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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러니의 삶, 잡스

    아이러니의 삶, 잡스 지면기사

    가을 어스름이 내릴 때면 양재시민의 숲으로 나간다. 어제는 석양을 배경으로 노란 은행잎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니 잠시 축복의 순간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느 길로 걸을까 생각하자니 불현듯 시 한편이 떠올랐다."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지요./ 한 사람이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오래도록 서서/ 덤불 속으로 접어든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지요.// 그러다가 다른 길을 택했지요/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이 덜 다닌 듯했기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언뜻 보기에 낙엽 덮인 숲길을 걷다가 두 갈래 난 지점에 이르러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대한 평범한 경험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선택이 어려운 것은 선택되지 않은 것이 감당해야 하는 숙명적 배제 때문이다.필자는 스탠퍼드 대학 인근 팔로 알토에 산 적이 있다. 최근 잡스의 집이 지척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공연히 친한 이웃이나 되는 듯 더욱 그에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한 그의 연설을 들으면서 필자는 그가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독보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아이러니라는 것이다. 이 연설에서 잡스는 '아이러니'라는 용어를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잡스의 삶은 처음부터 아이러니의 삶이었다. 리드대학을 자퇴하고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어 우연히 서체강의를 듣게 되고, 강의를 들으면서 다양한 글씨들의 조합이 이루는 여백의 미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혀 실제적인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던 이 경험은 10년이 흐른 후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창조적 빛을 발하게 된다.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가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애플의 역사는 또 어떤가. 20세가 되던 해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된 애플의 역사는 10년 후 잡스 자신이 해고를 당하는 극적 아이러니를 가져왔으나 그는

  • L 형에게

    L 형에게 지면기사

    얼마 전 중국 옌지를 방문하는 길에 백두산 중턱, 해발 1천600m 지점의 숙소에서 하루를 묵은 적이 있습니다.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운이 좋아야 천지를 본다는 데, 옌지 국제공항에서 백두산 가는 길에 눈을 만났습니다. 첫 눈을 중국에서 맞은 셈이죠. 흩날리는 눈발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안내자가 "내일 아침이 되어야 알 수 있다"고 했지만, 천지를 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자리했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산책 겸 나섰더니, 그 사이 거센 바람에 눈발까지 굵어져 소복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혹여 하고 밖을 내다보니 온통 눈 천지였습니다. 해발 2천750m 천지로 가는 등산로가 완전 폐쇄되었다는 전갈도 함께 왔습니다. '기왕에 왔으니, 그래도 가보자'는 심사로 숙소를 나섰습니다. 칼바람에 날리는 눈보라 속의 백두산은 처음 대하는 저에겐 경외 그 자체였습니다. 내내 깊은 침묵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길고 두꺼운 외투로 중무장한 티베트 승려들 틈에 끼어 1시간 남짓 걸어 장백폭포 부근까지 올랐습니다. 고개를 들기조차 어려운 눈보라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뚫고 좀 더 가까이 마주한 백두산은 장엄하다는 표현 너머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작은 글 솜씨로는 다가서기조차 어려운 어떤 성역이었습니다. 한없는 왜소함에 더없이 낮춰야만 했습니다. L형, 백두가 이럴진대,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는 어떨까요. 제가 히말라야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80년대 초반 수습기자 때입니다.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히말라야 등반 산악인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어 하나, 둘 모아 두었다가 한데 묶어 기사로 쓰곤 했습니다. 히말라야 14좌를 처음 완등한 라인홀트 매스너를 이 시절에 알았고, 그의 책 '검은 고독 흰 고독'을 읽은 것도 이 즈음이었습니다. 낭가파르바트에서 동생을 잃고 그 뒤 혼자서 낭가파르바트에 오른 매스너는 '(히말라야에서는) 더 이상 철학이 필요 없다' '고독은 두려움이 아닌 힘이다'고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느끼고 싶어 했

  • 근대문화유산이 사라지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이 사라지고 있다 지면기사

    우리는 전통시대 문화유산에 비해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통시대 문화유산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가 및 광역자치단체가 지정하여 관리하는 지정문화재가 1만1천여개인데 반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하여 관리하는 문화재는 476개에 불과하다. 물론 지정문화재에 천연기념물처럼 자연유산도 있고, 일부 근대문화유산도 포함되어 있으나, 대부분 조선시대 이전의 전통시대 문화유산이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하여 관리하는 문화재 수가 적은 것은 문화재 전문가 중 일부의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이해 부족도 이유지만, 한국인들이 한국 근대사를 불행하고도 고통스러운 시기로만 기억하고 있는데 주요한 이유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19세기 후반 한국 근대사가 일제 식민지로 귀결되었기에 이 시기 한국 역사는 명백히 실패한 역사이다. 그러나 19세기는 제국주의시대였다. 아시아 국가 중 식민지를 경험하지 않은 나라는 일본과 터키, 태국 정도이고, 나머지는 모두 식민지를 경험하였다. 그러므로 한국의 식민지화가 한국만이 특별히 부족하거나 못나서 겪은 일은 아니었다. 물론 식민지를 경험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기에 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의 역사 대응은 분명 잘못되었다. 그래서 이를 탓할 수는 있으나, 마치 우리 국가의 대응만이 특별히 잘못되어 식민지를 경험했다는 자조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19세기 후반 역사에 대한 평가를 치욕스러운 역사로만 평가해서인지 이 시기가 우리에 남겨준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관리되는 문화재는 극소수이다.20세기 전반기 식민지시대에 항일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많은 독립운동 사적지가 산재해 있다. 필자는 2007년부터 2년간 독립기념관의 의뢰로 경기도와 인천의 독립운동 및 6·25전쟁 사적지 실태를 조사한 바 있다. 경기도 화성시만 하더라도 3·1운동 사적지가 100여개 되나, 이미 상당수 훼손되어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3·1운동의 경우에 한정해서 보더라도 우리가 사는 마을 안의 특정한 집에서

  • 正祖 탄신일에 월가 시위를 생각하다

    正祖 탄신일에 월가 시위를 생각하다 지면기사

    어제(음력 9월 22일)가 조선의 개혁군주 정조의 탄신일이었다. 오전에 수업을 마치고 수원 화성행궁과 함께 자리잡은 화령전에 가서 정조 어진에 참배했다. 백성을 위한 개혁군주 정조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이후부터 항상 탄신일에 참배를 했는데 이번 참배과정에서 느끼는 소회는 예전과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상이 과연 정조가 생각하고 있던 백성의 나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그 이유는 최근에 전 세계에 빅 이슈가 된 미국 월스트리트가(街)의 시위 때문이었다.자본주의 대표 국가인 미국에서 그것도 자본주의의 상징인 월가에서 벌어진 시위는 가히 허리케인의 전주곡이다. 수만명의 시민들이 월가 중심부를 장악하며 시위를 하고 있지만 이는 아직도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아마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태풍의 핵을 드러내며 세계 경제사 및 문명사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고 본다.이들은 처음엔 구조조정에 의한 강제 퇴직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분노했지만 시간이 경과하면서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본질이란 결국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자본가들의 이익만을 위한 정책이었음을 월가에 모이는 국민들이 금방 알게 됐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흡사 자본가 혹은 중산층이었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고, 자본가들에게 속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결국 1% 자본가들을 위하여 99% 국민들이 희생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그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났음에도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금융자본가들을 비롯 1% 자본가들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시장만능주의가 그것이다. 시장은 스스로 성장하고 운영되니 정부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이들은 시장에 대한 정보의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들 금융자본은 과도한 이익을 얻고 싶은 욕심에 파생상품을 남발하다 결국 붕괴직전까지 갔다. 이런 위기에서 그들이 꺼낸 것은 바로 정부가 금융자본을 도와주어야만이 나라 경제가 흔

  • 아름다운 노년과 참교육

    아름다운 노년과 참교육 지면기사

    1960년대, 건조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었던 우리 동시대인들에게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안개 낀 무진(霧津)으로 상징되는 몽환적 이미지로 마음 깊이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애초에 무진시의 모든 사물들은 안개의 품속에서 용해되어 실체를 상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무(海霧)가 밀려드는 무진시, "거대한 흰 짐승이 바다로 부터 솟아올라 축축하고 미세한 털로 발을 성큼성큼 내딛듯 안개는 그렇게 육지로 진군해 왔다. 바닷가 절벽 위에 선 사층짜리 석조건물 자애(慈愛)학원도 그렇게 안개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진을 배경으로 한 소설 '도가니'의 첫 장면이다. 의미심장하게도 '거대한 흰 짐승'으로 상징되는 안개는 더이상 몽환적이거나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폭력적이며 야수적인 이미지로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안개는 그로 부터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운명의 그물같은 것일게다. "철길가에는 때이르게 피어난 코스모스 무리가 창백하고 불안하게 그 안개의 그물에 덮인채 몸을 떨고 있었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심히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주일예배에서 "어둠이 한번도 빛을 이긴 적이 없다"는 성경 말씀이 들리지만 말씀이 봉독되는 중에도 안개가 무섭게 주변 세계를 빨아들이고 있으니 그것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공포의 어둠이다. '빛이 어둠을 한번도 이긴 적이 없다'는 선과 악의 전도된 역학 구조가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도가니'는 기본적으로 장애아에 대한 성폭력, 더 근본적으로는 인권 유린의 문제, 강자와 약자의 힘의 논리, 사회적·윤리적 무감각, 정부의 안이한 대처 등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복지재단 운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인, 일명 '도가니법'이 발의될 예정이라고도 한다. 헤어날 길 없는 운명의 그물속에 갇혀버린 장애아들에게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철저한 법제화와 우리 모두의 각성된 의식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참 교육이 무엇인가를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사립학교잖아. 이사장 집안하고 연줄만 있으면

  • 올 가을 낮은 곳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

    올 가을 낮은 곳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 지면기사

    가을은 정녕 모순의 계절인가. 단풍 숲의 찬란한 장관은 바람에 맥없이 날리는 낙엽과 공존한다. 인생의 깊이를 아려 사색의 저편에는, 삶의 덧없음을 깨우치는 우수(憂愁)도 함께 깃든다. 단풍 빛에 취한 산행의 잰 걸음도 숲이 앙상한 가지로 변할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느린 걸음으로 한껏 원숙해지고 넉넉해진다. 수확의 기쁨과 쇠락의 쓸쓸함이 불변의 진리처럼 서로 부둥켜 안고 있는 가을, 참 모순덩어리다.올 가을, 모순의 현주소가 우리 사회를 마구 뒤흔들고 있다. 영화와 소설 '도가니'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설움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성폭력 피해자인 청각 장애우들은 오늘도 지워지지 않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데, 가해자들은 온전하다. 수화로 세상에 소리쳤으나, 사회는 애써 외면해 버렸다. '멀쩡한 사람들도 당하고 사는 데…'라는 집단 심리의 작동이었다. 그 사이, 고소 취하와 합의의 이름으로 가해 교사들은 법망의 그물을 교묘히 빠져나갔다. 분노와 절망은 그들만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됐다. 힘 있는 사람들의 선의가 얼마나 큰 부조리와 타락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를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부정은 아름아름으로 베푼 작은 선의들이 쌓인 자리에서 웃자라나는 것임을 다시금 보여준다.그 와중에 우리는 '짜장면 천사' 김우수씨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5년 동안 고아원에서 살다가 겨우 12살 때 거친 세상으로 나왔다. 몸 한 번 뒤척이기 힘든 1.5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살면서 다섯 아이를 후원해왔다고 한다. '철가방'으로 불리는 짜장면 배달 일로 한 달에 70만원을 벌면서도, 더 어려운 아이들을 잊지 않은 것이다. 아마 자신의 불우했던 유년을 나눔으로 위로받고 치유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는지. 하얀 헬멧을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영정 사진은 우리 스스로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 여학생이 쓴 '다시 만나면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라는 마지막 편지는 어찌보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꿈의 상실이었다.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제 3지대의 '안철수 바람'은 또 어떤가. 견

  • 인문학 도시 수원의 당위와 미래

    인문학 도시 수원의 당위와 미래 지면기사

    벌써 200년의 세월이 흘렀다. '홍경래 난'이라 불리는 백성들의 투쟁이 1811년에 일어났으니 올해가 꼭 200년이 되는 해이다. 홍경래의 거사에 대해 여러 평가를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을 백성답게 대하지 않은 것이 그 결정적 원인이었다.아무리 전근대 사회라 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폭압과 착취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요, 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백성들에게 고통을 강요하고 그도 모자라 인간이 누려야할 권리를 빼앗았기에 끝내 백성들은 봉기의 깃발을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홍경래의 거사 200주년을 생각하면서 수원을 돌아보았다. 수원은 과연 어떠한가? 과연 수원은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는가? 또한 수원은 시민을 보다 평화롭게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사회로 만들 것인가?민선시대가 시작되면서 시정을 이끌어가는 분들은 대부분 시민과 함께 하겠다는 구호를 내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당시 시대의 요구로 인해 시민의 삶을 중심으로 구호를 내세우지만 그러나 그것은 단지 미사여구에 불과했다. 결국 "부자되세요~"라는 텔레비전 광고에 따라 온 나라가 돈벌기 열풍에 휩쓸리기도 했다. '돈'의 가치가 '인간'의 가치보다 중요한 시대였고, '인간'을 이야기하는 인간은 단군신화의 시대에 사는 고루한 인간으로 매도됐다. '인간'이 가장 중요한데 '인간'은 사라지고 오로지 '물질'만이 권능의 자리에서 호령하는 시대가 오늘의 시대였고, 지난 시절 수원만이 아닌 한반도 남쪽 땅 모든 곳에서 "돈, 돈!"하는 소리가 메아리로 퍼져 나갔다. 그런데 수원에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이 반갑습니다'라는 시정 구호를 보는 순간부터 감지했던 일이지만 새로운 시장이 수원을 '인문학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천박한 사회에서 다시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하겠다는 발상은 너무도 올바른 것이지만 한편으로 감당할 수 있는 구호인가 싶기도 했다.우리 사회가 인간과 인간중심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린지 너무 오래됐다. 개혁군주 정조가

  • 나는 주말에 샤르자 서예 전시회에 간다

    나는 주말에 샤르자 서예 전시회에 간다 지면기사

    한국과 이슬람 세계와의 교류가 활발하고, 교류 역사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이슬람 세계와 문화에 대한 이해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다. 지난 일요일 만난 역사학자에게 지금 경기도 미술관에 이슬람 서예 작품과 회화가 전시 중이며, 이 전시를 축하하기 위해 샤르자 국왕이 경기도 박물관을 방문하였다고 하니, 샤르자가 어느 나라 왕 이름이냐고 되물었다. 샤르자는 아라비아 반도 동부에 있는 아랍 에미리트 연방 7개 토후국 중 하나인데, 명색이 역사학자가 샤르자가 왕 이름이 아니라 아랍의 토후국 이름이라는 사실도 모르냐며 핀잔을 주었다. 서예가 한자 문화권인 한국과 중국, 일본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으나, 이슬람 문화에도 서예가 있다. 이슬람 예술에서 서예는 건축 다음으로 중요하다. 동아시아 예술에서 서예는 여러 예술 장르 중의 하나지만, 이슬람 예술에서는 두 번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은 유일신인 알라를 형상화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여긴다. 그래서 불교나 크리스트교처럼 신앙의 대상을 조형물로 만들어 숭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슬람 문화권에서 조형 예술이 차지할 자리는 거의 없다. 이슬람 세계에서 서예는 코란을 옮겨 적는 수단이다. 필자가 이슬람 서예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방문한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에서다. 아야 소피아는 동로마 제국 당시 성 소피아 성당이었으나 오스만 투르크 제국 지배하에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되었다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아야 소피아에 들어가면 중앙 홀 높은 벽 위에 코란 경구가 쓰여 있는 장중하고 우려한 서체의 이슬람 서예가 높이 걸려 있다. 이슬람 서예도 한국의 서예처럼 여러 서체가 있다. 모가 나고 장중한 느낌의 쿠파체, 둥그스름하고 유려한 나스히체가 있다. 나스히체는 작은 코란을 베끼는데 사용된다. 술루스체도 있는데 이는 건물의 비문에 사용되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코란을 베끼는 종교적 행위의 하나로 서예를 한다. 그러나 명상을 즐기거나 취미 생활로 서예를 즐기는 이들도 많다. 이 점은 서예를 정신 수양

  • 스마트 시대와 인간적 서정

    스마트 시대와 인간적 서정 지면기사

    9월 4일 김달진 문학제 국제시낭송회가 창원시 진해, 시인의 생가 앞마당에서 열렸다. 마당을 들어서자 하얀 깃발들이 하객을 맞이하듯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돌담을 죽 돌아 올해 수상한 시인들을 포함해 그간 수상한 시인들의 대표작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소곤대고 있는 것이었다. 마당에 들어서면서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자연스럽게 탑돌이 하듯 돌담을 돌며 깃발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작년부터는 창원KC국제시문학상도 제정되어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최고의 시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축제가 시작되자 프랑스, 일본, 중국, 몽골 등지에서 온 각국의 시인들이 자국의 언어로 시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마치 귀 기울이면, 언어는 잘 알 수 없지만, 무슨 말인지 좀 알아들을 수 있기나 한 것처럼 모두가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고 있어 분위기는 조용하다 못해 숙연하기까지 하다. 각국의 대표 시인들이 낭송을 끝내면 참으로 감동을 받은 듯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낸다. 프랑스어나 일본어, 중국어, 몽골어 등을 아는 사람들도 꽤 있을 수 있다.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잘 할 수 있는 원로 시인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프랑스어는 학부 시절에 공부한 바 있어 한마디 한마디가 추억의 미로를 걷듯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기까지 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언어로 시를 낭송하는데도 모두가 열광하고 일제히 감동과 환희의, 때로는 한숨 섞인 박수를 쏟아내는 것이다. 이 미스터리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올해 창원KC국제시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시인 끌로드 무샤르는 유독 '소통'에 의미를 두어, 시란 "세상에 대한 열정"이고, 그런 까닭에 "나와 세상 간에는 '함께-사이에'라는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속삭인다. 무엇을 구태여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았고, 의미를 전달하려 애쓰지 않았음에도 그날의 그 시들은 그대로 존재하면서 마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전달되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과 진정성이 전제되고 소통과 공감을 원할

  • 가을에서 정치가 배워야 할 것

    가을에서 정치가 배워야 할 것 지면기사

    내일이면 백로(白露)다. 늦더위가 맹위를 떨치더니, 아침 저녁으로 성깃성깃 차가움이 느껴진다. 여름 내내 쏟아진 비를 지켜보면서 '올 더위는 끝났다' 싶었던 게 얼마 전이다. 그 두 달 사이에, 장대비에서 늦더위를 거쳐 이제 서리가 목전이다. 올 고추 농사는 금값이라는데, 고추밭도 서리를 맞으면 흐물흐물 녹아내려 못쓰게 된다. 사람의 삶도 여기에서 한 발짝도 비켜설 수 없다. 정치라고 별것이겠는가.올 가을은 묘하게 정치와 함께 시작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면서 생긴 정치 공간이 말 그대로 난마다. 으르렁거리는 품새들도 예사롭지 않다. 곽노현 교육감 진퇴 문제까지 겹쳐 얽히고 설킨 방정식이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김문수 경기지사의 대권가도에는 일단 빨간 불이 켜졌다. 서울시장 보선에 380억원이 드는데, 김 지사마저 대권 도전을 위해 지사직을 내놓는 게 쉽지 않다. 여권에 비난이 쏟아질 게 뻔하다. 경기지사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싸움이 될 것이다. 비장함과 결기가 뚝 떨어짐에랴.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도 여의치 않다. 사실 지난 주민투표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정치인이 박 전 대표다.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수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터다, 지지율 하락이 그 반증이다. 그러나 만약 지원에 나섰더라면, 아마 지금쯤 '박근혜 대세론'은 위기에 봉착해 있을 공산이 크다. 정치가 지닌 속성상, 가만히 놓아두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10월 서울시장 보선의 짜임새도 심상치 않다. 자칫 똑같은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 마저 배제할 수 없다. 민심의 파고는 언제나 거칠고, 변화무쌍하지 않은가.손학규 대표라고 해서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당내 경선을 치르고도 후보를 내지 못하는 기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야권 통합의 주체가 아니라, 여럿 중 하나로의 자리매김이다. 지난 김해을 보선의 재판이 된다면, 전통 지지층의 비판이 거세질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가 진보성향이긴 하나, 무소속 출마가 확실해 보인다. 손 대표로서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후보조차 내지 못하면 누가 야당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