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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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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플랜의 망령 지면기사
[경인일보=]1972년 7월 15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11층짜리 서른 세 동의 아파트가 들어선 주거단지를 폭파하여 철거시킨 일이 일어났다. 2차 대전 전쟁영웅의 이름을 따 '프루이트 이고'라고 부르며, 새 시대 새로운 주거를 목표로 1955년에 지은 이 단지는, 가장 좋은 삶터로 평가되어 여러 건축상까지 받았던 바 있었다. 그러나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천편일률적 공간이 갖는 무미건조함으로 인해 그 속의 공공공간이 무법지대로 변하면서, 이 주거단지는 도시에서 가장 절망스럽고 공포스러운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불과 17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도시범죄의 온상이 된 이곳을 주정부는 폭파로 청산한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건축가 찰스 젱크스는, 이날은 모더니즘이 종말을 고한 날이라고 기록하였다.모더니즘은 19세기 말, 시대적 가치를 상실하여 세기 말의 위기에 몰린 사회가 퇴폐와 향락에 이끌리며 문화가 퇴행하던 시절, 새로운 시대 새로운 예술을 꿈꾼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찾은 시대정신이었다. 그들은 전통적 양식과 역사적 관습에 억눌린 인간의 이성을 회복시키고 합리적 가치를 최선으로 내세우며 우리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좋은 제품의 대량공급을 목표하며 통계에 근거하여 찾은 표준화라는 방식은 그들의 유용한 수단이었고, 사물을 조직화하고 환경을 체계화하며 수요와 공급을 정량화하는 방식은 그들이 목표하는 사회의 구성원리였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에 대한 과신이 문제였다. 도시를 예로 들면, 땅을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등으로 칠해 상업지역 주거지역 공업지역으로 나눠서 차등하였고, 도로는 도로의 폭과 속도를 제한하며 서열화하고, 도심과 부도심 변두리로 전체를 나누며 계급적으로 만든 도시계획을 과학적 합리라고 신봉하였다. 심지어는 오래 살았던 동네마저 이 도시계획도를 들이대며 재개발하였으니, 이게 마스터플랜이라는 이름의 괴물이었던 것이다. 특히 세계대전 직후 세계의 도시가 개발의 열망에 휩싸이면서, 이 마스터플랜은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져 전 세계 방방곡곡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표준적 평면을 가진 집단화된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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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침몰인가, 모더니즘의 침몰인가 지면기사
[경인일보=]일흔이 가까운 일본인 친구는 그날 신주쿠의 고층빌딩에서 지진을 만났다고 했다. 정전으로 엘리베이터가 서버리는 바람에 친구는 45층을 걸어서 내려와야 했고, 교통편이 사라진 암흑의 거리를 다시 4시간 동안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책꽂이가 모두 넘어지면서 아수라장이 된 집으로 돌아온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나는 더 묻지 못했다.9·11테러에 빗대어 일본인 스스로 '3·11 쇼크'라고 하는 일본 동북부의 대재앙으로부터 한 달여, 그 하루하루는 우리에게 많은 겸허함을 가르쳤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했던가. 그러나 일본인이 겪어내고 있는 참담함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느껴야 했던 것은 다만 절망과 무력감만은 아니었다.그 가운데 하나가, 재해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인류의 진화'를 말하는 희망의 목소리였다. 영국의 한 일간지는 제목으로 '간바레 니폰(힘내라 일본)'을 뽑으며 일본을 격려하는 인류애를 보여주었다. 대혼란 속에서 폭동도 약탈도 없이 보여준 일본인의 자제력과 침착한 대응은 일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모습들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어떤 가치와 유형을 보여주는 감동으로 세계 속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지난 세기 인류가 한결같이 추구했던 가치는 모더니즘의 가치들이었다. 19세기의 구습에서 벗어나 문명과 보편성(유니버셜리티)을 인류가 공유하자면서 시작된 모더니즘은 능률의 극대화를 미덕으로 펄럭이며 도시화, 기계화를 통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이룩해 냈다. 물질을 가치의 척도로 생각하는 생활의 편의와 그것을 통한 행복에의 추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의 근대화도 다르지 않았다. 서구화가 바로 현대화라는 물결 속에서 지역문화나 고유문화는 터부시될 수밖에 없었다. 모더니즘의 가치와 미덕 속에서 흙벽의 초가집은 척결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과거의 삶과 도식은 비판과 심문의 대상이 되었고 현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조금 더 우회의 길을 걸었다. 우리가 상정하고 있던 여러 발전모델 가운데는 '일본처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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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지진과 북한 핵개발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 3월 11일 오후 2시경 일본 동북부지역에서 일어난 강도 9의 대지진은 바로 이웃인 우리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어 이어진 원전폭발로 인해 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돼 내부의 열이 이상 상승, 연료인 우라늄을 용해함으로써 저부(底部)가 녹아버리는 멜트다운(meltdown)과 방사능 누출 위험은 원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이러한 사고는 안전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한다는 일본에서 일어났다는 것에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강도 9와 같은 사상 초유의 지진에 과연 안전할 원전이 있을까'하는 의문을 자아내지만, 후쿠시마 원전 1호기 폭발 뒤 미국의 기술지원 제안을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거부했다는 것과 폭발 직후 프랑스의 붕산 제공 의사에 답변이 없던 일본 정부가 사고 발생 나흘이 지나서야 한국과 프랑스 정부에 붕산 지원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자세 그리고 초기대응의 실패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키웠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이것을 리더십의 부재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안전에 대한 준비는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만심이 초기대응의 실패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대지진 그리고 원전 폭발에 대해 세계 각국 특히, 전통적으로 일본과 가깝고도 먼 나라인 한국에서도 도움의 행렬이 이어지는 것은 인류애적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총 전기생산량의 약 40%를 원자력 발전에서 얻고 있어 남의 일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이번 지진으로 원자력발전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인 여론이 일고 있지만 석유고갈시대에 아직 그 어느 나라도 확실한 대체에너지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원자력발전에 대한 수요는 잠시 주춤하겠지만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자력발전의 안전은 이번 지진에서 알 수 있듯이 원전을 가동하는 한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난번 구소련의 체로노빌 사태에서도 확인되었지만 주변국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 이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국제적 협의와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필수적이다.이것은 북한과 같은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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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순재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 설날 전이었다. 이순재 선생님께서 주연한 강풀 만화 원작 '그대를 사랑합니다' 시사회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원작 만화도 봤고 연극으로 공연된 것도 봤고, 어쩜 솔직한 심정은 존경하는 이순재 선생님 주연 영화이기에 꼭 가서 봐야겠다는 의무감도 없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원작과 상관없이 너무 쉽게 영화에 빠져버렸다. 여느 시사회도 이런 광경은 흔치 않았던 것 같은데 많은 관계자 및 영화인들이 보는 시사회에 이토록 많이 웃고 많이 흐느끼는 객석 반응은 없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마침 영화투자 배급사 대표를 만났다. 대표는 본인도 이 영화가 너무 좋아서 3번이나 시사회를 보고 또 웃고 울었음에도 흥행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 이유인즉 제작비도 평균 영화 제작비의 반정도(10억원)이기에 홍보 마케팅비를 여타 상업영화만큼 집행하기도 힘들고, 잘 나가는 젊은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무엇보다 노인영화라 알고 있어 주관객층이 10~20대(젊은 관객)인 영화시장에서의 승부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사회장을 나오는데 이순재 선생님이 계신다. "영화 너무 좋아요. 선생님 앞으로 멜로 계속 하셔야겠어요"라고 말하고 포옹을 했다.영화 속의 이순재 선생님은 어떤 젊은 멜로배우 못지않게 사랑을 하고 있었고 그 사랑이 관객들로 하여금 70이 훨씬 넘은 나이를 모두가 잊고 그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전하는 배우로만 느껴졌던 것이다. 송재호 선생님도, 윤소정 선생님도, 김수미 선생님도…. 영화는 개봉했고 첫 주 스코어는 전체 영화 6위로 출발했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둘째 주는 여지없이 10위로 밀려나 버렸고 이 상태라면 보통 그 다음 주엔 영화를 보고 싶어도 상영관이 없어 못보는 상황이 그려지게 된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3주째 4위로 올라서고 지금은 한국영화 1위를 기록하면서 관객은 이미 100만을 넘어섰다. 노인영화인줄 알았는데 사랑 영화, 그것도 유쾌하고 감동적인 사랑 영화라는 게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는 평일 낮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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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여 울지 말라 지면기사
[경인일보=]서기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멸망한 폼페이는 그 당시 거의 완벽한 도시였다. 이미 700년의 역사를 기록한 유서 깊은 도시였으며, 아우구스투스 시절부터 시행한 대규모 도시 재개발로 인해 로마에 인접한 최고의 휴양도시로 발전하고 있었다. 주변의 땅은 기름져서 풍부한 농작물을 생산하고 있었고, 항구에 접한 까닭에 물자의 보급이 손쉬웠으며, 계곡 속에 우뚝 솟아 외적의 침범에도 자유로운 지형조건을 충족한 도시였다. 이만 명의 인구는 도시로서 모든 요소와 조직을 갖추기에 적절한 크기였다. 포럼의 주변에는 장엄한 신전들과 공회당들이 적절한 간격으로 들어서 도시의 위엄을 과시하였고, 여기서 뻗은 도로들은 완벽하게 도시의 모든 곳을 소통시켜 주고 있었다. 곡선으로 휘어져 후미진 거리에는 어김없이 목로주점이 있었고, 그 건너편 골목 안의 집은 하룻밤 정을 나누는 거리의 여인들이 사는 집이었다. 계곡과 이웃해서는 완벽한 형태의 노천극장에서 매일 희극이 상연되었고, 언덕너머의 경마장에서는 늘 함성이 들렸다. 놀랍게도, 도시에는 수백 명을 동시에 목욕시킬 수 있는 대중탕이 네 개나 있었다. 물은 공중의 수도관로를 통해 인근의 수원지에서 풍족히 공급받았으며, 이의 관리는 고위직의 공무원이 맡을 정도로 목욕은 시민들에게 중요한 도시 일상이었다.로마에서 휴양차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도시는 늘 분주했고, 이로 인해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재미와 활력, 모험과 스릴이 넘쳤다. 그야말로 교역의 요충지였고 역사문화도시였으며, 휴양과 위락의 도시였다. 자연히 문화와 예술이 만발하고, 자유와 평화가 도시에 넘쳐났다. 도시의 북쪽에 위치한 베수비오산은 마치 이 모든 번영을 영원히 지켜줄 듯 우뚝 솟아있었으니, 폼페이 시민들은 이 늠름한 산에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믿었던 산이, 그러나 한순간에 폭발하여 모든 것을 앗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불의 신을 위한 축제를 즐긴 다음날 베수비오 화산은 불덩이를 폭발해 내었다. 이백오십 도나 되는 열기가 도시를 휘감았고, 화산재는 이십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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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봄은 온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이제 몇 번의 봄비가 내리고 나면 이 겨울도 사라져갈 것이다. 눈 많았던 겨울,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 지난해 11월말 안동 돼지농가의 구제역 의심신고 이후 삼백 몇 십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살처분되는 상처를 남기고 이 구제역의 겨울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겨울이 사라진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구제역의 여파는 침출수 오염 같은 우려를 미완의 숙제로 남겨놓고 있다.가축 삼백 몇 십만 마리를 경부고속도로에 늘어세우면 그 길이가 얼마나 될까. 나로서는 도대체 가늠이 안 되는 숫자의 가축이 죽어나갔다. 어떻게 해서 그토록 많은 소 돼지가 죽어야 했던가, 아직 아래아 한글에서 표준어 취급도 받지 못하는 '살처분'이라는 용어를 '죽여 없애다'로 말을 바꾸어 표현하자면 이렇다.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되자 발생농가 반경 3㎞ 이내에 있는 가축을 양성판정을 받기도 전에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땅에 파묻는 방식으로 미리 죽여 나갔다. 이러한 싹쓸이가 문제가 되자 이번에는 반경 500m 이내의 가축만 죽여 없애는 것으로 완화했다가, 지난해 12월25일부터 발생 농가의 가축만 죽여 없애도록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난 석 달 동안 340여만 마리의 멀쩡한 가축을 병에 걸릴까 봐, 병에 걸리기도 전에 땅에 묻었다. 이러다 보니 남한강 지류의 매몰지에서 돼지 사체와 함께 침출수가 흘러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참혹한 살처분의 공포와 절망만으로도 모자라서 이제 우리는 가축의 사체에서 흘러나온 침출수로 인한 토양과 지하수의 오염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구제역을 겪으며 가슴 아팠던 것에는 또 다른 절망이 있다. 어떻게 이 나라는 이다지도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가 하는 놀라움이었다. 우리가 치러야 했던 구제역파동은 오늘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거나 숨기고 있는 모든 치부를 낱낱이 드러낸 재앙이 아니었나 싶다.'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돼지 핏물이 나왔다'는 따위의 사이버공간에서 나돈 구제역 사태 관련 유언비어의 작태는 이 절망의 하이라이트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 만이 아니다. 기르던 가축을 살처분해야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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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논쟁과 합의 민주주의 지면기사
[경인일보=]요즘 정치권에서는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야권에서는 국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무상복지를, 그리고 여권에서는 필요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선별적 복지정책이 현 한국 현실에 맞는 복지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작 복지 논쟁에 불을 붙였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국형 복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의원은 민주당의 무상복지를 선거용 캐치프레이즈로, 박근혜 의원의 한국형 복지를 포장만 있고 내용이 없는 것으로, 그리고 한나라당은 복지정책을 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모두를 비판하고 있다. 누구의 정책이 옳건 간에 복지가 한국정치의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은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환영할 만한 일이다. 1997년 이른바 IMF사태라는 외환위기때부터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급속하게 이뤄졌다. 양극화 문제가 가속화되는 주된 요인들 중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국 전체 노동자의 약 50%인 830만명 정도이며 이들은 정규직의 47%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또한 한국은 OECD 국가 중 저임금계층이 가장 많고 임금불평등도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저임금계층은 452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26.5%이고, 상위 10%와 하위 10% 임금격차는 무려 5.25배나 된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며 여기에 대한 건설적인 논쟁은 장려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벌이고 있는 복지논쟁은 복지가 담고 있는 목적을 벗어나고 있다. 원래 복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적 혜택을 사회성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줌으로써 공동체에 대한 사회성원들의 의식을 강화하고 진정한 공동체로서 거듭나기 위해서이다. 이런 맥락에서 복지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개인이 사회성원이면 기본적으로 부여받는 개인적 권리 차원에서의 복지와, 사회성원 그 누구도 사회에서 배제시키지 않고 평등하게 고려해 공동운명체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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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 배달부 '김승일' 지면기사
[경인일보=]요즘 TV 오락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감동과 휴먼은 기본이고 시청자가 직접 참여해 기적과 같은 현실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하고 있는 추세다. 예를 들어 지난해 케이블 사상 엄청난 시청률을 올린 '슈퍼스타 K'의 경우, 전국에 노래 잘하는 아마추어 가수지망생 수만 명을 제치고 '허각'이라는 환풍기 수리공이 최종 1인이 됐다. 이 소식에 시청자들과 네티즌은 열광했고 평범한 서민도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걸 현실로 보여줬다.그런데 최근 늦게 귀가해보니 아내가 TV를 보며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영문인가 들여다 봤더니 '스타킹'이란 프로그램에 등장한 야식배달부 김승일씨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울 유명대학 성악과에 들어갈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병간호 등으로 대학을 휴학하고, 10년간 대학 동기들과 연락이 두절된 채 야식배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병석에 있던 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현재 그의 대학 동기들은 국·공립단체 합창단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김승일씨가 대학 동기들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에 아내는 물론 나역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며칠 동안 내 머리에는 '야식배달부 김승일'이란 사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대신 허각 이란 친구처럼 감동적인 희망의 스토리로만 내 맘에 남은 게 아니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그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상처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함께 든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야식배달부 김승일'이란 이름이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고 있었고, 온 네티즌들의 환호와 지지의 글이 도배를 하고 있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김승일이라는 친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풀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회성 방송과 시청자들의 순간적인 관심이 사라질 때, 그에게는 뜻하지 않은 상처로 남을 수도 있고, 나중에는 이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후회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부정적인 생각마저 들게 됐다. 그래서 나는 전혀 안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타킹 담당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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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디자인 시비 지면기사
[경인일보=]공공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인 지도 꽤 되어 이제는 아무도 이 단어에 대해 시비를 거는 이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단어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더욱이 이 단어를 영어로까지 번역하여 'Public Design'이라고 쓰는 것도 봤지만, 그 뜻을 알기 위해 위키피디어를 찾았을 때 '당신이 그 뜻을 만드시오'라고 나왔으니, 이는 영어에도 없는 단어인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도 공공디자인학과라는 것을 설립하고 이를 연합한 학회도 만들어 학문적 정당성까지 부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나는 참으로 의문스럽다. 도대체 이 단어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공공이 디자인한다는 말인가, 혹은 공공을 디자인한다는 말인가? 급기야, 중앙정부를 비롯해서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공공디자인' 사업을 왕성하게 전개하고 있으니, 단어 사용의 오류로 인한 잘못된 사업의 피해를 고스란히 시민이 떠안는다는 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서울을 비롯한 지방도시들이 공공디자인을 한답시고 위원회도 만들면서 하는 일은 대개 도로 환경을 예쁘게 꾸미는 일이다. 도로 포장을 바꾸고, 가로등과 버스정류장, 거리간판 등을 세련된 디자인으로 바꾸거나 혹은 예쁜 공공건축물을 세워 시민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증대시키는 게 그 주된 내용이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도시환경을 바꾸는 것이 괄목할 업적이 된다고 여긴 것일 게다. 만약 이런 일이 목적이라면, '공공디자인'이란 단어는 '공공시설물디자인'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단어의 뜻과 사업내용이 일치되고 분명하다.그러나 문제는 정작 여기에 있다. 그런 시각적 세련됨으로는, 도시가 존재하는 첫 번째 목적인 공공성을 조금도 진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혹시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흔해 빠진 나머지 그저 분칠하거나 립스틱 칠하는 정도, 혹은 잘 봐주어 세련된 시설물을 갖다 놓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우리가 행복해질까? 나는 이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아마도 애초에 공공디자인을 도입한 까닭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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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 히데키, 그 이름이 가지는 의미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 연말, 조촐하지만 뜻 깊은 시상식이 있었다. 번쩍이는 조명이나 화환이 넘치는 화려함은 없었지만 시상식장은 내내 진지했고 화기애애했다. '제4회 임종국상' 시상식이었다.수상자들의 모습도 소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학술부문 수상자는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준영 씨였다. 일본이 이미 청산한 '식민지 법'을 한국은 여전히 계승하고 있다는 통렬한 자성을 담아 묵묵히 일제 식민지 사법제도에 관한 연구를 이어온 문 교수의 결실을 참석자들은 박수로 축하했다. 다만 사회부문 수상자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씨의 모습이 조금은 이채로웠다.'임종국상'이란 민족문제연구소와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가 친일청산에 앞장섰던 임종국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이다. 친일청산에 공로가 깊은 분들에게 주는 상을 일본인이 받고 있다니. 그는 공식 직함이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 사무국장이었다.그러나 그가 몸 바쳐 온 지난 세월을 생각하자면 고개를 갸웃거릴 일이 아니었다. 15년이 넘게 그는 한일 과거사의 올곧은 정립을 위해 온 몸을 던져온 일본인이었다. 여러 과거사 문제를 위한 모금운동이나 변론 지원에서부터 일제강점기의 피해와 참상을 알리고 그 반성의 길을 열기 위한 자리에는 언제나 그가 중심에 서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일본 우익으로부터 '반일 인물'로 지목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짧은 머리에 단정한 몸매를 한 수상식장의 그는 투사로서의 이미지와는 먼 한 사람의 예의바른 일본인이었다.지난 여름이었다. 간 나오토 일본총리의 '한일병합 100년과 관련한 담화'를 들은 것은 일본 후쿠오카에서였다. 나가사키에서 조선인 피폭자 추모모임과 청소년 교류회를 마치고 다음 강연지로 향하는 나에게 한 젊은 일본 언론인이 다가와서 물었다. 오늘 발표된 총리의 담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강제병합 100년을 이야기해야 할 일본총리가 문화재 한 두 점의 반환을 언급한 담화는 과거사 문제 해결이라는 본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나름대로 한일과거사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나로서는 불편한 마음을 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