워 아버지 능 옆에 미리 자기 자리를 정해 놓기까지 했던 세종은 '태종실록'이 완성되자 한 번 보고 싶다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파란 많았던 아버지의 일대기인지라 보고 싶었음직하다. 이에 우의정이었던 맹사성은 "전하가 보시더라도 아바마마를 위하여 고치지도 못할 것이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후대의 사관들이 의구심이 들어 그 직책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할 것이니 보일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또한 세종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오늘 일은 없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