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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수능개편안 유감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2014 수능개편안 유감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 8월 14일 중장기대입선진화연구회(이하 '연구회'라 칭함)가 2014학년도 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을 발표하였다. 주요 골자를 살펴보면, 2014학년도부터 수능이 복수로 시행되어 응시 횟수가 연 2회로 늘어난 점, 수험생의 학력 수준과 진학할 대학의 계열 등에 따라 국·영·수 세 과목 각각의 A형과 B형 중 하나를 골라 시험을 보게 된 점 등을 들 수 있다. A형은 현행 수능보다 출제 범위를 줄이고 쉽게 출제해 수험 부담을 최소화한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에 없었던 별도의 '쉬운 시험'이 생기는 셈이고, B형은 현행 수능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 한 번의 수능시험이 수험생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을 해소하고, 학교 수업 외에 사교육과 같은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학생들에게나 학부모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개편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이 개편안이 '다양성'과 '선택'의 원리를 얼마나 무시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탐구영역의 응시과목 수를 보면 사회탐구영역과 과학탐구영역에서 선택 시험과목수가 각각 한 과목으로 되어 있다. 이는 곧 입시 위주의 파행적 교육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염려를 현실로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연구회측은 사회탐구영역에 대해 유사 과목을 통합해 한 과목만 선택해 시험에 응시토록 하는 안을 내놓았다. 이미 언론에서는 2009 개정교육 과정과 관련해서 일선 학교장에게 주어진 20%의 교육과정 자율권, 교육과정 자율학교에게 주어진 50%의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권을 국·영·수에 할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의 국·영·수의 집중화는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하여 정부가 지향하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2009개정 교육 과정의 핵심 방향인 창의인성교육에 장애가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연구회측은 2009 교육과정 개편의 주요 방향을 반영해 수능에서도 교과별로 통합을 시도하면서 과목간의 유사성, 교육과정

  • 농업문제 풀고 가자

    농업문제 풀고 가자 지면기사

    [경인일보=]지금 우리 농업이 당면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는 국제무역기구(WTO)가 추구하고 있는 무역 자유화를 위한 시장 개방과 그에 따른 농업부문의 대응 방안의 문제이다.우리나라는 WTO 회원국으로 WTO가 추구하는 '관세없는 자유시장으로의 세계화'의 방향과 질서에 따르고 참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가 무역으로 경제를 일구어가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개방은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WTO는 없어서는 안될 버팀목이며 WTO가 추진중인 DDA협상이나 각 회원국간의 양자간 협상(FTA)에서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 협상에서 사회 전부문에 걸쳐 적극적인 활동을 충분히 감당할 능력도 갖추었다.그런데 한 가지 국내적 여건이 조성되지 못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이 있다. 아직도 취약한 우리의 농업 부문이다. 이 농업 부문의 안정기반을 조성하고 농어민의 소득보장 기반을 갖추며 농어촌의 활력 기반을 확립하는 것이 그래서 시급하다. 지금 시장 개방이 진행되는 몇 년 동안의 기간에 우리 농업을 경쟁력이 있는 농업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농업의 붕괴를 막을 길이 없게 된다. 그러면 우리 농업은 전혀 경쟁력이 없는 것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농산물수출국 네덜란드와 비교하면 우리의 농지면적은 180만㏊인데 네덜란드는 219만㏊이다. 호당 경지면적도 1.5:17㏊. 그러나 농업생산성은 우리가 높아 곡물생산은 3.7배, 채소생산량도 4.1배나 높다. 단 네덜란드의 주력 품목인 축산은 우리의 생산성이 그들의 70% 수준이다. 종합적으로 볼때 농축산물 생산액으로는 우리가 1.8배나 높다. 결국 우리 농업은 기술이나 생산성 어느 면에서도 수준급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농업이 국제경쟁력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주로 경영 규모의 영세성과 높은 생산원가에서 비롯된 가격경쟁력 때문이다. 그래서 영농 규모화와 농자재 가격 적정화, 기반조성 정책 등 농업의 구조개선 정책이 강조되는 것이다.우리 농업도 이제 안정 기반을 만들어 문제를 풀고 가야 한다. 농업 문제를 농민들이 종사하는 직업의

  • 되돌아보는 한국경제 성장과 기술축적 과정

    되돌아보는 한국경제 성장과 기술축적 과정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 일요일은 광복 65주년 기념일이었다. 이를 계기로 광복 이후 현재까지 한국 경제의 성장과 기술 축적 과정을 회고하고, 미래의 전개 방향을 논의하고자 한다. 광복 이후 65년은 한민족 역사상 유래없는 고속 경제 성장기이다. 광복 직후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인데 비해서, 65년후인 2010년 1인당 소득은 2만달러로 400배 증가하였다. 반면에 단군께서 고조선을 개국했을 때의 1인당 국민소득을 1달러라고 가정하면, 그 시기부터 1945년까지 4300년간 1인당 국민소득은 50배 증가한데 그쳤다. 그러므로 광복 후 현재까지 기간은 한민족 역사상 최대의 호황기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이처럼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외국의 산업기술을 효과적으로 도입하고 내재화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의 높은 성취욕, 근면성, 교육열 등도 고속 성장의 원인이기는 하나, 이런 국민적 소양만으로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 북한은 남한과 똑같은 국민적 소양을 보유한 국가였지만, 외국 기술의 도입과 대외 무역을 억제하는 정치 제도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남한보다 성장의 속도가 월등히 낮았다. 기술 축적을 통한 한국경제의 성장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산업으로 자동차 산업을 들 수 있다. 한국이 최초로 생산한 자동차 모델은 1962년 출시된 신진자동차의 새나라였는데, 이 차는 전 부품을 외국에서 수입하여 한국에서 조립한 것으로 그 성능은 외국차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은 외국 기술을 효과적으로 도입하고 도입된 기술을 개량하는 자체 연구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한국의 대표적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하였다.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종속이론을 무색하게 하였다. 한번 주변국은 영원히 중심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종속이론의 핵심인데, 한국의 사례는 이런 가설에 확실한 반증을 제공한다. 한국은 2차대전 이후 세계에서 후진국의 굴레를 벗고 중진국을 넘어서 선진국으로 근접한 유일한 사례이다. 한국의 성공은 중국,

  •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를 양육한다는 것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를 양육한다는 것 지면기사

    [경인일보=]휴가 시즌이면 후원자님들과 함께 이른바 '비전트립'이라고 하는 컴패션 수혜국 현지 방문여행을 떠난다. 올해에도 7~8월 두 달 동안만 벌써 세 번을 다녀왔다. 컴패션 비전트립은 수혜국 현지를 직접 찾아가 컴패션(compassion)의 진정한 의미를 경험하고, 매달 후원금으로 돕는 어린이들에게 후원자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는 기회다.얼마 전 후원자들과 함께 태국으로 비전트립을 다녀왔다. 태국에는 북부 국경쪽 난민문제와 방콕과 대도시의 도시 빈민문제가 있다. 그리고 어딜 가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한 성적 학대 문제가 있었다. 이런 곳에서 컴패션의 한 어린이센터에서는 1998년부터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학대받은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기본적인 어린이 양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한편 학대받은 어린이들을 돌보고 경찰과 학교, 지역 기관과 연계하여 주민들에게 어린이들의 인권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전하고 있었다. 친엄마에게 다리미로 팔과 다리를 화상 입은 소년, 한 집안에서 세 명의 직계가족인 남성들에게 성 학대를 당한 8살 여자 아이, 엄마가 매춘을 시킨 16세 소녀 등 200여명의 어린이들이 등록되어 있었고, 지난 10년동안 쉼터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학대를 당한 89명의 어린이가 현재 이 곳에 있거나 다녀갔다. 마침 하교시간이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헐렁한 교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한국에서 온 낯선 이방인들을 보고 신기한듯 까르르 웃고 간다. 도무지 학대를 당한 것 같지 않은 밝은 얼굴이다. 그 중에는 할아버지와 삼촌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8살 여자 아이도 끼어 있다. 얼마 전까지는 어른들 곁에는 오지도 못했다던 이 어린이가 지금은 낯선 우리들에게 미소를 보여 주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자신을 후원하는 한국인 후원자에게 안부를 전해달라 부탁까지 한다. 무엇이 이 아이의 상처를 아물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컴패션이었다. Compassion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연민이나 동정심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나눔의 현장에 생생하게 살

  • 입학사정관제가 성공하려면

    입학사정관제가 성공하려면 지면기사

    [경인일보=]요즘 각 대학 입학처에서는 2011학년도 대입 모집요강을 확정해 발표하였다. 주목할 것은 지난해에 비해 입학사정관제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이 많이 늘었다는 점이다. '입학사정관제'란 대학이 학생의 성적, 개인 환경, 잠재력 및 소질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먼저 이 제도는 대학이 주체가 되어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학교의 특성이나 설립 목적에 맞는 학생 선발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성적 위주의 선발 방식을 지양하기 때문에 보다 창의적이고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또한 학생 측면에서는 적성과 소질 위주로 대학 및 학과를 선택하는 폭이 늘어나게 된다. 이밖에도 소외 계층 학생의 대학 진학 기회가 확대되고, 명문대 입학 선호에 따른 과열 경쟁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입학사정관제도의 장점은 학교 특성에 맞는 다양한 학생 활동이 활성화되어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며 나아가 사교육이 지양되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기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제도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 대학 측에는 평가기준의 객관화와 공정화 등이 요구되며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지원할 학과의 전공에 적합한 창의성을 배양해야 할 과제가 주어진다. 아울러 우리 학부모들에게는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경감될 것이다. 혹자는 입학사정관제도가 사교육을 넉넉하게 받을 수 있는 소위 '있는 자식'들에게 대학 가기 유리한 제도라고 본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적 장치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발표가 되었다.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창의·인성교육 혁신방안'이 바로 그것이다. 교육부에 의하면 2011년부터 교과별 학습내용을 20% 이상 감축하고, 교과 학습에서는 창의·인성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비교과에서 초·중학교는 주당 3시간, 고교는 주당 4시간 실시되는 창의적 체험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 교육과정은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의 4개 영역으로 구성된

  • 나를 알아주는 세상이 있다면 기쁘지 아니한가

    나를 알아주는 세상이 있다면 기쁘지 아니한가 지면기사

    [경인일보=]어려서 곧잘 '괴도 뤼팡'과 '셜록 홈즈'를 견주었었다. 최고의 도둑과 최고의 탐정, 누가 더 매력적인가? 물론 도덕적으로야 탐정이 좋고 경찰이 훌륭하지만 멋진 도둑, 불의에 맞서는 의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힘없는 기층민의 꿈이고 희망이었다. 때문에 로빈후드, 임꺽정, 홍길동 등 허다한 의적들은 지금도 끝없이 대중의 상상력 안에서 변주되고 있다. 특히 어려운 시기일수록 제도를 넘어 독자적으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적의 이야기는 작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기게 마련이었다. 일제강점기 이해조, 홍명희, 박태원, 김사량 같은 최고의 작가들을 매료시켰던 작품은 '수호전'이었다. 구한말 애국계몽기 최고의 신소설 작가였던 이해조는 '한씨보응록'과 '홍장군전'이란 소설에서 '수호전'의 에피소드를 응용하였고 조선의 3대 천재 중 하나로 이름 높았던 홍명희는 그의 불후의 명작 '임꺽정전' 첫머리에 '수호전'을 일컬어 '일백단팔마왕이 묻힌 복마전을 어림없이 파젖히는 엄청난 재주'라 평가하면서 자신에게는 그 같은 재주는 없다고 겸사했지만 곳곳에 '수호전'의 흔적을 남겼다. 박태원은 '삼국지'와 함께 '수호전'을 새로이 번역하였고 일제말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인을 능가하는 일본어쓰기로 일본 굴지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김사량은 '수호전'에서 받은 깊은 인상을 언급하더니 마치 갈 곳 없는 호한들이 양산박으로 향하듯이 급기야 일본의 감시를 뚫고 탈출하여 항일 근거지 태항산으로 입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의적으로 상상하는 정의와 희망이 성취되기는 어려웠다. 이는 동서양 구분이 없었으니 쉴러의 희곡 '군도'에서 칼(Karl)이 결국은 자기 정의조차 실현하지 못하고 이율배반에 처했던 것과 같이 '수호전'의 송강 또한 대의를 지킬 수 없는 세상을 버리고 양산박으로 피난하여 오히려 충의를 이루기 위해 황제의 진정한 초무를 기대했지만 결국 좌절하여 피붙이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했던 의형제들과 자결하고 만다. 호풍환우조차 자유로운 호한들의 세계에서도 제도권의 높은 벽을 넘어서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이를

  • '광화문' 이 좋다

    '광화문' 이 좋다 지면기사

    [경인일보=]광화문에는 '광화문'이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초등학생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광화문'이었다. 신기했다. 집에 걸린 문패를 비롯해서 가게나 회사 간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한자를 쓰던 시절이었다. 그 한자 때문에 심부름을 다니는 것도 두려웠었다. '永華商社' 코앞에서 "아저씨, 이 근처에 영화상사가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가 창피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런 시절이었기에 '광화문'이란 한글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돌이켜 보면 남대문에 걸린 '崇禮門'이라는 현판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일, '興仁之門'을 보고 '동대문'을 왜 넉 자로 썼을까 궁금해 했던 일 등이 모두 한자에서 비롯한 사건들이었다. 한글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니 한자 현판을 달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도처에 널려있는 한자 표기는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중국에 의존해야만 했던 글자 더부살이의 역사를 말해준다.광화문의 현판이 '光化門'이었던 것 역시 우리에게 한글이 없었던 궁박한 시절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소리글자 한글을 창제했다. 세종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문자를 갖게 되었다. 어린 백성도 하고픈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문화 민족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5세기가 되어서야 이룬 문자 독립이고 자립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광화문은 '光化門'이었다.광화문에 한글 현판이 걸린 것은 1968년이었다. 한자 현판을 떼고 한글 현판을 단다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발상이었지만, 한글을 중시한 위정자는 대한민국의 중심에 한글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이정표를 세웠다. 한글을 소통의 바탕으로 삼은 대한민국 호의 출항이었다. 한글 '광화문'이 대한민국의 중심에 서자 나어린 꼬맹이들도 자신 있게 '광화문'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한글 상용으로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소통도 한층 원활해졌다.그런데 몇 년 전 광화문 복원 이야기가 나오고, 현판 글씨가 박정희 친필이라는 사실에 대한 논란이 일더니 새 현판에 한자를 쓰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세기 말 경복궁을

  • 日 '하류사회' 韓 '청년실업'은 이웃사촌 ?

    日 '하류사회' 韓 '청년실업'은 이웃사촌 ? 지면기사

    [경인일보=]2005년에 미우라 이츠시가 일본에 '하류사회'를 출판한 이후로, '하류'는 최근 일본 사회의 변화, 특히 일본 젊은층의 변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 자리를 잡았다. 미우라는 '하류'의 의미를 단순히 소득이 적다는 것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능력, 생활능력, 일할 의욕, 배울 의욕 등 삶에 대한 의욕이 총체적으로 낮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일본 젊은이는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일본 하류의 주류는 프리터(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 또는 취업을 희망하는 무직자)와 니트(학교에도 가지 않고 구직하지 않는 무직 젊은이)이다. 2008년 일본 정부의 통계에서 이러한 젊은이가 170만명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니 하류라는 용어가 회자될 만하다.이러한 분위기가 국내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얼마 전 4학년생에게 취업을 추천하였더니 집에서 너무 멀어서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생활이 어려워 집 근처 호프집에서 당분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나를 당황하게 만든 일이 있어, 우리 젊은이에게도 하류화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잠시 해 본 적이 있다.우리 주변에 대학 졸업 후 집에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이가 꽤 많다. 주위에서 취업을 부탁하는 연락을 부모님에게 자주 받는다. 정작 취업을 알선하면 젊은이들은 취업에 대한 의욕이 없으며, 월급이 적거나, 주말이 보장이 안 되거나, 힘이 들거나 등의 이유로 기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급 많고, 쉴 거 다 쉬고, 편안한 직장이 있으면 대학을 그만두고 당장 내가 취업하겠다고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고 마무리하지만, 부모님에게도 섭섭한 경우가 많다. 자식이 모르면 부모가 나서서 설득하여 진정한 삶의 현장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다시 과잉보호로 돌아가 버리니 안타까운 일이다.이러한 문제는 요즘 젊은이나 부모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전 국민의 대학생화를 만들어 버린 교육제도, 대기업의 해외 생산시설 이전 등으로 신규 고용이 줄어드는 변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등 수많은 문제점이 산재해 있을 것이다. 그러

  • 다수결이 항상 타당하지는 않다

    다수결이 항상 타당하지는 않다 지면기사

    [경인일보=]10명이 사는 공동체를 상정해보자. 그리고 다수결에 의하여 공동체와 관련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법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그 공동체에서 발생할 법한 이런 경우를 생각하여 보자. 10명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농사짓고 수확한 곡물로 먹고 지내왔는데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서 보니 9명은 곡물들이 모두 떨어져 먹을 것이 없었지만 1명은 다음 수확기까지 먹을 식량을 저장해두었다. 그래서 열린 공동체 회의에서 1명은 자신이 저장해 놓은 것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9명은 그 1명이 저장한 것을 10등분하여 이 고비를 넘기자는 쪽에 찬성하는 바람에 자신이 배고파하면서 아껴두었던 곡물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그 1명은 자신이 굳이 아껴두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저장한 곡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이번에는 곡물을 저장하지 아니하였고, 다시 봄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곡물을 나누어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그래서 공동체 회의가 열렸지만 다른 9명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곡물을 나누어받지 못하였다. 이런 이야기는 극단적일 수 있지만 다수결 원칙이 발생시킬 수 있는 오류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배를 타고 가다가 거친 파도가 치는 급박한 상황에서 다수결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아니면 선장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 타당한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은 원래 원양어선의 선장이었던 분인데, 자서전에는 '배를 타고 가다가 파도가 거세게 치면 선원들은 파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선장의 얼굴을 본다. 선장이 흔들리면 선원들도 동요하여 결국 그 파도를 헤치고 나올 수 없지만 선장이 침착하게 대처하면 그 난국도 이겨낼 수 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 월드컵이 한창 진행되고 있지만 축구 경기할 때 전술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선수들과 감독, 코치가 다수결에 의하여 결정한다고 한다면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다수결은 그 자체로 오류가 있을 뿐 아니라 적절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왜 많은 경우

  • 시장답게… 공무원답게… 시민답게…

    시장답게… 공무원답게… 시민답게… 지면기사

    [경인일보=]경상 북부지역에 널리 전해지는 설화에 어리고 지혜로운 원님 고창영에 대한 시리즈가 있다. 시중에는 '지혜로운 꼬마원님'이란 어린이용 동화로 각색되어 출판된 판이 여럿 있다. 이야기인즉 고창영은 열 세 살의 어린 나이로 고을 원이 되어 부임한다. 그러나 원님이 어리다고 깔보고 놀리는 고을 아전들 때문에 여러 차례 곤란을 겪는다. 이에 고창영은 어느날 수수밭을 지나가다 짐짓 어리석은 체하고 아전들에게 묻는다. "저기 저 나무는 몇 년이나 자랐기에 저리도 키가 큰가?" 아전들은 비웃으며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한해살이 곡식 수수라고 알려준다. 원님은 수숫대를 꺾어오게 하여 아전들에게 소매 속에 넣어보라고 명령했고 아전들이 쩔쩔매며 용서를 빌자, "한 해 자란 수숫대도 소매 속에 넣지 못하면서 열 세 해나 자란 나를 얕보고 놀리려 드느냐!"고 호령한다.어른보다 지혜로운 어린이는 근대에 들어와 '어린이'를 단순히 어른의 축소판으로 이해하던 전근대적 인식을 넘어 어린이 시기가 지닌 사회적 중요성과 이 시기의 교육 등이 특별히 강조되면서 만들어진 성격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요갈등을 구성하는 어른과 어린이를 강자와 약자로 놓고 보면 강자보다 지혜로운 약자의 이야기는 임금보다 지혜로운 광대, 현자보다 더 현명한 바보의 이야기로 변주되며 늘 권력을 해석하는 민중적 시선 안에서 살아 움직여왔다. 전통적으로 지방의 아전들은 중앙에서 임명된 고을 원들이 바뀌어도 그대로 직책을 유지했다고 한다.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는 각 고을의 시속에 밝은 아전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으니 이들은 지방행정의 중요한 파트너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나 세력 간의 알력은 있기 마련이니 지방의 하급 관리와 중앙에서 파견된 고위 관리의 갈등이 정도를 넘어서는 일도 적지 않았고 지방실정에 어두운 중앙관리를 놀리고 얕보는 경우도 없지 않았으며 심지어 고을 원의 눈을 피해 한술 더 떠 백성들의 재산을 우려내는 일조차 없지 않았으니 이상의 설화는 바로 그 흔적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서로 협력하며 목민의 본분을 다해야 하는 지방관리들이 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