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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책 수립과정 투명성 강조돼야 지면기사
[경인일보=]최근 대통령은 사회통합의 근본은 소통이며 통합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면서 같이 가는 것이라면서 국무위원들이 소관업무의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소통을 강화해야 함을 강조한 바 있으며 청와대 고위층도 정책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갈등관리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총리 지명자는 소통과 통합의 아이콘이 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이러한 발언들은 우리나라의 고위공직자들이 정부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현재 심각한 수준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앞으로는 정부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하여 사회적 갈등의 사전예방에 노력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우리는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경우 길거리의 법질서가 무시되고 이웃간의 반목으로 지역공동체가 붕괴되는 현상을 목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수립한 정책의 추진이 수년간 지연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책의 수립 자체가 어려워지는 사례가 발생하는 상황을 경험한 바 있다. 과거의 예를 들어 보자. 부안의 핵폐기물 매립지 건설, 평택 미군기지 이전, 임진강 유역 홍수방지를 위한 한탄강댐 건설, 4대강 대책, 세종시 이전, 용산 참사 등등 나열하기 조차 어려운 많은 사례들이 사회적인 갈등으로 정책이 확정된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추진이 지연되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발생한 예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교육문제, 남북한 관계, 국민연금 문제 등 국가적으로 필요한 장기대책의 수립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사회적인 갈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갈등으로 인하여 우리 사회가 지불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은 천문학적인 금액에 달할 것이며 상호 신뢰성의 상실과 반목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손실은 국가의 장래를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의 60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87%가 우리나라의 사회적인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고 답변하여 사회적인 갈등이 기업의 경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우리나라 사회적 갈등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책갈등의 원인 제공자는 정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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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것은 없다 -진정한 성상을 위하여 지면기사
[경인일보=]우리는 사람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도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은 반드시 보인다. 마음속으로 결심하지 않고 행동에 옮기는 일이 있는가. 그러니 하는 짓을 보면 당연히 마음이 보이는 것이다.전기는 보이지 않지만 밝은 전등을 통하여 전기의 존재는 보인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아 바람의 존재를 안다. 사랑은 보이지 않지만 사랑하는 자를 통하여 사랑을 느끼고, 그리움은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얼마나 뼛속 깊이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우리 모두가 안다.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는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현미경이 발명되기 전까지 인간은 미생물의 존재를 몰랐으며, 박테리아도 몰랐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없다고 말하던 인간의 태도는 상당한 수정을 요구받게 되었고, 그러한 편견은 무지에서 온다는 사실도 인정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물론 과학의 공이 크다. 반대로 과학의 재앙도 엄청난 것처럼.신, 또는 절대자의 존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존재 영역이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 논쟁에 속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믿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인간의 모순이 속속 드러나면서 신의 존재조차도 단언키 어려워졌다. 그동안 사람들은 신상(神像)을 대형화하고 숭배하면서 종교적 교의를 키워 왔다. 부처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지는가 하면 십자가의 크기도 하늘을 찌른다. 이슬람이나 힌두교 사원의 크기, 교회의 크기, 사찰의 크기는 각 종교의 위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되어간다. 그러나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 종교라기보다는 각 종파들이 벌이는 키재기이다. 종교와 종파의 차이는 엄청나다.종교라는 religion은 re+ligion으로 '다시 연결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뭔가 끊어지고 상실한 것으로부터 다시 연결하고 되찾아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상실한 것이 무엇 이기에 다시 연결해야 하는 것일까? 한자로 종(宗)은 갓머리 변에 보여줄 시(示)가 합한 말이다. 즉 머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으뜸이나 우두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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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젊은이를 자살로부터 구하라 지면기사
[경인일보=]한 나라의 건강 문제를 알아볼 때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지표는 사망 자료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 수준을 높이고자 하면 가장 먼저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 원인을 알아보고 사망 원인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의 사망 원인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10대, 20대, 30대 사망원인 1위는 모두 자살이다. 자살은 오래도록 10대 사망 원인 2위를 차지했으나 2008년부터 1위로 뛰어 올랐다. 조사에 의하면 15~24세 청소년의 8.9%는 지난 1년 동안 한번 이상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들이 자살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15~19세는 51%가 성적과 진학 문제였고 13.6%는 외로움과 고독을 꼽았으며 20~24세는 22.6%가 직장문제, 21.8%가 외로움과 고독, 18.5%가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의 한가지다. 가정이든 학교든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인데, 부모와 학교 모두 만족할 만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1%도 안될 것이다. 더구나 그 1% 학생도 실은 그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게 틀림없다. 학교가 지금은 마치 질 낮은 입시학원으로 전락했지만 청소년 시기에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간도 물론 확보해야 하고, 자살이나 흡연, 음주, 성문제를 토론하는 시간도 필수교과 과정으로 확보해야 한다. 청소년 자살이 안타까운 이유는 이들이 아직도 인생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실은 전체 인생에서 극히 일시적인 일이며 언젠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괴테도 젊은 날 실연을 겪었고 자살의 충동에 시달렸지만 그 고통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을 썼고 소설의 주인공은 자살했지만 괴테는 살아남아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실연당했을 때 그게 인생의 마지막이며 자신은 절망에 빠졌다고 굳게 믿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인생이 그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충동적 자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자살을 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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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고 불안한 한나라당 승리 지면기사
[경인일보=]6·2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던 한나라당이 7·28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했다. 한나라당은 예상을 깨고 8곳 중 5곳에서 승리했다. 더욱이, 이번 선거의 최대 승부처인 서울 은평을과 충북 충주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과 윤진식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야권 단일 후보를 상대로 큰 표 차로 승리했다. 여하튼 이번 재보선 결과로 그동안 한국 선거를 지배했던 몇 가지 통념이 깨졌다. 우선, '재보선은 여당의 무덤'이라는 등식이 무너졌다. 노무현 참여 정부 당시 여당이 22곳의 재보선 중 한 곳도 이기지 못한 것과 비교한다면 한나라당의 압승은 이변임에 틀림없다. 둘째, 투표율이 놓으면 야당에 유리하다는 '투표율 법칙'도 깨졌다. 이번에도 35% 이상의 투표율이 나오면 야당인 민주당 후보가 유리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은평을(40.5%)과 충주(43.6%) 등은 40%대 투표율을 기록했음에도 한나라당 후보가 압승을 거뒀다. 셋째, 야권 후보 단일화의 위력도 약해졌다. 투표일을 각각 2~3일 앞두고 은평을과 충주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가 이뤄졌지만 결과는 야당의 참패였다. 넷째, 재보궐 선거에서는 '정권심판론'이 '지역 일꾼론'을 압도한다는 법칙이 깨졌다. 다섯째, 지역주의에 기반한 텃밭 개념도 요동쳤다. 아무튼 이번 재보선 결과로 왕의 남자는 화려하게 귀환했으며, 민주당의 '56일천하'는 쓸쓸히 막을 내렸다. 이런 선거 결과를 놓고 '민심이 두 달 만에 바뀌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민심이 변한 이유로 '민주당이 지방선거 압승 이후 승리에 도취되어 오만하고 안이한 공천을 했기 때문이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면 민심이 진짜 바뀌었는가? 그렇지 않다. 민심이 바뀐 것은 없다. 반대로 민심은 일관되게 오만하고 독선적인 권력을 심판하고 견제했다. 다만 그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재보선 결과는 한나라당의 '위험하고 불안한 승리'라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쇄신 의지가 쇠퇴하고, 친이계가 파편화되며, 친이-친박간의 '파국적 균형'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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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기상예보의 필요성 지면기사
[경인일보=]1960년대 영화에서 우리는 일기예보와 관련된 재미있는 화면을 보게 된다. 기상청에 근무하는 사위가 잘못된 일기예보를 따르다가 비에 젖은 옷을 입고 귀가하면서 처갓집 식구들로부터 무안을 당하는 희극적인 내용이다. 반면 작년에 상영된 영화 '해운대'는 지각변동으로 시속 800㎞의 엄청난 쓰나미가 발생하여 우리나라 최대의 여름휴양지인 부산 해운대로 밀어닥치는 재해를 다룬 공포 영화이다.두 편의 영화를 비교하면서 지난 40여년 사이에 기상변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파급효과가 크게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의 기상예보는 오늘 출근할 때 우산을 챙기고 가야 하는지 정도의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이었고 예보가 틀려도 단지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 되는 일이었다. 반면 2000년대의 기후 변화는 '해운대'에서 보듯이 대규모 재해의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다.공상영화가 아닌 실제의 상황을 살펴보자.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상 현상으로 2003년의 유럽 폭염은 3만5천여 명의 사망과 16조여 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혔으며, 2005년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한 태풍 '카타리나'는 1천300여 명의 인명피해와 약 148조원의 재산피해를 기록하였다. 지난 2008~2009년 2년 동안 동남아 지역에서는 기상의 돌발적인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약 30만 명의 인명이 사망하였으며 이에 따른 경제적인 피해 규모는 약 4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화 '해운대'에 나타나는 재난은 이미 전 세계에서 수시로 발생하면서 수많은 인명 손실과 재산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최근의 국내 상황을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금년 4월까지 예외적인 저온현상으로 양식장에서는 물고기가 성장이 둔화되어 큰 피해를 입었고 수산물 가격이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또한 초봄의 한파로 과수원에서는 금년 가을 수확량 감소가 예상되면서 농민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지구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의 평균온도가 2050에는 1990년과 비교하여 약 4.0도 상승하여 온대성 기후에서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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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추억이다 지면기사
[경인일보=]지구촌시대, 정보화시대가 이룩한 최대의 성과는 지리적 경계개념의 소멸이다. 지리학자들은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의 무한대 확장으로 사람들은 웹사이트를 통하여 수시로 국경을 넘나들고 있으며, 이러한 습관은 실제로 물리적 국경을 유유히 넘어 관광문화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관광문화야말로 향후 가공할 문화경제를 가능케 하는 요소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간 국경이 실제로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통하여 무시로 넘나들던 습관과 이질 문화에 대한 동경은 과거 그토록 견고하였던 심리적 국경선을 훌륭하게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경개념의 전환이야말로 과거 인종적, 종교적, 계급적 차별을 소멸시키는 촉매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새로 쓰기 시작한 문화경제라는 용어는 도시문화, 도시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도시는 높은 인구밀도와 자원 과다 사용으로 인하여 문제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는 오히려 거꾸로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므로 오늘날 도시행정가들은 도시의 규모를 줄이기 보다는 도시의 문제점을 줄여가는 방법으로 도시문화를 가꾸어가고 있으며, 그것은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리고 도시의 질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건축미학의 활발한 도입이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된다는 사실이다.한국 대도시의 건축미는 어떠한가? 도시는 단순히 사람만 많이 사는 곳이 아니다. 도시는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이 결정적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파리를 기억하는 것은 강이나 땅이나 도로가 아니라 도시의 건축물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축물이 배제된 도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만큼 건축물은 도시의 질을 구성하는 결정적 증거이자 도시에 대한 추억 만들기와 직접 관련이 있다. 대다수의 역사적 도시들은 도시형성 초기부터 계획을 만들고 도시가 필요한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축적해왔다. 그러나 한국처럼 식민지시대를 거치고 전쟁을 겪으면서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팽창해온 도시들은 건축미학은 고사하고 그 유사한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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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흡연을 없애야 건강 선진국 지면기사
[경인일보=]안데스 산맥에 자생하는 풀이 있었다. 토착 원주민들이 그 풀에 무슨 이유에선지 불을 붙여 빨게 되었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그 습관은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유럽의 담배는 아프리카와 인도양을 지나 일본까지 전해졌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졌다. 우리나라에서 담배에 대한 기록은 1643년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 '지금 사람들은 담바고를 많이 심는다'라고 최초로 등장한다. 담배를 즐겨 피웠던 정조는 '차가운 몸은 덥혀주고, 더운 몸은 식혀주니 이 아니 좋은가' 하는 담배 예찬론을 쓰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우리나라에 전해진지 400년밖에 안된 담배가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5천만 남한 국민 중 무려 천만에 가까운 흡연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담배 때문에 매일 150명이 사망하고 있는데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을 수개월 동안 공포에 떨게 했던 신종플루로 사망한 사람이 250명인데 담배 때문에 이틀 동안 사망하는 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또한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는 암이고, 2위는 뇌혈관질환이고, 3위는 심장혈관 질환인데 담배는 위의 세가지 모두에 주된 위험요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든 보건복지부 장관이든 의사든 치과의사든 우리나라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담배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망원인 4위는 자살인데 우연찮게도 흡연자들은 자살률도 높다. 처음에 금연운동을 할 때는 흡연자의 건강을 위해서 금연을 주장했는데 점차 간접흡연이 해롭다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금연운동은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는 흡연자는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건강도 해친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간접흡연으로 암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이 밝혀져서 국제암연구소에서는 간접흡연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또 간접흡연은 천식을 악화시키고, 심장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심장마비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심각한 질병이 아니더라도 코와 눈의 따가움, 가슴답답함을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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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원 혁명만이 한나라당이 살 길 지면기사
[경인일보=김형준]한나라당 새 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 막이 올랐다. 13명의 후보들이 쇄신, 화합, 세대교체 등을 내세우며 당권 경쟁에 돌입했다. 이번에 선출되는 새 대표는 6·2 지방선거 참패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2012년 총선 공천과 차기 대선을 관리해야할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다. 이런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새 대표를 뽑는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애석하게도 김빠진 사이다처럼 밋밋하고 전혀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번 전당대회는 박근혜, 이재오, 정몽준 등 빅3 거물들이 불출마한 가운데 고만고만한 후보들이 난립하면서 차기 총선에 대비하기 위한 '마이너 리그'로 전락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6·2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 2012년 대선에서 다시 야당에게 정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이유는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이 주된 요인이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한나라당이 정권 교체 이후에도 허구한 날 친이-친박간에 싸움만 하면서 국민들의 혐오감을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방선거 직후 한국정책과학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싫어하는 정당' 비율에서는 한나라당(32.7%)이 민주당(17.1%) 보다 2배 정도 많았다. 더구나 0점(아주 조금 싫어함)에서 10점(아주 많이 싫어함)사이의 혐오 점수에서 한나라당은 7.23점으로 민주당(5.64점)에 비해 훨씬 높았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했을 당시 혐오점수는 7.30점으로 최근의 한나라당 혐오점수와 비슷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야당 후보를 지지한 이유는 다음 중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38.5%가 '대통령이 일을 잘 못해서'라고 응답했고, 그 다음으로 '여당이 싫어서'가 20.0%였다.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한나라당 쇄신의 핵심은 기존의 한나라당 혐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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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조정 지면기사
[경인일보=]정부는 정책을 수립하는 유일한 기관이지만 모든 국민들이 정부가 수립한 정책을 무조건 따르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은 정부 정책이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찬성과 반대 의사를 표현하고 필요한 경우 추진과정에서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반대운동을 펼치고 선거에서는 투표를 통하여 의견을 제시한다.정부가 약 2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추진 중인 4대강개발계획의 예를 보자. 정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1인당 연 강우량이 세계 평균의 약 13%에 불과하여 추가적인 수량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강우량의 대부분이 장마기에 집중되어 빈번한 홍수를 유발하고 갈수기에는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메말라 강물은 수량 부족으로 오염되어 생태계의 파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4대강 개발을 통하여 추가적인 수량 확보, 홍수방지와 수질개선을 달성하고 나아가 생태하천과 생태습지를 조성하여 국민들에게 쾌적한 생활공간을 제공하려는 것이 4대강개발계획의 주요 내용이다. 환경을 개선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4대강개발계획은 우리가 1990년대 초부터 주장하여 왔던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개발(ESSD)의 표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계, 학자, 시민단체, 정치인을 포함한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대강개발계획이 사회적 갈등으로 지연되면서 발생하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앞으로 4대강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룰 수가 있는가?4대강개발계획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크게 사업내용의 타당성에 대한 반대와 계획의 결정과정에서 정당한 절차가 생략되었다는 판단에서 반대를 표시하고 있다. 이들은 가까운 장래에 물 수요량이 크게 증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추가적인 수량 확보를 위하여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수질개선을 위한 강바닥의 준설과 수중보의 건설은 오히려 수질오염의 유발과 생태계의 파괴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홍수는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4대강의 본류에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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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의 집단성'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지면기사
[경인일보=]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이 태극기로 물들고 있을 때 독일국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대신 수천 명의 독일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팀의 깃발을 들고 독일을 응원했다.전범 국가인 독일은 국가를 내세우는 데 주저하는 문화가 있다.반면에 같은 전범 국가인 일본은 일장기를 당당하게 내세운다.일본대표팀의 닉네임인 '울트라 니폰'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대신 '무임승차'는 경계하는 편이다.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일본 축구팬들의 구호는 '축구팬들만 경기장으로'였다.월드컵은 축구팬들을 위한 축제이지 국민을 위한 잔치는 아니라는 관점이다.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한민국과 나이지리아전.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 30분에 경기가 열렸음에도 대한민국은 잠들지 않았다.수십 만의 인파가 거리에서 광장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이러한 상황이 이성적이냐,비이성적이냐를 따지기 전에 과연 우리나라 이외에서 가능하냐는 의문이 든다.도대체 우리 국민의 이러한 집단성의 원류는 어디에 있으며 실체는 무엇인가.필자가 보기엔 이러한 집단성은 한국의 문화이자 정체성이라고 본다.집단성은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필연적 위험성 때문에 때로는 경계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선진적 문화로 귀결이 가능하기도 하다.월드컵의 이러한 집단적 응원 문화를 객관적으로 보면 해석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우리가 평소 축구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국가관이 남달라서 '조국 사랑'이 지극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군사독재를 통해 집단성과 획일성에 대한 부작용도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경계해야 마땅한 형편이다.이러한 집단성과 획일성 때문에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한 역사를 생각하면,오히려 부정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집단성이 우리 문화의 깊숙한 곳에 축적되어 내면화되었다는 사실이다.북한의 정대세가 북한국가를 들으면서 굵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국민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아무리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도 우리는 이웃과 더불어 살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