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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구와 축구 그리고 국가정체성

    야구와 축구 그리고 국가정체성 지면기사

    [경인일보=]하나의 사물이나 유기적 조직을 본질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역사·문화적 배경 그리고 정체성(Identity)을 이해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파악이 어렵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대표적인 구기종목인 야구와 축구도 깊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일단 야구와 축구가 동시에 인기 있는 나라는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 미국과 일본을 축으로 하는 야구문화권은 야구가 주류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유럽을 거점으로 성장해온 축구문화와 시스템은 유럽의 세계관을 등에 업고 전 세계로 파생되었다.몇 년 전 사이언스지(誌)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예측 불가능한 종목으로 야구와 축구를 꼽았다. 이 예측 불가능성이 오늘날 야구와 축구를 번창시킨 본질적인 요소이다.먼저 기능적인 메커니즘 관점에서 보면 야구와 축구는 차이가 있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유연성과 예술성을 기저에 두고 있다. 쉽게 말해 천재들이 하는 운동이다. 골 결정력은 노력만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 물론 어느 종목이든 스포츠는 '천재'가 유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특히 축구가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현란한 개인기에 유럽은 시스템으로 겨우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야구는 게임수가 많은 관계로 '일상의 스포츠'이다. 야구 천재들이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기는 하나 장수하는 경우는 드물다. 야구는 스스로 변하고 관리(Well Organizing)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공부처럼 반복훈련만이 생존을 보장한다. 또한 적응의 스포츠이기에 정신적인 면이 깊이 영향을 미친다.시스템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야구와 축구는 보다 확연한 차이가 있다. 축구는 열린 문화이다. 동네 팀도 세계적인 클럽팀과 겨룰 수 있는 제도가 구축되어 있다. 프로리그는 승강제를 통해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축구가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근본이유는 이 오픈 시스템과 '서민친화적인'요소 때문이다. 또한 축구는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 3세계 정치지도자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도, 축

  • 과학적인 공익 캠페인의 절실함

    과학적인 공익 캠페인의 절실함 지면기사

    [경인일보=]매년 국내 전력소비량을 돈으로 환산하면 30조원에 이른다. 산불로 인한 피해액은 한해 1천200억원에 달하며 음주운전에 의한 사망자수는 매년 6천여명, 피해액은 무려 2천100억원이나 된다. AIDS에 의한 사망자 수는 현재까지 1천200명에 달하며 1인당 경제적 비용은 4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엄청난 손실을 줄일 수는 없을까? 이러한 문제들의 공통점은 법적인 조치로는 한계가 있으며 개개인의 자각이나 참여 없이는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고도의 자본주의사회에서 제도와 정책은 강제로만 규정하기엔 한계가 있다.이러한 공익적 손실문제나 목표달성을 해결하는 데는 3E의 조치단계가 있다. 첫번째는 법적인 강압조치(Enforcement), 둘째는 기술적인 차원에서의 조치(Engineering), 셋째는 교육적인 조치(Education)이다.우리나라의 경우 법적인 조치와 기술적인 조치는 그런대로 강한 편이다. 음주, 산불, 안전벨트 등에 대한 법적인 규제와 기술적인 조치만 해도 괄목할만한 수준의 강화나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적인 면 즉, 계몽과 공익 캠페인의 수준은 그러하지 못하다. 선진국에 비해 두드러지게 낙후하다. 과학적인 조사나 이론 없이 마구잡이식 구호가 난무할 뿐이다.가장 눈에 많이 띄는 교통안전을 예로 들면 전국도로나 고속도로에는 아직도 '쉬어가요 졸음운전, 두고가요 음주운전'식의 4·4조 구호가 대부분을 이룬다. 어떤 표현이나 소구방법, 전략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진지한 고려는 거의 없다고 본다. 특히 이 문제를 과학적 이론과 조사연구와 결부시켜보는 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학문적으로도 이 분야는 낙후하다. 심리학, 마케팅학, 커뮤니케이션학, 사회학 등 관련분야에서 간헐적으로 연구가 나오고 있기는 하나 매우 빈약하다. 정부에서는 해당 이슈에 따라 표어 공모전을 벌이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과학적 접근의 가장 좋은 예는 공익 캠페인에 마케팅 개념을 도입하는 시도이다. 이른바 마케팅 이론의 핵심인 제품 (product), 가격 (price), 장소 (place),

  • 고령화사회, 나잇값하기

    고령화사회, 나잇값하기 지면기사

    [경인일보=]기차역 기다림방에서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매표구 역무원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역무원이 뭔가 정중히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아주머니는 그 말을 듣지도 않은 채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계속 자기 할 소리만 거친 욕설을 섞어 내쏟았다. 그 소동을 구경하던 젊은이 하나가 혼잣소리하듯 말했다. "나잇값 좀 하시지." '나잇값'은 그 연륜에 비해 행실이 좀 가볍거나 덤벙대는 사람을 질책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나잇값, 나잇살…. 젊은 사람보다 주로 나이 많은 사람을 겨냥해 낮잡아 쓰는 말이라 바야흐로 고령화 사회의 노인 깔보기 키워드가 됨직하다.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7%, 곧 인구 열 사람 중 한 명이 나이 65세 이상 노인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이에 따라 노인 한 사람을 부양하는 생산 가능인구수도 10년 전 10.4명에서 올해 6.8 명으로 대폭 줄어 그에 따른 의무나 책임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고령 인구가 증가하는 원인인 사망률 감소는 노인들이 자나 깨나 자신의 건강관리에 철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러나 몸이 건강하다고 모두 나이대접을 받고 사는 것은 아니다. 몸은 씽씽 건강한데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더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없지 않다. 건강한 몸에 비해 마음 건강이 신통치 않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이와 달리 비록 가진 것이 없고 몸까지 병약해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공경을 받으며 사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마음이 건강한 이들만이 누리고 사는 복이다.고령화 사회에서 성공한 인생으로 사는 길은 오직 자기 절제의 겸허와 행실의 부드러움으로 그 나잇살에 걸맞은 나잇값을 하며 사는 일일 것이다. 고령화 사회, 노인들을 위한 각종 복지정책과 시설 갖추기도 중요하지만 그런 복지 혜택을 주문하고 누리기 위한 우리 스스로의 자격 갖추기가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다.어려운 시대, 어른 모시고 자식들 위해 헌신하며 열심히 살아온, 그 공든 탑을 깡그리 허물어 내고야 세상을 뜨는 그런 어쩔 수 없는 늘그막의 비애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다.더불어 사는

  • 대학 총장 선거제 폐지하자

    대학 총장 선거제 폐지하자 지면기사

    [경인일보=]최근 청문회를 통해서 난도질 당한 전직 대학 총장이 있다. 어느 신문에서 하도 거짓과 허위가 많아 가면 갈수록 문제가 생겨 '양파'라고 불리기도 하고, 재직시에 하도 외부기관과 단체의 자문, 고문 등을 많이 맡아서 '고문총장' 등의 별명이 있다. 우선 안타까운 일이다.명색이 필자도 대학교수생활 40년이고, 작지만 알뜰한 대학의 부총장직을 맡고 있으며 나 자신도 아주 많이 각종 사회단체의 장, 고문, 이사 등을 맡고 있어서 솔직히 이런 글을 써야 할까?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각종 매스컴에서, 또 사적으로 참여하고 만나는 모임에서 대학총장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편견을 감지할 수 있어 이 칼럼을 쓴다.노태우정권때 6·29선언이 나오면서 선거만능주의가 탄생되었다. 이러한 사회풍조에 가장 보수적으로 대응해야 할 대학의 교수사회가 가장 재빠르게 대응하는 집단으로 변하였다. 그때 나온 것이 교수협의체인 현재의 교수평의회였다. 쉽게 말해 교수들의 모임체를 만들어 학교행정 내지는 경영 등에 참여하자는 취지의 모임이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서 나온 의견중 하나가 총장선거를 교수들이 직접하자는 '총장직선제'가 탄생되었다. 마치 그 동안 총장직선제가 없어서 학교 발전이 안된 것처럼…. 그 이전엔 국립대학교는 정부에서, 사립대학교는 이사회에서 총장을 선임하는 방식이었다. 하여튼 총장이 교수들의 선거로 결정되다 보니 교수들 가운데 일부는 이 제도를 이용해서 총장이 되겠다는 포부와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으며 바로 이러한 총장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교수들의 정치가 시작되었다. 인맥을 동원하고, 학맥을 동원하고, 출신지역을 동원하고, 전공분야·대학별로 동원되고, 선거본부가 생겨서 투표작전이 시작되었다. 정치인의 선거로부터 배운게 있어서인지 호텔에 선거본부를 차리고, 예산을 쓰고, 또 각급 단위별로 조직책을 선정하여 선거전략을,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내세우고, 또 타 후보의 약점을 들춰내고, 때로는 금품 제공 등이 자행되는가 하면, 연설회 때 박수부대를 동원하고, 때로는 오직 선거에 이기는 것만을 생각하는 거의 단말마

  • 사람들은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사람들은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 지면기사

    [경인일보=]직장 때문에 부산에 거주한 지 거의 6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곳 사람들의 야구 사랑이다. 집착에 가까운 야구 사랑이 도시를 감싸고 있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여러 갈래로 해석해 보려하지만 쉽지 않다. 본질적으로 스포츠는 허구(虛構)의 세계이다. 영화, 음악, 미술 등 예술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재미나 오락적 요소가 있다고 여겨지는 영역들을 자세히 보면 예외 없이 허구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러한 세계에 쉽게 몰입하는 반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현실을 직시하는 기성세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시들해진다. 순수한 감정이 사라지면 스포츠나 예술에 몰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곳 사람들은 순수해서 야구에 몰입하는가. 물론 그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수많은 이유가 내재되어 있다.엘리스 캐시모어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스포츠, 그 열광의 사회학'에서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를 현대사회가 가지는 특성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예측가능한 일이 많아졌으며, 그에 따라 삶은 과거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이다. 즉 삶이 너무 뻔해지다 보니 무언가 자극적인 것이 필요하고, 예측불가능한 영역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라고 규정하였다. 옳은 말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한편에서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팬들을 향해, 스포츠의 비합리적 낭비성을 질타하기도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스포츠가 가난과 가정불화, 인종차별 또는 기타 현대사회의 어떤 병리현상의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한다. 도대체 스포츠의 무엇이 우리를 사로잡는가?첫째는 도전과 응징이다. 인간의 본성은 도전에 맞서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진화적 적응의 일부이다. 인간이 하나의 종(種)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도전에 맞섰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승부는 도전과 대립 그리고 극적인 결과 등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둘째는 공정한 경쟁이다. 오늘날 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는

  • 유명 브랜드 없는 국가 브랜드

    유명 브랜드 없는 국가 브랜드 지면기사

    [경인일보=]국가브랜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국가브랜드란 명칭과 개념은 노무현 전 대통령시절부터 강조해왔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에서는 정부 출범 후 바로 국가브랜드위원회를 발족시킴으로써 본격화 했다. 국가브랜드란 무엇인가? 국가이미지와는 무엇이 다르며 국가 신인도(country risk), 국가 명성(reputation), 국가 정체성(identity) 등과 무엇이 다른가? 국가브랜드를 알려면 우선 브랜드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브랜드는 주로 특정한 상품명에 대한 반응과 평가를 바탕으로 한다. 구찌, 나이키란 브랜드의 이름을 접하면 소비자들은 금방 높은 질과 젊음, 고급, 귀함 등을 연상한다. 브랜드가 된 제품은 남다른 혜택을 누린다. 소비자들은 브랜드가 된 제품에 대해서는 빨리 구매를 결정하며 위험부담도 쉽게 한다. 고가에도 구매한다. 반면 브랜드, 소위 명품이 되지 못한 제품들은 이 모든 면에서 찬밥신세가 된다.국가브랜드는 한 나라 이름에 대한 세계인들의 반응과 평가를 총칭한다. 국가 신인도는 한 국가에 투자하는데 대한 위험도를 말하며 국가 명성도는 그 국가의 능력에 대한 기대 정도다. 국가 정체성은 그 국가가 스스로 내세우는 자기의 위상이며 국가이미지는 반대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 국가에 대해 갖는 종합적인 인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브랜드는 매우 경쟁적이며 상업적인 의미가 크다.국가브랜드위원회의 설립목적은 Korea 국가브랜드의 값을 올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브랜드는 너무나 변수가 많다. 관광, 문화, 안보, 외교, 산업 등의 요소들이 모두 포함된다. USA, France, Japan 등의 초강국 브랜드는 오랜 기간 많은 변수들이 흩어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잘 발전한 결과다. 그러나 Korea의 경우는 매우 불리하다. IT 강국과 월드컵의 신화, 박세리의 신화가 무언가를 이룰만하면 북핵과 김정일의 이슈가 강타한다. 지금까지 잘 사용해온 'Dynamic Korea'는 불안정하고 위험한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교체를 검토 중이지만 이 개념을 능가하는 좋은 국가브랜드의 콘셉트를 만들

  • 고향이 그리워도

    고향이 그리워도 지면기사

    [경인일보=]올 추석 연휴 귀성객 수가 2천500만명을 넘을 것이란다. 지금 이 시간도 귀성길 교통 정체의 그 혼잡은 다른 때와 다르지 않으리라. 그러나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하나같이 들떠있을 터. 얼마나 가슴 설레며 기다려온 귀성길인가. 성묘(省墓), 귀성(歸省)이란 말에서 성(省)자의 우리 본딧말 새김은 '살피다' 혹은 '깨닫다'이다. 산소나 고향을 찾아가 그 동안 잊고 산 조상의 은혜나 자기 근원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수구초심, 여우도 죽을 때엔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고, 객지에 나가 살던 사람들은 평생을 두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게 마련이다. 고향이 따로 있나, 정 들면 거기가 고향이지. 고향 그리움이 얼마나 절실하면 이런 체념의 반어법이 나왔겠는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감성 중 가장 순수하고 고결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객지 생활을 통해 잃어버린 그 어떤 것을 되찾고 싶은 바람이며 부도덕하게 오염된 자신의 현실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찾아온 반성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적 삶에서 피폐해진 가슴을 치유하고 충전받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실추된 아버지의 권위도, 잊고 사는 자기 뿌리 찾기도, 객지 생활의 외로움도, 찌든 삶의 고달픔도 고향에 돌아가면 다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이 시간 길 위의 귀성행렬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고향이 그리워도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먼 이국에서 오직 모국어 하나만을 잊지 않은 채 희미해져 가는 고향 추억을 더듬고 있는 해외동포들의 추석맞이 긴 한숨소리를 듣는다. 자식 따라 이민 떠날 때 고향의 흙 한 삽을 떠갔다는 그 노인네가 쳐다보는 추석 보름달은 어떠할까. 고향이 그리워도 갈 수 없는 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 다문화 시대, 낯선 땅에 이제 막 뿌리를 내려 살기 시작한 결혼 이민자 또는 새터민(탈북자)들에게 고향의 의미는 더욱 남다를 것이다. 가슴 저미는 타향살이 서러움으로 먼데 하늘을 무연히 바라보는 얼굴들이 또 있다. 고향 떠난 지 몇 년 되도록 돌아가지 못한 채 열악한

  •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그렇게도 사람이 없소 지면기사

    [경인일보=]3대가 멸족하려면 국무위원 또는 국무총리가 되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소위 국무위원과 국무총리 등은 국회 청문회에서 그 후보자의 모든 것이 들추어지고 해부되다 보니 결국 그 동안 감추어져 있던 치부가 노출되어 개인이 쪼개지고 난도질당할 뿐 아니라 그 후손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언론 등을 통해 개각이 예상되면 항상 짓궂게 전화하는 친지들이 있다. "전화 안 왔어?" "무슨 전화?" "입각하라고…." "또 장난치는군." "아니야, 미국말로 I am serious, 자네같은 친구는 꼭 한번 입각해서 일해야 하는데…." 항상 그 다음 말이 나온다. "윤 교수는 군대도 갔다 왔고, 세금도 잘 내고, 자녀들도 속 썩이지 않아서 위장전입도 안 했고, 또 부인이 부동산 투기에 소질이 없어서 투기도 안 했으니 장관을 시킬 만한데 왜 개각 때마다 소식이 없는 거요…." 그러면서 그래서 명단에 빠지는 것이니 장관이 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위장전입'이라도 한번 해서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또 교회를 바꾸어 다니면 될 텐데 능력이 아깝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0년이다. 이때 국무총리, 대법원장, 감사원장에 대한 청문회 법이 시작되었고, 2003년에는 4대 권력기관장이, 2005년에는 국무위원을 대상으로 하는 국회 청문회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며칠 전에도 개각이 되어 국무총리, 국무위원 몇 명, 대법관 등에 대해서 국회 청문회가 있었다. 청문회 전에 각자의 인물평에서 또 그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군대 안 갔다, 위장전입했다, 부동산 투기했다, 세금 탈루했다, 논문 표절·중복이 있었다는 말이 줄을 이었고, 또한 한결같이 "청문회 때 다 말씀 드리겠다. 죄송하다"는 청문회 대상자들의 해명(?)이 반복되었다. 내가 잘 아는 미국 '볼티모어'에 사는 대학교 선배가 있다. 1973년 미국에 유학 갔을 때 오래 전에 미국에 와서 잘살고 있는 선배 댁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자네 군대 갔다 왔지?" 하고 묻는다. 왜냐고 물으니

  • 애국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코미디

    애국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코미디 지면기사

    [경인일보=]기성세대에 편입되면서 개인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른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일을 함에 있어 남의 입장을 한번 정도는 더 생각해보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조절하기 힘들었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는 왜 그리 크던지. 그러나 이젠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부터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성숙'해지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타협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누군가는 외쳐야 할 상황에서도 그 누군가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길 바랄 때도 있으니 숫제 비겁하다 못해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비약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바로 아이돌그룹 2PM의 재범과 국회인사청문회에 대한 이중적 잣대이다.그룹 2PM의 리더였던 재범은 4년 전 힘든 연습생 시절 개인 홈페이지에 "나는 한국인이 싫다"는 내용의 글을 남긴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은 집단이지메나 마녀사냥을 넘어선 '애국주의의 비극'이다. 사실 이번 사태는 그냥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다. 청년시절 자기가 사는 나라에 대해 푸념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는지. 그 아이돌스타가 실정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애국주의는 강요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아직도 기억한다. 2002년 월드컵 준결승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를. 수천 명의 독일응원단이 독일 국기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팀의 깃발을 흔들면서 애국주의를 경계하는 모습을. '위대한 독일'을 외칠수록 독일은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이번 해프닝은 한국사회의 폐쇄성만 만천하에 드러냈을 뿐이다. 굳이 볼테르의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건 상식의 문제이다.반면에 국회의원 출신 일부 장관

  • MPR 시대와 저널리즘의 위기

    MPR 시대와 저널리즘의 위기 지면기사

    [경인일보=]마침내 미디어법이 통과되었다. 이제 신문과 방송, 대기업들은 새로운 미디어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분주하다. 신문과 방송의 교차겸영이 허용되고 대기업들의 미디어산업 진출이 보다 용이하게 되었다. 케이블 TV에도 KBS나 MBC같은 종합편성채널이 허용되게 되었으며 뉴스채널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IT 강국에 이어 미디어 강국답게 우리나라는 이제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인구당 미디어의 비율이 높다. 공중파방송은 물론 케이블 TV, 위성 TV에 이제 인터넷을 이용한 IP TV까지 가세하게 되었다. 휴대전화와 DMB 수신기에서도 온갖 프로그램이 쏟아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신문과 잡지의 수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불황에 허덕이면서도 그 숫자는 도리어 늘어나고 있다. 라디오의 청취율도 떨어지지 않는다. 광고로만 운영하는 온갖 무가지들도 난무하고 있다. 인터넷 속의 신문과 방송은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뿐인가? 블로그를 통하여 미네르바와 같은 파워 블로거들이 저널리스트 행세를 하고 있다. 네이버와 같은 포털들은 자기 마음대로 뉴스를 편집하여 신문사 역할을 하고 있다.미디어 범람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마케팅의 무기가 마케팅 PR(이하 MPR)이다. 노스웨스트 대학의 토마스 해리스 교수같은 사람은 이제 광고의 시대가 가고 MPR의 시대가 만개한다고 장담한다. MPR은 간단히 말해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미디어의 내용을 직접 노리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해리스 교수는 결과적으로 유료광고는 줄고 비광고 미디어 공략 형태의 마케팅 전략이 늘 것이라고 내다본다. 특히 기존 일간신문과 방송(공중파)의 광고는 큰 타격을 볼 것으로 예측한다. 이제 광고의 자리가 MPR로 대체된다면 무슨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 기업들로서는 한없이 늘어난 미디어의 지면과 프로그램을 직접 공략해서 자신들의 회사나 브랜드, 제품의 이름이 나타나도록 한다. 영화는 PPL(영화 속에 특정 제품이 등장하게 만드는 마케팅 기법)로 가득 찬다. 경제지의 경우 아예 제품 소개란을 기사처럼 버젓이 운영하고 있다. 이제 공중파와는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