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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나는 어떤 빗방울이 될까 지면기사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나에게 깜짝 놀라 여러번 확인했던 질문이 있었다."너 김신조 몰라? 정말로 김신조가 누군지 몰라?"나는 정말로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를 모른다고 고개를 저으면 어른들은 긴 탄식을 내뿜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김신조를 알게 되었다. 김신조는 1968년에 북한에서 내려와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31인 무장공작원 그룹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내가 태어나기 4년 전의 일이었으니 나는 그를 모르는게 당연했는데도 어른들은 내가 그를 모른다고 할 때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냐고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 장탄식을 내뿜었다.그때 탄식하던 어른들의 심정을 이제 나도 안다. 내 딸을 포함한 젊은 세대가 이웅평, 황영조, 하다못해 아기공룡 둘리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도 옛 어른들처럼 놀라며 긴 한숨을 내뿜었다. 그 한숨은 세월의 빠름에 놀라고 세상사의 무상함에 굴복하는 의미였다.요즘 인기를 끄는 소년범에 대한 법정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그렇게 잊혀진 인물들 중 하나인 신창원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신창원을 안다면 당신은 옛날사람이다. 1997년 신출귀몰한 탈주범으로 세간에 이름을 떠들썩하게 알렸을 때 신창원은 물론 소년범이 아니었다. 2년 넘게 도피생활을 계속한 끝에 눈에 띄게 알록달록한 쫄쫄이 티셔츠를 입고 체포되어 사나운 표정으로 끌려갔던 그는 이십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를 인터뷰한 어느 기사에서 그는 소년 시절의 어린 마음을 외쳤다."내가 어릴 때 단 한 번이라도 '너 착한 놈인거 안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그 어린 목소리는 가시처럼 내 마음에 콕 박혀 오늘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인간은 때로는 믿을 수 없이 부조리하다신창원처럼 착한 놈 소리 듣고 싶어한다 심한 범죄를 저지르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더라도,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말썽꾼'이라는 평판을 얻은 아이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나쁜 소문이 자자한 어느 아이를 만났을 때 나는 그 아이가 조심스럽고 참하게 행동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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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돈이 뭔 줄 아시오? 지면기사
"돈이 뭔 줄 아시오?" 며칠 전 도쿄에서 처음 만난 그의 물음에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뉘앙스로 보아 이 사람이야말로 돈을 정말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는 사이타마에 사는 그를 만나러, 아니 그의 돈을 만나러 간다. 어쩌면 그의 삐뚤빼뚤 못난 이를 보러 가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가난한 농부가 주는 용돈을 한사코 거절하느라 쌀가마를 서둘러 지다가 꼬꾸라져 앞니 몇 개가 부러졌는데 돈이 없어 꾹꾹 손으로 박아 넣었다고 했다.하정웅. 일본 아키타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쿄에 올라왔지만 잘 곳도 먹을 것도 없었던 그는 전기부품상에 겨우 취직해 야간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학비를 제하고 2천엔으로 한 달을 살아야 했던 그에게 찾아온 것은 영양실조였다. 그런 그가 1만여 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미술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천경자, 박서보, 쿠사마 야요이, 샤갈, 호안 미로 등 세계적인 걸작을 태어나지도 않은 대한민국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는 어떻게 돈을 벌어 천문학적 가치의 그림을 샀으며 왜 기증한 것일까?시력 손상으로 직장에서도 잘려난 그는 민단을 찾아갔고 박봉의 총무 일을 맡게 되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교포들은 이름도 쓸 줄 몰랐다. 그는 교포들의 손과 발이 되어 뛰어다녔다. 그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다. 똑똑한 사람이란 '공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 아닌가! 결혼축의금으로 가전제품을 사러 간 그에게 가게 주인이 사정했다. "오늘 받은 물건값을 가게 부도 막는 데 쓰도록 해 달라. 대신 내가 월부로 갚아 나가겠다" 딱한 사정에 승낙하고 말았는데 월부금 청구서가 계속 그에게 날아왔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기 덕분에 그는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다. 가게 주인에게 항의하자 가게를 넘겨줄 테니 빚을 갚아달라고 했다. 그가 빚더미의 가게를 물려받았다는 소문이 나자 자녀들 혼수를 장만하려던 교포들이 몰려들었다. 민단에서의 그의 희생적인 친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쓰러져가던 가게가 대리점으로 승격했고 나중에는 엘리베이터까지 납품하는 큰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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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대통령 국민중임제의 종언 지면기사
1987년 민주화 이후 헌법상으로는 대통령 임기5년 단임제다. 그럼에도 국민은 같은 정당 또는 집권세력의 2 대통령을 연이어 뽑아주었다. 그 결과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보수·진보가 10년을 주기로 집권했다. 즉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헌법상으로는 5년 단임제이지만 국민은 같은 정당이나 진영의 대통령 중임제를 자리잡게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은 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중임제에서 연임에 실패한 것이다.실패 원인은 명확하다. 선거 후 승자에게서 승리요인을, 패자에게서 패인을 찾고 있지만 이번 대선의 결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실패다. 한길리서치의 대선 직후 3월12∼14일 조사에서 이번 대선 총평을 물은 결과, 국민은 '윤석열 후보의 정책이나 선거전략이 앞서서 이겼다'는 6.7%, 상대인 '이재명 후보의 정책이나 선거전략 실패로 이겼다'는 14.6%에 불과했다. 반면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으로 윤석열 후보가 이겼다'는 평가가 48.7%로 두 후보 승패 요인을 합한 수치의 두 배보다 많았다. 즉 국민들은 윤석열·이재명 두 후보 보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으로 투표한 측면이 크다. 이는 대선 패배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서도 더 명확히 드러난다. 대선 패배에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에 대한 질문에서 '책임이 있다'가 72.8%로 '책임이 없다'는 평가 24.6%보다 3배 정도가 더 많았다. 민주당 대선패배 文대통령·靑 책임 '72.8%'각 후보 정책적 완성도·국민 공감대 못 얻어 대체로 대선과 총선의 성격을 규정할 때 총선은 대통령 임기 중후반에 치러질 경우 정권심판론이었으며 대선은 미래에 대한 선거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달랐다. 미래 국정에 대한 비전이나 공약 보다는 과거 회귀 성격의 정권 심판이 선거기간 내 일관되었으며 그에 따라 정권심판에 찬성하는 진영을 중심으로 한 후보 단일화와 세대연대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치열한 양자 대결 구도를 보였다.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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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나는 이상한 미래에서 온 사람이었다 지면기사
젊은이들이 떠나고 시골에 남은 건 노인들, 공허하게 짖는 개들, 여기저기 펄럭이는 폐비닐, 함부로 나뒹구는 농약병뿐이다. 시골은 조개무지, 고인돌, 옛사람의 주거지만 남은 유적이나 다름없었다. 촌락공동체가 깨지고, 마을엔 스산한 적막감이 감도는 시골에서 나는 10년 넘도록 혼자 살았다. 나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시골에서 집을 짓고 생활을 꾸리며 혼자 사는 자의 슬픔과 기쁨을 겪었다. 봄에는 영산홍이 피었다 지고, 봄비가 다녀갔다. 봄비 내린 뒤엔 원추리 싹이 지표를 창끝처럼 밀어올리고, 새로 돋는 작약 움은 착한 소년 같았다. 영양분을 듬뿍 머금은 노오란 햇빛 아래 작약꽃이 피고 나비는 작약꽃에 앉아 우표 만한 날개를 접었다 폈다. 버드나무 가지가 초록빛으로 물들고, 직박구리가 감나무 가지에 와 울던 날엔 나무시장에 가서 묘목 몇 그루를 사다 심었다. 귀한 꽃을 보려고 사오년생 모란과 배롱나무를 심었지만 뿌리가 냉해를 입어 말라 죽었다. 이른 봄날의 냉기 속에서 시린 무릎에 담요를 덮고 장자와 노자를 읽고,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이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들춰보거나 그 어렵다는 들뢰즈의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 그 외로운 날에 독서가 무슨 쓸모가 있었을까. 목전의 필요와는 상관이 없는 무용한 독서였다. 그것은 영원에 가 닿으려는 불가능한 시도와 닮았다. 독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다. 어쩌면 그것은 침묵의 신에게 드리는 기도였는지도 모른다. 서재에서 책을 읽는 동안 산에서 내려온 산개구리는 하천에서 시끄럽게 울었다. 호오이, 호오이. 첨엔 낯선 새가 우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한두 해 지난 뒤 누군가 그게 짝짓기 할 짝을 찾는 산개구리 소리라고 알려주었다. 봄날 오후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온 좁쌀막걸리 몇 잔을 들이킨 뒤 불콰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혼자 누워 있자니, 또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적막한 시골에서 10년 넘도록 혼자 살아책을 읽고 일정한 시간에 밥 해 먹고 자고 혼자인 날에도 끼니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프면 김치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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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선택에 관하여 지면기사
옛어른들 말씀이 '열두 재주 가진 놈 조석끼니 없다'고 했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때 나는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과학자랑 외교관이랑 작가요!"라고 대답하는 아이였다. 어른들은 껄껄 웃으며 셋 중 무엇이 되어도 좋겠다고 했는데, 그때는 그게 덕담인줄 모르고 왜 하나만 하라고 하는걸까 이상하게 여겼다. 그때는 내가 벤저민 프랭클린에 맞먹는 인재인줄 알았다. 거창한 미래상은 겨우 대학 입시 한번을 치르며 현실에 맞게 조정되었다. 나는 세가지 꿈 중에 과학자의 미래를 선택하면서 이 정도 아담한 꿈이라면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분자생물학과라는 낯선 학과를 선택했는데 분자 단위에서 생명현상을 연구한다는 그 학과의 취지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생명과학은 미래의 핵심산업이 될 것이 확실했다. 나는 내 선택에 만족했다. 막상 공부를 시작해보니 과학자의 길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 생명작용의 과학적 메커니즘 같은 근사한 어휘에 매혹되어 시작했지만 연구의 실제는 끝도 없는 실험과 논문연구, 데이터와 그래프와 통계의 연속이었다. '알고보니 나는 문과였구나' 속으로 후회했다. 게다가 찬란해보였던 생명과학의 미래가 실은 그리 밝지 않다는 식의 암울한 전망들이 줄을 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생명과학 연구인력은 너무 많은데 좋은 일자리는 적다는 것이었다. 힘들고 어려운데 전망까지 어둡다니,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았다. 최선의 선택이 최상 결과라는 착각 때문에오랫동안 앙앙불락하며 어리석은 시간 보내이십대의 용기와 낙관을 긁어모아 나는 문학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과학자의 재목이 아닌 것을 깨달았으니 내 진짜 적성은 문학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문학계는 나를 받아주었다. 나는 좋은 상을 받으며 근사하게 등단했고 내가 예술로서 인류에 이바지할 미래를 다시 한번 확신하며 집필의욕을 불태웠다.그리고 10년 뒤, 나는 또다시 번아웃에 나자빠져 있었다. 알고보니 나는 문학적 재능마저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과도 아니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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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안철수의 뼈아픈 결단, 윤석열의 든든한 정치력 지면기사
국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단일화가 성사되었다. 그러나 단일화의 진정한 성공과 향후 우리 정치문화의 발전을 위해 단일화 실패의 과정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안철수 후보의 ‘사퇴’를 전제로 협상하자고 요구한 것이 단일화 실패의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로운 협상은 약자든 강자든 균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정의롭지 못한 협상은 합의에 이르기 힘들다고 했다. 지지율이 박빙이라 윤석열 후보는 혼자 힘으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안 후보와 힘을 합칠 때 승리가 보장되는 이런 경우에는 두 후보가 지지율에 상관없이 동등한 출발선에서 협상을 시작해야 정의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윤 후보를 단일후보로 기정사실화하고 안 후보의 사퇴를 종용했으니….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 내가 모두 완주하면 승리할 확률은 0%였지만 단일화가 되면 100%에 가까웠다. 복잡하게 계산할 일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기는 것보다 정몽준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연립정부를 세우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내가 민주당 후보라는 기득권에 집착하는 것은 떳떳한 선택이 될 수 없었다”며 당시 여론조사에서 이길 가능성이 낮았는데도 정몽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노무현이라는 역사적인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安, 자리보다 국민 도움되는 일 하고 싶어 해오랜 통화속 정권교체 안 될까봐 진심 걱정안 후보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자신이 패배했던 방식인 여론조사경선을 제안했었다. 안 후보로서는 희생적인 제안이었다. 그런데 윤 후보는 역선택을 염려하며 직접 답을 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지지율이 더 낮았는데도 경선을 받아들였고, 윤 후보는 지지율이 더 높은데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간 야권에서는 안 후보에게 총리니 경기지사니 인수위 참여니 하며 몇 자리 주면 사퇴할 거라고 예상했다. 국민들도 몇 자리 준다는데도 완주하겠다는 안 후보가 왜 저러나 의아해했다. 미모를 중시하는 사람은 예쁘냐 미우냐로, 돈을 중시하는 사람은 부자냐 가난하냐로, 권력을 중시하는 사람은 높냐 낮냐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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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대선 막판 변수: 단일화, 역단일화, 소단일화 지면기사
이번 대선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고들 한다. 특히 당선 예측에서 더욱 그러하다. 과거 같으면 30일 전 앞선 후보가 대부분 당선이 되었지만, 대선 2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예측 불가다. 한마디로 이번 대선은 백중이면서도 혼란스럽다. 그럼 백중이면서 혼란스러운 이번 대선의 막판 변수는 무엇일까?대체로 선거는 정치세력간 구도로 고정표를 모으고 후보가 부동표를 더해 득표를 완성한다. 그리고 전체 득표 100을 기준으로 본다면 구도로 득표하는 것이 약 70%, 후보 득표가 약 30% 정도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구도를 만드는 국민들의 정치성향 즉 보수 중도 진보가 약 3분의 1 비율로 황금률이라 할 수 있는 균형이 유지되어 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은 없다. 또한 정당 지지율에 있어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오차범위내에 있다. 이러다 보니 득표의 약 70%를 차지하는 구도 경쟁에서 백중이다. 그럼 후보 경쟁력은 어떠한가? 보통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검증은 후보의 정책이나 공약, 도덕성, 국정운영 등이지만 선거에서 정책이나 공약은 막판으로 갈수록 상호 수렴이 되어 변별력이 없어지고, 국정운영에서도 모두가 통합과 민주정치를 이야기하기에 역시 변별력이 없다. 결국 남는 것이 도덕성 검증이지만 현재 선두 두 후보를 보면 후보자와 배우자 관련 문제들이 데칼코마니와 같이 비슷하다. 그것도 긍정적인 측면 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그러하다. 그러다 보니 후보검증이 막판까지 정책이나 국정비전보다는 도덕성 중심으로 네거티브공방이 이어지고, 그것조차 승부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 대선이 막판까지 혼란스럽다.安 철회로 판세 '백중' 두후보 필요성 더 커져'윤석열과 安' 단일화는 반문에너지 이지만'安-李'·'李-김동연'은 비문정서 에너지 이와 같이 결판이 나지 않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선거판을 기울게 만드는 마지막 변수가 단일화다. 단일화는 백중을 이루고 있는 이념성향과 정당 지지율의 그 밑에서 끓고 있는 유권자의 운동 에너지다. 그리고 이 에너지는 여론조사에서 정권 재창출과 정권교체 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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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봄날엔 할 일이 많다 지면기사
묵은 매화나무 가지에 꽃눈이 맺혔다. 혹한을 견딘 매화나무를 기특하게 바라보며 설레곤 한다. 매화 맑은 향기가 공중에 퍼질 땐 사는 일이 팍팍해도 우리는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던가. 하지만 봄이 올 때마다 나는 딸꾹질 하듯이 찾아오는 우울증에 짜증을 내고, 대인기피증으로 고립된 채 지내며, 해결해야 할 문제를 미루고 회피한다. 해질녘 핏빛에 잠긴 붉은 석양 아래 지친 새와 같이 깊은 피로에 사로잡힐 땐 스스로를 구제불능의 실패자로 여기고, 자주 통제력과 의욕을 상실한다. 우울증은 일조량이 준 겨울을 나면서 겪는 환절기 증후군이다. 뇌가 우울증에 잠식되면 사고의 균형을 잃고 모든 정보를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인지 왜곡(cognitve distortion)'에 빠져드는 까닭이다. 비현실적 사고에 과몰입하며 비관에 기울어 종종 자해나 자살 같은 나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우울증 따위에 지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다. 그러니 나는 우울증으로 낙담하거나 허송세월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금싸라기처럼 반짝이는 햇빛 아래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금생의 시간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가!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엔 노래하고 사랑하라짐승이든 사람이든 어린 생명에 자리 내주자 어린 날의 봄은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반짇고리에서 찾은 골무를 끼고 구멍 난 양말을 꿰매는 동안 나는 어린 동생과 뒷동산에 올라 새 둥지를 찾아 돌아다녔지. 저녁 때 어머니가 작년에 거둔 청둥호박으로 끓인 호박죽 한 그릇을 얻어먹고 한 이불 아래 잠들었지. 호박죽 먹고 한 이불 아래 잠든 어린 형제는 재속 프란치스코 수도회 형제만큼 신실한 믿음을 갖진 못했지만 제 시간으로 무엇을 해야 옳은지를 가늠하는 어른으로 자라났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랑잎처럼 이승을 떠났지만 세상은 그때보다 더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천지간에 봄이 온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너무나 많은 이별을 겪고 맞는 이 봄날이 난생 처음 맞는 봄이 아니라고 슬퍼할 까닭은 없다. 씀바귀와 뿔남천에게 인사하자. 겨우내 추위에 시달린 길고양이에게도 인사하자. 청매화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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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미래를 바라보기 지면기사
태어나 처음으로 달력에서 입춘이 언제인지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벌써 지나 있었다. 아직 영하의 날씨인데 입춘이 지났다니 당황스러웠다. 무언가 앞서가는 기분으로 달력 앞에 섰는데 여전히 한참 뒤처진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가오는 절기는 우수(雨水), 눈이 녹아 빗물이 된다는 시절이다. 어쨌거나 나는 달력에서 절기를 찾아본 이날을 기념비적인 날로 여기기로 했다. 나는 드디어 미래를 바라보았다.어디선가 해본 성격검사에서 제일 먼저 '과거지향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듣기 좋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더 높이 쳐주는 쪽은 '미래지향적 인간'이다. 한반도에 사람이 정착한 이래 언제나 올빼미형 인간은 아침형 인간에게 구박을 받았고, 대한민국이 공화국이 된 이후로는 언제나 과거만 생각하지 말고 미래지향적 시야를 가지라고 잔소리를 들었다. 과거지향적 올빼미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나는 언제나 무언가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식물상태, 계절 관계 모른채 키워 큰 깨달음예전엔 비실비실해 영양제·물만 퍼부었다면 나는 과거지향적 인간이다. 나에게는 이미 일어난 일만이 실체다. 미래에 대해서는 '어찌될지 모른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예상하고 계획한다는 것을 무용하게 여긴다. 한 친구가 아이들의 교육비, 식비, 연료비, 통신비 등을 생각하며 올해의 가정 예산을 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내 눈에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요술램프를 문지르는 것처럼 신기하게 보였다. 내가 얼마만큼 먹고 무엇을 할지 미래의 일을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미리 계획을 세우면 그대로 하기 딱 싫어지는데.갑자기 스스로 미래지향성과의 첫 만남이라고 뿌듯해 하며 절기를 찾아보게 된 것은 내가 식물을 기르는 취미를 붙였기 때문이다. 집에 식물을 들이기 시작한 지는 어느새 2년이 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도 남들처럼 집안에서 즐길만한 취미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식물 가꾸기가 어느새 2년을 넘어 3년차에 접어들었다. 초보자의 손에 맡겨진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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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윤석열에게 이런 선택은! 지면기사
내게는 새해에 꾸는 꿈이 있다. 아니 우리 국민 모두의 꿈일 것이다. 진정 국민을 위하는 정부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 그러나 '찍을 놈이 없다'는 얘기가 도처에서 들린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은 기존의 정치 문법을 버리고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동안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됨으로써 온 나라를 헤집어 놓은 폐해를 목격해 온 국민들은 지금 정권교체의 마법에 걸려 있다. 이 집단적 마법을 이용해 정치인들은 정권교체를 마법의 주문처럼 외치며 권력을 서로 차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수없이 정권교체를 해오지 않았던가. 이번에 정권이 교체된다 한들 대통령에게 또다시 권력이 집중된다면 무슨 소용인가.윤석열 후보는 정권교체를 위해 선거에 나섰다고 끊임없이 공언한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박빙이다.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마저 어쩌면 선거 날의 운에 좌우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야권단일화'만이 정권교체의 확실한 길임을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명백히 알려주고 있는데도 단일화에 선을 긋고 있다. 정권교체가 그의 진정한 소망일까? 국민들은 국가를 잘 이끌어 갈 비전을 바라며 정권교체를 말하고 있다. 정권교체는 포장일뿐 사실은 그 내용물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포장만 크게 외치는 윤 후보에게서 그 내용물을 보지 못해 불안해 하고 있다. 정권교체 외침 진심이라면 도박할 때 아냐안철수와 손 잡고 권력집중 폐해 끊어내야 과거 열렬한 지지를 받고 당선된 대통령들도 불행하게 물러났다.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노무현도…. 대통령 권한의 비대화가 그 원인이었다. 오늘 문재인 정권의 문제도 권력 집중 때문 아닌가.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는 권력으로 시장에 개입해 부동산이 폭등했고, 공수처라는 괴물기관을 만들었으며, 탈원전 고집으로 자연환경만 파괴했다. 현 정권의 힘이 분산되어 있었더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발상은 아예 못 했을 것이다. 그냥 놔두기만 하면 잘 해낼 국민들이 아닌가!지금 국민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정권교체라기보다 권력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