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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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적대적 공생'이라는 결정적 장애를 극복해야 지면기사
한국정치가 앓고 있는 결정적 장애는 정치양극화다. 양극화가 정파간 극단적 대립을 불러오고, 정치는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한 채 정치 행위자의 권력추구 공간으로 전락한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결정적이고 직접적 원인은 강성지지자로 불리는 팬덤 지지층들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강경 극우성향의 태극기 세력은 헌법 체계를 부정하고 국정농단을 저지른 행위에 대한 비판과 처벌을 부정하고, 맹목적으로 박 전 대통령을 비호하며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 2019년 '조국 사태'때 보편과 공정, 상식을 외면한 조국 수호 세력은 명백한 사실 확인을 마다한 채 조국 전 장관과 그의 아내인 정경심 교수를 비호했다. 그리고 검찰개혁이란 명분으로 조국을 수사하는 검찰의 수사권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 탄핵에 반대한 '태극기 세력'과 '조국 수호 세력'은 정권을 상대정당에 넘겨줘야 했다.특정 세력 유지 위해선 '팬덤 활용' 절대적중도, 정치공간 퇴출 무당층으로 존재 상실국민의힘의 김기현 대표 체제가 출범하고 김 대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동하며 대치정국을 풀기 위한 행보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의 여야 정당체제의 구조적 특성상 정치복원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두 가지다. 첫째, 김 대표가 대통령실의 적극적이고 노골적인 지원에 힘입어 대표에 당선됐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당무개입 논란이 있지만 이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국민의힘의 핵심 당직에 친윤 그룹이 포진하면서 대통령실의 여당 장악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다. 이는 정당의 상대적 자율성을 여하히 확보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지만 정치권력의 속성상 자력으로 쟁취하지 않은 권력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둘째, 여권내의 견제와 비판의 작동 여부보다 정당체제의 정상적 운영과 관련하여 주시할 점은 여야의 적대적 공생 구도가 지속되고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여야 관계의 경색 구도가 확대 재생산할 확률이 높아진 것은 '친윤' 대 '친명'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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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지역조합 이대로 안된다 지면기사
전국동시조합장 선거가 지난주 치러졌다. 경기도 180명, 인천 23명 등 전국 농·수·축·산림조합장 1천346명이 선출됐다. 후보자는 3천82명으로, 평균 2.3대 1이다. 넷 중 하나(290명)는 무투표 당선됐다. 최고령은 82세, 최연소는 41세다.전국 축소판 경기도는 당선자 열 중 일곱(125명)이 수성에 성공했다. 셋은 리턴매치에서 승리했다. 초선은 52명(28%)에 그쳤다. 60대가 125명(69.5%)으로 압도했다. 50대 38명(21.1%), 70대 이상 17명(9.4%) 순이다. 40대 후보 6명은 전멸했다. 조합장 전원이 쉰을 넘었고, 최연소가 50세다. 평균연령만 높아졌을 뿐 4년 전 선거와 닮은꼴이다.현직이 절대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기회는 불평등, 과정은 불공정, 결과는 정의롭지 않다. 임기내내 조합원을 관리하는 조합장과 달리 도전자는 얼굴조차 알릴 방도가 마땅치 않다. 조력자 없는 '나 홀로' 홍보에, 그 흔한 현수막도 걸지 못한다. 선거기간(2주)에만 유권자 상대 문자 전송, 통화가 허용된다. 토론회도 열리지 않는 '깜깜이' 선거를 중앙선관위가 주관한다. 조합장은 선거 직전까지 자리를 지키며 프리미엄을 누린다. 20% 넘는 조합이 무투표인 까닭이다. 현직이 양보하지 않으면 사실상 기회가 없는 상황인 거다. 현직, 선거 직전까지 프리미엄 누려 '유리'특정인 수십년 독식·친위대 '그들만의 세상' 상임조합장은 연임만 허용되나 비상임조합장은 제한 규정이 없다. 당사자 의지면 무한 출마가 가능하다. 이런 연유로 파주에선 6선 신화가 탄생했고, 오산 포천 김포 파주에선 5선 조합장이 배출됐다. 전국으로 넓히면 5선 넘는 조합장이 널렸고, 10선 기록이 있다. 보좌그룹인 이사, 감사도 연임제한이 없다. 서로가 끌어주고 밀어주며 20~40년 왕좌를 지켜낸다.비상임조합장을 두게 된 사유가 있다. 조합장에 편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운영 전반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조합원의 실익을 극대화하자는 취지다. 뻔한 틈새를 놓칠 리 없다. 전국 조합장 열 중 넷은 비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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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멋'의 인문학 지면기사
'멋'을 학술적 탐구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이겠으나, 문학이나 미학 분야의 논자들이 오래 전부터 다뤄온 미적 범주이다. 아직 '멋'이라는 말의 뿌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 고유어임에 분명하지만 중세국어에서 용례가 극히 드물어 조선후기나 근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이 근대적 생활상을 반영하기 위해 고안되거나 파생된 말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멋'이 문헌에 등재된 것은 게일(J.S.Gale) '한영자전'(1891)인데, 여기서 '멋'은 '맛'과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 조지훈은 민족어의 미의식이 미각적 표현을 바탕으로 파생된 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멋의 본질을 밝히려고 시도한 초기의 논자들은 신석초, 이희승, 조윤제, 조용민 등이다. 그 가운데 신석초(申石艸)는 그의 '멋설'에서 멋이 한가롭고 여유로운 상태에서 발생한 정제된 감성으로 보았다. 국어학자 이희승은 멋의 본질이 '흥청거림'과 '일탈'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국문학자 조윤제는 '멋이라는 말'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이희승의 일탈론을 비판하고 멋은 '조금 어긋난 행동' 즉 파격에서 생겨난 것이며, 한국적 미의 특징은 '은근과 끈기'로 파악하였다. 이들의 언급은 멋의 기원과 특성을 다룬 것으로서 멋의 일탈과 변형적 특성이 단편적으로나마 드러났다. 조지훈은 민족미학의 중심 개념으로 파악고유섭은 '즐거움 주나 통일성 결여' 비판 조지훈은 '멋'을 민족미학의 중심 개념으로 파악했다. 기존의 멋론을 종합한 '멋의 연구'에서 그는 '아름다움'과 '고움', '멋'을 한국 예술의 기본 범주라고 전제하고 그 가운데 '멋'은 한국적 미의 중심이요 이상이었으며 지도적 기능을 지닌 미적 범주였다. 그는 멋의 낙천적인 민족 정신이 정상과 규격을 뛰어넘는 변형미의 형식을 통해 다양성과 율동성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지훈은 '멋의 예술론'으로 나아갔다. 멋의 예술은 슬픔 속에 신념의 힘을 갖춘 것이며, 소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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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경기도에는 왜 문학관이 없을까? 지면기사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중심부다. 인구나 규모, 예산 등 모든 면에서 서울에 버금가는 지역이다. 경기란 말은 왕의 직영지, 수도를 보위하는 울타리, 나라의 근본지지(根本之地)란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경기의 실상은 이 같은 언어적 의미와 한참 멀다. 서울과 가깝기에 서울의 다양한 문화 인프라를 누리며 서울에 버금가는 혜택을 받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경기는 규제도 많고 서울도 지방도 아니라는 모호한 위상으로 정책적 배려나 지방에 주어지는 지원 같은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중적 상황에 놓여 있기도 하다. 또 도의 특성상 직장이나 학교 등 서울이 주 생활무대이고 거주지만 서울 인근의 도시에 두는 경우도 많고 유입인구가 많기에 여타 지역에 비해 구성원들의 결속력이나 자기정체성도 그리 강한 편이 못된다. 특별한 사안이 아니라면 지역문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중층성과 모호함은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도 지방도 아닌 중층성·모호함 지녀도립·광역 개념의 설립 확실한 주체 없어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 문학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 경기다. 그러나 역시 중심부이되, 중앙은 아닌 또 서울도 지방도 아닌 특수지역이기에 풍요 속의 빈곤, 혜택 속의 소외가 있는 것이다. 경기도에는 경기란 이름을 내건 다양한 문화시설과 기관(미술관·박물관·재단) 등이 있다. 그런데 딱 하나 문학관이 없다. 인천을 포함하여 경기도민이 찾아갈 수 있는 문학관은 2017년을 기준으로 조병화문학관·만해기념관·한국근대문학관(인천)·강화문학관(인천)·노작 홍사용 문학관·청류재 수목문학관·육필문학관·황순원 기념관·진아 문학박물관·한국시문학관·박두진 문학관 등 모두 11곳이 있다. 접근성은 있으나 인천광역시는 경기가 아니므로 실제로 경기도의 문학관은 9곳에 불과하다. 2022년 기준 경기도의 인구수는 1천358만9천432명이며 31개의 시군구가 있다. 이 거대규모의 지역에 문학관이 고작 9곳이며,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도립(道立) 문학관은 아예 없다. 많은 문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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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바보 강사법 지면기사
6, 7년 전의 일이다. 서울 여의도에 볼일을 보러갔다가 9호선 국회의사당역 근처에서 필자의 대학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는 박정희 철권통치 하에서 반독재투쟁을 주도하다가 고문과 투옥은 물론 학교에서 제적까지 당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반가운 나머지 인사를 했더니 그 선배는 국회의사당 정문 인근의 2∼3인용 천막으로 필자를 안내했다. 비닐로 덮은 허름한 천막 입구에는 고등교육법 개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대자보들과 피켓 등이, 텐트 내부 돗자리 위에는 침구와 식사도구, 물통, 세면대야, 라면봉지, 핸드마이크 등이 놓여 있었다. 거의 혼자 그곳에서 숙식하며 외로운 투쟁 중이었다.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금배지 서너 번쯤 달고 국회를 누비고도 남을 정도로 자격이 충분한 양반의 행색이 남루하고 초라해 보이니 말이다. 어설픈 민주투사들이 구국의 영웅인양 호의호식하며 정치판에서 호통치는 모습과 너무 대비되었다. 필자는 황망한 나머지 명함만 건네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떴다.이후 그 선배로부터 종종 문자를 받았다. 2010년에 모 지방대학 시간강사가 학교 측의 부당한 대우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연을 전하면서 대학의 시간강사 처우개선을 위한 투쟁에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시간강사 출신의 시민운동가들이 만든 강사법안은 강사료의 파격적 인상과 대우, 전임교원에 준하는 신분보장 등이 담겨져 있어 솔직히 황당한 느낌이었다. 그 선배는 강사법 제정을 지지하는 자필서명도 부탁을 해서 몇 차례 망설이다 역자사지 심정으로 청원명부에 사인을 했다.그리곤 한동안 그 선배와의 교신이 끊어졌는데 어느 날 고등교육법 개정안(강사법) 국회 통과뉴스를 접했다. 찌는 듯한 더위는 물론 추운 겨울 여의도의 삭풍(朔風)까지 견디며 수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천막농성을 했던 그 선배에게 전화로 노고를 치하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돈에 미쳐가는 지경인데 자신의 신념에 따라 초지일관하는 노(老)시민운동가에게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필자가 향후의 계획을 묻자 그 선배는 "고향에서 농사지어 입에 풀칠이나 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겠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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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집권당 경선에 드리운 음영 지면기사
권력은 눈에 보이는 권력 뿐만 아니라 무의사결정(non decision making) 상황을 다루는 경우도 있다. 이는 다른 행위자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가시적 권력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유리한 의제를 아예 거론조차 못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보다 더 치명적인 권력이 자신의 이익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권력자의 의지대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듯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 심어주는 잘못된 믿음이 마르크스의 이른바 허위의식이다. 국민의힘 경선에서 '윤심' 경쟁 이외에 비전이나 민생 담론이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박정희·전두환 시대는 물론이고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를 겸했을 때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지명했다. 이는 대통령과 집권당의 관계가 종속적이고 수직적이라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다. 그러나 정당이 권력의 수족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정당민주주의 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 그 자체에도 결정적 손상을 초래할 수 있기에 대표 경선으로 대표 결정 방법을 바꿨다. 대통령 권력 깊숙이 개입 정황 곳곳서 발견원치않는 인물들 축출 방식 거칠고 노골적 그러나 현재 국민의힘 경선은 경선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대통령의 권력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경원의 '투항', 유승민의 '저항', 권성동의 '침묵'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일련의 상황은 대통령실의 권력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진복 정무수석이 공개적으로 안철수 후보에게 공개 경고를 당에게 요청하는 것은 이의 극적인 방증이다. 당심과 민심의 비율을 70대 30으로 한 당헌을 고치고, 결선투표를 도입한 것도 권력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당선시키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의, 권력의 경선 개입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내년 총선에 표심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없고 당심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대통령실은 친윤 후보가 당 대표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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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낯설다 지면기사
20대 대통령선거는 0.73%p, 역대 최소 득표율 차이로 당락이 결정됐다. 여야 각 진영이 한 표의 낭비도 없이 결집한 가운데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중도층 민심 0.73g이 윤석열을 지지한 결과였다. 정치 질량으로 환산하면 1g도 안 되는 민심의 무게 차이로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고 이재명은 고배를 마셨다.중도 민심 0.73g에 담긴 정치적 의미의 무게는 압도적이었다. 당시 집권세력에 대한 총체적 심판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무능은 지표와 실물로 드러났고, 외교·안보는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로 무너졌다. 조국 수호에 집착하면서 조만대장경은 민주당 내로남불 정치의 바이블이 됐다. 정권연장의 기수로 나선 이재명은 의혹의 심연에서 탈출하려다 상식의 덫에 걸렸다. 윤석열이 대장동의 몸통이라는 억지에 중도 대중은 모욕감을 느꼈다.심판이 이루어지고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국정이 달라졌다. 북한과 중국으로 경사졌던 외교·안보는 한·미동맹과 자유진영 연대 강화로 균형을 회복했다. 화물연대 파업에 합법적으로 대응하자 노조의 유아독존에 균열이 생겼다. 중소건설업체 사장들이 일감을 따고 현장을 유지하려 민노총과 한노총에 가입한 노조원이었다고 커밍아웃했다. 청와대를 버린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났다. 30%대에서 횡보하던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로 올랐다. 0.73g에 불과했던 중도민심이 확장될 기세였다. 심판은 끝났고 나라에 새 기운이 도는 줄 알았다. 당권투쟁 한복판 주자급으로 스스로 격하내부충돌로 0.73%p 마저 까먹는 '뺄셈정치' 하지만 딱 여기에서 멈췄다. 무당파 중도층이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국민의힘 당권투쟁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대통령이 당권투쟁의 한 복판에 강림했다. 국민경선을 당원경선으로 바꾼 당헌개정이 신호탄이었다. 윤핵관이 주도했고 표적은 유승민이라 해석됐다. 나경원도 무릎 꿇렸다. 진정한 친윤(親尹)이라는 읍소를 공직 해임으로 물리쳤다. "대통령 본의가 아닐 것"이라 하자,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결정"이라 했다. 초선 의원 50명은 나경원 비토 성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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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난방비 폭탄, 민생(民生)이 만만한가 지면기사
아파트에 사는 주부가 1월 관리비 고지서를 커뮤니티에 올렸다. 총액 57만원으로, 전월 42만원보다 15만원(36%) 늘었다. 공동관리비는 15만6천원으로 2%(3천100원) 올랐는데, 개별관리비가 26만7천원에서 41만4천원으로 54%(14만6천원) 급등했다. 전기와 난방이 주범이다. 전기료는 12만9천원에서 15만8천원으로 2만8천원(21%) 늘었다. 난방비는 4만4천원에서 15만원으로, 2.5배(10만5천원) 폭등했다. 계절 요인을 고려해도 놀랄만하다.난방비 폭탄에 겨울나기 풍속도(風俗圖)가 흑백 TV 시절로 돌려졌다. 온풍기, 전기 매트, 전기요가 다시 꺼내지고 매출이 급증했다. 핫팩에 냉기를 막아주는 문풍지, 단열 시트로 중무장한다. 명절 전후 한파에 방한용품이 이상 품귀다. 난방용 가전매출은 전년 동기 170% 넘게 폭증했다. 농촌에선 목재용 보일러가 뜨거워졌다. '난방비 절약 비법'이란 온라인 글에 '좋아요'가 쌓이는 서글픈 세태다.9개월 사이 도시가스 요금은 4차례, 38% 인상됐다. 지역난방비 34%, 전기요금은 18.6%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5년간 전기·가스 요금을 억지로 묶는 바람에 인상 폭이 커졌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자력발전을 중단 또는 축소한 문 정부 정책이 재소환됐다. 겨울철엔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뻔한 사실을 간과한 정책 오류는 가리고 또 전(前) 정부 탓을 한다. 한전과 가스공사 적자 폭을 몰아서 줄이려다 민생고를 키웠다. 비난 여론이 거세자 에너지 바우처(이용권) 확대 등 대책을 내놨으나 민심을 달래기엔 태부족이다. 이재명, 추경 제안 정부곳간 외면 생색내기경기지사땐 재난지원금 살포로 빚 2조 늘어 아이디어 고갈에, 정책 빈곤은 야권도 다를 게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30조원 추경예산을 제안했다. 우선 3조원이라도 긴급 수혈하자 보챈다. 난방비 폭탄으로 고통받는 서민과 취약층 보호를 위해 지원금을 줘야 한다는 게다. 화수분이 아닌 정부 곳간 사정을 외면한 생색내기다. 돈 보따리로 폭탄이 제거되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걱정할 게 뭔가.이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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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입춘대길, 봄은 준비하는 것 지면기사
다음 주면 입춘(立春), 24절기의 시작이다. 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춘하추동 4계절을 나누고 각 계절을 여섯 등분한 날들이다. 해마다 입춘일이면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글귀를 써서 대문이나 기둥에 붙인다. 24절기는 중국에서 고안한 역법이지만 입춘첩을 붙이는 세시풍속은 한국 고유의 문화이다. 입춘첩에 대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나타나는 걸 보면 민간과 왕실에서 오랫동안 이어온 세시풍속임을 알 수 있다.올해의 입춘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설 연휴 마지막 폭설과 강풍을 동반한 한파로 전국이 얼어붙어 있어 더하다. 그런데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말도 있고 '입춘에 장독 오줌독 깨진다'는 말도 있는 걸 보면 입춘 무렵에 매서운 추위가 오는 것은 다반사였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입춘 무렵에도 전국적으로 눈이 내리고 강풍이 부는 추운 날씨였다. 입춘은 봄의 시작이라 하지만 여전히 소한·대한 뒤에 오는 겨울의 끝자락이기도 하다.2월 하순이나 3월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봄꽃이 필 무렵의 특수한 저온현상인 꽃샘추위가 2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두어 차례 온다. 꽃샘추위가 오면 흔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로 이상 저온을 탓한다. 이 표현은 본래 한나라 궁녀였던 절세미인 왕소군(王昭君)이 화친정책의 일환으로 흉노의 왕에게 시집가서 인질로 살아가야 하는 쓸쓸한 처지를 노래한 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와 사투들 벌여야 했던 전 세계 인류도 왕소군처럼 춘래불사춘의 봄을 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봄' 저절로 오는게 아니라 사람이 세우는 것한해 시작의 큰 마디 특별한 마음가짐 필요 입춘이 아직 봄이 아니라는 건 봄의 다른 절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입춘 지나고 보름 쯤 돼야 눈이 녹기 시작한다는 우수(雨水)이다. 입춘 한 달이 지나야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경칩(驚蟄)이며, 또 춘분(春分)은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나야 오니 말이다, 입춘 이후에도 동장군(冬將軍)과 봄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고비를 넘어 한걸음씩 우리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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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다시 읽다 지면기사
조세희(1942~2022)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읽은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학교신문사 수습기자가 됐는데, 이때 신입생 필독 추천도서로 권유받은 책이 '난쏘공'이었다. 그때 신입생들 독서 지도를 맡은 선배들을 RP(reproduction person의 약어로 당시 대학가의 은어)라 했는데, RP 선배들로부터 받은 필독 도서들이 엄청났다. 1학년 동안 읽어낸 책들이 족히 100권을 넘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철학에세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노동의 역사', '우상과 이성', '변증법적 유물론', '자본주의 구조와 발전', '헤겔 입문', '경제사', '난쏘공', '숲속의 방',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등 수많은 책들을 읽어냈다. 이때 읽은 책들은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지금도 그 목록들을 재현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것은 2학년 때부터 나도 RP가 돼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이 책들을 다시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난쏘공'은 우리들에게 단순한 소설이 아닌 저항의 서사이며, 통과의례였다. 그러므로 1980년대를 관통해온 우리세대에게 '난쏘공'은 질풍노도의 청춘시대를 결정짓는 원형적 기억이자 정치적 감수성의 밑바탕을 이루는 책이라 해도 될 것이다. 청춘시대 정치적 감수성 밑바탕 이뤘던 책국가권력 공포 극에 달했던 유신시대 초판 '난쏘공'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고전은 읽을 때도 고전하지만, 읽지 않아도 평생 고전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고전인데 '난쏘공'이 꼭 그랬다. 작품의 행간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노동자·도시빈민의 참혹한 삶이 불편했고 당황스러웠으며, 12편의 연작으로 이뤄진 여러 겹의 복잡한 구조가 신입생의 짧은 문해력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부지 문청시절에는 작가의 계급의식이 철저하지 못하고, 투쟁성과 서사의 선명성이 부족한 동화와 같은 서사라는 투정을 부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사회변혁의 열정으로 가득한 청춘의 오