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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당 대전(盆唐 大戰)

    분당 대전(盆唐 大戰) 지면기사

    [경인일보=]정치에는 유독 비정(非情)한 구석이 많다. 오직 살아 남아야만 하는 검투사의 승부일 때가 종종 있다. 4·27 재·보선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적 함의가 커지면서 '원형경기장'으로 변모했다. 손학규 대표가 분당을(乙)에 출사표를 던지던 날, 박지원 원내대표가 "분당 투우장에는 이미 피를 보려는 관객이 몰려있고, 이제 민주당의 투우사가 입장한 것"이라고 말한 데서도 정치의 냉혹함을 엿볼 수 있다. 여야의 전·현직 당대표인 강재섭· 손학규 후보가 맞붙은 분당을이나, MBC 사장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역임한 엄기영·최문순 후보의 강원지사 쟁투, 그리고 정치 재기와 '노무현 정신'의 점화를 놓고 일합을 겨루는 김해을(乙) 열전도 마찬가지다. 선·후배도 없고, 정치적 동지의 인연도 찾아볼 수 없다. 엄혹한 승부세계일 뿐이다. 누가 뭐라 해도 분당을은 4·27 재·보선의 종합판이다. 강재섭·손학규 두 후보 다 선출직으로는 두드러진 관록의 보유자다. 쉽지 않은 정치적 고비를 넘어온 사람들이다. 문민정부 시절인 15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김종필(JP) 최고위원은 김영삼(YS) 대통령의 측근들에 의해 민자당에서 내몰리자 자민련을 창당했다. JP 동정론이 무서운 기세로 퍼지면서 '반(反)YS 정서'가 폭풍우처럼 대구를 휩쓸었다. 신한국당 후보들은 줄줄이 낙선, 13명 가운데 단 두 후보만이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 중 한 후보가 강재섭 의원이었다. 그의 정치적 저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손학규 후보는 1993년 4월 경기 광명을(乙) 보선으로 정치에 입문한 '보선 스타'이다. 4·19 세대인 민주당 최정택 후보를 누르고 금배지를 거머쥔 그는, 2000년 16대 총선 때에는 조세형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꺾어 스타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그 파란의 여세를 몰아 경기도지사에 도전해 당선됐고, 지난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을 떠나 여당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후보의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은 제1야당의 대표가 된 승부사다.두 승부사의 대진이 확정되면서 분당을은 이번 재·보선판을 키운 최고 동인이기도 하다.

  • 조용한 슬픔과 독도 미사일 공격

    조용한 슬픔과 독도 미사일 공격 지면기사

    [경인일보=]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대지진은 역사적 사건이다. 대지진과 더불어 휘몰아 닥친 쓰나미는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가를 보여주었다. 방파제는 물론 농경지와 도시와 산야를 뒤덮은 검은 흙탕물의 노도는 인간이 건설한 건축물들을 단숨에 휩쓸어 버렸다. 진짜 재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지진의 여파로 정지된 원자력발전소는 급기야 최악의 방사능 물질을 내뿜는 악마적 발전소로 전락하였다.이 놀라운 재앙을 생중계하듯 텔레비전에서 목격한 한국인들은 놀라움과 슬픔을 참지 못하고 성금을 걷는 한편 위로의 시를 쓰고 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다방면에서 그들과 고통을 함께하고자 했다. 이 상황에서 필자가 제일 먼저 떠올려 보았던 것은 일제의 감옥에서 순절한 윤동주 시인이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인들에게 과연 윤동주는 이 처참한 순간을 목격하고 무어라 말할 것인가. 윤동주를 대신해서 말해 본다면 그것은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시 '서시'에서 윤동주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쓴 바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이 살아있는 것도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 마음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표현하고 실현하려는 의지로 인해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2011년 3월 30일 일본 문부성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학교 교과서 검정을 발표했다. 발표를 늦출 수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었다고 한다. 뒤이어 4월 1일 일본 각의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2011년 외교청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외무상은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므로 독도가 미사일의 공격을 받으면 당연히 자신들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엄청난 자연의 재앙과 그들이 건설한 원자력 발전소가 방사능을 대거 유출하는 위기 상황에서 슬픔을 삼키고 의연하게 대처하던 일본인들의 참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그들의 고통과 슬픔에 동

  • 유교는 버려야 할 과거 유산인가?

    유교는 버려야 할 과거 유산인가? 지면기사

    [경인일보=]유교는 버려야 할 과거의 유산인가?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해서 부활시켜야 할 문화유산인가? 이 문제를 주제로 학생들과 토론한 적이 있다. 유교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유교가 여성 차별적이고, 충과 효를 강조하는 데서 보듯이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가족 정실주의와 보수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유교에 대한 이해도 학생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1919년 5월 4일 일어난 신문화운동 시기에 유학은 나라를 망친 원흉으로 지탄받았다. 세계 문화를 주도해 온 강대국 중국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침략 아래 속절없이 무너지자, 중국 지식인들은 그 원인이 유교 사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체제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20세기 들어 한국인들의 유교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었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유교가 나라를 망쳤다는 생각을 하고 유교를 멀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유교에 대해 평가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한국사학계에서는 1980년대 이후 조선시대 유교의 역사적 기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세계 학계에서도 유교에 대한 평가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20세기 후반 한국을 비롯한 일본, 싱가포르, 타이완 등이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자, 이들 국가가 유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주목하고 유교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아시아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힘을 유교에서 찾으려 하였다. 학계의 평가는 이처럼 달라지고 있으나 일반인들의 유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한국 유교가 조선시대 농업사회를 기반으로 발전된 봉건적인 이데올로기라서 현대 자본주의와 맞지 않아서인가?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세계적인 종교 대부분이 지금부터 1천500년에서 2천년 이전 시기, 유목사회 또는 농업사회를 기반으로 성립되었으나 지금 세계 종교로 인류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다. 그런데 왜 비슷한 시기에 성

  • 한 번 열렸으니 한 번 닫힘도 自然이라

    한 번 열렸으니 한 번 닫힘도 自然이라 지면기사

    [경인일보=]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1년 9월 30일, 당시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서울이 나고야를 52 대 27로 누르고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이 되었다. 당시 모든 국민들이 환호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해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염려가 컸었다. 당시는 신군부에 의해 출범한 제5공화국 초기였기에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대단히 어두웠고,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절대 다수가 절망감에 빠져 지내던 때였다.그로부터 8년 뒤, 우리 국민들은 실로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여 1988년, 대단히 성공적으로 올림픽 행사를 개최하고 또 마무리했다. 88올림픽 개최 성공은 갑작스럽게 1986년부터 3년간에 걸쳐 불어닥친 훈훈한 바람, 이른바 3저 경기로 인한 미증유의 호황 그리고 수출 신장세와 맞물리면서 당시 우리 국민들의 인식을 비관에서 긍정으로 뒤바꿔놓은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다.뒤돌아보면 1981년 9월 올림픽 개최라는 낭보(朗報)가 들려온 이래, 우리 대한민국은 거침없는 약진을 거듭해 왔다. 많은 문제가 있었고 무수한 난관을 만났지만 끝내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발전을 거듭해왔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통해 우리는 작년 11월 G20 서울정상회담을 개최하면서 오늘날 지구촌의 새로운 강자(强者) 반열에 그 이름을 올렸다.올해는 2011년,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1981년으로부터 만 30년이다.여기에 하나의 예측을 드리고자 한다. 세상은 60년을 하나의 주기(週期)로 해서 부단히 변화 발전해간다. 그 운동은 본질적으로 물결과 같아서 30년을 오름이라 한다면 30년은 내림의 파동이 지속된다. 우리 대한민국은 1981년 올림픽 개최 소식이 들려온 이래로 시도하고 도전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으니 그것은 상승 파동이었다. 이 기간 동안의 시대정신은 고(故) 정주영 회장의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다 잘 해결할 수 있다'고 하시던 그 말씀 속에 말이다.금년 9월을 고비로 앞으로 30년간은 그 반대의 흐름이 닥쳐온다고 나는 본

  • 쓰나미가 휩쓴 일본, 봄처럼 이겨내라

    쓰나미가 휩쓴 일본, 봄처럼 이겨내라 지면기사

    [경인일보=]꽃샘추위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다. 부지런한 걸음이다. 도심 여기저기에서도 꽃단장이 한창이다. 시민공원은 봄맞이에 여념이 없고, 겨우내 갈라진 도로를 보수하는 작업도 분주하다. 산과 들에도 깊이 응달진 골짜기에 잔빙(殘氷)이 조금 남아있을 뿐, 봄 기운이 완연하다. 올 봄은 지난 겨울 혹한과 폭설, 게다가 축산농가를 휩쓴 구제역 충격으로 유난히 기다리던 터다.그러나 그 봄의 초입에서 목도하게 되는 일본 열도의 비극은 우리들의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다. 연일 말을 잃게 만든다. 자연의 위력 앞에 겨울, 봄과 같은 계절의 순환은 호사에 가깝다. 지진과 쓰나미를 확률과 통계에 의존하고 있는 21세기 과학문명의 한계는 겸허함을 넘어 초라한 느낌마저 들게한다.TV에 비친 쓰나미의 참상은 전쟁영화를 왜소하게 만드는 충격이었다. 거대한 배가 도로 위에 걸쳐있고, 수백 대의 자동차가 양철판처럼 구겨져 휩쓸려가는 화면은 경악이었다. 도시가 온통 뻘밭으로 변해버린 모습을 접하고서는 '저 곳에서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마저 들었다. '당신 없이 살려고 하지 않았다'고 생사도 모른 채 나흘만에 만난 부부의 통곡에서는 오히려 전율이 느껴졌다.후쿠시마 원전도 1·3호기 원자로 외벽 폭발에 이어 2·4호기도 심각한 폭발이 일어났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일본 국내는 물론 주변국까지 초긴장 상태이다. 피폭 주민들도 생겨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엔 바람의 방향과 농산물 오염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안전지대는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이번 지진이 일본 해안선을 4m 동쪽으로 움직이게 만들고, 지구자전축을 10㎝ 이동시켰다고 하니, 그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이 정도면 인간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치명적 상황이라고 말한다. "쓰나미가 닥쳐올 때 인간이 살 수 있는 길은 미리 피해 달아나는 것 뿐"이라는 지진 연구학자의 전언은 거의 공포 수준이다. 실제 바닷속 진앙이 육지와 가까울 때는 지진과 동시에 쓰나미가 해안 마을을 덮친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일본의

  • 리비아 철수와 한국인의 마음

    리비아 철수와 한국인의 마음 지면기사

    [경인일보=]리비아에 녹색 바람이 불면서 반군과 정부군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지에서 근무하던 한국인들이 속속 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초동 단계에서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고 전해졌지만 마지막 철수 작전에서 한국인들은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함께 일하던 방글라데시, 태국,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8천여명이 철수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본인들도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제삼국인들도 동행하여 리비아를 탈출했다는 것은 한국인들이 보여준 남다른 모습이다.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을 떠올려 볼 때 이 철수작전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의 갈등은 종전의 사회적 갈등과 양상을 달리 한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노사갈등이나 계층갈등이 전면에 돌출되던 시대와 달리 지역 갈등이나 정치와 종교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다. 세종시 문제로 지역갈등이 국가적 쟁점으로 비화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겨우 이 문제가 봉합되고 나자 정치와 종교의 갈등이 첨예하게 제기되고 있다.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는 사대강 사업은 정치적 쟁점이 종교적 갈등으로 비화된 것 중의 하나이고 이슬람 수쿠크법은 경제적 쟁점이 종교적 갈등으로 번져나간 예가 될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상급식에서 촉발된 복지논쟁과 동남권 신공항과 과학비즈니스 벨트 선정 문제 등은 지역연고권과 더불어 경제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엉켜 있는 것 같다.새 봄이 돌아오니 이런 여러 문제들이 터져나와 한시도 편안한 날이 없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희망찬 앞날을 설계해야 할 봄날 어떻게 하면 여러 난관들을 성공적으로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면서 한국인들의 욕구는 더 크게 증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강하게 분출되는 것 같다. 최근의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 분출되는 갈등비용이 대략 삼백조원에 달하며 이는 거의 국가 전체의 예산과 맞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은 갈등의 대국이라 지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회적 갈등이 꼭 부정적인

  • 최용신의 사랑과 헌신

    최용신의 사랑과 헌신 지면기사

    [경인일보=]지금도 어릴 때 선생님을 생각하면 가슴 설레고 눈물이 나는 80 넘은 제자가 있다. 1930년대 초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식민지하 농촌의 가난한 마을 안산 샘골에 살고 있던 7살 소년에게 22살의 처녀 선생님이 불쑥 찾아왔다. 그 선생님은 어린이의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자라면 크게 될 아이이니 잘 키우라"는 말을 하였고,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선생님은 심훈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인 최용신이며, 아이는 제자 이덕선씨이다. 최용신의 사랑과 격려 한마디가 샘골마을 한 어린이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이덕선씨는 최용신 선생이 평생을 살아가는데 삶의 기준이 되었고 힘이 되었다한다.그러나 최용신 선생이 농촌계몽운동을 위해 처음 샘골에 나타났을 때 주민들의 반응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주민들은 "책상물림의 젊은 처녀가 무엇을 안다고 저러는가"라며 핀잔만 주었다. 후원을 요청하러 찾아간 사회운동가마저도 그에게 "날고 기는 놈도 농촌에서 실적을 내지 못하는데 네가 무엇을 한다고 하느냐"며 차디찬 경멸을 보냈다.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밭에 나가 밭 매는 주민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말없이 일손을 도왔고,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불과 7개월이 지나지않아 주민들은 그를 마을에서 꼭 필요한 인물로 여겼다. 최용신은 부녀자들과 마을 청년들을 지도하며 몸을 아끼지 않고 샘골 곳곳을 다녔다. 그의 손길과 마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강습생은 점점 늘어났으며, 강습소가 좁아 들어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 글을 배웠다. 강습소를 증축하기로 하고 건립 기금을 모으자 부인들은 그동안 어렵게 모은 돈 300원을 선뜻 내놓았다. 최용신은 그 돈의 반을 부인회에 돌려주었다. 여러분의 피와 땀이 담긴 이 돈을 다 받을 수 없다며. 여기에 감동한 주민들에 의해 모금 활동은 더욱 활발히 전개되었다. 최용신은 마을에 온지 1년이 조금 지난 기간 안에 주민의 힘을 모아 강습소 증축공사를 마무리 하였다. 이듬해 최용신은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으나 병을 얻고 고향으로 돌아가려하나,

  • 이슬람권의 소요(騷擾)와 신묘(辛卯)년

    이슬람권의 소요(騷擾)와 신묘(辛卯)년 지면기사

    [경인일보=]필자는 동아시아의 오랜 지혜인 음양오행(陰陽五行)을 평생 연구해 온 사람이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의 어지러운 이슬람권의 정치적 혼란에 대해 음양오행과 연관 지어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집트를 시작으로 갈수록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혼란은 리비아의 철권 통치자 '카다피'마저도 실각의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의 양적 완화, 달러 찍어내기로 인한 과다한 국제 유동성과 인플레이션 압력, 여기에 작년 세계적인 곡물 흉작으로 인해 곡물 가격이 급등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현재 이슬람권 국가들이 소요사태에 휘말려들고 있다.'민주혁명'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서구 세계 미디어들이 이럴 때 으레 사용하는 정치적 발림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밥먹고 살기 어려우니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이고 여기에 오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최근의 현상은 음양오행의 견지에서도 충분히 좋은 설명이 가능하다. 올해는 辛卯(신묘)년인바, 이 기운이 상징하는 바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음양오행상으로 辛(신)은 金氣(금기)에 속한다.金(금)이란 맺히는 기운이고 응축하는 것으로서, 조직이나 단체를 단속하는 기운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적으로는 규율과 통제를 의미한다. 그런데 규율과 통제를 의미하는 금의 기운인 辛(신)이 올해에는 卯(묘)라는 코드를 만나고 있다. 여기에서 올해의 의미를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묘는 12地支(지지)의 하나로서 방위상으로 正東(정동)을 뜻함과 동시에 '봄'을 의미하기도 한다. 봄은 만물이 피어나고 뻗어가는 때이다.그러니 금년 辛卯(신묘)년의 형국은 위에는 규율하고 통제하는 기운이 있고 밑에서는 뻗어가고 피어나는 기운이 솟구치고 있는 모습이다. 위와 아래의 마음이 서로 모순이니 올해 신묘년은 사회적으로 정치적 혼란이 잦은 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다른 나라들은 별 문제가 없는데 왜 그곳만 그러지? 하는 의문이다. 사실 지구촌의 다른 지역에서도 올해는 만만치않

  • 김문수 지사, 정치신화에 도전할 것인가

    김문수 지사, 정치신화에 도전할 것인가 지면기사

    [경인일보=]김문수 지사가 조용하다. 정치적인 현안을 놓고 후발 주자는 조금 시끄럽게 해 국민의 시선을 끄는 법인데, 인근 서울시에 비해 차분하다. 지난해 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가 지명될 때만 해도, 김 지사의 정치적 관심 영역이 경기 도정(道政)의 경계를 넘어서나 했다. 실제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누구인지 모르겠다'라는 발언 이후, 그의 관심이 국가적 어젠다로 확대되지 않을까 예상됐다. 그러나 그 이상 나아가지 않은 채 멈춰 섰다.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과감한 복지'로 도의회와 절충점을 모색한 뒤로는 자제하는 듯한 태도이다. 절친한 이재오 특임장관이 개헌에 정치생명을 건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는데, 중앙정치에서 한 발 비켜서 있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하긴 김 지사가 차기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적은 없다. 경기지사 직무만으로도 여념이 없을지 모른다.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도 "신문 볼 시간조차 없다"고 토로할 정도이니, 지금 대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경기지사는 대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정치사가 말해 주는 숙명 비슷한 것이다. 1997년 당시 이인제 지사에 이어, 2007년 손학규 지사도 대선에 출마했거나 후보 경선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진 못했지만, 모두들 유력한 주자들이었다. 이인제 전 지사는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와 격돌했고, 손학규 지사 역시 당적을 바꿔가며 대선가도를 향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인제, 손학규 모두 위협적인 경선 흥행 메이커였다. 경기지사가 갖는 정치적 힘이자, 한계이다. 경기도는 여러 도시와 그 구성원의 다양함, 지역의 광활함, 그리고 인구수와 유권자의 성향에서 서울에 견줄 만하다. 전국을 압축해 놓은 축소판이다. 지사로 당선된 순간부터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다. 어찌 보면 큰 정치에 뜻을 두었기에 경기지사에 도전한 것으로 보는 게 옳을지 모른다. 지방 행정가로만 머물기에는 성이 차지 않는 자리이다. 충남이 고향인 이인제 지사가 그랬듯이 경북 영천이 고향인 김 지사도 예외는 아니다.여기에

  • 두 여성 거목의 죽음과 봄 편지

    두 여성 거목의 죽음과 봄 편지 지면기사

    [경인일보=]두 여성 거목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한 분은 박완서 선생이고 다른 한분은 송정희 선생이다. 작가로서 박선생은 세인의 주목 속에서 가셨고 송선생은 조용히 남모르게 세상을 떠나셨다.연초에 학교에 나갔더니 발송자를 알 수 없는 묵직한 소포가 하나 와 있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풀었더니 송정희 선생의 시집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여서 이 분이 또 시집을 내셨구나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펼쳐보려는데 유고시집이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송선생은 몇 년 전부터 일면식이 없는 필자에게 시집을 우송해 주셨는데 언젠가 한번 직접 뵙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이를 실천하지는 못했다. 70년대부터 한학에 진력하여 동양의 고전적 경전들을 두루 번역한 이 분의 숨은 노력의 지대함을 잘 알고 있던 터여서 송선생의 타계는 더욱 아쉬웠다. 최근 10년 동안은 주로 시창작에 전념하셨는데 이 분이 한학의 온축을 시로 승화시키고 싶어 하시는구나 하는 느낌은 막연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유고시집의 표제가 된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시는 그동안의 학문적 온축을 새롭게 표현하고 있었다. 여름은 봄의 청춘식장이며 가을은 봄의 산실이고 겨울은 봄의 신방인 까닭에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상식의 틀을 깨트리는 참신한 시적 발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집을 되풀이 읽으며 이 분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떠올려 보았다. 그것은 생에 대한 강렬한 긍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비슷한 연배의 박완서 선생도 나이 40인 70년대에 등단하여 40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면서 많은 역작을 발표했다. 박선생은 여성문학이 부재하던 시절 여성의 내면적 심리를 특유의 문체로 묘파하면서 여성의 삶을 문단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데 크게 기여한 작가였다. 박완서 선생의 부음을 접한 순간 필자는 빈소로 먼저 달려가지 않고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통독했다. 지인의 말을 빌리면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명료한 의식을 지니고 돌아가셨다는 전언이 무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