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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현직대통령의 가족장 결의대회

    전·현직대통령의 가족장 결의대회 지면기사

    [경인일보=]유난히도 무더운 날씨다. 대개 광복절이 지나면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함을 느꼈는데 최근에는 날씨와 더불어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과 이상하게도 '주검'이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을 압도하다 보니 더욱 지루하고 무덥다. 꽤 오래 전 일이다. 전남 광양에서 강연을 하고 나서 몇 명의 30대 청년들이 강연을 감명 깊게 들었다고 하면서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윤 교수 같은 분이 꼭 도와줘야 할 게 있다고 한다. 얘기인 즉슨 자기들은 한국의 장례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 민간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의 회원이라고 하며 필자의 동참과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후 그들은 간단한 인사편지와 왜 그들이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를 바꾸어야 하는지, 또 현재 우리나라의 장례실태는 어떤지 등등이 기록된 자료를 보내왔다.중국여행을 했을 때의 일이다. 안내인이 여러 얘기를 하는 중에 중국에는 봉분이 없다고 했다. 중국처럼 유교문화를 숭상하는 나라가 이게 웬일이냐 싶었다. 풍수지리설의 원조인 나라, 용(龍)의 발톱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떠드는 나라가 아닌가. 중국은 연간 평균 사망자가 600만명에 달해 매년 엄청난 규모의 땅, 그 중에도 명당이라고 일컫는 요지가 묘지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택동이 이끄는 혁명정부가 1956년 화장을 법으로 정하고 시신을 관에 넣어 매장하는 토장제도를 금지하는 '장묘문화혁명'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40여 년이 지난 현재 중국 어디에서도 봉분들을 한 무덤은 거의 볼 수 없다고 한다.특히 1979년에 사망한 주은래 전 국무원 총리는 유언에 따라 화장을 했고 그 유골이 비행기로 전국에 뿌려졌고, 1989년 호요방 총서기가 사망했을 때 부인의 희망에 따라 화장된 유골이 강서척지에 뿌려졌다. 중국의 국립묘지인 베이징 '팔보산 혁명공묘'는 지도자, 애국자, 과학자, 문학가, 예술가, 고급기술자 등 3천여명이 묻혀있고 묘지크기는 1~2㎡로 모두 납골묘다.우리는 최근 2~3개월 사이에 두 전대통령(前大統領)의 운명을 경험하였다. 한 분은 '자살(自殺)'로 운명하였고 또 한 분은 의학적으로 '병사(病死)'하였다.어

  • 시대를 앞서간 '행동하는 양심'

    시대를 앞서간 '행동하는 양심'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 화요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永眠)했다. 사람들은 '영욕(榮辱)의 삶을 살다 갔다'고 하지만, 역사는 그를 제대로 기억할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 가운데 가장 오해받았던 사람이 DJ였다. 아직도 그를 떠올리면 죄송한 마음부터 앞선다.필자의 고향은 대구다.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고향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당시 나의 고향에서, DJ는 일부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빨갱이, 거짓말쟁이, 전라도'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생을 마친 지금도 이 프레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학시절 그의 저서인 '김대중 옥중서신', '행동하는 양심으로', '대중경제론'을 읽었지만, 너무 '똑똑해서'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엔 정말 그랬다. 독서량이 풍부하지 못했던 20대 초반의 평범한 학생이 어떻게 본질을 볼 수 있었겠는가. 언론마저 통제되던 시절이었으니, 세상을 보는 창(窓)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그의 진면목은 미국강의실에서 제대로 체험했다. 체육이 전공이었지만, 한국에서 전공한 행정학을 부전공 삼아 법대, MBA, 행정학 대학원생들의 토론을 경청하다 보니, 정치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보편적 가치'에 누가 가까운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990년대 당시 서구에서 바라보는 제 3세계 위대한 지도자는 아웅산 수지, 넬슨 만델라, 김대중으로 압축되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박정희, 김일성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거니와, 일부 알고 있는 교수님들도 "독재자를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나, 독재자들은 공통점이 너무 많아 서로…" 정도에서 마무리했다. 당시에 받은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박정희와 김일성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물론 조금은 유연한 입장이기에, 서구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미얀마의 군부가 아무리 총칼로 '국민적 지지'를 받아도 아웅산 수지를 극복하기는 힘들다.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관점을 적용하면, 김대중은 세계적인 지도자

  • 홍보와 소통

    홍보와 소통 지면기사

    [경인일보=]MB 정부의 처음과 지금을 비교하여 가장 달라진 것 중의 하나가 홍보의 강화이다.MB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가장 먼저 국정홍보처의 폐지를 단정적으로 밝혔고 새정부 출범 후에는 대통령은 홍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는 것을 꺼렸다. 장관들도 이 용어를 불경시했다. 그러나 현 정권도 집권 반년이 되기도 전부터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홍보기획관(수석) 자리도 신설했다. 각 부처에서 다 내보냈던 계약직 홍보전문가들을 다시 고용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나 수석회의, 각 순시에서 국정홍보를 강조하고 직접 독려하기도 한다.다만 홍보라는 말 대신 '소통'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제 정부는 홍보라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여기에는 언론과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미디어에 대한 대응은 물론 선거와 대형 국책사업의 승패가 다 달려있기 때문이다. 촛불 집회와 같은 엄청난 여론의 소요를 경험한 후로는 더욱 그러했으리라. 곧 있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내년 지방자치선거를 생각하면 홍보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왜 그렇게 홍보라는 말을 싫어했을까? 과거 대통령치고 정부 홍보를 마다하는 사람이 있었던가?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이 대통령이 과거 건설회사에서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보냈고 CEO를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건설회사 홍보는 오로지 중요 인사 로비와 언론막기에 전념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를 출범시키면서 지금이야말로 그러한 엉터리 관행을 정부의 정책에서 뿌리뽑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또 다른 홍보 혐오 이유는 노무현 전 정권의 지나친 정치 홍보에 대한 진절머리에서 왔을 것이다. 정부의 정책을 브랜드화하고 기획과 홍보를 합쳐 기획홍보실을 만들고 보수 언론과 사생결단하는 홍위병식 홍보에 혐오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에 대한 극단적 반대, 그리고 극단적 선회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핵심적인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정부의 홍보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 4

  • 학부모 등에 업혀 개울 건넌 이야기

    학부모 등에 업혀 개울 건넌 이야기 지면기사

    [경인일보=]현행 교육 문제를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았던 전직 교장 한 사람이 교육 일을 맡아보는 중앙행정기관을 줄곧 문교부라고 일컬었다. 함께 있던 전직 동료가 핀잔 주는 말을 했다. "문교부가 뭐야, 교육부지." 그러자 역시 교장 출신인 다른 사람 하나가 껴들었다. "허허,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뀐 게 언젠데…." 또 다른 사람 하나가 나섰다. "웃기고들 있구먼. 허긴 자네들 낡은 머리론 교육과학기술부란 이름 외기도 쉽지는 않을 걸세."건국 이래 우리의 교육정책이 조령모개했던 것처럼 그 명칭 또한 꽤 자주 바뀌었다. 1948년 건국과 함께 문화와 교육을 아우른다는 뜻으로 발족한 '문교부'가 1990년 교육 전담의 '교육부'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2001년 '교육인적자원부'로,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 교육인적자원부가 과학기술부와 통합되어 그 명칭이 '교육과학기술부'가 된 것이다. 다행인 것은 명칭이 어떠하든 그 기관이 모두 이 나라의 교육 문제를 주 업무로 다뤄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현재의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 메뉴 항목부터가 그렇다. 학생·학부모·교원·연구자 중 맨 끝의 연구자 항목만이 과학기술 정책 등 먼저의 과학기술부가 하던 역할을 맡고 있을 뿐 다른 항목은 모두 교육 현장 일들을 다루고 있다.문제는 홈페이지 팝업창 제목의 섬뜩함이다. 학원부조리 신고 센터. 사교육비 경감 대책의 후속조치로 학원 등에서의 불법행위를 신고하면 돈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말이 '학원 등'이지 자세히 보면 우리 교육현장 전반의 부조리를 겨냥하고 있다. 빈대 미워 집에 불 놓는다고, 곪은 부위를 도려낸다며 선 솜씨로 어설피 쓰는 칼은 자칫 더 크고 중요한 것을 망칠 수도 있다. 학원 교육도 교육인데 유독 그 비리 척결만을 강조하는 이런 엄포성 전략이 우리의 교육 뿌리와 그 바탕 모두를 불신하는 풍조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우선 교육 현장의 불법행위 신고는 가르침을 받는 학생과 가르치는 선생님과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결정적 빌미가 될 터. 더구나 자기 자식이 다니는 학교와 선생님의 비리를

  • 정치권 물갈이

    정치권 물갈이 지면기사

    지난 22일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하던 때의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정말로 눈뜨고 볼 수 없는 가관이었다. 마치 군사작전하듯 국회출입문 봉쇄작전, 통과작전, 또 의장석을 사수하기 위한 백마고지 전투….정치권의 물갈이! 아직 선거는 멀었어도 작금의 여러 가지 사회현상, 정치현상,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 줄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면 차곡차곡 물갈이 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국회의원 선거 때만 되면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용어가 '정치권 물갈이론'이다. 한국의 발전과 미래, 또 현재에도 가장 장애물이 되는 것이 정치, 정치인, 광범위하게는 정치권이라고 지적 되기 때문인 것 같다.'정치권 물갈이론' 가운데 8~10년 전에 '젊은 피'라고 하는 용어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소위 386세대(30대, 80학번, 60년도 출생)가 각광을 받았던 때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결국 386 세대로 통하던 '젊은 피' 수혈은 실망 또는 실패라는 용어로 귀결되고 있는 것 같다.'젊은 피'. 이 용어는 이제는 노회된 용어가, 실패한 용어가 돼 버렸지만 아직도 사회의 각 구석구석의 대화 속에서 여전히 심심찮게 등장한다. 때로는 '젊은 피'에 빗대어 어떤 사람은 '점잖은 피'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젊은 피든 점잖은 피든 '피'라는 말에서는 생명이 연상되고 종교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리스도의 피가 인간을 구원한다고 믿는 기독교를 '피의 종교'라고 한다는 것도 이 연상과 무관하지 않다. 왜 그리스도의 피만이 구원할 수 있었을까? 죄인의 피는 죄인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구원교리'다.썩을 대로 썩고 낡을 대로 낡은 우리나라 정치를 희생시켜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젊은 피'의 수혈이 필요하다고 했다. 젊은 피 하면 대표격이 386세대가 떠오르는데, 386세대 스스로가 '젊은 피'라 여기고 있었다.피는 혈장과 혈구로 되어 있다. 피는 늙은 피와 젊은 피로 구별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각각의 혈구는 자연적인 수명이 있어 그 수명이 다하면 죽고 새로운 혈구가 생성된다. 때문에 우리 몸

  • 한국은 보수의 나라다

    한국은 보수의 나라다 지면기사

    스포츠사회학의 관점에서 체육·스포츠를 규정할 때,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체육·스포츠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다'는 개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포츠는 체제의 안정없이는 성장이나 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축구 강국이던 중동국가들이 최근 기량이 떨어지는 원인도 체제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즉 스포츠는 이념도 필요 없고, 정치권력이 좌든 우든 상관없다. 스포츠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오직 '체제안정'만을 바랄 뿐이다. 따라서 스포츠는 '운명적 보수'이다. 그렇다면 스포츠만 보수적일까. 아니다. 유교사상이 지배한 조선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는 보수의 지배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물론 정치성향이나 대북정책, 정부의 시장개입 정도와 같은 정책적인 관점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의미 있게 구분되기도 하지만, 삶의 방식이나 조직문화와 같은 추상적 개념에서는 보수의 틀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아직도 한국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이다. 기존 질서에 대한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진보적 관념과 사상은 아직 한국사회에서 넘어야 할 벽이 첩첩산중이다.정치적으로도 노무현 정권 정도가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기는 했지만 진보적 정책을 제대로 펴 본 적은 없다. 임기 중에 '좌파정부'라는 색깔공격에 시달렸던 노무현 정권의 어떤 정책이 진보정책이었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노무현 정권의 임기 초를 생각해보자. 카드대란의 후유증으로 인한 임기 초반의 경제위기, 한나라당 145석·민주당 62석·열린우리당 47석·자민련 10석의 의회구성, 언론의 색깔공세 상황에서, 어느 대통령이 진보 좌파적 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후, 어느 자리에서 "진보적 가치를 표방했지만,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분배정책은 꺼내보지도 못했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열린우리당, 민주당, 한나라당의 정책은 대북정책과 국가보안법 정도를 제외하곤 차이가 거의 없었다. 복지정책의 확대와 종부세는 국가라는 존재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였지, 진보·좌파적

  • MB 정부와 정체성

    MB 정부와 정체성 지면기사

    지난 6월 말 대통령의 중도론 선언 이후 MB정부의 정체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중도론이란 극좌도 안되고 극우도 안된다는 의미의 매우 타협적이고도 실용적인 노선이다. 합리적이고 민생 우선적이면 되는 것이지 정부정책에는 좌도 우도 없다는 설명이다. 역시 며칠 뒤 청와대는 '중도실용론'으로, 다시 '중도강화론'으로 보다 구체적인 이름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는 고육지책이다. 진보와 보수세력들의 원색적인 요구와 갈등사이에서 나온 궁여지책이다. 안보위협과 경제불황, 미래불확실성에 시달리는 현시점의 국민들에게 중도론은 매우 불안정한 노선이며 어필하지 못하는 노선이다.그간 MB 정권이 탄생한 이후 표방해온 정책노선용어들을 보면 유사한 점이 있다. 실용정부, 현장확인, 소통, 중도노선, 실리외교…. 좋은 말들이기는 하나 MB정권다움을 보여주는 키워드가 없다. 집권 1년 반이 지난 현시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숨김없이 드러난다. 이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논쟁과 정치를 싫어하며 편 갈라 싸우기 싫어하며 돈 안되는 이념적, 혹은 가치관적 고민에 빠지기를 싫어한다. 이 대통령은 그저 한 없이 일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한다. 통치의 이념이나 가치관, 철학, 역사관과 같은 추상적인 리더십 개념에는 별 흥미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엘리트 CEO 대통령의 약점은 바로 정권정체성의 결여로 나타나기 쉽다. 잘은 모르지만 이번 중도론의 표방은 이러한 자신의 정치 스타일이 추궁받자 "굳이 색깔을 밝히라고 한다면 나는 중도론 쯤으로 해놓지" 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 아닌가 싶다. 왜 정권은 확실한 정체성을 필요로 하는가? 그때 그때 좋은 정책만 실현하면 되지 굳이 정체성을 밝혀야 하는가? 결론을 말한다면 밝혀야 한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외교, 안보, 통일, 경제, 사회, 문화, 복지의 정책들은 장기적으로는 하나의 중심축을 기반으로 움직여야 파워를 발휘하며 예측이 가능하다. 확실한 비전이란 바로 정체성의 결정체이다. 이것이 좌파를 이롭게 하건 우파를 이롭게 하건 정책의 방향들은 뚜렷한 정체성 속에서 수렴되어야 한다. 모든 정책들

  • 양복 입은 뱀

    양복 입은 뱀 지면기사

    '사이코패스'란 말이 연쇄살인범의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다. 유영철과 강호순 같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의 남은 영향일 것이다.그러나 그들 흉악범들은 범죄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그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처럼 양복도 입었고 좋은 차도 몰고 매력 있는 미소로 주위의 환심도 사는 그냥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들에겐 자신의 공격적 성향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본능적 위장술이 발달했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에 대해 무감각함을 눈물로 위장한다거나 사탕 같은 사랑을 입에 물고 살았는지도. 이처럼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참 모습을 감춘 채 다가오는 폭력이다. 눈에 보이는 광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위해에 대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만 질 나쁜 악일수록 그 가해의 수법이 주도면밀해 피해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대부분 그 가해의 정체에 대해 모르게 마련이다.더 치사한 폭력은 힘없고 무지한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뻔뻔한 얼굴들로부터 나온다. 오래 전부터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잠자고 있는 정의를 일깨우기 위해, 우리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정치판의 목소리 높은 정치꾼들을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의 '남다른 지능과 위장술로 사람들을 조종해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는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를 '양복 입은 뱀'이라고 비유한 말에서 입씨름의 명수 정치꾼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정치판 정치꾼에 대한 불신이다. 분명 우리네 보통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덕망 있는 사람들이 일단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개판으로 달라지는 그 두 얼굴에 대한 배신감이다. 나라 걱정은 물론 우리 모두의 고통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싸움의 선봉에 섰다는, 그들의 높은 목소리는 우리의 희망이었고 미래였다. 그리하여 그들에 대한 믿음과 기대로 촛불까지 켜들고 거리로 나섰던 것 아닌가. 그러나 무엇이 달라졌는가. 우리의 그 맹신적 추종이 좌우 이념의 담 쌓기에,

  • 다 쓰고 죽자

    다 쓰고 죽자 지면기사

    후덥지근한 장마철에 산뜻한 얘기가 훨씬 필요한 시기다.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의 화두는 후덥지근한 장마철보다 더 찜통 같은 '죽음'이 아닐까 한다.얼마 전 한 신인 여자 탤런트의 자살, 그 이전 잘 나가던 최고 탤런트의 자살. 조용한가 했더니 또 한번 세상을 경악케 했던 전 대통령( 前大統領) 자살, 그런가 했더니 존엄사에 대한 법적(法的), 의학적, 윤리적 정의, 사회의 반응, 가족의 반응, 특히 언론의 보도태도, 또 이렇게 지나는가 했더니 세계 최고의 팝 가수 마이클잭슨의 미스터리한 사망! 2009년 상반기에 각종 매스컴에 줄줄이 이어졌고 지금도 그 여파가 , 그 여진이 아직도 꺼지지 않는 죽음이다.'죽음(Death)'에 대한 정의는 각자가 소유하고 있는 철학, 전문분야, 인생관, 종교관, 가족관, 전통 등등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숨쉬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활동하던 인간의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죽은 후 인간의 영혼이 떠돌아 다닌다는 등 내세(來世)를 말하는 것은 종교에서는 가능하나 현실과 의학에서는 불가능하다.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후(死後)가 아니라 사전(死前 )에 죽음에 대한 철학, 개인관 등을 어떻게 소유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죽음이니, 불행한 죽음, 행복한 죽음, 불필요한 죽음, 골치 아픈 죽음, 하물며 잘 갔다고 즉, 호상이라고 불리는 죽음 등등… 다양하다.필자는 의사라는 직업상 보통사람보다 비교적 많은 '죽음'을 봤다. 1970년대 미국 유학시절, 엘리자베스(리사)라는 50대 중반의 유방암 환자가 있었다. 폐에 물이 차서 들어왔는데 검사를 해보니 유방암 말기였다. 차마 환자에게 검사결과를 말하지 못 하고 있는데 검사 후 1주일째 환자가 묻는다."닥터, 내 병의 진단은?" "꼭 알아야 되겠어요?" "물론 당연하죠." "네 검사결과는 유방암이 퍼져서 폐에 물이 찼습니다." 표정이 바뀌더니 한참 있다가, "그러면 제가 얼마나 더 살수 있나요?" "교과서적으로는 3개월, 그러나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결정하시는 것 아시죠?" 그녀는 '에티오피아'에서

  • 나 혼자 만의 비밀

    나 혼자 만의 비밀 지면기사

    나 혼자만의 비밀이 하나 있다.아무도 모른다.아니 모르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하는 것은 까닭이 있어서다. 무엇일까.다 알다시피 나는 이미 결혼한 사람이다.결혼할 때 분명 아내에게 반지를 손에 끼워주었다. 그것은 약속이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약속일까?나는 최근 우리의 수천년 전 고전인 '천부경(天符經)'을 새롭게 해석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목적이 있어서다. '개벽(開闢)', 더욱이 '화엄개벽(華嚴開闢)'의 역학(易學)적 실천을 위해서는 동아시아 전래의 복희역(伏羲易), 문왕역(文王易), 정역(正易)과 함께 내가 10년 전 부산 해운대 등탑암(燈塔庵)에 머물 때 어느 날 문득 허공에서 본 새로운 팔괘인 등탑역(燈塔易)을 모두다 천부경 안에서 종합하는 '오역(五易)'작업을 위해서다.물론 어렵다.그러나 한 가지 큰 기쁨인 것은 그 모든 역리(易理)가 천부경 후반의 기이한 한마디인 '묘연(妙衍)'에 의해 집약되고 풀려나간다는 점이고 더욱이 그 묘연이 나의 미학적 클리세인 '흰 그늘'과 함께 여성성, 모성의 우주생명학적 '비의(秘儀)'를 드러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나는 얼마 전 이 공부를 더 본격화하기 위해 화엄성지(華嚴聖地)라고 불리는 오대산에 들어간 적이 있다. 산속에서 공부하다가 어느 날 새벽 갑자기 바로 이 묘연의 뜻 가운데 '반지'가 들어있음을 깨닫고 또 이어서 이 반지에 얽힌 나의 한 옛 꿈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꿈은 이렇다.꿈에 어느 참으로 아름답고 고매한 한 귀부인이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뒤 내게 사랑의 약속으로 반지를 사서 끼워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엄청나게 유혹적인 순간이었음에도 웬일인지 나는 순식간에 가볍게 이를 거절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지금까지도, 비록 꿈이었지만 그 거절의 이유가 내게 잘 짚이질 않았는데 이날 새벽녘 그 이유가 내 심장에 뚜렷이 떠오른 것이다. 무엇이었을까?하기야 내가 이 꿈을 기억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반지'라는 말이 늘 '약속'이란 말로 바뀌어서 기억되곤 하였다.그런데 바로 그 '반지'가 '약속'으로서 묘연의 가장 중요한 참뜻의 하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