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수요광장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효인문학 캠프, 희망의 미래를 만든다 지면기사
지난 8월 15일은 광복절이면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진 날이었다. 바로 정조대왕께서 승하하신 날이었다. 1800년 6월 28일에 돌아가셨으니 212년 기일이 바로 그날이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 일찍 정조대왕과 사도세자의 원찰인 용주사에서 특강이 있었다. 용주사에서는 수원화성오산의 화합을 위한 산수화 상생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청소년을 위한 효인문학캠프를 인근의 한신대학교와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었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제2교구라는 큰 사찰임을 뛰어넘어 우리나라 전 사찰중에서 효찰대본산으로 이름이 높은 절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효인문학캠프를 일부러 효의 대명사인 정조대왕께서 승하하신 날로 잡아 정조와 다산의 삶과 효행을 알리고자 하였다. 그런 마음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웠다. 60여명을 대상으로 효인문학캠프를 진행하기로 기획하였는데 무려 8배가 넘는 500여명이 신청을 하여 어렵게 선발을 하여 진행하고 있다는 교육 담당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이 어려운 주제의 캠프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신청을 하였구나 하고 말이다. 청소년 본인이 직접 신청을 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권유에 의해 신청된 것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이 신청을 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아주 타락하지는 않았다는 반증이었다.오전 7시20분부터 진행된 강의 시간에도 똘망똘망한 눈빛을 발산하는 녀석들은 정조와 다산의 효행과 리더십에 깊이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선의 국왕이 된 정조, 정조를 보좌해서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자 했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삶은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질문도 예리하고 진지하였다. 이 캠프가 이들을 바꾸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자질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 녀석들이 훗날 이 나라를 이끌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아쉬운 시간을 마무리하고 정조대왕의 능인 건릉으로 향했다. 정조의 승하일에 건릉을 참배하는 것이 오랜 일이었기 때문이다.9시가 조금 넘은 그 시간에 융건릉은 고요 그 자체였다. 아침에 비가 많이 왔던 일기 때문이었는지 더욱 고요했다.
-
아폴론의 눈물과 런던 올림픽 지면기사
폭염과 더불어 런던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기록적인 열대야도 우리 선수들의 탁월한 기량에 열광하는 가운데 물리칠 수 있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지난 일요일 장대비를 뚫고 예술의 전당으로 '루브르박물관전'을 보러 갔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신화와 전설을 중심축으로 고대 유물들과 그것을 새롭게 재해석한 후대의 작품들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회였다. 신화란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의 이야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신화를 모티프로 현대적 의미를 재구성해왔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강력한 힘을 지닌 신화 속의 신들에게서조차 사랑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그리고 실수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며 허물투성이인 나 자신을 은근히 정당화해본다.18세기 프랑수아 르무안의 작품 '올림포스'가 시선을 압도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궁전으로 일컬어지는 올림포스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가운데 최고의 신 제우스가 자신의 상징인 독수리를 옆에 둔 채 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그 주변에 결혼의 여신인 아내 헤라, 그리고 제우스의 딸인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있다. 한 편의 작품 속에서 사랑과 결혼과 전쟁이라는 인류 역사의 파노라마를 보는듯하여 몽상에 빠져 있던 중 홀연 '아폴론과 다프네'가 눈에 들어온다. 오비드의 '변신 이야기'의 극적 일화가 묘사되어 있는 아름다운 님프 다프네와 태양신 아폴론의 사랑 이야기. 왜 화살에는 황금 화살과 납 화살이 있는 것일까? 비극적 운명의 사랑 이야기가 여기에서 탄생된다. 활을 만들고 있던 사랑의 신 에로스는 백발백중 명 사냥꾼인 아폴론에게 활을 포기하라는 조롱을 당하자 복수를 결심한다. 에로스는 아폴론에게 황금의 화살을 쏘아 다프네를 사랑하도록 하는 한편 다프네에게는 납 화살을 쏘아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하도록 했다. 사랑에 빠져 필사적으로 다프네를 쫓아다니는 아폴론의 끈질긴 구애가 두려워진 다프네는 아버지인 강의 신에게 자신을 월계수로 변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사랑하는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한 순간 아폴론은 눈물을 흘리며 맹세한다. "지금부터 내 머리는 너의 잎으로 장식하고,
-
'안철수 파워' - 분노를 잃어버린 세대의 반란 지면기사
입에서 젖 비린내가 난다는 구상유취(口尙乳臭)는 1969년 11월 8일 당시 42살이던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가 '40대 기수론'을 주창하고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서자 야당 원로였던 60대 유진산 신민당 부총재가 내뱉은 독설이었다. 1년 뒤 신민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YS와 45세의 김대중(DJ) 의원, 48세의 이철승씨 등 40대 기수 세 명이 대결했다. 2차 결선투표까지 가는 긴박한 경선에서 DJ가 YS를 꺾으면서 40대 기수론은 30여년 지속된 양김시대를 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17년생으로 44세에 집권해 53세였다. 50세인 안철수 돌풍이 이어지면서 표현은 다르지만 기성 정치권의 비판은 안 교수가 백면서생으로 구상유취라는 맥락의 연장선상에 있다. 출마선언도 하지 않은 안 교수가 '안철수의 생각' 출간 직후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예능프로 출연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해 대세론으로 여론조사에서 4년여 부동의 1위인 박근혜 후보를 3.9%p 앞서 48.8%의 지지율을 보여 돌풍이 현실화되고 있다. 기존 정치 불신이 높아가면서 안철수로 대변되는 신진세력의 급부상은 여-야당의 존재와 정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기존의 사고, 기존 관행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정치판에 투영돼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첫째 현상은 정치 패러다임 전환으로 정치게임의 룰을 바꾸는 극단적 변환의 파열음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를테면 구세대 기존 정치인들은 출마선언을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이라든가, 독립문, 광장시장 등 대부분 공간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장소를 선택해서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출사표를 올렸다. 캠프마다 참석자 숫자를 부풀려 발표하지만 대중동원은 무의미하다. 이에 반해 안 교수는 힐링캠프라는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 수백만명에게, 그것도 기자 출신의 여교수가 인터뷰 형식으로 쓴 자신의 저서를 소개한다면서 자연스럽게 출마의지를 애매모호한 화법을 동원해 밝혔다. 재미와 흥행을 도모하는 정치의 쇼(Show)화가 미디어의 상업성에
-
'돈'이라는 연가시에 감염되어 지면기사
어느 때부터인가 영화를 감상할 때는 영화 팩트보다는 그 영화를 제작한 감독의 의도나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더 관심이 가면서 영화를 좀 더 인문학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재미만 좇는 영화는 잘 안 보게 된다. 물론 시원스럽게 한바탕 웃었다면 그것으로 몇 천원의 가치는 있겠지만 그조차 없는 영화는 정말 돈이 아까울 때가 많다. 최근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이 영화는 개봉 2주 만에 350만을 동원했다는 '연가시'이다. 이미 극장가는 바람이 한번 훑고 지나가 심야 시간만 상영을 하는 관계로 늦은 시간에 열대야를 피하면서 조금은 한가로이 영화를 즐길 수가 있었다. 충분한 메시지를 담은 내용과 화면을 꽉 채운 영상미, 그리고 리얼한 배우의 연기가 충분히 영화에 몰입하게 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고요한 새벽녘 한강에 뼈와 살가죽만 남은 참혹한 몰골의 시체들이 떠오르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 원인을 찾아보니 메뚜기, 사마귀 등과 같은 곤충에 기생하는 연가시라는 기생충이 변종을 만들어 인간이 감염된 이후 인간의 뇌를 조종해 물속으로 뛰어들도록 해 익사시킨다는 것이다. 짧은 잠복기간과 치사율 100%, 4대강을 타고 급속하게 번져나가는 '연가시 재난'은 대한민국을 초토화시킨다. 사망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자 정부는 비상대책본부를 가동해 감염자 전원을 격리 수용하는 국가적인 대응태세에 돌입하지만, 이성을 잃은 감염자들은 통제를 뚫고 물가로 뛰쳐나가려고 난리를 치는 가운데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제약회사 영업직원인 한 가장은 아내와 자녀들이 연가시에 감염된 것을 알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영화의 스토리는 이어진다. 영화 자체만 보자면 재난 영화다. 실재 존재하는 연가시라는 기생충이 변종되면 인간이 감염되지 않을까라는 가정 속에서 본다면 분명 재난 영화다. 특히 몇 년 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종플루가 돼지 감염에서 시작되었다는 황당한 초기 발표를 생각하면 뭐 그리 황당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 때도 연가시처럼 제약회사 음모론이 있었던 걸 기억해 본다면 더욱
-
태양광 에너지의 도시만들기 지면기사
지난 주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터키에 다녀왔다. 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서구와 아시아 문명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땅이었던 터키 문화에 대한 동경을 늘 가지고 있다 좋은 기회를 맞아 길을 떠나게 되었다. 처음 도착한 이스탄불에서 그야말로 놀라운 유산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비록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처음엔 성당으로, 뒤이어 이슬람 성전인 모스크로 사용된 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 그리고 오스만투르크 지배자인 술탄들의 궁전은 그 규모가 어머어마하여 필자뿐 아니라 함께 답사를 간 연구자들 모두에게 놀라움을 주었다.하지만 필자는 터키 전역을 여행하는 10일동안 터키에 남아있는 그리스, 로마와 오스만투르크의 유적보다 더 놀랍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전국 곳곳에 설치된 태양광 전지판이었다.터키는 거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이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전 세계의 3분의1의 영토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광대하였다.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체로서 패전국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에 그 많은 영토들을 승전국들에 의해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남북한의 4배 가까운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이러한 역사적 자연적 기반을 지니고 있는 터키는 엄청난 에너지 자원과 문화자원을 가지고 현재 1인당 GNP는 1만 달러가 안되지만 G20에 들어있는 강국으로 발전하였고, 유엔의 예상에 의하면 2030년엔 미국과 중국을 능가하는 세계 제1의 국가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석유자원을 비롯한 모든 자원이 풍부하고 경제가 향상되고 있는 이 나라가 화석에너지를 지양하고 미래 에너지인 태양에너지를 전국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세계 최고의 문화도시로 평가되고 있는 이스탄불에서도 대형 빌딩에서부터 개인 가정에 이르기까지 태양광 전지판이 설치되지 않은 곳은 없었다. 지중해로 이어지는 길가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도 태양광 전지판은 집집마다 설치되어 있다. 처음 어색했던 도시 경관이 오히려 태양광에너지 전지판으로 인해 새로운 도시 경관이 구축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 전지판들은
-
백석 시 열풍과 '나타샤 병' 지면기사
"전 나타샤가 아니에요." 모처럼 수원화성박물관을 방문하여 관계자들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백석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누군가 백석이 수원 백씨라는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하자 '나타샤'는 누구인가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평생을 백석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자야'가 당연히 그 시의 주인공 '나타샤'일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나타샤가 다른 여인일 수도 있다고 누군가가 말하자 잠시 모두 귀가 솔깃해진다. 그러나 백석과 함께 톨스토이의 대하소설을 영화화한 '전쟁과 평화'를 함께 보고 나오면서 백석이 자야에게 "당신은 나의 나타샤야"라고 했다는 말로 나타샤의 정체는 일단 확인되었다. 그 후 모든 여성이 나타샤가 되고 싶어 했다고 하자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빙수를 하나 시켜 나누어 먹으려는 우리 부부에게 함께 자리한 분이 '두 분이 다정하게 나눠 드세요'라고 말한다. 필자가 "전 나타샤가 아니에요"라고 유머를 던지자 좌중에 또 다시 웃음이 퍼진다. "한 번도 제게 '당신은 나의 나타샤야'라는 말을 안했거든요." 여성들은 모두 나타샤가 되고 싶어하는 '나타샤 병'이 있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근 문학계에 이상한 열풍이 불고 있다. 이른바 백석(1912~1995) 열풍이다. 이 기류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그가 걸어온 문학적 노정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올해는 백석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백석 문학전집'이 출간되고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학술대회'가 열리는 등 백석 문학축제 열기가 뜨겁다.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은 해방 후 북에 남아 있었던 탓에 분단체제 중 그의 존재는 문학사에 등장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공백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의 문학이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88년 납북·월북 문인 해금 조치 이후이며 최근 들어서야 그가 1995년 1월에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금 이후 그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모르고 타올랐다. 백석을 주제로 한 석·박사 논문만 총 600여 편
-
역사는 반복되는가 - 러시아와 얽힌 조선의 비극 지면기사
아는 만큼 보고, 본 만큼 안다고 했던가?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이지만 일주일 동안 다녀온 러시아의 풍물과 정경, 그리고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러시아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다. 공산혁명의 성지요, 베이스캠프로 공산당의 심장부였던 모스크바와 제2의 도시라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성자 베드로의 도시'와 '표트르 대제의 도시'라는 의미를 함께 지닌 '문화의 고도(古都)'였다. 2003년 5월 27일로 도시 창건 300주년을 기념했던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네바강 위에 '성스러운 로고스'로 세워진 화강암 도시이자 인공문화도시였다. 1712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긴 뒤, 1917년 10월에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던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한 진원지가 되어 새로운 사회주의가 시작된 이곳에 예수님의 흔적이 곳곳에 보존되고 있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칼 막스 말대로 하나님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유물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 종주국 심장부에 공산당 지배 70년을 받고도 예수님을 그리는 러시아정교의 흔적이 성당에 그대로 곳곳에 보존돼 있고, 신자들과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참배하고 있었다. 숱한 순교자들을 냈고, 정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성경 등 종교서적을 불태우는 등 철저한 종교탄압이 자행된 역사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피터대제가 러시아를 유럽의 제국으로 만들기 위해 발틱해를 바라보고 있는 늪지대에 조성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록될 정도로 많은 역사와 예술적 가치를 담고 있었다. 러시아 발레의 본산인 마린스키극장을 위시해 1년 내내 오페라공연이 끊이지 않는 예술의 도시로 도시전체가 예술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련시대 공산혁명의 비조인 레닌이 죽자 1924년 그의 공적을 기리는 뜻으로 도시 이름을 레닌그라드로 변경했다가 1991년부터 옛 이름을 되찾았다는데, 혁명과 전쟁의 참화속에서도 도시의 건물을 포함한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유럽보다 더 고색 창연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이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러시
-
여성 주간에 한국여성의 위치를 생각한다 지면기사
7월 첫째 주는 여성발전기본법이 정한 여성 주간이다.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국가와 지방정부가 여성 발전과 양성평등 촉진 등에 관한 의식을 높이고자 시작된 여성주간 행사는 올해로 17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1995년 즈음과 오늘 한국사회의 여성 지위를 비교하면 일면 나아진 점도 있지만 국제 비교를 통해 보면 여전히 여성의 지위와 삶은 차별적이고, 버거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 제정 당시로 보면 양성평등 이슈는 법과 제도 속에서의 여성참여 저해의 제도적 개선, 공적 영역의 여성참여를 저해하는 군경력 가산점제 폐지 등을 포함한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실시 요구, 여성의 삶을 송두리째 통제하던 호주제 폐지를 포함해 가정폭력 및 성폭력 등 여성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 요구, 정부 정책 과정의 여성 참여 확대 등이었다. 1995년 법을 제정하면서 세계화에 걸맞은 여성정책을 약속했던 문민정부를 넘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정부에 이르기까지 법이 정한 가치와 목표가 한국사회 전역에 반영되어 여성의 실질적 지위와 삶의 변화로 나타났을까?물론 이제 성이 직업 선택의 기회와 활동을 제한하지는 못한다. 즉, 기회는 성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과 여전한 문화적 배경은 차별적 결과를 낳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여성단체의 끊임없는 노력과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약속을 해 왔지만 '2012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7%로 OECD 평균 61.5%에 훨씬 못 미치는 숫자이고, 이마저도 여성 노동자의 43%는 저임금과 안정성이 위협을 받는 비정규직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임신, 출산 후 재취업을 하는 40대 이상 여성 취업자의 대부분은 경력과는 상관없이 비정규직에 취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오늘 한국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62% 수준으로 20~30대에 비슷했던 남녀 간 임금 수준은 40대 이상에서 크게 벌어지면서 양
-
욕심 내려놓기 지면기사
지난 주에 스승님과 대전에 갔다왔다. 대전에 가기 며칠 전에 용주사에 들러 포교국장 스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스님의 방에 걸려있는 위엄있는 부처님 사진을 보았다. 조심스럽게 부처님 사진을 보아도 되냐고 여쭤보니 스님께서 선뜻 액자를 내려주셨다. 참으로 멋진 부처님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5대째 이어져오는 가톨릭의 구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 사제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절집에 가기가 예사로웠다. 아마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불교사상사를 연구하시는 지도교수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랬던 것 같다. 전국의 사찰을 답사하면서 귀하고 멋진 부처님을 많이 만나 보았는데 사진에 있는 부처님은 예사 부처님이 아니었다. 스님께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니 스님은 껄껄 웃으며 아예 액자를 열어 사진을 직접 찍으라고 한수 더 뜨셨다. 필자 역시 환하게 웃으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액자를 열어 사진을 꺼내는 순간, 또 다른 사진이 나왔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스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아니! 스님 이 분은 누구세요?"하고 여쭸더니 "이 분이 제 스승님이신 송담스님입니다!"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송담 스님이라면 '남진제 북송담'이라 불리는 그 유명한 분이셨던 것이다. 일찍이 송담 스님의 위명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검은 선글라스를 쓴 모습은 처음이었다. 사연인즉슨 스님께서 젊은 시절에 수행을 하실 때 눈빛이 너무 세서 일반인들이 쳐다볼 수 없어서 일부러 검은 선글라스를 쓰셨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소설속의 이야기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얼핏 전설적인 이야기를 예전에 들었던 적이 있어 맞장구를 치면서 송담 스님을 어떻게 하면 뵐 수 있을까 하고 조심스레 질문을 드렸다.사실 필자는 여러 해 동안 선수행을 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알려진 스님이나 아니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사회를 위해 희생하시는 신부님이나 목사님을 만나러 다녔다. 그 이유는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필자의 인생도 그런 분들처럼 세상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보다 나은 인간이
-
이상한 나라, 한국의 엘리스 지면기사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상의 상금이 재정 악화로 인해 63년 만에 약 13억원으로 삭감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각종 상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중 상금 규모가 가장 큰 상은 총 15억원에 달하는 '호암상'이다. 삼성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선생의 사회공익정신을 기려 제정된 '호암상'은 "국내 최고 권위의 상을 지향하기 때문에 2년 전 상금을 3억원으로 올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청암(靑巖)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창업정신을 계승, 확산하기 위해 제정된 청암상 역시 상금이 현재 2억원이라고 한다.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가 실물경제에서 문화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파급되는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각종 상들이 오히려 상금을 인상하거나 적어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히 반갑고도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단기적인 경제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인 문화 예술의 논리로 풀어나가려는 것에 우리 해법의 독창성이 있다. 필자는 2012년 6월 2일 '호암예술상' 수상자인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이 준비한 렉처 콘서트에 참석한 바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사이먼 래틀로부터 "세계 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5인 중 한 명"으로 지목받은 당사자는 정작 수상에 대해, 아마 이번 콘서트를 먼저 듣고 수상자 결정을 했으면 수상을 못했을 것이라는 유머 섞인 소감도 잊지 않는다. 아마도 윤이상을 잇는 급진적 모더니즘을 개척한 작곡가라는 평가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 역시 그날의 현대음악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연주된 콘서트 곡 중 루이스 캐럴 원작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발췌곡에 주목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젊은 세대라면 어린 시절에 한두 번쯤은 읽었을 법한 책이다. 이 책을 즐겨 읽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진은숙 작곡가 역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쓰면서 내 개인적 경험으로 오페라를 쓰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많이 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