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수요광장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중국 행보를 보는 핵심 관전포인트 지면기사
'중국인들이 오고 있다', Chinese are coming, 얼마 전 영국 BBC 방송을 보니 이런 주제를 놓고 대담 프로를 진행하고 있었다. 중국이 이제 전 세계인들의 관심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앞날에 대해 음양오행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현재 미국과 여타 서방세계는 은근히 중국을 한 번 자빠뜨려볼 생각을 하고있다. 이 정도에서 한 번 견제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렵겠다는 생각, 그거야 '현실 국제정치'에서 당연하다 하겠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다지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만일 날카로운 잽이 멋지게 성공한다 해도 뻗어가는 중국의 기세를 근본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과거 일본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사례를 지켜보면서 미국의 공세, 특히 경제공세에 대해 많은 연구와 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우선 중국이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하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중국이 얼마나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더하여 중국은 최근 들어 금리인상을 통해 경기를 조절하고 있고 덩달아 증시도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시장만 고가권에 있을 뿐 종합적으로 과거에 비해 낮은 수준에서 유지해가고 있다. 줄여 말하면 상대의 주먹을 막아내기 위해 '가드'를 철저하게 올리고 있는 중국이다. 중국의 운세로 볼때 중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서 2018~2023년중 무술(戊戌)년부터 2023년 계묘(癸卯)년까지의 5년 동안 그 기세는 가히 전 세계를 진동하게 될 것이라 본다. 따라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금년과 내년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중국이 서구식 데모크라시를 시도하지 않는 한, 그리고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하지 않는 한 중국에 대한 견제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우리로서는 중국에 대한 미국과 서구의 견제가 먹혀도 골치 아프고 그렇지 않아도 길게 보면 좋을 것이 없다. 만일 중국에 대한 견제가 성공하면, 다시 말해 중국 경제를 한 번 크게 흔들어 놓는데 성공한다면 그 악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인 셈이고, 그냥 중국이 이대로 순항한다면 동아시아
-
연꽃 위로 강 바람은 불고 있는데… 지면기사
학문과 인생의 대선배 부부와 저녁을 한 뒤 늦은 귀갓길. 지하철 유리벽의 시 한 편이 가슴에 와 꽂혔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중략)…/ 연(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미당 서정주의 시 '蓮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였다. 시의(詩意)의 깊이를 헤아리진 못했다. 그냥 좋아서 여러 대의 지하철을 지나친 채 한참을 서서 외웠다.미당의 시 '연꽃…'에 발길이 잡힌 것은 얼마 전, 남양주 예봉산과 운길산 하산 길에 들른 양평 세미원(洗美苑) 때문이었던 것 같다. 두물머리(양수리) 강가 정원은 연꽃의 화해(花海)였다. 아직 만개하기엔 이른 철이었지만, 빗속에 핀 연꽃은 멀리 물안개 자욱한 북한강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미당의 말년은 일제 말엽의 친일 행적으로 고달팠다. 작고할 때까지 30년을 살았던 서울 관악구의 봉산산방(蓬蒜山房)이 헐릴 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다. 지자체의 도움으로 원형을 유지했지만 미당의 삶 자체가 화해와 통합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날 선배 부부와 저녁 자리에서는 지난달 초 돌아가신 김준엽 선생과의 인연이 화제에 올랐었다. 중국 대학들을 함께 둘러본 기억이었다. '중국 지도층 인사들이 얼마나 열렬히 환영하고 극진히 모시던지, 항일 투쟁에 대한 존경심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일본군 학병으로 끌려가 중경 임시정부로 탈출한 6천리 길의 신산했던 김준엽 선생의 여정은 자전적 독립운동사인 '장정(長征)'에 오롯이 남아있다. 항일과 민주화, 권력에 대한 선생의 초연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뚝 서기에 족하다. 비교의 영역이 아니다.다만 우리는 여전히 산행과 저녁식사의 평범한 일상에서조차 항일·친일의 역사와 부딪치며 살고 있다. 광복이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시점에. 언제쯤 진솔한 반성과 사회적 재평가 작업이 마무리되어 '대화해의 시대'는 올 것인가.하기야 최근 KBS 수신료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백선엽 장군의 친일 전력이 도마에 올
-
아빠와 딸의 소통 지면기사
[경인일보=]우리 시대의 최대의 문제가 소통 부재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해법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국회의원과 국민 사이에 국민과 국민 사이에 그리고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에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들이 한국의 사회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대학 강단에서 한 학기가 끝날 때마다 가장 되돌아보게 되는 것은 학생들과의 소통이다. 이번 학기 담당 과목 중에 '시창작 기초'가 있었다. 이 시간의 대부분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쓰고 싶은 소재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시를 한 편씩 써보라는 과제를 주었다. 학생들을 대학에 보내느라고 뒤에서 고생하는 부모님들을 생각해 보라는 뜻에서였다. 남학생은 어머니에게, 여학생은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로 써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학생들이 제출한 작품을 읽으면서 학생들이 부모와도 제대로 대화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런 경험이 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갔으니 무사히 졸업하고 취직 잘 하여 인생을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슴 속에 지니고 가급적이면 자녀들에게 간섭하지 않는 것이 부모들의 태도이고 학생들 또한 간섭 받기를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그런데 한 학생이 다음 시를 제출하였다. "-아빠랑한잔할래/무심한 일곱 글자/한참을 들여다본다//아빠는 매일 새벽 넥타이를 맨다/목숨을 바쳐 일하겠다고 말하는 듯/목넘김이 불편할 때까지 조여맨다/존재하는 그 어떤 짐승도/자기 목에 줄을 매진 않는다//아빠는 매일 새벽 집을 나선다/그 어떤 열기도 빼앗기지 않은 태양에/물소가 질주하듯 달려간다/목구덩이에는 더 이상의 여유가 없는데/아빠는 그것을 허겁지겁 삼킨다//아빠에게 차가운 보름달을 선물한다/이 달은 무거운 끈을 감싸고 /따가운 태양도 끌어안고/온통 다 녹아내린다//아빠와 나는 침묵 속에서/밤새 달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한 잔 두 잔 서로를 다독이는데/얼굴에서 뜨뜻하게 달빛이 묻어났다" (윤
-
안마시술소가 예술공간으로 바뀌었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 주말 늦은 밤, 한 무리의 문화예술인들이 수원시 인계동에 있는 한 빌딩에 모여 파티를 하였다. 빌딩 4, 5층과 옥상에 '인계 마켓'이라 이름 붙인 예술인들의 작업실과 공방에서 예술로 재생된 별별 것들을 파는 시장이 열린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인계 마켓'의 공간 구조가 특이하였다. 중앙에 홀이 있고, 사방으로 작은 방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으며, 지금은 작가들이 작업 공간으로 리모델링하였기에 그 흔적만 남아 있지만 이전에는 방마다 욕조와 침대가 있었다 한다. 공간 구조가 수상쩍어 물어보니 안마시술소였다고 한다. 안마시술소가 문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혐오 시설이 문화공간으로 전환한 사례는 많다. 오스트리아 빈의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쓰레기 소각장 기능을 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많은 이들이 찾는 문화관광시설이 되었다. 서울의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은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합심하여 하늘 공원이라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 그 예이다. 이곳에는 평화, 하늘 등의 테마를 가진 공원과 야외공연장 등이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퇴폐 업소가 문화공간으로 바뀐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2006년 가나아트 센터가 경기도 장흥에 있는 러브호텔을 구입해서 미술인들의 창작스튜디오로 리모델링하여 작가들을 입주시켜 창작 활동을 도운 사례가 있다. 2009년에는 해태제과가 이곳의 러브호텔을 구입하여 새로운 아트 밸리로 조성하였다. '인계 마켓'은 작가들이 창작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 제작한 작품은 물론, 대중의 주문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미술시장도 겸하면서 교육도 한다. 입주 작가들의 면면도 다양하며 에너지도 넘친다. 겹벌이로 목수일을 병행하고 있다는 작가는 버려진 폐가구를 모아 마켓에 필요한 가구를 만들고 있었고, 또 다른 작가는 헌 옷과 버려진 현수막을 이용해서 재활용 의상, 가방을 제작하고 있었다. 유리를 즐겨 다루는 작가는 빈 병이나 깨진 유리를 재료로 사용하여 조명 작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 전시하고 있다. 바리스타이기도
-
미래의 대한민국을 생각해 보면 지면기사
[경인일보=]이웃과 잘 지내라는 말이 있다. 가까이 살다보면 작은 시비도 생겨나게 마련이고,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길게 보면, 그리고 크게 보면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이 당연히 좋은 일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이 자명하고도 간단한 이치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까닭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먼 장래의 대한민국을 생각해 볼 때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일이 있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이웃인 일본, 중국 그리고 약간 멀긴 하지만 러시아와 잘 지내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보면 그게 좀 그렇다. 일본?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나라이기에 여전히 감정이 깔끔하지가 않다. 우리는 아직 일본 대중가요를 공중파에서 들을 수 없는 사회로 남아있다. 그러면서도 한류가 일본에서 인기를 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은근히 좋아한다. 중국? 역사상으로 늘 우리가 침략을 받았거나 또는 큰 나라로서 작은 우리가 섬겼으니 이른바 사대(事大)의 대상이었다. 그런 일로 해서 공식석상이 아니면 즉각 '쪽발이' 또는 '되놈'이란 말이 먼저 나오는 우리들이다. 독도 문제 그리고 동북아 공정 같은 문제가 나올 때마다 늘 흥분하곤 하는 우리들이다. 비교적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만, 속내는 그렇지가 않다. 이런 식으로 겉으로만 잘 지내는 것은 사실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지금이야 세계를 미국이 다스리고 질서를 잡고 있으니 별 탈이 없다 하겠지만, 언제까지 그럴 일도 아닌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훗날 미국이 아시아에서 물러가는 날,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과 경쟁 적대 관계로 들어간다면 그건 우리 민족과 나라의 존립에 치명적인 위험이 될 것이라 본다. 그러니 그때 가서 중국에 대해 또 다시 벌벌 기면서 사대하기도 사실 진짜 창피한 노릇일 것이다. 14 억 인구에 대해 남북한 합쳐 1억 인구는 이른바 쪽수에서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일본과 갑자기 친해지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우리가 광대한 영토를 개척한 광개토대왕을 존경하긴 하지
-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 이후 지면기사
[경인일보=]'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교수가 쓴 대학생들의 일상과 고민을 담은 책이다. 김 교수의 진성성과 온기어린 시선이 아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자로 바싹 다가서고 있는 것 같다.스펙 쌓기와 경쟁에 찌들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도 서슴거리지 않는 이 시대에 위안이 되기 때문이리라. '성공을 서두르지마라' '글은 힘이 세다' '신문을 읽어라'…. 강단에 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토해냈을 법한 내용들로 그득하다.그리 보면 우리는 해답을 알고 있다. 대학시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를 경험칙 상으로 꿰뚫고 있다. 방학이면 만사를 제치고 여행을 떠나는 결기가 먼 훗날 삶을 융숭하게 만드는 자산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인문학적인 사고력과 통찰력이 인생의 긴 승부에서 유리하다는 진실도 체험을 통해 느끼고 있다. 마찬가지로 '소년 급제'가 누대(累代)에 걸쳐 내려온, 경계해야 할 일이라는 것쯤은 숙지하고 있다. 김 교수가 오늘에 맞게 정리했을 뿐이다. 영어와 상식, 여기에다 논문을 더하면 전공과 학점에 상관없이 어느 직장이나 공채에 응시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1등부터 점수 순으로 합격자를 끊고, 면접을 거쳐 정식 직원이 되었던 게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필기시험 성적순이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인식됐다. 그때 '스펙 쌓기 시대'가 올 것인지 누가 예측이나 했었는가.그 스펙 광풍이 대학가를 휩쓸고 있는지 벌써 오래다. 어학 연수를 위한 휴학이나 학점 관리를 위해 목을 매는 것은 더이상 얘깃거리가 아니다. 성적을 산정할 때가 되면 교수나 학생이나 똑같이 긴장 상태가 된다. 출석 점수라도 하나 잘못 계산하면 곧바로 항의가 들어오고, 순위가 뒤바뀌면 난감하기 때문이다.그런데 어느새 이 스펙의 위력도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인턴 시절에 쌓은 경험과 성과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말 신입사원을 채용한 대기업 임원의 전언이니, 변하는 흐름을 엿볼 수 있겠다. 급변하는 국제경제의 규모나 기업환경을 언제까지 스펙으로 감당하긴 어려울 것이다. 필기시험이 종언을 고하듯 스펙도 역사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
스승 없는 스승의 날 지면기사
[경인일보=]날이 갈수록 '스승의 날'이라는 말이 허전하게 들린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존경심은 어디로 가버리고 학생들에게 매 맞는 선생들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인으로서 교사 지망생은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이상한 기현상이다. 존경받지 못하는 직종에 수많은 지원자들이 몰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은 스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직업인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학교 교육은 사라져버렸다. 교실에서 졸고 있는 학생들은 물론 그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교사들 그리고 수업이 파하면 학원가로 몰리는 학생들은 분명히 정상적인 교육이 실종된 상황을 말해 준다. 교육의 성과가 오직 대학입학을 위해 평가되는 상황에서 누구도 적극적으로 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일에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학부모들의 열성적인 자기희생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엄격성이 사라진 자리에 진정한 스승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사회에서 촌지가 사라지더니 이제는 체벌 금지가 일거에 실시되어 학교 현장은 통제력을 상실한 채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민주화의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잘못을 훈도하는 적절한 대책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교실은 거의 무질서에 가까워졌다는 말이 들려오고 교사들은 자포자기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한다.오로지 생존을 위한 점수 경쟁만이 있고 스승을 존경하거나 친구와의 우정을 존중한다는 인간적인 유대감은 어디서도 찾기 힘든 것이 우리의 학교 현장이다. 존경하는 스승이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존경하는 스승이 없는 곳에서는 사랑받는 제자도 있을 리 없다. 컴퓨터 게임 속으로 들어간 아이들 그리고 직업인으로 전락한 교사들 어디서도 사랑과 존경이 감도는 곳이 없다. 진정한 교육은 지식 교육이나 기술교육에 우선한다. 인간과 인간의 소통과 교감 속에서 삶의 지혜를 함께 하는 것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참 뜻이 생성된다. 한국 사회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진정한 열정을 지닌 교사들이 도처에서 자라나는 세대
-
중소기업 문제를 문화경영으로 해결하기 지면기사
[경인일보=]'트로이 목마' 이야기로 우리에게 알려진 트로이전쟁은 고대 그리스 시대 대표적인 전쟁의 하나이다. 트로이 유적을 찾은 관광객 중 2004년에 개봉된 영화 '트로이'에 나오는 웅장한 성곽을 기억하는 이들은 트로이 성곽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데 실망한다. 2007년 트로이 유적을 탐방한 필자도 그 중 한 명이다. 실망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입구 쪽 안내판에 로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유적 안내판 하단에 그려진 한국 기업 로고이다. 기업들이 이미지 제고를 위해 문화 경영을 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이 터키에까지 그들의 이미지를 심고 있었다. 유적에 실망한 한국관광객들에게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기업의 여러 홍보프로그램 중 그 효과가 가장 높다고 하는데 같이 간 관광객들의 반응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문화 경영을 시작한 것은 오래되었다. 국민 소득이 증가하면서 소비자들은 제품을 선택할 때 품질보다는 품격을 보고 선택한다. 품질은 단순히 제품의 성능만을 나타내 주지만, 품격은 품질에 문화적 감수성이 덧씌워져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기업의 이미지에 문화를 입히기 위한 문화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경영은 활용 측면에서 크게 세 가지 전략이 있다. 예술가들을 지원하거나 앞의 트로이 유적 사례와 같은 사회 공헌 전략, 예술 작품을 상품 디자인이나 광고에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 조직 관리에 문화를 도입하는 경영 전략 등이다. 한국에서 마케팅 전략과 사회적 공헌 프로그램은 다수 도입하고 있으나, 경영 전략을 사용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매우 드물다. 문화 경영 전략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직원에게 포상으로 책과 예술 공연 관람권을 지급하는 것, 직원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것, 직원 및 가족을 문화예술행사에 초대하는 것, 문화예술 도서 위주의 도서 공간을 마련하는 것, 문화예술가들을 초청하여 교육을 실시하는 것, 거래처 및 고객을 문화예술행사에 초대하는 것, 사내 혹은 사외에 미술품 전
-
이제 또 다시 質(질)의 시대가 오고 있다 지면기사
[경인일보=]文(문)과 質(질)이란 말이 동양 古典(고전)에 있다. 문이란 文飾(문식), 즉 꾸밈이란 뜻이고 질은 바탕을 말한다. 論語(논어)를 통해 孔子(공자)는 '질이 문을 이기면 조잡하고 문이 질을 이기면 사치하니 꾸밈과 바탕이 잘 조화되어야만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사람됨이 질박하기만 하면 멋이 없고, 반대로 '멋부림'만 있으면 진정성이 없다. 우리나라의 국운을 살펴보건대, 1951년부터 1981년까지가 質(질)의 시대였고, 그 이후 금년 2011년까지가 文(문)의 시대였다. 대개 세상과 환경이 좋아지면 기본적인 의식주보다는 좀 더 高尙(고상)한 것에 이끌리게 되는 것이니 이는 人之常情(인지상정)이라 하겠다. 우리 대한민국은 1981년 가을들어 '88 올림픽 개최'라는 朗報(낭보)가 들려온 이래 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으니 그간은 실로 승승장구의 세월이었다. 그 이후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모든 면에서 현저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러니 비록 양극화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간의 세월을 통해 이제 우리는 먹고 살만한 나라가 되었다. 나아가서 서서히 멋도 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지난 몇 년의 세월을 통해 우리는 호화사치로 달려가고 있다. 여성들의 옷차림이나 성형수술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면에서 멋부림이 지나친 면이 있다. 내용보다는 겉모습이 중요해졌으니 정치사회는 물론 학술과 예술 등등 모든 면에서 꾸미는 것에 매진하고 있다. 1981년부터 지금까지 30 년의 흐름이 裝飾(장식)의 문화였던 바, 그 또한 가장 적절했던 시점은 30년의 6할인 18년, 즉 1999년 무렵이었다. 그 이후로는 장식만 남고 질은 사라져간 세월이 아니었나 싶다. 우려하거나 비난하기에 앞서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은 이처럼 언제까지나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이제 반대 흐름이 나올 때가 되었다는 말을 드린다. 우리 대한민국은 모든 면에서 총체적으로 하나의 커다란 벽에 이미 봉착해있다. 내적인 상황을 보면 거주공간에 대한 과다한 비용지출과 투자로 인해 이미 가
-
어머니의 '봄날은 간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 주말 교직원들 틈에 끼여 파주 임진각과 심학산을 찾았다. 내년 대학 통합을 앞두고 마음도 열고 여러가지 의견도 나눌겸 해서 따라나선 길이었다. 모처럼 나들이였는 데 변덕스런 봄 날씨가 시샘하는 듯했다. 간밤에 돌풍과 함께 비가 내리더니 아침부터 궂은 날씨였다. 그래도 봄기운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진달래와 벚꽃이 진 자리를 철쭉과 조팝나무 흰 꽃이 메우고 있었다. 목련이 진 봉오리엔 연둣빛 새 잎이 푸르름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고….임진각은 개인적으로 30여년 전 군에 있을 때 면회장소였다. 일년에 한 두 차례, 군용 트럭에 실려 임진강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 전날 여관에서 밤을 새운 어머니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던 곳이다. 면회소로 쓰이던 함석 건물만 덩그러니 들어선 벌판이었는 데, 상전벽해(桑田碧海)였다. 민통선에서 이 곳으로 옮겨놓은 철마(鐵馬)는 5분마다 기적소리를 울렸다. 짙은 운무 속에 철조망은 그 모습을 희미하게 감추고 있었다. 질척한 날씨 속에도 분단의 봄을 보려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잦았다.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노래비가 눈길을 끌었다. 분단을 노래한 시비(詩碑)가 아니어서 낯설기도 했지만, 친근함이 앞섰다.비에 젖은 심학산은 연두색의 향연이었다. 화사하지 않은 봄 산이 어디 있으랴만, 오르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다.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 주변은 적막했다.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카페 분위기의 식당에서 봄날 오후를 풀어 제쳤다. 심학산 자락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식당을 고즈넉한 기운이 감싸 안았다. 봄날의 오후가 그렇게 깊어갈 즈음, 소박한 봄내음에 취했는지 한 직원이 벽에 쓰인 시를 조용히 낭송했다. 이해인 수녀의 시 '물망초'였다.이런 날은 시 보다 벚꽃이 피듯 한 곡 흐드러지게 부르는 게 제격이지 싶었다. 시에 버금가는 노랫말이 어디 한 둘인가. 시인들로부터 '으뜸 노랫말'로 뽑힌 '봄날은 간다'가 맞춤이리라. 한참 뒤에 한영애, 조용필이 새롭게 부르기는 했으나, 1953년 발표한 백설희의 처음 버전이 단연 압권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로 시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