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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선과 양말

    버선과 양말 지면기사

    천도교의 핵심 사상은 인내천(人乃天)이다. '사람이 곧 하느님이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권력이 곧 하느님'으로 바뀌거나 '돈이 곧 하느님'으로 변질되는 순간, 어떤 종교든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이 한국 종교사의 교훈이다. 신라 제2대 임금의 왕호는 '남해차차웅'이다. 훗날 당나라 유학생 김대문은 차차웅이 곧 무당(巫)을 뜻한다는 기록을 남겼다(삼국사기). 신라 초기 임금님들은 무당이었다는 말이다. 하나 권력에 취하고 돈과 결탁한 무당들은 힘을 남용하다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연오랑·세오녀가 일본으로 떠나자 신라땅의 해가 빛을 잃었다는 설화는 샤머니즘의 몰락을 상징한다(삼국유사). 고려는 불교국가였다. 한때는 개성의 대사찰에 속한 사병들이 시내에서 세력을 다퉈 전투를 벌일 정도였다. 조선의 건국 명분 가운데 하나가 권력화한 불교의 척결이었다. 정도전의 '불씨잡변'속에 불교 배척의 철학이 오롯하다. 이에 응대하여 승려 함허가 '현정론'이라는 저술을 통해 유불공존을 모색했지만, 때가 늦었다. 조선조 500년간 승려들은 천민 대접을 받았다. 조선은 유교국가였다. 조선 후기 고을마다 서원들로 넘쳐났다. 시골 선비들의 패악질에 지방 수령들이 곤욕을 치렀다. 흥선대원군이 600여곳의 서원들을 혁파하면서, "정녕 백성에게 해되는 것이 있으면 비록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일갈할 정도였다.지금 텅빈 채로 퇴락한 향교 건물이나, 먼지만 소복하게 덮어쓴 골짝구비의 열녀비·효자각·홍살문 등은 경직된 조선 유교의 폐해를 증거한다.새로운 종교나 사상은 '약한 고리'를 치게 마련이다. 조선말기 천주교는 천민들과 양반가 주부들 사이에 은밀히 퍼져 나갔다. 당시 양말도 함께 전래되었던듯, 푸른 눈의 신부들은 천주교를 양말에 비유했단다. 버선이 사람의 발에 꼭 끼어 발을 압박하는 반면, 양말은 누구든 신을 수 있는 신축성에 빗댄 것이었다. 버선이 계급과 성별로 사람을 차별하는 유교를 상징한다면 양말은 양반상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천주교의 평등한 사랑을 상징한 것이다. 개신교는 일

  • '스펙터클의 사회'

    '스펙터클의 사회' 지면기사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행사 중 하나인 베니스비엔날레는 1895년에 시작되었다. 그 역사적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해마다 내거는 주제 또한 세계에 던지는 파장이 크다.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에 열린 베니스건축비엔날레의 주제는 '덜 미학적인, 더 윤리적인(Less Aesthetics, More Ethics)'이라는 문구였다. 나도 그 전시회에 초청을 받아 참가하였지만, 이 주제를 접하고는 적지 않게 놀랐다. 내가 아는 한, 서양건축사에서 윤리라는 단어는 그리스시대 이후에 사용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윤리는 우리 선조들의 덕목이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늘 자연과 건축과 인간 간의 관계를 염려했으며, 집은 그 관계를 잇는 고리의 역할이었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집의 형태는 기와집 초가집 뿐이었지만 내외부의 공간은 주변의 조건에 따라 변화무쌍하였다. 그러나 지난 시대 우리는 근대화가 서양화인 줄 착각하게 되면서 이 아름다운 윤리의 방식을 추방하고 서양이 일러준 미학의 성취를 위해 열심히 매진하고 있는데, 이제 서양은 윤리를 끄집어 내며 새 시대 새로운 화두로 삼는다고 하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양건축사 책을 펼치면 처음부터 끝까지, 신전과 성당, 왕궁이나 별장, 경기장, 공연장 등 기념비적 건축물의 나열이며, 이들 건축에 대한 형태와 비례, 장식이나 재료 등에 관한 미학적 해설로 일관한다. 즉 한 건축물 자체만의 존재 방식과 그 역사가 서양건축사라고 할 수 있다. 그 건축물이 스펙터클할수록 더 많은 지면을 차지하며 그 시대의 중요한 성취로 기술되는 게 당연시되었다.도시 또한 마찬가지여서, 스펙터클한 건축물을 곳곳에 배치하고 이들을 대각선의 각도로 이어서 가장 스펙터클한 광경을 확보한 곳에 그 도시를 지배하는 자의 궁전을 두면, 이게 바로 봉건시대의 도시가 된다. 르네상스시대 전 유럽에 걸쳐 이상도시란 이름으로 유행처럼 지어진 모든 도시들이 그러했으며, 베르사유를 필두로 한 바로크의 도시들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현대의 신도시들도 이

  • 노래방과 열린 합창의 차이

    노래방과 열린 합창의 차이 지면기사

    우리가 즐겨 찾는 노래방 열기가 머지않아 국민합창운동에 옮겨 붙을 태세다. 각지에서 많은 합창경연대회가 열리고 방송에서도 '남자의 자격 합창단'에 이어 '청춘합창단'이 오디션을 마쳤다. 청춘합창단 응시자들의 제 각각의 사연을 보는 시청자의 눈시울이 뜨겁다. 그 뿐인가. 가수가 되고 싶어 수만 명이 장사진을 치는 광경이 방송의 전파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유독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가무(歌舞) 민족의 원형질(DNA)을 타고난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에서 가라오케가 노래방 형태로 상륙한 이후 가공할 속도로 확산되었고 음주 후에 즐기는 국민 오락이 된지 오래다. 숨 가쁜 산업화, 근대화를 거치면서 노래방은 스트레스 해소의 탈출구요 가장 수월한 사교 공간이었다. 그런 '노래방'은 한국인 특성인 '폭탄주'와 함께 '빨리 빨리'의 속성을 가장 잘 빼닮았다. 시간과 비용의 효율성을 잘 갖춘 소통 구조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해 G20정상회의를 치렀고, 국가브랜드를 생각하는 고급화, 선진화의 길목에 서서히 일상 소비문화에도 변화가 엿보인다. 우리가 밖에 내놓은 한류문화의 반응에 우리 스스로 놀라면서 자긍심과 함께 그동안 획일적으로 답습해 온 것들을 새로 보고 보다 양질의 문화 트렌드를 찾아야 할 때다.우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room)문화' 강국이다. 유럽 사교문화의 상징인 '살롱'이 들어 왔지만 본질이 왜곡된 채 '룸살롱'이 되어 버렸다. 전화방, PC방, 찜질방, 키스방, 온통 밀폐된 방 천국이고 경찰과 담당 공무원들이 불법 단속을 하지만 업주들의 신출귀몰한 아이디어엔 늘 박자가 늦다. 사실 군사정권 시절 '댄스' 역시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져 오다 '스포츠댄스'란 이름으로 사면 복권된 후 지금은 세상의 모든 춤을 추는 자유시대를 맞지 않았는가. 수준 높은 문화는 낮은 문화를 끌어올리는 강한 힘이 있는데 일단 맛을 보게 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아무리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오랫동안 좋은 그림을 벽에 붙였다 떼면 그 때 허전함을 느끼는 것처럼 미의 경험을 통해 눈이 높아지면 저급한 것에 등을 돌리

  • 우리와 미국인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와 미국인은 어떻게 다른가? 지면기사

    며칠 전 과천시 공무원 네 분이 필자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벌링턴시와 자매결연을 맺기 위하여 오셨다. 앞으로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한국의 고등학생, 지도교사 등이 내년 1월부터 벌링턴에 오게 될 예정이다. 앞으로 국제화의 흐름에 따라 한국의 타 도시들도 과천처럼 외국과의 교류가 늘어날 것이라 예상된다. 특히, 한국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에, 미국인과의 접촉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 따라서 한국인과 미국인이 어떻게 다른가 필자가 평소에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 본다. 첫째는 친절이다. 대체로 미국인은 사람을 마주치면 동네에서든 일하는 곳에서든 모르는 경우에도 웃는 얼굴로 지나가거나 또는 "하이"라는 말을 던진다. 남녀 노소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 건넨다. 특히 작은 도시로 갈수록, 또한 북부보다 남부에서 그렇다. 미국인이 친절하다고 해서 한국에서 생각하는 친한 친구의 개념으로 이해했다가는 나중에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친절은 이 사람들의 몸에 밴 습관이고 문화이지, 상대방에 대하여 큰 호감을 갖고 있다는 표시는 아니며, 또한 호감을 갖고 있다 해도 공과 사는 분명하게 선을 긋기 때문에 웬만한 청탁은 들어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 실망하기 쉽다. 둘째는 프라이버시다. 이곳 사람들은 남의 사생활에 대해서 인간으로서 호기심이 있겠지만 물어보는 것을 꺼린다. 특히 결혼관계나 재산관계의 경우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묻는 것은 실례다. 한국인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사는 집이 얼마나 큰지, 가격이 얼만지 스스럼없이 묻는 경우가 있다. 몇 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언제 할 것인지 묻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보통 여행이나 취미, 영화나 책 등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한다.셋째, 초대의 개념이다. 한국의 경우는 손님을 초대했을 때 음식을 얼마나 잘 차렸는지, 접대한 술이 얼마나 고급인지, 또한 손님들은 얼마짜리 선물을 마련해야 하는지 등에 신경을 많이 쓴다. 미국의 경우는 초대받았을 때 맨손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 주인도 거기에

  • "브레이빅의 가족"

    "브레이빅의 가족" 지면기사

    어린 아이들 머리통에다 총을 겨눠 쏘아죽여 놓고도 흐뭇하게 웃음을 지었다는 놈. "사람은 죽였지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라고 내뱉었다는 녀석. 신문을 보니 그에게 극우민족주의자, 정신병자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심드렁하게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며 넘어갔다. 먼 나라의 사건들은 대개 그렇게 지나간다. 이 땅에서도 힘겹고 다급한 사건들이 연일 터져 나오는 까닭이다.얼마 뒤 그 아비라는 사람이 "그를 내 아들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그는 자살했어야 했다"라고 말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문득 숨이 막혔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개인의 책임을 중시하는 서구문화와,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문화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나쁜 짓을 했기로서니 제 자식을 두고 자살했어야 한다고 차갑게 내뱉은 아비를 보면서, 잔인한 서양사회의 속살을 엿본 듯했다.동양의 전통사회는 달랐다. 춘추시대 중국 땅에 제 아비가 이웃집 양을 훔친 것을 관가에 고발한 자식이 있었다. 그 나라 임금이 자랑스레 '우리 백성들은 이렇게 정직하다'라며 공자에게 뻐겼다. 공자가 이를 두고, "우리 동네의 정직함은 아비가 자식의 허물을 감춰주고, 자식이 아비의 죄를 숨겨주는 데 있소이다"라고 답했다는 고사(논어)가 그 예다.엄혹한 반공법 시대에도 간첩인 아비를 숨겨준 자식을 처벌하지 못했던 까닭도 이런 전통 때문이었다. 정직이라는 '직선'이, 부모자식 간의 비호, 또는 불법이라는 '곡선' 속에서 피어날 수 있다고 본 공자의 생각을 주목해야 하리라. 서양에서는 고독한 개개인들이 모여 계약을 통해 사회를 이룬다고 본 반면, 동양에서는 인간(人間)이란 말에서 보듯 '사람의 사이', 즉 관계를 사람다움의 핵심으로 여긴다. 그러니 이 땅에서는 차마 아비가 제 자식을 두고 '자살했어야 한다'라는 말은 할 수가 없다. 문득 범죄자가 준비해두었다는 성명서 속에 "부모의 이혼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라는 대목이 눈에 밟힌다. 또 "그의 글 속에는 깊은 고독감을 찾아볼 수 있다"라는 분석들에도 눈길이 간다. 그러고 보면 그 녀석은 동아시아의 일본과 한국을 그

  • "보이지 않는 도시들"

    "보이지 않는 도시들" 지면기사

    우후죽순 대형건물 시민과 괴리감만동네골목 신경쓰는 도시계획 세워야쿠바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작가 이탈로칼비노(1923~1985)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a invisibili)'이라는 책이 있다. 1972년에 초간된 이 소설이 나로 하여금 도시에 대한 관념을 크게 전환하도록 만든 책이다.마르코폴로가 여행 중에 들렀던 도시들을 쿠빌라이칸에게 묘사하며 들려주는 내용으로 된 이 작은 책은 그 소제목의 구성부터 예사롭지 않다. 전체 아홉 개의 장으로 나누어 첫째 장과 마지막 장에 각각 열 개의 도시, 나머지 일곱 장에는 각기 다섯 개의 도시를 넣어 전체 쉰 다섯의 도시를 설명하는 글로 구성되어 있다.책의 곳곳에는 우리로 하여금 도시에 대한 상상과 성찰로 이끄는 내용이 즐비하다. 인상 깊은 몇 가지 문장들을 발췌하면, '자이라'라는 도시를 설명하면서 이 도시에 있는 높은 탑이나 형태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고 하며,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단호히 얘기한다.또한 그는 "도시의 형태는 그 목록이 무한하다. 모든 형태가 자신의 도시를 찾고 새로운 도시들이 계속 탄생하게 될 때까지 그 변화가 끝나고 나면 도시의 종말이 시작된다"라고 도시의 운명을 진단한다. 도시는 과거의 기억에 새로운 욕망이 덧대어져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체라는 것. 따라서 늘 새롭게 바뀌어 나가는 도시에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만약 어떤 도시가 완성된다는 것은 그 도시의 몰락을 의미할 뿐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랜드마크나 거대한 건축물, 기념탑 등은 도시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며, 우리 주변에 있는 자그마한 건축물이 더욱 중요하고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도시의 본질적 요소라는 것을 이 책은 줄곧 강조하고 있다.우리가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은 대개 그 도시에 있는 상징적 시설물들을 통해 얻는 인상인데, 사실 이것들은 그 도시에 거주하는 도시민의 삶과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실제로 나는 내가 사는 서울의 남산타

  • 도시 브랜드와 글로벌 경쟁력

    도시 브랜드와 글로벌 경쟁력 지면기사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8년 8·15 경축사에서 국가브랜드 선언을 하고 이듬해 초 국가브랜드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간 다양한 활동으로 국민들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오는 8월말엔 국가브랜드 종합박람회가 열려 세계에 자랑할 브랜드 상품과 박세리, 김연아 등 한국을 빛낸 인물들이 총망라될 것이다.두말 할 것도 없이 국가브랜드가 올라가면 국가 신인도 뿐만 아니라 경쟁력이 올라가 이로인한 국부(國富) 창출이 엄청나다.얼마 전 밤잠을 설치게 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성공은 우리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고 국가브랜드에도 큰 공헌을 할 것이라 믿는다.앞으로 초대형 국제 행사들이 줄줄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니 우리의 저력에 자긍심마저 느껴진다. 9월에 열리는 대구 국제육상선수권대회 역시 일반의 옅은 관심과 달리 세계 3대 스포츠로 더 국민적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여수 엑스포,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부산 영화문화의 전당 개관 등은 그저 바라만 보던 세계 축제가 앞마당에서 펼쳐지니 격세지감이다.이제는 도시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천여개가 넘는 축제들을 정비해 수준을 높여야 하는 단계다. 먹고 나면 여운이 없는 소모성 축제나 축제를 위한 축제는 지양(止揚)되어야 한다. 통영 윤이상 국제음악제나 함평 나비축제 등 성공한 축제가 적지 않지만 반드시 유명 축제가 아니어도 소박한 생활축제도 살아났으면 한다. 삶과 밀착된 축제야 말로 축제의 정신을 꽃피울 수 있기 때문에 민간으로 옮겨 가는 물꼬를 터주었으면 한다.엊그제 중국은 조선족 아리랑을 문화유산에 등재한다하여 우리를 황당하게 했다. 이들은 벌써 6~7년 전부터 면밀하게 작업을 해왔고 아리랑뿐 아니라 혼례 풍습 등 여러 세속을 자기네 것으로 만들 계략을 꾸미고 있다고 현지 전문가는 말한다. 바야흐로 눈에 보이는 영토전쟁만 전쟁이 아니다. 연성(軟性) 국토인 '문화영토' 확보를 위한 싸움이 더 치열할지 모른다.우리 경제와 외교력이 크게 신장한 만큼 국가브랜드위원회 혼자서만 한국을 알릴 것이 아니라 지자체도 도시 브랜드 위원회를 결성해 체계적인 목표를 세우면

  • 대학교육, 값뿐만 아니라 질도 보자

    대학교육, 값뿐만 아니라 질도 보자 지면기사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로 모든 국민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이미 무역, 경제분야에서 세계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문화면에서의 한류열풍도 서서히 퍼지고 있다. 국민이 힘을 합해 노력해야 할 다음 영역은 무엇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대학교육개선이 아닌가 싶다.최근에 한 세계대학평가기관에서 나온 대학평가를 보면 서울대가 50위를 기록하고, 대부분 상위대학들이 100위권 안팎을 차지한데 그치고 있다. 이것이 한국 대학의 현주소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단면을 보여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첫째, 세계적으로 우수한 학자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건실한 대학이 많이 존재해야 한다. 한국 휴대전화가 전세계에서 인정받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폭넓은 내수시장이 필요했듯이, 노벨상을 타거나 세계에서 인정받는 학자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 대학은 또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식정보산업에 필요한 인력 창출에 도움이 된다. 지식정보산업이라 하면 언론, 광고, 통신, 컴퓨터 시스템, 소프트웨어, 데이터 베이스, 네트워크, 컨설팅, 금융 외에도 온갖 분야에서 정보와 지식을 생산 관리 분배 저장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분야를 의미한다.대학 수의 증가로 필요 이상의 고학력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다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필요한 학력을 갖춘 사람이 없어서 외국에서까지 인력을 수입하는 경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진짜 문제는 고학력이 아니라 어떤 것을 어떻게 배웠느냐가 중요하다. 대학 4년동안 전공 공부를 무시하고 고시합격이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만 매달렸다면 이것은 급변하는 미래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보다는 고용이 보장된 공무원이나 자격증의 보호아래 경쟁이 없는 무풍지대에서 안일을 도모하는 졸업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둘째,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배움에 대한 욕망이 큰 한국학생들은 대한민국의 축복이다. 한국은 선진국의 문물을 빨리 배워서 물질적 경제 성장을 짧은 시일내에 이뤘다. 한국이 이제는 지식산업에서 한 수 가르칠 입장이

  • 영웅과 달인

    영웅과 달인 지면기사

    '장자'에는 포정이라는 도살의 달인이 나온다. 19년 동안 소를 잡았더니 칼날이 닳지 않는 경지에 올랐단다. 뼈와 살의 사이, 근육과 심줄의 결에는 미세하나마 빈 공간이 있다. 칼이 그 빈 틈새를 타고 지나갈 정도로 기술이 무르익다 보니, 수천마리 소를 해체하여도 날이 무뎌지지 않더라는 것. 임금이 그의 소 잡는 장면을 보고서 문득 '놀라운 기술이로다!'라며 찬탄하였더니, 의연히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道)올시다!'라고 응수했다는 사람. 2천300년 세월이 흐른 오늘 다시 읽어도 통쾌하다.하나 포정의 자부심을 염려하는 눈길도 있어왔다. 소를 잘 해체하는 기술에 '도'라는 영예를 부여할 수 있다면, 사람을 잘 죽이는 기술 역시 '도'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다. 전국시대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뜻 모르는 백성들을 전쟁터로 몰아가는 것을 앙민(殃民), 곧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는 짓이라고 한다. 단 한번 전쟁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해도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맹자) 장자에게 '도'란 기술적 차원에서 이른 말이다. 이 사상을 일본이 이어받았다. 기술마다 도라는 이름이 붙는 까닭이다. 검도, 유도, 다도, 궁도 등등. 바둑의 수승한 경지를 기성(碁聖)이라 칭하고, 에도시대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는 검신(劍神)으로 추앙받는다.반면 맹자에게 '도'란 윤리와 도덕의 범주에 속한다. '도'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정의를 실천할 때 얻는 이름이지 고작 절륜한 기술에 붙이는 명칭일 수 없었다. 맹자의 사상은 조선이 이어받는다. 개인행동이든 나라의 정책이든 '의· 불의'가 판단 기준이었다. 이 속에서 의병과 의사(義士)가 나올 수 있었다. 안중근은 이런 전통의 마지막 불꽃이다.최근 KBS에서 방영된 백선엽 장군의 이력을 두고 시비가 분분하다. 그가 6·25전쟁에서 거둔 전공은 혁혁하다. 그의 무공을 덮을만한 군인은 현대사를 털어 없을 듯하다. 그런데 그의 출발은 일제하 직업군인을 기르는 봉천군관학교에서였다. 더욱이 그는 잔학한 살해를 일삼은 간도특설대의 장교였다. 그는 여기서의 활동

  • "나는 돈 대학생이다"

    "나는 돈 대학생이다" 지면기사

    강의실에서 만나던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등록금 인하를 소리치고 있는 이 여름, 대학교수라는 자리는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치면서 자괴감이 밀려드는 때는 많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으로 가던 날, 이른 아침 교정에 들어선 나는 학교 박물관 벽을 온통 가리듯이 걸려 있는 북한의 인공기를 보았었다. 왜, 누가 여기에 오늘 이 깃발을 거는가. 그때의 자괴감이라니. 그러나 이 여름에 느끼는 자괴감은 그때와는 또 다르다.내 과목을 수강하는 꽤 많은 학생들이 광화문에서 열리는 반값등록금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나선 제자 가운데는 윤호도 있었다.지나간 겨울, 윤호가 모 재단으로부터 등록금 전액장학금을 받게 되었을 때였다. 추천서를 써 준 나에게 휴대전화로 장학증서를 찍어 보여 주면서 '엄마가 막 울고 난리 났어요.' 하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던 윤호, 바로 그 윤호가 광화문에서 열리는 등록금 인하 시위를 다녀온 것이다.'저요, 그날 일찍 가서 처음에는 종이컵에 초를 꽂는 가내 수공업을 맡았어요. 그러다가 남자가 무슨 초를 꽂느냐며 끌고 가는 바람에 스피커 설치하는 일을 했어요'라며 그는 웃었다. '조건 없는 반값등록금 실현하라' 그것이 그가 들었던 피켓이었다.대학생들이 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자신들의 의사표출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일이 사라진 지 몇 년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이른 봄 개나리꽃이 필 때나 반짝하다가 마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놓고 '개나리 시위'라는 이름까지 붙은 요즈음이다. 윤호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교정에는 여름이 한창이었다. 그 푸름 속에서 그가 하는 말이 마른 나뭇잎처럼 아프게 가슴에 쌓였다. 장학금을 받고 있다고는 해도 그는 학교가 끝나면 독서실로 가서 새벽 2시까지 독서실 관리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면서도 학교강의가 없을 때는 또 '스마트폰 애플 운영'이라는, 휴대전화에 TV프로그램을 송출하는 일을 시간제로 한다. 하루 다섯 시간밖에 잠을 못 자는 생활인 것이다.자신은 등록금 걱정만은 안 해도 되게 장학금을 받지만 그 장학금은 '나 혼자만을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