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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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기차 화재, 소를 더 잃어야 외양간 고칠 텐가 지면기사
최근 화성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로 인해 '배터리'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전기자동차 화재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진화가 어려운 배터리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전용 초기 진압장비가 턱없이 부족하고 지하주차장 충전소에 대한 안전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경기도·경기도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도내 전기차 등록대수는 지난 5월 12만7천여대로 2019년 5월 8천549대에 비해 14배 이상 늘었으며 충전시설도 10일 기준 9만9천218곳으로 2019년 12월 1만871곳보다 9배 증가했다. 덩달아 최근 5년간 도내 전기차 화재도 늘고 있다. 2019년 1건에서 2020년 3건, 2021년 6건, 2022년 12건, 2023년 21건으로 증가했다.이 같은 전기차량과 인프라 관련 화재가 늘자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전기차 특성상 배터리 하나의 셀에 불이 나면 도미노처럼 다른 셀로 옮겨붙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날 수 있어 진압이 어렵다. 지난달 31명의 사상자를 낸 화성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의 경우 22시간 만에 꺼졌고, 지난 1월 안양 만안구 버스차고지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버스에서 발생한 화재는 8시간여 만에 진화됐다.전기차 화재 발생 시 초기 진압도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설치·구비는 미미하다. 차량 전체를 덮어 산소를 차단하는 '질식소화포'나 물과의 직접 접촉으로 인한 발열·폭발 등을 예방하는 'D형 금속 소화기'를 갖춘 충전시설은 거의 없다. 관련된 소방시설 법령이 없는 것도 원인이다. 경기도의회가 안전시설과 화재 대응 매뉴얼 마련 등을 골자로 한 조례 발의를 준비했으나 답보상태다.충전소 위치도 문제다. 7월 10일 기준 도내 충전시설 9만9천218곳 중 67.9%가 아파트에 설치됐으며 대부분 지하주차장에 있다. 지하의 경우 전기차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 배출이 어렵고 컨테이너수조가 달린 소방차를 활용해 진압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데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충전구역 설치 땐 편의성보다 안전에 중점을 둔 대책이 필요하다. 또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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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간 시행사-기존 빌라 일부 소유주 '보상 갈등' 소송전 지면기사
18년 전 공동주택 시행사에게 집을 넘긴 소유주들이 지금껏 매매대금을 받지 못해 생계가 파탄났다고 한다. 2006년 당시 화성시 향남지역은 교통망 확충·기업 및 인구 유입 등 성장 가능성이 큰 도농복합지역으로 공동주택 건설 요지였다. 공동주택사업을 추진하던 B사와 매매계약을 맺으면서 A빌라 소유주들의 기나긴 악몽이 시작됐다.B사는 지난 2006년 상신지구에 945가구 규모의 공동주택 사업 시행을 위해 사업부지 내에 있던 A빌라 6개동 57가구 매입에 나섰다. 주민들은 B사와 '빌라 면적과 동일한 면적의 신축 아파트를 공급하거나 면적을 기준으로 산정한 정산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의 대물변제약정 매매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하지만 인허가 지연 등 우여곡절 끝에 2014년이 돼서야 빌라가 철거됐고, B사는 이 과정에서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결국 사업시행 부지는 2020년 7월 공매 절차를 거쳐 520억원을 낸 C사에 매각됐다. C사에 사업시행자 지위가 양도되면서 관련 채무관계도 인계됐다. 그러나 C사는 "아파트 가격 상승 등에 따라 채무관계 전체를 인정할 수 없다"며 매매대금 정산 및 신축 아파트 공급을 미뤘다. C사는 빌라 소유주들에 대한 책임은 회피한 채 올해 2월 900여 가구가 입주를 시작했다.참다못한 빌라 소유주들은 2021년 소송을 제기했고, 2023년 12월 1심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정산금으로 전용면적 84㎡ 분양가격 중 가장 낮은 금액인 3억8천800만원을 인정했다. 2021년 11월부터 다 갚는 날까지 지연손해금 12%를 지급하고 가집행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C사는 즉각 항소했다. 인허가를 내준 화성시는 "사업자와 소유주 간 거래에 직접 개입하기 어렵다. 또 다른 민원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뿐이다.사업시행자가 바뀌었다고 기존 매매계약서를 휴지조각 취급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900여 세대가 입주한 상황에서 동일면적 아파트를 공급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사업 시행 지연으로 인한 빌라 소유주들의 경제적 피해는 병원치료를 받지 못한 사망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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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천종합어시장 이전사업 반드시 성공해야 지면기사
20년 가까이 답보 상태에 있던 인천종합어시장 이전 사업의 얽힌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사업 추진을 가로막았던 이전부지와 비용문제 등 주요 쟁점에 관계 기관들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내며 사업 성공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인천시는 최근 인천종합어시장협동조합과 간담회를 열고 인천종합어시장(항동7가 27-69)을 인천 연안항 물양장 매립지(항동 7가 61)로 이전하는 것에 합의했다. 인천 연안항 물양장 매립지는 약 2만㎡ 규모로, 현재 인천항만공사가 매립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 7월 매립 작업이 마무리되면 인천항만공사 소유가 되는데 이 토지를 인천시가 항만공사로부터 넘겨받아 종합어시장협동조합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이전 부지를 마련하게 된다.이전 사업의 최대 걸림돌이 됐던 비용은 조합이 부담하기로 했다. 종합어시장협동조합이 올해 3월부터 2개월간 어시장 내 점포 423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370개 점포가 이전에 찬성했다고 한다. 지어진 지 50년 가까이 된 어시장에서 더 이상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에 상인들이 의견을 모은 것이다. 철골 트러스 구조물로 이뤄진 건물은 침하현상으로 5도나 기울어져 있어 안전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이전해야 한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목소리다.1975년 문을 연 인천종합어시장은 소래포구와 더불어 인천의 대표적 관광지이자 수산시장으로 역할을 해왔다. 주말 평균 3만여 명의 수도권 시민들이 찾는 인천의 명소다. 하지만 노후화한 건물과 만성적인 주차문제 등은 어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인천시는 2006년부터 종합어시장 이전 논의를 진행해왔다. 어시장 인근에 있는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인천항 옛 제1국제여객터미널 부지 등이 이전 후보지로 결정됐지만 '사업비 부담', '난개발 우려' 문제로 추진되지 못했다.간담회를 통해 이전사업에 대한 큰 틀의 합의는 이뤄냈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세부과제도 있다. 종합어시장이 연안항 물양장 매립지에 들어서려면 해당 부지의 용도가 도시계획상 '자연녹지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변경돼야 한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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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글로벌 IT대란' 자체 대비책 마련 서둘러야 지면기사
그야말로 글로벌 IT대란이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9일 세계 굴지의 사이버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인 크라우드스트라이크가 보안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스 서비스 '애저'와 충돌을 일으켰다. 애저에 기반을 둔 항공사들의 전산망이 이른바 '블루스크린' 현상을 일으키며 일제히 마비되면서 전 세계 3천200편 이상의 항공기 운항이 취소되고, 3만편에 달하는 항공기 운항이 지연됐다. 또한 지구촌 곳곳에서 금융, 미디어, 의료, 물류, 기업, 행정 등 주요 서비스가 차질을 빚었다. 테슬라의 일부 생산 라인이 멈췄고, 파리올림픽 티켓 판매도 지장을 받았다. 사이버 보안업체의 사소한 기술적 오류가 전 세계를 연결하는 MS의 전산망을 마비시킴으로써 벌어진 일이다.우리나라도 대란을 피해가진 못했다. 제주항공을 비롯한 국내 일부 저가항공사들의 발권·예약 시스템과 온라인 홈페이지가 마비돼 인천국제공항에서의 31편을 비롯해 모두 90여 편의 항공기 운항이 지연됐다. 델타항공, 유나이티드항공 등 외국 항공사에서도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국내 온라인게임 서버가 먹통이 되고, 사무실 개인 PC의 오류 사례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자체 구축한 클라우드를 사용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은 운영에 지장을 받지 않았으며, 차질을 빚은 항공사들의 전산망도 다음 날인 20일 새벽에는 모두 복구돼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은행과 증권업계 그리고 통신을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들에서 이렇다 할 피해가 보고되지 않은 점도 고무적이다.클라우드는 초연결사회의 핵심 인프라다. 편리하고 경제적이지만 이번처럼 오류가 발생하면 전 지구적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지난 2017년 아마존 클라우드 서비스 'AWS'가 4시간 동안 서비스 장애를 일으켜 전 세계 수만 개의 웹사이트가 먹통이 되는 등 이미 유사 사고를 몇 차례 경험한 바 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같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관련 업계가 이런 초연결사회의 위험성을 최소화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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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후 행보가 중요하다 지면기사
나경원·원희룡·윤상현·한동훈(가나다 순) 네 명의 대표 후보와 9명의 최고위원 후보가 겨룬 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내일 막을 내린다. 그동안의 전당대회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만큼 누가 대표로 선출되어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초반부터 '배신자 프레임'이 등장하더니 '김건희 여사 사과 문자 논란', '댓글과 여론조성팀 존재 여부', '공소 취소 부탁' 등의 이슈들이 관통했던 전당대회였다. 지난 총선 패배와 향후 국정동력 회복, 건강한 당정 관계 방안 등에 관한 건설적인 논쟁과는 거리가 멀었다. 급기야 합동연설회에서 여당 전당대회 사상 처음으로 물리적 충돌까지 빚으면서 국민과 당원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 때 역대급 참패를 겪고 비상대책위를 꾸렸지만 변화와 쇄신을 추동하지 못하고 전당대회를 통해 들어서게 될 새로운 체제에 임무를 넘겼다. 전대는 향후 보수가 나아갈 길은 물론 지난 총선 패배의 원인을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혁신과 변화를 추동했어야 했다. 그러나 성찰과 반성은커녕 상대를 헐뜯고 비방하는 네거티브가 전당대회 전 과정을 관통했다.느닷없이 지난 1월,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가 공개되기도 했다. 공개된 경위와 경로를 알 수 없지만 김건희 여사 문자 논란은 엉뚱하게 한 후보 때문에 김 여사가 명품백 논란에 대해 사과하지 못했다는 쪽으로 번지면서 후보들 간에 소모적 비방전을 야기했다.당정이 수직적 관계를 면치 못하고 여권 내 권력지형에서 상호 견제와 비판이 사라지면서 여권의 지지율이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여당은 야당에 17%p 차로 대패했다. 당시 강서구청장 선거는 22대 총선의 전초전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으나 여권은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총선 참패로 이어진 것이다.상황이 이러함에도 당권 후보들은 해병대원 특검 수정 제안을 대통령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이른바 '배신자 프레임'으로 본질을 흐리게 했다. 해병대원 특검에 대한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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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천시 노동자 순유출 신산업 유치로 막아야 한다 지면기사
인천시의 노동자 순유출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은행 인천본부와 인천연구원이 개최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인천경제의 과제' 세미나에서 타 지역으로부터 인천시로 인구 유입은 늘어나고 있지만 제조업과 서비스업 분야의 노동자 순유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노동자 순유출이란 거주지가 인천이지만 타 지역으로 직장을 다니는 노동자를 말한다. 생활기반과 주거기능이 분리된 노동자 순유출은 기본적으로 도심지의 높은 주거비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조성한 수도권의 신도시가 겪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도시 공간도 복잡해졌다. 인천시의 경우 경인철도와 경인고속도로를 축으로 시가지가 지속적으로 확대 팽창하여 부천과 서울 서남부와 연결되는 거대한 연담도시(conurbation)를 형성해왔다.지난해 인천에서 제조업 노동자 4만8천명, 서비스업 노동자 16만5천명, 총 21만3천명의 순유출이 발생했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10년간 지속돼온 것으로, 2013~2023년 사이 제조업에서 연평균 2.2%, 서비스업에서 연평균 3.5%의 순유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 결과 지역내 노동자 고령화와 실질 임금도 하락했다. 젊은 노동자는 밖으로 나가고 저임금 고령자만 남게 되는 것이다.노동자 순유출은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유발한다. 순유출의 결과 노동자의 거주지는 베드타운화한다. 개인적으로 출퇴근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고 이로 인해 삶의 질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출퇴근 인구의 증가로 인한 만성적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로 철도 등 교통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소요된다. 도심 공동화 현상도 노동자 순유출로 인한 간접적 현상이다.노동력 수급 차원에서의 대책은 일자리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20~40대 노동자의 순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세미나의 참가자들은 신기술을 이용한 신산업 유치를 통해 노동시장을 질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동력 수급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일자리 환경 개선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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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동킥보드 사망 사고 급증, 규제 입법 서둘러야 지면기사
전동킥보드를 포함한 개인형 이동장치(PM)가 일으키는 사고가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 8일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는 60대 부부가 뒤에서 달려온 전동킥보드에 치여 아내 A씨가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부부를 친 전동킥보드에는 고등학생 2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원동기 면허 미소지자로 조사됐다. 무면허는 물론 동승자가 있었던 것 모두 교통 법규 위반 사항이다. 면허도 없는 청소년이 어떻게 전동킥보드를 타고 공원을 활보할 수 있었을까. 원인은 면허 인증 법적 의무화가 진행되지 않아, 업체들의 무책임 속에 무면허 운전이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현행 도로교통법상 PM은 만 16세 이상부터 취득 가능한 제2종 원동기장치자전거면허 이상 소지자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PM 공유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수의 업체들은 10~20대가 주 이용층이기 때문에 수익 증대를 위해 면허 인증 없이도 회원가입 및 이용이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셈인데, 이 때문에 전통킥보드 등이 도심의 흉기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오죽하며 킥보드와 고라니를 합친 '킥라니'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제도적 허점을 파고드는 전동킥보드 사고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9년에 447건에 불과했던 사고 건수는 지난해 2천389건으로 5배 이상 늘어났다. 사망자 수도 2019년 8명에서 지난해 24명으로 증가했다. 주 이용층인 10대의 사고도 늘었다. 경찰청이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에 제출한 'PM 연령대별 사고·사망·부상 현황'을 보면 지난해 10대 청소년이 무면허로 전동 킥보드를 주행하다 적발된 사례는 2만68건이었다. 10대 이용자가 일으킨 사고 건수도 지난해 1천21건에 달했다.규제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무면허자는 PM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업체 책임을 강화하면 된다. 하지만 규제 법안은 국회에서 잠들어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 마련에 나섰지만 기한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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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제 '전공의 없는 병원'으로의 전환 불가피하다 지면기사
정부가 전국의 수련병원에 제시한 전공의 사직서 처리 마감 시한이 지났지만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집계 결과 출근율, 즉 복귀율은 10% 미만이다. 지난 15일 정오까지 전국 211개 수련병원에 출근한 전공의는 1천155명에 그쳤다. 정부의 최후통첩에도 지난 주말과 대비해 겨우 44명만 늘었을 뿐이다. 나머지 1만2천여명의 전공의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미복귀 전공의들은 일괄 사직 처리 이후 오는 9월 각 수련병원들의 하반기 모집에도 응하지 않을 움직임인 것으로 알려졌다.고민이 깊어지는 건 수련병원들이다. 일단 서울대병원은 복귀 의사를 밝히지 않은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사직 처리 절차에 들어갔다. 복귀와 사직 의사를 밝히지 않은 전공의들에게 사직합의서를 발송한 서울대병원은 회신하지 않을 경우 사직서를 수리하겠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상당수 수련병원들은 응답하지 않는 전공의들에 대해 여전히 사직을 유보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빅5' 병원들과 달리 지방의 경우 하반기 모집에도 충원이 어려울 수 있기에 더욱 고민스럽다.이쯤 되면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모든 강경책과 유화책이 결국 '백약무효'인 셈이다. 지난 3월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유보한 데 이어, 6월 초에는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중단했다. 전공의와 소속 수련병원에 내린 진료 유지명령, 업무 개시명령,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등 각종 명령도 철회했다. 급기야 지난 8일에는 면허정지 행정처분을 아예 철회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정부 처분이 '중단'이 아닌 '철회'로 바뀌면서 복귀한 전공의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일부 환자단체들의 반발까지 불러일으켰으나 사태 해결을 위한 정부의 '관대한' 조치로 이해했었다.이제 전공의 없는 병원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게 됐다. 정부로서도 더 이상 내놓을 유화책이 없다. 정부 스스로 여러 차례 공언했듯이 그동안 전공의들에게 과도하게 의존해왔던 비정상적이고 불합리한 기존의 상급병원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미복귀 전공의들을 압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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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급한 맞춤형 노인일자리 확대 및 질적 개선 지면기사
전국의 폐지 줍는 노인이 1만5천여명에 육박한다. 보건복지부의 전수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집 노인은 전국에 1만4천831명인데 지역별로는 서울이 2천530명으로 가장 많았다. 경기 2천511명, 경남 1천540명, 부산 1천280명 순이었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78.1세로 초고령자이며 남성보다 근로 경험이 적은 여성이 절반 이상(55.3%)이다.이들 중 기초연금수급자는 1만3천86명이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4천219명이었다. 일주일에 6일 동안 이른 새벽부터 낮은 밤까지 거리를 쏘다니며 폐지 수집으로 버는 돈은 월 16만원 남짓인데 기초연금과 보조금 등을 합치면 평균 소득은 월 76만6천원이었다. 폐지를 왜 줍느냐는 물음에 53.8%가 생계비 마련이라 답했다. 대부분의 폐지 수집 노인들은 자녀들이 분가해 부부 또는 1인 가구이다.폐지 줍기는 빈곤의 상징이어서 전국의 지자체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폐지 줍는 노인에게 수입이 2배가량 높고 안전한 일거리인 공공장소 담배꽁초 수거, 수변공원 환경미화원, 스쿨존 교통안내 등을 제공 중이다. 그러나 폐지 수집 어르신들의 참여는 매우 저조하다. 인천시가 관내의 폐지 수집 노인 584명에게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의향을 조사해보니 참여의사를 밝힌 응답자는 30명(5%)에 불과했다. 이유가 다양했으나 1년 단위인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했다가 이듬해 탈락을 우려하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보다 3배가량 높다. 한국은 선진국 중 노인 빈곤율이 1위이다. 그런데 2021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34.9%로 OECD 평균(15%)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일하는 노인 비중이 높은데도 빈곤율은 선진국 최고인 것이다. 55∼79세 고령층의 '일하고 싶다'고 밝힌 비율은 2012년 59.2%에서 2023년 68.5%로 크게 높아졌다.준비 안 된 지각 사회는 노인 빈곤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금제도가 제대로 정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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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택시기사 복장 정도는 노사 자율로 정하면 안 되나 지면기사
용인시가 16일 밝힌 '택시운송 서비스 증진 개선명령'이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관내 고급형 택시의 관외영업 제한 규제와 택시기사 금지 복장 규정을 담은 행정명령인데 택시기사 금지 복장이 논란거리가 됐다.금지된 복장은 구체적이다. 쫄티·민소매 상의와 반바지·칠부바지는 입을 수 없다. 슬리퍼를 신을 수 없고 맨발 운행은 금지다. 감염병 유행 때를 제외한 마스크 착용도 안된다. 미풍양속 저해 문구가 있는 상의, 낡고 혐오스러운 모자처럼 객관적 판단이 힘든 금지 복장도 있다. 위반하면 사업자에게 과징금 10만원, 기사에게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한다.복장 규제는 단정한 용모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택시 기사의 직업적 윤리와 상식 때문에 당연한 듯싶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은 금지 복장을 나열해 벌금으로 강요하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반발한다. 기사의 상식과 윤리에 맡길 일에 행정이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얘기다.택시기사 복장 규제는 해묵은 논란거리다. 서울시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정복장제를 시행했던 서울시는 택시기사들의 반발로 2011년 자율복장제로 바꾸고 금지복장 규정을 적용했다. 그러다 2017년 지정복장제로 회귀하면서 16억원의 예산으로 법인 택지기사 전원에게 조끼와 와이셔츠를 지급했다. 기사들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고, 인권위는 2019년 택시기사들의 자기결정권 침해로 판단하고 명령 철회를 결정했다. 서울시는 불량복장을 금지하는 선으로 다시 후퇴했고, 그 내용은 이번 용인시 명령과 대동소이하다.금지 복장을 한 기사가 운전하는 택시를 탄 승객은 불쾌하거나 심지어 위협을 느낄 수 있다. 뒤집어 생각하면 불량한 복장으로 손님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택시기사는 드물다고 봐야 한다. 손해가 자신과 업계에 미치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복장 불량 기사를 단속하려 대다수가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기사 집단을 규제하는 행정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민원이 문제라면 민원으로 인한 손실의 당사자인 택시업체와 기사간의 자율 규제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규제와 벌금 행정이 아니라 택시 노사 자율협약을 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