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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대중매체님들' 지면기사
대중매체들은 젊은이들이서로 '안녕 하십니까'를 묻고나섰다고 중계하고 있지만그들의 심중을 설명하지 않고제대로 응답하지 못한채질문들만 되풀이해줄 뿐이다'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대자보 스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붙은 대자보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이웃한 이들이 퍼서 날랐고, 이어 토론에 불붙인 결과다. 과거 학생운동 당시의 고전적 수단이던 대자보가 갖는 의미가 강하게 되살아난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전연 닿지 않을 것 같은 뉴미디어와 접속되면서 절묘한 '미디어 믹스'가 이뤄졌다. 성공적 '미디어 믹스'는 사회에 무관심하다던 대학생들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었고, 자신이 처한 조건을 고민하고 토론하게 만들었다.절묘한 '미디어 믹스'와 함께 공감을 이끈 질문 또한 유효했다. 2013년 말 최고의 히트작이라 일컫는 '응답하라' 드라마와 묘한 짝을 이루어 공감을 유도해냈다. 강한 주장, 교조적 말투를 비켜나며 누구든 응답을 피할 수 없을 만큼의 공감적 질문을 해냈다. 안녕하냐는 질문은 '답답하지 않으십니까' '나 혼자만 그런가요'의 함의를 깔고 있는 공감형 질문이었다. 응답을 비켜가면 도대체 면이 서지 않을 것 같은 질문이었고 등을 은근히 강하게 떠미는 찰진 질문이었다.공감을 기반으로 하고, 성공적 '미디어 믹스'를 곁들이면 누구든 의제 설정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음을 '안녕' 사건은 말해주고 있다. 대중매체의 의제 설정 권력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음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안녕들 하십니까'가 조직된 개인들이 아닌 답답한 마음을 가진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에 호응하는 일이 SNS로 일파만파로 번져간 사건으로 보자면 대중매체의 종언을 고하는 사건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아니다. 대중매체는 의제 설정하는 개인들의 움직임을 받아 적기 바쁜 필기자의 존재로 추락했다고 할까. 질문 않고, 의제를 내세워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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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전라도일 거야" 지면기사
권력에 밉보이면고향도 바뀌는 세상개인정보 유출 조심한다지만관리소홀 대량 유출 심각유명인·공인은 신상털기 예사한심하고 치사하고 더럽다30여년 전만 해도 개인정보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름과 주소가 기재된 두툼한 전화번호부가 굴러다녀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고, 명함에 버젓이 집 주소와 집 전화번호를 찍어 넣은 사람도 흔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 즈음은 금융실명제도가 실시되지 않을 때여서, 보통의 사람들은 건강보험,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등의 발급 시 관공서에서 요구하는 서류, 학교에 입학할 때나 취직하여 직장에 내는 인사자료 정도에나 개인정보를 기술하면 되었고, 그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악용되거나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러나 요즈음은 어디에서나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금융 관련 일을 처리하자면 당연히 신분증을 제시하고 꼬박꼬박 개인정보를 기재해야 한다. 관공서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기관이나 조직의 홈페이지에 의견을 올리려 해도 개인정보를 기재하고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를 바꿀 때에도 매번 개인정보를 밝혀야 하고, 백화점에서 상품을 할부 구입하려 해도 영락없이 개인정보를 요구받는다.그런데 개인정보는 그 제공된 곳에 가만히 모셔져 있지 않다. 폐기된 서류뭉치에 섞여 재활용 쓰레기장을 굴러다니기도 하고, 온라인 세상에 넘쳐 떠돌기도 한다. 이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수집하여 상품의 홍보, 판매에 이용하는 것은 그래도 참을 만하지만, 보이스 피싱 등 범죄에라도 악용되면 개인적, 사회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진해서, 또는 어쩔 수 없이 개인정보를 제공하면서도 그 정보가 유출될까 보아 노심초사한다.그러나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개인정보는 이래저래 유출된다. 장삼이사들의 개인정보는 금융기관, 이동통신사 등의 관리 소홀로 대량 유출되어 합법 비합법적으로 이용당한다. 스캔들에 휘말린 유명 인사들의 개인정보는 누리꾼들의 집단 '신상 털기'로 까발려진다. 그리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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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시설이전 지평리탄약고 처럼 하면 안된다 지면기사
다른 군사시설과 달리위험성 크고 비선호 시설은이전 결정을 공개해야 하고후보지 결정후 마지막에지역주민을 무마하려는방식은 버려야 한다경기도 사람들은 군사시설이 늘어나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군사시설이 들어서면 재산권 행사도 어렵고 지역발전도 더디게 되는데다 경기도에는 이미 군사령부 1개, 군단급 부대 7개, 사단급 부대 30개 등 전군의 약 40% 가량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원도의 횡성군에 있던 탄약고를 양평군 지평면으로 옮긴다고 한다니 반발이 없을 수 없다.발단은 이렇다. 군은 지난 5월 양평군에 '59탄약대대 현대화사업'을 한다고 인허가 서류를 냈다. 하지만 사실은 횡성에 있던 탄약고를 옮기려 한 것이고, 제1군수사령관과 횡성군수가 참석한 기공식까지 열었다. 그 과정에서 양평군과 협의 한번 없었다. 그 뒤의 일은 뻔한 것이다. 지평면의 주민들은 이전저지비상대책위를 만들고 국방부와 횡성군에 항의하고, 양평군이 제 할 일도 못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양평군수와 군의회도 나섰고, 국방부는 주민들과 이제부터라도 협의하지 않고는 이전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다.지평리는 6·25전쟁 때 전황을 역전시킨 지평리전투로 유명한 곳이다. 1951년 당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지평리에서 막느냐 못 막느냐에 따라 한국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1951년 2월 13일 밤 중공군은 3개 사단을 앞세워 원형진지를 구축한 미23연대(프랑스대대 배속)를 공격했다. 하지만 미군의 폭격과 적절한 지원군 투입으로 3일 간의 격전이 끝나자 진지주변은 중공군의 주검으로 넘쳐났다. 이 전투를 통해 유엔은 한국 국토 사수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다(김국헌의 다시 쓰는 6·25 참조). 양평군 지평리에는 이를 기념하는 전적비가 있고, 주민들은 이를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축으로 알고 자부심을 가져왔다. 그런 곳에 우리 군이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군 탄약고는 지하형, 이글루형, 지상형 등의 3종으로 설계된다. 현재는 대부분 지상형인데다가 습기에 취약하여, 추진장약의 수명이 단축되고 있고 탄종특성별로 관리되지 못하기에 군은 탄약고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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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7 지면기사
6·29선언의 주역이었던학생들과 문민정부의 탄생을보았던 사람들은 어느덧 40대,한치 양보없이 무한표류 하는지금의 '대한민국호'를 구하는건'40대의 힘' 밖에 없어 보인다1994년을 조명한 케이블방송 드라마가 인기다. 드라마의 인기비결은 막장드라마처럼 이상한 전개와 결말이 없는데다 우리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서다. 이 드라마의 기획자가 1994년을 조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1994년의 시대적 상황은 드라마 내용보다 더 복잡했다. 김영삼 정부가 문민정부의 탄생을 내걸었지만 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있어서는 안 될 성수대교 붕괴사태가 있었고 이듬해에는 50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있었다. 이 두 사고는 모두 인재(人災)였다. 기업인의 부도덕한 탐욕과 공무원의 무사안일이 만들어낸 참사에 우리 모두 트라우마를 안고 살게 된 것이다.2013년 한국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케이블 방송의 20여 년 전 드라마 상황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한국정치는 '대선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념정글'에서 표류하고 있다. 지난 15일에서 17일사이 한길리서치가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자. 여야의 대치국면 책임에 대해 '새누리당과 정부'라는 의견이 18.8%, '민주당'이 23.8%였고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의 책임'이라는 의견이 55.9%로 가장 높았다(전국 1천명 유무선 RDD 전화조사, 95%신뢰수준 ±3.1%P). 대선과정 의혹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 필요하지만 대통령 선거에만 매달려 있는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분노가 폭발 직전임을 알 수 있다. 국민들은 이미 세 가지 경고를 했다. 첫째는 NLL(서해북방한계선)은 대한민국 영토로 사수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응답했다. 둘째로 NLL과 관련한 대통령 기록물 열람에 대해서도 정쟁의 불씨가 될 것이므로 추진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셋째로 지난 8월말 국정조사가 끝난 뒤 정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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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장과 동네 마실 지면기사
현대 도시인은 구성원간 대화가줄어들어 신뢰도가 하락하고공동체의식도 형성 안된다이젠 비생산적 냉소를 거둬내고마을·고장·동네 제대로 갖추는일을 삶의 첫과제로 삼아야 할때공동체 삶에 대한 언급이 점차 늘고 있다. 아예 공동체 혹은 코뮨이란 이름을 달고 일상을 영위하는 곳까지 생기고 있다. 그에 대한 이론도 늘뿐 아니라 정교해지고 있다. 그런 현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삶이 공동체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와 비슷한 말에 속하는 고장, 마을, 동네 등의 단어는 사라지거나 혹은 그 함의를 바꾼 채 존재하고 있다. 고장이란 말은 사라진 듯하고, 동네란 말 속엔 '잠자는 곳' 정도의 함의만 담겨 있을 뿐이다. 결핍된 것에 대한 욕망의 결과로 우리는 오매불망 건강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를 갈구하고 있다.한국 사회보다 더하진 않겠지만 대체로 많은 나라들에서 이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시작했다. 사회가 선진제도를 갖춘다 하더라도 과거보다 그 운용이 원활치 않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 공동체 의식이 담기지 않으니 좋은 제도조차도 빛을 좀체 보지 못함을 깨닫고 있다. 그래서 이웃한 사람들끼리 동네 걱정을 나누는 일이 점차 줄고 있음에 주목하게 되었다. 최소한으로 이웃을 사귀는 것에 그치고 당장의 이익이 개입되지 않으면 외면해버리는 개인주의적 습속이 주요 일상으로 자리잡았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공동체 문제를 낭만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당장의 삶을 윤택하거나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나홀로 볼링'이란 책을 통해 로버트 퍼트남은 공동체 문제가 얼마나 절실한 현실 문제인지 알리고자 했다. 미국의 대부분 마을 어귀에는 볼링장이 있었다. 그곳은 늘 사람들로 붐비던 사교장이었다. 공을 굴리고 맥주를 나누며 마을 걱정도 하고, 서로 안부를 묻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그곳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볼링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뿐만 아니라 혼자 볼링 치는 사람도 늘었다. 퍼트남은 이 같은 현상을 '사회적 자본'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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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식 김치를 아시나요 지면기사
봄까지무르지 않는사각사각 경기도 김치,요즘은진한, 짭조름한 맛,전라도식 김치에 밀려무나 배추에 양념을 넣지 않고 통으로 소금에 절여서 묵혀두고 먹는 김치를 흔히 짠지라고 하는데, 황해도, 함경남도 지방에서는 김치 자체를 짠지라고도 한다. 또 경기도 지방에서는 무를 절이지 않고, 소금을 조금 넣어 삼삼하게 담근 김치를 싱건지라고 부른다. 오이를 짠지 비슷하게 담근 것은 오이지다. 이밖에 부추도 고춧가루와 젓갈로 버무려 김치를 담근다. 지방에 따라 부추김치를 솔지 또는 정구지라고 한다. 장아찌는 무, 배추, 오이 등 채소를 소금이나 간장에 절여 숙성시킨 저장식품을 말한다. 우리의 옛 조리서에는 장아찌를 장으로 담근 김치, 곧 '장지'라고 적고 있다.짠지, 싱건지, 오이지, 솔지, 정구지, 장지(장아찌) 등에 붙은 '지(찌)'란 무엇일까? '지'는 16세기 김치의 옛말인 '딤채'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이 불렀던 김치의 이름이다. 고려 중기의 시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김치 담그는 것을 '염지(鹽漬)'라고 했는데, '지(漬)'는 '적실 지, 물에 담글 지'로 풀이되므로 곧 '지'가 김치임을 추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려 말기가 되면서 '지'는 사라지고 '저(菹)'가 김치를 뜻하는 말로 떠오른다.'딤채'라는 말은 조선 초기에 보인다. 1525년 '훈몽자회'는 저(菹)를 '딤채 저'라 풀이하고 있다. 그러면 '딤채'는 무엇일까? 이때의 김치는 고춧가루와 젓갈을 쓰는 오늘날의 김치와는 달리, 소금에 절인 채소에다 마늘 등 몇 가지 향신료만을 섞어서 채소의 수분이 빠져나오고, 채소 자체는 소금물에 침지(沈漬)되는 형태이거나, 동치미처럼 소금의 양이 많으면 마침내 가라앉는 형태였을 것이다. 여기에서 김치는 가라앉은 채소 곧 '침채(沈菜)'로 불리고, '침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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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도 좌 우 날개로 난다' 지면기사
새들은 좌우날개로 잘 나는데왜 여야는 제쪽만 옳다거나잘됐다는 식의 논법으로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가?균형 맞추며 비행하는 철새처럼한국정치도 지혜로웠으면…이제 겨울새들의 계절이다. 수만 ㎞를 지치지 않고 날아오는 두루미나 청둥오리 떼가 반갑다. 그 가냘픈 몸으로 무리가 우두머리를 앞세워 기류를 제 것으로 만들어 오는 저것들이 대견하다. 서로 협동하는 무리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티격태격 사는 모양새가 부끄럽기까지 하다. 새들이 보면, 우리한테 한수 가르쳐주고 싶지 않을까.특히나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날을 지새우는 정치권을 보면 새들이 뭐라 할까? 공무원 개인의 정치개입 사건으로 끝나야 할지, 행정체계의 조직적 정치개입으로 보아야 할지. 이것을 두고 정국이 좀처럼 풀리질 않는다. 야당이 연일 공세수위를 높여가자, 여당은 대선불복이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다 한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에 대해 책임자를 찾아 처벌해달라고 하는 것이 야당의 입장이다. 야당이 지난 대선패배를 자신의 잘못에서 찾기보다, 외부에서 찾는 것이 꼴사납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청와대와 여당의 대응도 군색하기는 피차일반이다. 기류라는 현실적 조건에 맞추어 좌측 행렬이 늘어났다가 우측행렬이 늘어났다가를 반복하는 철새 떼를 보면, 현실의 정치리더십이 아쉬워 보인다. 우두머리새가 이끄는 모습도 부럽고, 그를 따르는 철새들도 부럽다.우주에서 보면, 철새 떼의 무리에 비유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행정체제도 대통령이 나서서 좀 실타래를 풀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해외외교에 나서기 전에 국내정치의 갈등해법을 찾고 나서기를 바란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계속되는 정쟁에 지겨워지고 먹고사는 일이 급해진 탓이다. 그래서 유럽순방 직전에 국정원 의혹 철저 조사 후 문책하겠다는 의지표명을 한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청와대 회의에서 전공노와 전교조의 선거개입이 더 문제라고 맞받아친 것은 과연 시의적절했나 하는 의심이 간다. 장군멍군하는 식으로 이쪽도 잘못했으나, 저쪽의 잘못이 더 크다는 식으로 핑퐁게임을 유발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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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없다 지면기사
아베총리는 인기를 의식해'동양평화'를 파괴하는 100년전과오를 재현해선 안된다이웃국가들 목소리를 외면하고막무가내 우경화를 고집한다면한일관계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17년 전 일본 유명 사립대학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학생들의 한국 교류 모임에 회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일본에 관해서는 역사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방송에서 보았던 이미지만 가지고 있을 때였다. 일본학생들과의 첫 대면은 어색하기도 했지만 충격의 연속이었다. 당시 교류 프로그램은 한일 관계의 민감한 부분까지도 숨김없이 토론하는 자리였다. 프로그램 일정에는 일본학생들과 함께 독립기념관을 방문하고 판문점을 동행하는 것도 포함되었다.대체로 한국학생들은 과거사와 관련된 예민한 토론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반대로 일본학생들의 반응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놀라운 표정들이었다. 이 모임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와 일본이 생각하는 과거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우리는 일본과의 과거관계에만 치중한 나머지 현재와 미래의 일본에 대해 놓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며칠 동안의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정확히 몰랐던 일본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선명하게 느껴졌고 '일본은 있다'였다.최근 일본 아베 총리의 우경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10월 26일은 '한일 강제 병합'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지 10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이웃국가를 강점하고 '동양평화'를 파괴한 행위에 대해 단죄한 것이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역사적 도발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도 없고 부끄러운 역사를 자국민들에게 교육하지 않는 것이다. 천황을 비롯해 많은 일본 지도층들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스스로 이를 부정하고 있다. 다수의 역사교과서가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왜곡을 일삼아도 수수방관한 것이다.둘째로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웃국가에 대한 진정한 우호의 정신이 털끝만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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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울린 수원 행궁동 주민들 지면기사
4300여주민 옹기종기 사는곳정조대왕 효행 흔적 곳곳에한달간의 생태교통 페스티벌걷고 경험하고 즐기고 맛보고주민 도움 소통으로…역사 조화 관광도심으로 재생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4천300여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정조대왕의 효행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고, 그와 함께 하던 무사들의 '화성무예 24기'가 매일 공연되는 역사 마당이기도 하다. 한반도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생가터가 있고, 그를 기념하는 문화제가 매년 열리는 동네다.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조성한 공방거리가 소담하게 낮볕을 받는 정겨운 곳이다. 그렇게만 알려졌던 행궁동에 지난 9월 한 달 동안 수상하고도 괄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었고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지난 9월 한 달 내내 행궁동에서는 생태교통 페스티벌이 열렸다. 각종 지역 축제를 떠올리면 별것도 아니련만 행궁동 생태교통 페스티벌을 특정해 들여다보자 제안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에 통보한 지역축제는 모두 752개에 달한다. 그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대체로 사회는 그를 대단치 않은 것으로 여긴다. 판에 박힌 행사, 억지춘향식 볼거리, 미래가 실종된 관주도형 부실 기획 등의 이미지가 늘 겹친다. 안전행정부가 지역축제를 제대로 감리해야겠다고 매번 다짐하는 것도 그런 탓이다. 그런데 행궁동 축제를 챙겨보자며 소매를 끄니 그 이유가 궁금할 법하다.수원 행궁동의 생태교통 페스티벌은 화려하거나 웅장한 행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모범적이었고, 생산적이었으며 기록해둘 만했다. 무엇보다 소모성 행사가 아닌 생산성 축제가 되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생태교통 행사는 행궁동의 낙후성을 일거에 제거해냈다. 행궁동을 역사, 생태가 함께 이뤄지는 관광 도심으로 재생시켜냈다. 파내고 뒤엎는 개발 패러다임의 도시 개발을 생태적으로, 생산적으로 전환해낸 것이다. 도시 재생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창조해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확신한다.행궁동 축제이긴 했지만 수원을 넘어 전국구 축제로 갈 가능성도 보여줄 만큼 잘 기획된 행사였다. 역사라는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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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과 정부수립 지면기사
있는 것을 왜곡 하거나없는 것을 조작하는 역사는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공자 말씀에 "하늘에 죄를 지면빌 데가 없다"고 했다우리나라 사립학교들은 가급적 자기 학교의 역사를 올려 잡으려 애쓴다. 나의 모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사립 고등학교로, 1885년 8월에 겨우 두 명의 학생을 구워삶아 '학교'를 시작했고, 1886년 6월에야 고종의 편액을 받아 '정식 학교'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내 모교의 개교일자는 설립자인 미국 선교사가 증기선에서 내려 제물포에 발을 내디딘 1885년 6월 8일이다. 내가 다닌 대학 역시 1915년에 개교한 전문학교를 모태로 하고 있지만, 개교일자는 설립자 중 한 사람인 미국인 의사가 진료를 시작한 1885년 5월이다. 견강부회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실낱같은 근거라도 찾아 조금이라도 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오늘에 이어보려는 나름의 노력이라 치부하면 그만이다.그러나 아무 근거 없이 자기 나라의 역사를 무작정 올려 잡으려는 짓거리는,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여진 판이 수 천 년 켜켜이 쌓여 이룩된 인류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범죄행위이다. 한반도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조작하기 위해 가공의 천왕들을 만들어 자기 역사에 끼워넣은 일본,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 된 흥산문명이 발견되자 고대부터 만주 일대가 자기들 통치 하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 그렇다. 말도 되지 않는 국수주의, 오도된 민족주의의 발로이지만, 동서고금을 통하여 자국 중심주의, 자국 이익의 관철이 국제관계의 실체임을 감안한다면, 그들 사회에서 그런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도 현실이다.2008년, 이명박 정권은 그 해를 건국 60주년으로 삼고 각종 기념행사를 벌였다. 곧 미군정을 끝내고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일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는 식민사관에 바탕한 완전한 역사왜곡이다.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됨으로써 건국된 것이며, 1948년 8월 15일은 그 동안의 어쩔 수 없는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